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 집
지식기반경제, 그 허구성과 의미
김 락 건
연구원/ 연세대석사과정, 사회학
지난 17일 정부의 2000년도 경제정책방향이 발표되었다. 그것의
주된 내용은 저물가, 저금리의 안정기반 구축, 제 2단계
구조조정 추진, 생산적 복지체제 구현, 지식기반경제로의 운영틀
전환 등이다. 이번 경제정책 발표가 저물가를 전면에 내세운
것부터 시작해서 서민, 중산층의 재산형성 촉진방안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4월 13일 총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단정짓는 것이 어렵진 않을 듯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
2단계 구조조정을 비롯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라는 부분이
분명히 강조되고 있는 만큼 그것을 총선에 맞추어 내놓은 카드
정도로만 파악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전면적인
구조조정의 이데올로기적 외피 역할을 하고 있는 지식기반경제,
또는 디지털 경제로 표현되고 있는 부분에 주목 해보기로
하겠다.
지식기반경제, 또는 디지털경제의 의미
먼저 이들이 말하는 지식기반경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이러한 지식기반경제 담론이 확산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에 명시적으로 주요하게 실려 있다는 것에 어느
정도 주목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금의 상황을 산업경제에서 디지털 및 지식기반경제로 전환하는
시기로 규정하면서, 그것에 우리 나라의 경제체제가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산업경제에서의 생산요소가 토지,
자본, 노동, 기술 등이었다면, 지식기반경제에서 이러한 기존의
생산요소보다 더욱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지식, 정보, 그리고
인적자원이라는 것이고,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조직의 혁신이라는 것이다.
이런 정도의 언급으로는 도대체 지식기반경제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디지털, 사이버,
네트워크 등의 용어들이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지금, 지식기반경제라는 말도 안되는 말이
경제정책방향에 나와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차피 그러한 개념들은 나름대로의 목적에 따라
나름대로의 이해방식에 기반하여 사용되는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도 위의 지식기반경제에 대한
혼란스런 언급들에 기반해서 나름대로 그것을 이해 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먼저 산업경제에서 디지털 및 지식기반경제로의 전환을 말하는
부분을 보자. 전환, 또는 이행을 말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시기구분의 문제인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지식기반경제라는
개념이 탈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것은
자본주의 내의 소시기 구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과거 제시되었던
정보화사회, 또는 후기산업사회, 후기자본주의 등의 개념들과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지식기반경제가 산업경제와 다른
점은 지식, 정보, 인적자원 등의 생산요소가 토지, 자본, 노동의
생산요소보다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것이다. 주류경제학 교과서에
언급되어 있는 바, 생산의 3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인데,
자본이라는 것을 과거노동의 집적이라고 한다면, 궁극적인
생산요소는 토지와 노동 두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맑스가
말했듯이 인간은 생활을 위하여 자신의 노동으로 자연을
변형시키는 것이고, 그렇다면 생산에 필요한 것은 결국
생산수단과 노동력뿐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마치
자본 그것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속류경제학자들은 토지, 자본, 노동을 생산의 3요소라고
정식화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러한 것마저 약발이 다해서 뭔가
가치를 창조하는 새로운 생산요소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보, 지식, 인적자원 등이 제시된 것 아닐까?
다른 방식으로 한번 지식기반경제라는 말을 살펴보자. 언뜻
보기에 산업경제라고 불려지는 시기에는 대공업이 주축이었는데,
지금의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정보통신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전에 제시되었던 개념인
정보화사회와 비슷한 맥락에 있는 개념일 것인데,
정보화사회라는 것은 정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전체경제인구의 50% 이상을 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적인 통계자료를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정보통신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50%를 넘어섰다는 말인가, 아니면 정보통신산업의 생산물의
가격이 전체 생산물 가격의 절반을 넘었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주식시장을 선도하는 업종이 정보통신산업이라는 것인가?
