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환 식
해외연구원
국제노동 2
상상적 좌파의 신(新)경제조절론
죠스팽의 신자유주의 선언
“국가는 무력하다”. 다국적 기업 미슐랭의 7,500명 해고
계획에 대한 프랑스 집권 사회당(Socialist Party) 조스팽
수상이 토로한 ‘비장한’ 고백이다. 진위를 떠나 충격적이다.
우선 프랑스이기에 충격적이다. 국가의 역할이 유난히 강력하여
‘자코뱅 국가’로 불리는 프랑스가 아닌가! 조스팽 수상의
고백이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경제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정치라고 주장해 온 조스팽 아닌가! 적어도 표면적으로나마
신자유주의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좌파’다.
‘사회-자유주의’를 적대시하면서 프랑스식 사회주의를 고집해
온 ‘고전파’이다. 더욱이 상대는 천문학적 규모의 이윤을
자랑하는 미슐랭이다. 노동자를 거리로 내쫓는 동기가 이윤
규모를 좀더 늘리자는 것이다. 요컨대 경제적 해고다. 그런데
국가는 이를 제재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힘없는 국가에
기대하지 말고 노동자와 노조가 직접 나서라는 주문이다.
조스팽의 신자유주의 선언이다.
우파는 조스팽이 과거 에두마르 미쉘 로카나 발라뒤르 수상처럼
대선운동에 나서고 있다고 비난한다. 집권 파트너 공산당은 즉각
사회운동 재개의 기회로 활용한다. 10월 16일 ‘반실업 및
고용쟁취 전국집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대중운동으로
‘무력’한 정부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공산당의
이니시어티브는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자기비판의
산물이다. 1981년 공산당은 사회당 정부에 참여하면서
사회운동을 포기했다. 결과는 공산당의 급속한 쇠퇴였다.
사회운동이 절실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에 추월 당해 좌파정부 내에서 입지가 약화된
공산당이다. 사회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실추된 영향력을
만회하려는 것이다. 공산당 주도 집회에 사회당을 제외한 좌파
정치세력 모두가 참여를 선언한다. 정파의 이해관계가 집회
참여의 장애물이 되는 안이한 상황이 아니다. 소위 미슐랭
효과이다. 게다가 시장권력을 대표하는 프링스
기업운동(Medef)과 중․소기업연맹이 노동시간 단축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예정하고 있다. 시장의 공세가 전면화
되고 있는 것이다.
조스팽의 고백으로 가장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것은 집권
사회당이다. 10년 내 완전고용 달성을 선언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 무력론’이 돌출한 것이다. 사회당과
조스팽을 동시에 구원할 마법을 찾아야 한다. 해법은 사실
간단하다. 정부의 사회주의적 개혁의지가 불변임을 입증하면
그만이다. 2주 뒤 열리는 사회당 의원연수회가 국면전환의
장으로 결정된다. 조스팽이 복수좌파정부의 2단계 노선과 과제를
천명할 예정이다. ‘신 경제조절론’을 화두로 조스팽은 다시
‘좌파’로 복귀한다. 향후 국가는 시장권력의 전횡을 결코
‘무기력’하게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세계화는
국가를 약화시킬 수 없다. 국가는 여전히 경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오늘의 자본주의 변화에 적합한 새로운
형식과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조절을 위한 새로운
수단의 확보가 좌파정부의 2단계 주요과제로 첨가된다.
아이러니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세계적 규모의 지배질서를
구축하면서 조절론은 시대착오적 사민주의 유산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국가의 무력론’을 계기로 경제조절론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무력론’은 심각성을 간파한 조스팽의 발빠른 대응으로
진화된다. 하지만 여진마저 소멸된 것은 아니다. 사회 일각에는
‘약한 국가’를 현실로 인정하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느낌의
차이는 있지만 국가의 약화가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 무력론’보다는 오히려 고백의 시점이 더
문제라는 의미이다. 사회적 연대를 유난히 중시하는 프랑스이다.
이러한 전통에서 보자면 조스팽의 고백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10월 16일의 ‘고용쟁취 대중집회’는 이러한 사회의
흐름을 잘 보여준 사회운동이었다. 공산당의 정부를 ‘위한’
대중집회라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은 끝내 참여를
거부했다. 반정부 집회로 선회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사회당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집회에 참여한 5만 민중들의
눈에는 ‘무력한’ 국가는 이미 공격대상이 아니었다. 강력한
시장독재에 맞서도록 격려해야 하는 지원대상일 뿐이었다.
