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민주노총 2기 보궐 집행부 선거를 마치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참관기-
전 규 석
현대자동차 민주노동자 투쟁위원회 의장
지난 9월 17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있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본조 55명의 파견 대의원 가운데 교섭팀에 들어간
대의원들을 빼고 또 이래저래 빠진 대의원들까지 빼고나서
25명만 아침 8시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서울에서만 열리나? 대전이나 아래 가운데 쯤 하면
안되나?” 이런저런 얘기 끝에 서울에 도착하니 아침에 추적추적
내리던 비도 그치고 오후 3시 쯤 되었다.
대회장인 서울 양천구청 구민회관 앞에서는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에서 나온 녹색 유인물이 나눠지고
있었다. 그러나 경선이 아니라 그런지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애초 오후 2시부터 시작하기로 되어 있던 대회는 성원이 안되어
3시 반 쯤에야 가까스로 시작되었다. 대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후보에 대한 질문도 없이 유세가 끝나자 마자
선거에 들어가 단병호 후보가 당선되었다.
저녁 7시 울산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마침 지면이 허락되었으니 몇가지
풀어보겠다.
선거운동방식와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태도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대회가 갖는 의미나 중요성에 대한
객관적인 전체 입장의 정리가 없이 18개 연맹 대표자들이 단일
후보로 추대했던 단병호 후보에 대한 찬성 거수기 역할 외에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거나 상급단체 대의원대회의 위상이나
역할을 찾기에는 많이 아쉽고 부족한 대회였다.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는 2기 보궐 민주노총 지도부를
선출하는 단순한 선거의 의미가 아니라 그동안 투쟁속에서
성장한 민주노총의 지난 활동에 대한 평가와 이후에 강화될
자본의 공세에 대응하는 일천만 노동자의 진로를 모색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는 자리여야 했지만 그러한 역할과
의미는 상실되었다.
먼저 민주노총 2기 보궐 지도부를 새롭게 선출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그것은 지난 2기 선거 때 이갑용 지도부가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과제로서 제기한 1년 임기 공약을 실천하는 것이고,
이는 현장 조합원과 함께 하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참여하는
민주노총을 만들고자 제시된 것이다. 이것이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를 있게 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8월 23일 15차 대의원대회에서는 이갑용 2기
집행부의 공약사항중 직선제 규약개정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없다가 1년 임기 공약을 지키라는 사퇴 압력만 거셌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선거 단일 후보 등록, 18개 산별 연맹
지도부들의 단병호 후보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가 발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현장과는 괴리되는
것이었다. 또한 민주노총 위원장 사퇴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현장
조합원의 여론수렴의 절차나 과정 없이 산별연맹 대표자들이
일방적인 단병호 후보 공개지지를 결정한 것은 관료적인 태도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상반기 사업평가 안이
상정되었지만 사업평가의 중요성은 배제된 채 선거 국면으로
전환된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그간
대두되었던 상층 중심의 사업계획, 지도부 내부적인 문제를
그대로 덮어둔 채 지도부만 바뀌면 된다는 관료주의적 발상이며
일천만 노동자들의 희망인 민주노총을 제대로 반석 위에
세우려는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발상이다.
또한 지난 투쟁시기 상급단체의 입장이나 행위들은 현장
조합원의 투쟁 의지를 전혀 담보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지침을 내리거나, 단사별로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책임회피에
급급하여 상급단체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 해내지
못했고, 그 결과 상급단체는 조합원에게 불신의 대상으로,
있으나 마나한 조직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러한 지난 사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반성 없이 선거만 치르면 되는 것인가?
18개 연맹 단일후보로 출마하게됨으로써 이번 보궐선거는 제대로
된 선거공약이나 실천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정책적인 선거가
아니라 형식적인 선거로 전락하였다. 또한 각 지역 순회 유세 및
공청회는 각 지역 단체나 조합원의 참여가 극히 저조하게
진행되었다. 이번 선거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새롭게 선출하는
중요한 자리지만 현장 조합원이나 활동가들에게는 참여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만큼 민주노총의 지난 활동에 대한
반증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리 18개 연맹지도부 독단의 합의 추대라고 하지만 최소한
선거에 출마하였으면 후보로서의 예의가 있어야 된다. 58만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민주노총 선거에 정책토론회도 취소되었고,
똑같은 내용의 팜플렛 한 장이 선거 홍보전단의 전부였다.
