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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 이라는 것

현장에서 미래를  제51호
김상태


정치자금이라는 것
김 상 태
문화 평론가









한나라당 이부영 원내 총무는 “천용택 국정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20세기는 텁텁한 잿빛노을로 저물어 갔다.
권력이란 원래 비밀이 많이 묻어 있는 물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한심하고 단순한 일들도 헤아릴 수 없는 요지경의 영상으로 드러난다. 하필 심복이어야 할 국정원장이 하필 정적중의 정적인 상대당의 원내총무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 하니, 민초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70년대 우익테러의 선봉이라 할 이후락이 자나깨나 철천지원수인 북한 정권과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다든지, 슬픈 독재자 박정희가 다른 사람도 아닌 중앙정보부장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실 내막을 듣고 나면, 꼴이 꼴도 아닌 것들이 비밀 속에서 불쑥 튀어나올 땐 꼭 요모양이다. 도대체 권력이나 정치란 반드시 이래야 하는 것인지, 아닌게 아니라 언젠간 따져 보아야 할 무엇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 요지경 속엔 물론 돈이라는 물건도 들어 있다. 들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배가 되어 있다. 불변유일의 배경화가 되어 있는 탓이다. 사실 그것은 모든 것 속에 스며들어 있다. 참으로 돈이 문제라는 것은 두 번 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이거니와 이 물건은 몇 사람이 둘러앉은 친목계 모임이나 취미 동호회 속에서조차 결정적인 요소가 되곤 한다. 거기까진 아무라도 동의할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조직이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정치에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한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눈만 뜨면 그놈의 돈이 난리법석으로 요동을 친다. 이게 뭘까. 여기 한국 땅에선 왜 그렇게 소란스러워야 하는 걸까?


정치자금의 성격과 형성과정

첫째, 정치자금의 대부분은 사회적 공비이다. 이 돈의 회전이 최후에 이르는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지만 성격상 그것은 사치성 소비 목적으로 사용되기 십상이다. 밍크코트, 대저택, 사치성 레포츠, 호화판 결혼식이나 파티 등이 그것이다. 이 말은 한 사회의 전체 노동력의 일부가 여기에 투입되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생산된 것들을 누군가가 공짜로 집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산업이 존재해야 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으므로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 크기와 형태가 비정상적으로 존재한다면 사태는 크게 달라진다. 그것은 결국 전 민중의 빈궁과 고달픔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극단적인 예가 프랑스 혁명 이전 앙시앙레짐 하의 프랑스 절대왕정사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렴주구와 그것을 지탱해야 하는 폭력적 통제 구조가 마구 자행되고 마구 발호하기 시작한다. 계급사회의 국가가 본질적으로 지배계급의 통제수단이라는 말의 핵심적인 의미도 여기에 있다.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이것을 지탱하는 통치구조의 존재가 언제나 맞물려 있다는 것이며 사회적 개혁은 반드시 정치적 투쟁의 형태로 나타난다.
둘째, 지배계급 일반이 이와 같은 식으로 행동하게 되면 정치자금의 형성과정은 아주 비정상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각하! 그 집은 제가 사재를 들여 지은 것입니다. 각하를 위해서라면 제 사재인들 아깝겠습니까. 돈이 얼마 들지도 않았습니다.’
정주영씨가 박정희 살아생전에 별장을 지어 주고 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한때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남산의 부장들’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거기엔 정권의 정주영에 대한 신뢰와 특혜라는 이야기도 함께 적혀 있다. 보고 있노라면 참 애틋한 연애소설같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 애틋한 사연들의 본질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권력과 지배계급이 마피아를 방불케 하는 준 깡패조직으로 결합해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한줌의 집단이 구조 지어진 권력구조를 고리로 전 사회를 동일한 수직 계열로 배열했다는 것이다. 정치자금과 지배계급의 이권이 이런 식으로 결합되면서 모든 구성원은 집 앞의 구멍가게 하나를 내더라도 똑같은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 최고 권력자는 몇몇의 지역 보스를, 각 지역보스는 몇몇의 구역보스를, 각 구역보스는 또 몇몇의 소지구보스를 이처럼 애틋하게(?) 거느린다. 한 명의 민초인 ‘나’는 이 보스들 중 어디 엔가 선을 대야하고 어디에 댈 수 있느냐에 따라 입지가 크게 달라진다.
통상 ‘돈과 빽’이라 불리는 이 논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우리가 통째로 이 논리에 포섭되어 있다는 건 잘 모른다. 예컨대 ‘접촉사고시 승자는 목소리가 큰 자’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룰이 전체로서 그것임을 의미하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한 지역의 상권이 조직폭력배의 손아귀에 있을 때 진행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래 가지고는 사람 살 데라 말할 바가 못되는 것이다. 결국 계급이 존재하는 방식이 사적인 인간관계 전체를 규정하게 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은 고문처럼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여기에 대고 국민성이니, 공중의식이니 하고 떠드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이건 사기꾼 얘기로밖에 안 들린다. 하루가 죽을 지경인데 국민성이나 공중의식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안 그런가?


