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번․역
- 책소개 -
쉘리아 로보탐, 린 시걸,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ꡔ분열을 넘어서ꡕ,(보스턴: 앨리슨 출판사,
1979)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에 걸친 영국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들의 자율주의적( libertarian) 좌파 여성운동의 기본
관점 및 경험과 관련된 논쟁적인 팜플렛들을 로잘린 박산달이
모아 미국에 소개한 책이다.
이 팜플렛은 레닌주의 및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도적이었던
영국 좌파 코뮤니스트의 경직된 남성주의적 관점의 추상성 및
몰성성(gender blindness)과 조직형태를 비판하며, 68년
학생운동의 신좌파적 전통에 따라 독립적인 지역운동을
창조하고자 한 노력들을 자기 성찰적 스타일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시도는 기본적으로 체 게바라의 혁명적 행동주의, 소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이념노선에 속하는 마르쿠제 및
루카치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성 정치의 빌헬름 라이히, 랭
등 노선에 기초하고 있으며, 동시에 계급적 노동운동의 선진
노동자, 숍 스트워드의 전투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레닌주의 및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여성주의 비판에 기초하여, 여성해방운동,
게이운동, 인종주의 반대 운동, 반핵운동, 대안매체운동,
사회주의 연극 운동, 노동조합운동, 사회주의 조직, 세입자 운동
사이의 통일성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실천들을 검토하고
있다.
이 팜플렛 중 하나인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분열을
넘어서기”는 70년대 영국에서 노동당의 우경화 경향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던 새로운 운동 실천들과 사회주의 조직들
사이의 관계를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경험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노동당이나 정당
구조가 실제적인 정치 지형과 투쟁의 실재를 더 이상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 조직을
구성하려는 많은 대안적 실천들이 등장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 운동들은 기존의 합법적 정치 구조에
대한 집착이나 노동계급의 정당으로 표상되는 노동당의 부정적
견인력으로 인하여 크게 제약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생존 가능한 당 조직 형태만이 대안적인 당 조직
형태라고 전제함으로써 노동당 내ㆍ외부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정치적 연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음을 좌파
정치조직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 속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러한 영국의 경험이 현 시기 우리
사회의 노동자 정치 세력화와 관련된 다양한 실천적 노력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에서는 앞으로 이 글을 두 차례에 걸쳐
번역하고, 린 시걸의 “지역운동 경험”을 이어서 번역 소개할
것이다. 이 글들은 한국 좌파 운동 및 여성운동, 노동운동 실천
활동가들에게 여러 가지 토론 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노동자
정치조직 건설과 관련된 실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토론을 위한 자료로서 번역 소개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린 시걸, “지역 경험”, 쉴라 로보탐 등(1979), ꡔ분열을
넘어서서ꡕ, 보스턴: 앨리슨 출판사, 157-209쪽.(Lynne
Segal, “A local experience”, in S.Rowbotham et al.(1979),
Beyond the Fragments, Boston: Alyson Pub, pp.157-209.)
분열을 넘어서기
(Moving Beyond the Fragments)
기획번역
분열을 넘어서기
<차례>
1. 자율주의
2. 페미니즘(지난 호 번역)
3. 페미니즘과 좌파
4. 한 지역에서의 사회주의(이번 호 번역)
5. 결론(다음호 번역 예정)
3. 페미니즘과 좌파
그러는 동안, 전통적 좌파는 뒤늦게 여성 해방 운동의 활기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1975년에 4만명에
이르는 낙태 찬성 행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더 이상
‘여성 해방 운동가’(women's libber)라고 비웃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우리 모두가 중간 계급이라고 말하거나, 적어도 중간계급
지도자들이 말하는 것은 바로 저런 것(낙태 찬성)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페미니즘에 대한 좌파의 입장을 완벽하게 분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소집단을 무시하는 주류
좌파 그룹들과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이들 모두에 대한 나의
인상은 전하고 싶다.
