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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위기시대, 사회적 인식의 다양한 흐름

현장에서 미래를  제49호
강수돌



강 수 돌

연구위원 / 고려대 교수, 경영학








1. 인식과 실천


1997년 말, 외환 위기로부터 촉발된 IMF 구제금융과 그에 따른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를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세웠다. 대개 사람들은 커다란 물결 속에 휩싸이면서도 도대체 그 물결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잘 모른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최소한 우리의 초기 대응의 구체적 모습은 그러한 말이 맞는 듯 하였다.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구제금융과 구조조정, 그리고 경제위기 따위의 정확한 성격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고 행위하기보다는 차라리 일상적인 삶의 위협에 대해 즉자적으로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은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를 넘어 저항을 조직하기도 하고 새로운 실천을 모색하기도 한다. 새로운 실천들은 당연히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이 글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그간 새로운 인식과 실천들이 어떠한 사회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간략히 살핌으로써, 향후의 실천에 필요한 시사점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2. 경제위기에 대하여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모두 다 열거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경제위기의 원인을 둘러싸고 치열한 이론적 논쟁이 있으나, 여기서는 일반 사회적인 인식을 짚어 내는 것이 목적이므로 보다 쉬운 구분법을 쓴다).

첫째는 경쟁력 약화론이다. 지배적인 인식이자 지배자의 인식에서 연유한다. 경영자는 기술개발을 게을리 하고 노동자는 노동윤리를 상실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각종 구조적, 제도적 모순을 슬그머니 은폐한 채, 기술 투자와 인적 자원 투자, 그리고 기업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 강화가 그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구체적으로는 가장 최근 교육부의 ‘BK21’ 프로그램이나 매일경제신문 주도의 ‘신지식인’ 담론, 그리고 언젠가 등장했다가 슬며시 퇴진한 ‘30분 일 더하기 운동’ 따위가 바로 그러한 인식 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경제를 돈벌이 위주로 바라보고 있고, 그리하여 여전히 인간과 자연 모두를 경쟁력 강화의 수단화, 도구화하고 있다. 경쟁이라는 게임에 일단 동참하는 한 80%의 패배자는 물론이요, 20%의 승리자조차도 지속적인 ‘삶의 질’ 하락을 경험한다. 그 게임의 뒷면에서 알맹이와 단물을 뽑아 먹으며 지긋이 웃는 자는 자본과 그 이익을 대변하는 권력이다.

둘째는 제도 개혁론이다. 대개 많은 시민운동과 노동조합운동 영역에서 제기된 인식이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비효율적이고 반사회적인 재벌체제 및 정경유착․부정부패․관치금융․관료적 정치체제․열악한 과학기술 지원체제․저숙련 구조의 인력정책 따위에 의해 초래된 것이므로 이것이 개혁되어야만 경제적 효율성과 국가경쟁력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일부 진보 진영에서 투기자본의 규제와 국가권력의 민주화를 주장하기도 했는데, 비록 국제 연대를 강조하긴 했으나 근본 패러다임의 전환 문제까지는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도 개혁론의 범주에 든다고 본다. 이 인식은 앞의 노골적 경쟁력 강화론 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긴 하나, 경제사회의 발전과 관련하여 이것도 크게 보아 여전히 경쟁과 분열의 패러다임 안에 머물고 있다. 구제금융 초기에 IMF가 재벌해체와 부실 금융기관 퇴출 등을 요구하였을 때, 사회운동 측에서 내심 반기는 분위기를 보인 것도 바로 이러한 인식의 토대 때문이었다. 한때 ‘소액주주운동’이 인기를 끌게 된 것도 크게 이러한 인식에 접근해 있는데, 필자의 시각으로는 큰 자본가 한 명이 설치는 세상보다 작은 자본가 여럿이 설치는 세상(더욱이 노동자들이 자본가 모습으로 설치는 세상)이 오히려 더 무서울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러한 개혁의 내용은 형식화되고 단지 껍데기만 개혁의 탈을 쓴 것으로 판명이 나게 되자, 사회운동 측에서는 마치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허탈감만 크게 느끼고 있다.

