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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계급 정치의 역사적 주제로서 노동자정치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50호
김영수


         

노동자 계급정치의 역사적 주체로서의 노동자 정치운동*

김 영 수

연구위원/외국어대박사 정치학








1. 문제제기


21세기 한국사회의 미완의 정치 프로젝트는 노동자 계급정치를 정립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이미 역사적으로 한국의 부르주아 계급은 계급적주체들을 몰계급적 대중으로 우상화하면서 부르주아 계급정치를 정립하고 현실화(actualization)시켜 왔지만,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의 절대다수인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정체성(Identity)을 해체시키는 부르주아 국가의 통제전략”1)으로 말미암아, 정치적으로 항상 피지배계급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계급정치를 봉쇄하면서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사회적 관계를 정치적으로 엄폐․은폐시켜 왔을 뿐이다. 그런데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계급이해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저항이 일상화되는 과정에서, 그러한 저항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계급적 통일성이 약화될 때 국가권력의 계급적 본성을 드러낸다. 부르주아 계급의 제반 이해를 반영시킬 수 있는 국가권력의 통일성이 재구축되는 것이다.

이러한 계급역관계의 변화 과정에서 피지배계급의 이해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계급주체들은 노동자 계급정치의 다양한 전형들을 모색해 왔으며, 노동자 계급의 국가권력을 수립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노동자 계급의 계급역량에 따라 혹은 계급투쟁의 결과에 따라 계급정치의 패러다임은 다양하게 변화하였으며, 노동자 계급의 이해 역시 사회의 전영역에 다양하게 반영되었다.

한국의 노동자 정치운동 역시 역사적 발전의 과정에서 다양한 노동자 계급정치론이 생성되고 명멸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정치의 ‘노동자 계급 중심성 테제’는 사회적 계급역관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경로를 밟았다.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모순이 심화되는 현상을 해결해 나가는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되는 과정이었고, 그러한 방안들을 사회적으로 현실화시켜 나가는 다양한 주체들의 형성과정이었다. 그 흐름을 역사적으로 정리해 보고, 21세기 한국사회의 미완의 정치 프로젝트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형성에 필요한 노동자 계급정치의 몇 가지 전략들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2. ‘노동자 계급 중심성’의 형성과 분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노동자 계급은 국가-자본과의 계급역관계를 둘러싼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정치를 사회적으로 현실화하는 정치적 계급주체를 형성한다. 그것은 첫째로 노동자 계급의 계급조직 및 권력주체의 형성으로, 둘째로 계급역관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계급역량의 형성․강화로, 셋째로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대한 계급투쟁의 통일성 추구 등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계급주체는 단기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길게는 자본주의 체제가 태동한 그 순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과제이고, 짧게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저항이 폭발한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과제이다.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관계에 저항해 왔던 노동자들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제반 이해를 착취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계급적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총체적인 활동의 주체, 즉 노동자 계급의 권력주체를 형성해 왔다. 하나는 노동자 계급의 대중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조직으로서의 노동자 정치운동 조직이었다. 이 양 주체들은 노동자 대중들의 계급적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계급투쟁의 주체이자,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켜 나가는 역사적 주체들이었다.

한국 노동자 계급 역시 계급투쟁의 역사적 축적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 계급주체를 형성시켜 왔으며, 그러한 계급주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계급투쟁이 전개되어 왔다. 이러한 투쟁은 한국에 자본주의가 도입된 이후 지속되고 있지만, 1948년 남한 단독정권의 수립 및 5․16군부 쿠데타로 상당 기간 동안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 노동자 계급은 1970년 전태일 분신투쟁을 계기로 정치적 계급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투쟁을 복원하기 시작하였다. 노동자 계급의 계급조직 혹은 권력주체 형성의 맹아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의 민주노조운동이 그것이다. 1970년대의 노동운동은 노동자 정치운동의 개별적인 활동가들이 노동조합운동에 비조직적으로 결합한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사안별․자연발생적 투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970년대 노동자 계급은 투쟁의 성과를 계급역량의 강화로 모아 내지 못하였고, 또한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의 통일성을 이루어 내지 못하였다. 이는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에 기초하고 노동조합운동과 긴밀하게 결합된 계급주체들이 정치적․조직적으로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전개된 투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노동자 계급은 1980년 광주항쟁을 거치고 난 이후 현재까지 ‘노동자 계급의 계급조직 및 권력주체의 형성, 계급역량의 강화를 위한 활동, 국가권력에 대한 계급투쟁의 통일성을 지향’하는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 시기별로는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에 따라 네 시기로 구분된다. 첫째 시기는 1980년 5월~1987년 6월까지의 형성기이다. 둘째 시기는 1987년 7월~1991년 5월까지의 강화기이다. 셋째 시기는 1991년 6월~1996년 11월까지의 약화기이다. 그리고 넷째 시기는 1996년 12월~1999년 8월까지의 분화기이다.

