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평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어떤 점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수많은
맹아가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정식화하고 법칙화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정한 한계가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러한 작업은 일정한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1980년대라는 역동적인 시대를 경과하고 후퇴와 복원의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1990년대에 대한 정리는 지나왔던
과거와 제기되고 있는 과제를 미래지향적인 방식으로 명료하게
인식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번 호 주제를 『1990년대를 뒤돌아보며』로
설정하였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한국자본주의와 정치, 노동자
대중운동과 정치운동 등 여러 영역에 걸친 변화의 특징과 방향을
큰틀에서 정리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실린 네 편의 글은 그
주제는 달리하지만 그 결론은 일정하게 모아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시대라고도 할 수 1990년대,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당면의 투쟁과제와
이를 규정하는 제 조건을 자각하였고 이제 이러한 당면과제를
노동자계급의 궁극적 목표와 결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중적 화두로 그 위치를 누려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주제에 대해서 필자들은
자기 나름의 논거를 갖고 정리하고 있다. 당위적이거나 현실에
긴박되면서 사고했던 한계를 넘어서 ‘넓은 사고, 열린 사고’로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번 호
특집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특 집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사회
군사 파시즘에서 신자유주의로
채 만 수 (부소장)
‘민주노조운동’의 현재와 과제
김 태 정 (연구원)
노동자 계급정치의 역사적 주체로서의 노동자 정치운동
김 영 수 (연구위원)
군사 파시즘에서 신자유주의로
채 만 수
부소장
87년도 6월 항쟁과 7~9월의 노동자 대투쟁은, 주지하는 것처럼,
한국의 정치 ‘분위기’를 노골적인 군사 파시즘에서 대략
‘부르주아 민주정치’로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과거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시작되어 박정희․전두환의
군사정권에서 극에 달했던 무단적 공포정치는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노동자․민중은 과거에는 부르주아
법전 속의 정치적․외교적 장식물에 불과했던 자신들의
기초적인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현실적인 것으로
주장하고, 또 부분적으로 실현해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한 정치적 공간의 확대과정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정치적 시계바늘을 되돌리려는 지배집단의 끊임없는
반동적 시도로 그것은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면서 진행되었고,
당연히 노동자․민중이 치르는 대가도 결코 적지 않았다.
또한 그 정치적 공간은 질적으로도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지금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깃발이 진보와
양심인 양 크게 휘날리고, 노동자․민중의 깃발은 아직 제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87년 대항쟁과 대주의 정치적 공간의 확대
우선, 1987년의 대항쟁은 각종의 관료기구뿐만 아니라 권력을
다투는 정치적 세력조차도 구세력을 고스란히 온존시킨 채 끝난
미완의 민중주의적 혁명이었기 때문에, 정권 담당자들과
파쇼․억압기구는 그 구성이 과거의 군사파쇼 시절의
그것과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1987년의 대항쟁을
통해서 노동자․민중이 획득한 정치적 권리와 공간을
회수하려는 지배블록의 끊임없는 음모와 공격이 되풀이되었지만,
노동자․민중은 아직 미숙하면서도 꾸준히 자신들의 정치적
공간을 확대해 왔고, 저들 지배집단의 반동적 시도는 노태우
정권 시절에 이미 그 실현 불가능함이 판명되었다. 그리고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으로 바뀌어 올수록 대체로 대중의
정치적 공간은 보다 확대되어 왔다.
