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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를 넘어 자유의 왕국으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51호
채만수





21세기를 전망하며








패배를 넘어 자유의 왕국으로
채 만 수 (부소장)


왜 사회주의인가
해외저널리뷰팀

‘미래는 현재의 연속’이라는 평범한 이야기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새 천년 이데올로기’가 요란스럽게 연말 연초를 휩쓸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냉철하게 현실을 살펴보면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우리를 숨막히게 하고 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가 취할 태도는 무엇일까? 현실의 주요한 투쟁동력을 치열하게 추적하고 점검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 나가는 것이 그 하나일 것이다. 이는 매우 필요하며 소중한 작업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단기 나아가 중단기적 전망보다 조금 더 나아가서 지나온 투쟁과 그 함의를 점검하고 이를 규정했던 자본운동의 단계와 특징 등을 점검하면서 조금 더 멀리 내다보는 방법이 있다. 역사발전의 나선형적인 발전경로를 인식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방법이 갖는 힘을 알고 있기에 이것도 매우 유용한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후자의 방법에 근거해서 이번 호 특집을 기획하였다. 전제하고 있는 자본주의, 아니면 잊혀지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전망의 모색, 현실 극복의 원리와 미래상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의 동원 등 여러 수준의 접근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사민주의의 역사적 귀결에 대한 정밀한 추적과 분석 등 몇 개의 원고가 채워지지 못함으로 인해 내용상 아쉬움이 남지만 이는 이후의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특 집

공황의 충격과 사회변화
패배를 넘어 자유의 왕국으로

채 만 수
부소장










‘새로운 천년’을 맞으며 벌이는 세계 곳곳의 축제 열기만을 보자면, 빈곤도, 억압도, 그리고 크고 작은 자연적 재앙도 이제 모두 과거의 것이고 새로 맞는 21세기에는 밝은 미래만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것 같다. 분명 환상이다. 그것도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민중의 그것은 전혀 방향과 성질이 다른 환상이다.
노동자․민중의 경우, 그들을 환호하게 하는 것은 대개는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타산에 기초한 미래상이라기보다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등등 부르주아지 이데올로기 관리기구가 조작하는 화려한 미래상이다. 그것은 물론 일부 소부르주아적 몽상가들이 펼치는 환상적 주장이기도 하다. 예컨대 ‘신문명연구원’의 장기표 선생 같은 이가 열심히 대중에게 설파하는 주장, 즉 과학기술혁명의 전개가 자체로써 직접적으로, 즉 계급투쟁에 의해 매개됨이 없이,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상생과 조화의 사회’를 보장할 것이라는 환상 같은 것도 그러한 기만적 미래상에 속하는데, 이들 주장의 특징은 이른바 ‘상생과 조화’라는 구호로써 사회의 계급적 분열과 그 투쟁 자체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것은 부르주아 계급지배의 현실을 은폐하면서 그것을 영속시키고자 하는 것이고, 따라서 노동자․민중이 그러한 환상에 놀아나는 것은 그만큼 몰주체적이고 몰계급적이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이 그러한 환상에 놀아난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노동자․민중에게 있어서 그러한 환상은 극히 변덕스러운 표면상의 허위의식에 불과하고,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존재조건 자체가 끊임없이 그들의 의식을 기본적으로 규정해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저들이 조장하는 환상 자체가 노동자․농민의 욕망이 되어, 처음에는 방황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겠지만, 이윽고 그들이 불 같이 일어서, 욕망을 자극만 할 뿐 그 충족은 불가능하도록 자신들을 옥죄고 있는 계급의 사슬을 끊어 버리게 할 기동력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환상은 극히 높은 생산력이 기초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 생산력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는 극도로 비조응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더욱이 독점자본의 신자유주의는 지금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이 모순을 극한의 폭발점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신들의 지배가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는 부르주아지의 환상이야말로 구제불가능하고 무대책한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들의 발밑을 파면서 자신들의 환상을 강화해가고 있으니 말이다.
