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
이번 호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멕시코의 정치적 상황과
노동운동의 대응을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현재 4강구도로
요약되는 멕시코의 대선이 과연 멕시코의 정치변혁을 가져올
것인지, 그리고 사파티스타의 치아파스 봉기이래 지난 5년간
급속한 재편과정을 겪었던 멕시코의 노동자‧민중운동의
상황을 점검해 본다.
아래 글은 [멕시코 노동뉴스](Mexican Labor News and Analysis)
4권 13호(1999년 9월 2일)에 실린 3개의 소논문을 번역한
것이다. 첫번째 논문은 멕시코의 정치적 상황을 대선후보
중심으로 개괄한 것이고, 두번째 논문은 멕시코 정치와 선거에서
미국개입에 대한 역사적 개괄이며, 마지막 논문은 올해 멕시코
노동자투쟁의 핵심인 전력산업 민영화 반대투쟁에 관한
기사이다.
국제노동
다가오는 멕시코의 대통령선거와 멕시코 노동자투쟁
Dan La Botz
1. 멕시코 대선과 노동운동
멕시코의 대통령선거는 내년에 열릴 예정이지만 두가지 먹구름이
드리고 있다: 제도혁명당(PRI)이 선거승리를 가로챈 지난 88년의
대선과 지난 94년 당시 제도혁명당(PRI)후보인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Luiz Donaldo Closio)의 암살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 멕시코인들이 납득할 정도로 해명되지 않고
있다. 이 두 사건은 멕시코의 대선에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으며,
제도혁명당(PRI)정권의 정당성에 지속적인 위기를 야기했다.
그동안 2000년에는 마침내 제도혁명당의 70년지배가 종식되고
정부의 정당성과 민주주의가 멕시코에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자는 자주 선거를 경마에 비유한다. 누가 경주에서 승리할지
예상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현재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가
선두를 달리고 민주주의와 사회정의가 후미를 따르는 양상이다.
포퓰리즘의 옷을 입은 낡은 여당정치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한때 제도혁명당(PRI)선거의 열쇄를 쥐었던 노동회의(CT)소속
멕시코의 “공식” 노동조합은 오늘날 취약하고 분열된 것처럼
보이고, 전국노동조합(UNT)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자주적
노동조합도 의미있는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어떤
주요 정당이나 후보에게서도 노동자들과 그들의 이익은 진정한
표현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각 정당과 후보
제도혁명당은 1929년 창립된 이래로 매번 선거에서 이겼고
멕시코의 거의 모든 공직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
대선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주요 3당의 대통령후보들이 경선으로 선출될
것이다. 국민행동당(PAN)은 9월 12일, 민주행동당(PRD)은 10월
12일, 제도혁명당은 11월 7일에 경선을 할 것이다. 현재까지
이번 대선에 출마할 네명의 주요후보는 라바스티다, 마르라소,
폭스, 카르데나스이다.
2000년에 6년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은
내무부 장관(정치경찰)을 지냈던 프란시스코 라바스티다
오초아(Fransico Labastida Ochoa)를 대통령후보로 지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또다른 경선 후보는 타바스코 주지사인
로베르토 마드라소 핀타도(Roberto Madrazo Pintado)이다. 그는
국외자로서 여당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포퓰리스트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민행동당(PAN)의 경선에는 현재까지 단일후보가 등록한
상태이다. 부유한 목장주이자 기업가, 과나하토 주지사인 빈센테
폭스(Vicente Fox). 민주행동당(PRD)은 다시 한번 멕시코 시티의
시장인 콰우테목 카르데나스(Cuauhtemoc Cardenas)를 지명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는 지난 1988년과 94년 대선에 출마한 바
있다. 대부분의 관측통은 지난 1988년 선거에서 비록 카를로스
살리나스 드 고르타리(Carlos Salinas de Gortari)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사실상 카르데나스가 이겼다고 믿고 있다.
