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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을 넘어서기

현장에서 미래를  제48호
신병현

분열을 넘어서기(1)**) .힐러리 웨인라이트, “분열을 넘어서기” 쉴라 로보탐 등(1979), ꡔ분열을 넘어서서ꡕ, 보스턴: 앨리슨 출판사, 211-253쪽 중 232쪽까지.(Hilary Wainwright, "Moving Beyond the Fragments" in S.Rowbotham et al.(1979), Beyond the Fragments, Boston: Alyson Pub, pp.211-253.) 이번 호에서는 211-32쪽을 번역하여 싣는다. -옮긴이

(Moving Beyond the Fragments)
힐러리 웨인라이트







1. 노동당 정부, 노동당 좌파,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전망
2. 그들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3. 그러면 왜 물리치지 못하는가?
4. 공백 메우기 이상 이번 호

5. 사회주의자들의 동맹
6. 혁명적 그룹
7. 여성운동의 유효성 이상 다음 호




‘분열을 넘어서기’는 이 시대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표현하는 기호이다. 우리가 20년대의 사회주의자라면 아마도 노동당 전신이었던 독립노동당(ILP)를 통해 노동당 좌파와 결합해야 하느냐, 아니면 언제나 노동당과 결연을 형성하고자 노력해 온 공산당에 가담해야 하느냐를 두고 고민은 했겠지만, 노동당이 분열을 넘어서는 길임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권당이 된 이래, 그것도 반동적인 정권이 된 이래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길을 찾는 사람들은 노동당을 더 이상 자동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대안을 갖고 있지 않지만 지역 노동운동에 뿌리를 두고 노동당은 여전히 여성운동에 몸을 담는 것보다는 더 넓은 정치적 영향력을 얻기 위한 한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컨대, 런던 핌리코의 샐리 알렉산더(Sally Alexander)처럼 생각하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많이 있다.

십여 년간 여성운동에 몸담아 온 우리 중 많은 이들은 페미니스트 정치를 사회주의 운동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우리의 요구는 비록 최소한의 것일지언정, 사회의 근본적인 재조직화 없이는 달성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여성운동은 나를 사회주의에 더 가깝게 다가서도록 했으며, 나로 하여금 맑스주의를 진지하게 공부하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사회주의 전략을 위한 긴급한 요구가 페미니즘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하려고 얼마 동안 방황하기도 했다. 코뮤니스트 당도 하나의 가능한 대안이었다. 그러나 ‘영국적 길’에 관한 당내 토론들에서, 코뮤니스트 당은 노동당 좌파와 연합하여 노동당을 변화시키는 정책을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노동당에 직접 가입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상이한 상황에서 상이한 경험을 한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지역정치(local politics)에 몸담고 싶었는데 노동당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지역 노동당은 다양하게 분열되어 있었지만, 좌파들 중 매우 전투적인 놀라운 인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혁명적 집단들에게 사상을 전해 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이 직접 깊숙이 사회주의에 투신하고 있었다. 나를 노동당으로 이끈 세 번째 요인은 이 거대한 기구 자체와 그것을 지탱해 온 예외적인 토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많은 노동당 소속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몸담고 있는 러스킨 대학에 있을 당시 나는 항상 그 점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영국에서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적 인텔리겐챠의 역사적 관계는 대부분 노동당 내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노동당의 프로그램과 조직이 그 많은 사회주의 좌파들과 노동계급의 열망을 이끌어 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정치조직에 대한 어떤 토론에서도 노동당의 이와 같은 견인력은 해명되어야 했다. 1968년 5월과 베트남 반전운동에 뒤이어 윌슨 정부의 배후에 대한 반대, 그리고 노동당 좌파의 쇠퇴 등과 더불어 고조되었던 일시적인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노동당의 이러한 독특한 견인력을 해명하지 않고 노동당의 조종(弔鐘)을 울린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치보다는 부분적으로 각각 세대별, 지역별, 교육 수준별, 계급적 배경에 의해 분열된 두 개의 좌파가 노동당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위험스런 상황이 야기되었다. 이 두 좌파는 당시의 현안에 대한 모든 실천적 투쟁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적 소유 및 정치권력의 민중적 형태와 같은 일반적 목적에 대해서는 종종 견해의 일치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누가 당내에 있어야 하고 당 외부에 있어야 하는 지의 쟁점에 대해서는 공동 행보나 일관된 정치토론 및 전략과 정책 표명을 위한 어떠한 통일된 정치적 틀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적, 전국적 운동 차원에서 예컨대, 인종주의 반대운동이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등으로부터 노동당과 비노동당 사회주의자들 간에 통일을 모색하라는 압력이 거세어지고 있는 시기이다. 이러한 압력은 기존의 정당 구조가 실제적인 정치 지형과 투쟁의 실재를 더 이상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징표이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 조직을 이뤄 내라는 이러한 압력은 부분적으로 기존 정치 구조에 대한 때에 걸맞지 않는 집착으로 인하여, 또한 다소 초보적 단계에 있을 지라도 노동당과는 독립적으로 생존 가능한 유일한 조직 형태는 대안적 당 조직이어야 한다는 전제로 인하여 제약 당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곧 바로 노동당 내ㆍ외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단일 이슈나 단일한 운동 기반에 근거한 통일을 넘어선 정치적 동맹(alliance)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동맹의 긴급성과 노동당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의 긍정적 경험들을(예컨대, 여성주의 운동) 살펴보기 위해서, 노동당과 그 내부의 사회주의자들과 관련된 세 가지 주요한 문제를 검토할 것이다.