그리고, 1987년의 6월 항쟁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공간의
이와 같은 확대는 노동자․민중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떻게든 노동자․민중의 환심을
사서 그것을 자산으로 삼아 권력을 직접적으로 장악하려는
지배계급 내부의 종파적 투쟁에도 힘입은 바가 크다. 대공검사
출신이자 안기부 수사간부 출신의 정형근 의원을 필두로 한
한나라당이 오늘날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규탄하면서
‘언론자유 수호’의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는 것과 같은 투쟁들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노동자․민중의 조직된 정치부대
없이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이 때문에 실제로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이 정치적 공간의 확대과정을 밀고
가는 추동력이면서도 표면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제도정치화된 부르주아 정치세력간의 투쟁과 이른바
‘시민운동’의 ‘사회개혁’․‘정치개혁’ 투쟁이 이
과정을 주도해 온 것 같은 외관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노동자․민중의 운동에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다. 마치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제도정치권의 움직임이
정치 정세를 주도하는 힘인 것 같은 외형을 취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마치 그러한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출과 거기에서의 일정한 지분의 확보 정도로 규정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을 그렇게 몰고 가는 움직임은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개혁’과 ‘참여’: 1990년대 시민운동과 이르부의 지식인들
이와 관련하여 90년대에 와서 왕성하게 전개된, ‘경실련’,
‘참여연대’를 위시한, 그리고 각종의 정치․사회적
‘개혁’과 ‘참여’를 앞세운 기타 단체들로 이루어진 이른바
시민운동 및 ‘학술단체협의회’를 구성하는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의 활동의 성격과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상 이들의
이데올로기적 활동이야말로 군사적 무단․공포정치의
패배로 불안정해진 독점자본의 지배를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보완해 온 주요 지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의 골간은,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미 파탄난 체제를 “버리지 말고 고쳐 써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한 면에서 그들의 노선은 “대안은 없다”(TINA)고 외치던
1980년대 영국 대처 총리의 냉혹한 반노동자 신자유주의 노선과
실질적으로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개혁’과 ‘참여’라는 말속에 압축하고 있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독점자본 지배의 ‘합리화’, ‘효율화’ 주장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개혁’․‘참여’ 선동에 놀아나는 한,
노동자․민중은 무언가 전진하는 것 같은 환영(幻影)이 그
눈앞에 어른거리는 가운데 사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잃고 마냥 헤매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 한국 정치에서 이들이 놀아 온, 겉으론 긍정적이고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부정적이고 퇴영적이었던
역할이 참으로 컸기 때문에 몇 가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1990년대 시민단체의 선두주자였던 ‘경실련’이 부상하여
영향력을 확대하게 된 첫번째 결정적 배경 내지 계기는
1989~91년의 경제위기(공황)이었다. 그들은 호황 말기의
극대화된 생산과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에 따른 경제의 투기화를
반영하여 1987년 말부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하여
노동자․민중의 생활을 옥죄어 오던, 그리고 사실은 그
자체로서 자본의 이윤율을 더욱 압박하는 요인이었던 부동산
문제를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주요한 고리로써
이용하였다. 그들은 당시의 부동산 가격의 급등과 투기의 격화를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정 국면에 의해서 규정된, 그 모순의
표현으로서의 필연적인 경제현상으로 파악하는 대신에, 임의로
선택 가능하고 ‘개혁’ 가능한 정책의 문제로 왜곡하고,
그리하여 당시 노태우 정권과 함께 이른바 ‘토지 공개념 확대’
선전소동을 벌였다. 그리고 그러한 선전은 순진한 대중의 심정적
지지를 받았는데, 이후 공황의 진전과 함께 필연적으로 진정되고
사실은 대체로 하락한 부동산 가격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렇게 확대된
‘토지 공개념’은 ‘외환위기’로 폭발한 이번의 공황국면
속에서, 경실련 초기에 그것을 선동한 핵심 이데올로그였던,
김대중 정권의 초기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김태동 자신의 손에
의해 파기되었다.)
사실 ‘토지 공개념’ 문제는 전통적인 토지 소유자 계급의
이해에 대립하는 근대적인 산업․금융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반영한 것으로서, 노동자․민중의 이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문제이다. 구태여 관계를 찾는다면, ‘토지
공개념’ 그것이 확대되고 강화될수록 근대적 산업․금융
부르주아지로서의 재벌의 힘이 증대하게 되어
노동자․민중의 이해에 반하는, 그런 성격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1990년 여름 영등포 을구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이른바 ‘민중후보’가 ‘토지 공개념의
확대․강화’를 주요한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처럼,
노동자․민중운동 진영 일부도 민중주의적 선동에
참여하면서 거기에 놀아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정치적으로
선진적이라고 자부하겠지만, 실은 정치적인 백치이다.