셋째는 패러다임 개혁론이다. 경쟁 패러다임 자체가 이미 경제위기, 즉 삶의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여기서 경쟁이란 자본의 자기증식이라는 욕구가 외화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쟁이라는 그럴듯한 게임은 이미 자본에 의한 인간과 자연의 전일적 지배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경쟁 패러다임 자체를 문제 삼는 인식은, 일부에 의해 오해되고 있는 바와는 다르게, 이미 자본에 의한 적대적 지배 자체를 근원적으로 철폐하려는 비타협적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외적인 자본의 지배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의식과 행위 속에 내면화된 자본의 얼굴까지도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민주개혁론’보다도 더욱 근본적이다(나는 민주개혁론과 패러다임 개혁론이 얼마나 올바르게 결합될 수 있는가가 우리의 미래와 관련하여 결정적일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러한 인식들에도 패러다임의 수준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미세한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경쟁과 분열, 오만과 남용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연대와 협동, 겸손과 외경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통해 정치경제, 사회문화 모두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데에는 공통적인 점이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인식은 주로 생태운동, 공동체운동, 대안교육운동, 유기농업 위주 귀농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 생산자조합운동, 일부 실업자운동과 여성운동,일부의 노동운동가들 사이에 논의와 인식 공유,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의 전환은 생각보다 빨리 확산되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패러다임이, ‘뺑이치게’ 일해서 자본의 경쟁력을 높여 주어 그 보상으로 돈을 많이 번 다음 바로 그 돈을 통해 행복해지리라는 인식 틀 속에 머물러 있어,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돈이 없다면 불행을 자초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 자체가 삶의 질(건강․인격․여유․공동체․생태계 등)을 심대하게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은 시장주의․관료주의․위계주의․가부장주의․기술만능주의․인간중심주의․엘리트주의․생산력주의 따위를 근본적으로 배격한다.



3.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하여


나라가 지불불능 내지 파산을 선고받았다는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 IMF가 구제금융을 줄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사회의 내부 동력으로는 해결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개혁 프로그램을 IMF가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처음에 많은 사람들은 ‘어서 오십시오’ 하는 태도를 가졌다. 시민운동의 일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곧 정리해고와 고용불안, 부당노동행위와 노동조합 탄압 등이 코앞에 닥치자, IMF 프로그램에 대한 적대감이 사회적으로 급속히 생성되었다. 물론 IMF자체에 대해 반기를 들거나 아시아 담당자의 입국과 밀실협상에 대해 집합적인 저항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1998년을 거치면서 정리해고 반대와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 반대라는 인식의 공유가 급속히 진행된다. 1998년 말에 들어, 마침내 구조조정의 태풍을 강하게 받았던 금융부문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반(反)IMF 연대운동이 생성되었고(IMF를 상대로 제소함), 국제적 운동으로까지 확대된다. 1999년 10월에는 드디어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구라운드’라는 국제 논의의 장이 열렸다.

여기서 구조조정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 개진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자. 즉 같은 구조조정이라는 용어에도 불구하고 그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내용이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첫째의 의미는 IMF가 요구하는 바, 보호주의적이고 규제위주의 경제 구조를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구조로 바꾸어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경유착의 표본인 재벌을 개혁하여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을 폐지하고 내부거래를 금지하며 경영과 소유를 분리하라는 것이다. 나아가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고 금융기관의 대출 행위를 철저히 시장경쟁 논리에 맡기며, 세계금융자본에게 활동의 자유를 확대하라고 한다. 모든 분야에 철저히 시장 논리, 그것도 세계시장의 논리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원하고 있는 IMF나 세계은행 등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범지구적으로 적극 주창하고 요구하고 있는 바이다. 이 과정에서 수십 개의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은 기존의 자립적 경제구조나 생활방식을 급속도로 파괴당하고 이른바 선진국 모델을 추종하도록 강제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세계시장에서의 상품 경쟁력으로 환원되었다.