1.노동당 정부, 노동당 좌파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전망

먼저, 노동당 정부가 실천적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의 대의(ideal)를 폐기하는 방식과 노동당 좌파의 메시지 역시 실질적으로 별 차이 없게 되어 버리는 (역설적) 상황을 살펴보자. 첫 번째 것에 대해서 노동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그 내부에 있는 사회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수긍하고 있다. 노동계급 출신의 사회주의 활동가이며 포드사의 노조 현장위원(shop steward)인 존 보한나(John Bohanna)는 이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사회주의의 대의에 몰입하고 있던 민중(ordinary folk)들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전후 실제적인 대안에 대한 비젼이 있었고, 그것이 활동가들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나라 민중들은 새롭고 정말로 긍정적인 사회주의 사회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압도적인 지지와 더불어 노동당으로 복귀했다. 지금은 그러한 느낌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다. 민중들은 단지 노동당과 보수당이라는 나쁜 것(the bad)과 더 나쁜 것(the very bad)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후 (초기) 노동당 정부는 당의 공약들과 정의롭고 공평한(just & fair) 사회를 향한 첫 번째의 구체적인 조치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일의 진행이 순조로웠으나, 1959년경 부터 (지금은 퇴역한) 당 지도급 인사들은 계급 불평등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의 목적에서 생산의 사회적 소유에 관한 조항인 제4조(Clause 4)를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많은 당원들에게 이 조항은 노동당이 노동계급을 위한 당일 수 있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었다. 비록 이 지도급 인사들은 그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그들의 정책은 거듭해서 노동계급의 요구와 갈등했다. 지금 보면 당시의 노동당에서 좋은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노동당내에 에디 로이든(Eddie Loyden)과 같이 노력하는 훌륭한 남녀 당료들이 있었지만, 민중들이 보기에 그들은 항상 뒤떨어진 것으로 비춰졌다. 그래서 민중들이 보기에는 노동당내에서 사회주의의 대의를 목표로 하는 이들도 칼라한이나 윌슨(당시의 수상을 역임한 우파 노동당 지도부)과 같은 부류의 사람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부류의 사람들로 되었다. 그들의 투쟁은 단지 역겹게만 느껴졌을 뿐이었다.
민중의 기대에 대한 노동당의 이러한 이반은 우리 부모 세대의 시기보다 노동당 주위에 활동가들의 수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노동당을 위해 싸울 만한 가치가 거의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한 것들을 장악하는 쉬운 길을 택한다. 우리 모두가 성취된 삶을 영위할 기회를 얻기 위한 투쟁, 즉 사회를 위한 더 넓은 투쟁은 간과되고 만다.
아마도 지금은 보수당과 투쟁할 수밖에 없는 시기여서 사정이 좀 호전될지 모르겠다. 머지사이드 지역을 예로 들자면, 포드사 및 기타 지역에 노동당 노조 분회를 설치하려고 좌파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작업장에서 정치 토론을 수행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 전체의 노선이 변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로 향하는 화살은 하나의 축을 갖고 있을 지라도, 그 화살은 여전히 여러 개의 화살촉을 갖고 있으며, 노동당 내 사회주의자들 역시 그 하나일 뿐이다.

