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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민당 신중도 "자민당 노선의 값싼 표절"

현장에서 미래를  제48호
정병기

국/제/노/동



독일 사민당 신중도(新中道)

“자민당 노선의 값싼 표절”과

좌파 주도 신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저항









‘좌파 국민정당’에서 ‘현대 경제정당’으로 노선변화


슈뢰더 총리로 대표되는 독일 사민당 ‘개혁 우파’의 ‘신중도’ 노선이 ‘신노동당’으로 알려진 영국 노동당의 ‘제 3의 길’의 독일 판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노선의 핵심은 자유방임정책과 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 노선과 케인즈주의적 개입국가라는 전통적 사민주의 노선, 양자를 모두 거부하는 ‘중도급진개혁’을 통해 심각한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1) 그러나 집권 1년, 독일 정부는 뚜렷한 ‘개혁’의 성과는커녕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채 정부 안팎의 반발에 부닥쳐 유럽의회와 주의회 선거에서 참패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사민당에 대한 각계의 비판은 슈뢰더 총리의 ‘신중도’ 노선에 대한 근본적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거 전략상 전문인, 지식인, 젊은 기업가 등 신중간층의 표를 흡수하고자 했던 이 노선은 강령적 차원에서 기존 ‘좌파 국민정당’에서 ‘현대 경제정당’으로의 노선 변화를 의미한다.2) 전통주의자들이 59년 이후의 노선을 이어가고 있다면, 슈뢰더의 개혁 우파들은 이를 거부하고 또 한차례의 노선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1959년 독일 사민당은 ‘좌파 국민정당’ 노선의 정립을 핵심으로 하는 고데스베르크 강령(Godesberger Programm) 제정을 통해 계급투쟁, 맑스주의 전통, 자본주의 붕괴론 및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전통적 가치를 포기하고, 케인즈적 총괄조정, 즉 시장기제, 자본, 이윤 및 축적을 용이하게 하나 공공선을 지향하고 사회적 분배정의에 적합한 강력한 국가개입이라는 대안을 선택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66년 이후 사민당 연정의 칼 쉴러(Karl Schiller) 경제장관을 통해 실질적으로 시도되었다. 연방은행과 노사정 대표가 참여하는 조합주의적 협의기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른바 ‘협주활동(Konzertierte Aktion)’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반면 전통주의자를 이끄는 라퐁텐에 대항해 현 총리 슈뢰더는 당내 우파를 지도하며, 좌우 이데올로기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당의 ‘현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현대성은 선별적으로 공급부문을 집중 지원하는 슘페터적 국가인 최소국가로서의 ‘민족적 경쟁 국가(nationaler Wettbewerbsstaat)’를 지향하는 것으로,3) 정부개입을 우선시하는 재정주의적 입장과는 달리 탈규제, 개방, 복지삭감, 민영화 정책 등을 통해 중심부 독점자본의 위기탈출을 돕고 초국적 자본의 축적운동을 도모하는 신자유주의적인 통화주의 탈규제 정책의 선택을 의미한다. 슈뢰더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성향의 대표적 정책은 ‘미래프로그램 2000’으로 표방됐는데, 그 핵심은 연금삭감과 실업기금의 축소를 통해 국가부채를 줄이는 한편 기업에 대해서는 조세경감을 통해 자본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4) 기업의 부를 키워주는 대신 노동자의 주머니를 여위게 하겠다는 발상이다. 그에 따라 실업문제도 높은 노동비용을 그 원인으로 돌리는 신고전주의적 입장에서 접근한다. 이것이 곧 영국의 제3의 길과 다를 바 없는 ‘신중도’ 노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이다.

한편, 지난 보수당 정부 이상으로는 노조의 정책 참여권을 인정치 않겠다는 영국 블레어 수상의 강경한 입장에 비해, ‘고용협약’을 통해 사용자 및 노동자 대표들과 협의한다는 것이 독일 사민당 연정의 특수성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 독일정부의 사회협약도 이미 기민당/기사당 정부 당시 추진되어 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정부정책이 기업편향으로 기우는 가운데 노조측 주장의 실질적 정책반영이 차단된 협의기구를 통해 노동자측은 동원과 양보만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적녹연정의 출범은 독일 국민들의 고용과 분배문제에 대한 오랜 불만과 비판의 결과였다. 비록 슈뢰더의 개혁우파 노선이라 할지라도 독일 국민들의 기대는 좌파의 해결 능력을 믿었던 데 있었다. 노조 또한 그러한 믿음에서, 60년대 이후 선거에서 공개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게 된 관례를 깨고 지난 총선에서는 비록 직접 당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일자리와 교육과 사회정의를 위한 한 표”를 주장하며 실질적으로 사민당 지지를 호소했다. 구체적으로 독일 노조는 바로 ‘일자리와 교육과 사회정의를 위한 협약(Bundnis fur Arbeit, Ausbildung und soziale Gerechtigkeit)’이라는 ‘고용 협약’에 커다란 기대를 걸어 왔으며, 총선 직후에도 일자리와 소득의 공평한 배분, 환경․에너지정책, 교육, 사회보장제도와 조세정책, 재산세 및 유럽정책 등 7가지에 대한 실질적 논의기구로서 새로운 형태의 ‘고용 협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5)

