민주노총 3기 지도부 선거에 대한
우리의 입장
‘3기 지도부 선거’의 역사적 성격과 그 의미를 분명히
하자!
○ 알다시피 다가오는 9월 17일에 치루어질 민주노총 3기 지도부
선출은 2기 지도부가 선거공약으로 제출한 임기 1년이 물리적
시간상으로 약 6개월 늦춰져 실시되는 것이다. 지난 12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지도부가 규약상의 임기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을 주요한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일도 처음이거니와,
오로지 그 공약에 근거하여 임기 내에 보궐 선거를 치루는 것도
당연히 최초로 경험하는 일이다.
우리는 민주노총 2기 지도부 선거에서 임기 제한이 선거공약으로
등장하게 된 데에는, 단순히 당선을 위한 선거전술로만 취급할
수 없는, 거기에 따른 충분한 역사적 맥락과 현실적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또한 3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선거 역시
겉으로는 규약에 따라 보궐선거로 치루어지고 있어 자연스로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실은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2기
지도부 선거 때는 분명한 주체에 의해 임기 제한이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은 분명한 주체 없이 혹은 모두에
의해, 암묵적이고 소극적인 의미에서 임기 제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도 2기 지도부 선거 때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 96~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87년 7~9월 전국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 혹은 노동자대중 투쟁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투쟁이었다. 그러나 87년 투쟁이 그 후 10여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의 동력으로 작용한 것과 비교해 봤을 때, 96~97년
총파업투쟁은 역사적․정치적 의미에서 87년 대투쟁을
능가함에도 불구하고 불과 채 1년도 못돼 유실될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 과정은 97년 대선참여 속에서 보여준 탈계급성,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지도부에 의한 정리해고 법제화 수용,
비대위 구성 과정의 혼란과 비대위지도부가 내세운 투쟁철회
이유가 사실상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다름아니며, 2기 지도부
입후보 과정에서 여지없이 드러난 상층 지도력의 난맥상 등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96~97 투쟁에서 보여준
대중투쟁의 위력은 간 데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87년 이후
쌓아온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긴박한
상황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기에는 한국경제의 위기와 김대중 정권의 등장에 의해 지난
시기 민주노조운동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세가
형성되었다는 객관적 정황과 함께, 주체적으로는 그 때까지
민주노조운동에서 실질적으로 주류적(다수) 경향으로 자리하고
있던 세력(노선)의 문제점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 2기 지도부가 임기 제한을 공약으로 내걸고 ‘투쟁과
혁신’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은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 및
현실적 이유와 서로 뗄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다. 무엇보다
세력관계와 노선의 차이와 무관하게 상층 지도부 일반이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어 있었으며, 상층
지도력을 형성할 수 있는, 대중적으로 검증된 - 대중적 명망성을
갖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 인적 자원이 대단히 취약했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할 수 있다. 또한 당시의 상황은 일상적 시기가
아닌 비상시기로 민주노조운동의 중장기적 발전전망을
체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없었으며, 당장
무너져 내리는 투쟁전선을 복원시켜야 하는 긴급한 임무와
과제가 주어져 있었다.
2기 지도부가 급조된 후보였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조직력과
확실한 지지세력을 갖고 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출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과 함께, 그 때까지
민주노조운동의 주류적 경향을 형성하고 있던 세력의 지도
노선에 대한 대중적 문제의식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기 공약이 선거결과에 미친 표의 효과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설령 양적인 측면에서는 비록 그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배경이
없었다면 그러한 공약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다는 사실
자체이다.
○ 2기 지도부의 선출은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의 주류적 경향에
대해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해왔던 세력(노선)이 집행부 구성에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부분적인 의미가 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2기 지도부는 ꡐ조직화된 세력ꡑ -
민주노조운동 안팎으로 노선적이든 인적으로든 일상적 관계를
맺으며 상호 규정력을 주고 받는 조건을 갖고 있는 경우 - 이
아니라는 조건을 갖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충분한 지도력을
발휘하기에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주류적 경향을 비판했던 세력과 2기 지도부 사이에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구상과 집행을 같이 할 수 있는 내적
조건과 연관성을 갖고 있지 못함으로써 집단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2기 지도부에 대한 평가가
곧 주류적 경향에 비판적 문제제기를 했던 세력일반에 대한
평가까지를 모두 포함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비록 긍정적인 측면이든 아니면 부정적인
측면이든 관계없이 그렇다.