위에 언급된 ‘언제나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혹은 지역구나 전당대회에서 노동당을 진정한 사회주의 정당으로 복원시키기 위해 조직화 사업에 열중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왜 그들은 노동당 투표자나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최근의 노동당 정부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되지 않도록 설득시키지 못하는가? 그들은 이 정부가 진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주장들은 어쨌든 호소력을 상실해 버렸다. 대부분의 노동자계급 대중의 눈에 노동당 좌파는 신뢰할 만한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비춰졌다. 그들은 당 지도부와의 오랜 정책 연합 속에서 지속적으로 타협해 왔다. 실제로 그들의 메시지는 노동당내 토론 과정에서 거의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어 버렸기 때문에, 종종 더 좋지 않은 결과에 직면해야 했다. 좌우파는 언제나 국가개입에 관한 정책은 스펙트럼 상에서 서로 반대 끝에 위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좌우파 사이의 노동당내 좌우파간의 토론도 통상 국유화나 국가 통제에서의 정도 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국유화나 국가 통제는 사회주의의 뚜렷한 전망을 마련하는데 충분했었다. 전쟁 전에는 노동당의 국가 통제 능력이 입증되지 않았을 때였고, 그 때는 또한 생산 및 경제활동으로부터 국가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립적 도구로서 사회주의적 목적을 위해 국가를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 신뢰를 주었던 시기였다. 그 때 제4조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위한 명확한 전략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베번이 지적했듯이, 국가를 ‘사적 소유제의 핵심에 놓여 있는 칼’로 생각하는 것은 의미있는 것이었다. 민중들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며, 노동당 좌파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는데 신중할지라도, 그들이 사회주의의 진정한 대표자들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과거 30년간 민중들은 비록 정부마다 다소 편차는 있을지 언정, 국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경제하에서 성장했고, 그 경제를 통해 삶을 영위해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보다 사회적 기준에 따른 더 많은 국가개입을 추구했던 노동당 좌파의 정책들은 전혀 고무적이지 못했으며, 심지어 우파의 안과 다른 것으로 비춰지지도 않았다.
신선하고도 확신할 만한 전망을 갖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노동당 좌파의 토론 틀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었으며, 또한 노동당 정부가 마치 접착제처럼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국가와 결부시키고 있는 쟁점들로부터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사적 자본의 의회 외적 권력이나 국제무역의 제약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의회 사회주의자들의 선량한(?) 의도에 국가가 저항하도록 만드는 것이며, 국제적 규모로 의회 외부의 노동자 권력을 조직하기 위한 전략을 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60년대 노동당 정부의 삭막함 속에서 출현한 벤(Tony Benn)을 비롯한 일부 노동당 좌파(Bennite Labour Left)는 수많은 노조 현장위원(shop steward)들의 위원회와 임시적으로 다양한 연결을 모색하거나 노동자 통제(workers’ control) 형태를 강조하면서 잠정적으로 노선 전환을 보였으나, 적어도 전국적 수준에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길은 노동당 내부에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라는 믿음에 의해 창출된 모순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구당 내에서 지위를 획득하고, 당대회 정책결의안을 관철시키고, 또 당규약과 지도부를 변화시키려고 당대회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을 그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힘을 집중시켜야만 했다. 지역적 수준에서 그러한 것들은 노동자 조직의 의회 외부 권력들과 양립 가능했을지 모른다.(그러나 노동당 외부 사회주의자들과의 긴밀한 연계가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지역구 조직 형태를 즉흥적으로 수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전국적 전략으로서 그것은 당의 선거 우선주의, 그리고 산업 문제와 노조의 정상적 조직화나 단체교섭권 이외의 정치적 쟁점들과의 연결 시도에 대한 노조 지도자나 간부들의 거부감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노동당 내부의 좌파는 노동계급 대중들과 소통할 수단을 상실했으며, 그들로부터 독자적인 신임을 얻는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이 어떠한 희망이나 기대도 걸지 않은 의회연단의 정치가들에게 발목이 잡혀있다.


2.그들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것은 일시적인 문제인가? 이것이 오로지 노동당이 집권당이고 좌파가 갑갑하고 비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일까? 노동당내 사회주의자들이 여론 정치꾼들을 제거하고 노동당을 의회 및 의회 외부의 행동을 통해 사적 자본 권력과 대치할 수 있는 사회주의 정당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시기는 과연 언제나 올까? 이것은 일부는 실질적으로 노동당원이고, 일부는 당비를 내고 선거시 선거운동에 참여하지만 노동당에 대한 정치적 대안을 창출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회주의 활동가 많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유일한 당으로서 노동당이 노동자 투쟁이 성장하고 정치적 의식이 고양됨에 따라 사회주의 정당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좌파가 노동당 전국 집행위원회(NEC)에 대한 통제를 획득하는데 거의 성공하였고 조금 더 노력한다면 당의 통제력을 장악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현 노동당 정부와 그 노동당 지도부를 둘러싼 투쟁이 전개되는 가운데 그러한 낙관적 견해는 강화되고 있다.
리즈 지역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과 노조, 지역사회 그룹, 공산당에 몸담아 왔고, 지금은 노동당에 가담하고 있는 거티 로쉬(Gertie Roche)는 매우 신중하게 이러한 낙관론을 펴고 있다.

