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권(단체행동권)의 확립을 위한 문제들
- 민주노동운동의 전략적인 과제인 파업권 -
1. 파업권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노총의 파업관계자들이 구속․수배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죽어 가는 기형적 천민자본주의인 재벌체제를, 생명을 다해 가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인 신자유주의에 발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IMF 구제금융을 도입하여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철저한 시장원리에 선 체제로 바꿔 나가고 있다. 실패한 재벌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청산당하고 축적에 성공한 재벌은 거대한 세계자본인 다국적 자본으로 자본축적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것은 일정한 성공을 거두고 있기도 하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한국 자본주의의 환란이라는 톱니바퀴에 물려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다. 한국 노동자계급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이라는 두 노동조합을 통해 대량해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왔다. 또한 양대 노총은 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에서 탈퇴하고,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조합 중심으로 파업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파업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게다가 공권력은 파업을 유도하여 지도부를 체포함으로써 파업을 파괴하는 악랄한 방법까지 동원하였다.
한국 노동운동은 일제 강점기인 1890년대 말, 각각 2,000명의 광산노동자, 경부선철도부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였지만 일본제국주의는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였다. 그후 1929년의 원산총파업, 1946년의 9. 23 총파업, 기타 무수한 파업들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또는 회유, 매수로 파괴되었다.
이렇게 한국에 파업권은 그 법리적 기초와 사회적 규범으로서 시인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중, 장기적인 과제는 이 파업권의 확립에 있다. 파업권의 확립 없이는 사회정의로서의 자유권도 없고 노자간의 대등한 입장으로서의 평등권도 없다. 그러나 파업권은 자본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지도 않고 노자간에서 중립을 표방하는 정부에 의해 주어지지도 않는다. 오직 노동자의 힘으로서 전취 할 수밖에 없는 권리이다.
민주노총은 1996년 12월 26일의 한국노동운동사상 두 번째인 전국 총파업을 구조조정을 위한 총자본의 정지작업인 정리해고제의 도입을 위한 노동법개악 반대를 내걸며 성공적으로 감행했다. 그렇지만 총자본과 정치적으로 협상하고 법제화할 수 있는 노동자 정치세력의 부재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총자본은 약 23일간 전 산업 ․전 지역을 망라한 연인원 약 30만의, 더구나 민중들과 특히 종교계의 지지를 얻은 위력적인 총파업을 파괴하지 못하였다. 공권력을 투입하여 파업지도부를 체포하고 군중들의 집회를 해산시키는 등의 물리적인 힘으로도 파업을 파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는 한국 노동자계급이 처음으로 파업을 통해 파업권을 실질적으로 전취한 경험이었다.
노사정위원회(사회적 합의기구)는 파업권의 담보를 예정하고 있는 정부의 들러리 기구이다
위기에 처한 총자본(자본+정부)은 한국판 코포라티즘(corporatism)인 사회적 협의기구로서 노사정위를 만들어 신자유주의를 위한 구조개혁에 노동자를 동참시켜 모든 고통을 노동자에게 전담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계급적 입장에서 섬멸적인 노동조합운동을 표방했던 민주노총까지도 노사정에 참여하여 일방적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제에 조인하는 치명적인 과오를 범했다. 경험이 일천하고 민주노총 창립 1기 집행부에서 2기 집행부로 이행하는 과도기이며, 조합의 운동노선이 정립되지 못하고, 조직력이 집중되지 않았던 시기라는 특수한 사정이 그러한 과오를 낳게 한 배경이겠지만, 민주노총으로서는 일대 시련기였고 앞으로 다시 범해서는 안 될 치욕적인 경험이었다.
우선 노사정위가 선진 자본주의국가와 같이 노동자의 당(주로 사회민주당)이 집권하고 있거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조건하에서 자본과 정부, 노동자간의 3자 합의라는 것은 총자본의 일방적인 의지를 관철하는 장에 불과하며, 노동조합은 총자본의 들러리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코사투(COSATU)와 같이 노동조합이 국가체제의 정립과 정부정책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조합과, 한국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을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국의 사회적 조합주의자들은 남아공의 코사투가 남아공의 자본가, 정부, 노동조합의 협의기구인 노동시장위원회(LMC)의 참가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코사투가 참여하고 있는 협의 내지 동맹기구는 COSATU 집권당인 ANC와 SACP남아공공산당)의 3자 동맹이 추진하는 전국경제발전노동위원회(NEDLAC)이다. 이를 통해 코사투는 남아공에 그들 나름대로의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것이지 노사정의 협의기구에 들어가 파업권을 담보로 해서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고 있지는 않다.
자본, 정부, 노동의 3자협의기구인 노사정위원는 다른 필요조건이 충족된다 하더라도 노동조합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기인 파업의 권리를 포기하게 된다는 데 중대한 전제와 규제를 내포하고 있다. 1998년 민주노총 비대위의 6. 10 파업 결의의 불발은 노사정위의 타협을 담보로 한 직권조인의 연장임을 인식해야 한다.
상업적(경제적) 정치파업은 합헌적이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다
민주노총 1기 직무대행기구는 노사정위에서 총자본에게 자본의 일방적 구조조정을 위한 정리해고제를 직권조인하였으나 대의원대회의 인준을 얻는 데에 실패하고 불신임 당했다. 뒤를 이은 비상대책위도 정리해고 반대를 위한 대의원대회의 결의사항인 총파업을 묵살해 버렸다. 그래서 새로 선출된 제2기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리해고 반대에서 자본의 일방적 구조조정 반대, 나아가 신자유주의와의 전면적 투쟁을 전개할 국면을 맞게 되었다. 노동자 없는 국민의 정부의 ‘어르고 뺨치는’ 음흉한 노동조합에 대한 정책은 민주노총의 모든 신자유주의, 일방적 구조조정, 정리해고 및 여기서 파생하는 파업을 위시한 모든 투쟁을 불법화해 공권력(병력)을 동원하여 말살하려 하였다.
1999년의 민주노총의 4, 5, 6월 투쟁이 계획되고 전개되기 전에 참모격인 사무총장 고영주가 구속되고 야전사령관격인 금속산업연맹의 단병호 위원장이 구속되었다. 단병호 금속연맹 위원장의 판결문에서 밝힌 유죄 판결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노조의 상급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정치적 목적으로 IMF 재협상, 정경유착 근절, 재벌해체 등 대정부 요구사항을 내걸고 이를 관철할 목적으로 산하노조를 동원해 총파업에 들어간 것은 법이 인정하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볼 수 없다. 따라서 파업이 사업장이나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을 통해 파업의 책임을 지게 하는 뜻을 분명히 하는 것이 옳다.” 정치적 목적을 전개하는 정치파업의 불법을 표시하고 “그러나 단위노조들이 가능하면 적법한 절차를 밟아 파업을 하려고 한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라는 이유로 1심 선고 내용은 무겁다고 보여져 감면해서 책임을 묻기로 한다“로 고등법원서 2년 6월의 형이 확정된 것이다.