둘째의 의미는 노동집약적이고 저부가가치형의 경제구조를 자본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형의 경제구조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개발도상국의 정부가 경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존의 경공업 등 값싼 임금을 이용한 경쟁전략이 일정한 한계에 부딪히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 돌파구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동배제적 자동화나 정보화가 가속화되고 따라서 인간 노동력은 가치없는 합리화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실업자나 임시직의 형태로 길거리로 내몰리고, 오로지 소수의 고급 기능인력만이 상대적으로 좋은 대접을 받게 되었다.

셋째의 의미는 재벌이나 대기업들이 많이 쓰는 의미로, 경쟁력 있고 고이윤이 나오는 분야(핵심, 주력업종)는 살리고, 반면에 경쟁력 없고 이윤이 낮은 분야(주변, 한계업종)는 과감하게 정리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같은 그룹 안에서 이윤이 많은 분야는 적자를 보는 분야에 지원을 해 주어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세계화 물결과 더불어 이제는 비효율적인 부분은 비록 그것이 자기 몸의 일부라 할지라도 과감히 잘라 내게 되었다. 이것은 기업이 만들어내는 재화와 서비스가 사회적인 필요에 맞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와는 상관없이, 단지 보다 많은 이윤을 갖다 주는 분야만을 계속 유지하거나 확장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은 이윤을 좇아 부단히 움직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즉 아무리 기업들이 ‘고객만족 경영’을 외치고 다닌다 하더라도 그것이 높은 이윤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한,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것을 만들어 공급한다는 이상적 목표는 ‘빛 좋은 개살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 경쟁을 통해서 사회적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발상은 결코 현실화되기 어려운 것이다.

넷째는 일부 시민단체의 요구처럼 재벌 위주의 구조를 중소기업 위주의 구조로 바꾸자는 의미의 구조조정이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지금까지 재벌이 혈통과 친족을 매개로 경제적인 합리성이 아닌 전근대적 비합리성과 정경유착이라는 의혹 속에서 급성장을 해 왔기 때문에 냉혹한 세계화의 물결을 헤치고 국제경쟁력을 획득하려면 과감한 재벌해체와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아가 대만이나 독일, 이탈리아 등의 경우에서와 같이, 중소기업체들이 그 고유의 유연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충실하게 성장한 나라의 국제경쟁력이 강하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우리 나라도 그렇게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로 전환해야만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에서 여러 시민단체들은 이런 식의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정 정도 합리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즉 이 입장은 중소기업도 경쟁력을 획득하고 자본을 축적하면 얼마든지 독점 대자본으로 클 수 있어 재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고, 다른 편으로는 이 시각도 세계시장과 국제경쟁력 강화의 틀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부단히 사라지고 부단히 생기는 수많은 중소기업들 뒤에서 고통을 당하는 수많은 민중들의 삶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의 의미는 진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구조조정으로, 이것은 인간의 사회적 필요와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경제 분야나 경영 방식은 계속 살려 나가고 적극 장려하되,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잘라낸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군수산업이나 공해산업, 사치품산업, 퇴폐․향락업, 열악한 노동환경을 강요하는 분야, 중복 투자된 분야, 사람들의 민주적 의견에 반하는 투자 등은 과감하게 척결해야 하며,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분야는 적극적으로 촉진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과정이나 노동과정을 일하는 사람들의 소망과 욕구에 부합하도록 고쳐 나갈 수 있는 생산조직은 계속 살리고 그렇지 못한 조직은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구조조정이다.