1) 노동자 계급 중심성의 형성기(1980년 5월~1987년 6월)

광주항쟁이 끝나고 난 이후 학생운동 내부의 선진적인 활동가들은 노동현장 참여투쟁2)을 전개하여 정파적인 계급조직 혹은 권력조직을 형성하려 하였고,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활동가들은 경제주의적 노동조합운동을 극복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민주화 투쟁과 임금인상투쟁에 긴밀하게 결합하였다. 이러한 주체들은 노동현장의 선진적인 활동가들의 양성, 노동조합의 결성 및 민주화, 공동임금인상 투쟁, 반정부적인 개헌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비록 정파적 주체들은 정치노선의 차별성으로 말미암아 계급투쟁의 전략과 전술의 통일을 이루어 내지 못하였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역량을 강화시켜 내는 활동과 계급조직 및 권력주체의 형성을 위한 활동에 주력하였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투쟁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계급적인 동맹투쟁의 실질적인 동력으로 작용하였고, 노동자 대중들을 1987년 이전의 반정부 민주화 투쟁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동력으로도 작용하였다. 이러한 점들을 전제로 한다면,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의 실질적인 동력은 ‘계급중심성’을 지향하고자 했던 노동현장 참여투쟁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노동자 계급은 다양한 투쟁을 계급역량의 강화로 혹은 국가권력에 대한 통일적인 투쟁으로 전화시키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전국적인 계급조직 및 권력주체가 형성되지 않았고, 노동조합운동 내부에서 정파적인 세력간의 헤게모니적 경쟁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2) 노동자 계급 중심성의 강화기(1987년 7월~1991년 5월)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첫째 시기에 형성된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을 강화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투쟁으로 현실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노동자 계급은 한 축으로는 노동자 대중들의 자기조직인 노동조합운동의 전국조직을 결성하는 투쟁을 전개하였고, 다른 한 축으로는 노동자 정치운동의 전국적이고 통일적인 조직을 결성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전자의 투쟁은 전노협 결성투쟁이었고, 후자의 투쟁은 전국노운협을 비롯한 전국적인 정치조직 결성투쟁이었다. 이러한 투쟁은 곧 부르주아 국가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계급조직 및 권력주체의 형성과정이자 계급역량을 통일적으로 결집시켜 내는 과정이었으며, 또한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의 통일성을 강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다양한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은 전노협 결성투쟁에 긴밀하게 결합하였고, 이러한 결합을 토대로 민주노조운동의 이념이 ‘노동해방, 평등사회 구현’으로 정립되는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다. ‘계급중심성’이 노동자 대중들의 자기조직으로 체화된 대표적인 경우이다. 물론 어떠한 조직이든지 정강정책만으로 그 조직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방정국 이후 억압과 착취만을 당해 왔던 한국 노동자 대중들은 민주노조운동을 표방하는 전국조직의 결성 그 자체만으로도 ‘계급중심성’에 기반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었고, 그러한 투쟁역량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전노협 사수투쟁’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전노협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대중들은 사수투쟁의 과정에서 ‘생존권적인 요구, 법․제도상의 기본권적인 요구, 반정부적인 요구, 반체제적인 요구’ 등을 동시에 제기하면서 ‘계급 중심성’에 기반하는 노동조합운동의 토대를 구축하였다.

노동자 정치운동 내부에서 또한 전국적인 수준에서 변혁운동의 정치적 지도구심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 노동자․민중연대사업의 강화,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등을 추진하기 위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비록 노동자 정치운동의 전국적인 조직주체들이 다양하게 분산3)되어 있었지만, 이들 주체들은 ‘전노협 결성투쟁과 사수투쟁’에 상응하는 다양한 투쟁을 전개하였고, 공히 사회변혁운동의 노동자 ‘계급중심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노동자 계급정치의 권력주체들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3) 노동자 계급 중심성의 약화기(1991년 6월~1996년 11월)


이 시기는 노동운동 내부에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이 희석화되고 탈계급주의적인 경향성이 대두되는 노동자계급 중심성의 ‘약화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소련 및 동구권 국가들의 패망, 노동자․민중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계급연합적인 합법정당 건설운동, 전노협 및 노동조합 역량의 약화현상 등을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면서 대두되었다.