○ 어쨌든 2기 지도부 아래에서 민주노총은, 비록 “대중적
요구에 충분히 부응했는가”와 화두로 던진 “‘투쟁과 혁신‘에
걸맞는 수준의 활동을 했는가”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하더라도,
97년 말부터 98년초에 걸쳐 나타났던 극심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혼란과 혼돈은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노동운동에서
자주성․민주성․투쟁성․계급성을 지키고
강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으며, 노학연대투쟁과 민중연대투쟁을 활성화해냈다.
나아가 국내외 자본과 김대중 정권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해 강력한 대중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는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끝으로 투쟁의 정당성과
자신감을 일정 부분 회복해냈다.
○ 물론 이러한 결과가 단순히 2기 지도부의 노력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작용한 것만은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2기 지도부는 대중조직 차원에서 그 이전 주류적
경향(노선)과는 다른 또 하나의 경향(노선)을 대중조직 내에서
실천하려고 했던 지도부로 위치 지을 수 있다. 다만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2기 지도부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날
지, 아니면 분명한 위상을 유지해 나갈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3기 지도부가 어떤 실천을 하는가에 따라 그 갈림길의
일차적 방향이 정해질 것이다. 3기 지도부가 2기 지도부의
위상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게 하는 실천을 한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래로부터의 조직운동’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는 것이다.
○ 3기 지도부 선거는 객관적으로는 2기 지도부의 공약과 그에
따른 규약에 의해 성립된 것이며, 당연히 선거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3기
지도부 선거는 민주노조운동 안팎의 세력관계(노선차이)가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공약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2기 지도부가 물러나는 것이 반드시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공약을 부르조아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2기
지도부가 규약상의 임기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2기 지도부의 임기가 공약보다 6개월
정도 더 이어진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공약을
이행하라는 강력한 요구가 있었으며 그 요구가 객관적으로
성립할뿐더러, 그 요구가 현실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임기 연기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 또한 3기 지도부 선거가 규약에 따라 보궐선거 - 이 의미는
임기 제한 - 로 치루어지고 있는 그 이면에는 역시 세력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왜냐하면 3기 선거를 새로운 선거로 치루는 것이
보다 올바르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의 임기 3년이 객관적으로 너무 길기 때문에 적극적인
의미에서 보궐선거로 치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느 세력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그것이 불필요한 논쟁이어서라기 보다는 각 세력의 이해관계가
보궐선거로 치루는 쪽으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3기
지도부 역시 선출된다 해도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약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가
아니라, 위와 같은 배경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선거를 적극적으로 주장한 세력, 즉 2기 지도부에게
임기 공약을 이행할 것을 주장한 세력은, 지금으로서는 ‘단병호
후보’가 되겠지만, 이제 단순히 임기 공약 이행을 넘어서 왜
선거가 필요한가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 다시 말해 2기 지도부가 실천한 것 중에서
무엇을, 어떤 면을 문제삼고 있는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 이는
선거에서의 선출 이전에 노동자대중에게 먼저 자신의 노선과
정체성을 밝히는 것으로, 추상적인 선거공약 혹은 과제를
나열하기에 앞서, 또한 지지를 호소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이번 선거가 갖는 역사적 성격과 의의가 무엇인지
대중적으로 분명해진다. 다시 말해 이번 선거가 단순히 사람을
바꾸는 선거가 아니라면, 상층 지도부 사이의 자리다툼을 위한
선거가 아니라면, 내가 하면 더 잘할 수도 있겠다는 공명심
때문이 아니라면, 과거활동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심지어 다음에 무엇을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주변세력의 권유에 의해 나선 것이 아니라면, 만에
하나 비대위 때의 행위를 당선이라는 형식을 통해 돌파하기 위한
것 -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음 - 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왜 2기 지도부가 아닌 3기 지도부여야 하는가를
노동자대중에게 설득하고 주장해야 한다.
