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
제국주의와 라틴아메리카 NGO** James Petras, Imperialism and
NGOs in Latin America, Monthly Review, (December), 1997,
pp.10~27.
James Petras는 Binghamton에 있는 뉴욕(New York)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Neoliberalis and Class Conflict in Latin America
(Mcmillan, 1997)라는 책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 James Petras, Imperialism and
NGOs in Latin America, Monthly Review, (December), 1997, pp.
10~27.
James Petras는 Binghamton에 있는 뉴욕(New York)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Neoliberalis and Class Conflict
in Latin America (Mcmillan, 1997)라는 책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제국주의와 라틴아메리카 NGO
1980년대 초반이 되면, 신자유주의적 지배계급 내부의 좀 더
눈치 빠른 분파들(sectors)은 자신들의 정책이 사회를
양극화시키고 있으며 사회적 불만을 대규모적으로 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정치가들은 “아래로부터의” 평행전략을 재정지원하고 육성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사회적 완충장치”를 조성할
목적하에 잠재적으로 대립적인 계급들을 중재하기 위한
“반국가주의”(anti-statist) 이데올로기를 가진
“풀뿌리”(grassroots)조직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 조직들은
재정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성격의 자금에 의존하였으며,
지역지도자들과 활동가 단체들에 대한 영향력을 사이에 두고
사회․정치적 운동들과 경쟁하는데 직접적으로 관여하였다.
1990년대 들어 이른바 “비정부”(nongoverntal) 기구라고
불리우는 이 조직들은 수천 개에 달했으며 전세계적으로 40억
달러에 가까운 자금을 지원받았다.
신자유주의와 NGO
비정부기구(NGOs: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혼란된 인식은 독재정권 시기인 1970년대 그들의
초기 역사로부터 유래한다. 이 시기에 그들은 군사 독재정권의
희생자들에 대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함과 더불어
인권침해를 규탄하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NGO들은
“무료급식소”(soup kitchens)를 운영하였는데, 이는 당시
신자유주의적 독재정권에 의하여 수행된 충격요법의 희생자들이
그 일차적 충격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 시기로
인해 NGO들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가 좌파들내에서 조차도
생겨나게 되었으며, NGO들은 “진보진영”의 일부로서
여겨졌다.
그러나, 이미 그 때도 NGOs의 한계는 명백했다. 그들은 해당국가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을 규탄했지만, 반면에 독재정권에 자금을
지원하고 고문역을 맡으면서 후원자 역할을 했던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거의 비난하지 않았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과 인권탄압들을 제국주의 체제의 새로운 변화와
연계시키려는 어떠한 진지한 노력도 없었다. 또한 자금을
외부로부터 조달함으로써 명백히 비판 및 인권활동의 범위가
제약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커지자, 미국과
유럽의 정부들 및 세계은행은 NGO들에 대한 자금지원을
증대시켰다. 신자유주의 모델을 비판하는 사회운동들이 성장하는
것과 이를 파괴하기 위하여 NGO를 통한 대안적 형태의 사회적
활동을 창출하려는 노력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
NGO와 세계은행 간의 기본적인 수렴점은
“국가주의”(statism)에 대한 그들의 공통된 반대였다.
표면적으로는 NGO는 시민사회를 방어한다는 “좌파”적 관점에서
국가를 비판하였고, 우파들은 시장원리를 유지한다는 미명하에
국가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세계은행, 신자유주의적
정권, 그리고 서구의 재단들은 다국적 기업들에 의한 피해자들을
보상할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가의 복지국가적
기능을 파괴할 목적으로 NGO를 끌어들이고 지원했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 상층부의 신자유주의 체제들은 싼 해외의 제품들이
범람하도록 함으로써, 외채 상환금을 우려냄으로써, 노동법을
철폐함으로써, 그리고 저임금 노동자 및 실업자를 양산함으로써,
지역사회를 황폐화시키는 동안에, 다른 한편으로 NGO는
일시적으로 빈곤층의 일부를 흡수하고 지역지도자들을
끌어들이고 반체제 투쟁을 무력화할 목적으로
“자력갱생”(self-help) 계획, “대중교육”, 그리고
직업훈련들을 제공하도록 자금을 지원받았다.
NGO는 신자유주의의 상층부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었으며 지역적
사업을 통하여 그들의 파괴적인 작업을 보충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얼굴마담 역할을 하였다. 사실상
신자유주의자들은 “양동”작전 혹은 이중전략을 조직하였다.
불행히도 많은 좌파들은 위로부터,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신자유주의”(IMF, 세계은행)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밑으로부터의 신자유주의(NGO, micro-enterprises)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러한 점들을 간과하게 된 주된 이유는,
과거의 맑스주의자(ex-Marxists)중의 다수가 NGO의 방식과
실천으로 개종하였기 때문이다.
