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호프집 화재참사’가 남긴 문제들…
박 영 진
21세기 교육연구소 사무국장
이렇게 본다
‘인천호프집 화재참사’가 남기 문제들…
아직도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
‘인천호프집 화재참사’를 둘러싸고 사회여론은 청소년들이
술집을 출입한 것에 대하여 ‘청소년 특별법 강화’을
강화하자는 의견과 업주의 도덕성 및 관련 비리공무원을
척결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앞으로는 청소년들에게 술을 판매한 유흥업소는 적발즉시 허가가
취소되고 영업장이 폐쇄되며 1년간 유사업종의 신규허가가
금지된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는 서울지역 기관장들과 시민단체
대표들은 24일 서울시청 기획실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청소년을 위한 건전한 문화공간으로 콜라텍, 노래방 게임방 등을
한데 모은 가칭 ‘서울 유스텍’이 시내곳곳에 상설 운영되며
교회의 예비군 훈련장이 청소년 수련시설로 개방되는 내용을
골자로 ‘서울 청소년보호 특별 종합대책’을 발표,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한국공무원들의 도덕성에 대한 불감증을
지적하면서 新공무원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아무튼 이 사태를
빨리 마무리 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한차례 공무원
경질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인천호프집 화재참사 이후 청소년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청소년
문화공간에 대한 고민들이 전사회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화재참사의 근본원인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봉합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만연된 공무원의 비리를 뿌리뽑지 못하고 지역개발을 명목으로
무분별한 사업허가와 규제완화, 그리고 뇌물공무원들의
관리방기로 인하여 참사의 불씨를 안고 있기도 했지만, 이번
사건처럼 청소년들이 호프집을 드나든다는 사실이 언론에 의해
난타 당할 때는 과연 청소년들이 호프집을 드나드는 것이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곤 한다.
마침 인천 호프집에서는 실업계 졸업을 앞둔 청소년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 청소년들은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애매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이라는 개념조차도
모호하지만, 청소년의 광의적인 개념으로는 9세에서 24세까지의
사람으로 보고 있고, 청소년 보호법에서는 만 18세 이하인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청소년은 일반적으로 성년과 구분되는 부류이고 성년처럼
자기자신에 대한 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집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청소년의 권리에 대한 보장도 중요하지만,
청소년을 보호하는 사회적 의무 역시도 비중이 실릴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사회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보다는 사회일반과 분리될 의무가 더욱
중요하게 자리잡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
보호법’인데, 그야말로 ‘사회적 악’으로부터 보호된다는
명목아래 청소년들을 사회와 일정정도 분리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제대로 성장할수 있는 사회적 책임감은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청소년 보호법이 실제로 청소년들을 올바로 커 갈 수
있게 할 수 있는 법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일이다. 음주,
흡연, 매매춘 등등에서 청소년을 보호해야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회는 제대로 커 갈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지 않는데,
이들에게 성인과 구분되는 제약만을 강조하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청소년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자체가 청소년들의
교육공간이여야 한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속에서
청소년들이 살아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들이 좁아
터진 호프집에 모여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를 규제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모일 수 있고 자신들의 건강한 문화를
창출하는 것을 유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물적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학교붕괴’에 대한 우려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비록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학교붕괴’가
일반적이고 심각할 지경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21세기 진보교육
연구소에서는 ‘학교붕괴’를 학생과 교사간의 교육관계의
붕괴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확산되고 있는 진행형으로 보고 있다. 7월달에 M방송사 뉴스에서
방영된 학교붕괴 현상은 조작된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현장에 있는 일반교사들이 그렇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는 예전부터 있어온
현상이지만, 인문계에서는 이제 시작되는 현상이고 이는
실업계와 인문계의 존재지반의 차이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진행중이라는 것은 교사와 학생간의 교육관계가
달라지는 현실반영일 것이다. 더욱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가족관계의 위기,
친구관계의 ‘왕따문화’로 드러나고 있듯이 그 어떠한
관계에서도 진지하고 교육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상황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교육환경과 자신들만의 건강한 문화를 만들 수 있는 문화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인천호프집 참사화재 사건 같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청소년보호법’을 강화하자는 논리는 어른들의 입장에서
청소년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쉽게 해결하려는
사고방식의 표출일 뿐이다.
교회의 예비군 수련장을 개방하는 것으로도, 이미 상당부분
상업적 문화로 변해 버린 콜라텍, 노래방, 게임방 등등을 모은
‘서울 유스텍’의 조성도 청소년들이 처해진 어려움을 진정으로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공간의 마련같은
공공적 자원마련과 학교내에서 그들의 문화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져야 한다.
