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
WTO를 마비시킨 “세기의 투쟁”
11월 30일 시에틀 WTO 뉴라운드 출범반대 국제민중연대투쟁
리포트
원 영 수
국제기획실장
국제노동
WTO를 마비시킨 “세기의 투쟁”
이 글은 ‘투자협정과 WTO 뉴라운드 반대 민중행동’의 대표단의
일원으로 1999년 11월 30일에서 12월 3일까지 열린 WTO 3차
각료회담에 반대하는 시애틀 투쟁에 참여한 연구소
국제기획실장이 현지의 경험에 입각하여 쓴 현장 리포트이다.
지난 해 11월 30일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그리고 전세계
각국에서 미국 북서부의 도시 시애틀에 모인 활동가들은 시애틀
중심가를 완전히 점거한 채 WTO 3차 각료회의가 열리는 컨벤션
센터 일대를 포위하였다. 5만여 시위대의 봉쇄 속에서 이번
회의의 공식 개막식은 대표단의 저조한 참석으로 취소되었다.
첫번째 승리였다!
개막식도 치르지 못한 채, 이날 오후부터 무리하게 강행된
4일간의 각료급 회담에서 미국 무역대표부 바셰프스키 대표와
WTO 사무총장 마이클 무어는 12월 3일 폐막식마저 취소하면서
최종적 합의를 시도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회담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일찍이 유례없는 상황이었다.
WTO체제에 항의하는 전세계 민중투쟁의 승리였다!
1994년 타결된 우르과이 라운드와 같이, 의제가 합의되는
회의장소를 따라 협상의 명칭이 정해지는 관례에 따라 태어날
예정이었던 ‘WTO 시애틀 라운드’는 태어나지도 못한 채,
역사의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초국적자본과 제국주의
세력들로서는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최악의 치욕적 패배였고, 이들에 맞선 전세계 민중에겐
최대의 승리였다! 이번 투쟁은 초국적자본의 지배를 강요하는
WTO체제에 대한 전세계 민중의 강력한 경고임과 동시에,
“세기의 투쟁”(Protest of the Century)이었다. 그러나
시애틀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부 WTO (Invisible Government WTO)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는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마지막 협상인 우루과이 라운드를 8년여만에
마친 후, ‘자유화’를 기치에 내걸고 출범하였다.
세계은행(World Bank) 및 국제통화기금(IMF)과 더불어,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지배하는,
‘자유화’(liberalization)를 집요하게 추진하는 또 하나의
괴물로 등장한 것이다.
WTO는 GATT뿐만 아니라, 농업협정, 서비스 일반협정(GATS),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 위생기준적용협정(SPS),
기술적 무역장벽 협정(TBT), 무역관련 투자조치협정(TRIMS),
반덤핑 협정 등 수많은 협정을 통해 지배범위를 엄청나게
확장함으로써, 세계경제질서를 규정하는 막강한 독재권력이
되었다.
더욱이, WTO는 이번 시애틀 각료회의를 통해, 공산품 교역
이외에 농업과 서비스 등 기존의 협상영역 외에도, 투자,
경쟁정책, 정부조달 투명성 등의 영역을 새로운 의제로
추가하여, 초국적자본에게만 유리한 세계경제체제를 구축하려고
시도하였다.
11월 30일, 시애틀 중심가
이날 시애틀의 아침은 초겨울의 전형적인 날씨처럼 가랑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시작되었다. 오전 7시경 지역 TV를 통해 WTO
회의장 주변의 경찰저지선을 중심으로 시위대오가 집결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전해졌다. 그리고 워싱턴 대학에서 지난 며칠간
집결했던 학생 활동가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시내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본행사인 AFL-CIO의 노동자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는 시내 중심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대오는 갈수록 불어나기 시작했고 이미 시내로 향하는
모든 교통편은 차단되었다.
오전 10시 시내 남쪽에 위치한 메모리얼 스타디움에는 3만여명의
노동조합원들이 모인 가운데 AFL-CIO(미국노총)가 주최하는
대규모 노동자집회가 열렸다. 미국의 주요 노동조합은 서로
구별되는 색깔의 레인코트 대오를 통해 자신의 단결과 힘을
과시했다. 세계 144개국의 노동조합과 50여개의 미국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노동자들이 집결한 가운데, 미국과 세계 노동운동의
주요 지도자들이 연설을 시작했다.