우리가 보기에, 현재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이나 IMF 체제 하 구조조정은 물론, 시민운동권에서 주장하는 구조조정 방식은 마지막에 말한 내용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따라서 IMF나 기업가들, 정치권의 희망 섞인 선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구조조정 방식은 위기를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경제위기를 더 큰 규모로 심화시키고 그 결과 사회적 삶의 위기도 범지구적으로 심화시킬 것이다.



4. 삶의 위기에 대한 노동자들의 대응


1) 초기의 딜레마: 분노와 걱정


‘IMF 사태’ 직후인 1998년 한국 노동자들의 의식과 태도는 한마디로, 좌절과 걱정, 두려움이라는 한 축과 실망과 분노, 저항이라는 다른 축 사이에서 고도의 긴장 관계를 체험하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좌절과 걱정이라는 축을 살펴보자. 개인적으로 실직을 당했거나 실직을 당하는 사람을 옆에서 본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자기 삶에 대해서도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세계에서도 우수한 나라(예컨대 “11대 경제대국”), 또는 ‘우수한 민족’이라던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이 하루아침에 꺾임으로서 이러한 좌절은 더 이상 개인적 좌절이 아닌 사회적 좌절로 연결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심리 상태는 분노하는 마음으로도 연결된다.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히는’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믿고 일하던 기업, 그리고 그토록 애착을 가졌던 ‘조국과 민족’으로부터 뭔가 속았음을 느끼면서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분노, 즉 기득권을 가진 지배자들에 대한 분노가 곧장 자동적으로 저항으로 연결되기보다는, 대개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장래에 대한 걱정, 파산 선고에 대한 두려움 등과 함께 뒤섞이면서 노동자들은 매우 심한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여태껏 애국심과 애사심을 너무나 가슴깊이 내면화해 왔기 때문이다.1) 바로 이러한 심리 구조를 적극 파고 들어가서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립을 완화하고자 하는 관리 방식이 종업원지주제나 우리 사주제 도입, 그리고 참여경영 전략 또는 노동자의 중산층화(재산형성) 전략이다. 만일 이러한 여러 기법들이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게 되면 마침내 ‘싸움의 상대방’이 뒤바뀌게 된다. 그리하여 ‘아군이 적군이 되고, 적군이 아군이 되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1998년 2월 6일 새벽에 제1기 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논의가 타결된 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비상대책 위원회(약칭 민주노총 비대위)는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에 합의한 지도부를 분노와 함께 불신임하였고 즉각 파업을 결의하였다(1998. 2. 9). 그런데 이 비대위 역시 그 파업 결의를 3일만에 스스로 거두었다(1998. 2. 12). 바로 그러한 과정은 앞서 말한 한국 노동자와 노동운동계의 불확실한 심리 상태를 매우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파업을 결의한 노동자들은 매우 분노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한편으로 “또다시 총파업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 정말로 나라가 파산(지불불능상태)을 선고받는 게 아니냐”는 식의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인 것이다. 요컨대 사회적 저항의식이 애국적 민족의식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애국주의적 민족의식을 강하게 가진 ‘시민들’(노동자 포함)이 이미 광범위하게 존재하는데다가 지배적 언론들마저 ‘참여와 협력’의 사회적 분위기로 사람들을 몰아가게 되면, 분노하는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는 엄청나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때 국가는 공권력의 발동을 강하게 시사하면서 지금까지 조용히 감추고 있던 ‘호랑이 이빨’을 위협적으로 내보이면서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의식 공간을 뚫고 들어간다. 다시 말해 흔들리는 노동자의 마음을 뚫고 ‘노동규율’의 강화, 즉 노동자의 군기잡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5월 11일에 가서는 국민승리21의 조직국장 박용진 씨가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게다가 경찰청은 민주노총 지도부를 포함한 79명의 수사대상자를 확정한 뒤, 출석요구서 발부 등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는 새 정부가 누누이 대화와 타협을 이야기하면서도, “국난극복”이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를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배제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생각을 명백히 보여 주는 사건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청와대측에서도 1998년 메이데이 싸움 직후에, 노동운동계를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누어 대처하면서 온건파와는 대화를 계속하되 강경파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설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여 노동운동 측은 매우 조심스럽게 ‘자기 통제된 투쟁’을 조직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메이데이 투쟁 이후 ‘폭력 충돌’을 매우 우려하는 사회적 논란의 와중에 서울 등 전국 여러 도시에서 치뤄진 5월 16일의 가두집회에서는, 민주노총의 경우 ‘질서유지단’까지 등장하여 “경제의 심각성”과 “국민의 우려”를 신중히 고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슷한 모습은 5월 20일에 현대자동차가 3만 5천 명의 조합원 중 8천명 이상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주기적으로 반복된 시한부 파업(5. 27, 6. 29, 7. 6, 7. 14, 7. 20)에서도2), 민주노총이 정부측 협상안을 수용하여 스스로 6․10 파업을 철회했을 때에도, 또 6월 29일, 5개 퇴출 은행 발표 직후 일부 전산 요원들의 태도나 7월 15일 총파업 개시를 결의했다가 이를 슬그머니 접어버린 금융노련의 태도에서도, 또한 은행 퇴출과 공기업 구조조정 강행에 항의하는 양대 노총의 공동 ‘평화 집회’(7. 12)에서도, 그리고 7월 10일 제2기 노사정위 탈퇴 선언에 연이어 7월 14~16일까지의 민주금속, 공공연맹 등 민주노총 총파업(7만여 명 참여)과 7월 23일 총파업 유보에서도 여전히 반복해서 나타났다. 이것은 한편으로 사회적 신뢰감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운동 측의 고민을 보여주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일상의 사회 의식 자체가 얼마나 지배자 논리에 통합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이러한 현상은 노조가 고용위기의 시대에 가장 열악한 조건 속에서 주변화되거나 배제당하는 집단들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불법체류에 대한 벌금을 면제받는 대신 1998년 1월부터 4월 말까지 무조건 출국을 해야만 했던 5만여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영세 사업장 노동자나 여성 노동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해고와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되는 데에 대해서도3), 또한 용역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용 조정 과정에서, 그리고 7월 1일 이후 근로자파견제의 시행으로 무차별 해고를 당한 경우에도4), 실업자나 노숙자가 대량으로 생산되는 과정에서도5) 구체적으로 증명되었다.


