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장은
신자유주적 교육개혁에 맞선 연세대 교수들의 투쟁! 승리!
태 기 철
일반회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교육개혁 그리고 연세대학교 투쟁
김대중정권은 지금까지의 대학이 비효율적이고 사회적 요구에
충실하게 부합하지 못하였으므로 대학의 교육개혁은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그리고 대학의 구조조정은 대학평가제를
시작으로 하여 모집단위 광역 모집단위 광역화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에 의해 모집단위가 학과편제에서
학부편제로 개편되면서 학과간의 학문적 연계성 및
총체성(통일성)의 기반 및 발전계획 없이 수개의 과를 단일
모집단위로 급조하여 묽어놓은 모집단위 편제를 통칭하여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모집단위 광역화는 주로 입시제도 개혁을
위한 구상으로 당연히 명확한 개념이 설 수 없는 것이다. 논의도
주로 총장, 보직자 등 행정 담당 교수들이 주도함. 정부의
모집단위 개편의 목적은 학문적 발전보다 노동력의 사회적
수효에 부합하는 인력양성 이었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학문적,
교육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그 실행이 전횡적인 권력을
갖고 있고 독단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재단 및 학교당국자의
이해와 편의성에 맞게 결정되어 실행되었다.
모집단위 광역화 유형은 다양한데 몇 가지 유형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학부제로 모집하고 일정시점에서(주로 2학년
올라가는 시점) 학과별(전공별)로 다시 편제하는 방식. 2.
학부제로 모집하고 졸업시점에서 이수한 과목에 따라 전공을
결정하여 전공별 학위를 수여하는 방식. 3. 학부제로 모집하고
학부로 졸업하는 방식. (필자)
화, 교수업적평가제 및 연봉제, 학사일정 통제강화, BK21 등이
진행되고 있다. 각 대학에 대한 지원은 교육개혁의 진행 및
성과에 따라 차등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교육개혁의 내용은 지금까지 대학이 안고 있던 취약한
문제들열악한 교육환경, 부족한 교육재정(사립대에서
정부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6년 기준으로 2.9%로 선진국의
10%~15% 수준), 교수 1인당 과중된 학생수(독일의 2.5배),
사학재단의 독단적 횡포와 비리,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잘못된
사립학교법 등등을 빗겨가고 있다. 대학의 개혁은 지금까지
대학교육을 가장 파행적으로 몰고 갔던 직접적인 문제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정부에 의한 대학개혁의 근본적인 방향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맞물려 있다. 대학교육이 자본의 지구화와 이에 따른
산업의 국제적 분업에 조응한 노동력 재생산 구조로 효율적이지
못하였다는 즉, 필요 없는 분야의 교육을 통해 자원의 낭비와
사회적 요구에(자본의 재생산에 효과적으로) 부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한사회의 대학 교육은 세계자본주의
분업구조에서 차지하는 남한자본의 지위에 따라 결정 되어야
하는 것이며 교육은 극히 기능적이고 분업화된 파행적 교육이 될
수밖에 없으며, 대학의 연구활동도 이윤창출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불안정고용이 심화되어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60%를 넘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노동조건 및
노동통제가 강화됨은 노동자의 저항이 심화될 조건이 될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효과적으로 지배하지 못한다면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강도를 강화시켜 고용비용을 최소화(착취율을 강화하는
것이다)하는 자본의 정책 자체가 붕괴될 소지가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전략이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지만 동시에 저항의
조건도 강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대학과
대학생들에게 사회, 철학, 인문적 교양을 약화시켜 사회비판
능력을 말살하려는 것이며, 이윤창출에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이윤창출에(기능능력 강화와 실무능력강화) 필요한 교육으로
대치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개혁의 중요성은 1999년
중학교 입학자수가 607,052명이고 1999년 대학정원이(전문대,
4년제, 개방대, 교육대 포함) 약 660,00 정도였던 것을
감안한다면정부 통계청 통계 알 수 있다. 수년 안에 대학이
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의 대부분을 배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대학의 통제가 곧 노동자를 통제하는 과정이며 노동력 양성
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제 대학의 통제과정은 바로 자본에 의한
노동자 통제의 효율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김대중정부가 교육의 중요성(이것은 교육개혁의 중요성이다)을
강조하며 교육부장관을 교육부총리로 승격시킨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위와 같은 교육개혁 결과 교육재정은 IMF 이후 2,000억이 오히려
줄고, 교육환경은 더 악화되었으며(단적인 예로 대학은 늘었고
입학정원은 늘었지만 1997년에는 대학 교원수가 53,300명,
사무원수가 23,998명이었으나 1999년에는 41,226명 사무원수
22,571명으로 줄었다) 학문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취업
전쟁터로 변하고 있으며 학문간 불균등한 발전은 심화되었다.