그 외에도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등은 독점자본의 지배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개혁’․‘참여’를 외치면서 위기의 계급적
성격을 은폐하고 저들 독점자본 지배를 구조하러 나섰는데,
예컨대 ‘재벌개혁’이니, ‘정치개혁’이니 하는 것들이 그
예이다. 경쟁력 증대를 위한, 따라서 착취의 강화를 위한
독점자본의 합리화로서의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누차 비판해
온 대로이다. 앞으로 총선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릴 이른바
‘정치개혁’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자.
한국사회의 ‘정치’와 관련하여, 가장 은폐되어 왔고 따라서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하는 점은 그것이 계급정치이고, 더구나
과두정적(寡頭政的) 계급정치라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독점자본의 정치부대만이 사실상, 허울만의 형식적인 참정권이
아니라 실질적인 참정권을 가지고 있다. 부르주아
제도정치에서는 노동자․민중 대중에게는 4년에 한번 혹은
5년에 한번 ‘투표권’을 통해서 저들의 권력을 합리화시켜 주는
역할밖에는 주어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을 외치는 저들 시민운동 단체들의 요란한 주장에는
한국의 정치, 부르주아 정치의 이러한 계급적, 과두정적 성격에
대한 어떤 비판이나 대안의 제시도 없다. 그들의
‘정치개혁’이란 부르주아 계급정치를 보다 합리화하고
세련되게 만들려는 주장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르주아 금권정치로서의 한국정치의 문제를 부당하게도
‘부패’나 불법적인 정격유착의 문제로 왜소화시키고 시키고
있다.
그리고 ‘영구 개혁노선’이라고나 해야 할까? 저들은
금권정치야말로 부르주아 정치의 본질이어서 그나마의
‘개혁’조차 사실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지치지도 않고 ‘개혁’을 때로는 찬미하고 때로는 외쳐대고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 선거법이 개정되어 현행의 그것이
성립했을 때 그들이 그 ‘개혁성’을 얼마나 찬미했는데, 오늘날
다시 마치 선거법의 미비로 한국정치가 개판인 양
‘개혁․개혁’하며 선거법 개혁을 외쳐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저들의 기억력이 참새 대가리만이라도 한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저들은 그렇게 ‘개혁․개혁’을 외침으로써
뭔가 ‘개혁’만 되면 억압도 착취도 빈곤도 없을 것 같은
어렴풋한 기대를 대중에게 심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대중의 참된 정치적 각성을
차단하고, 그리하여 독점자본의 지배를 영속화시키는 자신들의
사회적 존재 의의를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개혁’이 거듭되어도 독점자본의 지배 자체를 폐지하지
않는 한, 저들이 어렴풋이 암시하는 세상, 억압도 착취도,
빈곤도 없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흥미로운 것은, 대체로는 대중도 이 점을 알고 따라서 평소에는
진한 정치적 냉소주의를 발산하는데, 선거 때만 되면 귀신에라도
홀린 듯이 어릿광대 춤을 춘다는 점이다. 선거놀음의 계급적
성격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민중정치 진영의 분화,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분파의 급격한
체제내화
1990년대 한국정치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는 민중정치 진영의
분화와 그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분파의 급격한 체제내화이다.