나는 역사는 매우 느리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민중들의 태도 역시 서서히 변한다. 민중들은 그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들에 정서적으로 몰입하지만, 그것은 곧 누그러지고 만다. 그래서 나는 노동당이 빠르게 변할 것으로 보지도 않고 있으며, 그로부터 크게 기대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민중들은 항상 전진한다. 오늘 전당대회를 지켜 보았는데, 거기서 우리는 하원 의원들의 행동에 대한 해명 요구안을 관철시켰다. 나는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진전으로 생각한다. 공공 서비스에 대한 그들의 책임있는 관심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쟁점들과 관련해서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노동당에 있다는 것에 대해 비난할 때는 화가 난다. 적어도 노동당에 몸담고 있다면, 공산당의 경우보다는 그런 말들을 더 많이 듣게 된다. 우리는 서로 소속된 곳에 대한 충성심 논쟁보다는 쟁점들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당 외부의 사회주의자나 기타 사람들과 함께 토론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예컨대 여성해방, 복지삭감, 노조정보센터 지원과 같은 문제들. 나는 그들이 의회 외부에서의 행동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지지한다. 비록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하거나 때로는 절망스러울 지라도, 그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종류의 사회주의 조직은 어떤 것이고, 여성주의가 그것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그러한 조직의 발전은 노동당과 관련되는 한, 장애에 봉착하고 말 것이며, 따라서 사회주의를 위한 조직화가 왜 결국에는 노동당 외부에 토대를 둘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노동당을 변화시킬 가능성에 상반되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다: 영국적인 의회제도가 온건파 의회 지도부에 부여하는 권력과 자율성, 당의 절대적인 선거 우선주의 등. 지역구의 당들에게 보다 많은 공식적 권력을 부여하고, 당 리더쉽 선거에서 발언권을 보다 많이 부여하며, 공식적 선언을 이끌어 낸다면 그러한 문제들이 극복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의회제적 노선 속에서 좌파가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 내는데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실제로 있다. 문제는 당의 기원과 기본 구성에 내재해 있다. 그 문제는 노동조합의 압도적인 지배와 그러한 영향력 행사를 결정하는 노조 지도자들의 권력의 문제이다. 물론 여러 노조들이 특수한 사안에 대해서는 좌파를 지지하거나 총회에서 좌파적 제안에 투표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당의 노선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의 견제하에 노조 지도자들이 노동당과 함께 그들이 그 속에서 확고한 지위를 향유하면서, 역할을 수행해 왔었던 바로 그 국가와 경제의 변혁에 적극적으로 참여케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는 대부분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그들 뒤에 처져 있는 리더들을 견인하면서 그러한 변책에 적극적으로 몰입할 때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공장과 사무실 및 지역사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회주의 조직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대중적 사회주의 활동을 조직해 내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노동당을 사회주의 정당으로 변화시키려는 사회주의자들의 노력은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노동당을 사회주의 조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주의 정당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동당 내부에서 작동하는 그러한 사회주의 당의 가능성을 위협하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존재한다. 그러한 제약은 좌파집단이 우파 노조 지도자들에 반대하는 평조합원들과의 개방적 연합조직을 구축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강해진다. 그러한 노력에 대한 일차적 반응으로서 노조 지도부는 직접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당내 권력을 이용하여 좌파에게 규칙과 규율을 동원할 수 있다. 이것은 50년대 친 개츠켈 성향의(pro-Gaitskell) 개츠켈은 50년대에 공동소유에 관한 당 강령 4조를 제외하자는 주장을 했던 중심 인물이다.
운수 및 일반노조(T&GWU) 지도부에 반대하는 부두노동자들을 지원했던 베번과 그의 동료들(Bevanites) 이들은 온건적인 노동당 지도부와 노조의 특권과 관련된 쟁점에만 개입하고자 했던 노조지도부와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후에 트리분(Tribune)지를 중심으로 활동해서 트리분파(Tribuneites)라 불리게 된 노동당 중도좌파들이다.
이 직면했던 문제이며, 또한 벤과 그의 지지자들(Bennites) 토니 벤(Tony Ben)을 중심으로 한 노동당 신좌파로서 급진적 성향을 띠며, 트리뷴 그룹으로부터 탈퇴하여 캠페인 그룹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 비공식 경로를 통해 노조 현장위원들과 제휴했을 때, 우파 노조지도부의 분노를 산 경우와 유사하다. 좌파들은 그러한 위협에 대해 거의 저항하지 못했다. 그것은 노조 지도부에 대한 공개적인 제제나 비판 등의 조치는 당에 대한 통제를 획득하고자 하는 단기적인 야심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모순은 조합원들의 노조 지도부에 대한 쌓인 분노와 좌절이 통제를 벗어나 겉잡을 수 없이 번져감에 따라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전국적 수준에서 노동당을 좌파 쪽으로 견인하려는 공산당의 전략도 동일한 모순에 봉착한다. 왜냐하면 노조 내부에 좌파 반대블록을 구축할 수 있을 만한 독립적인 조직을 갖고 있었을지라도, 그들이 성취한 상당한 성공은 전국적인 좌파 지도자들(좌파 노동당 정부로 가는 지름길에 환상을 갖고 있는 스캔론이나 존즈같은 이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그 예각성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주요지역에서 좌파 지역구 및 노조내 좌파 집단들은 전국적 수준의 노동당과 노조 지도부들과는 독립적으로, 인상적이고 강력한 연합을 구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고 자율적일 수 있었다. 남부 요크셔가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한 지역적 연합(local alliance)은 앞서 존 보한나가 언급했던 여러 개의 화살촉 중 하나지만, 단일 축을 위한 유일한 토대로 볼 수는 없다.