무려 17명에 이르는 연사들이 WTO를 규탄하는 열변을 토할
때마다 참석한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은 환호를 답했다. 특히 이
날의 시위에 동조하여 시애틀항과 인근 타코마항, 더 나아가
멕시코, 미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태평양 해안을 완전히
마비시킨 국제항만노조(ILWU) 위원장 죤 맥클레인의 열정적
연설은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AFL-CIO
위원장 죤 스위니가 연단에 섰을 때 일부 노동자들은 현장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AFL-CIO에 대해 항의성
야유를 보냈고, 이미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시내를 향하여
행진하기 시작했다.
AFL-CIO 지도부는 지난 10월 총회에서 자유무역론의 옹호자인
민주당의 앨 고어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의한 바 있으며,
이번 회담직전에는 ICFTU(국제자유노련)사무총장 빌 조던과 함께
WTO 사무총장 마이클 무어를 만난 자리에서 WTO 개혁,
노동조합의 협상참여, 노동기준을 포함한 사회적 조항 등의
편협하고 극히 형식적인 요구만을 제시하여 다수의 노동조합
활동가를 실망시킨 바 있다.
더 나아가, 유일한 대규모 조직동원의 주체인 AFL-CIO의
행진경로는 중심가 남쪽의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시작하여
회담장 근처에서 방향을 서쪽으로 돌리는 코스로 정해져, 이는
AFL-CIO 지도부의 기회주의적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오후 1시경 시내의 시위대와의 합류를
두려워하는 지도부의 지시로 노동조합 측 행진안내요원들은
시내로 향하던 시위대를 도심 외곽으로 유도하려고 했지만,
수많은 조합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야만 했다. 그리고 다수의
전투적 조합 활동가들은 이들의 제지를 뚫고 시내 중심가로
향했다!
이미 오전부터 회의장 입구를 막아선 전투경찰과 대치하던
시위대에, 집회를 마친 노동조합원을 중심으로 한 행진대오가
결합하자, 이 날의 시위행진은 절정에 올랐다. 아메리카 대륙,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집결한 활동가들의
대오에, 각자 자신의 노동조합을 상징하는 복장으로 WTO를
비난하는 피켓을 든 노동자 행진대오가 결합하면서 전체
시위대는 5만을 넘었고, 시애틀 시내 중심가는 문자 그대로
‘해방구’였다.
“No to WTO!”(WTO 반대!) “Hey! Hey!, Hoh! Hoh! WTO has got
to go!”(WTO, 물러가라!) 시위대의 함성은 시애틀 중심가를
완전히 뒤덮었고, 시위대는 WTO 회담장을 지키는 전투경찰과
회담장 전체를 완전히 봉쇄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시위대는 각자의 대오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집회와
퍼포먼스를 연출함으로써, 이번 투쟁을 하나의 ‘축제’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시애틀의 혼란- 누구의 폭력인가?
국내외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이 날의
행진과 집회는 대개 평화적이었다. 오히려 주경찰과
연방경찰까지 동원한 경찰측의 무차별적 최루탄 난사와 폭력,
불법적인 체포가 혼란을 가져왔을 뿐이다. 70년대 베트남
반전시위 이래, 대규모 시위가 거의 없다시피 한 미국에서, 이와
같은 대중동원은 부르주아 언론에게 아마도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실, 11월 29일 시애틀에 속속 활동가들이 도착하면서 서서히
분위기는 고조되기 시작했으며, 시내 일부지역에서 성급한
시위대와 경찰의 사소한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30일 오전, 일부
시위대는 맥도널드, Gap, 등 다국적기업 계열의 상점의 유리창을
부수었고, 경찰에 최루탄 난사에 항의하여 몇 개의 쓰레기통을
불태웠을 뿐이다. 이 정도가 사실 폭력의 전부였다.
11월 30일 오후 5시경, 시내를 점거한 시위대열은 경찰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전혀 해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개막식 무산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대는 축제분위기였다.
