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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의 충격과 사회변화

현장에서 미래를  제49호
채만수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사회







공황의 충격과 사회변화

채 만 수 (부소장)


남미화인가

창립심포지움 준비1팀


IMF 이후 노동자 상태변화

이 종 탁 (연구기획2실 연구원)


삶의 위기시대, 사회적 인식의 다양한 변화

강 수 돌(연구위원 / 고려대 교수, 경영학)


1998~1999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 정리해고로 상징되는 고용문제는 늘상 겪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롭게 제기되는 사안이었다. 이를 좀 더 확장해서 살펴보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위한 시도가 어느 때보다 강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분명히 이 시기에 나타나는 많은 특징은 경제위기의 국면이 마무리된다고 없어지는 어떤 순환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자본운동의 변화, 대중의 상태 변화, 인식상의 변화 등.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당면의 실천문제가 새롭게 제기되면서 운동의 성격과 방향을 규정짓는 조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작업은 그 동안 조금 소홀했던 점이 없지 않다.

엄밀한 이론적 정식화와 체계화를 위한 작업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변화의 흐름을 추적하고 이를 진단해 나가는 작업은 부단히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이번 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해서 경제위기 이후의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몇 편의 글을 기획하였다. 이들 글을 통해 경제위기의 법칙성,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의 강화, 종속성의 문제, 악화되는 대중의 상태와 사회인식의 특징 등을 다루었다.

정교한 이론화의 작업은 이후의 일로 남겨 놓되 현재의 한국사회가 거시적 수준에서 새로운 변화의 입구에 들어서 있음을, 주체적 실천의 문제를 남겨 놓으면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참고로 여기서 심포지움준비팀은 지난 9월 연구소에서 개최한 창립기념 심포지움을 준비했던 팀임을 밝혀둔다.

         

공황의 충격과 사회변화

채 만 수

부소장









다른 기회에도 누차 얘기했던 것처럼, 한국 자본주의 혹은 보다 넓게 한국 근대 사회사에서 경제위기는 이번이 결코 처음이 아니다. 우선,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그 자체는 아직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로 발전하고 있지 못했던 일제하에서 이미 30년대 대공황의 충격과 부담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은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면서 결국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 그에 따른 절반의 해방으로 귀결되었다. 1960년의 4월 혁명, 1972년의 ‘10월 유신’, 부마항쟁과 박정희 피살 그리고 광주항쟁과 학살 등으로 이어진 1979~80년의 정치적 대격변 등등의 고비마다 그 저변에는 경제위기가 가로놓여 있었다는 것은 이제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사실은, 종전 후 거의 50년 만에야 거기서 저질러졌던 미군 등에 의한 악마적 대량학살이 대중적으로 공개․논의되기 시작하면서, 5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1950~53년의 한국전쟁의 배경에도 1940년대 말에 미국경제를 엄습했던 전후 최초의 공황이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결코 비밀이 아니다.

요컨대, 매 경제위기 혹은 공황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사회변화의 새로운 계기를 형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1930년대의 대공황과 1940년대 말 미국을 엄습했던 공황의 충격과 영향은 가히 필설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비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계기는 결코 ‘한국 자본주의 자체’의 공황이 아니었다는 것도 동시에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한국사회 자체는 아직 비(非)자본주의적 사회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를 지배한 자본주의 체제인 제국주의 체제하에서 식민지 등의 피지배적 입장에서 제국주의 종주국을 억누르던 부담을 전가 받아 겪었던 것으로서 그만큼 잔혹하고 무자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특히 한국 자본주의 자체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폭발로서의 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는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경제위기 즉 공황의 충격 혹은 영향으로서 각인되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의 몰락과 4월 혁명으로 귀결된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의 경제위기 역시 부분적으로는 유사한 점을 이전의 그것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들 역시 한국 자본주의 자체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폭발로서의 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극소수의 경제연구자들을 제외하고는, 대중적으로는 경제위기 즉 공황의 충격 혹은 영향으로서 각인되지 못했는데, 물론 거기에는 다른 중요한 요인들도 작용하였다. 그 중에는 무엇보다도 당시 정권의 정치적 억압과 특히 선거협잡이 너무나도 극심했기 때문에 그것은 정치적인 ‘민주혁명’으로 대중에게 각인 되었다.