반(反)국가주의(Anti-Statism)는, 계급정치로부터 “지역사회
개발”로, 맑스주의로부터 NGO로 이데올로기적 전환을 위한
환승권이었다.
전형적으로, NGO 이데올로그들은 “국가” 권력을 “지역”
권력과 대치시킨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 권력은 국민과
괴리되어 있으며, 자율적이고, 독단적일 뿐만 아니라 그
시민들의 이해와는 상반되고 상이한 것들을 개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반면에, 지역권력은 필연적으로 그
국민들에게 더 친밀하며 국민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그와는 반대의 경우도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차치하고서라도 그것은 국가와 지역권력간의
본질적인 관련성즉 착취하는 지배계급이 휘두르는 국가권력은
진보적 성격의 지역 주도권을 파괴하려고 한 반면, 동일한
권력이라고 하더라도 진보적 세력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권력은 그러한 주도권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무시한다.
NGO가 이렇게 국가와 지역권력을 대치시킨 것은 지역조직들과
신자유주의적 해외 자금지원자들(세계은행, 유럽, 혹은 미국)
그리고 지역 자유시장체제 사이에서의 자신들의 브로커역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은 지역적 투쟁과
지역적 조직들을 전국적 및 국제적 정치운동과의 연대를
차단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지역
활동”(local activity)에 대한 강조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복무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런 활동의 국내외의
후원자들이 거시적 사회경제정책을 지배하도록 하며 수출
자본가들과 금융기관들을 위한 지원금에 국가 재원의 대부분을
쏟아 붓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자들이 민간 부유층에 돈벌이가 되는
국유자산들을 이전시키는 동안, NGO는 이에 저항하는 노동조합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그들은 소규모 사업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지역 공동체내에 민간 사업의 기조(자조.
self-help)를 조장하면서 순전히 민간 프로젝트에 적극적이었다.
NGO는 민영화로부터의 혜택을 누리는 독점체들과 소규모
자본가들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가교를 형성하였는데, 이 모든
것이 “반(反)국가주의”와 시민사회 건설이라는 명목 하에서
자행되었다. 민영화를 통해서 부유층이 거대한 금융자산을
축적하는 동안, NGO 중간계급 전문가들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교통비를 충당하고 소규모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떡고물을
얻어냈다.
중요한 정치적 측면은, NGO가 대중 집단들을 탈정치화시키고,
그들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열성을 제거하고, 그리고
소규모 프로젝트(small projects)들에 잠재적 지도자들을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체제가 공적 교육과 공적
교육자들을 공격함에도 불구하고, NGO는 공립학교 교사들의
투쟁을 외면한다. NGO는 저임금에 대한 파업과 예산 삭감에 대한
저항들에 좀처럼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교육부문의
기금은 신자유주의 정부로부터 조달되기 때문에, 그들은
투쟁하고 있는 공립 교육자들과의 연대를 회피한다. 실질적으로,
“비정부적”이라는 말은 공공지출에 반대하는 활동으로 전환을
의미한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수출자본가들에게 제공하는
기금의 대부분에 세금을 면제해주는 활동을 하고 정부는 NGO에
떡고물을 제공한다.
실질적으로 비정부기구들은 비정부적이지 않다. 그들은 외국
정부들로부터 기금을 받거나 혹은 정부들의 민간 하청업자로서
활동한다. 빈번히 그들은 공개적으로 국내 혹은 해외의
정부기관들과 협력한다. 이 “하청계약행위”(subcontracting)는
일정한 계약하에 종사했던 전문가들을 임시직으로
대체시킴으로써 그들을 불안정하게 한다. NGO는 복지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성격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없다. 대신에 그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공동체내의 협소한
집단들에게 한정된다. 더 중요한 점은, 그들의 프로그램이 현지
국민들에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해외 자금지원자들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NGO는 사회프로그램들을 현지
국민들과 그들이 선출한 관리들이 통제하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선출하지 않은 외국의 관료들과 그들에 의해 낙점받은 관료들에
의존토록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NGO는 지역의 사회복지를 확보하기 위한 국민들의 관심과 투쟁을
국가예산으로부터 자력갱생(self-exploitation 자기개발)의
문제로 전환시킨다. 이를 통하여 신자유주의자들은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국가기금을 민간은행의 악성부채의 해소에
지원해주며 수출업자들에 대부해 준다. 자력갱생(자립)이
의미하는 바는 근로대중은 국가에 세금을 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는 점에 더하여, 부르주아지가
국가로부터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사회복지를 획득하기 위해서
한계수준의 자원으로 추가적인 노동을 해야 하고 나머지 여력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민간의 자발적
활동’을 주장하는 NGO 이데올로기는 ‘공공성’(즉, 정부는
시민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생활, 자유, 행복추구권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고. 또 국가의 정치적 책임은 시민들의
안녕이 기본이라는 사고)을 파괴한다. 이러한 공적 책임성에
관한 사고에 반대하여, NGO는 사회문제들에 대해 민간에 책임이
있으며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민간 자원들이 중요하다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조장한다. 요컨대 NGO는 한편으로
빈곤층으로 하여금 부유층에 복무하는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재정을 위해 계속해서 세금을 내도록 하며,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필요를 돌보기 위해서는 자력갱생만을 부여함으로써
빈곤층에 이중부담을 제공한다.