이 네명의 후보 외에, 민주행동당(PRD)의 지도자이자
카르데나스의 라이벌인 포르피리오 무노스 레도(Porfirion Munoz
Ledo)가 순수멕시코혁명당(PARM)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제도혁명당(PRI)를 이길 수 있는 다수를 만들기 위해
국민행동당(PAN), 민주행동당(PRD)와 기타 군소정당의 블록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8월말까지 이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정치적 차이가 협상실패의 한가지
원인이었다: 국민행동당(PAN)은 보수적인 친기업적 정당인 반면,
민주행동당(PRD)는 보다 포퓰리즘적 또는 사민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후보선출과정 자체가 또하나의 쟁점이었다.
국민행동당(PAN)은 지도부간의 협의를 원했지만,
민주행동당(PRD)는 양측 당원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경선을
원했다. 개인적인 감정도 한 원인이었다: 폭스나 카르데나스
둘다 상대방을 위해 사퇴할 것같지는 않다.
선거와 노동운동
멕시코 노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두 대변자인 노동회의(CT)의
“공식적” 연맹들과 자주적 연맹인 전국노동조합(UNT) 양자는
관심을 제도혁명당(PRI)에 집중하고 있다.
제도혁명당(PRI)에 대한 멕시코 노동총동맹의 지지는 자명한
것이다. 1930년대 제도혁명당(PRI)는 모두 노동대중 또는 빈민의
조직의 3대축으로 조직되었다: 전국농민총동맹(CNC),
전국민중조직총동맹(CNOP), 멕시코노동총동맹(CTM).
1980년대까지 모든 선거에서 멕시코노동총동맹(CTM)은 총선, 주,
지방선거에서 제도혁명당(PRI)후보에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당의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작업의 대가로 제도혁명당(PRI)의 지도자들에게
제도혁명당(PRI) 노동부문의 대표로 상하원의 의원 자리를
할당되었다.
지난 20년간 멕시코노동총동맹(CTM)의 중요성은 감소했고
2000년에는 더욱더 중요성을 상실할 것이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후견에 기초한 기계적 정치에서 텔레비전과 여론조사,
핵심그룹에 기초한 정치적 광고모델로의 이행 때문이다. 하지만
멕시코노동총동맹(CTM)은 더 이상 과거처럼 표를 몰아주지는
못할지라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멕시코노동총동맹(CTM)과 제도혁명당(PRI)
전력 유일노동조합(SUTERM) 위원장이자 멕시코 노동총동맹(CTM)
위원장, 그리고 노동회의(CT)의 의장인 레오나르도 로드리게스
알카이네(Leonardo Rodriguez Alcaine)는 최근 멕시코 국가와
노동조합의 유명한 “역사적 동맹”에 관한 고전적 발언을
되풀이했다. 멕시코노동총동맹(CTM)은 반동세력이 권력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제도혁명당(PRI)에 투표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 멕시코 노동자들은 멕시코혁명에서 등장한 당, 우리가
마데로, 사파타, 빌라, 카란자로부터 물려받은 원칙의 당의 편에
설 것이며, 우리는 또한 공화국 대통령, 에르네스토 세디요 폰세
드 레온(Ernesto Zedillo Ponce de Leon) 박사에게 충성을 다할
것임을 맹세한다.” 로드리케스 알카이네는 8월 13일에 열린 한
대중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멕시코노동총동맹(CTM)은 또한 제도혁명당(PRI)에 선거공약을
제시하였는데, 여기에는 임금인상, 고용안정, 공중보건의 향상을
촉구하였으며 세금과 환경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하였다.
전반적으로 멕시코노동총동맹(CTM)은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였지만, 그들이 이들 문제나 정의에 대해 진정으로
헌신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다.
멕시코노동총동맹(CTM) 지도자들의 진짜 관심은 현재의
국가-당체제에서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식적” 또는 국가-당통제 하의 노동조합들은
세디요와 그가 지명한 후보 라바스티다에게 줄을 서고 있다.