3.왜 분리하지 못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노동당 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모순을 그대로 갖고 가도록 내버려 두면서, 어느 날 그들이 자신의 오류를 인식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급하게 독자적 정당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그 문제를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노동당 내부와 외부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의견을 같이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점과 공동행동 및 토론을 위한 조직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무시하는 것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서유럽에서 어느 정도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어떤 사회주의 정당도 기존의 대중적 노동자 정당으로부터 분리되어 만들어 졌다. 그러나 영국에서 이 시나리오는 지체되고 봉쇄되었다. 그것은 외관상 모든 사회주의적 견해를 충분히, 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노동운동의 통일된 민주적 정당이지만, 소수 노조지도부를 방패로 하여 보호되는 의회집단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은 은폐하고 있는 노동당의 각변히 모호하고 기만적인 구조때문이다. 주로 노동조합들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노동당은 정치적 당으로서의 정상적 성격을 갖기 어렵다. 그것은 급진적 강령, 노조의 로비, 직입적 타협 정치가들의 의회주의적 지도부 등에 이끌리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규진당의 변종이다. 좌파는 노동당 정부들 직업적 타협 정치가들에 계속해서 패배했지만, 그 패배와 실패는 결코 결정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우리는 전당대회에서 승리했다’ 혹은 ‘우리는 지역구를 통제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단지 다음 기회에 보다 강력한 압력을 가하는 문제였을 뿐이며, 의회 지도부의 호응성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노조의 강력한 로비는 통일성의 정도에서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러한 성공을 언제나 빗나가게 만든다. 사람들은 불만을 느끼고 무리지어 당을 떠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느끼거나 유럽공동시장 가입, 소득정책, 복지삭감 등 어떤 하나의 이슈가 ‘결정타’가 될 때 당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당에 가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15년간의 실패를 경험해서 알 수 있듯이, 당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며, 그보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사람들이 당비를 납부하고 노동당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며 노동당에 투표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온갖 종류의 캠페인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도 하찮은 지원밖에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노동당 내부에서 상당한 분열이 발생해야만 대안적 정당 구축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회주의자들은 전국적인 차원에서의 변화에 대한 열의나 희망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어떤 적절한 정치적 틀이 부재하고, 많은 유사한 좌파성향의 지구당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당 주위를 배회하기도 한다.
예컨대, 국제사회주의자 그룹(IS) 즉,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에 가담해 왔던 발 클라크(Val Clarke)는 노동당이 진정한 사회주의 정당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는 아니지만, 요크셔 후더스필드 인근의 지역 노동당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 와서 노동문제, 주택, 교육 문제에 관한 캠페인을 전개할 당시 실제적으로 모든 주요 사회주의 활동가들은 지역 노동당에 소속되어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이러한 모든 쟁점들에 관련된 사회주의적 정책들은 철저히 검토되고 있었다. 노동당 외부에 있는 것은 모든 토론과 정보에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우리는 사태의 전개에 전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안이 될 수 있는 어떠한 좌파적 구심도 구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주요한 전투적 사회주의 활동가들은 모두 지역 노동당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이 전형적인 모습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가 대안을 말할 때는 필히 이러한 노동당의 모습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 사회주의 정치의 이와 같은 불명료성은 부분적으로 지역적 불균등성과 모호한 당 구조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사회주의자들과 다른 급진적 활동가들이 누가 의회에서 그들을 대표할 것인가의 문제에 부딪힐 때 거의 정치적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의해 한층 강화된다. 현재의 선거제도에 의해 강화되는 이러한 독점은 종종 정치체계 내부에서의 제휴를 통해 힘을 얻고자 하는 전투적 활동가들을 국회와 지방의회 의원들이 지배하도록 한다.
노동당 사회주의자들이 그들의 지역 사회주의 정치를 효과적인 전국적 전략이나 사회주의 정당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노동당과 노조운동 내부의 논쟁 결과 역시 불가피하게 무한정 연기되어서 대안적 정당 건설을 위한 조건을 극도로 악화시킨다면, 앞서 언급된 사회주의 조직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어디에서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4. 공백 메우기