학문의 공공성은 후퇴하고 일부 국립대의 민영화 계획이
발표되었으며, 대학학문의 자본에 대한 지배는 강화되고 학문의
자율성은 파괴되고 있다. 이제 대학에서 사회, 철학, 인문적
지식은 소수의 연구중심 대학의 학문으로 바뀌고 있으며 이렇게
양산된 소수의 엘리트(자본의 포섭 하에서 사회적 지위를
얻는)에 의해 사회가 관리되게 되었다.
대학이 갖고 있던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자본의 경쟁력 강화라는 수단으로 실시되는
교육개혁은 전근대적인 사학재단들의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횡포로 인하여 더욱 파행적으로 실시되었다. 그 결과 문제는 더
크게 확대되어 입시학원 보다 수강생이 더 많은 강의가
속출하고, 졸속적인 모집단위 편제, 특성화를 위한 기초학문
과정의 파괴를 가져왔다. 각 학교마다 재단과 학교당국에 의한
졸속적 교육구조조정은 학원의 주체인 학생과 교수의 의사는
철저히 배제하고 실시되었다.
이러한 교육개혁은 학원사회의 커다란 동요와 파장을 불러와
1999년 한해 수많은 학교에서 학원민주화 투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학원민주화 투쟁에서 학생은 기성회비 삭감 및
등록금 삭감이라는 경제적인 문제에 갇혀 전체적인 학원의
구조조정 문제까지 전진하지 못했으며, 교수들은 업적 평가제와
연봉제등의 경제적인 문제에 갇혀 있거나 재단과 학교당국의
눈치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몇 몇 대학이(대표적으로 연세대와
한신대) 보여준 모범적인 투쟁은 앞으로 진행될 학원민주화
투쟁의 잣대가 될 것이며, 2000년 학원민주화 투쟁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연세대 투쟁은 학생이 아닌 교수들에 의해
경제적인 요구를 넘어서 신자유주의적 교육구조조정의 핵심
내용중 하나인 모집단위광역화에 대한 반대 투쟁이었다는 사실과
사학의 독단적인 전횡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이었으며 대학의
일주체인 교수들의 주체선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투쟁도 교수에 의한 총장실 점거라는 강력한 투쟁을
진행하였다는 것은 사회 정치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학교육개혁이 곧 사회 정치적 투쟁의 일환임을 증명하였고
사학의 학사행정의 교수 및 학생의 통제력을 강화 시켰다는
커다란 의의를 남겼다. 이러한 연세대 학원민주화 투쟁의 경과를
살펴보고 보다 구체적인 의의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연세대 학원민주화 투쟁의 진행과정
학교당국의 모집단위광역화 및 업적평가제와 연봉제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서명작업을 시작하여 1차로 교수 180명의 서명을
받았고 1999년 11월 15일부터 2차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11월
17일 까지 208명의 교수가 서명을 하였다. 11월 21에는 서명
교수가 221명으로 늘어났고 11월 24일에는 신촌 캠퍼스 229명,
원주 캠퍼스 21명 총 250명이 서명에 참가했으며 아래 요지와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1999년 11월 24일 연세대학교 교수 250명은
(1) 본부가 독단적으로 강행하고 있는 모집단위광역화 작업을
중지하 고, 재검토에 착수할 것
(2) 비공개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추진되는 각종 제도개편의
시행을 즉 각 중단하고 전 연세인의 참여 하에 재검토할 것
(3) 비공개 위원회 중심의 학교행정에서 탈피하여 공개적이고
민주적 인 행정 체계를 확립할 것
(4) 만약 위의 세 가지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총장을
포함한 본부의 모든 보직 교수들은 즉각 사퇴할 것이라는
요구사항을 성명서를 통해 11월 31일 까지 답변을 총장에게
요구하였다.
