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 집
김대중 정부의 소위 ‘생산적 복지’
- 낡은 패러다임과 새로운 수사학* 이 글은 ‘민중건강회의
2000’ 심포지움의 발제문을 수정․보완한 글이다. 글의
작성에는 김현미, 남구현, 배영희, 윤수정, 한진 등이
참여하였다.
남 구 현
연구위원/ 한신대교수 사회복지학
1. 들어가며
김대중 정부가 1999년 3․1절 경축식에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천명하고, 6월 현충일 기념사에서
국정운영 철학의 두 축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생산적
복지’를 첨가한 이래 생산적 복지는 일종의 국정지표 수준의
국가적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이후 8․15 경축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생산적 복지사회 건설’구상을 내 놓았고, 그
뒤 정부여당이 후속대책으로 세제개혁위원회, 신고용
창출위원회, 적극노동시장위원회, 국민최저생활추진위원회 등
4개 정책위원회 설치 방침을 밝혔으며, 이러한 흐름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 더욱 강조된 바 있다.
생산적 복지는 새로이 등장한 용어가 아니다.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 정치 영역에서의 소위 문민개혁정책이 노동,
복지분야로 확산되면서 ‘신복지구상’의 이름 아래 경제 성장과
복지의 조화라는 기치 아래 생산적, 예방적 복지가 주창된 바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제시되었던 신노사관계구상이 노동법
개악 파동으로 파탄에 이르고, 경제 위기가 도래하면서
현실화되지 못하고 유실된 바 있었다. 지금 시기 생산적 복지의
문제가 다시금 국가정책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근저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 집권세력의
위기극복전략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현재
한국사회는 IMF 경제위기 이후 경제재건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표는 소득분배의 악화, 만성적 고실업구조의 등장, 노사관계의
불안정, 빈곤인구의 급속한 증가, 소득계층간 사회적 양극화 등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갈등이 경제회복과는 다른
맥락에서 확대되는 추세로 중산층 붕괴와 서민들의 삶의 파탄
위기가 심화되고 있으며, 사회적 취약계층들이 정상적인
사회복귀의 비전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경제위기라는
자본의 위기상황에 있어 고통분담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으로는
노동자, 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하여 왔던 방식, 예를 들어
정리해고와 노동강도 강화, 임금 삭감으로 대표할 수 있는
구조조정의 흐름으로는 더 이상 터져 나오는 민중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는 판단이 우세해 지면서, 2000년 4월로 예정되어
있는 총선을 대비해 현 정권이 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 아래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새천년을 맞아 ‘생산적 복지’의 이름 아래
제시되고 있는 정책은 정보화 사회에 걸맞는 지식기반 산업의
육성과 함께 ‘생산적 복지사회’의 신기원을 이룰 것인가. 이
글에서는 일단 정부와 관변 기관을 통해 제시된 ‘생산적 복지’
정책에 대해 살펴본 후, 그 성격과 한계를 그것의 뿌리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제3의 길 등의 사조와 관련하여 분석하기로
한다.
2. ‘생산적 복지’의 내용
지난 8․15경축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생산적 복지’를
저소득층에게 시혜보다는 일할 능력을 키워주어 사회의 생산성을
높일 것으로 이야기하였다. 경축사에서 이야기된 생산적
복지체제의 내용과 방향은 다음과 같다.
1) 복지- 서민생활향상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시행,
월소득액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사람에게 그 미달액만큼을
정부가 지원한다.
- 단, 자활보호자가 직업훈련이나 취업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에는 지원을 중단한다.
-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적용시키고, 재 가노인의 복지시설을 확충한다.
- 저소득가정 학비를 인문고로 확대한다.
2) 교육-취업연계- 평생교육체제의 확립을 위한
‘평생교육법안’ 제정, 직업훈련기관의 다양화 현장
연계강화.