한마디로 IMF 재협상, 정경유착근절, 재벌해체 등 정치적 목적으로 한 파업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 판례는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를 말살하려는 전근대적이고 위헌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파업권)은 유보상황이 없는 자유권1)으로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에서 “금속연맹 파업투쟁에 대한 민변 노동위의 입장”이라는 성명에서 “민주노총 산하 최대연맹인 금속연맹은 민주노총의 4대 요구를 포함하고 있는 7대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5월 12일부터의 파업투쟁과 5월 13일에서 15일까지의 상경투쟁에 돌입하였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서울지하철노조를 포함한 공공연맹이 민주노총 차원의 1차 총력투쟁을 한 바 있는데 정부는 불법파업이라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웠다. 우리는 다시 5월의 금속연맹 중심의 투쟁에 대해서 불법파업을 엄단하겠다는 정부의 선전공세에 직면하여 노동사건을 취급한 경험을 토대로 법률실무가로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다.” 이 성명은 민주노총의 4, 5월 파업에 대한 견해임과 동시에 단병호의 판결문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파업의 사유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는 정치파업에 대한 민주적이고 법적인 양심을 가진 법조인들의 견해이다.
지난 10월 8일 춘천지법 형사 1부는 만도기계 파업사건 항소심에서 “정리해고에 관한 노사분쟁은 노조법상의 쟁의행위 대상이 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다음과 같은 입장(민변)이라 함은,
1. 금속연맹의 7대 요구 쟁취를 위한 5월 12일부터의 파업투쟁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산업적 정치파업이므로 불법파업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 중략 … 헌법의 단체행동권에는 산업적 정치파업에 포함되고 있다. 산업적 정치파업이란 최저 임금법의 제정, 노동관계법령의 개폐 등 법개정문제, 정부의 노동관련 정책, 산업정책 등 노동관련 정책 문제와 같이 노동자의 생활과 지위 등에 직접 관계되는 사항을 쟁점으로 하는 개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정부를 상대로 하는 쟁의행위를 말한다. 연맹의 5.12 총파업은 연맹의 7대 요구(법정노동시간 단축, 사회복지제도의 확충,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법의 제정, 산별교섭구조의 확립, 정리해고제의 철폐, 실업자의 초기 기업단위노조 가입보장 등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개선 등)를 걸고 쟁의행위를 하는 것이므로 산업적(경제적) 정치파업에 해당한다. 연맹의 5.12 총파업은 산업적 정치파업이므로 헌법상 단체행동권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결코 불법파업이 될 수 없다 … 중략 …
현재 헌법상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고 있는 법률은 노동법이다. 그런데 이 법률에서 산업적 정치파업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노동법상의 쟁의행위가 아니고 따라서 산업적 정치파업은 제한을 받지 않고 행사할 수 있다.
2. 상급단체(연맹 또는 총연맹)의 쟁의행위를 무조건 불법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
3.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은 쟁의행위의 대상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 노조법의 노동쟁의를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 간에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제 2조, 제 5조). 이 규정을 근거로 … 중략 …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사항(노동조합활동에 관한 사항 등) 권리 분쟁에 관한 사항(체불임금, 해고자문제 등) … 중략 … 사용자와 노동부가 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노동쟁의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하여 쟁의행위의 대상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
4. 조정절차가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5.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과도한 손해배상청구를 중지해야 한다. 현재 노조법상 쟁의행위 대상의 제한성과 조정 절차에 관한 규정으로 인하여 쟁의행위가 심각하게 제한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쟁의행위가 노조법을 위반한 파업이 되는데 이 경우에 사용자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고소 고발하고 검찰은 업무방해죄 등으로 기소하고 법원은 업무방해죄 등으로 판결하여 처벌한다. … 중략 … 이와 함께 노동조합과 간부조합원에 대해서 과도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이 노동조합활동의 탄압에 이용되고 있다.
파업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지난 4월 13일 국제노동기구(이하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맥스 루트 위원장이과 ILO 사무국 소속 결사의 자유과장인 체르니공, 라시케시 법률관이 동행했다. 대표단은 지난해 11월의 ILO 권고 이후 한국 정부가 취한 조치들과 진전상황을 파악하고 미해결문제들에 협의를 목적으로 방한했다. 그 때 서울구치소에서 금속연맹 단병호 전 위원장을 면회하고 나서 <매일노동뉴스> 편집부장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전략 … 그(단병호)에 대한 실형 선고가 정당한지 여부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고 감옥에 구금되어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ILO의 권고를 상기시키고 싶다. … 중략 … 또한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종종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고 감옥에 구금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우리는 합법적인 파업이든 법률에 위배된 파업이든 그것이 형사소추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중략 …
문> “지하철노조가 19일(4월)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다수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감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답> 검찰이 이미 구속 수사를 경고한 것으로 안다. 대표단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면서, 내일(17일) 법무부장관을 만나는 자리에서 깊은 우려를 전달하고 파업이 형사상 범죄수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를 물을 생각이다.”
ILO 제 105호 조약에는 “파업에 참가한 것을 이유로 한 처벌”에 관한 보호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정부는 합법적인 파업은 보호하고 불법적인 파업은 엄단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금년 4, 5월 총력투쟁의 방향을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바꿔 내는 대정부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기조로 민주노총은 4대요구 즉, 1. 민중생존권 박탈하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중단, 1. 노동시간 단축으로 고용안정 보장, 1. 실질적 사회안정망 구축으로 실업자, 민중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1. 연봉제, 퇴직금 개악, 임금삭감, 단협해지를 즉각 중단하고 산별교섭 보장 등을 관철하기 위하여 이른바 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에 들어갔다. 4월 19일 지하철 노조의 파업에서부터 5월 12일 금속, 병원, 사무금융, 대학, 민주택시연맹 등의 파업에서 정부는 현장침탈, 체포, 수배를 자행하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말끝마다 “합법적인 파업은 보호하고 불법적인 파업은 엄단한다”라고 대국민 여론 조작용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민주노총은 조폐공사노조 파업으로 740명이 징계되고 3억원의 손해배상과 간부들이 체포, 구금되었고, 서울지하철은 4,051명의 징계와 39억 4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왔다. 민주노총 산하에서 36곳의 불법, 부당노동행위 사업장이 속출하였다. 구속, 수배자는 7월 초 현재 총 71명, 6월 말 현재 수배자는 총 38명이다. 1998년의 총 구속자는 218명이고 수배자는 270명에 이르렀다. 김영삼 정부 전시기를 통하여 구속자 총수가 46명인데 비하면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부가 IMF 구제금융 하의 경제적 위기를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탄압으로 극복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대중 정부가 합법이라고 한 민주노총 산하 파업(단체행동)은 단 한 건도 없다. 정부는 민주노총에 대한 섬멸적인 소탕전을 벌이면서 노사정위원회라는 썩은 당근을 먹이려 하고 있다.