11월 24일 성명서에 대한 총장의 답변서는 이틀 지난 12월 2일
배포되었으나 “교수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학교정책을 집행해
나갈 것” 이라고만 말할 뿐 구체적으로 파행적인 학교운영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 특히 교수업적제와 연봉제를 최우선으로
다룸으로써 교수들이 사사로운 개인적 이해관계에 연연하여
성명서를 낸 것처럼 오도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모집단위
광역화 중지’에 대한 입장은 기정 사실화했고 재검토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밝히고 있으며 전혀 관계없는 기여입학제를
거론하면서 본질을 호도하고 있었다. 학부제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평가도 하기 전
서둘러 실시하여 근본적인 오류를 시정하지 않고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사후 보완 조치만을 시행하려고 하고 있었다. 또한
연구업적제와 연봉제는 신임교수들에만 적용하기 때문에 기존의
교수에게는 영향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문제의 핵심과 거리가
있었다. 이는 연구와 교육을 주된 책무로 하는 교수직의 특성 및
한국 대학의 현실적 조건들에 대한 고려, 그리고 민주적
의견수렴을 기반으로 하는 인사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총장은 마치 민주적인 의사수렴을 통해 결정한 것으로
사실을 왜곡하였다.
12월 6일 총장 답변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성의 있는 답변을
하지 않은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교수들이 직접적인 행동에
돌입하는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올바른 개혁을 원하는
교수들의 모임으로 발표하였으며 12월 8일(수) 정오부터
10일(금) 5시까지 시한부 농성을 본관에서 하기로 하였다.
12월 8일 언더우드 상 앞에서 82명의 교수들이 항의 집회를
가졌으며 “진리여 영원하라! 자유여 영원하라! 연세여
영원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곧바로 약 40명의 교수들이 2층
소회의실로 이동하여 약 30분 동안 20명의 신문사 방송사 기자가
있는 가운데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그 후 약 15명의 교수들은
바로 농성에 돌입하였다. 오후 4시경에는 “교육혼란 책임지고
총장은 사퇴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본관 건물에 걸었다. 이
농성은 12월 10일 오전 11시에 일단락 되었으며 많은 교수들이
농성에 참여 방문했으며 총학생회의 회장단도 방문하여 지지와
연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이 사안이 갖는 사회적 파급력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KBS(12월 8일) 7시 뉴스와 한겨레, 국민,
세계일보만이 짤막하게 보도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12월 17일 총장의 요청에 의한 연락간사들과 면담이 있었다.
모집단위광역화가 진행과정상의 문제가 있었으나 선진국에서
검증된 제도이고 시행되는 제도를 급진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점증적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으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없었다.
12월 21일 간사교수들이 두 부총장과의 면담을 통해 12월
23일까지 총장의 성의 있는 답변이 있어야 하고 없으면 254명
교수의 강력한 행동이 있을 것이라는 결의를 전달하였다. 12월
23일 총장은 연세대학교 교수님께 드리는 글을 발표하였으나
“심려를 끼쳐서 송구” “학내 진통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책임을 통감” “입학단위 광역화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심각하게 논의” “개선되어야 할 점은 과감하게 수정,
보완”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책임을 인정하고
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막연하게 시사하는 것으로 진의를 확신할
수 없었다. 교수들은 다시 총장의 면담을 요청하였다.
