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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통합이 제기하는 과제

현장에서 미래를  제50호
황선길


유럽통합, 가능성과 한계를 고찰한다-(4)마무리 글

-사회적 연대를 통한 한계 극복-


황선길

/현재 브레멘대 박사과정 국제지역, 노사관계론, 직접투자론                         







지금까지 연재된 세 편의 글은 정치․경제․사회적 측면에서 유럽통합의 역사적 과정을 기초로 하여 미래에 발생할 문제점들을 잘 지적하고 있다. 세 명의 학자가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 점은, 유럽통합의 기본적 내용이 친자본적이고 유럽연합 차원의 제도들이 비민주적이고 부패했으며, 회원국간의 사회통합 없이 진행돼 왔고, 더욱이 반사회적이라는데 있다. 또한 선거에서 보수당의 1980~90년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비판하면서 유럽연합 대다수 국가들에서 집권한 사민당 단독정권이나 녹색당과의 연립정부가 모든 분야에서 보수당과의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정권의 교체가 정책의 변화를 강요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서 강조돼야 할 것은 유럽연합의 단계적 발전형태1)가 초국적 산업과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돼왔다는 점이다. 즉 자본의 독점화로 인한 축적의 위기를 지역통합체의 결성과 범위의 확대, 통합정도의 심화를 통해 부분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결국 유럽연합의 발전 형태는 자본의 효율성을 노동자나 빈민의 희생 하에 강화하려는 고전적인 자본지배의 연속선상에서 봐야 한다. 이런 자본의 전략에 상응하는 회원국 정부들은 자국자본의 이해관계를 유럽연합 차원에서 대변하고 있으며, 또한 국가경쟁력의 향상에 유럽연합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회원국 중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독일의 이해가 유럽연합의 정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독일자본주의의 발전에서 보충지역으로써 역할을 수행한 동유럽으로 유럽연합 확대를 독일이 가장 지지하는 이유도, 이를 가능한 한 저지하려는 영국이나 프랑스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 화폐동맹에 참여를 주저하고 있는 영국의 경우, 강력한 영국의 자본이 유럽중앙은행제도에 화폐정책의 권리를 이양하고, 화폐의 가치가 높은 파운드를 단일화폐인 유로로 대체함으로써 생기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유럽군대의 창설에 적극적인 프랑스와 독일은 군산복합체적 산업관계가 국내산업의 운동에 절대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회원국 중의 작은 국가들은 신규회원 참가에 반대하고 있지만 결정권은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연합내의 강대국이 가지고 있다. 이상에서와 같이 유럽연합의 발전을 규정하는 것은 자본의 논리와 자국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회원국가간 힘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또한 더 많은 자본을 자국의 국경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한다.

유럽통합은 또한 전지구적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 한국에서는 유럽연합을 수출형 한국산업에 미치는 영향, 미국세계질서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로서의 성격과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통합의 가능성을 진단하는 모델로 주로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럽연합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유럽연합의 경제․사회정책이 다른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깊숙이 통합된 다른 나라들에게도 유사한 정책을 쓰도록 직․간접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에서의 탈규제화와 민영화, 국가주도 복지체제의 쇠퇴, 산업구조의 합리화와 유연화, 이에 따른 실업률의 증가와 대량실업의 구조화, 임금하락, 수요의 감소, 세계시장에서 유럽상품의 가격인하 등이 다른 지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의 합리화와 자본의 효율성 증대를 강제한다.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유일하게 조직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유럽연합의 노조는 일국차원의 경쟁논리에 포섭돼 단기적인 일자리 지키기에 급급하거나, 유럽연합의 제도들에 포섭되어 자신들이 속한 산업의 안정을 위해 보조금을 둘러싼 자신들끼리의 줄다리기에 매몰돼 있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노조 상층부의 관료화와 출세지향주의에 있지만, 세계시장에서의 국가의 경쟁력 유지와 자신들의 삶을 동일시하는 대다수 노동자의 우경화에도 문제가 있다. 자신들이 일하는 산업의 경쟁력 유지는 동일산업에 종사하는 다른 나라의 노동자나 다른 종류의 산업에 종사하는 자국노동자의 희생에 기반해도 단기간 일자리만 보장된다면 문제로 삼지 않는다.