공산당수 로베르 위의 공언대로 “근래 보기 드문 성공적인”
친정부 집회였다.
국가의 약화 현상은 단순히 이러한 심리적 측면의 현실만은
아니다. 제도적 측면에 많은 정치학자들은 국가의 현저한 약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실제 세계화와 더불어 국가는 특권적 경제조절
수단의 상당부분을 상실했다. 특히 유럽연합의 경우 회원국가의
약화를 뒷받침하는 논거들이 풍부하다. 일반적으로 예산 및
통화정책은 국가가 거시경제를 조절하는 특권적 수단이다. 또한
노동시장은 최저임금제, 법정노동시간제, 해고승인제 등 각종
규제를 토대로 국가가 자본과 임노동 관계에 개입한다. 하지만
유로화의 출범으로 회원국들은 이러한 개입수단의 대부분을
초국가 기구인 유럽연합으로 이양한다. 통화정책은 거의 완전한
독립적 지위를 누리는 유럽중앙은행의 전유물이다. 예산정책은
긴축기조의 족쇄에 묶여 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암스테르담
‘안정화 협약’의 규정이다. 세제정책 역시 장벽이 사라진
자본시장의 독재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자본이동에 대한
과세의 당위성은 물론 시급함에 동의하지만 어느 국가도 선뜻
입법에 나서지 않는다. 노동시장은 어떠한가? 프랑스의 경우
불완전고용이 전체 고용의 10%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미슐랭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흑자기업조차 경제적 해고가
공공연하다. 반면 국가의 개입수단은 초라하기만 하다. 노동시간
단축, 일정비율(10%) 이상의 불완전고용에 대한 과세가
고작이다.
‘국가 무력론’은 이러한 시장우위의 새로운 역관계에 대한
조스팽의 ‘현실적’ 고백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 의미에서
보자면 조스팽의 ‘현실적 사회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정체성
혼돈에 따른 필연적 귀결이다. ‘현실적 사회주의’의
기본테제는 “시장경제 Oui(가능), 시장사회 Non(불가)”이다.
시장경제의 효율성에 매개로 좌파의 전통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마치 시장경제와 시장사회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듯한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적 모순은 ‘상상적 좌파’
조스팽이 ‘현실적 좌파’로 변신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국가의 역할을 시장의 테두리 내로 이미
한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조스팽은 스스로를 ‘현실적 좌파’로 자리매김 한다.
1997년 집권 초 조스팽 정부가 추진한 개혁은 이러한 신념대로
‘덜’ 자유주의적이고 ‘더’ 사회주의적이다. 반실업 투쟁의
개념은 과거 정권들과 달리 기업우대에서 기업압박으로
전환했다. 노동시간은 35시간으로 단축한다. 국가가 고용주인
청년고용제 도입으로 직접 고용에 나선다. 법인세, 사회공헌세는
대폭 인상했다. 자본의 세부담을 늘려 사회적 부의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의도이다. 이러한 일련의 반자본적
개혁조치는 ‘좌파 조스팽’의 이미지 착근에 기여했다.
‘현실적 사회주의’의 무게중심이 ‘시장경제 Oui’가 아니라
‘시장사회 Non’에 있음을 각인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다.
‘시장경제 Oui’를 우선하는 ‘제3의 길’과 이데올로기적
차별화에도 적극적이다. 블레어의 ‘제3의 길 인터내셔날’ 창설
제의에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날(SI)’ 고수로 맞섰다.
슈뢰더-블레어의 ‘제3의 길 선언’ 역시 조스팽의 참여거부로
‘반쪽 선언’으로 전락한다. 더욱이 ‘제3의 길’을 따른
슈뢰더의 정치적 추락으로 유럽좌파 내에서 조스팽의 위상은
한층 강화되었다. ‘좌파 조스팽’의 차별화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안정되면서 메시지의 중심이 점차 ‘시장사회
Non’에서 ‘시장경제 Oui’, 나아가 ‘시장사회 Oui’로
이동하는 징후가 확연해진다. ‘현실적 사회주의’에 내포된
이데올로기적 혼돈의 표출이다. 시장독재, 경쟁독재는
필요악으로 점점 강도높게 사회적 수용이 강요된다. 세계적
경쟁력 확보를 이유로 국영기업이 차례로 민영화된다.