○ 또 다시 만에 하나 지금으로서는 주장할 자신의 분명한
노선과 정체성을 체계적으로 밝힐 만한 내용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최소한 2기 지도부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지,
아니면 2기 지도부 이전 경향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지의 수준
정도의 입장만이라도 밝혀야 한다. 혹은 그렇게 하는 것이
선거에, 즉 당선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지도자가 취해야 할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도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일정한 노선과 정체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운동의 발전에 혹은 통합과
단결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거나, 자신은 특정 노선의
지도자가 아니라 모두를 포괄하겠다는 포부 때문에 그렇다면, 그
점이라도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3기 지도부 입후보진영’은
자신의 노선과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 ‘3기 지도부 입후보진영은 다음의 이유 때문에 자신의
노선과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첫째, 이번 선거가 정상적인 과정에서 치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2기 지도부의 선거공약을 이행하는 보궐선거라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2기 지도부의 노선에 대한 반정립이 아니면 최소한
지도부를 교체해야 할 수준의 문제제기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왜 3기 지도부여야 하는 지 분명한 이유가
반드시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이 밝혀질 때 이번
선거가 갖는 역사적 성격과 의의가 드러날 수 있으며, 그래야
선거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둘째는 이번 선거가 공교롭게도 ‘단독후보’로 치루어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분명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발전단계 -
여기서는 상층 지도부를 구성할 수 있는, 대중적으로 검증된
인적 자원의 한계와 동시에 명망성을 뛰어 넘어 조직적으로
후보를 낼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아직 운동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측면을 제한적으로 의미한다 - 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단병호 후보가
차지하고 있는 ‘대중적 명망성이 특출 - 이는 지도력에 대한
혹은 노선적 내용에 대한 동의까지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
하다’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모든 연맹위원장이 단병호․이수호 런닝메이트를
연서명으로 단일후보로 추대하고 - 우리는 이에 대해 ‘야합이냐
아니냐’를 가리기에 앞서, 일종의 속임수 내지 웃기지도 않는
코메디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상층 수준에서의 이해관계가
아니라면, 그들의 견해가 모두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만약 이것을 이해관계를 넘어
민주노총 혹은 3기 지도부를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강화하기
위해, 속된 말로 통큰 통합과 단결을 보이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자다가도 웃을 일이기 때문이다 - 있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경선 후보간의 논쟁을 통해 노선과 정체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어,
ꡐ단독후보ꡑ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부르조아 선거조차 노선과 정책대결을 외치고 -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 있는데, 민주노총 지도부 선출은
말할 것도 없다.
○ 셋째, 단병호 후보가 갖고 있는 노선과 정체성이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대중들에게 분명하고 투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속에서 정권의 탄압을 온몸으로
이겨낸 훌륭한 지도자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어쩌면 이런
문제제기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다.
지도자는 매 시기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분명히 밝히면서 대중의
신뢰를 획득해야 한다. 비록 결정은 충분한 논의와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통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럴
때에도 지도부 자신의 생각은 결정된 결과와 관계없이 대중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만 지도력의 지속과 축적이 가능하며
오류와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고,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객관적으로 가능해진다. 부르조아 정권조차 이른바 정책실명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 마지막으로 지난 15차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조직적
결의로는 최초로 선택한 ꡔ99년 상반기
사업평가ꡕ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이미
민주노조운동 안팍에서 논쟁과 대립을 형성하고 있는 주요한
내용들은 단순히 사안별, 계기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일관되고 체계적인 수준에는 이르고 있지
못하지만, 노선적 견해에 따른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중적 노동운동이 발전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며, 운동의 발전과 대중적 검증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노선 경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고 있다. 단결과 통합은 그 자체를
강조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차이를 분명히
밝히면서 상호 책임있는 실천을 해 나가면서 단결과 통합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와 그 법칙적 발전’을 이렇게
바라본다!