전국민족민주연합(이하 전민련) 내부에서 이탈한 세력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이후에 한노당이 결합하였던 민중당 결성운동의 주체들은 진보적인 합법정당 결성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한 투쟁의 명분은 사회주의적 변혁 이데올로기의 비현실성, 투쟁 지상주의의 국민적 고립성, 제도 정치권에 투쟁의 근거지 확보, 선거정치를 통한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 등이었다. 그러나 민중당 결성투쟁의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었는데, 그것은 계급화해주의, 분열주의, 명망가 중심주의, 상의하달식 운영, 합법주의 및 의회주의 등이었다. 합법정당 결성투쟁은 투쟁의 명분 자체도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지만, 노동자 정치운동의 ‘계급중심성’을 희석화시키는 정치운동으로 변질되었다. 이를 계기로 노동자 대중들의 ‘계급중심주의’적인 계급투쟁이 성장하는 상황에서 탈계급적인 정치노선이 노동자 정치운동 내부의 주요한 경향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경실연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의 주체들도 전노협의 전투적인 계급투쟁과 노동자 정치운동 내부의 사회주의 정치운동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하였고, 탈계급적인 운동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나갔다. 물론 이러한 경향성은 노동조합운동의 노선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제기되었다. 노동자 계급운동 내부에서 1990년 이후 노동조합 조직화 상승률의 하락, 노사분규의 급속한 감소, 노동자 계급구성의 변화 등의 근거로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위기상황’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가속화되었다. 전노협을 중심으로 한 ‘전투적 조합주의’4)가 민주노조운동의 통일적인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었다. 전노협의 ‘엘리트주의적이고 분파적인 리더쉽, 이념의 관념적 급진주의와 최대강령주의, 전투적 투쟁방식’5) 등의 청산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내적 연대통일성을 이루어내자는 것이었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내적 통일성의 실현과제를 전노협의 주체역량 구성조건의 변화에서 찾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노협이 노태우 정권의 집중적인 탄압으로 안정적인 조직역량을 구축할만한 조건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직사수투쟁을 전개해야만 했었기 때문에, ‘상의하달식6) 조직동원투쟁과 노동자 정치운동・민중민주운동과의 연대투쟁’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노동자 계급운동의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탈계급적인 노동조합주의와 계급화해적인 정치노선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탈계급적이고 계급화해주의 노선은 학술진영 내부에서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되었고, 탈중심적인 다양화의 논리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였다. 부르주아 계급이 몰계급적 대중을 극도로 우상화하는 다원주의 이론을 노동자 계급운동의 현실이라는 근거를 내세우면서 수용하였다. 소위 신사회운동으로 표상되고 있는 노동자 계급정치의 미시적 이론은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을 폐기한 것이다. 홉스 봄(Eric Hobsbawm)은 미시정치이론을 정체성의 정치로 설명한다. 즉 “소수의 전문적인 그룹성원들의 정치적 공동이해와 탈계급적인 시민-민족주의(Citizen-Nationalism)에 조응하는 이해만을 추구하는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7)가 노동자 계급정치의 탈계급성을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탈계급주의는 1996~97년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이 전개되기 이전까지 노동자 정치운동 내부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이 흐름은 노동자 계급이 사회변혁운동의 실질적인 주체로 등장하게 되고, 국가-자본의 신자유주적 자본축적전략의 계급적 공세가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급화해주의 노선을 고수하는 동학으로 작용하였다. 노동자 대중의 현실은 ‘계급중심주의’를 요구하고 있지만, 그러한 현실을 탈계급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흐름이 노동자 계급운동의 주요 경향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이 대두되게 된 주요 원인을 지적하면 아래와 같다. ①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패망을 사회주의 이론의 문제점으로 인식하는 이데올로기적 혼돈, ②노동자 계급운동의 현실에 대한 비과학적 인식, 즉 노동자 계급운동론의 위기를 노동자 계급운동의 위기로 전가시키려는 경향, ③노동자 정치운동을 ‘정당중심주의’적으로 인식하는 경향, ④노동자 정치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정치적 선점주의 혹은 정치적 패권주의의 경향, ⑤노동자 계급운동의 현실을 이론적으로 재단하는 이론주의적 편향 등이었다.