대통령은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상금 10만불)을 탔고, 전국금속산업연맹 위원장은 등댓불상(상금 없음)을 탄다
지난 5월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방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한국노총 위원장을 청와대에서 만나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의 수배해제에 대해 선처할 것을 약속했다. 대통령 미국 방문시 한국의 노동자가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을 위한 해고사태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의 친구(자본가)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구속 수배자를 풀어 주겠다는 묵계가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귀국 후 이 약속을 저버렸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노동자 탄압을 완곡하게 지지하고 한국 노동자들의 파업을 반대하고 있다.
주한 미상공회의소의 1998년 3월 18일자 “98년도 한․미 무역 투자 이슈” 보고서에 의하면 … 전략 … 노동, 특히 고용정책과 관련해서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정부는 통상임금, 평균임금, 기본급 등 혼란스러운 급여체제를 아주 단순하게 해야 한다. 회사는 파업중인 근로자를 대신해 임시직을 고용하거나 새 직원으로 직원을 대치할 수 있어야 한다. 노조의 집단행동은 회사 밖에서만 벌이도록 해야 한다. 근로자들은 파업기간 임금 보상을 위해 파업을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
다른 사례로는, 4.19 서울지하철노조 파업 때 국내에 진출한 기업들 또 투자를 고려 중인 해외업체들은 “파업을 통해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어느 쪽도 승자가 될 수 없다”면서 “경제회복의 시발점에 서 있는 한국의 파업은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는가 하면 주한 한미상공회의소 소장인 제프리 존스는 “미국 측의 투자보루로 한국이 잃은 금전적 손해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라고 위협하는 등 우리 정부에 대해서 파업을 중단시키도록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방미중인 김대중 대통령에게 미국의 ꡔ비지니스 위크ꡕ지에 의해 아시아의 스타 50인 중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어 자유의 메달을 수상(授賞)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수상(受賞)한 이유는 한국의 노동자들의 파업을 탄압하고 파업관계자를 구속․수배한 공로를 치하하여 준 것이 아니라 “투옥과 암살 기도를 극복하고 한국이 민주주의와 인권, 아시아의 개방경제를 위해 생애를 헌신한 공”이라고 거짓말하고 있다.
김대중은 그의 친구들인 미국의 자본가들이 주는 상을 받았고, 금속연맹의 문성현 위원장은 우리들의 친구들인 파키스탄 노동자들로부터 등대불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5월 12일 일방적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반대한 금속산업연맹은 한강 둔치에 전국에서 ‘기름밥 먹는’ 노동자 8,000여명을 동원하여 진을 쳤다. 다음날은 마로니에공원에서 금속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약 1만 명의 집회에서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방불케 한 장관이었는데 텔레비전에 나오지도 않았다”2)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던 위원장을 김대중정부는 구속 해 버렸다.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다. 국내에서는 물론 외국에서도 항의와 집회가 열렸으나 파키스탄 금속연맹은 항의차원에서 단식에 돌입했으며, 김대중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8월 1일까지 문성현 위원장이 석방되지 않으면 이슬라마바트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농성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통고하고 문성현 위원장에게 횃불상(Beacon of rite)을 2000년 1월 1일 수여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은 세계적으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의 편을 나누어 지지와 반대의 양측면을 이루고 있다. 파업은 계급적 입장에 따라 그 찬반이 양립되는데 150년이라는 역사를 갖고 있는 세계노동운동은 파업을 축으로 하여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대립, 모순과 통일을 이루고 있었다.
정부는 파업(단체행동)하는 노동조합 관계자를 체포, 구속, 수배하여 헌법과 노동관계법령을 유린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29조에는 ①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보장된다. ②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로 인정된 자를 제외하고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또 단체행동권을 가질 수 없다. ③ 공무원과 국가 지방자치단체, 국영기업체, 공익사업체 또는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 행동권은 법률에 정하는 바에 의해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파업(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에는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에서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었을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제4조 [정당행위] 형법 제20조의 규정은 노동조합이 단체교섭, 쟁의행위, 기타의 쟁의행위로서 제 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 적용된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나 파괴행위는 정당한 행위로 해석되어서는 아니 된다. 형법 제20조는 다음과 같다. 형법 제20조 [정당행위]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또 “쟁의행위”라 함은 동법 제2조 6항에 규정하기를 ‘파업이란 태업, 직장폐쇄, 기타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정부는 IMF 구제금융 이후 노동자들의 생존권 차원의 파업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전개한 바와 같이, 1998년 한 해의 총 구속자는 218명이며 총 수배자는 270명에 이른다. 그 중요내용을 보면, 민주노총의 핵심간부인 사무총장 구속, 유덕상 수석부위원장 수배, 4.19 지하철노조 파업시 위원장 겸 공공연맹 공동의장 석치순, 한국통신노동조합 위원장 겸 역시 공공연맹 공동의장이었던 김호선, 공익노련 위원장 겸 공공연맹 위원장이었던 양경규 등이 수배되었으며, 위원장급에서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이상춘, KBS, MBC 노동조합위원장 구속, 파업 유도하여 조폐공사 위원장 구속이라는 전례를 남겼다.
이런 세계에 유례가 없는 탄압은 민주노총과 노동자를 자본과 대등한 입장에서 보지 않고 전근대적인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비민주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정책이다. 이렇게 하면서 무슨 노사간의 협조가 있고 노사정위를 통한 노동자의 사회적 참여와 산업평화가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노총 계열의 노동조합의 파업(단체행동)은 공권력을 통한 사법적 처리를 피했다. 이것은 국가 법집행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법적용의형평의원칙에위배된다.그리고이것은두개의노총(national-center)을 조작, 조정하여 노노간의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는 분리주의( Dualism)의 극단적인 표현이다. 1946년 3월 10일 결성된 대한노총은 1945년 11월 7일에 창설된 자주 민주적이고 전투적인 전평을 물리적 힘으로 말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제, 어용의 노동조합이다. 대한노총-한국노련-한국노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관제, 어용의 역사는 전투적이고 계급적이고 대중적인 노동운동의 탄압말살정책의 역사이다. 자본과 정부는 그 정책이 실패하면 다음 정책으로 어용화하려 했고 그것마저도 실패하면 Dualism 정책을 사용해 왔다. 바로 오늘의 총자본의 노동조합의 분별정책이 IMF 구조조정 정책하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파업하는 민주노총 간부들의 구속, 수배는 노사정위라는 포섭정책과 연관지으면서 한국의 민주노동조합운동을 말살하려는 전근대적인 독재권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반노동자적 분열정책이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진상규명 국회청문회에서 일부 밝혀진 바와 같이 한국 정부의 노동정책의 중요한 사안은 노동부에서 결정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검공안부가 중심이 되어 관계부처에서 결정권을 행사해 왔다. 파업(단체행동)은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경찰의 불법적 사법행사로서의사찰업무에서,1970년대노동대책회의때는중앙정보부가1980년대에 관계기관대책회의 때는안전기획부가,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안기부와 국정원이 장악하여 물리적인 탄압,공작 등을 행사하였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비민주적인 정보, 경찰국가에 머물고 있다.