혁명적 노동자농민총동맹(CROC)의 위원장인 알베르토 후아레스
블랑카스(Alberto Juarez Blancas)는 다른 후보인 푸에블라
주지사 마누엘 바를레트 디아스(Manuel Barlett Diaz)를
지지하는 모험을 했지만, 바를레트는 라바스티다나 마드라소에
크게 뒤지고 있다. 누가 이기든, CROC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에르난데스 후아레스와 UNT
멕시코 전화노동조합(STRM)의 위원장이자 전국노동조합(UNT)의
가장 저명한 대표자인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후아레스(Fransisco Hernadez Huarez)는 비록 특정한 후보를
거명하지는 않지만, 제도혁명당(PRI)에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달까지 에르난데스 후아레스는 제도혁명당(PRI)
전국정치위원회의 위원이었지만, 멕시코노동총동맹(CTM) 위원장
로드리게스 알카이네의 명령으로 당지도부에서 탈락했다. “나는
결코 제도혁명당(PRI)를 탈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에르난데스
후아레스는 말했다. 국가-당에서 탈당하는 대신에, 에르난데스
후아레스는 당의 개혁을 호소하고 민주세력이 당내의 반동세력에
저항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나는 이런 과정을 지지하고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당의 내부에는 민주주의의 진전에 위협을 느껴
민주화를 희석시키고, 방해하고 봉쇄하려는, 또는 현상황을
과거의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이는 제도혁명당(PRI)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으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한 핑계로
이용하려는 강경세력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에르난데스
후아레스는 말했다.
몇달전 후아레스와 다른 UNT 지도자들은 노동자 사회운동(MST)을
결성하였으며, 때때로 이 조직이 멕시코에서 일종의
노동계급정당이 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ST는 선거 전기간에 조직노동, 또는 보다 폭넓게 노동운동의
독자적 목소리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마드라소: 민중주의 후보
현재 가장 흥미로운 정치적 현상은 타바스코 주지사 로베르토
마드라소 핀타도(Roberto Madraso Pintado)의 급부상이다. 그는
제도혁명당(PRI) 지명전에 노동계급과 빈민의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몇 년전 로페스 오브라도르(Lopez Obrador)가 폭로한
스캔들의 중심인물이었다. 이 사건에서 약 7,200만달러의 금액이
타바스코 제도혁명당(PRI) 선거운동본부의 금고로 들어갔는데,
나중에 그 대부분이 망명중이었던 카발 페니체(Caval Peniche)가
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록 그가 부정선거자금, 투표사기,
의심스러운 정치도덕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단 몇주만에
라드라소는 제도혁명당(PRI)의 일반당원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민중주의적 후보가 되었다.
처음부터 마드라소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후보자는
현직에서 사임해야 한다는 제도혁명당(PRI) 규약―그의 경우에
타바스코 주지사직에서 사임해야 한다―에 도전하여
승리하였다.
마드라소는 세디요의 신자유주의적(즉 보수적) 경제정책, 예를
들어 연방예산 축소, 시장개방, 수출용 제조업육성 등의 정책을
공격하였다. 마드라소는 그 대신에 빈민을 위해 사회보장에 더
많이 지출할 것을 요구하였다. “나는 소수에게 최대의 혜택을
가져다주는 정책에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최대 다수에게 적은
혜택이라도 돌아가는 정책을 주장한다”고 이 타바스코 주지사는
환호하는 노동계층 제도혁명당(PRI)당원들에게 말했다.
타바스코 주지사의 이런 민중주의적 수사는 그가 이길 경우
일어날 금융불안을 겁내는 일부 국제 투자가들의 근심거리이다.
마드라소의 선거운동이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제도혁명당(PRI)
체제나 미국정부가 그가 선거에서 이기도록 놔둘 가능성은 거의
없다.(멕시코의 선거에서 미국의 역할에 관한 다음 논문을
보라)
민주행동당(PRD)와 카르데나스
1988년과 1994년 좌파에게 흥분감과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1988년 콰우테목 카르데나스가 제도혁명당(PRI)내부의
민주파(Democratic Current)를 이끌고 탈당하여 독자적인 대통령
선거전에 돌입하여 승리했지만 패배했다! 그리고 1994년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이끄는 치아파스봉기가 살리나스
정부의 기적이라는 신화에 도전했다. 1994년 한동안 EZLN,
비정부적 시민동맹(AC)과 민주행동당(PRD)가 힘을 합쳐
제도혁명당(PRI)의 패배와 새로운 민주적 멕시코를 가져올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 그러한 좌파의 희망은 훨씬 더
취약하다.