내가 혁명적 좌파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는 내가 어떤
분파주의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여성 억압이 자본주의 체제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가족에 집중된 노동 분업을 통한 여성의 종속은 자본주의
체제의 현존하는 계급 착취 관계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데
핵심적이다. 그러나 여성 억압은 (흑인 억압처럼) 단순히 계급
착취의 또 다른 측면이 아니다. 모든 남성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착취당할지라도, 적어도 몇몇 여성들에 대해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여성억압으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자본주의 사회의 혁명적 변혁만이 여성 억압과 계급 착취,
그리고 모든 형태의 사회적 지배를 극복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또한 우리는 자신들의 억압에 맞서 싸우는 모든 이들을
계급착취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결속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다수의 공산당(Communist Party, CP)
당원들은 공식적으로는 자율적인 여성 운동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CP는 자신이 자율적인 여성 운동과 광범한
연대를 구축하고자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CP 여성들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조차도 여성의 열등성과 비가시성이라는
관념을 수용하게 되는 방식, 즉 여성 억압의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는 것이 지닌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그들은 또한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재생산을 조직하고 여성의 종속을
유지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을 이론화하기 시작했다. 많은 CP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낙태 찬성 시위와 다른 여성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식적인 공헌의
대다수는 다소 이론적이고 현학적이다.
CP 페미니스트들의 현학적인 기여는 그들의 기관지 ‘사회주의로
가는 영국적 길’(British Road to Socialism)에 나타나는
것처럼 CP의 기본 방침에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방침은 어떤
대중적 형태의 노동계급 저항을 구축해 내기보다는 자본주의
지배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 공세만을 고무한다. 그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노동 운동의 개량주의적 지도자들과의 광범한 연대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CP도 스스로가 실제적인 전투성에
재갈을 물려야하는 위치에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예를 들어
아이링턴에서 그들은 노조 평의회에 대한 통제를 통해, 그
지역에서 발생한 가장 전투적인 파업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자
했지만 거듭해서 실패했을 뿐이다. 또 실업이라는 총체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그들은 인원 감축에 대항해서 5개 직종에서
일어난 투쟁들에 대해 어떤 실질적인 방식으로도 대응하지
못했다. 그 중 가장 최대의 직종은 1975년 300명이 해고된
크로스필드 전기 회사(Crosfields electronic factory)였다.
그들은 또한 1976년 틴데일(Tyndale) 교사들의 파업에도 역시
반대했다. 그 교사들은 노조 평의회의 노동당 우파가 지원한
반대 캠페인 즉, 교사들의 진보적 교육방법에 대한 반대
캠페인이 펼쳐진 후, 결국 모두 해고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CP가 ’유로코뮤니즘‘이라 불리는 경향에 따라 ‘사회주의로
가는 평화로운 의회주의적 노선’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 CP 당원들은 당의 전반적인 정치적 방침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발전시킬 공간은
가질 수 있었다. ‘사회주의로 가는 영국적 길’은 종종
여성해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여성운동이나 다른
자율적 운동의 정치적 공헌은, 그들이 노동계급의 진정한 혁명적
단결을 위한 현실적인 가능성에 영향을 준 것에 비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게다가, 최종 분석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영국적 길’은 정통
맑스주의 분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
계급 내부에 현존하는 분리와, 자신의 억압에 대항한 싸움이
사회주의 투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여성운동과 흑인운동의
요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분석이다.
그리하여 자율적인 여성운동에 대한 CP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그들은 자신의 지도부조차 제대로
교육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오직 사회주의만이 모든 위기를 만들어내는 기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 사회주의는 사적 소유를 공적 소유로 대체한다. 사회의
기본 모순들은 제거된다.(인용자, 465째 줄)
CP의 여성당원들은 그들이 원했던 것이 허용되었고, CP의 지도부
역시 그들이 원했던 것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한
현재의 관용적 상황은 오늘날 CP 내부에서 변하기 시작했다.
CP와 다른 좌파 그룹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산업노동자들의 전투성이 부활했음을 감지하게 되면, 당 내부의
페미니스트들에게 ‘계급으로의 회귀’를 방해하지 말라고
얘기할 것이다.
국제 맑스주의자 그룹(IMG, 트로츠키주의의 제4 인터내셔널의
영국 지부)은 보다 일관된 이론과 실천 속에서 자율적 여성
운동의 필요성을 지지해온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주간지, 「사회주의적 도전(Socialist Challenge)」은
이제 여성 억압이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여성 해방 운동에 대한 지지를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여성억압을 전적으로 계급억압으로 환원하는
경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1978년에 「사회주의적
도전」에서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특집을 다뤘는데, 계급 착취와
구분되는 여성 억압에 대해 어떠한 분석도 없었다. 가부장제에
대한 분석은 전혀 없었다.