○ 최소한 87년 이후 본격화된 대중적 노동운동은, 정치적으로는
언제나 전근대적인 노사관계가 강요되는 상황 아래 놓여
있었으며, 사회경제적으로는 한국경제가 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객관적으로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을 개선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조건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지형이
배경이 되어 대중적 노동운동은 정권의 반노동자적, 비민주적
행위에 대한 저항과 경제성장에 따른 정당한 분배를 요구하면서
투쟁동력을 지속적으로 형성해 왔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러한
대중투쟁 위에서 성장해왔으며, 동시에 내부의 단결과 통합을
이루어왔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노조운동의 역사가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정권과 자본의 탄압과 배제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논외로 하더라도, 김영삼 정부 출범으로 인한 국내
정치지형의 변화와 ꡐ현실 사회주의ꡑ진영이
붕괴되는 세계사적인 대전환을 맞아,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이
상당한 혼란에 빠지기도 했었다. 민주노조운동진영 일부에서
파업건수와 일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적 기초와 특히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감소하고 있는 사실에 근거하여
ꡐ노동운동의 위기ꡑ를 들고나왔는가 하면, 이른바
ꡐ전투적 조합주의ꡑ에 대한 비판을 빌어 사실상
대중투쟁 자체를 문제로 삼기까지 했었다. 또한 정권과 자본이
추진한 ꡐ산업구조조정ꡑ과
ꡐ신경영전략ꡑ으로 인해 노동자대중의 투쟁이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대중투쟁동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위기가 민주노조운동 내부에 팽배하기도 했다.
○ 그러나 역시 전체적으로 볼 때, 민주노조운동의 외연은
조직적으로는 ꡐ민주노총ꡑ과
ꡐ연맹ꡑ을 건설하고,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등의
침체로 인해 대중투쟁동력이 약화되는 듯 했지만 자동차산업이
새롭게 대중투쟁을 이끄는 전국적 구심으로 등장하는 한편,
한국통신을 대표로하는 공공부문이 민주노조운동진영에
가세했으며, ꡐ현실 사회주의ꡑ권의 붕괴에 따른
ꡐ정치적 공백ꡑ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대중투쟁이
꺽이지 않음으로써,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특히 96~97년 전국적 정치총파업투쟁이 일어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은 대중적 노동운동을 성립시킨 근원으로 작용한
87년 전국노동자대투쟁 이후에 새로운 질을 갖는 또 다른
대중투쟁의 젖줄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96~97년 대중투쟁은
그 투쟁 자체의 성격과 의미 및 투쟁의 성과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폄하되고, 엉뚱하게도
산별노조 부재와 극히 제한적인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의
필요성만 부각되는 근거로 둔갑하는, 실로 어이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더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97말부터 98초에 걸쳐
상층 지도부가 보여준 극심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동요로
인해 투쟁의 의의가 유실될 처지에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2기
지도부 아래에서 이루어진 98~99년 상반기 투쟁에 힘입어,
투쟁의 의의가 다시 복원되고 있는 과정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 결론적으로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대중적 수준에서는
운동의 외연이 확장되는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대중투쟁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세변화를 이루는 주요한 동력으로서의 위상과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계급적
성격을 강화해왔다. 다만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관련해서
민주노동당(가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는, 현재
드러난 문제와는 별개로 2000년 총선을 경과하면서 대중적으로
검증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중운동 바깥(정파운동, 노동단체, 연구소 등),
노동조합의 상층 지도부, 현장활동가 수준에서는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노선, 조직발전전망, 전략과 전술, 투쟁과제, 대정부
관계 및 교섭문제, 한국노총에 대한 태도, 민중부문 및
시민운동과의 관계 등을 둘러싸고, 또한 정세인식에 이르기까지
80년대 정파운동 차원의 대립구도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대중조직의 발전에 조응하는 대립(논쟁)구도를 형성해왔으며,
이러한 논쟁과 대립은 이제 대중적 차원에서까지 노선적 분화를
이루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ꡐ운동 주체가 자신의 노선에 대해 어느 정도
자기의식화되어 있는가ꡑ와 ꡐ매 상황마다 노선에
입각해 일관되게 대처하고 있는가ꡑ라는 잣대로 보면,
아직은 미분화되었거나 덜 성숙한 것도 사실이며, 주장의
일관성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세인식에서부터 하나의 전술에 대한 입장을 둘러싸고도 이미
일정한 경향(노선)을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진영이
재편․재구성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유로 ‘단병호 후보’를 지지할 수 없다!
