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정계개편? 정계개편? 그리고 창당 신드롬
정계개편? 정계개판? 그리고 창당 신드롬
손 호 철
부소장 / 서강대 교수, 정치외교학
옛 시인은 “제비를 보고 봄이 온 것을 알았노라”고 노래한 바
있다. 그렇다. 우리도 이제 총선이 가까워진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 ‘제2의 창당’과 정계개편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신당창당과 정계개편의 바람이 부는 것을 보니 총선이
가까워진 것을 알았노라”고 쓸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창당움직임은 크게 보아 세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여야를 중심으로 한 기존 정당들의 총선용
봄단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민승리 21과 민주노총 등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 실험이다.
마지막 움직임은 이 두 정치세력의 중간, 회색지대라고 할 수
있는 ‘개혁신당’ 움직임이다.
‘3김을 넘어 전두환’으로 그리고 ‘개악신당’
우선 여야의 신당창당 움직임부터 살펴보자면, 김대중대통령의
경우 이미 ‘제2의 창당’을 한 두 번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시작이구나”하는 기분이다. 따라서 관심이 가는 것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과 이회창총재는 낡은 3김정치의 청산을
통해 새로운 천년을 준비한다는 야심적인 ‘뉴 밀레니엄
리더쉽’과 제2의 창당 계획을 밝히고 있다. 특히 보스가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여권의 ‘3김정치’적인
신당창당과 달리 자신들의 경우 민주적 방식에 의해 이를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과연 그러할 것인지 지켜볼
문제이다. 그러나 제2 창당의 절차와 과정문제와 상관없이,
한나라당 제2의 창당은 기대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회창총재가 3김 정치의 청산과 뉴 밀레니엄을 주장하면서도,
새 정부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추진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정, 재벌개혁등 개혁정책에 대해 낡은 색깔론을 제기해 발목을
잡으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천년을 50년대의
색깔론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뉴 밀레니엄 리더쉽이라면, “볼
장 다 봤다”는 이야기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한나라당과
이총재의 3김청산론은 ‘3김을 넘어서 21세기로’ 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3김을 넘어서 전두환으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 같은 ‘퇴행적 3김청산’이라면, 극단적으로
표현해, 안 하는 편이 낫다.
국민회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당과 정부는 그 동안 “8명이
살기 위해서는 2명은 희생되야 한다”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개발독재식의 논리에 의해 위기 극복이라는 이름하에 거의 모든
고통을 사실상 노동자들과 사회 소외세력들에게 전가시키고
1백조원 가량의 국민세금을 재벌 등의 부실채권 탕감에 사용해
재벌들에게 특혜를 주거나 외국자본에 헐값에 팔아 제끼려고
혈안이 돼 왔다. 그러다가 총선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개혁정당을 만들겠다며 제 2창당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 신당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발기인 명단을
보면 충격을 금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에다가,
과거부터 김대통령 지지자로 알려진 사람들 이외에는 새로운
인물이 없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문제는 기존 국민회의 몫으로
들어간 의원들이다.
물론 이 중에는 개혁적인 인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청문회에서 한심한 작태로 빗발치는 국민들의 비판을 한
몸에 받았던 한 여성의원이 포함된 것은 한 마디로 국민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모독이다. 즉 국민들이 뭐라고 하든, 충심성이
제일이라는 것을 보여준 논공행상식 인선이다. 즉 “이 의원처럼
여론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대통령에게 충성심을 보이면 출세하니
너희들도 여론을 의식하지 말고 알아서 충성하라”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발기인에 포함된,
국민신당출신의 또 다른 의원이다. 이 의원은 국회 교육위의
국민회의측 간사로서 자신이 속한 정부의 교육개혁안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중 개혁조항을 사학재단 관계자들인
야당의원들과 담합해 폐지하고 비리 사립학교에 유리하도록
개악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그 결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교조, 참교육 학부모회 등 주요
교육단체등이 구성한 연대회의에 의해 ‘교육 7적’으로 선정된
의원이다. 특히 연대회의 측은 박의원을 포함한 ‘교육
7적’들에 대해 상임위의 교체와 소속 당에 대한 공천탈락을
요구하는 한편 이들의 지역구를 돌면서 낙선운동을 벌리고 있다.