문제는 IMG가 여성이 독자적으로 조직할 권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만, 정통적 맑스주의의 한계 여성 억압에 대한 분석에서
정통적 맑스주의의 한계는 Rosalind Delmar의 ‘Looking Again
at Engel's “Origins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in A. Oakley and J. Mitchell (eds.) The Rights and
Wrongs of Women, Penguin, 1976과 Heidi Hartman의 앞의 책을
참조할 것.
에 대해서 우리가 언급하는 것을 받아들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들이 페미니즘과 사회주의를 통합하려는 방식은
단순히 기존의 강령에 ‘여성의 요구’, 곧 양육, 낙태 시설
등의 요구를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그들은 페미니즘이
노동 계급 정치와 좌파의 성격을 변혁시켜야 할 필요성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더 많이 착취되는 계급의 분파로서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남성과 함께 싸울 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측면과, 노동 계급 내부와 외부에서 나타나는 현재의 남성
지배에 대항해서도 싸운다고 주장한다. (흑인들은 물론 그들의
억압에 대해 비슷한 이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여성은 작업장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에 대항한 투쟁의 중심이다. 우리는 남성이 그들 자신을
바꾸고, 여성과 아동과의 관계를 바꾸고, 언제나 여성이 해 왔던
양육과 보살핌의 노동을 함께 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노동 계급 정치의 성격을 바꾸려는
방식이고, 노동 계급 내부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방식이다. IMG의
몇몇 지도자들이 여성운동을 ‘문화 운동’으로 치부해 버린
것은, 아마도 우리가 일상생활에 대해 얘기하고, 서로 관계 맺고
돌보는 새롭고, 비가부장적이고, 반권위주의적 방식을 찾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분석은, 우리가 단지 국가에 대해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1977년, 여성운동을 정치적 요구를 할 수 있는
사회주의 운동으로 본 죤 로스(John Ross)는,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라는 문제는 그것이 국가에 대한 요구가 될 때만이
정치적이라고 말했다. John Ross, ‘Capitalism, politics and
personal life’ in Socialist Woman, Summer 1977
그러한 분석은 분명히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거부될
것이다.
이처럼 IMG가 여성 운동의 조직적 자율성을 받아들이고, 실제로
현재 그들 조직 내부에 여성 위원회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이 계급정치의 새로운 차원으로서 페미니즘의 정치적
자율성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여성 억압이
단지 ‘노동 계급의 역사적 이해’라는 트로츠키적인 분석
내에서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서 우리가 노동계급을 무시하거나 우리
자신이 혁명적 사회주의자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 중 몇몇이, 충분히 페미니즘의 시각을 받아들이고
통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혁명적 조직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하나를 이루어야 할 투쟁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 SWP)은 영국
트로츠키주의 전통에서 최대의 그룹이고, 트로츠키주의의 정통적
입장과는 단절한 집단이다. 이 조직은 자율적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성 운동에 대한 그들의
기본적 태도는 그들 자신만이 오직 ‘진정한 혁명가들’이라고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SWP에게 여성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계급 투쟁을 건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 동일한
방식, 곧 SWP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만약 당신이
혁명적 사회주의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SWP에
참여하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성 운동의 조직적,
정치적 자율성 모두를 거부한다.
크리스 하먼(Chris Harman)은 SWP 중앙위원회에서 1902년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인용하면서, ‘계급 투쟁은 전투이다.
그리고 전투에서는 단일한 지도부만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여성의 조직적 독립성에 대한 어떠한 필요성도
거부되었다. 여성 억압은 자본주의 착취로부터 기인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성 조직의 정치적 독립성의
필요성을 거부한다. 여성의 정치와 ‘여성의 목소리’ 내부의
‘위기’에 대한 SWP의 현재 입장에 대한 설명은 부분적으로 SWP
동지와의 상세한 토론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SWP가 여성 운동에 대해 쓰게 되었을 때,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중간 계급이 되는 것에 대한 주저였다. 그리하여 여성의
정치에 대한 SWP의 주도적 필자인 안나 파츄스카(Anna
Paczuska)는 1979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회의를 다음과 같이
거부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단지, 집세 청구서와 잡지 구독
신청서로 둘러싸인 채, 화려한 잡지에 대한 기억 속에서
자족적인 삶을 사는, 다수가 30대인 중간 계급 여성들의
운동이다. 운동은 자신의 발치에서 또는 자신의 방의
안락의자에서 죽어 가고 있다. 그것은 체면과 향수, 그리고
국가와 기존 체제로부터의 직접적인 지원으로 질식해 가고 있다.