- 유세과정에서 드러난 단병호 후보의 견해에 대해 -
98년 2월, ‘비대위 지도부의 투쟁철회’에 대하여
○ 단병호 후보는 98년 비대위 지도부 때의 투쟁철회에 대해,
비록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집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어떤 비판도 받아들이겠지만,
당시의 조건이 투쟁을 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에 그 결정은 지금도 올바랐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비대위 지도부는 당시에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를 들어 투쟁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첫째, 경제위기는 앞으로 수 년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둘째, 민주노총의 위상에 걸맞는 투쟁을 할 수 있는 투쟁동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셋째, 한국사회 초유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투쟁한다면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넷째, 만약 투쟁을 강행한다면 조직 내부가 혼란에 빠지거나
분열될 수도 있다.
(이상은 공식문서에 의하지 않은 것으로 순서와 구체적 표현은
다를 수 있다.)
○ 우리가 여기서 단병호 후보에게 문제제기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단병호 후보는 당시 비대위 지도부를 구성할 때 비록
개인적인 고민과 어려움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또한 비대위
지도부를 맡지 않는다 해도 전체운동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어떤
다른 역할을 맡을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만 알 수 없지만 -
당시는 얼마 뒤 통합금속연맹의 출범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알려지기로는 통합금속연맹의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 당시는 그야말로 민주노조운동
자체와 민주노총이 87년 이후 최고의 위기를 맞이했던
상황이었으며, 따라서 누구든 조직과 노동자대중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부응해야만 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특히 단병호 후보는 당연히 객관적으로 가장 먼저 그 위기를
적극적으로 타개해 나갈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이는 단병호
후보가 갖고 있는 노선적 경향이나 개인적 능력과는 무관하게
일종의 역사적 부름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가 이점을
중시하는 것은 단순히 그 당시 왜 적극적으로 비대위 지도부를
맡을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가를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물음도 가능할 수 있다. 단병호 후보로서는 왜 자신만이
그러한 물음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대단히 고통스럽고 또한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객관적으로 그 만큼 단병호
후보가 민주노조운동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따른 대중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묻고자 하는 것은 ‘왜 지금은 자신이 나서야 하는가’에
대해 당시와 비교하여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
답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모든 연맹위원장이
설령 자발적으로 나서서 단일후보라는 형식을 만들려고
했다해도, 자신이 오히려 이를 저지시켜야 했다. 우리는 단병호
후보가 비록 우리와 견해를 같이하지 않는다고 할 지라도 충분히
민주노총 지도부에 입후보할 대중적 검증을 거친 지도부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단병호 후보가 유일한
적임자는 결코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답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병호 후보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민주노조운동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병호 후보는 민주노조운동에서 지도부의 한 사람일
뿐만아니라,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거취 또는 진퇴에 대해서 대중에게 공개할 의무가 있다.
○ 둘째, 당시 단병호 후보가 저지른 최대의 오류는 투쟁철회
과정에서의 절차적 문제나 또는 투쟁을 철회한 사실 자체보다,
바로 투쟁을 철회하면서 내세운 4가지 이유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만약 4가지 이유가 투쟁을 철회하기 위한
불가피한 궁여지책 또는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판단을 하고 있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정세는 첨예한 이데올로기 투쟁이 필요한던
시기였다. 당시는 그야말로 노동자대중의 투쟁 근거가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무장해제당하느냐, 아니면 비록
투쟁은 유보되거나 철회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실이
존재했다면 투쟁 자체는 체계적이고 전술적으로 후퇴를 하면서도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는 한치의 흔들림없이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대응을 함으로써 전략적 수준 혹은
원칙적 수준에서는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내외적 근거를
확보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세계사적 경험을 보더라도, 노동자계급이 애국주의 - 국민의
입장 혹은 국가의 처지를 생각해 노동자대중이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 에 굴복하는 것이
노동자대중에게 어떤 재앙을 불러일으키는지는 이미 증명된 바
있다. 물론 노동자계급도 애국주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노동운동 지도부는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주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투쟁과정에서 되도록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정권과 자본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동시에 국민들을
향해 노동자투쟁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능동적으로 알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권과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굴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다음으로 당시 비대위 지도부의 정세인식 혹은 상황판단은
한마디로 안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도 외환위기를
겪은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경험적으로만 봐도 경제위기
시 노동자대중의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충분히 알았어야
했다. 또한 이미 한국의 경우도 김영삼 정권 때부터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공격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그것대로 하더라도 즉각적인 전선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한 순간도 포기하거나 미루어서는 안되었다.