반핵군축운동(CND) 이후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서 학생, 노조 운동가, 여성, 흑인, 게이,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청년 등과 같은, 노동당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당 내부, 외부에서 정치 및 산업에 대한 직접적 통제를 조직하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국가와 경쟁하는 민중세력들이 성장하였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노동당의 모호성, 공산당의 스탈린주의와 내부 민주주의 부재, 혁명적 좌파의 분파주의 등으로 인하여, 이 활동가들은 그들의 현장(grass-roots)의 힘을 표현하는 하나의 정치적 목소리를 갖지 못했다. 즉, 우리는 우리의 특수한 억압과 경험을 넘어서는 일관된 조직화 방법을 갖고 있지 못했고, 그러한 다양한 경험들을 사회주의적으로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일반 이론이나 프로그램이 없었다. 또한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특수한 요구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광범한 투쟁을 통한 정치 변동이 필수적이라고 설득할 어떤 적절한 방법도 갖고 있지 못했다. 우리의 파편화된 운동과 캠페인은 어떤 정치적 구심이나 지지조차 없어서 매우 취약하기만 했다. 이러한 정치적 취약성은 강력하고 단호한 보수당 정부와의 고립된 싸움에서 승리하기가 더욱 어렵게 됨에 따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한 운동이나 캠페인에 가담하고 있는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취약성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주의자들이 참여하는 여하한 운동이나 프로젝트에서도 광범한 정치적 함의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려는 경향이 점차로 증가해 갔다. 어떤 이들은 좌파에게 있어서 정치적 공백을 채워야 한다는 압력이 그러한 활동가들을 새로운 사회주의 정당의 기치 아래 모이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산업, 공동체, 문화조직 등 전 영역에 걸쳐서 사람들에게 더 넓은 연결망을 창출하고, 보다 일반적인 정책 및 이론을 탐색하도록 했으며, 다양한 문화적 대안들을 창출하도록 했다. 좌파 노조 평의회, 사회주의 센터, 사회주의 여성그룹, 연극인 그룹, 좌파 서점, 전투적인 현장위원회(shop steward committees) 등이 종종 사실상의 사회주의 정당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당에 의한 조정과 당적인 장기적인 관점이 부재하였다. 그것은 마치 여러 옷 조각(정치조직)이 창의적으로, 그때 그때의 접촉 속에서 마스터 플랜을 갖지 않고 엮어지는 것 같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리를 두고 우리가 지금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점이 취약하고, 어떤 행동 유형들이 분명치 않은 지를 이러 저러한 관점을 통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약간은 낙관주의적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어디서 그러한 발전의 증후들을 볼 수 있을까? 누구도 일목요연하게 그러한 그림을 그려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이러한 조직적 발전의 지표를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개괄할 것이다.

1) 노조 평의회(trade councils) 운동: 몇 몇 지역의 노조 평의회는 전투적인 사회주의의 입장을 취하면서 노동당과 노조 지도부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며, 지역 여성그룹, 실업자 청년, 활동적인 세입자 그룹, 사회주의 연구자 그룹과 함께 사회주의 동맹처럼 행동하였다. 예컨대, 코벤트리 버밍햄, 워릭 등의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중부
지역의 노조 평의회는 지방의회와 주택사업자에 대항하여 주택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여성운동의 요구를 실천적으로 지지했으며, 제국주의 반대 캠페인과 인종주의 반대 캠페인을 조직했고, 최근에는 노동당의 합리화 및 공장폐쇄에 반대하는 국가의 산업개입에 관한 사회주의 정책들을 검토하기도 했다. 뉴캐슬 지역의 노조 평의회도 유사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는데, 특히 그들은 북 아일랜드에서의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북서부에 있는 템사이드 지역 노조 평의회는 처음에는 복지감축 대책 위원회를 만들었으나, 그것은 얼마 안되어서 낙태, 반인종주의, 실업 등 다양한 쟁점들에 초점을 두고 다루었다. 헐 지역 노조 평의회는 주간지 발간을 통해 지역 사회주의 활동의 중심으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많다. 여기서 초점을 두려는 것은 노조 평의회의 전투성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주관심사는 지난 10여년에 걸친 평의회 운동 속에서 나타난 사회주의 조직으로의 매우 일관성 있는 행동 패턴 즉, 노동조합 조직으로서 갖게될 수밖에 없는 한계 하에서 가능했던 하나의 유형화된 행동들이 발전했다는 점이다. 그 한계들은 뒤에서 살펴본다.(다음 호 참조)

2) 반인종주의, 반파시즘 운동: 우리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넘어서고 보다 일반적인 정치적 관점을 형성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또 다른 지표로서 노동조합 투쟁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여성운동과 게이운동 내부의 강력한 사회주의적 경향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예컨대, 그룬윅 대중 피켓 시위에서의 파견단 조직이나 인종주의와 파시즘에 반대하는 운동의 조직, 그리고 복지삭감 투쟁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맑스주의 이론 및 사회주의 정책을 상당한 정도로 심화하거나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

3) 세입자 운동(tenants' organizations): 앞의 운동들과 유사하지만 다소간 덜 발전된 운동으로서 상당수의 세입자 조직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도 산업 노동자나 여성그룹과 보다 효과적인 연결을 창출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주택문제 활동가 워크숍에서는 지역의 세입자 운동의 활동가들과 사회주의 연구자들이 함께 ‘주택문제 적색 보고서’를 만들어 내거나 틴사이드, 카디프, 리버풀, 코벤트리 등 비교적 강력한 세입자 집단이 있는 곳에서 논의되는 주택문제에 관한 사회주의적 정책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전국 세입자 조직의 활동과 정책들에도 사회주의적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었으며, 다양한 지역성이나 정치적 경향성을 띤 사회주의 동맹의 효과 역시 반영되었다.