(「사회주의 노동자, 1979년 4월 7일자」)
‘중간 계급(middle class)’이라는 용어는 SWP가 남용하기를
가장 좋아하는 용어 중하나이다. 물론, 그들은 현재의 노동
계급이나, 교사와 같은 지위를 정의하는 번거로움을 결코 겪으려
하지 않는다. SWP에게 교사는 그들이 SWP의 당원이거나 노조
회의에 참여하였을 때는 노동계급인 반면, 여성 해방 회의에
참여한다면 중간 계급이다. 아마도 많은 노동자들이 자기 명의의
주택구입용 저당 부채나 잡지 혹은 안락한 가구를 전혀 가져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놀라거나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개인의 계급 출신을 그들의 계급적 관점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SWP는 분명 그러한 구분을 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언제 그들에게 적합할 지가
인식됨에 따라, 교사, 기술자 등 프롤레타리아화된 화이트 칼라
부문을 포함하는 노동계급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발전시킬
현실적인 필요성이 존재한다. 위선에 호소할 필요조차 없다.
이 글과 SWP의 주간지인 「사회주의 노동자」등에서
안나(Anna)는 스스로 모순적일 뿐 아니라 여성운동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적이다. 그녀는 우리와 우리의 활동을
거부하는데 관심을 갖는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을 거론하는 보다 최근의 글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노동계급이 여성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승리할 능력이나
독창력을 가졌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이러한 신념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투쟁을 분리해 버렸다.
(「사회주의 노동자」, 1979년 8월 18일)
여기서 안나는 내가 정통 맑스주의의 입장이라고 일컬었던 SWP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계급의 단결을
막는 장애로서 노동 계급 내부의 분리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에 반대하여, 우리는 여성 억압을
둘러싼 투쟁들을 이해하고, 이를 중심으로 스스로를 조직하고자
하는, 강하고 독자적인 여성 운동은, 좌파의 성격을 바꾸고 더욱
중요하게는 계급과 사회 내부의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필수적이라고 본다.
게다가 안나의 언설은 한 개인의 목소리로만 여겨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여성 문제에 대해 남성 지배적인 SWP의 중앙
위원회의 대다수의 견해를 대표한다. 그러나 SWP 당원들이
시작한 잡지이자 조직인 ‘여성의 목소리’ 내부의 상황은 보다
복잡하다. SWP의 중앙 위원회는 ‘여성의 목소리’가 우선적으로
작업장에서 노동 계급 여성들을 조직하여 그들 중 최상의
인자들을 SWP로 끌어들이기 위한 SWP의 ‘주변적 조직’이길
원한다. 그러나, ‘여성의 목소리’ 내부의 많은 SWP 여성들은
이러한 입장에 반대한다. 그들은 SWP의 자매 조직으로서
‘여성의 목소리’의 더 큰 독립성을 원하고 자신의 억압의 모든
측면에 대항한 여성의 투쟁에 대해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 중 다수는 여전히 여성 운동을
중간 계급적이고, 개량주의이며, 미조직되고, 노동 계급 여성과
관계없는 운동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들이 몇 년 전, 공식적인
전국적 낙태 찬성 시위 이후 독자적인 낙태 시위를 조직한 건
바로 이러한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과 반대로, 나는 여성운동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조류내부에는 자신의 정치를 현재의 상황에 위치시키고, 여성
운동에 노동 계급적인 기반을 구축하려고 하는 여성들이 많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SWP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유일한 조직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많은 노동 계급 여성들을 우리 회의와 지역
모임에서 만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여성 지원센터(Women's
Aid), 강간 보호 센터, 양육 캠페인, 런던에 있는 엘리자베스
가렛 앤더슨 병원(Elizabeth Garret Anderson Hospital) 지키는
일 등은 분명히 노동 계급 여성과 관계된 일이다. 여성 운동은
동일 임금을 위해 파업한 트리코 사(Trico)의 여성들과 노조
인정을 요구하는 그런윅(Grunwick) 파업가담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동원해 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노동 위원회와 세입자
협회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노동 계급
지향성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여성
운동의 중요성을 거부하고 그들이 여성 운동으로부터 배운 것을
부인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의 새로운 잡지 「여성의 목소리」가 성공한
것은 여성 해방 잡지인 「여분의 갈비뼈」로부터
편집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차용하고, 그것을 매우 비슷하게
