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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을 넘어서기

현장에서 미래를  제52호
러리 웨인라이(등)

기․획․번․역

- 책소개 -

쉘리아 로보탐, 린 시걸,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ꡔ분열을 넘어서ꡕ,(보스턴: 앨리슨 출판사, 1979)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친 영국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들의 자율주의적( libertarian) 좌파 여성운동의 기본 관점 및 경험과 관련된 논쟁적인 팜플렛들을 로잘린 박산달이 모아 미국에 소개한 책이다.
이 팜플렛은 레닌주의 및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도적이었던 영국 좌파 코뮤니스트의 경직된 남성주의적 관점의 추상성 및 몰성성(gender blindness)과 조직형태를 비판하며, 1968년 학생운동의 신좌파적 전통에 따라 독립적인 지역운동을 창조하고자 한 노력들을 자기 성찰적 스타일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시도는 기본적으로 체 게바라의 혁명적 행동주의, 소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이념노선에 속하는 마르쿠제 및 루카치 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성 정치의 빌헬름 라이히, 랭 등 노선에 기초하고 있으며, 동시에 계급적 노동운동의 선진 노동자, 숍 스트워드의 전투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레닌주의 및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여성주의 비판에 기초하여, 여성해방운동, 게이운동, 인종주의 반대 운동, 반핵운동, 대안매체운동, 사회주의 연극 운동, 노동조합운동, 사회주의 조직, 세입자 운동 사이의 통일성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실천들을 검토하고 있다.
이 팜플렛 중 하나인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분열을 넘어서기”는 1970년대 영국에서 노동당의 우경화 경향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던 새로운 운동 실천들과 사회주의 조직들 사이의 관계를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경험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노동당이나 정당 구조가 실제적인 정치 지형과 투쟁의 실재를 더 이상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 조직을 구성하려는 많은 대안적 실천들이 등장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 운동들은 기존의 합법적 정치 구조에 대한 집착이나 노동계급의 정당으로 표상되는 노동당의 부정적 견인력으로 인하여 크게 제약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생존 가능한 당 조직 형태만이 대안적인 당 조직 형태라고 전제함으로써 노동당 내ㆍ외부 사회주의자들 사이의 정치적 연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음을 좌파 정치조직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 속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러한 영국의 경험이 현 시기 우리 사회의 노동자 정치 세력화와 관련된 다양한 실천적 노력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에서는 앞으로 이 글을 번역하고, 린 시걸의 “지역운동 경험”을 이어서 번역 소개할 것이다. 이 글들은 한국 좌파 운동 및 여성운동, 노동운동 실천 활동가들에게 여러 가지 토론 거리를 제공하는 것 같다. 노동자 정치조직 건설과 관련된 실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토론을 위한 자료로서 번역 소개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린 시걸, “지역 경험”, 쉴라 로보탐 등(1979), ꡔ분열을 넘어서서ꡕ, 보스턴: 앨리슨 출판사, 157-209쪽.(Lynne Segal, “A local experience”, in S.Rowbotham et al.(1979), Beyond the Fragments, Boston: Alyson Pub, pp.157-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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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ng Beyond the Fragments)

기획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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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시걸(Lynne Segal)


<차례>
1. 자율주의
2. 페미니즘(1999년 12월호 번역)
3. 페미니즘과 좌파
4. 한 지역에서의 사회주의(2000년 1월호 번역)
5. 몇 가지 결론(이번호 번역)



지역 경험 Lynne Segal, “A local experience”, in S.Rowbotham et al.(1979), Beyond the Fragments, Boston: Alyson Pub, pp.157-209.