이 점, 즉 경제위기를 계기로 한 정치적 격변이 경제위기의 영향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정치적인 것, ‘민주’와 ‘반민주’ 간의 갈등과 투쟁으로 각인된 것은 1980년 5월항쟁과 학살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당시의 정치적 억압이 극한적이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제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주로 대중이 ‘근대화’ 이데올로기에 포로가 된 나머지 자본주의적 경제위기 즉 공황 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겨를도 갖지 못했기 때문인데, 식민지 착취와 전쟁의 폐허로 극대화되었던 빈곤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개발과 증대, 즉 자본의 축적이 기본적 혹은 절대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였다.

그러나, 대중이 그것을 경제공황의 여파로 인식했든 못했든 아무튼 경제위기가 한국사회의 변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고, 더구나 적어도 1970년대 이후, 그 위기는 한국자본주의 자체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폭발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성격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강화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들 경제위기의 원인과 본질은 물론 자본주의적 과잉생산이다. 과잉생산에 따른 이윤율의 급격한 저락과 그에 따른 대량 도산, 사회적 생산의 급격한 축소가 공황의 원인과 과정을 이루는 것인데, 그것이 폭발하는 구체적 계기나 이후 진행되는 구체적 과정은 매 공황마다 다르고 특색이 있다.

예컨대 이번의 공황은 1997년 여름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외환․금융위기의 일환으로 폭발하였고, 이 때문에 그 본질이 ‘외환․금융위기’라는 것이 현 시기 경제위기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다. 그러한 인식에 의하면, 현 위기는 재벌이나 일부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경영 방만에 의해서 초래되었고, 애초 외환위기로 폭발했던 것이 재벌들의 과대한 부채 경영 때문에 금융위기 일반으로 발전한 것으로 된다. 말하자면, 현 경제위기의 원인과 본질은 기본적으로 ‘금융’의 문제이고, 자본주의의 ‘카지노화’가 문제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자본주의의 카지노화를 일정하게 억제하기 위해서, ‘고삐 풀린 초국적 금융․투기자본’의 무절제한 활동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기 위해서 이른바 ‘토빈세’1) 등 각종의 장치를 고안하고, 또 이러한 억제장치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7월에 프랑스에서 있었던 아탁회의나 얼마 전 ‘대구 라운드’에서 보는 것처럼 이른바 비정부기구 ‘시민운동 단체들’나 ‘비판적’ 지식인들의 목청이 높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소로스와 같은 거대 투기꾼들, 혹은 국제적 투기자본 자신들로부터도 자신들의 무절제한 행동을 일정하게 억제․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상당히 활발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이번의 아시아 위기는 그것이 러시아, 남미 등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대공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짙게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 투기자본들에게도 적잖은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 즉 위기의 소재를 금융부분에서 찾고, 따라서 거기에 일정한 장치를 함으로써 그러한 위기를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은 당연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한계는 그것이 현상의 일면만을 과도하게 반영하고 있을 뿐, 위기의 진정한 원인과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카지노화’ 혹은 투기는 결국 고도로 발전한 신용제도에 의해서 매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도한 투기는 다름 아니라 바로 그 신용제도의 존재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인데, 그것은 단지 그러한 신용제도에 의해서 사적 자본의 가치증식의 내재적인 속박과 제한이 끊임없이 돌파되면서 자본의 탄력적 재생산 과정이, 따라서 그 과잉생산이 극한까지 강행되기 때문이다.2) 결국, ‘카지노화’ 혹은 과도한 투기는 어디까지나 재생산 과정이 극한적으로 전개되기 때문, 즉 과잉생산이 극한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인 것이고, 그러한 극한적인 과잉생산의 한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신용제도가 