3) 창업지원-일자리확보- 자영업자 창업, 창업보육센터,
문화관광산업, 중소벤처기업 등에 대한 지원 늘려 일자리
확보
4) 사회보장제도 확충- 산재보험 적용대상을 5인미만의
사업장으로 확대계획을 2000년 7월로 앞당겨 시행
5) 보건의료- 의료보험법에 평생 국민 건강관리체계구축
6) 서민생활- 공공임대주택을 확대
여기에 제시된 내용을 보면, 노인, 장애인, 아동 등 특수한
인구집단에 제한되어 제공되어지던 생활보호제도를 저소득층
일반에 확대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확대하는 것과 함께
평생교육체제, 직업훈련 기관을 확충하여 교육 훈련과 복지를
연계시키겠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 중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제정되어 약속한 대로 2000년 10월
1일부터 시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실제로 제도화된 정책내용
가운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생산적 복지에서 핵심적 제도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역시 고용, 취업과 복지를
연계시키고 있다. 연령, 근로능력유무에 관계없이
최저생계비이하의 모든 가구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지원이 확대된 반면, 근로능력이 있는 자에 대하여
자활계획수립의 조건을 붙임으로써 근로유도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두가지
방향이다. 즉, 1) 최저생계비이하 모든 가구는 연령,
근로능력유무에 관계없이 최저생계비에서 가구의 소득과
타법령에 의한 지원액을 공제하여 생계급여를 지급함으로써,
국민의 의․식․주․의료․교육 등의
기초생활을 보장한다는 것과 2) 수급자의
근로능력․가구여건․자활욕구 등을 고려한 가구별
자활지원계획을 수립하여 구직안내, 직업훈련, 자활공동체
사업에의 참여, 생업자금 융자 등 자활지원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복지제도를 확대하되 복지를 노동과 연계시키는 기조는 이와
같이 김대중 정부의 복지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삶의 질
향상 기획단’에서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새천년을
향한 생산적 복지의 길’이라는 책자를 발간하고 곧이어
‘새천년을 향한 생산적 복지의 길’- 과제와 전망- 토론회를
가짐으로써 반드시 추진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한편, 관련
단체들과 정책방향을 공유하게 된다. 토론회에서는 생산적
복지의 이념을 바탕으로 각 영역별로 주요 정책과제를
제시하였는데 여기에서도 앞에서와 같은 기조 아래 기본생활
보장과 노동연계 복지가 그 기반을 이루고 있다. 이에는 다음과
같은 정책이 포함된다. 1) 국가의 재분배를 중심으로 하는
복지정책의 영역에 있어서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것. 즉
국민기초생활보장, 사회보험제도강화, 사회복지서비스 확대
등이다. 2) 시장분배를 통한 복지정책. 모든 국민이
시장경제안에서 생산과 분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균등한
기회제공. 즉 인간개발을 통한 고용안정, 근로자복지,
노동참여복지의 실현, 노사협의와 근로자 참가의 길 3)
자활․자립지원정책. 저학력, 저기술, 중고령 장기실직자
등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대책’마련 4) 생산적 복지의 기반조성을 위한 사회투자.
교육기회의 확대, 평생건강관리체계구축, 문화복지공간 확충,
쾌적한 환경조성, 조세정의 실현 등 (김유배. 1999)
이러한 생산적 복지에 대해 복지노동수석은 보다 구체적인
정책과제로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
국민연금의 전국민확대, 노동정책의 근로복지중심으로의 전환,
이 네가지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하여 새천년은 무한한 경쟁,
지식의 시대임을 강조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빈곤층을
보호하고, 인간개발 중심의 생산적 복지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펴나 갈 것을 약속하였으며, 이러한 기조는 1월 19일 발표된
올해의 경제운용계획에도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생산적
복지’ 국정 이념은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더불어
올해도 사회통합 정책으로서 기능할 것이다. 요컨대 새로운
‘한국적 복지모델’의 수준에서 제기되고 있는 생산적 복지는
크게 노동연계복지와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국민기본생활보장법을 그 주축으로 하고 있다. 생산적 복지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노동연계복지, 즉 일과 복지를
연계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생산적 복지가 제기된 작년이래 실제로 진행된 과정을
보면, 현실에서는 이후 의료보험 통합을 위시한 개혁 정책이
후퇴하면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만이 제정됨으로써 매우 협소한
정책이 되었다. 실제로 2000년도의 예산을 보면, 총예산이
93조원으로 전년대비 4.5%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1999년도에
2조 5천억원이던 노동부의 공공근로예산이 절반으로 줄고,
직업훈련비가 14% 감축되는 등 실업예산이 대책없이 줄고,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시행을 앞두고 생활보호대상자 수를 예년
보다 줄어든 153만9천명으로 책정하는가 하면, 보건복지부의
예산은 4조 7,534억원으로 전년 대비 7.0% 증가하였다고는 하나
실제 생산적 복지의 후속조치에 필요한 소요 예산은
4,670억원에서 4,099억원이 부족한 626억원이 반영되었다.