98~99년의 대중투쟁의 경험을 보더라도 비대위의 정세판단은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또한 투쟁동력이 없었다는 진단과 함께,
지금 유세과정에서도 말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위상에 걸맞는
‘준비된 투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 예로서 96~97년 투쟁의
경우를 들고 있지만, 이야말로 뒤집어진 한탕주의일 수 있으며,
좋게 말해도 대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물론 투쟁의 준비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잘 기획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96~97년 투쟁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상적인 경우가 아니라
오히려 자주 등장하기 쉽지 않은 예외적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마치 87년과 같은 투쟁이 자주 되풀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차원의 대중투쟁은 주체의 준비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정세와 결합함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상황에서 일상적 투쟁과 준비된
투쟁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더욱 맞지 않다. 이
말이 준비없이 즉흥적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한 한 목적의식적으로 최대한 투쟁을 준비하고
기획해야 하겠지만, 준비해서 한꺼번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고야말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문제는 지금 준비되어 있는
역량을 갖고도 어떻게 투쟁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권과 자본이 우리의 준비를 마냥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 또한 ꡐ민주노총의 위상에 걸맞는 투쟁ꡑ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경우를 말하는 것인가? 민주노총은
언제나 모든 사업장이 비록 각각의 처지와 조건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업종 지역을 뛰어넘어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을 일상적으로 해왔다. 물론 언제나 결과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 12년 동안의 대중투쟁 경험에서도 증명된 바와
같이 투쟁에는 언제나 중심 대오가 있어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이는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98년
현대자동차 투쟁, 99년 서울지하철 투쟁과 같은 투쟁은 그것이
비록 하나의 단위사업장 투쟁일지라도 민주노총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 꼭 그런 경우가 아니라도 중소규모의 투쟁, 지역 차원의
투쟁도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투쟁해야 하는 것이 대중적 요구일
뿐만아니라, 객관적으로도 그래야 마땅하다.
만약 ꡐ민주노총의 위상에 걸맞게ꡑ라는 의미가
민주노총이 더욱 열심히 투쟁을 조직하고 투쟁에 앞장서겠다는
일반적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문제가 안되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위험한 발상이다.
○ 끝으로 ꡐ당시 투쟁을 강행하면 내부가 혼란에
휩싸이거나 분열될 수도 있었다ꡑ는 진단은 별도로 평가할
가치도 없는 해프닝에 불과하다. 최소한 민주노조운동은 그
정도는 이미 극복했기 때문이다. 투쟁을 하든 안하든 이런 말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
○ 단병호 후보는 「노동과 세계」와의 좌담에서
김성구 교수의 “김대중 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3기 노사정위원회 문제인데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질문에 대해 “--- 우리가
주도적으로 투쟁을 통해 만든 교섭의 틀이 아니다. ---
전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면 되는
것 --- 너무 첨예하게 부각 --- 대의원대회의 결의 아직 유효
--- 다수의 목소리에 밀려들어가는 선택은 안 한다 ---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방향을 설정한 이후에 각론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단병호 후보는 98년 당시 6. 10 투쟁을 철회하고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갈 것을 주장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위 답변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지금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아마 지금의 상태와 조건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설령 단 후보가 그 당시에도 위의
답변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당시 민주노총의
공식회의 자료에서도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위의 답변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근본적인 수준의 문제의식에서부터 구체적인
지점에 이르는 사안에 대해서까지 검토하고 있다.
당시 2기 지도부는 그러한 내용적 검토와 정세판단 끝에 원래의
생각대로 들어가지 말자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다수의 견해를 받아들여 -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압력 -
형식적으로는 민주노총의 조직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복귀에 따른
민주노총의 공식 입장은 ‘전술적 활용’이었다.