5. 몇 가지 결론

1)전국조직의 필요성과 한계들

이 절에서는 우리가 여성운동과 자율주의 좌파 내부에서 조직화하는 방식 때문에 생겨난 몇 가지 문제들로 되돌아가 살펴보고자 한다. 앞에서 예를 통해서 설명하였듯이, 우리는 언제나 지역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전국 조직을 덜 강조하거나 의심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국적 구조 속에서 우리 여성들은 특히 남성들에 의한 지배(male domination)와 지도자 중심주의(leaderism)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고 느꼈고, 여성들이 그들만의 경험에 기초하여 무언가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이것은 전국적, 국제적 (규모의) 정치를 과도하게 강조하고, 지역적 조직화 시도를 단순한 지역주의로 폐기하는 경향이 있는 전통적인 혁명적 좌파와는 대비된다. 여성운동이 만들어 낸 전국적 조직은 예컨대, 낙태찬성운동(NAC), 여성지원센터(Women's Aid), 인종주의와 파시즘에 반대하는 여성(WARF) 운동 등과 같이 특정한 투쟁들과 관련된 것들뿐이다. 그런데 이런 특정한 투쟁들을 연결시키는 일 조차도 우리에겐 문제가 된다. 전반적인 견해의 일치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 어떤 활동들을 포함시킬 것인지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그리고 우리의 활동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내 생각에 에섹스가(街)의 여성센터가 최종적으로 해소되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못한 것은 소규모 그룹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에서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인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소규모 그룹이 독자적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 지, 어디에서 성공적이었고 어디서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알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장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경험을 학습하는 것이나 당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학습하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만약 우리가 다른 그룹들과 보다 정규적으로 경험을 교류하고, 우리의 활동과 비교하고, 대비시켰더라면 그것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재연되는 갈등들: 경험의 공유와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곤란한 문제로서 1979년 7월에 열린 여성센터에 관한 토론회를 살펴보자. 거기에서는 모든 오랜 논쟁들과 갈등들이 마치 처음인 것처럼 대두되었다.: 센터의 여성들은 단지 돈을 받지 않는 사회봉사자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남성들도 포함시켜야하는가? 노동계급 여성들에게 접근하기는 왜 어려운가? 그녀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가?
재연되는 갈등들은 여전히 치열해 보였다. 해방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포괄적인(overall) 전략에 적합하도록, 어떻게 센터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관해서 어떤 의견일치도 없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갈등들은 어떤 전국적 조직 형태를 지지하는 주장으로 보였다. 물론 전국적 조직이 새로운 운동들로부터 학습하지 않고, 보편 타당하다고 간주되는 낡은 정식화나 도그마에 의존한다면,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데 더딜 수 있다. 예컨대,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민족적 자율성, 에너지 정책과 같은 이슈들은 모두 혁명적 좌파가 더디게 받아들인 이슈들이다. 하지만, 여성운동은 과거의 유효성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평가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서 제대로 된(less random ways) 미래의 방향들을 모색해야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 여성과의 관계: 에섹스 가에서 우리는 외부로 우리의 정치를 확장시키고, 지역의 노동계급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 알지 못했다.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니지만, 만일 노동계급 여성들을 포함시키고자 한다면, 여성에게만 관련된 문제가 아닌 탁아, 주택 등과 같은 이슈들을 때때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슈들에 페미니즘적 관점을 갖고 갈 수도 있지만,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여성 그룹을 넘어서서 자신의 활동 기반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구조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동지적 네트워크 외부에 있는 노동계급 여성들은 아마도 어떻게 참여할지를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여성은 폭력 남편으로부터 도망치기 전까지는 매일 우리 센터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지만, 감히 들어오지는 못했다. 지금 그녀는 여성 쉼터에서 일하고 있으나,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지 못했던 그 당시에는 우리에게 지원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여성들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 개인적인(personal) 관계들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투쟁을 포함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잘 인식했으며, 이것이 없다면 많은 여성들이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주장하였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는 여성운동의 중심적 슬로우건이었다. 그러나 이 슬로우건은 마치 그것이 ‘당신이 무엇을 할지라도 당신의 행동은 정치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의미로 아주 모호하게 해석되었다. 나는 이 슬로우건의 이면에 그런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이 주장했던 바는 당신이 어떻게 살고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과 사회 변동을 위한 투쟁을 연결시키는 것(connection)이다. 바브라 에렌라이히(Barbara Ehrenreich)는 정치적 도덕성을 배양하는 것이 갖는 중요성을 토론하면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Toward a Political Morality’, Liberation, July-August, 1977.
이것은 여성들이 열등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훈련되는 것이, 투쟁하거나 남성이 지배적인 좌파의 일부로 느끼는 것을 한층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여성들에게서 더 분명하다. 만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우리가 말하고 행했던 것들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얻고자 했다면, 우리는 여성들을 지원할 새로운 구조를 창출했어야 했다. 여성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가는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일부이고, 이러한 식으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그 내부로부터 성장하기 시작할 수 있으나,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은 싸워서 승리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자율주의와 문화 페미니즘: 그런데 1968년이래 10여 년에 걸쳐 자율주의와 페미니즘은 종종 영역이 중복되면서 복합적으로 발전했다. 많은 자율주의자들은 예시적(prefigurative) 생활스타일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것 같았다. 이것이 그들 중 많은 이들로 하여금 공적인 정치 활동과 계급 정치로부터 물러나 전원생활이나 신비주의, 혹은 자연식 혹은 게토화된 생활협동조합으로 이끌었다. 그렇지만 누구나가 이러한 은퇴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노동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 그들은 가정에서나 일터에서 자신과 가족이 생존해 가기 위해서 할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자본-노동관계에 더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소비생활과 도시생활로부터의 철수는 영국의 사회주의 역사와 사상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카펜터, 오우웬 등), 사회주의 운동에 필수적인 공상적 요소(visionary strand)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소위 ‘꼬뮨 운동(commune movement)’으로 알려진 것 속에 아주 명확하게 존재한다. 일부 여성운동에서도 동일한 경향을 보였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문화적 민족주의와의 유비에 근거하여 ‘문화적 페미니즘(cultural feminism)’으로 특징지웠다. Brooke, ‘The Retreat to Cultural Feminism', Feminist Revolution, 1975를 볼 것.
이러한 정치는 새롭고 더 나은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이 전투적인 페미니스트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건설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관련되는 가의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현재에도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
아일링턴에서 여성센터가 문을 닫자, 여성운동을 세워내는 것보다는 생활방식에 보다 몰두하는 경향이 증가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여성들이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모든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을 건설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성그룹이건 혼성그룹이건 혹은 캠페인이건 간에, 서로 다른 그룹에 속한 여성들은 다른 그룹으로부터 지원을 얻는 것이 더욱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되었고, 당시에 발생하는 특정한 페미니즘적 이슈들에 대해서 반응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아일링턴에서는 여성해방에 관한 공개적인 토론을 지역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이러한 것을 바꾸기 위한 한 지역연구 그룹의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많은 지역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그룹들이 비슷한 목표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는 적어도 일부 여성들은 70년대 초에 그녀들이 여성운동을 세워내기 위해 투쟁하면서 갖고 있었던 자신감을 어느 정도는 상실했으며, 심지어 공개적인 정치적 작업은 어떤 것이라도 의심할 지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와 노동계급의 패배: 문제의 일부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 및 노동계급의 패배와 관련되어 있다. 처음에 언급했던 바와 같이, 70년대 초반은 경제가 여전히 호황기에 있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볼 때, 호전성이 대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많은 곳에서 사람들은 특정한 투쟁들, 예컨대 그것이 탁아소를 세우는 것이건, 청소년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건, 주거상태를 개선하는 것이건, 노폭(Norfolk)의 훼켄햄 지역에 있는 신발공장 여성들의 협동조합과 같은 노동자 협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서건 간에 싸울 수 있었고, 또 싸워서 승리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집합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일 수 있었으며, 그러한 것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여성운동 속에서 볼 때, 1970년대 초반의 일부 싸움들에서는, 비록 왜곡된 방식일지라도, 여성들이 승리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여성해방을 위한 요구들이 보다 피상적인 형태의 여성억압 중 일부를 제거한 것 같았다. 이제는 직업에서나 술집, 클럽 등에서의 성차별이 잘못이라는 것은 점점 더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고, 오래가지 않아서 없어질 것은 당연하다. 동일임금제에도 불구하고, 작업장에서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장 착취 받는 임금노동자로서 여성의 지위는 그다지 빠르게 변하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 1978년 4월 이후로 더 악화되고 있다. Jenny Earle & Julia Phillips, ‘Equal Pay: Why the Acts Don't Work’, Spare Rib, no.86, Sep. 1979.