생산적 복지는 사실상 생산성의 이름 아래 복지를 가능한 한
확대하지 않겠다는 정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생산적 복지가 일종의 국정지표 수준에서 거창하게
제기되었으며, 복지제도를 확장시키는 한편 노동, 교육과
연계시키겠다는 서로 상충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
현실에서는 말만큼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혼란스런 평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생산적 복지와 같은
복지친화적 담론이 형성되고 있음은 국민복지 기본선 보장에
청신호’ 이지만 오히려 ‘자원기득권 옹호자들의 집단적,
제도적 방어벽과 복지개혁을 추동할만 한 정부 부처내의 튼튼한
추진세력과 복지개혁의 사령탑이 부재하며, 복지개혁을
구현하는데 긴요한 정부 내 행정시스템이 미비하고, 복지개혁과
관련된 집단들의 이기주의 발흥, 복지개혁 운동세력의 연대 약화
문제 등은 상당한 걸림돌’이라는 평가나 생산적 복지는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구체성과 실천 가능성만이
문제라는 견해에서 생산적 복지는 경제성장과 복지의 관계에서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사고에 기초하여 복지를 노동과 연계하는
‘노동을 위한 복지(welfare to work)’를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근로연계복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1980년대 이후
유럽의 저소득자의 급여만 감축되거나 사회불평등 정도가
증가되는 결과를 가져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생산적 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복지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이다.
서로 상이한 입장들은 그러나 대체로 전국민 최저선의 관점에서
국민기초생활 보장을 중심으로 사회복지를 보고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본 사회복지의 확대에 기여할 것인가의 여부를
기준으로 ‘생산적 복지’의 긍정성을 판단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이다. 우리는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의 실업대책을 놓고 고용창출이냐 사회적
안전망이냐 하는 논쟁과정에, 현실에서는 양자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창출론자들의 주장대로 대규모의 정리해고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안전망론자의 주장대로 외형적인 복지제도가
확대됨으로써 양자가 상호보완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던 것을
보았다. 결과적으로는 복지제도가 형식적으로는 확대되었지만
노동자 민중이 경제 위기의 부담을 부당하게 감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산적 복지에서도 생산성이냐 복지이냐의
문제라기보다는 누구를 위한 생산성인지, 어떠한 내용의
복지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3. ‘생산적 복지’의 이데올로기적 성격과 한계
‘생산적 복지’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일-
복지(workfare)의 의미가 강하다. 새로운 복지패러다임으로서
‘생산적 복지’는 경제와 복지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이 두
체계가 상호상승 작용하는 것을 전제로 통합적 사고에
기초한다고 한다. 이러한 점에서 공적부조를 실업문제해결 및
지식기반산업화에 필요한 노동인력 공급과 연결시키는 영국의
‘제3의 길’-일로 통하는 복지(welfare to work)와 같은
맥락에서 함께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생산적 복지의
옹호자들은 제3의 길을 모델로 자신들의 입장을 발전시키고
있다. 즉, 모순적일 수도 있는 가치를 조화시켜 그 힘으로
양극대신 더불어 사는 활력있는 사회를 건설하고, 그 동안
한국사회를 짓눌러 왔던 좌우이념 대립과 지역 갈등을 넘어
대타협을 통해 공존의 사회를 건설하는 한국식 제3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제3의 길‘의 비판적 수용의 연장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생산적 복지’의 이념적 모티브인 ‘제3의 길’은
공존의 사회를 열어나갈 새로운 대안인가?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의 정치이념인 ‘제3의 길’은 구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뛰어 넘고자하는 시도에서 나왔다. 기든스와 같은
학자는 ‘제3의 길’은 지난 20여년간 자본운동의 범세계화를
가속시켜 온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제3의 길’은 지난 20년간 혹은 30년에 걸쳐 근본적으로 변한
세계에 사회민주주의를 적응시키고자 하는 사고와 정책의 틀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시대의 자유경쟁체제를 인정하며, 더
이상 이전의 구사회민주주의로의 회귀도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신자유주의가 사회복지제도의
전통적인 개념들을 벗어나 보다 시장친화적인 개인책임과
노동기회의 조화를 주장함으로써 복지에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키는 것이며,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아닌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제3의 길에서 이야기하는 노동과
복지의 연계 즉 일하도록 유도하는 복지로 나타난다. 강화되는
자본의 지구화 경향속에서 적극적으로 자본의 논리, 즉 경제적
논리를 복지에까지 확대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로
통하는 복지정책’을 통하여 효율적으로 노동인력을 관리하고
그들로 하여금 수준이하의 근로조건을 감수하더라도
‘일’하도록 강제함으로서 ‘부의 창조에 순기능’하는 체제를
성립하고자 한다.