4) 노동자 계급 중심성의 분화기(1996년 12월~1999년 8월)


노동자 정치운동 내부에서 반(反)보수주의 정치 패러다임으로 계급화해주의를 정당화시키려는 경향성과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계급주체를 형성하려는 경향성간의 분화가 이루어지는 분화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노동자 정치운동은 계급화해적인 ‘신조합주의, 합리적 노동조합주의 국가-노동-자본간의 상호협조주의’ 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계기로 계급타협주의 정치와 계급중심주의 정치간의 분화를 도모하고 있다.

계급 타협주의 정치는 노동자 정치운동 내부에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는 신조합주의와 의회 중심적인 선거주의로 표상되었다. 두 가지의 경향성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였는데, 전자는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장치를 매개로 관철되었고, 후자는 노동자 계급의 1997년 대통령 선거투쟁과 그 이후의 진보정당 건설투쟁으로 관철되고 있다.

임혁백8)은 “신조합주의와 협의주의가 계급조직간의 갈등 해결기제로 적용되는 것이다. 신조합주의는 계급타협의 보장자로서의 국가의 권위적 통제의 역할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계급조직 상호간에 장기적인 이익의 향상을 꾀하는 최적의 집단적 획득전략이고, 협의주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경쟁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면서 계급조직간의 최소한의 권력분점을 보장․제도화하고 상호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상호공존전략이다.”9)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신조합주의에 대한 제솝의 비판적 주장10)과 같이,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는 의사적인 계급타협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권위적 통제수단으로 오히려 임금 노동자들을 위협한다. 계급타협전략으로서의 신조합주의와 협의주의는 계급타협의 조건을 구축할 수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적인 속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노동자 계급의 계급투쟁을 부르주아 국가체제 안으로 포섭․통합시키고,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계급정치운동의 역량을 분할․고립화시켜 나가는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전략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러한 계급타협주의적 경향성은 선거투쟁과 진보정당 건설투쟁에서도 나타났다. 노동자 정치운동은 민주노총의 위원장을 1997년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내세워 선거투쟁을 전개하였다. 1996~1997년 총파업 투쟁의 역량을 대통령 선거투쟁으로 결집시키고, 결집된 역량을 토대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선거투쟁은 ‘애국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선거전략의 기조, 몰계급적인 득표우선전략, 노동자 대중들을 정치활동의 대상화, 노동자 대중의 이탈을 촉발시킨 기부금 형식의 재정 모금’ 등의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따라서 19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21이 추구했던 ‘탈계급적 국민주의 득표확대전략’은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의 정체성에 기반하는 노동자 대중들의 탈계급적 투표행태론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만약 정당들이 선거후보전술에 있어서 노동자들을 계급으로서가 아니라 대중들․인민들․납세자들․단순한 시민들로 동원한다면, 노동자들은 계급의 성원으로서 혹은 노동자로서 투표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다.”11)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계급으로 조직되지 않는 한, 유권자로서의 노동자들은 종교․종족․언어․성․지역․소비자 등 노동자 계급 이외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들에 기반하여 투표할 것이다. 왜냐하면 1985년 쉐보르스키가 지적한대로 ‘노동자들은 계급보다 집단적 정체성 혹은 대리주의적 위임만을 추구하는 다양한 조직(정당, 노동조합 등)들에 대해서는 투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12)

그리고 1997년 대선투쟁이 끝나고 난 이후,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은 정당건설을 분명하게 지향하는 정치조직으로 전환되어 진보정당 건설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원칙은 1999년 상반기 진보정당 창당 추진의 과정에서 ‘노동자가 앞장서고 민중이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의 건설’이라는 원칙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노동자 중심성이라는 원칙이 폐기된 것이고, 또한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제시된 창당의 기본원칙인 ‘계급연합 정당의 건설’이라는 기본적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동력으로 하여 국민승리21은 1999년 4월 18일의 진보정당 창당추진위원 대회와 6월 13일의 제2차 진보정당 창당추진위원대회, 그리고 8월 29일의 진보정당 창당 발기인대회를 거쳐 민주노동당(준)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에 ‘신조합주의, 의회 중심적인 선거주의, 계급연합정당의 건설’ 등을 비판해 왔던 세력은 진보정당 추진위원회를 “1980년대 이후의 전투적․변혁적 노동운동의 역사적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정치세력화 투쟁을 전개하는 세력”13)으로 간주하면서, 새로운 정치조직 건설을 위한 예비모임을 결성하였다. 전투적․변혁적인 노동자 계급운동이 계승․복원되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그래서 이 예비모임의 주체들은 정치조직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14) ①노동자․민중들의 투쟁과 항상 결합되는 정치조직. ②노동운동의 전투성․계급성을 정치투쟁의 영역으로 확장․심화시켜 나가는 정치조직. ③노동조합운동 내부를 민주적으로 혁신하고, 노동운동을 민주적․계급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조직. ④노동자․민중들의 일상적인 생활영역에 실천적으로 개입을 확장시켜 나가는 조직.

