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장은
한전 분할․매각 저지투쟁 약평과 과제*
김 동 성
전력노동조합 태안화력지부 지부장
* 이 글은 이번 투쟁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가 아닌 개인적인
평가임을 밝입니다.
1. 현장동력복원의 관점에서 기존 투쟁을 평가해야
1947. 4.19 미군정청 노동조합 설립 신고 1호
1949. 2.12 노조 파괴공작 관련 경인지구 1시간 단전 파업
1980. 7. 국보위 지시에 의거 213명 강제해직, 퇴직금 1/2
삭감, 평균 임금 4% 축소
1982. 3.12 제8대 장활수 집행부 국보위 지시에 합의
1995. 4.28 직선제 실시를 이유로 한전기공 특별지부 제명
1994. 전국 최초로 정부 3% 임금 억제선에 합의하고
최태일 위원 장을 비롯한 13명의 조합간부
정년연장
특정인 정년연장 반대투쟁을 하다가 울산화력지부
부위원장 해고
1996. 1.12 파행적인 조합활동과 자신을 정권 시키려는 최태일
집행부에 맞서한일병원김시자지부위원장분신
사망
분신대책위 활동으로 7명의 조합원이 징역과
집행유예 선고받음
50여 년의 빛나는 전통보다는 파행적인 조합활동으로 얼룩진
전력노조 그리고 불신을 넘어 무관심으로 치닫는 전력노동자
앞에 전력산업 분할․매각이라는 자본의 공세가 갑자기
밀어 닥쳤다.
연례 최대행사인 임금협상(투쟁이 아니고 매년 협상이었다)에서
조차 한 번도 조합원을 조직하거나 쟁의준비를 해보려고 하지
않은 전력노조가 삼킬 듯이 밀려오는 구조조정에 맞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뜻 있는 사회 노동운동 단체들의 연대투쟁으로 전력산업구조개편
관련 법안의 국회 상정을 일단 보류시키기는 했지만
정부․여당이 구조개편 관련 법안 국회 통과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마당에 언제라도 다시 불거져 나올 수
있다. 4월 총선 이후 분할․매각 저지투쟁이
전력노동자에게 요구할 투쟁 수위는 이제까지 해왔던 투쟁력의
몇 배를 요구할 것이다.
전력노조와 전력노동자 존재 자체를 위협할 자본과 친자본적인
정부의 분할․매각 공세에 대항하여 이전과 확연히
구별되는 결사항전의 투쟁대오를 꾸리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투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투쟁 지도부에 대한
믿음이 엷어지고 현장의 투쟁동력이 저하되고 있음을 직시하여
그 동안의 투쟁을 현장투쟁동력의 복원이라는 과제를 중심에
두고 평가함으로써 이후 투쟁을 더욱 강고하게 이끌어 나갈
지도부의 구성 및 자세 정립과 현장투쟁력 강화 프로그램에 대한
큰 고민이 있어야 한다.
2. 날로 약화되는 현장동력과 비대위의 한계
3년 임기의 1999년 본부집행부 선거에서 권원표 집행부는 간신히
재선되었고 거의 직선제인 발전지부에서는 민주세력이
약진하였다. 본부집행부는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본부위원장
직선제 요구와 수년간 억눌려 왔던 임금에 대한 조합원의 높은
불만, 외부에서는 전력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전력산업을
초국적 독점자본의 이윤의 도구로 복무시킬 한전
분할․매각에 대응하여 본부집행부 독자적인 지도력으로는
신뢰도 면이나 투쟁력 면에서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본부집행부에 대한 의구심의 근저에는 전력노조의 어두운
과거사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근래에 사안의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본부집행부가 방관해 버린 한일병원 매각반대 투쟁,
전산직 외주화 반대투쟁, 발전소 분할․매각 저지투쟁의
방향타가 될 안양․부천복합화력 매각 저지투쟁에서 보여준
본부집행부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이 깊이 새겨져 있다.
이에 다수 발전지부는 자구책으로 4월 24일 400명 규모의 부천
송내역 집회, 4월 29일 전산직군 강제 파견 반대농성을 거쳐
급기야 5월 6일 친목성격의 발전지부협의회를 해체하고
발전지부연대회의로 발전시켰고, 5월 8일 안양․부천 매각
이사회 저지투쟁, 연대회의 의장단 모임 등을 통해 본부집행부를
압박하여 나갔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6월 5일~6일 양 일간 발전지부연대회의
지부위원장 수련회를 통하여 본부집행부와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6월 20일 500명 규모 안양 중앙공원 집회와 7월 1일
발전지부 조합원 총동원 과천 산업자원부 앞 집회를 결의하고
착실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6월 25일 수안보 임시대의원 대회에서는 그 동안의 지지부진한
투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본부집행부 불신임 안건이
상정되었으나 부결되고 선거 참여 조직간 분배 차원으로
전력산업구조개악 저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구성되었다. 이후 평가에서도 나오겠지만 이런 분배 차원적인
비대위 구성 자체가 이후 싸움이 현장 중심이 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발전지부연대회의가 결의한 7월 1일 과천 집회는 비대위가
주관하는 전력노조 전체의 서울역 집회로 확대, 변경되고,
비대위에 대한 조합원들의 큰 기대감으로 전력노조 역사상 1만명
이상이 참여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조합원들의 위기의식과 투쟁의 고리를 만들어 보려는
발전지부연대회의 소속 지부들의 활동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력산업구조개편 저지투쟁의 정점이 되어
버린 7월 1일 서울역 집회를 선거조직간의 안배로 이루어진
이질적인 인자들의 집합체인 비대위가 이어받기는 예상대로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대위의 모습은 과거에 우리가
그토록 비판해 왔던 본부집행부의 모습을 하나씩 닮아가기
시작했다.