복지에 노동, 교육훈련을 연계시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찍이 1834년도 영국에서 봉건적인 구호제도를 자본주의적
생산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신빈민법이 제정되던
당시 복지를 교육, 훈련과 엄격히 연계시키는 것은 복지
수혜자가 노동하는 사람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으면 안된다는
열등처우의 원칙(less eligibility principle)과 함께 법 개정의
기본 정신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한편에서는 국민기초생활이
보장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과 연계되어지는 일종의 자활
프로그램이 생산적 복지의 이름으로 도입되는 것은 사실
자본주의 등장 초기에 이미 제시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의 복지가 지구적인 차원에서 악화되는 자본의 축적조건
아래 제3의 길의 노선에서는 노동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서구 각국에서 2차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오던 복지국가는 1980년대이래 세계적으로 악화되어가는
축적조건 아래 도래한 경제 위기와 함께 등장한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의해 공격당함으로써 해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악화되는 노동조건 및
생활조건은 노동자 민중투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복지 삭감을 함으로써 축적 위기를 모면하려
시도하듯이, 제3의 길 노선에서는 마치 노동에 문제가 있어
위기가 생긴 것처럼 이제 쓸모없는 노동을 교육시켜 자본에
유용한 노동으로 바꾸어 냄으로서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복지삭감, 효율성, 자본의 지구적 경쟁 등에
기본적으로 동조하면서, 노동과 복지의 연계 속에 평생교육,
직업훈련 등 사회적 투자의 맥락에서 복지를 간주하고 있는
제3의 길 노선은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노동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이다. 그들 스스로의 입을 빌면 ‘신자유주의자들이
하려는 것을 노동이 더 잘하려는 것’이다. 자본에 내재적인
모순의 결과 도래한 경제 위기를 마치 지나친 복지에 또는 쓸모
없는 노동에 위기의 원인이 있는 것처럼 은폐하게 된다.
서구의ꡐ제3의 길’의 한국적 표현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생산적 복지론은 제3의 길 노선의 원초적인 한계를 반복하는
데에 더해, 우리나라에 적용되면서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ꡐ복지의 과잉‘이나,
비효율적인 복지확대를 도모하는 구식의ꡐ좌파
정치ꡑ의 부재로 인해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과거 김영삼 정권 시기와 그 이후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군살도 없는데 군살빼기 정책을 기조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무분별하게 도입됨으로써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2의 길 또는
비생산적(?) 복지가 부재한 상태에서 제3의 길이나 ‘생산적’
복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복지를 가능한 한 안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져야 할 것이다. 심지어는 일부에서 우려하듯이
경제 위기의 도래로 어쩔 수 없이 확대해야 했던 사회적
안전망을 생산성의 이름 아래 최소치만 놔두고 거두어들이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제3의 길, 생산적 복지 등이 서구나 우리나라에서 구체적으로
야기하는 문제점들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즉,
‘생산적’인 것이란 무엇이며, ‘복지’란 또 무엇인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적’인 것과 ‘복지’가 양립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생산적 복지’가 갖는
논리적, 이데올로기적 허구성을 밝혀 내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애초에 생산적이라는 의미는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즉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통해 사용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생산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인구는 장애인, 아동, 노인 등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단순한 가치생산이 아니라
잉여가치(이윤)의 생산에 의해 특징지워지며, 이제 생산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윤을 생산한다는 의미에서 생산적인 것이다. 이윤을
만들어 내지 않는 노동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적인 의미에서 이윤을 생산하면 생산적이고, 이와
관련없으면 비생산적이라는 논리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확대되면서 자본의 투하자본
중에서 가변자본부분의 비율이 불변자본부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되고, 자본 고용능력의 상대적 감축으로
이어져 상대적 과잉인구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보다 구체적인
산업순환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데, 주기적으로 공황이
발생하며, 해고되거나 극빈상태로 떨어지게 되는 실업노동자군이
형성되고, 실업노동자군의 누적은 자본축적의 확대재생산을
가져오는 물적토대로서 추가노동력을 공급하는 산업예비군을
낳는다. 이것은 자본운동의 속성이며, 이러한 과잉인구는 값싼
노동력의 확보를 통해 이윤확대를 가져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생존조건이 된다.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을 언제나 축적의 규모 및 활력에 알맞도록
유지한다는 그 법칙은… 더 단단하게 노동자를 자본에
결박시킨다. 그 법칙은 자본의 축적에 대응한 빈곤의 축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잉여인구는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자본에 내재적인
모순의 결과이고, 자본 운동의 사이클과 축적조건의 변화에 달려
있는 것이지, 노동이 생산적인지 아닌지와 상관이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생산적’이라는 것은 위의 조건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경우에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성은 상부상조와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원칙으로 하는
복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생산적이지 않은 부분은 길거리에
내다 버리든지 가스실로 보내지 않으려면 최저생활보장을
해주어야 하며, 상대적 과잉인구의 경우 역시 연명하도록
최저생활보장을 해주는 한편 조건의 변화에 맞추어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시켜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이윤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사실 자본의 축적 조건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노동에 의하여 이루어진 ‘생산’이 그 자체로서 생산적일
수 있을 때, 생산의 목적이 잉여가치의 생산이기를 중단할 때,
‘복지’의 원칙인 사회구성원의 사회적인 필요(need)를
충족시키는 원칙은 생산의 원칙과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생산적 복지’의 실현은
자본관계의 지양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