그러나 1975년의 불경기는 작업장에서나 지역사회에서나 초기의 전투적 형태들을 손상시키기 시작했다. 지배계급은- 일차적으로 노동당 정부를 통해서, 그리고 이제는 보수당 정부와 함께- 노동계급 조직에 대한 일반적인 공세에 착수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실업율의 증가, 복지 서비스의 철저한 삭감, 점차적으로 제한적이고 인종주의적으로 되어 가는 이민정책을 보게되었다. 그리고 또한 북 아일랜드에서 매일 목격되는 동시에 그런윜에서 또는 런던의 헌틀리 거리의 주택 문제를 둘러싼 투쟁에서, 또는 서덜에서의 반인종주의 시위에서든지, 전투적인 반대 투쟁이나 모든 대규모의 노사문제에 대해서 국가의 억압이 증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전투성은 후퇴하고 있었다. 각 노동자 집단은 스스로를 ‘특별한 경우’라고 선언하면서 보다 부문에 국한시킨 협상을 꾀하는 전술로 물러섰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일단은 ‘사회적 협약’(임금 상승에 정부가 부과한 한계)과 국가 지출 삭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생활 수준에 대한 공격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늘날 보수당 정권 하에서 노동자들은 더욱 극심해진 국가의 공공 지출 축소와 산업 보조금 삭감 때문에 주로 실업의 위협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다. 이는 작업장과 지역사회를 불문하고 국부적 혹은 전국적인 차원에서 승리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졌고, 투쟁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전투적인 활동가들의 사기가 더욱 저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다양한 형태의 억압에 대항해 지역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더 명백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전국민 의료보험(NHS)에 대한 삭감조치는 전국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공공 의료의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 싸움뿐 아니라 병원 폐쇄, 삭감, 저임금에 대항한 ‘반격’과 같은 운동의 전국 조직의 형성은 이러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이는 오늘날 성공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관점과 연계를 가진 조직 형태가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또한 어느 때보다 긴급하게 전통적인 노동운동 조직과의 연대를 요구하는 주장들 역시 옳다. 우리는 이러한 조직의 가능성과 한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평의회, 노조 분회 등과 같은 조직을 기피하던 자율주의자와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경향은 결코 제대로 정당화되지 못했으며, 오늘날에도 전혀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전통적 형태의 전국 조직과 연맹체가 자율주의자와 페미니스트들이 정치적 영역에 도입한 다양한 투쟁의 차원들을 기각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긴급하다는 인식은 좌파들이 보다 개인적인 투쟁의 영역의 중요성을 제쳐놓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은 앞으로도 오래 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양측이 새로운 다리를 놓으려고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들과 전통적인 좌파의 간극은 여전할 것이다.
2)여성운동을 넘어서서 좌파 정치로?