NGO와 사회‧정치적 운동
NGO는 운동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본적 생산수단과 부를 통제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한계적
상황에서 생산하도록 사람들을 “동원한다”. 또한 그들은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규정하는 구조적 조건들에 관해서가
아니라, 프로젝트에 대한 기술적, 재정적 지원에 초점을 둔다.
NGO는 “민중권력”, “권력부여”(empowerment), “남녀
평등”, “지속가능한 발전”, “밑으로부터의 지도력” 등 좌파
언어를 제멋대로 차용한다. 문제는 이 언어들이 실천활동을
비대립적인 활동에 종속시키는 자금지원자들과 정부기관들과의
협력이라는 구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NGO활동이 지역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권력부여”라는 것도
신자유주의적 국가와 거시경제가 허용하는 제한된 범위하에서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사회생활의 작은 범위 이상으로는 결코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NGO와 그들의 탈맑스주의적 전문직 참모들은 빈곤층, 여성
그리고 인종적으로 배제된 층에 대한 영향력을 사이에 두고
사회-정치운동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한다.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실천은 빈곤의 근원과 해결책에 대한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린다(위쪽과 바깥쪽 대신에 아래쪽과 안쪽을 주시함으로써).
해결책으로서 해외은행으로부터 자행되는 착취 근절에 대해서가
아니라 소규모사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문제가 해외로의
소득이전이 아니라 개인적인 진취성 여부라는 사고에 근거하고
있다. NGO의 원조는 소수에게만 그 혜택이 미칠 뿐만 아니라,
부족한 자원에 대해 공동체들간의 경쟁을 야기하고, 잠재적인
차별을 일으키고 공동체를 온통 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음으로써, 계급연대를 파괴한다. 이러한 상황은
전문가들(professionals)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각
활동가들은 해외기금들을 구걸하기 적당하도록 자신의 NGO를
구성한다. 그들은 말로는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해외 자금지원자들의 구미에 맞는 제안들을
제시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 순전한 결과는 NGO가난한 공동체들로 하여금 그들을
괴롭히는 더 근본적인 사회적 원인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
체제에 반대하는 투쟁에 단결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분화시키고
파편화 시키는 NGO의 확산이다. 또한 최근의 경험은, 외국의
자금 지원자들이 “위기상황”주어진 상황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도전들동안에 프로젝트에 지원함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그런 운동이 약해지면, 그들은 NGO 프로젝트를
신자유주의적 의제에 적합하게 할 목적으로 자금지원을 NGO식의
“협력”적 성격의 운동에 옮긴다. 사회변화를 위한
사회조직보다는 “자유시장’에 어울리는 경제개발이 자금 제공
의제에서 제일 항목이 된다.
“정치에 무관심한” 그리고 자력갱생에 집중하는 NGO의 구조와
성격은 빈곤층을 탈정치화시키고 해체한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정당들과 대중매체에 의해 조성된 선거과정을 공고히 한다.
제국주의 본질,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계급적 기초, 수출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간의 계급투쟁에 관한 정치교육은 회피된다.
대신에 NGO는, “배제”, “권력으로부터 소외”, “극단적
빈곤”, “남녀 또는 인종차별”, 등등을 논할 때, 피상적인
증상을 넘어서서 그러한 환경들을 만들어낸 사회체제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NGO는 순수하게 ‘민간의 자발적 활동’을
통하여 신자유주의적 경제 내부로 빈곤층을 포섭함으로써,
연대와 사회활동이 이제 국제적 및 국내 권력구조에 보수적
순응의 외피를 쓰는 정치적 세계를 창출한다.
NGO가 특정한 지역들에서 우세해짐에 따라, 독자적인 계급 정치
활동이 쇠퇴하고 신자유주의가 도전받지 않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점은 NGO가 성장한 것과 신자유주의의 하에
자금지원이 증대한 것 그리고 도처에서 빈곤이 심화된 것이
일치한다는 점이다. 많은 지역적 성공사례들에 대한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전반적인 권력은 도전받고
있지 않으며, NGO는 권력의 틈새에서 점점 더 많은 거처를 찾고
있다.
대안을 정식화하는 문제는 또 다른 경로에서 방해를 받았다.
이전에는 게릴라 운동과 사회운동, 노조 및 대중적
여성조직들에서 활동했던 많은 지도자들이 NGO에 영입되었다.