마침내, 경찰은 시위대를 강제해산 하기로 결정하였다. 한편에서
시애틀 경찰은 연방경찰의 투입을 요청하면서, 오후 7시를 기해
시애틀 중심가의 민간인 통행금지를 선포하였다.
이 시각 이후, 경찰은 시위대에 대한 강제해산작전에 돌입하여,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무차별적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 날의
시위해산은 시위대의 저항 때문에 자정을 넘은 시각까지
이어졌고, 시내주변의 주택가는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그러나 시위대의 투쟁은 11월 30일로 끝나지 않고, 12월 3일
각료회담 종결시까지 산발적으로 계속되었다. 특히 12월 1일
클린턴 대통령이 시애틀에 도착하면서 경찰의 과잉반응은 한층
더해 갔다.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면서 시애틀 시내를 질주하는
모터사이클과 순찰차, 위압적인 기마경찰과 전투장갑차, 몇몇
시민들이 항의하려고만 해도 즉각 최루탄을 발사하는 전투경찰,
경찰측의 이 모든 작전은 시애틀 시내를 완전히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회담장 입구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 “비폭력저항”
전술로 끝까지 연좌농성을 벌이던 직접행동 네크워크(Direct
Action Network)의 활동가 500명 이상을 뚜렷한 혐의없이
체포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경찰폭력에 대한
시애틀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전세계 민중연대투쟁에 결합한 ‘민중행동’ 대표단
1999년 9월 민주노총과 진보적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출범한
‘투자협정과 WTO 뉴라운드 반대 민중행동’은 이번 투쟁에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한미․한일 투자협정 반대투쟁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해
왔던 ‘민중행동’은 ‘더 많은 자유화․개방화’를 위한
포괄적 자유무역협상인 뉴라운드의 출범을 목표로 하는 제3차
WTO 각료회의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대응을 위하여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결의하였던 것이다.
특히, WTO가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추진해 왔던
‘자유화․개방화’가 한국 민중을 포함한 전세계
민중들에게 어떠한 혜택을 주기는커녕, 그들의 약속과는 달리
민주주의, 인권, 생태계, 문화적 다양성 등에 다양한 영역에서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시애틀 현지에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또한 ‘민중행동’은 한국
민중의 입장을 천명하는 것을 넘어, WTO 뉴라운드 출범에
반대하는 각국의 노동자들과 민중운동 활동가들과의 강력한
국제연대운동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대표단은 11월 30일 투쟁에 참여하여, WTO체제에 반대하는
한국민중의 입장을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전․사후 행사에도 참여하였다. 대표단 ‘민중행동’
대표단: 유상욱(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양기환(스크린쿼터
감시단 사무처장), 김제남(녹색연합 사무처장),
김명준(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이창근(민중행동 사무국장)
원영수(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국제기획실장)
의 간략한 활동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대표단 주요 활동 현황
11월 24일(수): 샌프란시스코 도착
‘노동자 비디오 프로젝트’ 주최 만찬 참여
11월 25일(목): 시애틀 도착
11월 26일(금): 토론회 참석- ‘경제의 세계화와 WTO의
역할’(지구화 에 관한 국제포럼, IFG)
베나로야 콘서트 홀
11월 27일(토): 토론회 참석- ‘노동자 민주주의, 국제주의
그리고 WTO’ 참석, 델리지 커뮤니티
센터
‘민중재판’ 참석- 노동착취공장 GAP에 대한
심 판, Labor Temple
토론회 참석- ‘경제의 세계화와 WTO의
역할’(지구 화에관한국제포럼, IFG),
베나로야 콘서트 홀
11월 28일(일): ‘민중회의’(People's Assembly: No to WTO),
필 리핀 커뮤니티센터: ‘민중행동’의
WTO뉴라운드에 대한 입장 발표(이창근,
민중행동 사무국장)