두 차례의 제국주의 전쟁과 30년대의 대공황, 그리고 러시아 10월혁명 이후의 세계 적화 ‘음모’를 이겨내고, 마침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서두르면서 막을 내린 20세기야말로 독점자본의 종국적 승리를 증명한 생생한 증거라고 주장하고, 또 그렇게 믿고 싶을지 모른다. 그들이 말하는 역사의 종말!
그러나 독점자본의 종국적 승리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노동자 계급을 위시한 민중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 상호간에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생사를 건 투쟁을! 신자유주의와 과학기술혁명은 그 생사의 투쟁이 극도로 치열해져 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고 또 그것을 더욱 치열하게 하는 요인이다. 동유럽과 소련에서의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는 독점자본이 최소한의 자제력도 간직할 필요없이 그 생사의 투쟁을 진정한 역사의 종말까지 몰아가게 하는 조건이 되고 있다.

20세기에 자본주의를 구한 것은 전쟁, 그것도 세계대전이었다. 1910년대에 이미 자본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을 벌여야 했는데, 그 원인은 주지하는 것처럼 광범한 대중의 빈곤을 외면하고 진행된 엄청난 자본주의적 과잉생산, 자본의 과잉축적이었다. 전쟁은 과잉생산을 해소할 시장의 획득․재분할을 위한 것이었으며, 당시 자본주의적 생산의 중심지인 서유럽을 파괴하고 수천만의 ‘과잉인구’를 학살했다. 그리고 그 대량의 파괴와 학살을 대가로 20년대의 이른바 상대적 안정기를 누렸다. 그런데 영원히 장미빛일 것만 같던 그 상대적 안정․번영기는 ‘경기순환 없는 신경제’라는 부르주아지의 소망을 배반하고 곧바로 30년대의 대공황으로 귀결되었고, 이에 자본주의는 이제까지의 자신의 신앙, 즉 시장 만능주의로서의 자유주의에 스스로 제갈을 물리면서 뉴딜정책, 파시즘, 케인즈주의, 수정자본주의, 혼합경제체제 등등의 별명을 가진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환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 자체의 명운이 걸린 전반적 위기를 맞아 국가가 그 구원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불온해지는 노동자 계급을 포섭하기 위해서 실업자․빈민 구제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고, 고속도로나 대형 댐을 건설하는 등의 대대적인 공공사업을 펼쳤으며, 기타 재정 지출을 확대하여 이른바 ‘유효수요’의 확대를 꾀했지만, 국가자본주의도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자본주의를 구할 수 없었다. 30년대 전기간에 걸쳐 대량 실업, 생산과 국제교역의 축소 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30년대 예컨대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연평균 19퍼센트에 육박했고, 제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해인 1938년 세계의 교역량은 그 해 10월에 대공황이 폭발했던 1929년의 40퍼센트에 불과했다. 지금 호황에 들뜬 미국에서처럼 20년대 말 번영이 극에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몽상했던 ‘경기순환 없는 신경제’가 현실로 되었던 것이다. 다만, 그들의 몽상을 배반하여, 호황으로서의 신경제가 아니라, 위기로서의 신경제였지만!
자본주의는 더 이상 위기를 극복하고 호황으로 전환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발생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중심지인 서유럽과 남부 유럽, 북부 아프리카, 극동 아시아 등을 파괴하고, 최소한 5천만 명의 ‘과잉인구’를 학살하고서야 자본주의는 과잉생산을 해소하고 호황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호황은 이전과는 다른 조건에서의 것이었다. 전쟁을 통해서 전반적인 과잉생산은 해소시켰지만, 정치적 사회적 위기가 충만해 있었다. 파시즘에 대한 투쟁을 거치면서 특히 서유럽과 일본의 노동자 계급은 급격히 불온해져 있었고,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열기가 이들 지역에 충만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제1차 대전 후에 독일에 강요했던 것과 같은 전쟁배상금을 패전국에 부과할 여유도 없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일 초강대국으로 된 미국은 서유럽의 동맹국은 물론 독일, 이태리, 일본 등의 독점자본을 앞세워 그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혁명 열기를 진압하고 그들을 체제 내로 포섭해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30년대의 대공황에 대한 대응으로서 성립한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가 이제 전후의 호황기에도 지속되면서 항상적인 것으로 되어 갔다.