현대사회에서 서비스업이 다수를 점한다고 해서 서비스사회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도대체 정보화사회라는 개념도 그렇거니와,
그나마 그 기준이 제대로 제시조차 되어 있지 않은
지식기반경제라는 개념은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지식기반경제= 생산과정에서의 노동자 배제
지식기반경제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쯤 해 두기로
하자. 도대체 아무 것이나 갖다 붙여서 말을 만드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위험사회라는 개념을 보자. 현대사회가 위험사회라면 과거사회는
안전사회인가, 아니면 안위험사회? 이제부터는 지식기반경제라는
말도 안되는 용어의 이면에 깔려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박태준 신임 총리는 정보․지식기반경제의 인프라로 차세대
인터넷 개발, 초고속 정보통신망 조기 완공, 첨단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벤처기업 육성,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 등을 들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
정책과제 발굴을 위한 민․관 합동의 협의체 구성, 중소,
벤처기업의 창업 활성화 유도, 과학기술인력의 우대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서 볼 때, 지식기반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은 과학기술, 조직혁신, 유연화 등인데, 먼저
과학기술의 문제를 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 또는 특정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 자본의 이해에 양립할 때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는, 또는 지식이라는 것이 권력과 모종의 연계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이해는 여기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가 지속적인 생산력 발달의
역사였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이 발달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체계적인 과학, 혹은 지식의
발달에 기반한 것이고, 그러한 기술의 발달이 생산력의 발달에
기여해 왔다. 생산력의 발달이라는 것은 동일한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인간노동력 지출의 지속적인 감소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의 하루
노동일은 계속 줄어들어야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노동일은
줄어들었지만 그것은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산물이었다. 요컨대 생산력의 발달만큼
노동일은 줄어들지 않았는데, 그것은 생산력의 발달에 따라
기계가 노동자를 대치해 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극소전자혁명, 수치제어의 발달에 힘입어 지금 괄목할 만한
생산의 자동화가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것의 결과는
결국 필요한 생활자료의 생산에 들어가는 노동자 한 사람의
노동력지출의 단축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의 지속적인 노동력
배제로 드러날 것이다.
또한 경제정책방향의 뒷부분을 보면, 노동부문에서 근로자
파견제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장치가 정착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부분이 나와 있는데, 이것은 기업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과정을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부분이다. 자동화된 기계를 사용하는 것보다 노동자를 고용해서
생산을 할 때 비용이 적어진다면 자본가는 당연히 노동자를
고용해서 생산을 할 것이다. 단지 기계는 노동자에 의해 대체될
때 자본가에 대해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점인데,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와 이해를 같이 하는 국가는
법률적, 정책적으로 그것을 정당화해 줄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벤처기업 활성화?
한가지 덧붙이자면, 위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사실 최근까지의
주식시장 호황은 정보통신산업에의 열광 때문이었다.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에 나와있는 디지털 경제화에 부응하는 중소,
벤처기업 활성화라는 부분, 그리고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우대는
특히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지금 시기를 지식기반경제라고 규정짓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부와 기업들이 정보통신산업 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그 부문의 이윤율이 다른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것을 놓고
지식기반경제니 디지털경제니 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해외자본의 진출, 그리고 국내에서의 자본이동이
진전됨에 따라 그 부문의 이윤율 역시 하락하게 될 것이다.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서민, 중산층의 재산형성 촉진을 위해
종업원지주제, 우리사주조합을 활성화한다는데, 어느 정도
새로운 기술이 전반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다른 부문과 달라질 것
없게 되는 정보통신산업이 선도하는 주식시장에서 서민,
중산층의 재산형성이라는 목적을 끌어낸다는 것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중소,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문제도 그렇다. 정부는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벤처기업의 활성화로 창출되는 일자리란 것은
그 대상이나 수효에서 모두 제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특히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이 지식기반경제 운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그것이 기술개발에 관련한 부문에 국한된
것이라면, 벤처기업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고용문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을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벤처기업들이 개발한 신기술들이 응용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생산기반이 필요한데, 그렇다면 그 기술들은 그러한
생산조건들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들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벤처기업 활성화라는 정부의 정책은
대기업들의 R&D 비용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고,
그것은 독점의 강화에 다름 아니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2000년도 경제정책방향은 총선을 일정
정도 겨냥한, 그러나 자본의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의 완결을
위한 법적, 제도적 포석, 거기에 노동자민중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포섭의 내용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다. 국가의
역할이라는 것이 대립되는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를 아주
공정해 보이는, 물론 그렇게 하려면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이
뒤따라야 하는 것인데, 레퍼리의 모습을 띠고 판정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지금, 게다가 보수주의적 신자유주의자들은 지속적으로
정부에 대해 공세를 가하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민중의 그에
대한 대응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머뭇머뭇하는 자세로 다
거둬 간 밭에서 이삭이나 줍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적절히
타협하면서 조금이라도 얻어먹으려 빌붙어야 하는가?
지식경제기반이란 말, 앞서 말도 안되는 개념이라고 했었지만,
일단 정부가 그만큼 내놓을 때는 얼마나 고심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매년 새롭게 시작하는 투쟁, 그러나 이전과 다르지
않은 지난한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쟁취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생산력 발전의 결과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