노동자 계급운동의 전국적인 대중투쟁의 강화로 1980년대의 전투적이고 변혁적인 노동자 계급운동을 계승․복원하고, 동시에 노동자 계급의 계급성에 기반하는 정치투쟁의 강화와 노동자 계급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이 예비모임은 1999년 8월 8일에 노동자의 힘 준비모임을 결성하였다. 노동자의 힘(준)은 부르주아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를 매개로 하는 ‘대중 우상화 전략’과 ‘계급이해 은폐전략’을 대중적인 투쟁의 정치로 극복하려 한다. 그래서 노동자의 힘(준)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전략이 강화되고 있는 현 단계를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전면적인 투쟁의 국면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계급이해 은폐전략을 무너뜨리고 노동자 계급의 계급이해에 기초하는 계급적 정체성을 강화시키기로 하였다.

3. 노동자 계급정치의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한 몇 가지 전략 


부르주아 계급정치는 제도화된 부르주아 선거정치를 매개로 하여 계급적 대중들을 몰계급적 대중으로 우상화하고 있고, 부르주아 계급의 제반 이해를 관철시키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은폐시키고 있다. 노동자 계급정치의 정체성(identity)을 약화시키거나 그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부르주아 계급정치가 계급적 대중을 개별화된 대중으로 의제(擬制)화하는 대중정치로 전이되어 왔으며, 그 주요한 기제는 부르주아 계급의 전위적 역할을 담당하는 소위 대중정당이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로 물신화되는 부르주아 계급의 ‘대중 우상화 전략’과 ‘계급이해 은폐전략’이 관철되는 부르주아 계급의 통제장치인 것이다. 이 전략들은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국가 중심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으로 전화하는 기능과 노동자 계급을 정치적으로 소외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정치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대중 우상화 전략’과 ‘계급이해 은폐전략’에 저항하는 정치적 패러다임을 구축하여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계급주체 형성전략’과 ‘정치적 소외 극복전략’을 토대로 하는 노동자 계급정치의 실현으로 보다 구체화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정치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identity)을 저해하는 요소가 극복되어야 하고 노동자 계급을 몰계급적 대중으로 우상화하는 대중정치가 극복되어야 한다. 즉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계급주체를 형성하는 전략과 정치적 소외를 극복하는 전략이 현 단계 한국 노동자 계급정치의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하여야 하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계급화해주의적 경향의 극복, 의회 및 선거 중심적인 경향의 극복,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형식주의적 경향의 극복, 노동현장과 긴밀하게 결합하는 경향의 강화’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identity)을 저해하고 노동자 계급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전략의 하위동반자로 체제내화하려는 모든 ‘계급화해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

제1기 민주노총의 개량주의적 사회개혁운동과 노사정위원회 참여전술, 그리고 의회 중심적인 선거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전략으로 형성되고 있는 계급적 대립전선 자체를 희석화시켜 왔다. 그래서 노동자의 힘(준)은 발족 선언문에서 “김대중 정권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전략을 자본운동의 과잉생산/과잉축적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위기’로 뒤집으려는 자본축적전략이자 심화된 구조적 모순의 폭발에 불과하다”15)고 평가하는데, 이것은 김대중 정권을 체제강화적인 부르주아 개혁논리를 앞세워 총자본과 총노동간의 계급전선을 은폐하는 세력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또한 김대중 정권의 부르주아 개혁논리에 편승하는 노동자 계급운동 내부의 개량주의 세력과 그들의 노선을 경계하면서 총자본과 총노동간의 계급투쟁전선을 형성․발전시키려는 것이다. 노동자의 힘(준)은 노동자 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 공히 계급적 단결과 투쟁으로 총자본의 이데올로기적 무기인 국가주의, 애국주의, 부르주아 민족주의, 경쟁력주의, 노사협조주의, 국민화합주의를 극복해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대항이데올로기를 1990년 전노협의 이념이었던 ‘노동해방-평등사회의 건설’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항이데올로기는 몰계급적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노동자 계급의 이념적 정체성(identity)을 형성․강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 노동자 정치운동 차원의 의회주의적․선거주의적 경향과 노동조합운동 차원의 노동자주의적 경향이 극복되어야 한다.