서유럽과 일본의 노동자 계급은 결국 자본의 압력과 포섭전략에 굴복해 갔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우선,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서 거대하게 증대시켜 온 미국의 부, 물질적 생산력이었다. 미국은 ‘마샬 플랜’을 위시한 거액의 원조를 서유럽과 일본 등지에 쏟아 부었는데, 이는 물론 이들 지역의 노동자 계급을 한편 억압하고 한편 포섭하기 위한 재원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그 원조들은 동시에 미국에 닥칠지 모를 ‘전후 공황’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주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막대한 양의 독점자본의 상품을 피원조국에 무상으로 공여한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그들 피원조국에 미 독점자본의 상품에 대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무상원조를 통해서 미국의 독점자본은 미국 노동자 계급의 임금을 낮게 묶어 두면서도 자신들의 상품에 대한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고, 또한 장기적인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독점자본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 노동운동 상층부의 타락과 투항에 의해서 뒷받침되었다. 미국 노동운동의 상층 지도부는 30년대 중반 이후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 독점자본의 파시즘과의 차별성 논리에 편승하여 급속도로 ‘애국주의적’으로 되어 갔고, 독점자본의 제국주의 정책의 후원자로 되었다.
그리고 서유럽 및 일본에서의 노동자 계급의 패배의 배경에도, 미국을 위시한 독점자본의 막대한 물질적 부 이외에, 이들 지역 노동운동 상층 지도부의 투항, 사민주의로의 전향이 있었다. 이들 사민주의자들과 일부 종파주의자들, 그리고 소부르주아 급진주의자들은 독점자본이 혁명적 노동자 계급에 대해서 벌였던 냉전의 동반자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그 주도자 혹은 전위이기도 하였다. ‘진보’와 ‘노동자 계급’의 구호 하에서, 그리고 일부 종파주의자들 및 소부르주아 급진주의자들은 심지어 ‘혁명’의 구호 하에 말이다.
전후의 짧은 불안정기를 거친 후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1950년을 전후하여 성장기로 들어갔는데, 이 호황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경기순환을 거치면서 기본적으로 60년대 중후반까지 지속되었다. 근대 자본주의 역사상 최장기의 호황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제2차 대전에 의한 대량 파괴와 대량 학살이 가장 커다란 원인이었다. 그리고 전쟁을 계기로 급격하게 발달한 군수기술의 민수산업화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급격한 증대와 노동자 계급에 대한 사민주의적 포섭전략에 힘입은 실질임금의 상승도 그러한 장기호황을 지탱시킨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운동의 포섭이 더욱 강화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유럽 등에서는 사회민주주의에 의한 포섭이 심화되었다. 프랑스, 이태리 그리고 일본 등에서 공산당이 아직 어느 정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들도 이 기간에 대개는 과거의 노선을 수정하여 새로운 노선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서유럽에서의 68년 ‘혁명’ 후에는 노동자 계급운동 내부에 심한 종파주의와 소부르주아적 혼란․급진주의가 팽배해 갔다. 미 CIA 등의 이데올로기 조작에 편승한 종파주의자들은 ‘진정한 노동자 국가’ 등의 구호 하에 집요하게 반노동자 계급적 책동을 펼쳐 갔다. 계급사회에서는 물질적 생활자료의 생산관계가 사회적 관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계급투쟁, 즉 노동운동이 근대 사회운동의 중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부르주아들은 여타 부문운동을 노동운동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고 추진하는 대신에 이른바 ‘신사회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각각을 형이상학적으로 분리시켜 갔다. (한국에서는, 80년대 중반까지는 군사파시즘 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 ‘신좌파’ 및 종파주의자들 역시 발붙일 곳이 없었는데, 군사 파시즘이 붕괴된 이후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동유럽 및 소련에서의 20세기 사회주의의 붕괴를 계기로 일부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영향력이 확산되었다.)