2) 협상과 투쟁의 병행: 노사정위․정책 참가와 가두투쟁


1998년도에 노동계는 제1기, 2기 노사정위에 참여하면서 협상할 것은 협상하고 투쟁할 것은 투쟁한다는 원칙으로 ‘실익’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정치권과 경제계가 기존의 경제성장 패러다임, 즉 경쟁과 분열, 파괴에 기초한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한 노사정 사이의 원만한 타협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확인하는 성과 이외에 별다른 성과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참가, 정책 참가가 ‘위기관리’에 있어 ‘공동경영자’로 변신하는 격으로 되어, 스스로 내부분열까지 초래하였다. 결국 1998년 12월에 들어서는 민주노총이 더 이상 노동배제적 구조조정의 ‘들러리’로 설 수가 없음을 명확히 하고 노사정위 불참과 탈퇴 계획을 선언하였다.6)

물론 노동계는 가두투쟁과 같은 ‘광장의 정치’도 병행하였다. 특히 98년 이후 현재까지 수 차례에 걸친 총파업 시도와 함께 전국 노동자대회를 확대한 98년 11월과 99년 5월의 민중대회는 ‘일회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이 결코 기층 민중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아님을 웅변적으로 고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98년도 노동계의 대응방식은 ‘피해의 최소화’라는 입장으로 나갔다. 이 입장의 핵심 문제는 “피해 최소화가 목표로 되니까 노동조합은 희망퇴직, 무급휴직을 수용하게 되었고 그러한 전제하에서 협상하다 보니 정부가 명퇴조건을 개악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는 것이다.