높아져 가는 독일사민당에 대한 비판


그러나 독일 금속노조의 지난 6월 평가에 따르면 4백만이라는 실업자 문제와 분배정의는 집권 약 1년 동안 수치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이미 기민당 정부 시절 16년 동안 기업소득은 3배 증가했음에도 법인세는 1.8배 증가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오히려 1.7 % 감소한 상태이다.6) 더욱이 현 ‘고용협약’을 60년대 말 70년대 초의 ‘협주활동’과 비교해 볼 때, 완전고용을 전제로 사회보장 체계, 노조의 공동결정권을 정부가 약속하는 대신 노조가 물가안정을 위해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후자의 경우와 달리, 현 ‘고용협약’은 단순한 양보협약에 불과하여 고용 안정을 위한 임금인상포기와 국가 경쟁력 강화, 사회투자의 축소, 공공부문의 탈규제와 민영화가 추진되는 반면, 사회정책적으로는 청년 실업자나 장기실업자 등 몇몇 특수그룹과 정책적 범위가 한정된 특별 프로그램에 그치고 있다.

‘미래 프로그램 2000’이 신 노선의 구체적 실행정책이라면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제안된 “유럽사민주의를 위한 전진의 길”이라는 ‘블레어-슈뢰더 성명’은 신 노선의 최종 정리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성명은 사민당 지도부의 우경화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거센 반발의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본대학 정치학과 랑구트(Langguth) 교수는 『노이에 쮜리히 차이퉁』지를 통해7) “우리가 이 성명에서 표현하는 정치를 추구한다면 사민당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민당 청년당원들(Jungsozialisten)의 입장을 빌려 블레어-슈뢰더 성명을 내용적으로 비판했다.8) 그에 따르면 이 성명은 시장기능을 보완․개선하고 평등을 거부, 업적과 창조성을 강조하며 “일하는 자에게 복지”를 슬로건으로 함으로써, 노동운동과 단절하여 개인주의적-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분명히 한다고 했다. 또한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 노선은 자민당(FDP) 당수 게르하르트(Gerhard)의 표현대로 “자민당 노선의 값싼 표절”이었으며,9) 사민당 연정의 정부강령은 기민/기사당-자민당(CDU/ CSU- und FDP) 강령의 “적대적 수용”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독일 사민당의 신자유주의적 선회에 직면하여 독일 노조도 ‘고용 협약’의 실질적 정책반영과 노조의 정책참여 확대를 요구하며 정부정책에 대한 전면 부정의 소리도 높여가고 있다. ‘고용 협약’과 관련, 노총(DGB) 위원장 디터 슐테(Dieter Schulte)는 생애 노동시간 단축, 직업교육 확대, 시간제 근무 확대를 통한 일자리 배분과 초과근무 폐지를 일차적 과제로 촉구하는 한편, 블레어-슈뢰더 성명10)에 대해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다름 아닌 독일 경제인연합일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는 동시에 그 성명으로 나타난 정부정책의 변경 논의에 즉각 착수할 것을 주장했다.11) 

금속노조(IG Metall) 오스나브뤼크 지부도 8월 9일 “슈뢰더 정부는 명백히 콜 정부 정책을 답습”하고 있어 “이제는 어설픈 기대를 버리고 정부의 긴축정책에 대항해 거리로 나설 때”라고 하며 “베를린으로의 시위행진”을 제안했다.12) 이러한 제안은 물론 금속노조 중앙지도부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노조(IG Medien) 위원장 헨쉐(Detlef Hensche) 또한 “슈뢰더 정부는 전 정부의 정책을 혐오스러울 정도로 반복”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상업은행보험노조(HBV)와 공무운수교통노조(OTV)도 “신 중도 노선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13) 그리고 이러한 비판과 반발은 공무운수교통노조와 사무직노조가 이미 6월 15일 베를린에서 정부의 “보건부문 개혁 2000”에 대해 반대 시위를 함으로써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14)

노조와 학계뿐 아니라 사민당 내부와 다른 정치적 좌파로부터도 비판은 터져나오고 있다. 주의회 선거 이전에 사민당 의원 30여명이 서명한 항의편지 사건이 있었으며, 주의회 선거를 앞두고 사민당의 보루 자르란트(Saarland)와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주의 주총리인 클림트(Klimmt)와 슈톨페(Stolpe)가 정부강령을 비판, “재집권하면 연방상원(Bundesrat)에서 동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약하기도 했다. 사민당 전당수 라퐁텐(Lafontaine) 또한 지난 9월 26일 정계은퇴 6개월의 침묵을 깨고 “친기업적 신중도 노선” 자체가 유럽의회와 주의회 선거의 연패 원인이라고 슈뢰더 정부를 강력히 비난했다.15) 한편 민사당(PDS) 원내총무 그레고르 기지(Gysi)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베를린 『타게스슈피겔』지를 통해 “과거 기민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오히려 덜 유해했다”고까지 사민당 주도의 신자유주의성을 평가절하했다.16)