지배계층의 위기와 정치자금

최근의 정치자금 얘기도 이 선상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요 몇 년 사이에 시비가 되는 이유가 뭘까? 내가 보기엔 이는 지배계층의 위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1970~80년대에는 정치자금 폭로 사건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계용묵 의원이 터뜨린 노태우 비자금 사건같은 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검찰은 삼일 후에 무혐의 사건으로 기자회견을 가질 것이고 계용묵은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지하실에서 생똥을 싸도록 두들겨 맞을 것이다.
사태가 달라진 건 김영삼 정부 때부터이다. 집권세력 자신들이 이 불문율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김대중은 ‘가장 더러운 작태’라고 제대로 말을 했지만 입장이 바뀌고는 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그만큼 바빴고 그럼에도 옛날처럼 마구 두들겨 팰 수는 없으니 도리없이 이판사판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이렇게 밀어 부친 건 4․19, 5월 광주항쟁, 6․29, 1996~97 총파업을 이끌어 온 민중들 자신이다. 그런데도 지배계급에겐 대안이 없는 것이다. 바둑조차도 바빠지면 좌충우돌 집적대는 법이다. 내일을 생각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이 바보들, 그러나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바보들의 해프닝을 구경이나 할 따름이다.

왜 조직된 노동자의 힘이 중요한가? 노동자는 우선 살기 위해 싸운다. 그렇지만 살기 위해 싸우는 그것이야말로 정치의 심장부를 겨누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가 살겠다고 하면 결국은 이 무지막지한 잉여를 되돌려 놓으라고 말하는 것이며, 힘있는 노동자를 때려잡을 수는 없으니 저들이 달라지지 않고는 도리가 없다. 지금 저 모양인 이유는 달라지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다가 자멸하고 말겠다는 것이다. 자고로 형제싸움이 무서운 법이어서 저 밥통들은 자신들 중 누구를 죽여서 해결을 보겠다고 말하는 중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직된 노동자의 힘이 없다면 그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곧바로 노동자와 민중에게 칼을 들이댈 것인즉, 이는 불을 보듯 뻔한 사안 아닌가.

왜 조직된 노동자의 힘이 중요한가?
우리는 언젠가 정치다운 정치를 해야 하며 정치자금도 정치자금답게 운용되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을 배울 수 있고, 그것을 연습할 수 있는 곳은 조직된 노동자들 내부밖에는 없다. 정치의 형식이 궁극적으로 전 사회구성원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시 생각해 볼 때 올바른 정치의 형식을 힘있게 실현해 낼 수 있는 힘 또한 거기 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자들을 이익집단이라 부르는 건 터무니없는 헛소리이다. 그렇게 떠들어야 하는 사람들을 빼고 나면 조직된 노동자는 우리의 모든 희망이다. 이것이야말로 문제에 대한 진짜 정답이다. 한/노/정/연

2000-01-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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