2. 파업권(단체행동권)은 법리적 기초 위에서 사회적 규범에 의해 합헌적인 권리로서 시인되고 있다3)
파업권과 프랑스 인권선언
파업의 역사는 자본제적 생산이 시작되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처음에는 불법으로 간주되어 처벌당했다. 그러나 세계노동자들의 오래된 투쟁과 사회진보에 따라 파업은 사회규범상으로나 법제적으로 합법화되어 파업권(단체행동권)이 확립되었다.
동맹파업 혹은 약해서 파업이라고 함은, 노동자들이 요구관철을 위해 노동조합 등의 단결된 의사결정에 따라 집단적으로 노무의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그 목적상 경제파업, 정치파업, 연대파업, 동정파업 등이고, 규모로 봐서는 파업(동맹), 총파업(전면파업), 부분파업 등으로 나뉘고, 형태별로는 무기한파업, 시한부파업, 예고없이 단행하는 기습파업, 중점파업(중점이 임의 산별, 업종이 되든지, 사업장의 어느 특정 부서 또는 라인이 되는 파업), 동시다발형 파업 등과 잔업거부, 휴가전술, 시간내 직장집회 등의 파업에 준하는 준법투쟁이 있다. 그러나 이 준법투쟁은 노동법상의 쟁의행위는 될 수 없다. “① 개인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행위는 집단으로 행할지라도 위법이 되지 않으며, ② 어떠한 법률이나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도 이를 지키는 것을 제한할 수 없고, ③ 어느 누구도 위법을 강요할 수 없으며, 이에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법의 기본원칙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쟁의행위의 부정설이 타당하다.”
파업(노동쟁의)은 계급투쟁으로서 나타나며 이 경우에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체제에서 근본적으로 법률이 보호하는 것은 사유재산권의 안전하고 확고함과 계약자유의 원칙이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 당시의 인권선언의 제1조는 “사람은 출생과 생존에 있어서 자유 및 평등의 권리를 갖는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선언의 말미, 제 17조에 “소유권은 불가침이고 또한 신성한 권리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자유 및 평등의 원리’는 가진 자는 날 때부터 자유, 평등하고, 게다가 그가 가진 소유권은 신성하기 때문에 그 가진 자만이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 그러면, 거꾸로 못 가진 자는 날 때부터 부자유, 불평등하기 때문에 부자유, 불평등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자유, 평등을 추론하면 소유권의 불가침에 대해 적대하는 행동은 어떤 형식이든 간에 이 인권선언에 대한 반역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같은 산업 또는 전 산업의 노동자가 자본가(소유권자)에 대항하기 위해 단결해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또는 노동조건의 유지와 개선을 위해 동맹해서 파업을 하는 것은 인권선언에 대한 중대한 반역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프랑스혁명 초기 프랑스의 자본가는 노동자의 단결과 파업(동맹파업)을 엄중하게 금지했다. 즉 1791년에의 법률은 “동일직업, 기술 또는 수공업을 경영하는 시민들이 동맹해서 그 산업 또는 노동에 종사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위헌이며 자유 및 인권선언에 대한 가해자로 간주”되었다.
위와 같은 단결과 파업을 금지한 법률이 있는 나라는 자본주의 초기 영국(1799년의 단결금지법), 미국(1914년 파업금지명령을 금지한 크레이드법 이전의 파업금지명령), 독일(1878~90년의 사회주의 탄압법), 일본(처음은 형법, 1925년부터 치안유지법), 한국(1953년에 노동법령이 제정되기 전의 형법, 보안법 등)이 있다.
파업권은 법리론적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로마시대에 지배계급인 카트리키와 피지배계급인 프레브스와의 오랜 기간의 싸움으로 양 계급이 공도(共倒)한 역사가 있었다. 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본주의제도 하에서의 계급투쟁은 합리화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것을 경제에서 말하면 생산은 자본과 노동의 결합에서 이루어지므로, 자본가와 노동자가 단체적으로 거래를 하게 되고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그 노동력을 통제, 독점하고 그 노동력의 전체를 가지고 사용자와 단체거래를 하는 것도 사회의 규범에 따라 확정,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단체적 거래가 정당할 것 같으면 그 거래의 연장선인 투쟁도 또한 정당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것 같으면 단체적 거래라는 의미로서 파업이라는 투쟁도 법률상 정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파업은 이 사회적 규범에 따라 당연하게 권리로서 수립된 것이다.
상기한 이론을 요약하면, 일방에서 자본가를 위해서는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자유가 확립․보장되어 있으므로 타방의 가진 것 없는 노동자를 위해서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거래에 대한 권리는 그 논리상 당연하며 파업은 필연적 귀결이다. 그러므로 파업권도 역시 법률상의 권리가 된다. 실로 파업은 현재의 법률조직 하에서 하나의 기본권일 수밖에 없다.
파업권은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리이며 자유권이다
파업권은 하나의 기본권임과 동시에 헌법상의 자유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법률상의 성질은 아래와 같다.
“첫째, 파업권은 주관적인 권리이며 법률규정에 따른 반사적 이익4)에 그치지 않는다. 원래 자유권을 보장하는 규정은 행정권과 입법권의 권한을 정하는 객관적 규정이므로 적어도 이 이익이 침해되면 위법이다. 따라서 반사적 이익과 구별해서 권리라고 해석해야 된다.
둘째, 파업권은 자유권이므로 국가에 대한 불행위청구권이다. 그러므로 일정한 형식 즉, 협의의 의미로서의 법률에 의하지 않으면 어떠한 행정처분으로서도 파업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없다. 따라서 일정한 형식에 의하지 않고 통상의 훈령, 경찰명령, 경찰처분으로서도 파업을 금지, 제한하는 것은 명백하게 위법이다.
셋째, 파업권은 단체적 자유권이다. 이 점에서 종래의 자유권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종래의 자유권은 원칙적으로 개인인 국민이 국가에 대해서 가지는 개인적 공권이라는 데 특색이 있다. 물론 종래에도 단결과 결사의 자유권이 예외로서 사회․법적 권리였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날 파업권은 이 단결권, 결사권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며, 논리적으로 보면 단결권, 결사권이 예외적으로 가지는 합리성이 점차 발전되고, 확대되어 비로소 새로운 단체적 자유권을 성립시켰다.