이는 노동자 계급이 대리주의적 의회정치가 아닌 직접적인 현장정치의 주체로 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리주의적 의회정치의 경향성은 노동자 계급의 계급역량이 강화되는 동학을 정당 중심의 조직 형식주의 또는 선거 중심의 정치행태주의에서 찾고자 하는 필연적 결과이다. 민주노총이 대중조직으로서 진보정당 추진위원회를 조직적으로 지지한 사실은 이중적인 측면에서 의의를 지닌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대중조직이 진보정당에 조직적인 주체로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는 점이고, 노동자 대중들 스스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대중조직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의식의 정도, 즉 노동자 대중들 내부에 존재하는 부문주의, 노동자주의, 민중주의, 개량주의, 의회주의, 변혁주의 등을 조직적 결정으로 획일화시켜 내고 있다는 점이다. 반(反)보수주의적인 정당의 정치적 주체세력을 단일한 세력으로 간주하는 패권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당이 국민승리 21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노동자 대중들의 동력이 결합되지 않는 주요한 원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의 원인을 노동자 대중들이 생존권 확보투쟁에 집중되어 있어서 정치조직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인식하기 힘들었던 상황에서 찾는다면, 노동자 대중들의 생존권 문제를 경제적인 것으로 한정시켜 버리는 부르주아 세력의 정치논리와 다를 바 없으며, 노동자 대중들의 정치의식의 저열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부르주아 정치일정에 맞추는 방식의 정당건설은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를 자초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정치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전략의 부재에서 초래되는 현상이다. 만약 진보정당의 결성이 노동자 대중들의 정치의식의 저열함을 극복해 나가는 역사적 과정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단일한 정치세력만을 지지하고 참여한다는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는 노동자 대중들의 다양한 의지와는 무관한 지도부들의 권위주의적 결정이자 노동자주의적인 결정에 불과한 것이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이러한 경향성은 노동조합운동 내부의 노동조합주의와 노동자주의적 경향성이 결합되면서 가속화된다. 노동조합운동의 이념과 노선은 지도부들의 의지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조직의 양적 확대에 따른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마련되지 않으면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는 잠식될 수 있다. 이를 위한 극복의 방안은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며, 노동자 대중들의 의지가 관철되는 조직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직의 권력을 위임받은 주체들이 조직의 주인이 아니듯이 조직의 주인들이 조직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조직원 대중들이 명망가 중심의 지도부들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상향식 권력구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권력구조를 구축하려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주요한 목표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노동자의 힘(준)은 “민주노동당(준) 내의 개량주의, 의회주의의 흐름을 약화시키고, 노동자의 계급적 정치운동의 발전에 긍정적인 경향성을 발전시킴으로써, 김대중 정권의 체제내적 포섭전략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정당운동에 대응하기로 하였다.”16) 진보정당운동의 개량주의와 의회주의의 문제를 대중적 쟁점을 유도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문제를 지도부만의 의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강화시켜 나가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는 노동자 계급이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서 새로운 계급정치의 주체를 형성하는 전략적 과제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셋째, 노동자 계급을 정치적으로 대상화하고 소외시키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형식주의적 경향의 극복이다.

정당의 결성이 곧 정치세력화이고, 선거에서의 득표획득이 곧 정치세력화의 역량이고, 그리고 정당의 주체들만이 곧 사회의 대안세력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성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내용과 형식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은 이러한 형식주의를 목적의식적으로 조장하면서 실질적인 권력주체들을 권력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 정치운동 역시 노동자 계급을 정치적으로 대상화하면서 노동자 계급정치를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아류로 전락시키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정치적 대상화 전략은 권력의 주체들을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또한 노동자 정치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정치적 대상화 전략은 노동자 대중들을 선거정치에만 동원하는 것을 주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대상화 전략들은 결국 권력을 위임해 준 권력주체들을 권력으로부터 소외시키려는 권위주의 혹은 권력 독점주의에 불과하다. 정치는 존재하지만 권력의 주체들이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목적의식적으로 조작하는 것이고, 단지 권력의 주체들을 주기적이고 일회적인 권력의 행사에 제한시키는 부르주아 계급의 의회정치만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정치권력의 대상화 혹은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의 산물이어야 한다. 이는 권력을 행사하고 집행하는 공간을 확장시키는 과정인 것이며, 부르주아적인 제도와 절차를 뛰어 넘는 정치활동의 방식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노동현장과 긴밀하게 결합된 노동자 계급정치의 전형은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창출될 것이다.