일부는 환상에 불과한 희망에 끌렸음에 틀림없다. 즉 NGO에
들어가면 뭔가 좋은 일을 가능케 하는 권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끌렸다. 그러나 사정이 어떻든 간 제안은
군침도는 것이었다. 즉 더 높은 보수(때때로 국제적 교환 가능
통화로), 명성과 외국 자금지원자들의 인정, 국제회의와 국제적
네트워크, 사무보조 직원, 그리고 탄압으로부터의 상대적 안전성
등이 그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사회정치운동은 물질적
혜택을 거의 제공하지 못하지만 보다 큰 존경과 독자성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정치 및 경제 체제에 도전할 자유를 제공해
준다. NGO와 그들의 해외 은행지원자들(미주개발은행(IADB),
세계은행)은, 소규모 사업들과 다른 자력갱생 프로젝트의
성공스토리들만을 대서특필하는 회보들을 발행한다. 그 회보는
멕시코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마찬가지로, 대중소비가
줄어들고 저가 수입품이 시장에 범람하고 이자율이 급상승함에
따른 높은 실패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한 “성공”이라는 것도 전체 빈곤층 중에 단지 일부에만
영향을 끼칠뿐이며, 그 시장에서 다른 이들을 배제하는 한에서의
성공일 뿐이다. 그러나, 개별적인 소규모 사업의 성공은
신자유주의가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환상을 조장하는 중요한 선전
기제다. 소규모 사업이 조성되고 있는 지역에서 대중들이 빈번히
폭력적으로 저항을 분출한다는 것을 볼 때, 그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며, NGO는 여전히 독립적인
계급운동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NGO는 새로운 유형의 문화적, 경제적 식민주의와
종속을 조장한다. 프로젝트들은 제국주의 중심부 국가과 그들의
기구들의 지침과 그들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입안되거나
최소한 그에 입각하여 승인된다. 그 프로그램들은 공동체들에게
“판매”되고 집행된다. 이에 대한 평가는 제국주의의 기구들에
의해, 그리고 그 기구들을 위해서 행해졌다. 자금 지원의
우선순위가 변경되면, 즉 나쁜 평가를 받게 되면, 해당 집단,
공동체, 농장, 그리고 협동조합(co-operatives)들은 냉대를
받게된다. 모든 일들과 모든 사람들이 점점 더 자금 지원자와
프로젝트 평가자들의 요구에 따르도록 훈육된다. 새로 부임한
감독관들은 기금의 사용뿐만 아니라 기부자의 목표, 가치,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부응하는지를 감독하고 보증한다.
성공사례들이 발생한 지역은 지속적으로 외부의 지원에 막대하게
의존하고 있는데, 만일 그 지원이 사라지면 그 지역은 다시
몰락할 수 도 있다.
많은 면에서 “원조”와 “훈육”의 전달 형태와 위계적 구조는
19세기의 자선단체를 닮았으며, 그 조성자들은 기독교
선교사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NGO는 국민이 국가에 대해
의존하는 것과 국가가 국민들에게 온정주의적 정책을 사용하는
것을 공격하면서, “자력갱생”을 강조한다. NGO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대해서, 유럽과
미국의 NGO들로부터 상당한 지원금을 받는다. 자력갱생
이데올로기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자원봉사자와 임시 계약하의
출세지향적 전문가들로 대체할 것을 강조한다. NGO 지식인들의
기본적인 철학은 “연대”를 협력으로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거시경제에 대한 종속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부유층계급의 통제아래 있는 국유자산에서
빈곤층의 자력갱생으로 돌린다. 그리고 이것은 부유한 계급들의
국가 자원들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에 천착하도록 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NGO들이 신자유주의의 도구로서 역할하고 있는
동안에도, 반제국주의적이고 계급적 정치를 지지하는 대안적
전략을 발전시키고자 시도하는 소수의 NGO도 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세계은행, 혹은 유럽과 미국 정부의 대행기관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지 않는다. 그들은 지역권력을 국가권력 쟁취를
위한 투쟁과 연결시키는 노력을 지지한다. 그들은
지역프로젝트를 대토지를 점거하고 다국적 기업에 맞서
공공소유와 국가소유를 방어하는 전국적 사회․정치적
운동과 연결시킨다. 그들은 토지를 몰수하는 투쟁과 관련된
사회운동에 정치적 연대를 보낸다. 그들은 계급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의 투쟁을 지원한다. 그들은 지역적이고 직접적인
투쟁들을 규정함에 있어서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지역 조직들은 전국적 수준에서 싸워야 하며 전국적
지도자들은 지역 활동가들에게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몇 가지 사례들
특정 국가에서 NGO의 역할과 그것이 신자유주의 및 제국주의와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볼리비아
볼리비아 정부는 1985년에 법령으로 신경제정책(NEP)의 기치를
내걸었다. 즉 인플레이션이 연간 15,000%에 상승하는 동안에
임금을 4개월 동안 동결시켰다. NEP는 모든 가격통제를
폐기하였고 식량과 연료 보조금을 삭감하거나 종결시켰다. 또한
신경제정책은 대부분의 국영기업을 민영화시키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보건과 교육
프로그램 재정의 엄청난 삭감으로 인해 대부분의 공적 서비스는
중단되었다. 이러한 구조조정정책(SAP)은 세계은행과 IMF에 의해
설계되고 지휘받았으며, 미국과 유럽의 정부 및 은행들에 의해
승인 받았다. 가난에 허덕이는 볼리비아인의 수는 기하학적으로
증가했다. 파업일수가 길어졌고 폭력적인 대치상황이 뒤따랐다.