중도좌파 민주혁명당(PRD)은 지난 3월 당총재 선출과정에서
치명타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두명의 경쟁자인 아말리아
가르시아(Amalia Garcia)와 헤수스 오르테가(Jesus Ortega)는
서로를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선거는 7월에 다시 열려야 했고,
가르시아는 많은 오르테가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상원의원 펠릭스
살가도(Felix Salgado)를 55% 대 27%로 이겼다. 그러나 당의
이미지는 사건 전과정에서 몹시 실추했다. 민주행동당(PRD)는
더이상 부패한 제도혁명당(PRI)에 대한 청렴한 대안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민주행동당(PRD)후보로 선출될 것이 거의 확실시 되는 콰우테목
카르데나스는 멕시코 시티 시장당선을 대선출마의 디딤돌로
이용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이 디딤돌은 대단히 미끄러운
것으로 밝혀졌고, 때때로 카르데나스는 도시의 사회문제라는
늪에 빠지기도 했다: 불완전고용 또는 실업 노동자들의
빈곤증가, 범죄율 증가, 끔찍한 공해, 제도혁명당(PRI)가
조종하는 노동조합의 반대 등. 정부의 부패를 척결하는 데 다소
성공했지만, 초당파적 시민협의회를 통해 시정부를 민주화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카르데나스를 사회운동과 좌파의 후보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은 실망스러운 것이다. 카르데나스 시정부와 그 안의
급진파는 노동자, 여성, 빈민의 수많은 문제를 다루었고, 또
민주적 권리를 수호했다. 아마도 카르데나스는 많은 노동조합원,
특히 공립학교 교사들과 다른 공무원들, 그리고 미초아칸이나
라구나지역과 같은 그의 아버지와 자신의 전통적 표밭 출신의
수많은 농민들의 지지를 여전히 받고 있지만, UNT와 5월1일
노동조합 연합(CIPM)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자주적 노동운동의
후보로 자신을 부각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카르데나스는
이미 오래전에 전국적 선거정치에 불개입주의(abstentionism)
입장을 취하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전선(EZLN)과의 사이에
존재했던 관계를 상실했다.
아직 2000년 대선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 말하기는 너무
이르지만, 제도혁명당(PRI)지도부와 당기구는 라바스티다를
권좌에 올려놓기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같다. 다른
주요한 제도혁명당(PRI)후보인 라드라소는 국민행동당(PAN)의
카리스마적인 보수적 후보 폭스만큼 위협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카르데나스는 이번 선거에서 1994년처럼 패자가 될 것
같다. 무노스 레도의 경우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상태이다.
선거에서 표를 던질 사람의 대부분은 노동대중이겠지만, 노동자
조직들은 선거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같다.
역설적으로 정부에게 버림받은 노동자와 빈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카르데나스가 아니라 제도혁명당(PRI)의 가장
부패한 정치인 중의 하나로 명성을 날린 마드라소이다. 그러나
마드라소가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2. 멕시코의 역대선거와 미국의 역할: 역사적 개괄
멕시코의 대통령선거는 멕시코에서 진행되겠지만, 미국에서
결정될 것이다. 멕시코혁명 이래, 미국은 멕시코의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커다란, 때로는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미국은 광업,
석유, 농업, 제조업 등의 미국인 투자자와 미국의 은행과 그들의
차관을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정치적 안정과 기업환경을
유지하려고 시도했다. 미국정부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후보를
지도하고 선거과정을 조작하려고 시도했으며 대개의 경우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과 제도혁명당(PRI)
1927년 모건은행의 주인이자 멕시코주재 미국대사인 드와이트
모로(Dwight Morrow)가 당시 멕시코 대통령 플루타르코 엘리아스
칼레스(Plutarco Elias Calles)와 평화조약을 맺은 직후부터,
미국정부는 일반적으로 믿을만한 미국이익의 수호자로서
제도혁명당(PRI)을 선호했다.(PRI는 1929년 창당하여 두차례
당명을 변경했다.)