근대 자본주의의 본질적 기구이고, 주기적으로 증폭되는 과잉생산3)이 발달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적 성격이자 한계라면, 투기는 그것이 국내적인 것이든 국제적인 것이든 자본주의적 생산에 수반하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런데 자본의 전반적 과잉생산으로 이윤율이 저하되면, 이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개미군단’으로 불리는 수많은 영세․소자본은 더 이상 자본으로서 기능 할 수 없게 되어 투기시장으로 쇄도하게 되기 때문에, 투기는 더욱더 격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시장을 통해서 이것들이 독점자본에 의해 흡수됨으로써 독점자본은 생산을 더욱 확대하게 되고, 결국 대폭발 즉 공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의 위기 즉 공황도, 시끄럽게 논의되었던 그리고 논의되고 있는 자동차나 철강, 석유화학 등등의 부분의 통계를 들 필요도 없이, 그러한 전반적 과잉생산의 폭발이다. 위기의 원인과 본질이 짐짓 ‘외환․금융’에 있는 것처럼 떠드는 자본측의 이데올로그들도 이 점을 부인할 수는 없어서, 그들이 ‘과잉투자․과잉설비’를 얘기할 때, 거기에 어떤 췌언이 따라붙든, 사실은 그러한 과잉생산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과잉생산을 인정하면서도 현 시기 위기의 원인과 본질이 금융 문제에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경우 그 과잉생산을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연적인 것으로 보는 대신에 단지 정책상의 오류나 금융 운용상의 우연적인 오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저들이 경제위기의 이른바 ‘책임’을 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필연성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자본가 계급과 국가의 비상한 정책과 대비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 곧 과잉생산에 의한 파국은 19세기 초 1825년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임을 인정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더구나 그 위기는 필연적일 뿐만 아니라 더욱 더 증폭된 규모와 심도로 폭발되는 경향을 보여 왔고, 20세기 독점자본주의화로 인해 모순이 심화되자 드디어는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대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서두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누가 뭐라고 하든, 그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량 파괴와 살육에 의해서만 수습될 수 있었는데, 기본적으로는 그에 힘입어, 즉 제2차 세계대전의 대량 파괴에 힘입어 자본주의의 경제위기, 즉 공황은 그 기세가 꺾이고 1960년대까지의 이른바 ‘장기호황’4)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황은 1970년대부터 다시 격화되기 시작하여 주기적으로 증폭되면서 드디어 오늘의 사태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바로 그러한 선상에 있는 위기이다. 그것은 ‘6.25 이후 최대의 위기’인 ‘IMF사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아시아적 가치’ 운운하는 사람들이 암시하는 것과 같은 단순히 ‘한국만의’ 혹은 ‘아시아만의’ 위기가 결코 아니며, 단순한 ‘외환․금융위기’만도 아니다. 그것은 전세계적 위기의 일환이고, 본질에서 과잉생산, 그것도 엄청난 과잉생산 위기이다.

그리고, 과거에도 매 공황을 계기로 그랬던 것처럼, 한국사회는 지금 이 공황을 계기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그 변화들은 과거와 달리 일국적(一國的) 성격이 많이 퇴색하고 현재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겪고 있는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이번의 경제위기를 계기로 본격화하고 있는 변화가 사계사적 의의를 갖는 것임을 의미한다. 바로 신자유주의적 구조변화인데, 이는 당연히 이윽고 벌어질 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의 전주(前奏)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변화의 특징은, 전반적인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자본간 경쟁의 극도의 격화를 반영하여 자본이 보다 강한 경쟁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재생산과정에서의 노동력의 배제,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는데 그것이 국가적 규모에서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규모에서 가혹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추동하고 있는 것은 경쟁력 제일주의이다.