12월 27일 총장 면담결과 총장은 “나한테 항복을
요구하느냐?”면서 전반적인 책임을 통감하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구체적인 확답에 대하여 부총장은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고, 총장은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이에 12월 31일
구체적인 안을 내걸고 확답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응답 시한은
1월 7일로 하고 응답이 없으면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교정 곳곳에 걸기로 하였으며, 1월 10일에는 총장에 대한 항의로
또 한번 농성에 돌입할 것임을 표명하기로 하였다.
요구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1. 모집단위 광역화에 대하여
1) 이미 선발 단계에 들어간 2000년 모집 제도는 그대로
실시하되, 교육적 효과는 극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전교적인 시각에서 마련할 것.
2) 2001년부터는 2000년에 적용되었던 광역학부제를 중단할 것을
우선 천명할 것. 그리고, 다음 원칙들에 의해서 새로운 제도를
모색할 것.
― 모집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 학제개편의 차원에서
접근할 것.
― 민주적인 절차를 밟고, 대다수 교수들의 승인을 받을
것.
2. 각종 인사제도에 대하여
1) 현재 준비중인 교수업적 평가제도를 일단 폐기하고,
해당분야의 학문적 사정을 가장 잘 아는 학과와 단과대학이
자율적으로 평가기준을 마련하도록 할 것. 이때 본부는 채택되는
기준들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조정하는 역할만 할 것.
2) 신규교수들에게 적용할 계획인 연봉계약제를 우선 폐기할 것.
그 대신, 연구와 교육을 주된 책무로 하는 교수직의 특성 및
한국 대학의 현실적 조건들에 대한 고려, 그리고 민주적
의견수렴을 기반으로 하여 합리적 인사제도를 만들고, 그런
제도가 마련된다면 모든 교수들에게 적용할 것.
3) 교수특별채용제도 및 본부채용교수 제도를 중단하고 폐지하며
이미 채용된 본부채용교수는 계약기간 종료될 때 연장하지 말
것.
3. 비공개 위원회 중심의 학교행정에서 탈피하여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학교행정 체계를 마련할 것. 등의 3가지 요구사항을
발표하였다.
2000년 1월 11일 1. 모집단위 광역화에 대한 요구사항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2. 각종인사제도에 대해서도 전면 수용하나
신규교수에 대한 연봉계약제는 새 제도가 마련될 때까지
시행하고 제도가 마련되면 이를 적용하기로 함.
교수특별채용제도는 재검토할 것이나 이미 공고된 것도 해당학과
해당대학 인사위원회의 동의를 거치도록 규정을 수정하기로
하였다. 3.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의사수렴 및 학교행정 수용을
총장 명의로 전체교수들에게 공식 발표하였다. 이러한 제도의
개선을 추진하기 위해서 교학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각 대학 학장이 한명씩 추천하는
교수들과 교수평의회가 추천하는 교수, 총장이 추천하는 세명의
교수, 그리고 학교본부의 스텝5명이 참여하는
제도개선특별위원회 구성을 발표하였다. 모집단위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룰 것이며 2001년도에 적용할 수 있도록 2001년
4월 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
하였다.
이와 같은 발표로 연세대의 학원민주화 투쟁은 일단락
되었다.