○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싸고 민주노총과 김대중 정부사이에
대립과 긴장, 민주노총 내부적으로는 논쟁과 갈등이 심각하게
있었던 것은 그 만큼 당시의 정세는 ‘투쟁이냐, 노사정위원회
복귀냐’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누구든
각자의 견해(노선)에 입각해서, 자신의 입장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세워 놓고, 김대중 정부와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충분히 고려해서 결국은 결론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놓고 판단하는 것이다. 어떻게 첨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술은 간단히 생각해도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당시의 노사정위원회가 그렇게 간단히 처리해도 되는 여러 전술
중의 하나였다는 말인가? 당시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싸고 형성된
정세가 일상적인 시기에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투쟁과 교섭’의
병행문제였단 말인가?
○ 2기 노사정위원회가 무력화된 것은 그것이 간단한 전술의
하나로 처리되는 수준의 것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투쟁의
결과이다. 특히 2기 지도부는 98년 연말부터 99년 연초에 걸친
단식투쟁을 통해 민주노총 내부의 합의를 이끌어 냈으며, 김대중
정부의 반노동자성을 온몸으로 폭로했다. 동시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자대중이 얻을 것이라곤 별로 없으며, 오히려 잃는
것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는 대중적 공감이 쌓였기 때문이다.
지금 노사정위원회를 보다 여유를 갖고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은,
98년의 경우에는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이 노사정위원회를
전략이든, 전술이든 결국 들어갈 수밖에 없는 하나의 상수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그것은 결코 상수가 아니며 우리가
능동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투쟁을 통해
현실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 단병호 후보는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여전히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충분한 검토 끝에 조직적 결론을 내겠다고 하고
있지만, 그 결론을 내는데 지도부의 견해와 의지는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노동자대중에게, 대의원들에게 자신의 현재에서의 생각을 먼저
밝히는 것이 순서이다. “지금으로서는 복귀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98년 당시 자신의 주장에 대한
평가와 함께 ‘노사정위원회가 전술의 문제’라는 의미가
‘전술적 참여’를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조건에 따라
‘참여와 탈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전술적 불참’을 유지하겠다는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자신이 말한 그대로 첨예한 문제가 아니라면 가볍게 말할
수 있지 않은가?
98년 6. 10투쟁 철회 종용 사건에 대하여
○ 단병호 후보는 지난 대전 유세에서, 98년 5.27~28 투쟁은
조합원 10만여 명이 참여했지만 5.29에는 참여가 급격히
떨어졌으며, 금속연맹 중앙위원회에서 6.10파업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상황까지 나오게되어, 이갑용 위원장의 지도력을
보호하기 위해 연맹위원장으로서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직언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우리가 의문을 갖는 것은 왜 이런 일이 비밀스럽게
회자되다가 이제야 밝혀지는가이다. 만약 그와 같은 상황과 조건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 당시 보다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주장하면 되는 일이며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만에 하나 이갑용
위원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 뿐만 아니라 자신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왜 이갑용
위원장을 보호하는 것이란 말인가? 6. 10투쟁의 철회는 당시
곧바로 노사정위원회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이 방미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투쟁 동력에 대한
진단만으로 -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지만
- 투쟁 철회를 결정한 것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비대위 때의
경우와 너무나 똑같다. 투쟁동력이 있는 만큼의 수준에서 투쟁을
시작하는 것은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도 아니란 말인가? 언제부터
민주노조운동에서 큰 투쟁이 아니면 아예 취급도 안하게
되었는가?
○ 당시 김대중 정부는 연맹과 주요 대공장의 노조 지도부를
직접 만나면서 - 물론 이런 지배계급의 술책은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 노사정위원회에 들어오면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말을 흘리고 다녔다. 물론 그와 함께 그렇지
않을 경우 엄청난 탄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마치 내부 정보를
특별히 미리 알려주는 듯 하면서 협박을 했을 것은 뻔하다. 과연
6. 10 투쟁 철회과정에 이와 같은 배경은 정말 전혀 없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98년 7월, 현대자동차 투쟁 때 금속연맹이
‘정리해고’에 대해 취한 태도 대하여
○ 단병호 후보는 울산 유세에서 98년 7월 현대자동차 투쟁 때
‘정리해고 최소화’는 금속연맹의 공식 입장이 아니었다고
답변했다.