사실 1997년 말에 경제위기가 폭발하기 전에 이미 수년 전부터 세계적 규모에서의 전반적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경쟁의 격화가 명확해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본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기본적으로 개별자본의 차원에서 ‘신경영전략’이니 ‘신인사제도’니 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일찍이 1980년대 말 내지 90년대 초부터 도입하고 있었고, 1996년도에는 김영삼 정권이 ‘신노사관계 구상’이니 ‘노사관계개혁위원회’니 하면서 그것들을 국가적 규모에서 추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다 철저하게 추진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조치의 일환으로 노동법을 날치기 개정하기에 이르러, 주지하는 것처럼, 1996년 말 ~1997년 초의 총파업이라는 노동자계급의 대대적인 투쟁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총파업 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꾸준히 실행에 옮겨졌고, 그리하여 한국사회에 신자유주의가 착실히 구조화되어 갔다. 다만, 1997년 말에 위기가 폭발하기 전까지는 그 구조화는 적어도 조심스럽고 급격하지 않은 속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위기가 폭발하자 상황이 일변하였다. 그것은 급격하고 전면적으로 추진되었고, 또 그렇게 구조화되어 갔다.

위기 폭발 후 다분히 그에 힘입어 집권하게 된 김대중 정권은 정식으로 집권을 하기도 전에 ‘노사정위원회’라고 하는 이른바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했고, 그것을 가동하여 본격적인 노동력 배제를 위한 법률적 장치 정비에 대한 노동자계급 상층부의 동의를 획득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우선 무엇보다도, 과거에도 ‘명예퇴직’ 등의 이름으로 상당 규모로 이루어지던 노동력 배제가, 이제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본격적․대규모적으로 추진되었다.

물론 본래 경제위기 혹은 공황이란 기업의 대대적 파산과 그에 따른 사회적 생산의 축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당연히 상대적 과잉인구 혹은 산업예비군도 대대적으로 증대하고, 이에 따라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사회적 대립도 격화되면서 왕왕 정치적 격변을 초래하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상황은 과거와 확연히 구분되는데, 그 차이는 과거의 상대적 과잉인구 혹은 산업예비군의 증대가 순수하게 경제적 과정의 결과였음에 비해서 최근의 그것은 그러한 경제적 과정의 결과라는 사정에 더해서 그것이 국가적 규모에서 정책적․의식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하는 점이다. 과거에는, 그것이 케인즈주의적 사민주의 정권이든 아니면 보수당 정권이든, 공황 시에는 이른바 경기부양정책 혹은 확대정책을 통해서 급격한 실업의 증대를 억제하는 것이 적어도 1930년대 이후의 대체적인 국가정책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은 일변하여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국가가 대량해고를 독려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대량실업 사회․고율실업 사회이다. 경제위기 폭발 이전 상당 기간 동안 한국에서의 ‘공식’ 실업률은 2~3%였고, 이에 기초하여 자본 측은 으레 ‘노동력 부족’에 따른 ‘고임금’을 호소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호소의 연장선상에서 90년대에 들어 와서는 ‘노동력 부족’을 해소한다는 명목 하에 중국 및 동남아 등지로부터 값싼 노동력을 수입하여 가히 노예적 착취를 감행하고, 노임의 상승을 억제하는 기구로 이용해 왔다.