넷째, 파업은 사회법상의 권리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파업권은 단체적 공권이다. 그러나 파업권의 내용이 일정한 불행위를 국가에 대해서 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그러나 노동자는 그 노동력을 통제, 결합해서 사용주와 단체적 협상을 통해 국가와는 분리된 새로운 법의 근거를 자치적으로 만드는 효력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의미로서는 파업권은 종래의 전통적 의미의 공권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학자들은 이것을 사회법상의 권능이라고 한다.
현재의 법제를 기초로 해서 봐도 파업 그 자체에는 불법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합법이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오늘날 파업이란 임금노동자의 조직적 결합을 이룬 일단이 사용자에 대해서 노동조건의 개선 또는 자기의 경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잠정적으로 업무를 휴지해서 이것으로 가하는 강제의 한 방법이다.
첫째, 임금노동자가 노동조건의 유지 및 개선을 위해 통일된 조직적 결합을 이루어 일단이 되어 대중의 힘에 의해 사용자에게 대항하는 것은 각국 법률이 소극적으로 “불법이 아니다”라고 할뿐만 아니라 더욱 나아가 적극적으로 “합법적”이라고 한 점에 있다.
영국에서는 1875년의 법률, 프랑스에서는 1864년, 독일에서는 1884년 법률 등 이미 백여년 전에 파업의 합법성을 법제화하고 있다.
둘째, 조직적 결합은 계속적 결합과 일시적 단결로 나눌 수 있다. 연합(association)과 상관성(correlation)에 해당된다. 동맹파업이 노동조합에 의해서 행해질 때에는 그 계속적 결합에 의한 것이나 그렇지 않을 때는 일시적 결합이다. 하여튼, 결합이 합법이라 하더라도 파업을 위해 하는 결합이 계속적이건 일시적이건 합법적이라고 측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파업의 합법성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결합의 목적”을 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극적 파업(동맹파업)은 정치적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적극적으로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게 되며, 정치적 목적만을 위한 파업이 있을 수 있다. 전술한 산업적 정치파업 같은 것도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또한 근래에 와서는 national-center 규모의 총파업 및 산업별 파업은 경제적 목적만으로 전개될 수 없다. 파업이 정치적 목적을 가지지 않은 일반적인 예로서 어느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계약조건의 변경, 즉 단체협약의 변경을 위한 파업 같은 데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다른 기업에서 파업이 일어났을 때 그 파업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간접적으로 원조하기 위해서 동일기업의 다른 노동자 또는 다른 기업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전개하는 동정파업 역시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와 동시에 어느 한 기업의 노동자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의 노동자가 연합해서 전개하는 총파업의 경우에도 파업의 목적이 곧 사회조직의 정치적 변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파업이 애초의 목적은 오로지 또는 주로 경제적 지위향상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파업은 형법상의 범죄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파업은 그 자체로서 많은 노동자들이 무리를 이룸으로써 사용자에 대해 폭행, 공공연한 비방과 명예훼손, 모욕, 협박, 업무방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업무방해와 위협이다. 파업이 업무방해의 목적이 있는가 검토하건대, 파업은 노동자가 그 업무를 휴지하므로써 그 결과 사용자의 업무가 방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파업하는 노동자로서는 파업으로써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코 파업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사용자에 대해서 의구심을 주게 할 뜻이 없다. 그러므로 협박죄는 도저히 성립되지 않는다. 상기한 어느 것이나 범죄동기의 주관적 요건에 대해서 업무방해 및 협박의 범죄가 되지 않는다.
셋째, 동기 및 목적이 상술한 바와 같이 합법이라 하더라도 목적과 수단은 반드시 유기적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목적이 합법이라도 수단이 불법이면 그 행위는 불법이며 목적이 수단을 신성하게 할 수 없다. 이것은 목적을 떠나 수단의 선악을 논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파업을 검토할 때 그 수단이 과연 불법인가 아닌가를 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파업시 사용되는 수단은 노동자가 그 파업을 휴지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주에 대해서 하나의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업 그 자체는 사용주에 대해서 많은 대중이 집합하여 폭행, 협박 또는 소요를 일으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어느 개인으로서도 또는 파업파괴자에 대한 폭행, 협박, 명예훼손, 모욕, 업무방해를 이루는 행위가 아니다. 또 그 정도가 낮은 것에는 사용주 또는 파업파괴자(구사대와 같은 사용자를 위한 조직적인 행동을 하는 자)에 대해서 강변, 위협, 협박하거나 신변에 접근하거나 뒤따르는 일은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일이다.
이 수단으로서의 합법성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와 협박의 해석의 차이가 있다.
첫째, 자유경쟁의 원리의 자본주의 경제조직 하에서 노동력의 거래의 상대방인 노동자가 사용자에 대항하기 위해서 임금, 기타 노동조건의 유지 또는 개선을 하기 위해서 밀고 당기고 하는 흥정을 하더라도 민사상의 손해배상의 책임이 발생하는가 여부는 결코 형법상 문죄해야 하는 불법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둘째, 파업시 대중의 결속은 사용자에게는 위력이다. 그러나 단체적 교섭 자체가 이미 위력이며, 공동의 업무의 증진에 이르게 되면 특히 더욱 위력이 되는 것이 아니고, 업무휴지 그 자체가 위력이며, 위력을 가지고 휴지하므로 해서 업무를 방해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파업은 명백하게 수단으로서 업무방해죄를 성립시키는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이 파업 그 자체는 어떻게든 사용자에 대해서 ‘해악의 통고’를 하는 게 아니고 그 통고는 오직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할뿐이다. 그러므로 과연 파업 그 자체는 결코 어떠한 의미에서도 남에게 위해, 손해, 고통 따위를 주는 난폭한 폭력행위 즉 바이올런스(violence)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형법상 파업 그 자체는 죄가 될 수 없다. 물론, 파업자가 파업시 폭행, 협박, 비방, 명예훼손을 하면 바이올런스가 되므로 범죄가 구성된다. 폭행, 협박, 명예훼손, 비방까지를 불법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폭행, 협박, 명예훼손, 비방이 특수한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누누히 말해 온 것과 같이 파업 그 자체는 한 점의 불법도 없다. 파업과 폭행, 협박, 비방, 명예훼손이 동반한다고 하더라도 형법으로 형의 경감으로서 처벌하면 되는 것이지 달리 특별한 법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파업을 감행하기 위해 파업하려는 노동자가 개정되기 전의 ‘쟁의조정법’의 3자개입금지 조항 같은 것을 만들어 다른 노동자를 ‘선전’, ‘선동’하는 행위를 벌하는 것은 부당하다.