그런데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60년대 말, 70년대 초를 경계로 급격히 불안정기로 접어들어 갔다. 많은 경우 73년의 ‘석유 쇼크’를 이른바 ‘장기불황’의 기점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사실은 이미 69년 하반기 70년 초에 미국 경제를 위시한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공황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국의 독점 부르주아지는 베트남 전쟁에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 확전을 거듭했지만, 밀림에서의 물량전 정도로는 위기를 탈출할 수 없었다. 전에 없던 ‘전시공황’이었다. 이 전시공황은 미국의 사회적 정치적 대립을 격화시켰고, 이에 미국은 서둘러 전쟁을 끝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7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장기불황’(long downturn)으로 규정하는 일부의 견해는 사실은 오류이다. 그러한 논의와는 정반대로 70년대 이후에도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거듭되는 공황 때문에 단속적이긴 했지만 경향적으로,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급격히 생산력을 증대시키면서 자본을 축적해 왔다. 이전의 이른바 ‘장기호황’의 시기와 다른 점은, 우선 전후 복구의 완성으로 고도의 생산력에 뒤받침되면서 경기순환의 세계적인 동시성이 회복된 점, 그리고 이 고도의 생산력의 증대를 반영하여 산업순환의 상하 진폭이 증폭되고 갈수록 ‘공황과 침체 국면의 장기화, 호황과 번영 국면의 단기화’라는 경향을 띠어 갔다는 점일 것이다. 과잉생산에 따라 자본간의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어 가고 있고, 이 때문에 과학기술혁명이 의식적으로 추구되어 그 성과가 생산에 도입됨에 따라 생산력이 가속도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원인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위기가 증폭돼 가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인 과잉생산에 의한 전반적 위기의 재격화다.
최근에는 누구도 전혀 그러한 발언을 입밖에 낼 엄두도 낼 수 없는 분위기이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국가 개입에 의한 공황 예방’이라는 미신, 즉 ‘국독자 공황예방론’, 따라서 ‘국독자 영구번영론’이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한사연 경제학자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이들의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은 사회과학에 대한 청산주의적 태도 때문에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에 걸친 경제위기, 89년 2/4분기 이후의 경제위기 등등을 정당하게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 것이지만, 물론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그 특유의 재정․금융 정책 등을 통해서, 그리고 특히 ‘냉전’을 통해서, 과잉생산의 위기가 30년대와 같은 절대파국의 상황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최대한 작용을 해 왔고, 실제로 그러한 정책수단은 일정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절대파국으로의 경향을 저지할 수는 물론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격화된 전반적 위기에 대한 독점자본의 대응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바로 그 독점자본의 탐욕 때문에, 사실은 이 절대파국을 앞당기고 있다.

20세기에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나란히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성립되었다가 그 주요 부분이 붕괴되었다. 그리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이 이 붕괴를 들어 ‘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 ‘역사의 종언’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冒頭)에서 말한 대로이다. 이 문제, 즉 20세기 사회주의의 성립과 붕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혹은, 20세기의 사회주의는 왜 붕괴되었는가? 자본주의의 위선적 이데올로그들의 주장처럼, ‘사회주의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에 불과’하기 때문인가? 종파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스탈린주의’ 때문인가? 혹은, 가장 관념적이고 악의적인 종파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그것은 단지 ‘국가자본주의’였을 뿐이었는가? ꠏ(억누를 수 없는 종파주의적 열정 때문에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이렇게까지 무개념하게 확대하는 자들의 헛소리에 대해서는 사실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 이미 치명적으로 제정신을 잃어서 어떤 치유 가능성도 보이지 않기에.)