그러나,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이번의 경제위기가 폭발하기 이전에도 실제로는 한국사회에 ‘노동력 부족’과 같은 사태는 한번도 있은 적이 없었다. 대도시의 가로나 시장 주변에는 언제나 실업자, 불완전 취업자, 경찰이나 구청의 단속에 쫓기는 행상 등등 각종 형태의 상대적 과잉인구 혹은 산업예비군으로 넘쳤다. ‘노동력 부족’이란 엉터리 통계가 조장하는 허위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했고, 사회적 생계비에 훨씬 못 미치게 밖에는 제시하지 않는 임금에 대해서뿐이었다. 예를 들면, ‘노동력 부족’을 특히 심하게 호소해 온 이른바 ‘3D 업종’의 경우, 조금만 정의로운 사회라면 작업이 그렇게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만큼 그만큼 높은 임금이 제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거꾸로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는 저임금이 제시되니까 ‘노동력 부족’ 사태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동력 부족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문제의 본질은 노동력 부족이 아니라 생계비 이하의 저임금이었는데, 자본은 이를 거꾸로 이용하여 저임금 노동력 수입 등 착취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상황 속에서 상황을 더욱 급격히 악화시킨 것이 이번의 경제위기이고, 국가의 ‘구조조정’ 정책이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한국사회는 명실공히 대량실업 사회, 고율실업 사회로서 구조화되었다. 최근 수 개월 사이에 생산이 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했다는 보도도 거듭되고 있고, 그에 따라 실업률도 다소 낮아졌다는 보도나, 파트타임, 임시직 등등 취업의 불완전성과 불안정성은 더욱 증대하여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고율 실업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사실상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른바 ‘구조조정’이니 ‘감량경영’이니 하는 것이 일상적인 상태로 구조화되어 가고, 또한 이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는 과학기술혁명이 급격한 속도로 진전되는 속에서 향후 실업문제가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시 경향적으로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고, 따라서 이후에도 이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정치적․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전개될 것이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근본적 변화를 추동하는 핵심적 요인으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의 위기를 계기로 본격화되어 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변화 중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차원에서의 세계체제화, 초국적 독점자본에의 종속적 편입이 있다. 반봉건적 농지개혁이 상당히 철저하게 수행되고 동시에 급속한 농민층 분해의 조건들이 조성된 점, 한국의 산업에 대한 초국적 독점자본의 직접적 지배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점 등이 어쩌면 그 동안 한국 자본주의를 중남미의 그것들로부터 구별짓는 주요 특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을 계기로 초국적 독점자본의 세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이번의 위기를 계기로 급격히 그 지배가 증대되고 있다. 특히 국영기업의 민영화․해외매각 및 대기업의 해외매각 등은 김대중 정권의 주요 경제정책을 이루고 있고, 그만큼 초국적 독점자본에의 한국 자본주의의 종속이 급격히 심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종속의 심화는 당연히 민족주의적 저항을 불러올 것인데, 그에 못지 않게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강화로 나타나면서 결국은 계급적 저항도 한층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5) 해외자본의 유입이 얼마나 노동자계급에 대한, 따라서 민중 일반에 대한 파시즘의 강화로 나타나는가는 박정희 정권이 이미 1970년대 초에 외자 유치를 위해 마산수출자유지역 등을 설정할 때에 겪었던 것인데, 최근에 급격히 증대하고 있는 자본 유치의 후과도 그러한 전례와 다르리라는 어떤 보증도 없다. 이러한 파쇼의 강화는 물론, 고율의 착취를 위한 조건6)을 현지 정부가 보증하라는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그들 자본을 사실상 후견인으로 하는 정권이 굴복하고 협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규모에서의 노동자․민중의 결코 만만치 않은 저항과 또한 제국주의 상호간의 이해 충돌로 그 성사 여부가 아직 불분명한 이른바 다자간투자협정(MAI)을 대신하여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미간, 그리고 한․일간 투자협정의 주요 내용도, 상호주의를 빙자하여, 한국정부로 하여금 그러한 착취조건‘투자조건’을 보증토록 하는 것임은 물론이다.7)