‘독립비디오 활동가 모임’ 참석,
독립미디어센터
11월 29일(월): ‘WTO에 NO라 말하라’ 민중회의 참석
‘노동미디어, 민주주의 그리고 WTO’
참석(노동자 비디오프로젝트): 한국사례
발표- 노동네트워크 및 스크린쿼터 투쟁
11월 30일(화): ‘NO to WTO’ 집회 참석(민중회의 주관),
차이나타 운 4th & 잭슨가: 집회 이후, 한국
민중들의 서명 이 담긴 대형 플래카드 등을
앞세우고, 한국 민중운 동과 연대를 표명한
미국 및 국제적 사회단체들과 함 께 행진,
시내 집회에서 유상옥 전농 사무처장 연설
민중행동 시애틀 대표단 기자간담회
12월 1일(수): ‘여성, 민주주의 그리고 발전’의 날 행사
참여, 연합 감리교회
‘WTO에 대한 대안 발전시키기 -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맥락들’ 워크숍
참여
‘서비스협정(GATS)에 맞서 싸우기’ 워크숍
참여
‘남반구로부터의 목소리’: ’남반구에서
북반구까지 초
국경적 저항’ 프로그램 참석: ‘UR과 IMF
이후, 한
국 민중의 현실과 대응’ 주제로, 녹색연합
김제남 사
무처장 발표
12월 2일(목): ‘식량과 농업의 날’ 행사 참여,
연합감리교회
12월 3일(금): ‘한국 민중과의 연대 행사’, 콜롬비아 도서관
: 93년 농민대회, 스크린쿼터사수투쟁
그리고 노동자 총파업 투쟁 관련 비디오
상영
뉴라운드를 위한 협상의 쟁점과 결렬과정
이번 시애틀 각료회의는 뉴라운드 의제에 관한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회담 자체가 결렬되고, 뉴라운드 출범이
유보되기는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몇가지 항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합의사항들은 향후 협상의 기본적 토대가 될 것이다.
특히,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이미 설정된 의제인 농업과 서비스
부문에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합의’가 도출되었다.
농업협정의 경우, ‘농축산물도 공산품 수준으로 관세를
인하하자’(Equal footing)는 미국을 비롯한 케인즈그룹의
주장은 제외되었지만, 농축산물 시장접근 분야에서는 “가급적
폭 넓은 자유화”(Broadest possible liberalization), 국내
보조금 분야에서는 “상당수준 점진적인 감축”(Substantial
progressive reduction)으로 ‘잠정 합의’하는 수준으로까지
논의가 이미 진행되었다. 그러나 ‘수출보조금 분야’의 경우,
‘완전 철폐’를 주장하는 미국과 ‘점진적 삭감’을 주장하는
EU와 일본측이 막판까지 대립함으로써 합의하는데
실패하였다.
서비스협정의 경우, 모든 분야를 ‘협상의 대상’으로 놓기로
합의함에 따라 교육․보건의료(공공서비스),
상수도(환경서비스), 문화(시청각서비스) 등에 대한
자유화압력은 거세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향후 협상은
농업과 서비스, 여기에 공산품 관세인하 등 일정하게 ‘합의’가
도출된 의제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향후 협의에 따라 보다
포괄적인 의제들(투자, 경쟁정책, 정부조달 투명성 등)이 상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제3세계 국가들이 집중적으로 제기했던 다양한 이슈들은
‘잠정합의 사항’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개도국
우대조치에 대한 이행 여부 점검, 지적재산권협정에서 생명특허
배제,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 제고 등이 그것들이다. 한편,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 문제, ‘투자’, ‘반덤핑’ 등의
쟁점에서는 여전히 국가간의 의견 대립으로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시애틀 이후, WTO측은 충격에 휩싸여 2년마다 열리는 각료회의를
6주 이내에 다시 열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4차 각료회의
일정은 현재 불투명하다. 특히, 미국의 대통령선거 일정과
맞물리면서 시기를 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부 당국자의
발언에 의하면, 빨라야 3~4월이며 늦어지면 미국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행정부가 구성되는 2001년 1월 이후로까지 미뤄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들에서 미국 대선 이후는 너무
늦어지므로, 그 전에 각료회의가 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선 이전에 클린턴 행정부가 책임 있는 협상을
전개할 것인가라는 점은 여전히 의문이다.