두가지 사건, 한가지 문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던 ‘씨랜드 사건’의
경우도 아직 해결되어야 할 것이 남았다. 흔히 씨랜드 사건을
두고 ‘사회적 안전 불감증’이니 ‘공직사회비리의 고질적
병폐’이니 하고 한참 떠들고 있지만, 이러한 시각은 아이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보다는 안전 불감증인 한국사회나
비리공무원에게 책임이 돌아갈 뿐이다.
과연 우리사회는 아이들이 마음놓고 좋은 환경에서 수련할 수
있는 장소가 얼마나 될까? 결국 이 사건도 씨랜드 사장과
비리공무원만이 잘못이고 애초에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이용할
공공시설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발뺌을 했을 뿐이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씨랜드 화재’나 ‘인천 호프집 화재’는 사회적
공공재원의 부족과 공공자원의 확보를 위해 노력조차 하지 않는
공공적 인식의 부재에서 빚어낸 비극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씨랜드 사건이 나자마자, ‘화재의 사각지대 수련원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조립식 컨테이너 박스를 콘크리트로 된
가건물에다 소화장비도 부실하다는 것이다. 시장 상품화 논리가
만연된 사회에서 자선 사업가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아이들의
안전을 고민할 것인가? 씨랜드 사장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는 공공적 시각에서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장에 대한 감시와 안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단 씨랜드 뿐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아이들의 놀이 공간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텐데, 이러한 위험을 방치한 채, 사건이 날
때마다 비리공무원 들먹이고 인솔자의 무책임을 들먹이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씨랜드 화재나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 이후에 보도되었던 언론을
생각해 보라. 극적인 영화 줄거리라도 소개하는 듯한 보도나,
철저히 개인한테만 책임이 돌아가게 만드는 경찰의 수사태도는
비극적 사건을 희화시키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씨랜드의
경우 교사들이 밤에 술을 먹었기 때문에 화재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둥 인천 호프집 사장은 돈이 많았다는 둥,
화재당시 문을 닫았다는 등등 사건당시 있었던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몰아가거나, 업주의 부도덕성만을 선전하는 시선이
살아남은 자나, 살아남지 못한 자 모두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었겠는가?
공무원의 비리와 결부되어 있다는 소식은 듣는 이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게 했지만, 공무원의 비리를 척결하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해, 청소년들에 대해 제대로 살아갈 수 있고
교육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조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못하다.
이 두 사건 모두 사회적 공공자원의 부재를 원인으로 탓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마음놓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이미 술문화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에게
그들의 젊은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 할 수 있는 문화유형과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간과 물적토대는 반드시 국가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국가의 역할을 폐기하고 이러한 책임을 개인이나
기업에 전가한다면 그 속에는 반드시 이윤의 논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돈을 버는 것만이 선이고 정당하다고 믿는
사회에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 안전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의 공적책임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인터넷PC방이 빠르게
증가되는 배경에도 작용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 확산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정부는 정보통신기술의 교육과정과
활용공간에 대해 사회적 공공성을 실현하는 과점에서 정책을
실시하지 못하고 교육과정은 사교육비 부담으로 활용공간은
인터넷 PC방의 규제완화를 통한 PC방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으니…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대형참사를 예방하거나 치유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정부의 공적책임에 대한 소극성은 결국 위험적
요소와 자본의 비인간적 논리에 국민들을 내맡길 뿐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은 공공성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점점 더 시장화, 개인화되어 가면서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축소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개개인의
변화속에서도 나타나지만, 신자유주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최소한의 공공성이라도 자유경쟁을 위해서라면
무너져야 한다는 관념이 만들어 낸 결과이기도 하다.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영역이
반드시 존재한다. 1년 전에 화성의 ‘산암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동화장실이였다.
남자화장실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소변기가 키에 맞게 여러
가지로 나열되어 있었다. 아이들용인 작은 것부터 성인용인 큰
것까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공공성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선진국에서는 공공적으로 책임져야 할 영역이 힘없고 돈없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고 있다고 들었다. 힘있고 돈있는 사람은
구태여 ‘공공적’의 혜택이 없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더 좋고 더
편한 방식으로 삶을 누릴 수 있지만,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공공적’혜택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교육제도인데, 이미 미국에서는 공교육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고, 공교육과 사교육의 불평등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진정한 공공성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다른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차별이 아닌, 최대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이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공적 역할이 사적으로 해결되면서
빚어가고 있는 재난에 대해 우리는 한번쯤 마음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