세계은행과 유럽, 미국 정부는 대응책으로
“빈곤경감프로그램”에 막대한 자금지원을 하였다. 자금의
대부분은 볼리비아 정부기관인 긴급사회기금(Emergency Social
Fund)에 돌려졌는데, 그 기관은 자신의 프로그램을 수행시킬
목적으로 이 자금을 NGO에 제공했다. 그 자금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1990년에 외국 원조는 총 7억 3천8백만 달러에
달했다.
볼리비아의 NGO는 국제적인 자금지원 덕분에 그 수가 급속히
증가했다. 1980년 이전에는 100여개의 NGO가 있었는데
1992년까지 530개에 달했으며 그 수는 증가하고 있다. 거의 모든
NGO가 세계은행과 볼리비아 정부의 자유시장정책 때문에 야기된
사회문제를 처리하는 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
문제들은 해체상태의 국가기구가 더 이상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NGO에 할당된 수천만 달러 중에 단지 15~20%만이
빈곤층에게 전달되었다. 나머지는 행정비용과 NGO의
전문가들(professionals)의 급여로 지출되었다. 볼리비아의
NGO는 국가 부속기구로 기능하였으며 그 권력을 강화하는데
일조하였다. 빈곤의 절대수준은 변함이 없었으나, NGO는
장기적이고 구조적 원인신자유주의 정책을 약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NGO의 의해 수행된 빈곤프로그램은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대신에, 체제를 강화시키고 구조조정정책에 대한
반대는 약화시켰다. NGO는 막대한 재정으로 취약집단을
이용하였으며 야당의 일부 지도자들에게 정부와 같이 일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한 옵저버는
“빈곤프로그램”에서 NGO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설사 NGO의 빈곤프로그램이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정부와 정부 프로그램에 대한 잠재적인 반대를
감소시켰다.”
La Paz의 공립학교 교사들이 월 50달러 임금과 과밀학급에
항의하여 파업에 돌입하였을 때, NGO는 이를 무시해 버렸다.
또한 농촌에서 콜레라와 황열병이 창궐했을 때, 포괄적인
공공보건 프로그램이라면 전염병을 성공적으로 예방할 수
있었겠지만 NGO의 자력갱생 프로그램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NGO는 이전의 볼리비아 좌파 지식인들을 대거 영입해서 그들을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변호론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시민사회”와 “세계화”에 관한 토론회를 통해서 최악의
착취자들(민간광산소유자, 새로이 부자가 된 농산물 수출업자,
높은 보수를 받는 컨설턴트들)이 “시민사회”의 성원이며
구조조정정책은 국가의 광산자원을 통제받지 않고 약탈하기 위한
제국주의의 계획이라는 사실을 은폐하였다.
칠레
1973~1989년 사이 피노체트 독재하의 칠레에서, NGO는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준비하고, 무료급식소와 기타 빈곤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항거했던 1982년과
1986년 사이의 대규모 대중투쟁의 출현과 함께 NGO의 수는
배가되었다. 그들이 표현한 한해서 평가한다면,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와 “형평성을 갖춘 발전”을
지향했었다. 거의 200개에 이르는 NGO 중에서 채 다섯 개도 되지
않는 NGO만이 미제국주의와 독재권력사이의 관계 그리고
자유시장정책을 재정지원했던 세계은행과 47% 수준의 빈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비판적 분석과 설명을 제공했다.
1986년 6월에 성공적인 총파업이 일어났으며, 그 와중에 한
게릴라 집단은 피노체트의 암살에 거의 성공할 뻔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은 피노체트와 야당내의 보다 보수적인
진영간에 선거를 통한 정권이양을 중재해 줄
하원의원(Gelbard)을 파견했다. 선거 일정이 확정되고,
국민투표가 계획되었으며, 선거 정당들이 다시 등장하였다.