마지막으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3가지 주요한 문제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째, 페미니즘과 개인적 차원의 정치의 관계와, 좌파 집단과 일반적 정치 상황의 관계이다. 둘째, 지역 조직과 전국 조직사이의 관계와 어떻게 이것이 현재 상황에서 자율주의자와 페미니스트, 그리고 전통적 좌파 사이의 갈등과 관련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셋째로 페미니즘 정치와, 지난 10년 동안 출현한 새로운 생각과 조직화 방식 양자를 통합시킬 수 있는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관점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이다.

-지역 네트워크 건설 운동: 지역 활동의 중요성과 지역 조직을 건설할 필요에 중점을 두는 자율주의자와 페미니스트 양자의 문제는, 어떻게 광범한 사회주의와 페미니즘 운동을 창출할 것인가 이다. 아래로부터 구축된 운동은 하나의 싸움에서 투쟁하고 승리하기에 충분한 이들을 동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만큼 어렵지만 각각의 투쟁의 경험을 잃지 않고 다음 번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우리를 단련시킨다. 자율주의자들은 경험과 행동을 연계시킬 수 있는 지역 집단의 네트워크를 건설하고자 했다. 1973년과 1974년에 세 차례에 걸쳐 전국적인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당시 어떤 전국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율주의자들은 전위를 부정하기 때문에 실제로 정치적으로 응집력이 있는 중앙 조직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그러한 연계가 필요하게 되면 자생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가정할 수도 없었다.
오늘날 여성 운동도 마찬가지로 낙태에 대한 공격에 대응하는 것과 같은 아주 특정한 영역에서의 싸움을 제외하고는 정치적 주도권을 갖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우리는 우리가 최근에 이룬 모든 성과에 대한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직면하고 있다. 여성들은 동일임금, 더 많은 양육 시설과 더 나은 의료 시설뿐 아니라- 이 모두는 보수당의 삭감으로 위협되고 있다- 심지어 출산 휴가와 같은 보다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아이들이 있는 여성의 임노동권에 대한 공격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최근에 상원의회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실업은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간다면 단 번에 해결될 것이다’라는 얘기까지 듣고 있다. 경제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지배계급은 일반적인 노동계급과 특히 여성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성억압과 계급억압 사이의 연계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여성의 이해를 수호하는 행동을 조직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모든 이들, 여성과 남성 모두와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는 한, 여성 운동이 정치적으로 주변적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여성 운동에서조차 잘 조직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조류가 지역 네트워크를 조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떤 지역에서는 꽤 성공을 거두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유능한 전국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회보인 「진홍색의 여성(Scarlet Women)」 글자 그대로의 뜻은 ‘진홍색의 여성’이지만, 중의어법을 통하여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남근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용어 사용법의 산물인 것 같다. ‘매춘여성’을 뜻하기도 하고 ‘세속화된 기독교’를 뜻하기도 한다.
은 아직 조직화의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운동에서 소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천 명이 넘는 여성들이 지난 두 번의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시기에 우리는 강력하고 자율적인 여성 운동뿐 아니라, 운동 내부에 보다 일반적인 관점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조류들이 주도하는 운동을 진정으로 지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마지막 회의에서 결성하기로 동의한 구조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지역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조직들을 발전시키고 그러한 구조들을 우리가 개입하는 다양한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사용하는데 더 많은 정력을 쏟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1979년 3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회의에서 도달한 동의에 대한 토론은 Scarlet Women, 1979년 7월호에 실려 있다.
이것은 「진홍색의 여성」이 전국적 조정자로서 더욱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할 것이다.
-여성운동을 넘어서기: 나는 우리가 좌파와 노동운동 조직이 페미니즘의 쟁점을 단지 명목적인(tokenistic) 방식으로만 제기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좌파와 노동운동의 정치형태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좌파와 노동운동과 관계 맺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페미니스트로서 말하는 것에 대해 그들이 배워야한다고 주장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좌파는 노동 계급 조직이 노동운동에서 여성 억압과 싸우는 것에 지속적으로 실패한 방식을 이해하고 비판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임금인상 공세는, 양육 시설 확대와 노동 시간 단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가정과 작업장에서 여성의 지위를 바꾸는 것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예컨대 우리는 노동 시간 단축은 남성이 아이 양육과 집안 일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여성에게 핵심적인 투쟁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다. 「붉은 넝마(Red Rag)」 글자 그대로는 ‘붉은 넝마’이다. 이것은 소를 성나게 하는 물건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혁명의 ‘붉은 깃발’을 풍자하는 명칭으로 볼 수 있다.
에 실린 최근의 기사는 이러한 쟁점을 다음과 같이 썼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의 투쟁에서 암시된 바는 아이들과 여가와 정치를 허용하는 세계에 대한 적응이라기보다는 노동의 세계에 대한 적응이었다. B. Campbell and V. Charlton, 'Work to Rule' in Red Rag, January 1979.