그런데도 김대통령의 교육개혁의지를 좌초시킨 당사자를 신당의
간판인 발기인에 포함시켰다는 것은 신당이 계속 비리 사학등을
옹호하고 교육개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말이야 개혁신당이니
뭐니 떠들지 모르지만, 내용적으로는 ‘개악신당’을 만들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정계 개판’,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
신당창당이외에도 여권의 움직임에 있어서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공동정권을 이끌어 온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이다.
현재의 2여, 1야의 구도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에서 김대중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이 합당은
김종필총리를 설득하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박태준총재 등 영남권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있어 그
성사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이다. 그러나 일단 성사되더라도
김용환부총재 등 일부 충청권 의원들의 홀로서기 움직임 때문에
불완전한 합당으로 그칠 전망이다. 나아가 김부총재를 중심으로
한 이 세력의 한나라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은 총선을 앞두고 복잡한
이합집산과 정계개편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여권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현재의 지역구도하에서 영남권의 분열을
바라는 여당의 바람과 내각제 문제들과 관련해 정계복귀를
바라는 전직대통령들의 노욕이 결합해, 김영삼전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부산․경남 지역당이나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대구․경북 지역당의 출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박태준 등 영남권의
자민련의원들이 적극 주장하고 있는 중선거구제가 실현되지 않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이 추진되는 등 영남의 여권의원들의
입지가 어려운 방향으로 정국이 풀려가는 경우 선거전술적인
측면에서 이들이 탈당, 대구․경북당을 만들거나
무소속으로 총선을 치룬 뒤 후에 다시 여권이 합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최근 박철언과 허화평이 이 같은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정계개편은 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국민들의 의사와
무관한 낡은 정치인들의 정략적인 이합집산이라는 점에서,
정당이 당원들과 국민들의 조직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사유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물증이라는 점에서,
언제까지 이 같은 작태를 보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한숨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십년 동안 한 정치인이 다섯 번
창당을 한 것도 기너스북에 오를 일이지만, 정권이 바뀌고
선거만 있으면 여당을 포함한 주요 정당들이 없어지고 새로운
당이 생겨나는 것도 한국만의 고유한 현상일 것이다.
내용면에서도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은, 총선승리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여권 내부의 정치적 이유와는 별개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동안 김대통령과 국민회의는 김영삼전대통령의
3당통합을 “군사독재세력과의 야합”이라고 비판해 왔고,
그나마 김대통령과 김총리간의 DJP가 3당통합과 다른 것은 DJP의
경우 합당이 아니라 정책연합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당이
합당할 경우 이 같은 차별성마저도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유럽의 ‘제3의
길’과 관련해, 현 정부를 지지하는 일부 학자들의 경우 DJP가
단순한 집권을 위한 집권전략이 아니라 그 동안 대립만 해 온
‘산업화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타협을 통해 공존을
추구하는 ‘한국판 제3의 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라면, 3당통합이야말로 칭송해 마지않아야 할
‘한국판 제3의 길의 원조’이다. 그리고 ‘유신잔당’과의
합당으로 21세기와 새로운 천년의 초석을 놓는 개혁을 이끌어
가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여야 모두 신당 창당과 정계개편 움직임이라는 것이
국민들을 신명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한
마디로 최근의 정계개편 움직임은 ‘정계개편’이 아니라 ‘정계
개판’ 움직임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 있다. 최소한 각
당들이 제2의 창당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자신들이 해 온 짓을 생각해 보면 현재의 간판으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는 알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즉 최소한 자신들의 잘못과 비판적인 민심을 알고는
있다는 것이 유일하게 최근의 제2의 창당과 정계개편 움직임이
보여주고 있는 긍정적인 면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임
측면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새 분노로 변한다. “아예
모르면 모를까, 뻔히 다 알면 평소에 잘 할 일이지, 총선을 반년
남짓 남겨 놓고 ‘제2의 창당’이니 하고 호들갑을 떠느냐”는
것이다. 한 마디로, 평소에 팽팽 놀다가 시험 전날이 되서야
밤샘을 하는 ‘당일치기’ 입시생을 보는 기분이 들어
한심하기만 하다.
