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자신의 정치노선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김 세 균 (소장)
단병호 집행부가 민주노총의 새 집행부로서 들어섰다. 우리는 이
새 집행부가 한국 노동운동이 당면한 제반 문제들을 노동운동이
견지해야 할 원칙과 대의에 따라 해결해 나아감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의 새 이정표를 세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이를 위해 새 집행부는 민주노총이 그간 추진해 온 제반
사업들을 비판적으로 재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 비판적
재점검의 우선적 대상의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은 민주노총의
정치노선이다.
민주노총은 건설될 당시부터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자신의 당면과제의 하나로서 제기해 왔다. 그런 가운데
초대집행부인 권영길 집행부는 15대 대선 및 2000년 총선 참여를
통한 이른바 ‘개혁적 국민정당’의 건설을 민주노총의
정치노선으로 채택했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국민승리21’이
애초에 그러한 정치노선을 관철시키기 위한 조직체로서
건설되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국민승리21’이 15대
대선과정에서 ‘국민후보’운동을 전개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국민후보운동’을 전개토록 만든 ‘개혁적 국민정당 노선’은
15대 대선과정에서 그 노선이 지닌 탈계급적-탈민중적 성격을
여지없이 드러냈고, 그로 인해 광범한 대중적 비판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므로 이후의 정치세력화 추진은, 그
추진의 방향이 어떤 것이 되든, 최소한 15대 대선과정에서의
‘국민승리21’ 활동에 대한 철저히 비판과 반성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준)’이
건설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민승리21’ 운동주체는, 이제는
국민이라는 말 대신 노동자, 민중이라는 말을 앞세우고 있지만,
그간의 자신의 탈계급적-탈민중적 노선을 공개적으로 반성하고
자기비판한 적이 한번도 없다. 게다가 민주노총은 15대 대선이
끝난 후 대선운동에 대한 자체 평가를 한번도 조직해 보지도
않은 채 서둘러 ‘국민승리21의 확대-개편을 통한 진보정당
건설’을 자신의 정치노선으로 결의했고, 그 결의에 따라
국민승리21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세력화를 적극 뒷받침해 오고
있다. 그런 만큼 민주노총이 그간 추진해 온 정치세력화란 그 첫
순간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었고, 정치세력화를 열망하는
노동자대중의 열망을 올곧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국민승리21세력이 주도하는 정치세력화를
뒷받침하는 대중기구로서 역할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정치세력화에 결코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무엇보다
국민승리21세력의 정치노선은 ‘사민주의적 개량주의’에 의해
대변되는 바, 그러한 정치노선은 노동자정치운동을
‘피착취-피억압계급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상품판매자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운동’으로 한정시킨다. 나아가
국민승리21세력은 ‘제도권정치’를 정치의 본령으로 간주하는
선거주의적-의회주의적 정치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바, 그러한
정치노선은 대중정치-운동정치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노동자정치를 부르주아정치에 종속시키는 데에 기여할 뿐이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준)은 오늘날 자신의 정체성을
‘계급연합정당’에 두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정당’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것이어야 하고 ‘계급연합’은 정당과는 구분되는
전선조직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은, 자신의 활동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정치세력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면, 국민승리21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정치세력화를 뒷받침하는 대중기구로서 역할하고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와는 달리 민주노총이 지금
행하고 있는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수행해 나아간다면, 그런
가운데 조직되는 새로운 진보정당은 기껏해야 민주노조 외부의
개량주의적-의회주의적 정치세력과 민주노조 내부의 관료주의적
상층간부층간의 강고한 동맹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위에서 제기한 문제와는 별개로, 민주노총과 같은 대중조직이
정치조직을 건설하는 주체로 직접 나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대중조직과
정치조직이란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서로
구분되는 고유의 과제를 지니고 있는 바, 정치조직의 건설은
노조간부가 아니라 정치조직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어야 한다. 둘째로 그간의
노동운동의 역사가 보여주다시피 노동운동 내부에는 항상
‘개량적 흐름’과 ‘변혁적 흐름’이 존재해 왔는데,
정치조직은 이 양자의 흐름을 명백히 구분하는 선상에서
조직되어야 하는 반면 대중조직은 양 흐름을 노동자들이 직면한
당면 과제의 해결을 위한 투쟁 속으로 통합해 내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이와는 달리 대중조직이 특정의 정치세력을
일방적으로 편들고 나온다면 이는 결국 대중조직의 분열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과 같은 대중조직이 수행해야 할 바람직한
정치적 역할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한 대정부투쟁 내지 정치적 대중투쟁을 조직해
대중정치, 운동정치를 활성화시켜 나가는 것이 대중조직이
책임져야 할 제1의 정치적 임무라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와는 달리 대중조직=경제투쟁, 정치조직=정치투쟁이라는
식으로 투쟁의 주체와 과제를 분리하는 것은 대중조직과
정치조직 모두의 운동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다음으로 대중조직은 대중들의 정치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교육을 항상적으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합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정치조직의 성원이 될 것인가 등은 조직적
결의에 의해 강제해서는 안되고 조합원 자신의 자유로운
자기결정에 내맡겨야 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은 이미 중대한
잘못을 범해 왔고, 그 잘못을 교정하려는 움직임 역시 아직
본격적으로 나타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은 오늘날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에 노동자계급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에 밀려 대중적으로 인지되지 못하고 있고, 그 잘못이
민주노동당 건설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민주노총의 잘한 점으로 칭찬받고 있기까지도 하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진전을 위해 민주노총은 자신의
정치노선을 지금이라도 교정해야 할 것이다. 총선이 다가오는
조건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문제가 의회진출의 문제로
왜소화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정치노선의 교정은
민주노총에게 매우 시급한 당면과제로 되고 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