3) 전열의 재정비, 새로운 공세


1999년 들어 민주노총은 더 이상 ‘수세적’ 자세로 임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4대 요구, 즉 정리해고 및 구조조정 중단, 노동시간 단축, 사회안전망 구축, 임단협 인정과 산별교섭 보장을 내걸고 새로운 공세를 시작하였다. 특히 4․5월 들어 ‘총력투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개입해 들어가 이를 총력 저지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것은 1998년 6월 10일에 총파업투쟁이 자진 철회되면서 총자본의 막강한 공세를 단위노조 차원에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컨대 현대자동차․만도기계․조폐공사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 사례가 대표적이다. 마침내 1999년 4월 19일부터 서울 지하철 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 산하의 공공연맹이 파업에 돌입하였으나 일주일 정도 지나 일단락 되었고, 곧 이어 전개된 대우조선, 한국중공업 등의 파업도 ‘일단 급한 불’이 꺼진 듯했다. 26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던 한국통신 노조와 전국 의보 노조도 파업 유보를 선언하고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 4월에서 5월로 이어지는 시기에 대대적인 총파업 투쟁으로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저지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전략으로 고용안정을 쟁취하겠다던 노동 운동의 치솟는 기세가 이로써 한풀 꺾인 듯했다.

그러나 민주 노동운동 측에서는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를 계기로 전열을 재정비하고, 수많은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과 각종 반노동자적 이데올로기 공세에도 불구하고 5월 12일부터 제2차 총파업 투쟁을 선언하였다. 이때는 금속연맹과 병원노련이 주축을 이루게 되었다. 5월말에도 계속 삼환기업 노조나 원자력병원․고려대 등 수많은 일터에서는 노조와 경영측 사이에 비타협적인 싸움이 전개되었다. 6월 10일부터 3차 총력투쟁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대검 공안부장이 ‘노조운동 탄압 공작’을 벌여왔다고 무의식 중 폭로하면서 1999년 6월 이후 노동계는 규탄 집회, 구속자 및 수배자 석방과 해제, 공안탄압 사업장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원상회복 투쟁을 전개하였다. 물론 대중들의 분노는 높으나 실제로 대중적인 투쟁을 전개하기엔 조건이 어려워 주로 간부활동가들의 단식, 농성투쟁, 항의방문 등이 중심이 되었다(이환재 1999, 8).

1999년 7월 들어서는 방송법 개악에 반대하여 KBS와 MBC, 방송위원회 등 방송노련 산하 노동자 3,000여 명이 중심이 되어 13일부터 파업에 돌입하였고, 금속연맹은 만도기계 등 부당노동행위, 공안탄압 의혹 사업장을 중심으로 상경투쟁을 개시, 국회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였다.

IMF와 전면전을 벌이기로 결단을 한 금융노련은 7월 13일, “IMF와 정부 사이의 정책협의를 폐지하고 구조조정 음모를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금융노련 이용득 위원장은 “IMF식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오는 11월 은행권 총파업을 단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노련은 이미 1999년 6월 19일, 독일 쾰른의 (서방선진8개국)G8 정상회담장 주변에서 열린 ‘인간띠 행사’(6만여 명 참여)에 국제연대강화단을 파견, 세계 최초의 ‘IMF 제소운동’을 펼쳐 세계적인 주목을 끌기도 했다.

한편, 한국노종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은 7월 13일, 사회보험료 납부 거부투쟁을 벌이면서 “정부가 자영자의 소득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국민연금 확대 적용과 의료보험 통합을 밀어부쳐 봉급자들이 고소득자영자의 몫을 부담하는 소득 역진현상이 초래되고 있다”고 하면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료 납부거부 1천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에 앞서 7월 12일, 전력노조 간부들은 정부가 추진중인 안양과 부천의 열병합발전소 분할 해외매각을 반대하는 집회를 과천 청사 앞에서 갖고 “전력매각은 곧 국부 유출”이라며 “국가기간산업인 발전소를 자본의 손아귀에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 결의했다.