기독교민주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사이에 연합이 형성되었고 ,결국
국민투표에서 승리함으로써 피노체트의 통치를
종식시켰다(하지만 군대와 비밀경찰에 대한 명령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연합은 이어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독재정권를 종식시킬 때 중대한 역할을 했던 사회운동은
주변화되었다. NGO는 사회운동들을 지원하는 역할에서 정부와의
협력으로 전환하였다. 사회당과 기민당 계열의 NGO 전문가들은
정부의 각료로 입각했다. 그들은 피노체트의 자유시장정책의
비판자에서 그 찬양자로 전향하였다. CIEPLAN(주요연구소의
하나) 전 소장이었던 Alejandro Foxley는 공개적으로
거시경제지표를 피노체트치하의 각료가 했던 동일한 방식으로
관리할 것을 약속했다. 외국의 자금지원자들은 NGO에게 독립적인
풀뿌리 운동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새로운 시민적 신자유주의
체제와 협력할 것을 지시하였다. 가장 잘 알려진 NGO 중의
하나인 Sur Professionals는 빈민가의 “폭력성향”에 대한
연구-독자적인사회운동을 억압하는 경찰과 새 정권에 유용했던
정보를 실시했다. 수석 연구자중의 두 명(전공: 사회운동)은
정부각료가 되었으며, 최근의 칠레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소득불균형을 야기한 경제정책을 집행하였다.
NGO의 외부연계와 NGO지도자들의 전문가적 야망은 막 싹트기
시작하는 대중운동을 파괴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부분의 NGO지도자들은 일반대중들의 지역모임을 파괴시키면서
지역 지도자들을 포섭하는 정부관리가 되었던 것이다. 빈민가인
Lo Hermida에서 활동중인 여성들은 인터뷰를 통해서 선거 이후의
시기에 변화된 상황을 폭로하였다. “NGO들은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도래했기 때문에 더 이상 (무료급식소)프로그램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여러분에게 우리가 더 이상
필요없다고.” NGO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민주적”
자유시장체제를 지원하는 데 제한했다. NGO 활동가들은 집권당을
위해 표를 끌어 모으려고 참여에 관한 미사여구를 늘어놓고 또
정부와의 계약을 따냈다.
칠레에서 NGO에 대한 가장 놀랄 만한 충격은 “여성운동”과의
관계이다. 1980년대 중반에 활동을 시작한 한 유망한 활동가
집단은 잘 치장된 사무실에서 값비싼 회보를 발간하는 NGO들에
의해 인수되었다. 상류층이 사는 동네에 거주하는
“지도자들”은 점차 줄어드는 여성들을 대표했다. 1997년
칠레에서 라틴 아메리카 페미니스트 대회가 열리는 동안,
일반대중 칠레의 페미니스트(“자율주의자”)로 구성된 한
전투적 집단은 NGO를 정부 보조금에 팔린 배신자라는 급진적인
비판을 가하였다.
브라질
브리질에서 가장 역동적인 사회운동은 땅없는 농촌 노동자
운동(MST)이다. 5천명 이상의 조직가들과 수십만 명의
동조자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하고 있는 MST는 지난 수년에
걸쳐서 수 백여 건의 토지점거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왔다.
필자도 참여한 1996년 5월 MST의 회의에서 토론주제 중의 하나로
NGO의 역할이 거론되었다. 네덜란드 NGO의 한 대표자가 단상에
나와 참여를 주장하였다. 그는 회의가 끝났다는 말을 듣고서,
그들에게 자신이 지역개발에 자금조달(30만 달러)을 위한
“제안서”를 가지고 있으니 참여를 주장했다. 명확한 어조로
MST 지도자들은 자신들은 매수되지 않을 것이며, MST는 반드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계획”을 세울 것이며 NGO
후견인들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이후에 MST의 여성회의는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페미니스트
NGO와의 최근 회의에 대해 논의했다. MST 여성들은
직접행동(토지점거)과 농업개혁을 위한 투쟁을 남녀평등의
문제와 결합시킴으로써 계급투쟁 관점을 밀고 나아갔다. NGO
활동가들은 MST 여성들이 그들의 조직과 관계를 끊어야 하며
엄격한 페미니스트 개혁인 최소강령(minimalist program)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궁극적인 결과는 가정폭력에
반대하고, 여성들을 호주로 등록시키고 남녀평등을 촉진하는
수준의 전술적인 협약을 맺는 것으로 끝났다. 대부분이 땅을
소유하지 못한 농민들의 딸인 MST 여성들은 NGO 활동가들을 전체
농민들을 억압하는 정치 및 경제부문의 엘리트들에 도전하고
싶어하지 않는 분열을 조장하는 출세제일주의자로 이해하였다.
그들은 남성동료들에 대해 비판적임에도 불구하고, 계급협력적인
“페미니스트” NGO들보다는 확실히 ‘운동’에 더 큰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의 토론과정에서 MST는 계급투쟁에 재정을 지원함으로써
운동에 기여하는 NGO와, 종교단체나 USAID와 세계은행이
후원하는 수많은 NGO 프로젝트 경우에서처럼 농민을 파편화하고
격리시키는 선교사 부대와 같은 NGO를 구별하였다.