모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여성의 목소리’가 추구하는 작업장 지향성의
수준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그들이 여전히 남성 지배에
대항한 여성의 중심적 싸움을 주변적인 것으로 위치 지우는 것,
즉, 투쟁의 선차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린지 저먼(Linsey German)은 여성 운동의 주도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노동 계급 여성은 그들이 가장 강력한 곳(노조나 세입자 협회)
보다는 그들이 가장 약한 영역 (매맞는 여성의 쉼터나 강간 보호
센터)와 관계한다…(「사회주의 리뷰」, 1978년
11월)
그리고 거리에서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괴롭힘과 폭력에
대항했던 ‘밤을 되찾자’(Reclaim the Night)라는 시위는
“하나의 ‘연성’ 이슈(soft issue)”로 언급된다. 여성이
어디서 가장 강력한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그러나 사실
노조원이 수적으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노조에서
여성들이 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점점 더 강해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노조에서 여성이 강력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강한 여성
운동에 의한 외부적 지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는
SWP가 맑스주의를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는
변증법이다. 물론 ’밤을 되찾자‘와 낙태 찬성 시위는 노동
조합 여성들의 지지에 도움을 받았고, 노동 조합 여성들은 여성
운동의 지지에 도움을 받았다.
‘여성의 목소리’가 여성의 투쟁에 대한 지지를 동원해 내는데
있어서 때로는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이 여성들을 SWP로 끌어들이는 것에 더 큰 선차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의 정당에 참여하는 것과
혁명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동일시한다는 사실은 ‘여성의
목소리’가 대중적인 여성운동을 건설하는데 집중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좌파와 다른 노동운동에 맞서서 여성 운동에서 올바르게
견지하고 있는 것은, 성 억압과 계급 억압이 서로 상호작용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둘 다 중심적일 뿐 아니라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두 억압은 상호 환원될 수 없다. 정통적
맑스주의 분석은 계급이 성에 더 우선적이라고 보기 때문에,
린지 저먼은 ‘근본적인 분리는 성의 분리가 아니라 사회에서
부를 생산하는 이들과 그들로부터 이러한 부를 강탈하는 이들
사이의 분리이다’(「사회주의 리뷰」, 1979년
9월)라고 썼다. 또 계급보다 성을 우선적이라고 보는 ‘혁명적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그들은 ‘여성의 혁명이 혁명이다. 성의
투쟁이 투쟁이다…’ 1977년 버밍엄 여성 해방 회의의 ‘혁명적
페미니스트들의 연설’
라고 말한다. 혁명적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류의 절반을 생물학적인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적 이론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간, 포르노그라피,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등 혁명적
페미니스트들이 강조한 몇몇 이슈들은, 페미니즘에 핵심적이고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과 사회주의 운동 전체가 이어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자유주의자들과 혁명적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
것처럼 단지 당신 자신의 억압을 조직하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는 여성으로
억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같은 방식으로 억압되는 것은
아니다. 흑인과 노동 계급 여성은 다른 방식으로 억압되고,
여성들간의 연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다 일반적인 관점이 없다면, 우리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반자본 투쟁들의 일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투쟁들로는
명백하게 여성이 관련된 투쟁, 흑인 투쟁, 반제국주의 투쟁,
그리고 노동 계급에 대한 보수당의 맹렬한 공세의 시기에 새롭게
성장하는 노동 계급의 공세가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주의적
관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그러나 결코 페미니즘에 기반하지
않고, 노동 계급과 사회의 분리-이는 총체적으로 강력하고
자율적인 여성 운동을 필요로 한다-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맑스주의를 우리는 ‘사회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여성을 해방시키지 않을 것이다.