또 지하철과 조폐공사 노조는 7월 17일 파업에 돌입하기로 하였는데, 김명희 지하철노조 위원장 직무대리는 “노조의 정상적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적, 물적 조건을 박탈당한 상태”라며 “노동관계법이 보장하고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파업을 결행한다”며 “요구사항 관철 때까지 무기한 파업”이라고 결연한 자세를 보였다.

이와 같이 1999년 들어 노동계는 보다 공세적이고 보다 총력적인 자세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자본합리화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자본과 정권의 새로운 공세가, 다른 편으로는 노동계 내부의 안이한 정세 인식과 분열된 역량, 자본을 ‘내면화’한 일상 행위 따위가 장애물로 걸려 있기 때문이다.



5. 대안 문제에 대하여


지배적인 구조에 적응하려는 사람들이나 적응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대안이 없으니 어찌하나?’는 식의 인식을 보여주었다. 신자유주의의 기수, 영국의 대처 수상이 노동조합운동을 탄압할 때 쓰던 전형적인 구호가 ‘대안은 없다’이지 않았던가. 구제금융 체제와 더불어 새로이 등장한 정부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병행’ 발전시킨다고 천명하였으니 많은 사람들 사이에는 한번 믿어보는 것이 어떤가라는 인식도 있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에서 시장과 민주주의는 같이 갈 수가 없다. 오로지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민주주의만이 시장경제와 병행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은 인식인가는 이미 2년 동안의 참담한 현실이 역력히 증명한다.

“대안이 있다!”고 외친 사람들 중에는 국제금융시장의 투기자본을 민족국가적으로 규제함으로서 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또 자본의 세계화를 인정하면서도 소유의 사회화와 경영의 민주화를 통해 대안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하기도 했다. ‘광란의’ 자본주의를 ‘신사적인’ 자본주의로 돌리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겠으나 여전히 자본의 합리성을 극복하기에는 문제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투기 자본만을 문제삼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생산 자본은 문제가 아니라는 발상, 민족국가의 자본가적 기능을 인정하는 것, 자본의 세계화를 인정하는 위에서의 개혁 등은 여전히 자본의 합리성 안에서 인식 운동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율자치 공동체‘ 운동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인식 속에도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예컨대 자본과 권력의 적대적인 힘이 작용하는 공간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자율자치 공간을 따로 확보한다고 해서 과연 대안 사회가 올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장 큰 해결 과제이다. 자본과 권력을 해체하고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야지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새로운 사회 건설을 과연 도피하듯 하는 모습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 지극히 평화스런 모습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일종의 망상이 아니겠는가 하는 내적, 외적 비판이 뒤따른다. 매우 정당한 비판이다. 진정한 자율자치 공동체 건설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비판을 끊임없이 검토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조차도 몇 개의 섬에 불과하게 되거나 아니면 개인적 은신처가 되기 쉽다. 바로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나는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생태계운동이 상호 연대하고 상호침투하여 자본과 권력의 지배와 착취를 근원적으로 지양함으로써 올바른 자율․자치 공동체운동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원하는 자율 공동체란 하늘 위나 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대끼는 바로 이 삶의 공간 위에 있기 때문이다.