적어도 당면 투쟁 사업장(대우, 한라 등 구조조정 사업장)에
대한 대응방안이나 투쟁계획이 발표되어야 했다. 그러나
단독후보로 연맹합의 방식으로 추대되었으니 당연히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는지, 선거공약이나 유세, 공청회 내용이 형식적인
선에서만 진행되었다.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는 각지역
순회 공청회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 내용이다. 그러나 답변은
일관되게 “노동운동 발전전략 위원회”를 구성하여 자기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각론으로 검토할수 있다는 애매한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각 지역에서 노사정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는 것은 지난 과정에서 노사정위 참여냐, 불참이냐 여부가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노총의 존립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내부분열로 나타났기에 노사정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했다. 지난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노사정위원회는 민주노총
지도부를 교섭의 장으로 끌어들여 상층의 합의로 노동운동을
체제내화 시키고 노동조합 활동을 죽이려는 국가기구의
노동통제전략이었다. 따라서 노사정위, 사회적 합의를
박살내겠다는 결의를 대중적으로 밝히는 것이 민주노총의 강화와
구조조정 전선을 강고히 하기위해 필요한 것이다. 노사정위
문제를 노동운동 발전전략 위원회로 넘겨놓은 것은 또다시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임의로 결정하겠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민주노총을 또다시 내부 분열로 몰아갈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다.
분명한 것은 현장이 살아야 한다는 것!
이상과 같이 많은 우려와 기대(?) 속에서 치루어진 민주노총 2기
보궐 지도부 선거였지만 대의원 대회는 이미 예상했던 바대로
공청회는 하지 않고, 형식적인 선거유세만 하고 바로 표결로
들어가, 역대지도부 선거와는 달리 선거에 대한 대의원의 관심과
열기가 떨어진 상태로 진행되었다.
선거 결과 총투표자 477명중 찬성 386명 반대 89명 무효2명 등
80.9%의 지지로 단병호 씨가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당선자 확정 발표시 축하의 분위기보다는 대의원들이 우려반(?)
기대반(?)의 무표정한 얼굴로 대의원대회장을 빠져나가면서
대회장은 썰렁하게 끝이 났다.
힘있는 민주노총! 조합원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민주노총!
단병호 2기 보궐 집행부가 직면한 가장 첫 번째 과제가 바로
이것이다. 1년 반 남짓 남은 임기 동안 2기 집행부가 다 못한
민주노총 혁신과 강화를 얼마나 이루어낼 지…. 한가지 분명한
것은 현장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2기 보궐 집행부의 분투를
기대한다. 한/노/정/연
기․획․번․역
기․획․번․역
분열을 넘어서기(1)
쉴러 로보탐, 린 시걸,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ꡔ분열을
넘어서ꡕ,(보스턴: 앨리슨 출판사, 1979)(Sheila
Rowbotham, Lynne Segal and Hilary Wainwright, Beyond the
fragments: Feminism and the Making of Socialism, Boston:
Alyson Pub., 1979)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에 걸친 영국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들의 자율주의적( libertarian) 좌파
여성운동의 기본 관점 및 경험과 관련된 논쟁적인 팜플렛들을
로잘린 박산달이 모아 미국에 소개한 책이다.
이 팜플렛은 레닌주의 및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도적이었던 영국
좌파 코뮤니스트의 경직된 남성주의적 관점의 추상성 및
몰성성(gender blindness)과 조직형태를 비판하며, 68년
학생운동의 신좌파적 전통에 따라 독립적인 지역운동을
창조하고자한 노력들을 자기 성찰적 스타일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시도는 기본적으로 체 게바라의 혁명적 행동주의, 소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이념노선에 속하는 마르쿠제 및
루카치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성 정치의 빌헬름 라이히, 랭
등 노선에 기초하고 있으며, 동시에 계급적 노동운동의 선진
노동자, 숍 스트워드의 전투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레닌주의 및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여성주의 비판에 기초하여, 여성해방운동,
게이운동, 인종주의 반대운동, 반핵운동, 대안매체운동,
사회주의 연극 운동, 노동조합운동, 사회주의 조직, 세입자 운동
사이의 통일성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실천들을 검토하고
있다.
이 팜플렛 중 하나인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분열을
넘어서기”는 70년대 영국에서 노동당의 우경화 경향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던 새로운 운동 실천들과 사회주의 조직들
사이의 관계를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경험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노동당이나 정당
구조가 실제적인 정치지형과 투쟁의 실재를 더 이상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 조직을
구성하려는 많은 대안적 실천들이 등장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 운동들은 기존의 합법적 정치구조에
대한 집착이나 노동계급의 정당으로 표상되는 노동당의 부정적
견인력으로 인하여 크게 제약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생존 가능한 당 조직 형태만이 대안적인 당 조직
형태라고 전제함으로써 노동당 내ㆍ외부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정치적 동맹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음을 좌파
정치조직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 속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러한 영국의 경험이 현시기 우리
사회의 노동자 정치 세력화와 관련된 다양한 실천적 노력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에서는 앞으로 이 글을 두 차례에 걸쳐
번역하고, 린 시걸의 “지역운동 경험”을 이어서 번역 소개할
것이다. 이 글들은 한국 좌파운동 및 여성운동, 노동운동 실천
활동가들에게 여러가지 토론 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노동자
정치조직 건설과 관련된 실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토론을 위한 자료로서 번역․소개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