4) 지역공동체 운동: 위와 유사하게 산업의 쟁점들과 노동계급 공동체의 관심을 연결시키는 조직들도 발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60년대 후반 이래로 지역의 산업에 기반한 수많은 조직들이 어떤 한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후, 다양한 다른 쟁점들을 포괄하면서 많은 관련된 활동가들의 정치적 동맹처럼 행동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예를 들면, 런던 남동부의 A.E.I. 울리쥐 폐쇄 반대투쟁 동안 여러 현장위원회와 노조 지부들이 참여하는 조직이 구성되었다. 그 목적은 그 지역내의 공장폐쇄와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과 같은 다소 일반적인 성격을 띠었으나, 곧 바로 소득정책, 인종주의, 그리고 당시에 사회주의 캠페인의 다른 쟁점들에 대한 캠페인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의장이었던 짐 쿨린(Jim Coughli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것은 당시의 정치적 초점이 되었다. 메이휴(Mayhew)나 마쉬(Marsh)와 같은 우파 지역구 국회의원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중요한 회합에서 우리가 대표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SELAC(공장폐쇄에 반대하는 남동부 런던 행동위원회)는 전투적인 토론장과 선전 조직이 되었다.

몇 년 머지사이드의 스페크 지역에서는 스페크 지역 노조위원회(SATUC)가 산업 및 공동체에 기반을 둔 전투적 활동가들과 함께 스페크 지역의 어떤 정리해고에도 반대한다는 단일한 쟁점을 갖고 투쟁하였는데, 나중에 이 조직도 마찬가지로 다른 다양한 정치적 문제를 포함시켰다.
SATUC의 위원이었던 모린 윌리엄스(Maureen Williams)는 그 조직의 기원과 정치적 잠재력, 그리고 당면하고 있었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위원회는 1975년초 한 지역공장 폐쇄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의 직접적인 결과로 생겨났다. 우리는 그것에서 출발하여 파업 중에 우리의 지원을 요구한 스페크 지역의 여러 분쟁들에 가담하게 되었다. 스페크 지역 노조위원회(SATUC)는 점차 더 다양한 쟁점들을 다루어 갔다. 우리는 칠레나 포르투갈 문제와 관련된 성명을 발표하고 그 문제에 관한 토론회에 대표를 파견하기도 했다. 1년여가 지나자 위원회의 위원들은 집세 인상에 반대하는 투쟁에 참여했고, 시청에서의 캠페인에도 합류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처음에 내가 그 문제를 제기했을 때 마주쳤던 무관심과 이견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8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들이 속한 조직의 대표로서는 아니지만 아닌 개인으로서는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SATUC는 또한 작업장에서의 건강과 안전 및 실업에 관한 회의도 조직하였다.
1977년 후반 우리의 활동은 점차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위원회로서 우리는 전적으로 산업문제에 관한 투쟁이 지속되는지 여부에 의존하였다.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문제로 투쟁하지 않으면 우리도 투쟁하기 어려웠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어정쩡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한편으로 우리는 노조지부로 부터의 적극적 지원이 감소하는 시기에, 노조지부나 현장위원회로부터의 위임과 재정 제공에 의존해야 하는 활동가들의 연합체로서 일하기에는 지나치게 노조에 기초한 노조 지향적인 조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노조 공식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받기에는 정통적 조직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여러 노조 간부들은 우리에게 공개적으로 적개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SATUC는 정치적 연합체로서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여러 사회주의 조직이 그 속에 있었다. 거기에는 좌파 노동당원, 국제사회주의자, 큰 불꽃(Big Flame), 기타 여러 좌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잠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당 및 노조, 작업장과 우리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정했어야 했다. 갈스턴 지역 노동당과 그 지역 노조 분회는 좌파였는데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완전한 노동당의 대안으로서 라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 작업할 필요성을 느꼈었다. 또한 우리는 직업을 보호하기 위한 전투적 활동가로서 보다는 정치적인 활동가로서 우리를 재평가해야 할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안건으로 진지하게 검토되지 못했다.