이것은 우리가 노동운동이 여성의 요구를 임노동자로서 뿐 아니라 주부와 소비자로서의 필요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종속이 기반하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영역 분리 논리를 수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강화시켜야 한다.
여성운동을 넘어서서 좌파정치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를 원하는 여성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내 생각에는 남성 지배와 엘리트주의 그리고 수동성이 전국 조직뿐 아니라 아직 건설되지 않은 지역 단체와 부문별 운동 속에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본다. 자신감과 조직화에 대한 경험 혹은 시간이 적은 이들은 그러한 집단에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때때로 소집단 내부의 지도자 중심주의와 싸우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의 상호작용은 정치적 표명이라기보다는 순전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형태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좌파와 노동운동의 조직화에서 남아 있는 낡은 구조, 명백히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어떠한 형태의 대중 참여도 고무하지 않는 대규모 회합과 연단의 연설가 구조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현존하는 성별, 계급적, 인종적 위계질서를 재생산하기보다는 그것들을 극복하는 새로운 정치적 구조를 창출하는 문제에 대한 쉬운 해결책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전국적 조직이 스스로의 억압에 대항하여 조직하는 집단의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거나, 투쟁하는 이들을 가르치기보다는 더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거나, 관계 맺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는 진정으로 평등하고 협력적인 구조를 이용하여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여성의 주장을 무시한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작업장에서 조직할 필요성과 마찬가지로 나는 좌파의 단결을 증진시키고 사람들이 그것에 보다 쉽게 참여하게 만드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지역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좌파와 다른 특징을 지닌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그룹, 지역 신문, 사회주의 센터와 다른 지역 센터와 같은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오늘날 여성운동 내 외부에서 적극적이길 원하는 여성들에게는 지역 조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또한 다양한 상황에 기반하고 그것으로부터 일반화시키려고 시도하는, 그리하여 전체적인 전략을 발전시킬 수 있는 조직의 성원이길 원한다. 나는 1979년 영국에서 단일한 혁명 조직을 건설하거나 하나의 좌파 조직만이 모든 해답이 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혁명 조직은 모든 투쟁의 영역을 지원하고, 가능한 광범한 좌파의 단결을 건설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좌파 집단에 만연한 타락과 분열, 편집증에 종속되지 않은 전국적 조직에서 사회주의와 페미니스트 정치를 결합시킬 가능성이 있는가? 그러한 단일한 전국 조직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자율적 집단 및 활동과 관련된 실천을 지원할 수 있는가? 우리 모두는 하나의 대답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찾아낸 방법은 자신의 조직적 발전보다 계급 투쟁에 중점을 두고, 여성과 다른 억압받는 집단의 자율적 조직을 건설하는 것을 충분히 지원하거나 도울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고, 개인적인 정치 이론을 포괄하는 사회주의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집단인 ‘큰 불꽃(Big Flame)'에 참여하는 것이다. 시간만이 내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해줄 것이다. 한/노/정/연


번역: 신병현 연구위원 / 박정미 연구원

2000-02-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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