엘 살바도르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전투적인 소농민들은 대다수 NGO의 역할과
정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특히 환심을 사기 위해
앞에서는 “대중의 권력부여”와 참여라는 미사여구 뒤에
펼쳐놓으면서도, 뒤로는 오만하고 거만한 그들의 태도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필자는 최근에 엘살바도르를 방문하는 동안 농민과
땅 없는 노동자들의 조직 26개를 대표하는 민주농민연맹(Alianza
Democratica Campesino, ADC)과의 세미나에 자리에서 우연히
이러한 사실을 직접 접하게 되었다.
우리의 공동작업 중 일부는 농민을 대상으로한 조사와 훈련센터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공동개발사업이 포함되어 있었다. ADC의
지도자들과 함께 우리는 캐나다 정부의 외국인 원조기관인
CIDA가 하청을 맡긴 민간 캐나다인 기관인 CRE SOGEMA를
방문했다. 그들은 엘살바도르를 대상으로 2천5백만
(캐나다)달러에 이르는 금액의 원조를 관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하기 전에 ADC 지도자중의 한 명은 CRE SGEMA의
엘살바도르인 담당자와 비공식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농민을 기반으로 하는 참여조사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계획과 그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 CRC SOGEMA 담당자는 종이 위에 사람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를 가리키며 “이것이
NGO이다. 즉 NGO는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작성하고
준비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 손과 발을 가리키며
“이것이 농민이다. 그들은 재료를 공급하고 계획을
실행한다”고 말했다.
이 의미심장한 일화는 CRC SOGEMA 대표와의 공식회의의 배경이
되었다. 대표는 우리에게 그 돈은 이미 엘살바도르의 NGO,
출세지향적 전문가들로 구성된 컨설팅업체 FUNDE(Foundacion
Nacional para el Desarrollo 전국개발기금)에 할당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농민 지도자들이 이 일에 협력하고 참여하도록
권유했는데, 왜냐하면 그녀에 따르면 그것이 “권력을 부여”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화중에 NGO(머리)와 농민(손과
발) 간의 관계에 대한 그 터무니없는 견해를 피력했던 CRC
SOGEMA의 담당자가 FUNDE와 CRC SOGEMA 사이의 “연결고리”임이
명백해졌다. ADC 지도자들은 FUNDE가 기술적으로 적당하지만 그
“방침”과 연구는 농민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며 농민에
대해 매우 가부장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답변했다. 캐나다인
대표가 하나의 예를 들라고 하자, ADC 지도자들은 앞서의
“정치적 그림” 사건과 그것이 시사하는 농민들의 종속적
역할에 대해 언급하였다.
SOGEMA 회장은 그것은 “매우 불행한 사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FUNDE와 같이 일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ADC가 영향력을 갖고자 한다면, FUNDE 회의에
참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DC 지도자들은, 중간계급의
전문가들은 그 사업의 계획과 목적을 정교하게 만들지만,
농민들은 단지 자료를 제공하고 그들의 “세미나”에 참석하는
수준의 협력을 하기 위하여 초청받는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갑자기 난처해지자 그 회장은 회합을 끝내자고 했다. 농민
지도자들은 격분했다. “왜 우리가 단 한 명의 농민도 대표하지
않는 NGO와 결부되어 있는 그들(캐나다 단체)이 농민의 참여와
민주주의와 그리고 그외의 헛소리에 관심있다는 말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 연구는 어떤 농민에게도 결코 읽혀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토지를 위한 우리의 투쟁과도 어떤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근대화“와 그들 소유의 토지로 부터 농민들을
몰아내기 위한 그리고 상업적인 농장이나 관광지역으로
변경시키기 위한 방법에 관한 것일 것이다.”
결론
NGO의 지도자들은 사업을 구상하는데 노련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체성”과 “세계주의”라는 새로운 미사여구를 대중운동
속으로 전파한다. 그들의 활동들과 텍스트는 국제간 협력,
자력갱생, 소규모 사업들을 장려하며, 국민들을 해외
자금지원자들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신자유주의자들과 이데올로기적인 유대를 형성하도록 한다.
NGO소속 전문가들의 10년간 활동은 여성들, 지역들, 그리고
청년조직들을 포함한 사회 생활 전반을 “비정치화”시키고
탈급진화하도록 만들었다. NGO가 확고히 정착하게 된 페루와
칠레에서는 급진적 사회운동은 쇠퇴하였다.
당면한 쟁점에 관한 지역적 투쟁은 새로 출현하는 운동을
성장시키는 식량이자 소재이다. NGO는 확실히 “지역”을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적 활동이 어떤 방향성을
설정하느냐이다. 즉 사회체계에 대하여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국가와 그를 지원하는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타
지역세력과 연계할 것인지, 아니면 외국의 자금지원자들에
기대를 걸면서 그들의 보조금을 애원하는 경쟁속에서 분열할
것인지 여부가 중요한 문제다. NGO의 이데올로기는 후자를
조장하고 있다.