노조와의 연대모색과 독일 노동운동의 과제


이제 좌파진영은 공통적으로 슈뢰더에게 있어 사회보장국가라는 개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역시 신자유주의에 물들어 가는 녹색당 현실주의자들과의 적녹연정도 기민당 콜 총리의 정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하며 노조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제 지난 6월 유럽 의회 선거에서 94년에 비해 노조원들의 민사당 지지율이 3%(전체 1 % 상승) 가량 상승함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유럽의회에 진입하고, 자르란트등 9월 주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이 노동자층에서 10% 이상을 실표, 전반적으로 5~15%를 상실하는 것으로 이어졌다(그래프 참조).




전통적으로 독일 노동운동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이라는 사민당과의 분업구조를 이루어 정치투쟁을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독일 노조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조직으로 자기 위상을 항상 분명히 해 왔으며 59년 강령변화를 통해서도 사민당과 노조와의 이러한 분업관계는 느슨한 형태로나마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독일 노동운동은 베를린대 정치학과 초이너 교수의 진단처럼 그 한쪽 팔마저 잃어버리는 상황에 봉착하여 노조가 직접 정치투쟁에 돌입해야 할 상황에 봉착했다.17)  

한/노/정/연


1) Ottmar Schreiner (SPD-Bundesgeschaftsfuhrer), “Zur Zukunft der SPD: Thesen zur Debatte uber den ‘Dritten Weg’”, in Frankfurter Rundschau, 1999.5.18.


2) Bodo Zeuner, Bricht die SPD mit der Arbeiterbewegung?, Vortrag vor dem Politischen Forum der IG Metall in Bad Orb am 4. Juni 1999 참조.


3) Bodo Hombach, “Der Befreiungsschlag”, in Der Spiegel, 41/1998, pp. 40-43 참조.


4) “Bundeshaushalt 2000 und das Zukunftsprogramm zur Sicherung von Arbeit, Wachstum und sozialer Stabilitat”, in DGB-Informationen zur Wirtschafts- und Strukturpolitik, Nr. 7/1999(9.31); Zoller, Hermann, “Mit einem Sparpaket aus dem Hause Schroder auf den Weg in die Zukunft?: Scharfe Kritik an dem ‘Zukunftsprogramm 2000’ der Bundesregierung ― Das Modell fur die ‘neue Mitte’? ― Steigt die SPD aus der Geschichte der Arbeiterbewegung aus?”, in http://www.igmedien.de/publikationen/forum 참조.


5) Andrea Nahles & Detlev von Larcher, “Wenn der Sparkurs zum Hebel fur die Politik der neuen Mitte wird: Von den EuropaßWahlen, dem Blair/SchruderßPapier und der sozialpolitischen Zasur”, in Frankfurter Rundschau, 1999.6.20.


6) 앞의 글.


7) Gerd Langguth, “Das Blair-Schroder-Papier als historische Wende? Der Kampf um den politischen Begriff der ‘neuen Mitte’”, in Neue Zuricher Zeitung, 1999.9.21


8) 랑구트 교수는 초이너 교수와 달리 슈뢰더의 신 노선을 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에 견주는 당노선 변화의 한 전환점으로 보지는 않으며, 블레어-슈뢰더 성명에 대해서도 단지 서술적 전술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성명이 사민당 우파 노선의 집약된 표현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며 아직 당내 갈등이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사민당 좌파의 재기 가능성을 조심스레 타진한다. 반면 초이너 교수는 노선 변화의 완성을 대세로 파악하고 노조와 같은 사민당 외부에서 진보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9) “Der Grune Klaus Muller zum Schroder/Blair-Papier”, in Berliner Tageszeitung, 1999.6.18.


10) Der Weg nach vorne fur Europas Sozialdemokraten. Ein Vorschlag von Gerhard Schroder und Tony Blair.


11) “Initiative des DGB fur ein Innovations- und Aktionsprogramm der Bundesregierung”, in DGB-Informationen zur Wirtschafts- und Strukturpolitik, Nr. 6/1999(8.30); “DGB -Chef zum Thesenpapier Schroder/Blair. ‘Veranderungsdebatte aufnehmen’”, in einblick - Gewerkschaftlicher Info-Service vom 21..6.99, 12/99.


12) Der Tagesspiegel, 1999.8.9.


13) 앞의 글.


14) Der Tagesspiegel, 1999.6.16.


15) Welt am Sonntag, 1999.9.26.


16) Der Tagesspiegel, 1999.6.9.


17) Bodo Zeuner, 위의 글 참조.


1999-10-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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