1938년 라사로 카르데나스 대통령이 미국과 영국계 석유회사를
몰수‧국유화했을 때에만, 양국관계가 거의 단교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2차대전이 임박하자 양국관계는 곧
회복되었다. 1940년에서 1980년까지 미국은
제도혁명당(PRI)후보에게 계속 추파를 던졌다. 1968년에 시작된
정치적 불안은 알력을 불러 일으켰고, 1980년대 미국의 공화당
정부는 국민행동당(PAN)에 추파를 던졌지만, 제도혁명당(PRI)를
버리지는 않았다.
미국은 특히 세명의 테크로크라트적 또는 신자유주의적(즉,
보수적) 대통령을 강력히 지지했다: 마드리드(de la Madrid:
1982~19), 살리나스(Salinas: 1988~94), 세디요(Zedillo:
1994~2000). 이들은 “지구화”라고 불리는 과정에 대한
멕시코의 통합을 감독하였다. 그 결과 멕시코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현재의 WTO), 북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NAFTA)에 가입하였고, 미국의 투자에 대해 멕시코
경제를 개방하였다.
미국은행들의 압력과 미국에서 훈련받은 경제학자들의 후견
아래, 마드리드, 살리나스, 세디요 대통령은 멕시코의
경제정책을 180도 전환하였다. 수입대체산업 발전에 기초한
국내시장보호에서 수출주도형 시장개방으로 전환한 것이다.
제도혁명당(PRI)가 1988년 선거의 승리를 콰우테목
카르데나스에게서 가로채 자유무역론자인 카를로스 살리나스를
대통령직에 앉히자, 미국정부는 그들의 믿을만한 동반자
제도혁명당(PRI)를 지지하였다.
오늘날 미국의 역할
미국은 멕시코의 정치, 특히 선거에서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 미국은 단지 정치적 변수였고, 멕시코 정부가
스스로 부정부패선거를 주도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의 정부와
정당, 비정부기구(NGO)들이 멕시코에 개입하여
자유‧공정‧투명선거라는 이름 아래 선거운동과 선거
자체의 많은 측면에서 직접 책임을 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뤄지는가? 우선, 미국은 멕시코의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차관, 투자, 신용등급을 통해서 엄청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무디스 투자서비스는 멕시코의
신용등급을 투자등급 하나 아래로 상향조정했고, 가까운 미래에
주식을 투자등급으로 올릴 것이다. 이런 조치는 멕시코경제에
대한 건강진단서나 마찬가지이므로, 다가오는 선거에서
제도혁명당(PRI)가 승리할 가능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자유시장론자인 살리나스 정권의 재임기간 분명해진 것처럼,
제도혁명당(PRI)가 미국식 경제정책을 고수하는 한, 어떤
족벌체제, 부패, 폭력적 탄압도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를
깨뜨리지 못할 것이다. 비록 캐나다인 감사관 마이클 매키가
세디요 정부 하에서 구제금융 680억달러 가운데 10% 이상이
부패로 증발했음을 밝혀냈지만,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보이고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를 장려하는 제도혁명당(PRI)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조직적 연계
그러나 궁극적으로, 선거에 유리한 경제환경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거정치는 결국 돈과 조직이다.
미국정부와 정당들은 두가지를 모두 제공한다. 1980년대 이래로
멕시코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영향력은 국립민주재단(NED)나
미국 국제개발청(USAID)과 같은 정부기관 뿐만 아니라,
카터센터와 같은 비정부기구들(NGOs)를 통해서도 증가했다.
수많은 NGO 좌파, 우파, 중도파가 미국의 노동조합처럼 일정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그런 조직들이 1988년과 1994년
제도혁명당(PRI)의 선거부정을 막기 위해 선거참관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결국 멕시코 정치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클린턴, 민주당과 제도혁명당(PRI)
클린턴 정부는 이전의 공화‧민주당 정부들처럼,
흔들림없이 제도혁명당(PRI)를 지지해왔다. 클린턴은 세디요를
지지하고 또 그가 후계자로 지명한 라바스티다를 지지한다.
지난해 멕시코 방문 중에, 클린턴은 민주행동당(PRD)나
국민행동당(PAN)후보를 만나는 것은 피했지만, 세디요와
라바스티다는 정부업무를 핑계로 만났다.