이 외에도 이번 경제위기를 계기로 이른바 ‘교육개혁’을 서두르는 등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은 두루 여러 부문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변화도 광범위에 걸쳐서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서 그것들을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주요한 이데올로기상의 변화에 대해서 언급해 두고 싶은데,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대중의 관점 혹은 정서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번의 위기 이전에도 한국 사회 혹은 한국 자본주의는 몇 차례의 경제위기, 즉 공황을 겪었지만, 여러 이유로 대중은 그것을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기 모순, 자기 한계로서의 경제공황으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의식상의 적잖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것을 경제위기 혹은 공황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위기를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하는 모순의 필연적 폭발로서가 아니라 무언가 우연적인 것, 정책상의 실패․오류에 의한 것으로 인식하면서도 대중으로 하여금 그렇게 인식하게 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선전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고, 그에 따라 대중의 의식도 아직 적잖이 그러한 한계에 묶여 있긴 하지만, 동시에 전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의식상의 중요한 변화이고 진전이다. 앞으로 필연적으로 위기가 거듭되고 그것도 증폭됨에 따라서 대중은 그 위기의 본질을 이해해 갈 것이며, 그에 따라 그 모순을 근본적으로 타개하려는 태도를 취해 갈 것이다.


이번과 같은 격화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새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그 발전의 어느 단계에서, 그것들이 그때까지 그 내부에서 운동해 온 기존의 생산관계와, 혹은 그것의 법률적 표현에 불과한 바의 소유관계와 모순되게 된다. 이들 관계들은 생산력의 발전형태로부터 그 질곡으로 일변한다. 그때에 사회혁명의 시기가 시작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함께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혹은 서서히, 혹은 급속히 전복된다. … 하나의 사회구성은, 그것이 생산력에 있어서 충분한 여지를 가지고, 이 생산력이 모두 끝까지 발전해 버리기까지는 결코 몰락하지 않고, 새롭고 보다 고도한 생산관계들은 그 물질적 존재조건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완전히 부화되기까지는, 결코 낡은 것을 대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자기에게 제기한다. 왜냐하면, 보다 상세히 고찰해 보면, 과제 그것은 그 해결의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 하든가, 또는 이윽고 생겨나고 있는 경우에만 발생한다고 언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아시아적, 고대적, 봉건적 및 근대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이 경제적 사회구성의 계기적(繼起的) 시기들로서 표시될 수 있다.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들은 사회적 생산과정의 최후의 적대적 형태이다. 적대적이란 개인적 적대라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들의 사회적 생활조건들에서 생기는 적대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의 태내에서 발전하고 있는 생산력은 동시에 이 적대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이 사회구성으로써 인간사회의 전사(前史)는 끝난다.”8)


맑스의 ꡔ경제학 비판ꡕ(Zur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 Berlin, 1859)의 서문 가운데 일반적으로 ‘사적유물론의 정식’으로 널리 알려진 부분의 일부이다. 여기서 맑스는, 무엇보다도,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그 발전의 어느 단계에서, 그것들이 그때까지 그 내부에서 운동해온 기존의 생산관계와, 혹은 그것의 법률적 표현에 불과한 바의 소유관계와 모순되게’ 되고, 그리하여 ‘이들 생산관계들은 생산력의 발전형태로부터 그 질곡으로 일변’하며, ‘그때에 사회혁명의 시기가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명제를 이해하고 승인하는가 어떤가, 특히 최근의 경제위기와 같은 대파국을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함께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혹은 서서히, 혹은 급속히 전복’되는 사회혁명기(社會革命期)의 개시(開始)로 보는가 어떤가는, 물론 사람마다,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 온 이데올로기 혹은 이해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이해방식 혹은 이데올로기상의 차이를 형성하는 요인은 어쩌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그 가운데 가장 기본적 규정적인 것은 각자의 계급상의 소속, 즉 그들의 ‘사회적 존재’임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회적 존재가 다름에 따라서 각자의 경험이 다르고, 특히 사회생활 일반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물질적 생산관계에서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맑스는 위 인용문의 바로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즉,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및 정신적 생활과정 일반을 제약’하며,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9)이라고.

