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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서 아태 좌파활동가들의 연대를 위해

현장에서 미래를  제52호
정옥순

국/제/노/동
국제노동

국경을 넘어 아․태지역 좌파활동가들의 연대를 위해
- 맑스주의 2000: 아시아 태평양 연대 및 교육회의-

정 옥 순
국제기획실원




이 글은 지난 1월 5일부터 9일까지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MARXISM 2000'에 노동자의 힘(준비모임)의 일환으로 참석했던 필자가 방문기간 동안 느낀 소감을정리하여 본지에 기고한 글이다.







호주 시드니 국제공항에서 바라본 하늘은 한국의 가을하늘과 흡사했고, 그 바람 또한 그랬다. 지금껏 추상적인 원칙으로 부여잡고 있던 국제연대에 대해, 나는 그 구체적인 상을 그리고 실천하고자 12시간 이상을 날아 그곳에 도착했다.
행사 하루 전인 1월 4일 도착한 나는 공항으로 마중 나온 호주 ‘민주사회당’(Democratic Socialist Party, 이하 DSP) 동지의 차를 타고 DSP 본부에 들렀다. 이미 그곳에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온 동지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간단한 인사 뒤에 DSP 건물 내부를 둘러봤다. 1층은 DSP 시드니 지부와 DSP 청년조직인 ‘리지스턴스’「Resistance, 저항) 사무실, 2층은 회의실, 3층은 DSP에서 발간하는 기관지인 ꡔGreen Left Weeklyꡕ(주간녹색좌파)의 자료실과 편집실, 4층은 DSP 전국본부 사무실이 있었다.
오후에 아름다운 정경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드니항을 간단히 관광한 후에, 대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는 장소로 향했다. 대회장소는 시드니에서 서쪽으로 1시간정도 거리에 떨어진 시 교외의 서시드니 대학의 혹스베리 캠퍼스였다.


호주 민주사회당

행사를 주최하는 DSP는 60년대말 베트남 반전투쟁을 주도했던 청년조직(Resistance)의 활동가를 중심으로 1972년에 결성된 좌파정당이며, 1970년대 트로츠키주의 계열의 ‘제4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하다가, 1985년 이들의 비민주적인 활동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탈퇴한다. 이후 상호평등주의와 국제주의에 입각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제연대 네트워크 구축에 주력하고 특히, 1991년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이후 ‘사회주의 혁신과 혁명적 좌파의 통일’을 지향하는 좌파 정세-이론지인 ꡔ링크스ꡕ(Links, 연대 또는 연결)의 출간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또한 1992년부터 대중적 정치신문인 「그린 레ㅍ트 위클리」를 발행하고 있다.
DSP는 현재 호주전역에 12개 지부가 있으며 당원은 350명 정도이다. 또한 산하에 호주 최대의 청년조직인 'Resistance'가 있으며, 국제연대활동을 위한 ‘ASIET’(Action in Solidarity for Indonesia and East Timor,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를 위한 행동연대)와 ‘CISLAC’(Committee in Solidarity with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라틴아메리키와 카리브해 연대위원회) 등의 연대기구가 있다.


맑스주의 2000: 아시아․태평양 연대 및 교육회의
이번 회의는1998년부터 당대회가 없는 해마다 격년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DSP당원과 Resistance회원 및 DSP와 관계맺고 있는 나라의 좌파 활동가들을 참석대상으로 하고 있다. 회의의 목적은 위에서도 언급한 바처럼 사회주의 혁신과 좌파통합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 및 교육이었다.
1월 5일 ‘21세기에도 맑스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의 기조발제로 회의의 공식일정이 시작되었다. 이번 회의는 15개의 전체 종합토론과 패널, 4개의 주요 주제토론과 84개의 세부주제별 토론 및 맑스주의 고전 강의 등으로 이루어졌다.

주요 토론의 주제를 보면 대강 다음과 같다.
첫번째 주제는 ‘21세기 자본주의 전체정세에 대한 이해와 전망’으로, 기조발제 ‘21세기 맑스주의의 유효성’, ‘제국주의의 지구적 공격, 이에 대한 저항의 전망’, ‘패널: 21세기의 제국주의’와 종합토론으로 ‘21세기의 사회주의’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두번째는 ‘아태지역 각국운동 평가와 좌파운동의 대응’인데, 이에 대한 발제로는 ‘동티모르: 과도기의 전망’, ‘인도: 반동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적 전망’, ‘파키스탄: 군부, 회교도와 자본가 엘리트에 대항하는 노동자’, ‘인도네시아 민주주의혁명’, ‘호주 국내정치­어떻게 싸울 것인가’,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필리핀 사회와 혁명’, ‘네팔의 공산주의 운동’, ‘스리랑카: 선거에서의 좌파의 단결’과 ‘방글라데시 좌파적 전망’등이 있었다. 특히 각국 활동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운동이 현실투쟁을 통해 더욱더 벼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아․태지역에서의 노조/정치조직간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어떻게 나갈 것인가’에 대해 논의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DSP 서기 존 퍼시(John Percy)의 발제 ‘국제적인 좌파의 협력과 사회주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것은?’과 ‘아시아에서의 혁명적 노동조합의 협력’에 대한 적극적인 토론이 진행되었다. 구체적인 지점에서 어떻게 연대하고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활동가들간의 의견교환은, 회의 이후 아․태지역 활동가들의 실천적 전망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이번 회의에서는 맑스주의 영역의 확장으로서 여성, 제3세계, 민주주의혁명, 청년학생운동, 환경운동에 있어서의 전략과 전술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이러한 발제와 토론을 통해 확인된 것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실천적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지구화되는 자본에 대해 수세적 대응을 넘어 아․태지역 활동가들간의 공세적 대응이 준비될 때만이 이번 회의의 진정한 의미가 다시 한번 자리 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참가자들의 활동내용