의미와 향후 전망
이번 투쟁에 결집한 전세계 민중운동진영의 WTO에 대한 입장은
크게 두가지로 대별되는데, 1) WTO가 ‘무역과 노동․환경
기준을 연계’시켜 다루게 함으로써, 그 체제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2) 노동․환경기준을 무역과
연계시키는 것에 반대하고, 대신
농업․공공․문화․상수도 등 핵심 분야를 WTO
체제에서 ‘제외’(Exemption)시켜, 그 권한과 권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시애틀 회담에서 첨예한 쟁점이 되었던 ‘노동기준’
문제에 있어서, AFL-CIO는 전자의 입장을 택하고 있고, 이로
인해 미 클린턴 행정부가 ‘시위를 조장하고 이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실제 클린턴 행정부는 11월 30일,
대규모 시위 이후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 주장을 강력히
제기하였다. 이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동조합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직면하여,
‘제3세계의 싼 상품들이 자국으로 밀려듦으로써 위협받는
조합원의 고용․임금 수준’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강력한 로비를 했기 때문이며, 국제자유노련(ICFTU)나 미국의
거대한 NGO들이 이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내의 전투적 노동조합과 현장조합원들, 필리핀 KMU을
포함한 제3세계 노동조합운동 등 진보적 노조운동세력들은 이런
입장에 반대한다. 이들은 ‘국제적으로 노동기준을
향상’시키는데, WTO를 활용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WTO를 강화하면 할수록, 최소한의
노동기준 보호 장치인 ILO는 점점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노동기준을 무역과 연계시키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ILO가 규정한 노동기준이 세계 각국에서
비준되고 법제화되도록 투쟁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진보적 시민운동세력은 WTO 중심의 자유무역질서에 맞선
최소한의 대응전략으로, 우리 삶의 핵심분야는 ‘자유무역’
체제에서 ‘제외’(exemption)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생태주의자, 농민, 교육․보건의료 노동조합 등을
중심으로, 농업, 상수도, 보건의료, 교육, 문화, 생명체 특허
등의 부문은 WTO 체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각 부문의 개별적 요구’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 사이엔 WTO 체제가 지향하는 허구적인
‘자유’무역 원리가 적용되는 영역이 점점 축소되어
궁극적으로는 해체되어야 하며, 보다 진보적이고 상호협력적인
국제경제질서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마치며
이번 11월 30일의 전세계 민중연대투쟁은 WTO 각료회의 개막식을
무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폐막식마저 취소하면서 합의안을
도출하려는 WTO 대표단에게 강력한 압박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개막식이 취소된 상태에서 강행된 회담은 농산물, 노동기준,
반덤핑규제 등 주요핵심사안에서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폐막식까지 취소하면서 합의를 도출하려던 미국측의 의도에
결정적 치명타를 가했던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협상을
출범시키려던 WTO는 그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담은
끝났지만, 협상은 결렬되었다!!!
사실, 투쟁이 시작되기 전 여러 가지 의문과 회의가 적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60년대이래 최대의 동원으로 기록되는 이번
투쟁은 작년 MAI(다자간 투자협정) 반대투쟁의 승리에 이어, 또
하나의 중요한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그 동안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 상태에서
좌절감을 많이 느꼈던 전세계 민중운동에 새로운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90년대 중반이후 본격화된 초국적자본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전세계 투쟁은 올해 5월 EU정상회담에 맞선 유로마치의 5만명
동원에 이어, 이번 시애틀 투쟁으로 또 한번의 정점에 올랐으며,
작년 MAI반대투쟁의 성과에 힘입어, 마침내 WTO 뉴라운드 출범의
저지라는 예상밖의 성과를 쟁취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투쟁은
첫걸음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번 협상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WTO를 앞세운 전지구적 초국적자본은 그 신자유주적 공세를 늦출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시애틀에 모인 전세계의 모든 활동가들이 공유했던 것은
국가별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전지구적 공세가 세계 각국의
노동자-민중을 실업과 빈곤, 환경파괴와 사회복지 파괴 등
더욱더 동질적 조건 속에 몰아넣음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전지구적 공동투쟁과 저항의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번 시애틀 투쟁은 다음 세기에 벌어질
새로운 전지구적 계급투쟁의 새로운 전주곡이자, 전세계
노동자․민중에게 희망을 제시한 역사적 투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