원래 파업은 그 개념의 본질에서 다수노동자의 통일되고 협동된 결속행동을 내포하고 있다. 파업의 본질상 다수노동자의 협동된 결속의 행동을 포함하고 있는 이상 다수의 동지를 얻지 못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그럴 것 같으면 이성에 호소하고(선전), 혹은 감정에 호소해서(선동)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참가자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노동자의 사용자에 대한 요구와 희망은 개개의 노동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다. 그리고 이 요구와 희망은 동일하므로 자연스럽게 단체적 형식을 취하게 된다. 교섭을 성취하지 않을 경우 당연히 파업(단체행동)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 단체적 형식이 한 사람이라도 빠짐없이 완전하게 수행되기 위해서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의 동지들을 권유하고 설득하고 독려하는 것은 또한 당연하다.
사용자의 사업이 공공적 성질을 띠었다고 하더라도 구별없이 동일하다. 왜냐하면 파업을 합법이라고 보는 근거가 노동자가 단체거래를 가능케 하기 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사업, 교통, 통신, 가스, 전력, 수도 등의 공익사업에는 그의 공공사업으로서의 공공성이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 한다. 그러나 이 공공사업이 영리사업인 경우에는 그 종업원은 사용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순 영리사업노동자와 하등의 구별이 없다. 그런데도 그 사업이 공익사업의 성질이 있다고 해서 그 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대해서 바로 파업을 금지한다든가 제한해서 그들을 어떠한 처우에도 굴종하라고 하는 것은 파업권(단체행동권)의 본질을 무시한 위헌, 불법행위이다. 만약 이렇게 굴종을 강요할 것 같으면 해당사업의 이윤을 보는 자는 공익의 이름으로 부당하게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공공사업의 형태로 착취가 계속되는 한 그 착취가 심하면 심할수록 파업의 합법성은 강화되어야 한다. 이에 반해서 해당사업의 영리적 색채가 약하면 약할수록 착취가 적어지면 적을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파업권의 합리성이 약해질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해당사업의 경영자인 국가, 공공단체 또는 개인이 그 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대해서 철저한 처우개선을 시행함으로써만 파업의 합리성을 약하게 한다. 당연히 처우개선에 대해서 파업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노동자의 파업권의 정당성과 합리성은 더욱 높아져 갈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파업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권리이다
파업권(단체행동권)은 공익․공공사업에 있어서는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의 유지와 향상을 위해서만 이루어질 수 없다. 공공사업과 공익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된 공공사업의 수익성에 책임과 의무가 있고 또한 공공성이 지켜지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공공사업과 공익사업의 경영에서 노동자가 배제되어 경영을 담당하는 자들이 공공사업의 공익성을 훼손하거나 책임을 유기할 때에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은 파업권(단체행동권)의 행사가 보장되어야 한다.
또 국가행정과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직원들도 일차적으로 그들의 권리와 이익의 유지와 향상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국가, 지방행정과 교육행정 정책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파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과거 독재권력 하에서 불법, 부정, 부패, 전횡 등으로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억울함과 고통을 당하였는가를 상기해 보라. 심지어 국가의 이름으로 학살이 자행되곤 했다. 만약, 공무원들의 노동조합이 있었고, 그들이 독재자에 반대하고 파업권이 보장되어 있었다면 많은 민족과 국민의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찌 점령하의 프랑스, 일본점령 하의 중국의 공무원들의 비협력․비타협 즉 파업같은 것은 특수한 예로서만 간주할 것이 아니다. 국가비상시에 공무원들은 국가를 지킬 의무와 함께 파업할 권리까지도 공유해야 한다.
특히 교직원들은 기술전문교육과 함께 이데올로기를 전담하고 있는 노동자다. 교직원노동자들은 마땅히 노동3권 중 파업권을 확립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나간 독재권력 하에서 북진통일이라는 동족상잔의 이데올로기교육 같은 것이 강요될 때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는 힘을 담보하는 것이다. 지금의 단체행동권이 배제되고 또한 단체교섭에서 교육정책과 교육행정의 배제되면서 반합법의 노동조합, 또는 반신불수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삼위일체의 어셈블리(assembly)이다. 물론 지금의 교직원노동조합은 한국 노동운동의 역량의 총력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직원들의 파업권의 확립은 필수불가결한 전략적 목표로 포기해서는 안 될 권리이다.
파업은 민법상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파업은 채무불이행이 아니다)
1906년 영국은 노동쟁의법에서 쟁의에 따른 사법상의 책임을 노동조합에 대해서 면죄하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즉 동법은 노동조합이 행하는 파업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노동조합에 대해서 부담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언명하고, 따라서 파업에서 생겨나는 손해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 행위가 형사상 책임이 있는가 없는가를 불문하고 노동조합에 사법상 배상책임을 면제했다.
이러한 입법이 있고 없고 간에 법리적 이론으로서 파업은 정당한 것이다.
우선 동맹파업권과 개개의 노동계약과의 관계를 생각컨대, 파업은 노동자가 잠정적으로 업무를 휴지해서 가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파업(단체행동)이 업무의 휴지를 의미하는 이상 업무의 휴지는 노동자가 노동계약상 부담하는 채무의 지체 또는 불이행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고용 내지 노동계약은 일반적 채무계약과 달라 채무의 성질이 노무(노동력)이다. 이 특수한 성질에 비추어 가령 노무제공의 일부 불능의 사유가 채무자 자신에 있을 경우에도 그의 과실 때문이 아닐 경우, 또는 불능이 극히 근소한 경우일 것 같으면 노무의 급부는 여전히 전부의 이행이 있다고 간주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과실이 아니고, 혹은 그 자신의 사정에 의해 노무자(노동자)가 비교적 근소한 시일 노무의 제공이 방해받더라도 그 채무의 전부 불이행은 물론 일부 불능도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파업은 노동조합의 결의에 의해 단체적으로 행해지므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도 단체적 결정인 파업에 따라야 하므로 이런 경우의 업무의 휴지는 채무의 불이행이라 볼 수 없다. 또한 고용 내지 노동계약은 계속적 채권계약이 주된 것이므로 이 계약체결에 의해 채권자인 사용자가 채무자인 노무자(노동자)와의 관계에서 계속적인 종합급부관계와 개별적급부관계가 생긴다. 그러므로 계속적 종합급부(계속적 노무제공)는 일시적 개별급부(일시적 노무휴지)와 다르다. 따라서 개별급부의 지체불이행은 반드시 종합급부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시적 노무제공의 휴지는 채무 불이행이 될 수 없다.
상기한 법이론에서도 명백한 바와 같이 파업(단체행동권)에 의한 노무의 일시적 휴지는 채무불이행이 아니므로 노동조합과 노동자는 배상의 책임에서 면죄된다.