7월 1일 서울역 집회에서 확인된 조합원의 투쟁열기를 받아 안고
중앙과 현장에서 투쟁을 지도해 나갈 조합간부들의 결의를
모아야 할 자리인 7월 12일 과천 산업자원부 앞 집회에서 보여준
비대위 지도부의 조합간부 조직화 능력과 맥빠진 모습,
서명기간과 방법이 중구난방인 천만인 서명운동,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투쟁지도부가 보호하지 않는 비대위 지침, 대정부
위협용으로만 한정적으로 이용되는 희생자 구제기금 찬반투표와
파업찬반투표, 8월 21일 전국 권역별 집회에 조합원 4000여명
참가, 조합원들의 확실한 투쟁일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두
달간의 현장 공백을 거친 후 비로소 이루어진 10월 3일 서울역
집회에 조합원 5000 여 명 참가, 11월 21일 한국노총 노동자
대회 조합원 3000명 참석, 12월 17일 4시간 한시파업이
상경집회로 변경되어 조합원 500 여 명 참가, 12월 23일
하루파업도 상경집회로 변경되어 조합원 200 여 명 참가 등
시간이 지날수록 지도부와 조합원은 괴리되고 현장 투쟁 동력은
서서히 죽어 가고 있다.
3. 투쟁 평가와 과제
비록 싸움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과오를 시급히 반성하고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 후 투쟁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현장에 팽배하다. 따라서 현장 투쟁동력 재건을
중심으로 중간평가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① 투쟁일정이나 내용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합원들을 배제한 채
지도부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노동조합 최대 무기는 파업이고 그 중심에 현장 조합원 동력이
자리잡는다. 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곧 협상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정부나 회사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는
작업이 일정 시간이 요구되는 현장투쟁력 강화 작업이다.
조합원들이 한낱 집회 동원대상으로 전락하고 현장동력이
저하되어 가는 가장 큰 원인은 현장 투쟁계획 및 조합원 조직화
작업 부재에 있고 이것은 곧 최후의 수단으로 파업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② 비대위를 움직이는 중심세력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선거조직간의 안배로 이루어진 이질적인 집단이라 하더라도
비대위 내부에서 일부 인자들로 구성되는 강력한 추진세력이
형성되었더라면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투쟁 일정이 수립되고 그
일정에 따라 현장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서로를 의식하고 넘김으로서 비대위의 투쟁
중심세력을 느낄 수 없다.
③ 현장을 책임지고 점검, 지도하는 단위가 없다.
비대위 지침을 지부단위에서 마치 각자 알아서 이행하라는 듯이
지침 이행여부를 점검하고 유도 해내는 노력이 없고, 전적으로
지부위원장에게 일임되었다. 따라서 일선 지부위원장들은 비대위
지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눈치껏 행동함으로써 전체의
투쟁대오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발전지부 영역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고 지도부의 강력한 지도력 없이는 이미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④ 회사의 공격에 개별 조합원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회사는 투쟁기간동안 각종 지시공문을 통하여 계획적으로
조합원들의 단체행동을 묶어 두려고 애를 썼으나 이에 대한
비대위의 대응은 늦고 임시방편적이라 조합원들이나
지부집행부가 현장에서 깨어지면서부터 비대위의 투쟁의지를
의심하게 되었다.
⑤ 투쟁지침이 상황에 따라 급조되고 집행이 사전에 조직되지
않고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체적인 투쟁계획은 조합원들에게 미리
확고하게 공지되어 준비하게 하고 또 일관성 있게 집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위기로 치닫는데 투쟁계획은 갈수록
약하게 변경되고 그것마저 통일성 있게 조직화되지 않고 진행을
거듭함으로써 투쟁계획 실행여부 자체가 더 이상 신뢰를 주지
못하였다.
⑥ 외부와의 연대의 모습은 꾸렸으나 주체적인 활동은
미약했다.
전력산업의 주인으로서 투쟁의 중심대오를 단단히 꾸리고 관련
외부조직과 연대함으로써 투쟁을 배가시키는 노력이 필요한데
정작 연대투쟁 전선은 어렵게 만들어 놓고 자체 추진력를 만들어
가지 못함으로 인하여 연대의 힘을 십분 활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⑦ 현장동력을 키워 가는 투쟁 일정이 시급히 나와야 한다.
일부 간부 및 조합원들만이 분할․매각 찬성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모든 힘을 다해서 국회 상정보류라는 업적을 남겼지만
현장 투쟁동력의 저하 및 총선 이후 저지투쟁과 이어질 투쟁기반
조성작업 부재라는 부산물을 남겼다. 최후의 싸움은 현장동력을
동원한 한판 싸움에 있는 만큼 현장동력을 키워 가는 투쟁
일정이 시급히 나와야 할 것이다.
4. 맺음말
일부에서는 전력노조의 과거사를 보면 전력노조가 이만큼이라도
했다는 것에 큰 위안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투쟁을 할 때 쟁취해야 할 투쟁 목표치를 두고 평가를 하는
것이지 목표야 무엇을 요구하는 싸움이든 과거 전력노조의
모습에 견주어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전력노조에게 남겨진 분명한 투쟁 목표는 한전 분할․매각
저지이다. 과거에 전력노조가 어떠했든 간에 여기에 걸맞는
투쟁력이 조직되지 않으면 우리는 투쟁목표를 이룰 수 없다.
또한 투쟁의 결과가 한전 분할․매각을 저지했든 허용했든
투쟁을 공유함으로써 조합원들에게 남겨지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비대위 지도부가 환골탈퇴의 정신으로 재정비되어서
흐트러진 조합원을 추스리고 이후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