노동시장은 유연화되고 불완전고용이 지배적 고용양식으로
기능한다. 사회적 부의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된다. 다행히
‘상상적 좌파’답게 조스팽은 자본과 노동간의 역관계가
불평등하다는 생각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 구조를 시정할 의지는 없다. 국가는 이를 조절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75년 미국 일본 유럽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최소국가 실현을 모토로 삼부회를 결성했다. 이들의 눈에는
과도한 국가의 개입능력이 민주주의와 세계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이었다. 조스팽 수상의 ‘신자유주의 선언’은 이들의
‘우려’를 일거에 해소시켰다. 사민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부(?)해온 ‘현실적 사회주의’에서조차도 국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아닌가!
‘미슐랭 사건’을 거치면서 조스팽이 ‘좌’로 한 걸음 이동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사회 자유주의’적 편향을 완전
포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슐랭 사건에도 불구하고
‘해고 사전 승인제 부활’은 ‘필요한 개혁조치’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해고 사전 승인제’는 86년 우파 자크 시락정부에
의해 폐지되었다. 조스팽은 ‘해고 사전 승인제’의 부활을 97년
총선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집권 후 줄곧 미루다가 끝내
입법을 포기했다. 해고시 기업은 노동자에게 사전고지의 의무가
있다는 이유이다. 미슐랭이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스팽에게는 ‘쇼크’였을 뿐이다. 최근 ‘스톡-옵션’
세율을 둘러싸고 빚어진 당-정간 힘겨루기 역시 조스팽의 좌파
복귀선언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한다. 스토로스 칸(D.
Strauss-Kahn) 재경장관은 자신의 지론인 스톡-옵션 세율
인하안을 사회당에 제출한다. 사회당은 오히려 스톡-옵션의
세율을 50%로 인상하는 국회 재경위원장 봉르포(A. Bonrepaux)
수정안을 채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톡-옵션’의 수혜자는
주로 기업의 경영진이다. 비록 이들이 급여를 받는 피고용자
신분일지라도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인 것이다. 더구나 알랭 쥐페
‘우파’정부도 ‘스톡-옵션’의 세율은 강화했다. 그런데
‘좌파’정부가 어떻게 자본가를 위해 세율을 완화하는가! 결국
조스팽은 정부안을 철회한다. 그 동안 성공적으로 관리해 온
좌파 이미지의 먹칠을 간발의 차이로 면한 것이다.
그럼에도 ‘제3의 길’과 ‘현실적 사회주의’의 경계가 있는
것인가? 궂이 차이를 찾고자 한다면 두 가지일 것이다. 우선
레토릭의 차이다. ‘제3의 길’은 공개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 반면 ‘현실적 사회주의’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적대적이다. 다른 하나는 레토릭이 유발하는 결과의 차이다.
지난 6월 블레어-슈뢰더의 ‘제3의 길 선언’은 이를 분명하게
입증시켰다. 슈뢰더는 ‘선언’ 직후 치뤄진 유럽의회 선거
패배이래 바닥도 모를 끝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반면
‘선언’을 거부한 조스팽은 여전히 60% 이상의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다.
사실 집권 3년차로 접어든 조스팽의 높은 지지율은 프랑스
5공화국 성립이래 유례없는 예외적 경우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승리를 예감할만한 기록이다. ‘상상적 좌파’ 조스팽의
자기만족(autosatisfaction)은 궤도이탈을 초래했다. 결과가
불확실한 시장과의 승부를 회피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진 것이다.
수성의 필요성을 의식한 결과다. ‘국가 무력론’은 시장사회
수용으로 인해 대선가도에서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을 피해갈
미래의 보호막이다. 조스팽의 단호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신
경제조절론’에 정치적 레토릭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이유이다. ‘상상적 좌파’로서의 조스팽에게 신 경제조절론은
국가가 상실한 권력을 회복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단지 시장의
우월한 지위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조스팽이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
자본은 ‘역사의 종말’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자본주의가 넘을 수 없는 지평임을 입증시키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