80년대까지의 군사 파시즘은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을 제도
정치에서 소외시켰고, 따라서 그들은 노동자․민중진영
속에서 그들의 활로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부르주아 정치공간이 확대되자 이들은 급격히
민중진영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하여 제도정치권으로 내달려
갔고, 최근의 이른바 ‘새 천년 민주신당’으로의 흡수를 계기로
지금까지의 소부르주아적 정치세력은 대략 정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정치적 야망으로 불타는 속물들에 대해서야 언급할
가치도 없다. 다만, 이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분파 가운데 소수
최량의 분자들에 대해서만 언급하자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약점은 그들이 순진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일 뿐
사회의 구조와 그 발전법칙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혹은, 자신들 앞에 화려한 길이 열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짐짓 그것들을 그렇게 구조적․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힘차게 전개되는
노동자․민중운동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내지르는 한탄은
‘아직도?’일 수밖에 없다(일부 교활한 자들은 자신의 순진성을
가장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한탄의 소리를 내지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부 순진한 대중은, “그래도 참신한 민주화 운동 세력이 대거
정치권에 진입하면, 좀 나아지지 않겠는가?”하는 소망을 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산에 가서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도 더욱 현실성이 없다. 지금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는
기성 정치인들, 심지어 군 출신들까지도 “구악을
일소하고…”를 외치면서 등장했던 과거의 ‘참신했던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월이 가면 애기가 늙은이가
되듯이, ‘참신한 인물들’도 그곳에 가면 부르주아 금권정치에
적응하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들만’ 정치하겠답시고 그리로
간다고 할 수 있다. 시민운동 단체들이 ‘개혁․개혁’을
외치면서 독점자본의 지배를 뒷받침하듯이, 이들 ‘참신한 정치
새 일꾼들’은 ‘젊은 피 수혈’로 부패한 부르주아 정치에
주기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자신들이 그 주역의 일부로 커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지탄해 마지않았던(?)
지역감정이나 ‘3김 정치구도’를 역시 마냥 ‘망국적’이라고
지탄하는 것으로 즐기면서 그렇고 그런 정치 모리배가 돼 가는
것이다. ‘정치권 사정(司正)’이라는 으름장에 남몰래 오금이
저리는 사실상의 범죄자들로서의 그런 정치 모리배 말이다.
그렇게 돼 가지 않으면 그 개인들에게 어떤 현실적인 정치적
전망도, 수단도 있을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선거국면에서 우리가 할 일은 저들의 정치적 수사에
놀아나 ‘그래도 조금은 나은 자’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저들을 흉내내어, 존재하지 않는 전략 주체가 마치 존재라도
하는 듯이 ‘후보 전술’ 운운할 것도 아니다. 현재의 주체적
조건에서는 저들을 독점자본의 정치부대로, 정치적 속물로 맘껏
비웃어 주면서, 현 시기 한국정치에서 선거놀음이 가지고 있는
계급적 성격을 폭로하는 것일 것이다. 선거놀음의 의의도 모르는
정치적 몽환(夢幻) 상태에서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해방을
담보하는 노선에 따라 정치적으로 조직될 가능성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정치의 최대 과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1990년대 한국정치의 최대 과제는 사실은 1987년 대투쟁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일어선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전위적 정치조직’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크게 진전하지 못한
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노동자
계급정치가 깊은 단절을 겪고 새롭게 나선 지 아직 일천한 점,
세계적 규모에서도 20세기 후반에 노동자 계급정치가 크게
혼란을 겪으면서 후퇴한 점, 소부르주아 민중주의와
독점부르주아지의 사민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는 점, 등등이
그 전진을 가로막은 주요 요인들일 것이다. 물론
파쇼악법으로서의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새삼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비록 체계화되고 규율 있는 자신의 전위적 정치부대를
갖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물론 막강한
현실적인 정치세력이다. 이는 그들의 물질적 존재조건이 그들을
그렇게 정치적이고 전투적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단․공포정치적인 군사파시즘이 불가능해지자마자
지배계급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서둘러 왔다.
주지하는 것처럼, 군과 경찰의 폭력에 직접적으로 의존하면서
병영적 통제를 가해오던 공장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신경영전략’이니 ‘신인사제도’니 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영․통제전략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국가도 각종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해 왔다. 특히 김영삼 정권에
와서 이른바 ‘신노사관계 구상’이나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의 도입․설치로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본격화되었고, 1996년 말의 노동법 개악으로 그것은 절정에
달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계급은 이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전국적 총파업으로 김영삼 정권의
통치능력을 거의 마비시키다시피 하였고, 실제로 이 총파업을
계기로 김영삼 정권은 사실상 불구의 정권으로 되었다.