우선, ‘사회주의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에 불과하다’는 위선적 주장은 사회의 발전법칙에 대한 무지에 담아 표명한 자신들의 당파적 소망일 뿐이다. 그것은 20세기의 사회주의가 왜․어떤 조건에서 발생․성장하였고 왜․어떠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분석하고 이해할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본주의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이해할 능력조차 갖지 못한 자들이,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가 붕괴되었다’는, 단지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만 의존해서 펴는 주장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거듭된 반동 왕조의 등장을 보면서 ‘프랑스 혁명이 지향한 부르주아 공화정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에 불과함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근시안일 뿐이다.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를 ‘스탈린주의’ 탓으로 돌리면서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더없이 관념적이다. 책임을 스탈린과 그에 의해서 지도․확립된 쏘련 공산당의 일정한 노선에 돌리는 것으로 사회주의의 ‘왜곡’과 붕괴를 설명하는 것은, 언뜻 그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고 단지 종파주의적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일 뿐이다. ‘스탈린과 그 일당’의 성격과 행태․음모로써 ‘스탈린주의’를 규정하고 비판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규정된 ‘스탈린주의’가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발전을 규정했고 그리하여 결국 붕괴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분명 전도된, 관념론적 영웅사관이 아닌가? ‘스탈린주의’가 문제로 된다면, 중요한 과제는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의 어떠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이 ‘스탈린주의’를 탄생시켰는가를 해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 소련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 ‘스탈린주의’가 규정된 것이고 따라서 그 조건들에 의해서 ‘스탈린주의’가 해명되어야 할 것이지, 거꾸로 ‘스탈린주의’에 의해서 쏘련(과 동유럽)의 사회와 역사가 해명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주의’가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와 역사를 규정했고 그 사회주의 혹은 ‘국가자본주의’(!)의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고 믿고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이 현실적으로는 많고 또 오늘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다름 아니라 이들 역시 ‘20세기의 사회주의가 왜․어떤 조건에서 발생․성장하였고 왜․어떠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분석하고 이해할 능력이 없는 소부르주아 관념론자․급진주의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관념론․급진주의 때문에 그들에게는 ‘자본주의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이해할 능력도 없음은 물론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소련과 동유럽 등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20세기 제국주의의 약간고리가 파열한 결과였다.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서의 20세기 제국주의 체제라는 특수하고 구체적인 조건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었으며, 사회주의 체제가 세워져야 할 파열된 약한 고리는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전제조건, 즉 고도의 생산력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들이었다. 따라서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전제조건, 즉 고도 생산력의 창출이 사회주의 자체의 과제로 주어졌으며, 이 때문에 그러한 조건의 20세기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서 일정한 한계와 특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사회주의의 건설은 제국주의의 적대․봉쇄․파괴공작에 포위된 속에서 끊임없이 그와 투쟁하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 또한 20세기의 사회주의에 일정한 한계와 특수성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구체적 현실이었고, ‘스탈린주의’란 다름 아니라 그러한 엄혹한 현실 속에서의 20세기 사회주의 그 자체가 아니었겠는가? 일정한 한계와 특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
영구혁명? 그것은 당연히 그 엄혹한 현실에서 획득된 현실적 가능성을 고수하는 위에서만, 즉 1920년대 및 30년대의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10월혁명의 현실적 성과로서의 소련을 고수하는 위에서만 현실적인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소련을 고수하지 못하고서는 ‘영구혁명’이고 뭐고 간에 헛된 구호에 불과했을 터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10월혁명의 성과를 구체적 조건에서 고수하려는 스탈린의 입장을 ‘일국사회주의론’으로 왜곡 규정하여 ‘노동자 국제주의에 대한 배신’으로 매도하는 것!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스탈린주의’를 악마화하는 것! 그러한 종파주의가 현실적으로 논 역할은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아마, “사실은 북의 집권층들이 잘못을 해서 북의 인민이 굶주리는 걸로 돼 있지만, 대부분의 원인은 미국에 의한 봉쇄에 있거든”[ꡔ한겨레21ꡕ 제290호, 2000. 1. 6, p. 11]이라고 진단하는 황석영 씨를 입에 게거품을 물고 비난하고 싶을 것이다. ‘우파! 소부르주아 NL분자!’라고 말이다.)