얼마 전에 있었던 유럽연합 금속노조연맹 산하의 조선노동자들의 항의집회가 이를 명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1월 5일 유럽금속연맹의 주관 하에 12만명의 조선산업 노동자와 하청노동자들의 항의집회가 유럽 12개국에서 동시에 열렸다. 이 자리에서 노조집행부는 위기에 처한 유럽조선산업에서의 일자리를 위해 유럽연합에 보조금 지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집회는 거의 한국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즉 유럽조선산업의 위기와 일자리의 파괴(75년 50만명에서 12만명으로 감축)에 대한 주요 원인을 비합법적인 방식으로(지나친 생산시설 확장과 특히 국가의 보조금지급으로 경쟁력 유지) 세계시장에 생산원가보다도 20퍼센트 낮은 가격에 덤핑 판매하고 있는 한국조선산업에 돌렸다. 독일 금속노조 위원장인 쯔비켈은 연설에서, 유럽연합이 한국정부에 압력을 가해 보조금 지급을 중단시킬 것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차원에서의 조선산업전반에 걸친 협상을 요구했다.

이들은 한국조선노동자의 현실, 장시간 노동과 잔업, 나쁜 작업환경, 낮은 임금 등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 없이, 한국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정부와 연대해 위험하게 하니, 이를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받아 들여져 몇 년간 일자리가 보장될 수는 있지만, 보조금 지급이 중단돼 해고되는 한국의 노동자와 살아남은 노동자에게 닥칠 노동강도의 강화와 저임금 강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 조선산업의 현황을 장기간에 걸쳐, 그리고 수 차례 한국의 노조와 노동단체 등과의 접촉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또한 보조금이 유럽연합 전체 조선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킬 정도로 충분하지 않으면, 각 국가 조선노동자간, 나아가서는 조선소별로 더 많은 보조금을 위한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수많은 예를 가지고 있다.

이상에서 지적된 전지구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방향을 바꿀 방법은 무엇인가? 연재된 두 번째 글과 세 번째 글에서 우리는 중요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후프쉬미트는 유럽사회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 없이 이들의 지속적인 압력이 정책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또한 일국차원에서 아직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에 반해 데트에는 일국차원의 경쟁정책 편입을 지양하면서 가능한 한 계급자치적인 행위자로써 개혁된 노조의 재창설을 통한 새로운 정치구조 재편을 필수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개혁된 노동조합운동만으로는 정책변화를 이끌기가 불충분하다고 보고, 노동조합과 다양한 사회적 저항, 항의운동 사이에 질적으로 새로운 동맹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실업자, 특히 지금까지 노동조합과는 한번도 접촉한 적이 없는 청년 실업자, 권리가 박탈된 이민자들, 표면상 자주적인,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더욱 강하게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의 새로운 형태들, 반동화된 노동시장과 사회정책에 대항해 저항하고 있는 여성들 그리고 환경운동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결국 데트에는ꡐ사회적 문제’들이 모든 차원에서 재정치화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에 기반한 투쟁만이 유럽연합에 새로운 정책을 만들 수 있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회적인 유럽연합은 유럽차원을 넘어선 연대의 필수조건이고,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맞서는 세계적 차원에서의 노동자, 민중연대의 하나의 시금석이다.

한/노/정/연


1) 지역경제통합의 단계론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호주와 뉴질랜드 두 국가간의 경제통합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통합정도가 발전한 통합체다. 단계론의 이론적 기초는 미국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인 발라사(Bella Balassa)에 의해 정식화됐다. 발라사는 각 민족국가들의 정치 경제체제가 시장에 의해서 연결돼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단계론의 최초 통합형태는 ꡐ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ꡑ인데, 이는 회원국간의 역내관세를 0퍼센트까지 줄일 수 있지만, 각 회원국들은 상이한 역외관세를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음 단계가 ꡐ관세동맹(Customs Union)ꡑ인데 이는 회원국이 공동의 역외관세를 도입한다는 점에서 자유무역지대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보통 학자들은 관세동맹부터 하나의 경제통합체로 인정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무역 자유화를 위해 결성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중 제 24조항이 관세동맹 결성 후 도입된 평균공동역외관세율이 도입 전 회원국들의 평균관세보다 높게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관세동맹을 허락하고 있다. 세 번째 단계가 ꡐ역내공동시장(Common Market)ꡑ인데, 회원국간에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경제, 재정, 사회, 세금정책에 공동의 보조를 취하는 단계이다. 다음 단계는 ꡐ화폐동맹(Monetary Union)ꡑ인데, 두 가지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첫째가 현재 유럽연합이 취하고 있는 것이데, 단일한 화폐를 도입하는 것이고, 또 다른 방식은 회원국간의 환율을 고정하고 바꾸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가 정치연합(Political Union)이다. 이상의 단계론 입장에서 파악하면 유럽연합의 현재 단계는 화폐동맹의 준비단계이다. 아직 자유무역지대도 완성하지 못하고 개방지역주의를 표방하는 아펙(APEC)이나 자유무역지대에서 머물고 있는 나프타(NAFTA)에 비하면 상당히 진전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1999-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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