뿐만 아니라, 맑스는 ‘위 인용문의 중간 생략된 부분이지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변혁들을 고찰하는 데에 있어서는, 경제적 생산조건들에서의 물질적인, 자연과학적으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변혁과, 그것으로 인간이 이 충돌을 의식하게 되고 이것과 투쟁하여 매듭을 짓는 바의 법률적인, 정치적인, 종교적인, 예술적 또는 철학적인 형태들, 간단히 말하면 이데올로기 형태들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개인이 무엇인가를 그 개인이 자기자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에 의해서 판단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변혁의 시기를 그 시기의 의식으로부터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고, 오히려 이 의식을 물질적 생활의 모순들로부터,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충돌로부터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10)


실제로 1997년 말 이래의 경제위기와 관련하여 그 원인․본질․후과(後果) 등등에 대한 이해가 사람마다, 계급마다 확연히 다르나, 여기에서 우리는 당연히 사회적 변동으로서의 경제위기 그 자체, 그리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다시 초래하는 변동 그 자체와 그에 대한 이해(理解) 곧 그 이데올로기 형태를 구분하여 고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찰에 기초하여 우리는, 현재와 같은 거대한 경제위기는, 그리고 이윽고 어쩔 수 없이 폭발할 수밖에 없을 미국 자본주의의 대붕괴에 의해서 더욱 심화되고 격화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경제위기는 사실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세계적인 규모에서 이미 해체․붕괴기에 들어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즉, 그러한 경제위기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그것이 이미 그 내부에서 발전해 온 생산력의 질곡으로 일변해 있어서 그 생산력과 대대적으로 충돌하는 것이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향한 사회의 자기운동이라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는, 쏘련 및 동유럽에서 그 역사적 여건에 의해서 규정된 한계와 굴절 때문에 ‘20세기 사회주의’가 붕괴된 이래 ‘자본의 종국적 승리’라는 허위 이데올로기가 아무리 완강하더라도,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이다.

한/노/정/연


1) 자본의 국경이동에 일정하게 부과하자는 세금.


2) MEW, Bd. 25, S. 457.


3) 경제공황을 극히 관념적․형이상학적으로 이해하여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만을 그 유일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이윤율의 저하가 많은 경우 과잉생산 및 그 이면(裏面)으로서의 과소소비의 표현임을 부인하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맑스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일부 종파주의적 논자들은 이 과잉생산 논의에 대해서 ‘그것은 결국 과소소비론’이라며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그들이 예컨대 다음과 같은 말들을 들으면, “봐라! 과잉생산론은 바로 과소소비론이지 않은가!” 하며 환호작약할지 모른다.

3) 경제공황을 극히 관념적․형이상학적으로 이해하여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만을 그 유일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이윤율의 저하가 많은 경우 과잉생산 및 그 이면(裏面)으로서의 과소소비의 표현임을 부인하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맑스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일부 종파주의적 논자들은 이 과잉생산 논의에 대해서 ‘그것은 결국 과소소비론’이라며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그들이 예컨대 다음과 같은 말들을 들으면, “봐라! 과잉생산론은 바로 과소소비론이지 않은가!” 하며 환호작약할지 모른다.

이런 말들이다. ꠏꠏꠏ “과잉생산은 특히 자본의 일반적 생산법칙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즉, 현존하는 시장의 한계나 지불 능력 있는 욕망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생산력‘바꾸어 말하면, 주어진 자본량으로 최대한의 노동량을 착취할 가능성’에 따라서 생산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 재생산과 축적의 부단한 확대, 따라서 소득의 자본으로의 부단한 재전화에 의해서 수행한다는 점,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가 욕망의 평균 정도에 제한된 채로 있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에 따라서 제한된 채로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점, 이러한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혹은 또, “지나치게 많은 자본이 존재한다는 문구는 사실은 소득으로서 소비되는 것이 지나치게 적다고 하는 것, 또한 주어진 조건 하에서 소비될 수 있는 것이 지나치게 적다고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씨스몽디) 등등.