이는 일상적인 생활공간과 노동현장에서 노동자 계급의 권력이 능동적으로 형성․집행되고, 노동자 계급의 제반 이해를 관철하는 다양한 방식이 구축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현장권력을 강화하는 투쟁, 노동현장의 투쟁과 정치적 가두투쟁 혹은 민중연대투쟁과의 결합, 대중투쟁에 기초하는 선거전술,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일상적으로 행사하는 투쟁, 노동현장의 대중들을 정치적 계급주체로 전화시키는 투쟁, 계급적 정체성(identity)에 기반하는 계급정당을 건설하는 투쟁 등이다. 노동자의 힘(준)은 계급정치로서의 노동자 정치활동의 전형을 다음과 같이 상정하고 있다. “①자신의 일상적인 요구와 투쟁을 전체 노동자 계급의 요구와 투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정치, ②노동자․민중투쟁의 정치적 발전을 자신의 일상적인 활동으로 전개해 나가는 정치, ③선거활동 중심으로 굳어져 있는 정치활동의 협소함을 극복해 나가는 정치, ④노동자 직접 정치, ⑤자본과 권력의 운동이 존재하는 계급적 현실 그 자체를 활동의 기반으로 하는 정치”17) 이 외에도 노동자 계급정치의 다양한 전형들이 창출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전형들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역량 및 계급역량의 통일성을 강화시켜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노동자 계급정치’이자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노동자 계급을 해방시켜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노동자 계급정치’이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역량과 계급역량은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 헤게모니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보수주의 정치세력들이 계급정치를 은폐하면서 부르주아 계급의 전위세력으로 존재해 왔듯이, 노동자 정치운동의 정치적 계급주체들은 은폐된 노동자 계급의 계급정치를 사회적으로 현실화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전위세력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넷째,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계급주체가 노동현장과 긴밀하게 결합된 상태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정치적 계급주체의 형성은 선언적으로 혹은 지도부만의 조직화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노동조합이 하나의 정치조직에 조직적으로 결합한다고 해서 노동자 대중들의 불균등한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이 균등해지거나 발전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것은 노동자 계급이 계급적 혹은 전 사회적 관점에서의 역량, 즉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러한 투쟁의 동력은 노동자 대중들의 직접적인 자기요구에 존재하고 있으며, 투쟁의 지도역량 또한 공식적인 지도부만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계급의 계급역량은 현장조직 및 현장권력을 강화하는 과제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노동자 대중투쟁과 그 역량은 노동조합운동의 기초단위인 단위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비롯된다. 노동자 계급의 주체형성은 형식적으로는 조직주체의 결성으로 현실화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자 계급투쟁의 현장역량으로 현실화된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노동자 계급의 현장권력은 노동-자본간의 관계에서, 노동-정부간의 관계에서,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 정치운동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의 지도와 대중간의 관계에서 노동자 대중들의 의지가 실질적으로 관철될 수 있는 노동자 대중들의 역량을 의미한다. 계급역관계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기제인 것이다. 그러나 현장권력은 노동현장의 선진적인 활동주체들이 존재하지 않는 한 강화되기가 쉽지 않다. 테르본(G. Therborn)의 지적대로 계급투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계급주체의 형성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계급투쟁의 동원력은 노동현장의 선진적인 활동주체들을 중심으로 하는 주체적인 소위원회의 역량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현장권력의 주체들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권력주체이자 새로운 사회의 대안세력으로 혹은 헤게모니 세력으로 성장하여야 한다.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에 기반하는 노동자 계급정치는 한두 줄의 강령이나 규약 혹은 몇 마디의 선언적 웅변, 그리고 수려한 달필로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 계급의 계급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지난한 계급투쟁의 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된다. 계급투쟁의 현실은 역사 속에 화석화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이 계급투쟁으로 부활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세기가 바뀌어 21세기가 된다 하더라도,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현실은 계급투쟁의 현실을 고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현실과 미래의 대안사회를 고안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한/노/정/연


* 이 글은 1999년 11월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콜로키움에서 발표한 글을 대폭 축소, 수정한 글이다

* 이 글은 1999년 11월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콜로키움에서 발표한 글을 대폭 축소, 수정한 글이다

1) Adam Przeworski, Capitalism and Social Democrac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pp. 11~12.