절차상의 결여가 불법파업의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절차규정에 위반하면 바로 위법이고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다. 노동조합법 상의 절차규정을 위배했다고 하는 이유로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업무방해죄의 성립을 바로 인정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위헌이다. 절차규정 위배에 대해서는 노조법상 벌칙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처리하면 충분한 것인데, 그것을 이유로 형법상 범죄인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고 파업 그 자체를 불법이라 함은 상식 이하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노조법에는 다른 나라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복잡한 절차가 정해져 있다. 따라서 그 절차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파업(단체행동)을 하기란 그야말로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파업(단체행동)은 그 절차를 위배한 채 행해진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파업(단체행동)이 절차위반을 이유로 정당성이 없다는 판단아래 형법상 범죄로 처벌당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위헌이고 위법이다.
1987년 7. 8. 9월 투쟁 이후 수많은 파업이 있었지만 합법이라고 판정된 파업이 몇 건이나 되겠는가?
파업은 해고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파업은 중대한 사유라는 이유로 사용자는 파업노동자에 대해 즉시 해고를 할 수 있는가? 만약 파업이 해고의 원인이 되고 또한 그 원인을 만든 자에 과실이 있었던 경우 파업노동자는 사용자에 대해서 손해배상의 책임을 져야 하는가? 파업은 그 원인이 공동으로 이루어진 이상 파업 노동자는 그 배상채무에 대해 연계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러나 파업은 단순히 개인의 게으름으로 또는 연속해서 업무를 정지하지 않는 한 의무를 불이행한 것은 아니다. 파업은 사회법상 인정된 권리의 행사로서, 다만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설사 개인의 행위로서는 중대한 사유가 될지는 모르나 단체적으로 사회법상 보장된 권리의 행사로서 이루어졌을 경우는 업무의 휴지가 정당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파업한다는 이유만으로 개개의 노동계약이 단 하루라도 계속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파업은 해고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
파업은 정당한 임금청구권을 상실하지 않는다
‘무노동 무임금’은 부당하고 불법이다
상기한 경우 해고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유가 없는 경우, 파업의 이유만으로 즉시 해고함과 근로계약의 해약은 무효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여전히 계약상의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 고용 및 노동계약은 일반채무계약과 달리 채무의 성질이 노무(노동력)라는 특수성이 있다. 그러면 이 점을 감안해서 판단하면 가령 일부 불능의 사유가 채무자 자신의 사정에 의한 경우일지라도 불능이 극히 근소한 경우일 것 같으면 노무(노동력)에 대한 급부(임금)에 대해서는 전부를 이행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과실이 아니면서 그 자신에 있는 사정에 의해 노무자가 ‘비교적 근소한 시일’ 노무의 급부가 방해(유예)되더라도, 그 채무의 전부불능은 물론 일부불능도 아니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이 사정(파업)에 의해 노무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는 임금청구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
파업시 임금지불은 노동력의 재생산과 노동자의 인간적인 본능인 생존과 생활을 위해서 원천적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자본제적 생산양식에 따른 계약상의 채권, 채무의 차원에서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5)
파업권(단체행동권)의 한계
현재의 경제 내지 법률조직 하에서는 노동쟁의의 발생은 제도 그 자체가 당연하게 이것을 예정하고 있다. 그런데 투쟁은 물리적 힘의 충돌현상이다. 거기서는 힘이 강한자가 반드시 힘이 약한자를 타파한다.
투쟁이 이렇게 힘에 따라 결정되는 이상 그 투쟁의 결말이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소비되는 에네르기의 분량은 쌍방의 힘, 따라서 충돌의 강약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쌍방의 힘이 대등할수록 소모되는 에네르기는 그에 따라서 크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투쟁에 따라 승패를 결정할 때에 쌍방이 모두 매우 피폐해져서 승자도 넘어지는 경우가 생겨 결국은 공도(共倒)로 끝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것을 노동쟁의의 파업에 대해서 말할 때에, 이 파업에 의해 쟁의기간 중에는 임금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 부모처자를 부양하게 될 정신적 부담이 크게 된다. 또 노동조합의 자금은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 손실을 노동자가 입게 되면 또 거기에 응해서 그 이상의 손실을 자본가가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쟁의가 어느 쪽의 승리가 되더라도 승패가 결정되면 양자 사이에는 오랜 불화와 원한이 남는다 이러한 심리적, 경제적 원한과 증오는 기회 있을 때마다 쟁의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렇다면 쟁의의 평정은 일시적 호도에 불과할 뿐이고, 영구한 원한을 형성하는 원인이 된다.
이렇게 고찰하게 되면 소박한 권력에 기초한 투쟁은 많은 불필요한 힘의 낭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계급투쟁은 결코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피할 수 없으면 피할 수 없을 만큼 끝없는 투쟁에 의해 발생되는 쓸데없는 에네르기의 손실은 목적에 대해서는 합목적적이 아니다. 하물며 쟁의의 목적이 단순한 임금, 계약에 그치지 않고 먼 장래의 인격획득, 입법을 위한 것 같으면 그것을 위해 가장 현명한 합목적적인 투쟁을 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작은 투쟁은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파업에 대한 제약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기한 목적으로부터 논의를 정리해서 첫째로, 파업은 이것을 단행함으로써 명백하게 기존의 법률제도를 근본적으로 변경시킬 수 있는 경우가 아니 면 안 된다(최대한). 둘째 파업은 이것을 단행함으로써 잃어버리는 희생보다 얻는 이익이 큰 경우이어야 한다(최소한).
만약 상술한 두 극한에 제약된다 할 것 같으면 이 한계를 고려하지 않는 파업은 힘의 낭비가 된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만약 두 극한을 고려한다면 투쟁은 항상 평화적 형식에 의해 규정되고 힘의 행사를 대신해서 힘의 합리화를 생각할 필요가 생긴다.
그러나 상기한 두 극한의 제약은 노동자들이 힘의 우위에 있거나 대등한 경우 공격시에 상정되며, 자본가가 힘의 우위에 서서 노동자가 방위의 위치에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 첫째, 제약은 기존의 법률제도를 유지, 방어하기 위한 경우가 되고 둘째, 제약은 얻는 이익을 크게 하기보다는 희생을 적게 하기 위한 것이 된다. 여하튼, 힘의 행사를 대신해서 힘의 합리화를 위한 투쟁의 평화적 형식인 쟁의 조정, 중재제도를 배제하지 못한다.
쟁의의 조정․중재는 단결권과 파업권(단체행동권)은 상관관계에 있으며,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노동쟁의는 결국은 계급투쟁 이외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쟁의의 조정 내지 중재제도는 결코 이 계급투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고안이 아니다. 무릇 법률제도 그 자체가 계급투쟁을 예정하는 이상 어떠한 법률제도를 가지고도 투쟁자체를 근절시킬 수 없다.