민주노동당의 빠른 행보, 개혁신당의 두 흐름
이 같은 흐름과는 별개로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총선을 겨냥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대선의 국민승리 21과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이 움직임은 특히 얼마 전 있었던 울산 동구 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노동운동가출신 구청장의
부인이 민주노동당후보로 출마해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첫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서 매우 고무되어 있다. 그러나
‘선거주의’에 의해 창당을 지나치게 선거일정에 맞추어
무리하게 추진해옴으로써 노동자대중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없이
위로부터 ‘소몰이’식으로 추진해 오고 있고 파업 등
노동자대중들의 생존권투쟁을 단순히 한국노동운동이
생디칼리즘에 빠져 있는 증거로 보는 등 노동자대중을 단순히
계몽과 교육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손호철, ‘새로운 전위당이
우려된다’,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1999년 9월호
참조). 이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진보진영에 있어서 일종의
‘1999년 현재의 1987년 DJ’가 되고 있다. 즉 민주노동당이
한계는 많지만 그래도 지지해야 한다는 ‘비판적 지지’론과
민주노동당은 ‘사이비 진보정당’이니 새로운 진정한 노동자
정당 내지 정치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독자후보’론, 여러
진보세력이 하나로 단결해 단일한 진보정당을 만들고 당내
민주주의를 통해 정파를 보장해야 한다는 ‘후보단일화’론으로
진보진영이 갈라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개혁신당’움직임은 두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반3김정치, 반지역주의를
내세웠다가 실패한 민주당(구 민주당과 서경석등 시민운동세력의
개혁신당이 합당한)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으로서 옛 민주당의
박계동전의원을 중심으로 반DJP, 즉 반 3김을 표방하여 반3김적
유권자들의 표를 모으려는 시도이다. 또 다른 하나는 다소
의외의 연합으로서 구 민중당의 장기표 전대표와 홍사덕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30~40대 중심의 젊고,
참신한 ‘21세기형 신당’”이다. 이 정당은 반3김,
반지역주의라는 점에서 박계동 등의 개혁신당과 매우 유사하나
노인, 장애인, 실업자에 대한 완전한 사회복지 실현, 대학까지
모든 공교육의 국가부담 등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개혁신당보다는 다소 진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표등은 민주노동당의 경우 지나치게 노동자중심적이어서
21세기에 맞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30~40대의 각계 현장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PC 통신공간을 이용한 21세기형 사이버
정당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즉 이들 정당들은 민중운동에
대립되는 시민운동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3김중심의
사당체제에도 반대하지만 노동자정당이나 민중정당에도 반대하는
시민정당을 추진하고 있다.
이 모두는 기존 정치권이 엄청난 국민적 불신을 받고 있는
한국정치의 현실, 이에 따른 새로운 가능성의 존재의 반영이다.
즉 그람시의 표현처럼 “낡은 것은 죽어가지만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못한” 상태로서의 한국정치의 위기의 표현이다. 결국
오는 총선은 죽어가는 낡은 것이 죽고 새로운 것이 탄생하느냐,
아니면 죽어가는 낡은 것은 새로운 피의 수혈로 다시 살아나고
새로운 것의 탄생이 다시 지연되느냐는 기로가 될 것이고 이는
결국 낡은 정치에 대한 현재의 국민들의 비판과 분노가 총선이
가까워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사라지고 다시 지역주의의
마술속에 빠져 들어 ‘정치개판’을 추인해 줄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