5)급진 기술자 및 환경주의 운동: 사회주의적 관점을 발전시키고 확장시키면서 노동계급 조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조직된 또 다른 급진적 운동으로 급진 기술자 및 환경주의자 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운동’은 많은 창조적이고 정치적인 진전을 이루어 냈지만, 많은 오류도 범한 전력을 갖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단지 중간계급의 삶의 질을 개별적으로 향상시키려는 운동에 머물고 있지만,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모임’, ‘사회주의 환경 및 자원 연합’과 같은 집단은 자본주의적 기술과 그에 대한 대안을 위한 투쟁에 유일한 힘을 갖고 있는 노동계급 조직을 연결시키는 일에 점차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루카스 항공사(Lucas Aerospace)의 노조 현장위원들이 주도한 것으로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노동자들의 숙련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현대적 기술을 이용하거나 수정하여 제품을 설계, 제조하려 했던 투쟁이 이 운동의 중요한 촉매가 되었다.
루카스 항공 현장위원 공동위원회에 의한 이러한 시도는 하나의 사회주의 조직의 활동가들이 달성할 수 없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자원과 조직을 구축해 내는 새로운 운동 방식을 보여 준 것이었다. 공동위원회는 다양한 정치적 전력을 가진 노조활동가들이 모인 위원회였다. 그런데 그 위원회가 직면하고 있었던 문제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떤 정치조직도 답하기 어려운 구조적, 기술적 실업에 대처하는 일이었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과 숙련의 감축이 아닌 숙련의 향상을 위한 특수한 제안들을 중심으로 투쟁한다는 생각은 독립적 공동위원회의 정치력에 대한 믿음에서 온 것이다. 즉, 작업장 조립 노동자 및 기술직 노동자들이 그들의 힘에 기초하여 투자, 생산 목적, 노동과정과 같은 매우 정치적 성격이 강한 쟁점들에 관한 관리를 직접 담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이도 단지 이 쟁점들만을 다뤄야 한다고 보지 않았다. 즉, 루카스 항공사의 노조 현장위원들은 그들의 계획에 대한 소개서에서 그들은 “자본주의라는 착취의 바다 위에 있는 사회주의 섬”만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노동자들이 필요에 따라서 생산한다는 계획의 배경이되는 원칙들은 다른 현장위원회 예컨대, 동력기계, 군수품 생산 부문, 조선 및 고무 제조 등의 업종에 속한 현장위원회에 의해 수정․수용되었으며, 이 현장위원 그룹 사이의 조직적 연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6) 맑스주의 연구자운동: 또 다른 정치화 과정이 맑스주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는데,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사회주의 조직, 정치조직, 공동체 조직, 노동자 조직에 참여․개입하는 연구를 수행할 필요성을 점점 더 느꼈다. 그들은 독자적인 분야나 정치운동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규율, 자극과 제약들 없이 생산된 이론에 대해 편치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사회주의 경제학자 협의회(CSE)의 토론에서는 노동자 전략 및 정치에 관한 쟁점들에 관심이 늘어갔다. 「역사 워크숍 저널」(History Workshop Journal)에서는 그들의 작업이 여러 사회주의 운동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에 주목하고, 북서부에서 발간된 「Strong Words」, 동부 런던과 브라이튼 지역의 「Centerprise」와 같은 지역 출판 운동 기획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역 출판운동 프로젝트는 노동계급이 그들의 의식수준과 창의성을 고양시키기 위한 자기교육 전통의 일부였던 노동계급의 비판적 글쓰기를 복원시키고 고무시켰다. 국가에 관한 연구는 정치적 목적 및 긴급한 요구에 부응한 연구와 글쓰기가 진전된 또 다른 예이다. 잡지 「국가 연구」는 정책과 정보 및 군사 분야를 연구하는 저널리스트들과 연구자들의 공동 성과물이다. 2개월 간격으로 발행된 이 잡지는 해당 분야와 관련하여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미디어, 동조적인 국회의원들에게 배포되었다. 잡지 「신좌파평론」(New Left Review)에서는 민족주의, 서구에서의 혁명 전략, 동구권에서의 사회주의 운동, 유물론의 실질적 함의 등에 관한 토론을 전개했는데, 이것들은 일관된 사회주의적 실천을 개발할 때 직면하게 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조명하는데 기여했다.

7) 여성해방운동은 이러한 여러 운동들이 보다 풍부한 이론과 실천의 통일성을 기하는 데 있어 하나의 중요한 촉매구실을 해왔다. 여성해방운동은 그 운동을 발전시키고 강화하는데 적합하고 접근 가능한 이론적 작업에 집중함으로써 보기 드물게 이론적 작업의 정치적 목적과 실천적 과정에 대한 자의식을 생산해 냈다. 여성운동내에서 집단적으로 발간하는 이론적 잡지인 「여성주의 평론」(Feminist Review)의 최근호 편집자의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창간 호에서 우리는 「여성주의평론」 발간 의도가 생각들을 토론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여성해방운동의 정치적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임을 언급했던 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발행하는 잡지에 대한 접근가능성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와 표현방법의 문제만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독자와 기고자 및 편집진 사이의 토론 과정이다.

여성주의자들은 이러한 원칙을 여러 프로젝트에서 실행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이러한 사안에 따른 즉각적인 정치화 작업의 중요한 결과로서 소위 ‘부분’이라 불리거나 ‘단일한 쟁점’ 혹은 ‘지역적일 뿐’이라고 여겨졌던 캠페인이나 운동 및 조직들이 의식적으로 사회주의적인 가치에 기초하여 창출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조직들이 정책과 조직방식에서 모두 사회주의적이거나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성운동’, ‘대안적 출판 및 서점 운동’, ‘세입자 행동그룹’, 지역 및 전국적인 ‘노조 현장위원 공동위원회’, ‘노조 및 지역사회 자원센터’ 등과 같은 특수한 명칭 이면에는 항상은 아닐지라도 종종 사회주의 조직을 창출하는데 있어서 직접적인 정치적 적합성을 갖는 풍부한 아이디어와 경험 및 조직화 방식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그런데 정치적 공백들을 채우기 위한 이러한 ‘유기적’ 방식이 지닌 한계와 모순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사회주의적 연합들이 지니고 있었던 조직적 한계들, 예컨대, 경험의 소통 문제, 리더쉽에의 의존이 야기하는 민주주의 문제, 분파주의 문제, 혁명적 전위를 둘러싼 제반 문제들과 여성운동 조직에 대한 평가 및 함의가 다음 호에서 다뤄진다.
한/노/정/연



번역: 신병현 연구위원

1999-10-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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