그러나 쓸데없는 투쟁에 의해 잃어버리는 불필요한 힘의 낭비를 피하고, 잃어버리는 희생보다 얻는 이익을 크게 하는 범위 내에서 투쟁을 평화적인 형식으로 대치하는 것은 양당사자를 위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해서 계급투쟁인 노동쟁의의 합리화가 요청되는 한에서는 조정․중재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므로 조정․중재제도는 역사적 사실인 계급투쟁의 규범의 내용으로서 이해해야 한다. 단, 이 조정․중재제도는 법률로 제정함에 있어서 노동자의 단결권과 파업권이 특히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사용자의 전투적 무기인 사유재산과 안정되고 확고한 계약의 자유가 법률상 보급되고 따라서 공장 폐쇄, 기타의 행위가 적법시 되므로 그와 같은 동등한 노동자의 전투적 무기인 단결권과 파업권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조정․중재라는 법률제도는 그 제도 자체가 이미 노동자에 대해서 그 단결권과 파업권을 완전히 보장하는 것을 예정한다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양자간에 각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상호 설정함으로써만 권력관계의 합리화가 이루어진다.
이에 반해서 일방에서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과 특히 파업권을 유린해 놓고 다른 일방에 조정․중재제도를 채용하려는 것은 조정․중재제도의 효과를 바랄 수 없다. 그러므로 적어도 조정․중재제도의 효과를 발휘하려면 충분히 노동조합을 발달, 조장시키고 또한 동맹파업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노동운동은 계급투쟁이다. 어떠한 권력이라 하더라도 이 운동을 섬멸할 수는 없다. 오늘날의 노동쟁의도 역시 하나의 계급투쟁이다. 어떠한 법률로도 이것을 제압하고 굴복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투쟁을 의식하고 이해하고 구성하고 그 투쟁이 영위하는 일정한 경제적 직분, 사회적 직능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을 법률적 형식과 사회적 규범으로 합리화하는 데 있다. 이 근본적 형식에 기초하여 계급투쟁의 한 형태인 파업이 단결권, 단체교섭권의 당연한 결과로서-법리상 또는 사회규범상의 권리로 확립되고 그것에 따라서 모든 법률적, 사회적 사유가 기본적으로 전향․확립되어야 한다. 현재의 사회는 파업권을 권리로서 수립할 때에만 비로소 순수하고 합리적인 사회의 진보를 이룰 수 있다.
3. 맺는 말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는 수많은 파업을 중심으로 한 투쟁을 통해 성장, 발전해 왔다. 1929년의 원산총파업, 1946년의 9.23 총파업, 1996년 12,26의 노동법개악반대 총파업의 경험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민주노동조합운동을 이루어 놓았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노동운동은 세계노동자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연대의 한 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노동운동은 전근대적이다. 노동자들의 기본권인 파업권이 확립되지 않고 있다. 파업하는 노동조합의 간부와 조합원들을 수없이 잡아 가두었다. 정부와 자본은 한통속이 되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힘의 논리를 앞세워 사회규범으로서 정당하고 법리론적으로 합법적인 파업을 행하는 노동자를 잡아 가두고 있다. 한걸음 더나가 정부와 자본은 잡아 가두기 위해 파업을 유도까지 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새로운 3기? 집행부는 이기는 싸움을 표방하고 나섰다. 아무리 백전불태(白戰不殆)의 싸움을 한다 해도 괴멸시키기 위해 걸고 오는 싸움을 어찌 피하겠는가? 그래서 수세적 공세기라고 하고 방어적 공격이라고도 한다. 우선 이기는 싸움은 파업에서 지도부가 침탈되지 않아야 한다. 민주노총의 지도부, 각 산업연맹의 지도부, 지역본부의 지도부, 단위사업장의 지도부가 파업을 이유로 잡혀가지 않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이제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도 윤곽을 잡아가고 산업형태로의 전환도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현장조직의 틀도 잡아갈 것이다. 그러나 파업권의 확립 없이는 이제 더 전진은 할 수 없다. 노동조합의 지도부의 거의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노사정위에서 참여와 협력이니, 산업평화니 얼빠진 소리는 그만하자. 그리고 체포된 파업관계자의 석방을 구걸하는 치사한 행동은 그만하자. 파업하는 노동자를 구속하면 파업으로 맞받아 쳐야 민주노동운동을 지켜 내고 발전시킬 수 있다.
<파업 11훈>
첫째, 파업은 사회규범상 법논리상 정당하다는 인식이 철저해야 한다.
둘째, 파업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조합 지도부의 일원이 잡혀갔을 때에는 그의 부당한 체포에 반대하고 석방을 위한 파업을 전개해야 한다.
셋째, 파업은 노동자들의 귀중한 최후의 무기이며, 노동자 민주주의를 훈련하는 장이다. 요구와 투쟁방향, 전술을 끊임없이 토론하며 집중, 통일시켜 나가야 한다.
넷째, 파업권을 유보하는 어떠한 협상에도 응하지 마라.
다섯째, 파업은 노동조합의 최고의결기관에서 신중히 결정해야 하고, 결의된 파업은 과감하게 집행해야 한다.
여섯째, 파업 이외의 방법이 없을 때에 파업을 피하는 것은 어용이다.
일곱째, 작은 사안은 파업 이외의 방법으로 해결하라. 환도로 모기를 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여덟째, 파업은 민중시민들의 여론의 향배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민중시민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라.
아홉째, 파업전술은 다양해야 한다. 창조적으로 전술을 개발하라.
열번째, 파업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지 마라. 항상 다음 전술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열한번째, 파업을 목전의 이익만으로 평가하지 마라. 전체적이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1) 자유권(Right to Freedom)이란 국가로부터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2) ① 5월 旣望에 金屬勞動者 八千大軍이 漢江 둔치에 屯聚하였다.
2) ① 5월 旣望에 金屬勞動者 八千大軍이 漢江 둔치에 屯聚하였다.
② 淸風徐來하고 水波不興이라. --月明星稀하고 烏鵲南飛하니 千里旌旗 蔽空이라. -- 有吹洞簫者徛歌而和之其聲鳴鳴然이라
② 淸風徐來하고 水波不興이라. --月明星稀하고 烏鵲南飛하니 千里旌旗 蔽空이라. -- 有吹洞簫者徛歌而和之其聲鳴鳴然이라
③ 소동파의 적벽부를 연상케 하는 운치있는 발언이었다.
3) 일본의 노동법학자 히라노 요시타로의 “법률상의 계급투쟁”이라는 저서에 의거, 발췌해서 필자의 의견을 덧붙이고 수정을 가한 글이다. 번잡하기에 따옴표를 치지 않았다. 이미 고전이 된 오래된 책이나 읽어보면 큰 힘이 될 것이다.
4) 법이 공익의 보호증진을 위하여 일정한 규율을 행하지 않는 경우 또는 법에 근거한 행정이 집행될 때에 그 반사적 효과로써 특정 또는 불특정사인에게 일정한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그 이익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권리와 구별하여 반사적 이익이라 부른다.
5) 신약성경 마태복음 20:8의 “포도원 일꾼과 품삯”에서는 품삯이 노동자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급부라는 우화가 오늘날의 무노동 무임금의 비인간성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