동유럽, 특히 소련에서의 사회주의의 붕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주장되는 것처럼 ‘진정한 사회주의’ 건설의 지체나 ‘스탈린주의적 억압’ 때문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성취 때문이라고 이해되어야 보다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널리 회자되는 관료주의(그리고 부분적으로 환경․생태상)의 문제가 있었음을 부인해서는 안되지만, 그 무계급사회로서의 ‘제반 성취’ 역시 부인될 수 없다.
환경․생태상의 문제는 사회주의의 물질적 전제조건을 서둘러 충족시켜야만 했던 급박한 조건에서 발생한 것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료주의도 본원적으로는 이 ‘물질적 전제조건’의 건설이라는 문제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낮은 생산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위한 물질적 요구는 충족되어야 했고, 낮은 생산력에 기초하여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주민은 ‘노르마’라고 불리는 일정량의 의무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 관료주의의 근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 기구와 결합함으로써 고착되었던 것이다.
20세기 사회주의의 건설 및 붕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문제이다. ‘국가’는 분명 계급 대립의 산물이고, 계급적 지배도구이다. 그것은 인간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된 결과 발생한 것이고, 계급의 폐지․소멸과 더불어 마땅히 소멸될 운명에 있는 기구이다.
그런데 20세기 사회주의의 조건은 어떤가?
제국주의와의 적대적 대립이라는 조건, 냉전은 사회주의 사회로 하여금 그 ‘국가’가 절대로 소멸될 수 없도록 했고, 이는 20세기 사회주의의 숙명적 모순이었다. 비계급사회로 성숙해감에 따라서 이 모순은 심화되었고, 드디어 폭발한 것이 ‘사회주의의 붕괴’ 그것이었다. ‘국가’의 소멸 그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에서 ‘무계급사회’에 균열이 간 것이다.
그러나,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가 붕괴될 때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 당파적 소망을 담아 예측했던 것처럼 그들 지역이 쉽사리 ‘재자본주의화’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속단일 것이다. ‘자본주의화’한다는 것은 “모공(毛孔)마다 선혈이 듣는 본원적 축적”, 즉 직접생산자로부터 생산수단을 수탈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봉건농민들로부터도 피의 항쟁으로 도전 받았던 이 수탈과정이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쉽사리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붕괴 10년을 맞고 있지만, 서독에 흡수된 동독지역을 제외하면, 어디에서도 이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그토록 농민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으로 선전된 구 소련의 ‘집단농장’이, 옐친 정권 등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권력의 각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에 의해서 완강히 지탱되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20세기 사회주의는, 그것이 갖는 많은 한계와 특수성․굴곡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역사에 많은 지혜와 지침을 제공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지금 과학기술혁명의 급속한 전개를 자랑하고 있다. 그들은 과학기술혁명의 전개로 ‘정보화사회’․‘탈산업사회’가 열리고 있다며 법석이다. ‘탈산업사회’라는 주장은 그 의미가 애매해서 그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지금 ‘정보화사회’가 열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그 사회의 내용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의 주장과 다르지만 말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의 허풍을 듣고 있다 보면, ‘정보화사회’ 자체, 보다 구체적으로는 과학기술혁명의 전개 자체가 무매개적으로 빈곤도, 억압도, 착취도 없는 사회를 보장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그들의 주장에는 과학기술혁명의 성과가 사실 직접적으로는 재생산과정에서 대량으로 노동력을 배제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철저히 은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산업사회이든, 정보화사회이든,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물질적 생활수단을 획득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생산수단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권에 기초하여 타인의 노동, 즉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물질적 생활수단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자본을 축적해 가지만,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무산자로서의 노동자들은 자본에 의해서 고용되지 않으면 노동할 수 없고, 따라서 생활자료를 획득할 수도 없다. 아무리 정보화사회라도 자본주의 사회인 한 이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저들이 말하는 ‘정보화사회’에서도 여전히 물질적 생활자료의 생산관계가 사회관계의 핵심을 이루게 되고, 그에 의해서 소득도 결정된다.