한/노/정/연


1) 1998년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가 끝난 뒤에 민주노총 사무실에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즉 집회 직후에 민노총 사무실로, 시민이라고 자처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항의 전화가 빗발쳤는데, 그들은 “80% 이상이 아줌마들이었고, 전라도 방언을 썼으며 내용도 하나같이 ‘주가가 떨어진다’, ‘정권교체 했는데 1년간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2월초에 민주노총 비대위가 파업을 결의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노동자신문』, 1998.5.13).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민주노총의 투쟁에 대한 부정적 국민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라는 점 이외에, 그 항의의 내용이 전형적으로 ‘국익’과 ‘국난극복’이라는 이름 아래 ‘주식 가격’이나 ‘수익’, ‘이윤’ 등 기득권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적극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2) 현대자동차는 1998년 7월 16일, 7월 말로 최종 정리해고 대상자 2,678명을 해고하고 900명의 여유인력에 대해서는 2년간 무급휴가를 보내겠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노조는 17일부터 19일까지의 연휴가 끝나는 대로 파업 등 투쟁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광식 위원장은 7월 14일~16까지의 파업으로 특별 검거령이 떨어진 57명 속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노조 집행부는 위기 의식을 느낀 나머지 이미 7월 11일의 노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임금삭감안과 정리해고 철회 안을 맞바꾸자.”라는 양보교섭 안을 제시했다. 물론 대의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바로 이러한 제안 속에서도 노동조합 지도부의 내면적 갈등을 읽을 수 있다.


3) 97년 3/4분기 고용 동향에 따르면 전년도 대비 여성 실업자 증가율이 남성에 비해 무려 7배나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5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이 60% 이상인데다 경영 위기에 빠진 대기업의 하청영세기업들이 폐업과 부도로 몰려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이 퇴직금은 고사하고 밀린 임금도 못받고 거리로 쫓겨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남성 중심의 조직인 노동조합은 이렇다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매우 소중한 예외도 있다. 한국기계 노조의 경우다. 97년 12얼 27일에 ‘조립부 14명 중 여성노동자 9명 모두를 31일자로 해고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한국기계 노조가 “여성 노동자에게 먼저 적용한 정리 해고 바람은 결국 모든 노동자에게 닥치게 되며, 당장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해고 바람이 회사 전체에 몰아칠 것”이라며 조합원을 설득, 대부분의 남녀노동자들이 함께 밤샘 농성에 참여하여 불과 1주일만에 회사측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경우도 있다(손영주 1998:58).


4) 현대자동차 노조는 회사측이 6월 30일, 식당, 전화 가설, 발간 업무, 수출 차량 이송 등 10개 항목 938명에 대한 하청 이관 계획을 밝힌 데 대해서 별다른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98년 6월까지 약 6천여 명(총 노동자의 20%에 육박)에 이르는 하청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되는 것에 대해서도 “정규 직원 8천여 명에 대한 정리해고 문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하청이나 용역 사원, 파견근로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다”고 하며 묵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물론 한국중공업, 현대중곡업, 아시아자동차 등 곳곳에서 용역하청 노동자들에 의한 자생적인 생존권 요구 투쟁과 원청 노조의 지원이 부분적으로나마 함께 이루어진 경우도 있으나 결코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우리 기업 노동자와 다른 기업 노동자 사이의 ‘유리벽’을 뚫어내지 못하였다.


5) 서울역, 용산역 등 서울의 주요 역 부근에는 3천여 명의 노숙자가 몰려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으며, 98년 2월에는 하루에 1만 명씩, 5월에는 5천 명씩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몰려 나왔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조차도 노동자와 실업자, 노숙자 모두가 연대하여 총체적인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데 주력을 기울이기보다는 기존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정리 해고 반대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6) 특히 ‘IMF 구제금융’ 이전에 결성되어 활동 중인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는 노동계 내의 재야세력으로, 노동조합 조직의 틀에 무관하게 생동하는 현장 활동을 목표로 한다. 이미 IMF 사태 이전인 97년 9월에 ‘전국 97임단투 평가와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대중토론회를 조직한 바 있으며, 또한 98년 12월에는 ‘98투쟁 평가 및 과제’, 최근 99년 3월에는 ‘99년 투쟁승리를 위한 현장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올바른 대응 전략을 모색하기도 했다.


1999-11-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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