이런 말들이다. ꠏꠏꠏ “과잉생산은 특히 자본의 일반적 생산법칙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즉, 현존하는 시장의 한계나 지불 능력 있는 욕망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생산력‘바꾸어 말하면, 주어진 자본량으로 최대한의 노동량을 착취할 가능성’에 따라서 생산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 재생산과 축적의 부단한 확대, 따라서 소득의 자본으로의 부단한 재전화에 의해서 수행한다는 점,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가 욕망의 평균 정도에 제한된 채로 있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초에 따라서 제한된 채로 있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점, 이러한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혹은 또, “지나치게 많은 자본이 존재한다는 문구는 사실은 소득으로서 소비되는 것이 지나치게 적다고 하는 것, 또한 주어진 조건 하에서 소비될 수 있는 것이 지나치게 적다고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씨스몽디) 등등.

ꠏꠏꠏ 그러나, 너무 흥분하지는 말아라. 그것은, 뒤의 씨스몽디로부터의 인용까지도, 모두 맑스의 말이어서 그대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으니까. (MEW, Bd. 26II, SS. 534-35 참조).


4) 서두에서도 40년대 말의 미국의 공황과 한국전쟁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이 ‘장기호황’ 역시 그 문자가 표상하는 것과 같은 장기호황은 물론 아니었다. 그것은 극히 불안정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미국경제의 공황과 동요에 의해서 중단되면서 단속적(斷續的)으로만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를 ‘장기호황’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시기의 공황이, 제2차 대전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을 고스란히 보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 전쟁을 통해서 수 배나 증대시켰던 미국을 중심으로 서유럽 일부 국가 등  ‘일부’의 지역과 국가에서만, 그것도 전후 복구 및 냉전 수요에 힘입어 그다지 격렬하지 않은 강도로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5) 한편, 초국적 자본의 대량 유입은 그 반대 쪽에서는 자본의 대량 유출을 의미하는데, 그만큼 거기에서도 실업 문제를 심화시키면서 노동조건 일반을 악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따라서 또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오는 작용을 한다. 이는 예컨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멕시코로 자본이 급격히 유출되고 있는 미국에서의 상황을 고찰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6) 이 고율의 착취를 위한 조건을 저들 자본은 ‘투자조건’이라는 부정직한 용어로 부른다.


7) 한국의 자본 역시 동남아나 등지에서 그러한 제국주의적 요구를 흉내내어 강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다음의 보도를 보라. ꠏꠏꠏ “[다카=AFP 연합] 방글라데시를 방문 중인 한덕수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영원무역이 개발 중인 방글라데시 수출가공지역(EPZ)에 노조활동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방글라데시의 <BSS통신>이 1일 보도했다. / 이 통신은 한 본부장이 지난 달 31일 토파일 아흐메드 방글라데시 무역장관과 만나 ‘수출가공지역에서의 노조활동은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며 따라서 고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ꡔ한겨레ꡕ, 99. 11. 3.)

7) 한국의 자본 역시 동남아나 등지에서 그러한 제국주의적 요구를 흉내내어 강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다음의 보도를 보라. ꠏꠏꠏ “[다카=AFP 연합] 방글라데시를 방문 중인 한덕수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영원무역이 개발 중인 방글라데시 수출가공지역(EPZ)에 노조활동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방글라데시의 <BSS통신>이 1일 보도했다. / 이 통신은 한 본부장이 지난 달 31일 토파일 아흐메드 방글라데시 무역장관과 만나 ‘수출가공지역에서의 노조활동은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며 따라서 고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ꡔ한겨레ꡕ, 99. 11. 3.)

ꠏꠏꠏ ‘노조활동은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발언은 다름 아니라 김대중 정권의 외교통상부 고위관리의 그것인데, 뒤집어 생각하면 외자 유치에 안달인 김대중 정권이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서 취할 정치적 조치들 또한 그 성격이 뻔하지 않은가?


8) 맑스, ꡔ경제학 비판ꡕ(1859) 서문 (MEW, Bd. 13, S. 9.)


9) MEW, Bd. 13, SS. 8-9.


10) MEW, Bd. 13, S. 9.


1999-11-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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