현재 과학기술혁명, 정보화혁명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위에서 전개되고 있고, 그것이 가속도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사실은 전반적 과잉생산으로 인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학기술혁명의 결과로 과잉생산과 경쟁은 더욱 격화돼 가고,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도 더욱 증폭되어 가고 있다.
과학기술혁명의 핵심적 내용은 생산의 자동화․무인화이다. 자동화․무인화를 높여서, 즉 노동생산성을 높여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 과학기술혁명의 추동적 동기인 것이다. 과학기술혁명의 성과로 생산은 이렇게 갈수록 자동화․무인화되어 가는데, 시장은 이미 포화․과잉상태이다. 이러한 조건이 직접적으로 창출하는 사회적 효과는 상대적 과잉인구, 산업예비군의 증대이고, 실업의 증대이다. 공식 실업률이 평균 10퍼센트를 넘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른바 ‘종신고용’을 자랑하던 일본 자본주의에도 ‘고율 실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된 지 오래다. 영국과 미국은 여타의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실업률이 ‘낮다’고 하지만, 이들 나라의 등록상표인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만연한 불완전고용을 고려하면, 그 ‘낮은 실업률’은 사실은 내용이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도 이번의 경제위기를 계기로 이미 이른바 ‘고율 실업 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실업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다.
사실 과학기술혁명에 의한 자동화․무인화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노동자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경쟁의 중압에 시달리는 자본가들은 실제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구조조정’, ‘감량경영’,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통한 대량해고는 물론 국가 정책의 차원에서도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공격이 자본주의 선진국 모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율 실업화 및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격의 강화는 당연히 노동자 계급을 자극하고 있고,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투쟁력도 그에 따라, 비록 불균등하지만, 소생하고 있다. 서유럽에서는 대략 93년을 경계로, 미국에서도 95년을 경계로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직 정치적으로는 미성숙한 채이지만, 증대하고 격렬해지고 있다. 과학기술혁명은 상당기간 더욱 가속도적으로 전개될 것이고, 이에 따라 자본주의 각국의 실업문제, 노동문제도,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투쟁도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폭발점을 향해서!
자본주의는 그것이 아무리 잔인하더라도 사회가 착취와 억압이 없는 자유의 왕국을 위한 물질적 조건을 준비하는 역사적 과정이다. 그리고 지금 전개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과 전반적인 과잉생산,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이미 그 조건들이 완성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기술혁명의 전개에 따른 실업․노동문제의 격화나 심대한 경제위기는 과학기술혁명의 성과로서의 고도의 생산력과 자본주의적인 낡은 생산관계의 모순이 극도로 격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실업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내에서는 그것을 해결할 어떤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제 해방의 마지막 과제는 노동자 계급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 사민주의의 굴레를 떨치고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훈련해서 해방 투쟁에 나서는 것, 그것만이 과제로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해결은 결코 쉽지는 않지만 필연적이고, 지금 다만 시간의 문제로만 남아 있다. 극도로 심화되어 있는 생산력과 생산관계간의 비조응이 결코 장기간 지속둘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만일 주요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 계급이 해방의 문을 여는 결단을 내린다면, 그곳은 분명 이미 확보된 생산력만으로도 어떤 형태의 의무․강제노동도 필요치 않은, 따라서 20세기 사회주의에서와 같은 관료주의는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할, 그런 자유의 왕국이 될 것이다. 객관적 물질적 조건은 이미 그렇게 완숙되어 있다.
21세기, 그것도 그 전반기는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그러한 자유의 왕국으로의 사회혁명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한/노/정/연

2000-01-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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