연세대 학원민주화 투쟁의 의의와 한계
모집단위 광역화 반대와 학부제 반대는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모집단위 광역화가 학부제 형태를 갖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모집단위 광역화가 갖고 있는 내용 그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모집단위 광역화란 서구 학부제처럼 기초학문을
충실히 하고 학문간 연계성의 강화를 통해 학문적 발전을
심화시키고 학문의 뿌리를 강화하며 그 토대 위에서 전문성을
추구하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이러한 시행이 장기간은
경험과 검토과정을 통해 시행된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적인
기능적이고 분업화된 노동력 양성 과정의 제도의 일환으로서의
모집단위광역화와 서구의 학부제는 그 근간부터 접목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의 실시된 모집단위광역화는 노동력의
사회적 수효(자본적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수효에
따른 유동성을 목적에 두고 기술, 실무적인 능력의 강화 및
인문적이고 교양적인 과정과 기초학문을 약화시키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모집단위광역화는 세계자본주의 위계화된 분업구조에
맞는 노동력 양성이며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의 규격화된 기술,
실무 능력의 소유자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의 하나인 것이다.
사회, 철학, 인문적 교육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
비판능력을 약화시켜 사회 순응적 인간을 양성하는데 복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연세대에서 촉발되었지만 전 대학에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문제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사학재단에 의한
독단적 진행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모집단위광역화가
진행되고 학문간 연계성은 오히려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세대학교 교수들의 학원민주화 투쟁은 대학 보편적인
투쟁이 되야 하고 대학교육이 가지는 중요성이 큰 만큼 사회적인
지위와 투쟁의 모범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사학재단이 행사하던 비민주적인 전횡을 막아내고 학원의 운영
및 교육관련 제도의 주체가 교수이며 학생임을 선언하고
인정받아 냈다는 사실은 학장 직선제가 투쟁이후 커다란 족적을
남긴 투쟁인 것이다. 이는 성역처럼 강고 했던 악법인
사립학교법에 대해 무력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교육개혁을 통해 교수, 교직원, 학생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강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대학에도 사회와 마찬가지로
교수 및 교직원에 대한 노동의 유연성과 성과급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도는 정부 및 재단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자본의 이해에 맞는 연구과제 학사운영을 강제하기 위해 대학의
자본주의적 통제의 강화시키는 정책이며 대학에서 일하는
지식인노동자에 대한 생존권 및 노동권에 대한 탄압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교수업적제 및 연봉제 그리고 교수특별채용에
대한 것 이였다. 이를 막아내고 교수가 노동자로 사고하고
투쟁해야함을 대학사회에 명확하게 선언한 투쟁이었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교수라는 특별했던 지위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에 따라 어떻게 변동되고 위협받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을 막아내고,
사립학교법 보장된 재단 및 학교당국의 전횡을 막고 교수 학생의
민주적인 의사가 관철되는 학원운영을 쟁취한 커다란 의의가
있는 것이다. 한편 투쟁의 주체가 교수들이었다는 사실에서
한국사회 대다수 교수들이 교육구조조정인 모집단위광역화에
경쟁력을 이유로 찬성하고 업적평가제와 연봉제에만 반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허물었다는 점과 구조조정과 경제적인 요구를
결합하는데 성공하고 학원의 정치적 주체임을 인정받아 냈다는
사실은 등록금이라는 경제적인 요구에 매몰되는 경향을 가진
학생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연세대 투쟁은 학원의 또 다른 주체들인 학생과 교직원들과 연대
투쟁을 이루지 못했다는 한계와 특히 모집단위광역화는
학생들에게도 사활적인 과정이며 이후 학제재편 과정에서도
학생의 참여가 꼭 실현 되야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학생이
교육의 수혜자가 아니라 교육의 당당한 일 주체임을 인정하면서
가르쳐야 하는데 학생들과 연대의 거부는 시기의 효과성을
논하기 이전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편 연세대 투쟁이 전국적인 투쟁이 아니라 고립된
투쟁이었다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 때문에 전반적인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에 대한 투쟁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교육환경과 교육비의
개인적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과 결합될 수 없었다.
그리고 대학시설이 취업학원이 아니라 학문의 터전이며 그 지역
문제가 토론되고 대책이 세워지는 포럼의 장소이며, 사회 교육의
장소로 기능 하는 문제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이것은 연세대
투쟁의 한계가 아니라 현재 민중운동의 한계로 연세대 투쟁을
밑거름으로 하여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라 하겠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