4. 한 지역에서의 사회주의
주류 좌파는 자신의 이론이나 실천 속에서 맑스주의와
페미니즘을 적절히 통합하는 방식을 찾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에, 내가 보기에 단지 여성 운동 내부에서만
활동적인, 우리들의 정치적 견해에 문제와 한계가 있다는 것
또한 점차적으로 분명해졌다. 우리들 대부분은 진정한 여성
해방은 계급, 인종, 성 등 모든 위계적 관계를 파괴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혁명 없이는 여성 해방도 없고, 여성해방
없이는 혁명도 없다’. 그러나 우리들 대다수는 여성
운동만으로는 현대 자본주의와 그것에 대항한 국내적, 국제적
투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일상 생활에서의 개인적 관계와 개인적 억압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는 여성의 정치와, 보다 총체적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좌파 그룹의 정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물론 이는
사람들과 자신의 감정에 대한 여성의 관심과, 실제적인 문제와
광범한 세계에 대한 남성의 관심 사이의 전통적인 분리를
반영한다. 우리는 언제나 투쟁의 주관적인 측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영역에서는 언제나 이보다 더 나아갈 수는
없었다.
이것은 1974년 말, 내가 나의 에너지를 지역 정치 신문,
아이링턴 빈민 신문(the Islington Gutter Press)에 쏟아 붓기
시작한 이유 중에 하나이다. 이것은 여성 센터를 세운 여성들 중
몇몇과 함께 만든 자율주의적 사회주의자와 페미니스트들의
신문이었다. ‘the Gutter Press’는 저속하고 추잡한 내용을
담는 하층민들 대상의 신문으로 일컬어져 왔다.
우리가 새로운 정치적 발단을 모색하게 했던 것은 센터를 세웠던
여성들이 더 이상 센터에 열정적이지 못하다는 사실뿐 아니라,
에섹스 가에서 우리가 노동 계급 여성들과 제대로 관계 맺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세계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론적 입장, 또는 적어도 그 속에 위치한 여성의 종속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여성 운동에 대한 글과
논쟁 덕분이었다. 에섹스 가에서의 우리의 활동은 진정으로
우리가 정치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증대시켰고,
그리하여 우리는 감정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에 대해 미국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린다 고든(Linda Gordon)이 보다 일반적으로 말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사람들이 개인적인 문제가 더 큰 정치적 구조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그들은 재빨리 전체적인 사회에 대한
정치적 인식을 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많은 여성들은 성 관계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페미니즘과
사회주의로 이동하였다. ‘Sex, Family and the New Right' in
Radical america, 1977/78년 겨울호
지역 빈민 신문(the Gutter Press) 활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줬다. 우리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지역 정치 문제를 수년이 걸려서야 비로소 다룰 수 있었다. 또한
지방 정부의 활동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지역
당국의 재정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 지역의 남녀들과 더 많은 접촉하고자 했다. 우리는 그
지역의 주택문제, 더 나은 (복지) 서비스를 위한 투쟁, 아일링턴
지역의회의 활동 부재, 그리고 노동당 지방의회 내부에서 보다
진보적인 정책들이 채택되도록 노력하는 노동당 좌파 몇몇
사람들의 적극성 등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보도하고 있는 여러 투쟁들과 활동들을 서로
연결시키고자 노력했다. 더 나은 주택을 위한 투쟁 및 활동들을
집주인이나 투기꾼들의 권리남용에 대한 반대, 지역 산업의
쇠퇴에 대한 반대와 연결시키는 것; 더 나은 교육과 청소년을
위한 더 많은 공간 확보를 위한 투쟁 및 활동들을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 성차별주의에 대한 반대, 온갖 종류의 복지삭감에
대한 반대나 서비스에 대한 통제 확보를 위한 투쟁 및 활동들과
서로 연결시키는 것 등이 그러한 예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슈들을 편협하게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해크니
지역이나 월남의 하이퐁에서 일어난 일에도’ 관심을 갖고
있음을 단언하면서, 우리들은 항상 그 이슈들을 ‘지구적인 관점
속에’ 위치 지우고자 노력했다.
우리는 누가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좌파 그룹들로부터도 독립적이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좌파 그룹들은 모두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이며,
남성 지배적이었다. 물론 전문가주의나 남성 지배와 같은 유사한
문제들이 신문 작업에서도 계속해서 발생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기에 ‘큰 불꽃’을 제외한 좌파 그룹들은
우리의 정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산업활동이나 전국적 캠페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비해, 우리의
정치는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 활동과 지역의 조직화 시도를
강조하였다. 트로츠키주의 성향의 출판사에서 마련된 것으로
ꡔ분열을 넘어서서ꡕ 초판 발간이 끼친 영향을
평가하는 글들과 관련해서 보건대, 지역 조직화(local
organizing)를 강조하는 이 부분은 거의 모든 리뷰들에서 완전히
무시되었다. 변하길 원했었지만,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동원과 당 건설을 강조하고 전국적 캠페인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들의 방식이 우리의 일관된 지역 조직화 시도를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우리가 어떤 형태의 저항이나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누구 건간에 그 사람들의 특수한
활동과 욕구들에 개방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방식으로 지역을
조직화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우리는
보다 광범한 사회주의적 집단화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지역에서 사회주의 신문만을 만드는 하나의 소그룹으로 고립되는
것도 우려했다.