NGO 지식인들은 빈번히 “협력”에 관해서 글을 쓰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와 외국의 자금조달기관과의 협력을 할 경우의
치뤄야 할 대가와 협력이 가능한 조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매개자 그리고 중개인으로서 외국으로부터
지원자금을 따오고 그 자금을 자금지원자 및 지역의 수혜자
모두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계획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그들은 “기금을 관리하는 기업인”으로서 얼마 전에
있었던 “노동계약자”(enganchadores)가 연출한 것과 유사한
새로운 유형의 정치에 관여한다. 다시 말해 여성들을 모아서
교육받도록 하거나 대기업과 싼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는
수출업자에 하청을 받는 소규모 기업들을 설립한다. NGO의
새로운 정치는 본질적으로 매판의 정치이다. 즉 매판은 해당
국가의 생산물을 생산하지 않고 그 대신 신자유주의 체제가
지속될 수 있도록 외국 자금지원자와 지역 노동력(자력갱생적인
소규모 사업들)을 연결시켜준다. NGO 지도자들의 사업계획과
직업훈련 워크숍은 근본적으로 노동자와 농민의 소득을
향상시키는데 어떤 중대한 경제적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볼 때, 그들은 정치적 배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은 민중들을 계급투쟁에서 자신들을 억압하는 자들과
협력으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그들의 접근방식 합리화하기 위해서 NGO 이데올로기는
혁명적 좌파의 몰락, 동구에서의 자본주의의 승리, “맑스주의의
위기”, 대안 상실, 강력한 미국, 군대에 의한 쿠데타와 탄압
등을 거론하면서 종종 “실용주의” 혹은 “현실주의”를
불러들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개량주의”(possibilism)는
세계은행과 구조조정이 강요한 자유시장의 틈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점을 확신시키며, 정치를 군대에 의해 강요된 선거기제로
제한하는 데 사용되었다.
NGO 이데올로기 주창자들의 비관적인 “현실적 개량주의”는
필연적으로 일면적인 이데올로기다.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측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에 관심의 초점을 두고 있을
뿐, 선거 후의 대중적 항의와 의회를 넘어서는 활동에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총파업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80년대 후반의 공산주의의 몰락만을 주목할 뿐, 90년대 중반의
급진적 사회운동의 부활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거
정치인에 대한 군부의 압박에 대해서는 기술하면서도,
사파티스타 게릴라, 카라카스의 도시반란, 볼리비아에서의
총파업에 의한 군부에 대한 도전은 기술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실적 개량주의자들은 부문별 혹은 지역 수주의
투쟁이 처음에는 군부가 부여한 선거기제 내에서 시작되었으나,
그들이 더 이상 민중의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직면하여 그 투쟁들이 이제는 선거라는 한계를
넘어서 급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NGO의 실용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극단주의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90년대를 돌아 볼 때, 신자유주의의 정책은 위기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미명하에 많은 이윤이 창출되는 투자와 투기의
기회를 외국 은행과 다국적기업들에 양도하도록 계획되었다. 즉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 그리고
저임금과 빈약한 사회보장 지출, 더 높은 세금 감면, 그리고
노동을 보호하는 모든 법률의 제거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 라틴
아메리카의 계급구조는 어느 때 보다 경직되어 있으며,
국가기구는 이전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지배계급과 결부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NGO들의 전망보다는
맑스주의적 사회패러다임에 훨씬 가까운 양극화된 계급구조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맑스주의가 NGO주의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제공해주는 이유이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는 동일한 정치적
성과를 얻고자 전념하면서, 투쟁하는 사회운동을 지지하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맑스주의 지식인들이 정말로 존재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운동의 일부분이 되는 “유기적” 지식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연구소, 학술 토론회, 해외재단, 국제회의 그리고
관료주의적 보고서 틀어박혀 있는 “포스트 맑스주의” NGO
지식인들과는 대조적으로 계급투쟁을 대상으로 하는 분석과
교육을 제공한다. 이러한 맑스주의 지식인들은 지역투쟁의
중심성을 인정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투쟁이 성공여부는
전국적 수준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계급간 투쟁의 결과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협력하거나 외국인 원조를
받는 위계적 “연대”가 아니라 계급연대, 그리고 국내외의
착취자들에 대항하는 억압받는 집단(여성과 유색인종)의 계급
내에서의 연대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계급을 분열시키고
잠시동안 소수의 집단들을 달래는 자금지원이 아니라 집단적인
향상을 위하여 공통적인 경제적 곤란을 공유하는 동일한 계급의
성원들에 의한 공동행동을 강조한다.
비판적 맑스주의 지식인들의 힘은 그들의 사상이 변화하는
사회적 현실에 조응한다는 사실에 있다. 계급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폭력적 대결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래서 맑스주의자가 제도적 차원에서는 수적으로는
적지만, 멕시코의 사파티스타에서부터 브라질의 MST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세대의 혁명적 투사들과 결합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강력하다. 한/노/정/연
번역: 김두환 해외저널리뷰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