지난 25년간, 후견과 향응에 기초한 멕시코의 전통적인 정치는
쇠퇴한 반면, 미국식 TV광고 선거운동의 중요성은 증대했다.
미국의 선거운동 전문가들과 광고회사들도 지금 멕시코로
이동했다. 이번 선거에서, 지난 1992년 클린턴 선거운동을
담당했던 제임스 카빌이 세디요의 후계자 라바스티다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다른 제도혁명당(PRI)후보인 마드라소는 전에 하원
원내총무였던 리차드 게파트 의원의 선거참모였던 톰 오도넬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참모진에 클린턴을 위해 일했던
여론조사전문가 더글러스 숀과, 톰 브래들리 LA시장을 위해
일했던 제브 퍼스트도 가담할 것이다.
국민행동당(PAN)후보 빈센테 폭스는 르윈스키 스캔들 때
클린턴을 도왔던 딕 모리스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선거는 흔히 경마에 비유된다. 1929년 이래 거의 모든 선거와
마찬가지로, 2000년의 선거에서도, 제도혁명당이 처음부터
선두를 달리고 있고, 다시 한번 미국정부도 말안장에 앉아
고삐를 쥐고 있다.
3. 전력산업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력노동자‧민중 행진
지난 8월 28일 수만명의 전력노동자들과 지지자들이 전력산업
민영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멕시코시티 중심부의
소칼로광장까지 가두행진을 했다.
이번 시위에는 멕시코 전력노동조합(SME)이 주도했으며,
유일전력노동조합(SUTERM)내의 반대파 5000명, 그리고
전국노동조합(UNT), 5월1일노동조합연대회의(CIPM),
멕시코노동조합전선(FSM)의 지지자들이 참여하였다. 이 외에도
국립 멕시코 자치대학(UNAM)의 파업조정위원회가 동맹파업중인
학생들을 동원하여 이들도 행진에 참여했다.
로드리게스 알카이네와 멕시코노동총동맹(CTM)에 대한 도전
올해초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은 전력산업을 민영화시키기
위해 멕시코 헌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SME와
연대조직들은 지난번 회기중 민영화계획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운동을 건설하였다. 이는 거의 15여년만에 이와 유사한 이슈에서
노동조합의 주요한 첫승리이다.
STERM 조합원 5,000명의 8월 28일 시위참여는 SUTERM
사무총장이자, 멕시코 노동총동맹(CTM) 위원장인 레오나르도
로드리게스 알카이네(Leonardo Rogriguez Alcaine)의 권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로드리케스 알카이네와 SUTERM,
멕시코노동총동맹(CTM)은 전력산업의 민영화를 지지했으며, 반면
SME와 UNT는 반대하고 있다.
민영화문제는 SUTERM을 심각하게 분열시켜, 세디요의 계획을
지지하는 로드리게스 알카이네를 비롯한 노동조합 관료들에 대한
현장조합원의 반란을 이끌어냈다. 수십개의 SUTERM 지부들은
멕시코노동총동맹(CTM) 위원장에게 반기를 들었고, 많은
노동자들은 로드리게스 알카이네가 SUTERM 사무총장직을 사임할
것을 요구하는 항의행동을 조직하였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서반구전선
이 투쟁과정에서 멕시코 전력노동조합(SME)과
유일전력노동조합(SUTERM)내의 반대파는 20년에 걸친 분열을
극복하고 자신의 노동조합, 단체협약과 고용을 위협하는
세디요의 민영화계획에 저항하기 위해 단결하였다. 몇 달전
SME와 다른 노동조직들은 전력산업민영화 반대
전국전선(FNRCPIE)을 결성하였다.
현재 SME와 동맹자들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의 노동조합들의 지원을 받아 민영화반대
서반구전선을 조직하고 있다. 새로운 서반구전선은 9월에
국제회의를 열 계획이다.
민영화반대투쟁에서 SME를 지지하는 민주혁명당(PRD)의
의회대표단은 이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consulta)실시를
제안하였다. 한/노/정/연
번역: 원영수 국제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