2) 1974년 민청학련에 참여했던 학생운동 그룹 내부에서 노동현장에 참여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노동현장 참여투쟁이 대중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3) 당시의 대표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들은 통일전선적 노동단체운동의 주체였던 전국노운협과 전국노련, 비합법 전위정당을 추구했던 사노맹, 그리고 합법정당을 추구했던 민중당 등이다.


4)1991년 하반기부터 민주노조운동진영은 전노협의 ‘이념과 투쟁방식 그리고 조직의 상승율 하락’ 등을 둘러싸고,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전개되었는데, 노동운동의 구조적 위기론은 자본축적구조의 포스트 포드주의로의 변화, 노동자계급구성의 변화, 이념의 혼란과 전망의 부재, 전투적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김형기;1992), 이러한 위기를 낳은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서 전노협의 전투적 조합주의로 판단(정승국;1991, 김형기;1992, 박승옥;1992, 최장집;1992, 임혁백;1994, 김동춘;1995)하면서 ‘진보적 노동조합운동론, 국민적 노동조합운동론, 사회발전적 노동조합운동론’ 등을 제기한 반면에, 노동자 계급형성의 시각에서 전노협의 활동방식의 적합성을 옹호하는 입장들은 ‘포드주의적․테일러주의적 축적구조의 온존, 화이트칼라 노동자층의 플롤레타리아화, 노동자계급의식의 급진화 경향, 노동자 상태의 악화, 노동운동이념의 대안적 사회체제의 지향성’ 등을 근거로 계급주체의 실천적 투쟁을 강조하였다.(임영일;1992, 노중기;1995)


5)이에 반해 전노협공동연구팀은 “노동계급형성론”으로 “구조적위기론”을 반박하고 있다. 즉 전노협은 ‘리더쉽은 대중주의로서 분파주의를 지양하였고, 이념은 오히려 현실주의 혹은 무이념주의에 가까우며, 투쟁방식은 국가­자본의 탄압에 전투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전노협공동연구팀, 「전노협 6년의 활동평가와 역사적 의의」, 1995, 34~38쪽.


6)전 전노협 중앙위원은 ‘거의 모든 중앙・지역 간부들이 구속・수배상태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회의체계를 구성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였다. 예를 들면, 중앙위원회의조차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어서 시간과 장소가 시시각각 변했고, 변경 사실도 회의 하루 전에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전노협이 때려 박기식 운영으로 조합내 민주주의를 방기 하였다는 비판은 올바르지 않다. 당시 국가­자본의 집중적인 탄압과 조직동원투쟁의 급박성을 고려한다면, 전노협 사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운영방식이었다.’ 전 진민노련 의장인 이흥석 면담자료, 전노협 공동연구팀, 1995년 8월.


7) Eric Hobsbawm, “Identity Politics and the Left”, New Left Review Vol. 38, No. 217,  (1997, May-June,) pp. 43~45.


8) 임혁백, ꡔ시장․국가․민주주의ꡕ, 나남, 1994, 373~401쪽.


9) 임혁백, 위의 책, 359-365쪽.


10) 제솝(Jessop)은 부르주아의 정치적 지배를 강화할 수 있는 신조합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본축적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신조합주의는 ①노동자 계급의 분할을 토대로 혁명적 노동운동을 저지할 수 있다. ②체제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개혁주의적 정치를 제도화할 수 있다. ③국가자본(National Capitals)의 강화로 국제경쟁에 유용하다. ④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계급갈등을 제거할 수 없다.” Bob Jessop, The State Theory, (Pennsylvania,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0), p. 125.


11) 아담 쉐보르스키,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 한상진 편저, ꡔ마르크스주의와 민주주의ꡕ, 사회문화연구소, 1991, 100쪽.


12) Adam. Przeworski, Capitalism and Social democra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13) 새로운 정치조직 건설을 위한 예비모임, ꡔ새로운 정치조직 건설을 위한 예비모임 자료집ꡕ, 1997년 7월 8일.


14) 새로운 정치조직 건설을 위한 예비모임, 위의 자료집, 1997년 7월 8일.


15) 새로운 정치조직 건설을 위한 예비모임, ꡔ준비모임 발족식 자료집ꡕ, 「준비모임 발족 선언문」, 1999. 8.


16) 노동자의 힘(준), ꡔ제2차 총회 자료집ꡕ, 1999. 11월 27일, 69쪽.


17) 노동자의 힘(준), ꡔ제2차 총회 자료집ꡕ, 1999. 11월 27일, 51-52쪽.


1999-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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