노동자계급이야말로, 비록 조직되고 훈련된 자신의 정치부대는
아직 갖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임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지도부의 정치적 취약성으로
말미암아 그에 상응한 성과 없이, 또한 현장활동가들에 대한
자본과 권력의 침탈을 허용함으로써 대중 속에 많은 좌절감을
심으면서, 파업을 접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토록 위력적이었던
1996~97년 총파업이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전위적 노동자 정치조직’의 절실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다.
한편, 1997년 말의 경제위기 폭발을 계기로, 그리고 그 위기를
계기로 성립한 김대중 정권에 의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가히 홍수를 이루면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옥죄어 왔다. 이 공황은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일찍이 경험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충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물론 자신을 이끌고 갈 정치부대가
없었기 때문에, 그 공황을 계기로 급격히 격화된 자본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두고 처음 노동자계급은 방황하였다.
특히 기회주의적이고, 자본의 경쟁력 이데올로기, 국가주의에
사로잡힌 일부 민주노총 및 그 산별연맹 상층지도부가 벌인
‘노사정위원회’ 참여 및 노동법 개악 동의 등 반노동자계급적
배신과 투항으로 노동자계급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조합운동의 일부 상층부의 배신과
투항으로 인한 시련까지도, 모두 한국의 노동자․민중이,
그 정치적 미숙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정치적
세력․실체로서 존재하고 기능하도록 하는
객관적․물질적 조건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민중은 끊임없이 투쟁을 전개하고 있고, 자신의
전위적 정치부대를 갖기 위해서 더욱 분투하고 있다.
서유럽이나 미국, 호주 등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2차 대전 후의
사민주의적 정치․사회체제로부터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은
가시적인 ‘민주주의의 후퇴’였다. 그 때문에 노동자 대중은
아래로부터 이에 대한 저항을 시작하고 강화해가고 있다. 이에
비해서,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의 도입과 확대는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군사 파시즘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대중의 실제 생활에 밀착하지 못한 특히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그들의 눈에 그것은 ‘민주주의의 신장’처럼 보였고,
따라서 그것을 고무․찬양하면서 노동운동의 일부
상층지도부들을 유혹해 냈다. ‘노사 동반자 관계’니, ‘사회적
조합주의’니 하는 주장들이 모두 그러한 것들이다. 그리고
경제위기의 폭발과 김대중 정권의 성립으로 그러한 소부르주아적
민중주의는 한 동안 크게 발언권을 확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의 엄중성은 그들의 노선과 주장의
반노동자적․반민중적 성격을 폭로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노선을 추구하는 자들은 최근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비판에
부딪쳐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등의 노골적인
반노동자적 주장으로부터는 후퇴해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열정과 실제적인 실천을 포기하거나 멈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금 노동운동 및 민중운동 내부에서 일부 ‘정치세력화
운동’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민주의적 정치실험 속에서 화려한
정치적 수사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미성숙으로 당분간 한국의 노동자 정치는,
따라서 한국의 정치 전체는 크게 전진하지 못하고 어쩌면 혼미를
거듭할 것이다. 지금 노동자․민중운동의 상층부 일부에
의해서 뒤늦게 추진되고 있는 사민주의적 정치운동도 그러한
혼선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선이 아무리 의욕적으로
추진되더라도, 그리고 내년 4월의 총선에서 부분적인 성과를
올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한국에서의 노동자․민중정치의
주요 노선으로 자리잡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한 노선이
자리잡기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상황은 너무나 위기적이고,
노동자․민중에게 강요되는 생활고는 너무나 엄혹하기
때문이다.
자기 발등을 찍는 민중주의적․사민주의적 ‘개혁’ 선동과
노선이 아니라 진실로 변혁적인 계급 노선에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전위적 정치조직을 획득해 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현 시기 노동자계급이 안고 있는 최대의 정치적 과제이고,
해방의 유일한 침로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