1978년 5월에 ‘아일링턴 빈민 신문’은 부분적으로는 우리들
자신의 고립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른 이유로는 우리가 하나의
단체로 성장하지도, 신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을 직접
참여시키지도 못한 실패를 넘어서기 위해서 지역 사회주의
협의회를 조직하였다. 우리는 또한 신문이 우리와 비슷한 정치적
관점을 갖고 있는 사회주의자들을 더욱 폭넓게 규합하는 책임을
짐으로써 상이한 투쟁 영역들을 지원하고 연결하는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 사회와 산업 투쟁들간에 안정적인 조직적 연결을
촉진시키는데 도움이 되길 원한다’고 썼다. ‘… 우리는
지역투쟁들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 더 많은 통합과 지원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전투적인 노조평의회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통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썼다(1978년 3월 지역신문
리플렛). 협의회에는 150명이 참석했는데, 거기서 우리는
아일링턴에 사회주의 센터를 세우고자 애쓰는 많은 이들이
좌파그룹과 노동당의 내부와 외부에 있음을 발견했다. 이
사회주의 센터는 현재 매주 지역 펍(맥주 파는 전통 주점)에서
모임을 갖고 있으며, 대부분의 좌파, 특히 노동당, 공산당,
국제사회주의자 그룹, 큰 불꽃의 개별 구성원들뿐 아니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 수많은 무정파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후원되고 있다.
센터는 아일랜드, 페미니즘, 인종주의 및 파시즘,
국제적/국내적 투쟁들 등에 관해 참석률이 매우 높은 성공적인
모임을 많이 조직했다. 그뿐 아니라 지역 상황을 보다 자세히
이해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놀이나 여흥도 제공되었다. 저녁
시간은 예컨대, 아일랜드에 관한 대규모 시위 전후로 해서
아일랜드 문제에 관한 모임을 개최하는 식으로, 더 폭넓은
투쟁들에 맞추어 계획되었다. 이처럼 센터는 지역의 다른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는 유용한 거점을 제공했다. 센터는
투쟁이 발생했을 때, 정치 교육의 제공과 대안적 사회주의 및
페미니스트 문화의 성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문선활동을 제공할
뿐 아니라, 보다 정규적인 공동활동의 가능성도 증대시켰다.
나는 활동가들 사이의 접촉과 신뢰를 확립하기 위해 ‘지역 빈민
신문’이 수행했던 일관된 활동들이 있었기에, 사회주의 센터가
아일링턴에서 하나의 현실적인 가능성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신문발행 집단도 이제는 확대되어서 정치적 입장도 보다
다양해졌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센터는 전통적 좌파 외부에서 새로운 조직화
방식을 찾으려는 애초의 시도가 타당함을 입증하는데
부분적으로나마 기여했다. 현재는 센터가 노동자 계급 내부에
우리의 기반을 더 넓게 확장시키기 위한 장소로서보다는, 좌파들
사이의 공동활동과 토론을 위한 중심으로 기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들 중 몇몇은 우리가 투쟁하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지원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것에 대해 크게 염려하고 있지
않다. 사실상 센터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측면중의 하나는 두 집단 즉, 좌파적 대안을 창출하는데
대부분의 관심을 두는 사람들과 계급투쟁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만큼 명확하게 규정하고 분리하고 있는가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대다수는 여전히 센터가, 그
지역의 노동계급 여성들과 남성들에게 다가서는 방식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공동활동을 위한 현실적인
가능성을 창출하였다고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작업장과 노동조합에 집중된 보다 전통적인 정치활동 형태들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노/정/연
번역: 신병현 연구위원 / 박정미 연구원 이번 호에 완결짓지
못해서 죄송스럽습니다. 결론 부분은 다음 호에 계속 번역되어
실릴 예정입니다. -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