알다시피 96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에서 최고의 초점은 바로
‘정리해고’ 문제였다. 또한 정리해고 ‘법제화 철폐’인가
아니면 정리해고 ‘최소화’인가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현대자동차 투쟁의 경우 이것은 정말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물론 노동자대중 모두를 속된 말로 피말리게 하는
것이었다. 민주노총의 공식 방침이 ‘철폐’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현대자동차 집행부로서는 사실 ‘최소화’ 수용을
검토해 줄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 금속연맹은 당시 정리해고 ‘철폐’와 ‘최소화’를 놓고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고 하기 어렵다. 그것은 ‘철폐’와
‘최소화’를 너무 기계적으로 분리했기 때문이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대립시켰던 까닭이다. 민주노총은 당연히 ‘철폐’를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마땅했다. 따라서 연맹의 공식 방침도
당연히 민주노총과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만약 이것이 무너지면 그것은 1기 노사정위원회의 경우보다 훨씬
큰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예컨대 민주노총이나 연맹이 ‘최소화’를 공식방침으로
인정하는 것은 정리해고 법제화를 두 번 인정하는 꼴이 되며,
이는 현장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무력감을 주게되고 자본의
공세가 더욱 거세어지리라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런데 당시
금속연맹은 거꾸로 ‘철폐’ 때문에 마치 투쟁이 더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 왜냐하면 당장 ‘철폐’를 시키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철폐’를 사수하는 것하고, 당장 법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하고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 민주노총은 결코 ‘철폐’를 포기해서는 안되며 그럴
경우에만 현실적으로는 그나마 현장에서 ‘최소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최소화’되는 것하고 처음부터 ‘철폐’ 대신 ‘최소화’를
인정하는 것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 겪을
노동자 내부의 혼란은 아마 감당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치뤄야 하는 대가는 훨씬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폐’와 ‘최소화’는 결코 분리되어 있거나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99년의 경우에는 ‘철폐’를
‘중단’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속에서
현실적 역관계를 고려하여 전술적인 변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 단병호 후보는 당시 ‘최소화’가 금속연맹의 공식방침이
아니었다는 것을 답하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이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자신의 논리가 무엇이며 현실 인식이
어떤 것인가를 밝혀야 마땅하다.
한국노총과의 관계에 대하여
○ 단병호 후보는 「노동과 세계」와의 좌담에서
“한국노총과의 연대는 어떻게 보는가?”라는 손석춘 아나운서의
질의에 “한국노총과의 통합은 고려의 대상이 못된다” “단지
노동자 대의에 합치되고 같은 정책방향을 갖는다면 사안별로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에 대해 취해야할
태도는 연맹 혹은 단위사업장 수준에서의 공동투쟁 혹은 사안별
연대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모색은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하지만,
상층 수준에서는 이제 한국노총의 노선과 지도부에 대해서는
분명한 일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설픈 상층 연대는
비록 그것이 사안별이라 할지라도 노동자대중에게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혼란만 가져올 것이며, 특히 정권과 자본의 분할 공작에
휩싸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한다.
○ 다른 문제제기를 하나 하면, 민주노총 지도위원인 김금수
지도위원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과의 통합을 명시적으로
제기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견을 가질 수 있는 점을
충분히 인정한다고 해도 민주노총의 지도위원이 이와 같은 매우
중대한 문제에서 민주노총의 공식방침과는 다른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단병호 후보에 대한 우리의 입장
○ 유세과정에서 드러난 단병호 후보의 견해를 종합해서 볼 때,
‘단일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단병호 후보를 지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오히려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단병호 후보가 갖는 견해에 대해 정치적 비판을 분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또한 표를 집중시키는 것이 민주노총이 정권과 자본과의
관계에서 유리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매우 잘못된 주장이다.
표를 집중하는 것과 지도부가 올바로 서서 정부와 자본과
투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은 그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숱하게 경험해 왔다. 오히려 앞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단병호 후보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하고, 그러한
입장이 대중적으로 평가되고 검증되는 것이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럴 때 지도부의 오류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이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때, 그러한 위기를
극복해 나갈 밑으로부터의 주체형성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1999. 9. 16
노동자의힘(준비모임)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