이번 회의에서 한국은 워크숍, 패널, 전체회의 등 공식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는데, 주요한 내용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워크숍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에서는 간략한 비디오 상영이후 1) 경제위기 이후 한국 노동운동 2) 좌파운동의 역사와 현황 3) 삼미특수강 캠페인 등의 내용으로 발제를 진행했다. 아태지역 활동가들에게는 그 동안 주로 1996~97년 노동자 총파업 외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좀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였고,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둘째, 패널 ‘21세기의 제국주의’에서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운동에 대한 전문가인 제임스 페트라스(미국 뉴욕주립대 교수)의 발제에 이어, 시애틀 투쟁을 중심으로 자본의 지구화에 반대하는 투쟁의 중요성과 조직화 과제에 대해 발제했다.
셋째, 패널 ‘아시아에서의 혁명적 노동조합의 협력’은 아시아 지역 노동운동의 협력에 대한 각국의 경험을 발표하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충분한 논의를 위해 또 한번의 토론을 계속하였지만, 이 지역 노동운동이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불균등성으로 인해, 현실적인 폭넓은 주제에 대해 의견 교환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구체적인 실천적 결론에는 이르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패널 ‘아시아 지역 혁명적 청년운동의 협력’에서는 한국의 학생운동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간략히 발제를 진행했다.
더불어 공식 일정에는 없었지만,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만든 비디오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와 ‘우리들의 사계’­삼미 특수강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를 상영했다. 이를 본 아․태지역의 활동가들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항하는 한국노동자들의 투쟁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1000일 이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삼미 특수강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서명을 조직하기도 했다. 동지들의 승리를 위해!


배울 점과 아쉬운 점

회의 내내 나는 언어문제뿐만 아니라 각각의 발제문이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데서 온 내용 파악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50여명의 DSP 당원들이 100여개가 넘는 토론, 워크숍에서 사회와 발제를 맡아 진행했던 모습은, DSP 당원들의 이론적․사상적 배경이 30여년간 안정적으로 축적돼왔음을 반영하는 듯 했고, 규모에 비해 상당히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DSP 당원들간의 나이․성별․인종에 관계없는 사상적․정치적 수평관계는 유교적 전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활동가들이 배워야 할 점이기도 했다.
호주의 정치 지형 속에서, 특히 노동당의 압도적 영향력으로 좌파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었으며, 활발한 국제활동에 비해 국내정치에 대한 개입도는 제한적인 것 같았다. 또한 노동당에 의한 노동조합의 지배로, 노동조합에 대한 영향력은 미약해 보였다.
발제를 통해 드러나는 것처럼, 단지 호주의 노동계급­특히 호주노총ACTU­은 계급성이 희석화되어 관료화된 지 오래이며 노동당과의 뿌리깊은 관계는 그들의 관료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뿐이라는 주장만 하고, 노동운동 전체의 혁신을 위한 명확한 자기 계획이 없다면 그들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아래로부터의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주목하고 맑스주의의 확장된 영역에서 노동자계급과 연대할 때, DSP의 목표는 현실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회의의 특징은 각각의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쟁점이 형성되고 실천적 결론을 모아내는 토론보다는 공동의 연구성과 발표와 DSP 당원들과 아․태지역 활동가들에 대한 교육에 큰 무게를 두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DSP는 아․태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연대전선을 형성하고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완결된 내용과 이념을 가지고 아․태지역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번 회의를 통해 고립무원의 한국 활동가들과 아․태지역 활동가들과의 만남은 큰 의의가 있었다. 첫째는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와 선전의 기회를 가진 것이고, 둘째는 이후 아․태지역 활동가들간의 연대와 소통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면이 아닌 활동가들간의 생생한 만남과 이를 통한 경험은 각국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이후 구체적 연대의 지점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각국의 정치적․문화적 차이를 넘어 국제적인 문제와 쟁점에서 함께 투쟁하기 위해서는 어디서 출발할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호주 행사는 작지만 큰 성과로 다가올 수 있었다.
회의 마지막 날, 참석한 모든 동지들이 일어나 손을 높이 들고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던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선언을 넘어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항해 투쟁하는 세계의 모든 노동자, 민중들과 함께 행동하는 실천적 국제연대를 위한 모색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2000-02-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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