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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 어디로 가는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53호
정은교


정 은 교
진보교육연구소 소장

이렇게 본다
교육개혁, 어디로 가는가










1. 지난해 가을부터 한동안, 이른바 ‘학교 붕괴’를 둘러싸고 교육계에서 입방아가 시끄러웠다. 원래는 몇 년 전 일본에서 들먹거린 ‘교실 붕괴’라는 말을, 우리에게도 그 비슷한 조짐이 있지 않으냐 하여, 몇몇이 우리네 학교 현실을 진단하는 용어로 내세운 것이다. 일본에서는 ‘교실 붕괴’를 “학교의 일상 생활이나 학습 기능이 성립되지 못하는 상황” 또는 “학생들이 담임에 대한 불신이나 반항을 보이려고 수업중에 일어서서 교실 안을 쏘다니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벌여 수업 질서를 무너뜨리는 상황”으로 정의한다.
우리네 학교가 일본의 ‘교실 붕괴’와 꼭 닮은꼴의 현상을 보이는지는 분명치 않다. 지난해 한 텔레비전에서는 교실이 난장판 되있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도하여서 뭇 백성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뒷얘기를 들어보니 카메라쟁이들이 ‘선정적인 화면’을 담으려고 장난을 좀 부렸다더군. “아아악, 무너지고(=붕괴되고) 있어요옷!”하는 패닉(심리적 공황 상태)의 느낌을 선연히 자아내는 그런 장면들이 모든 학교에서 늘 벌어지고 있으리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이는 참 순진한 생각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큰 말썽 피우지 않고, 학교 생활을 그럭저럭(!) 받아들인다. 그러니 까닭모를 불안감마저 자아내는 ‘붕괴’라는 낱말이, 우리네 교육현실을 밝히는 데 과연 온당한 용어인지 의심하는 것은 충분히 타당하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그럭저럭’ 학교를 견디며 살아간다 하여, ‘그만하면 됐다!’고 안심하는 분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분들의 놀라운 무신경에 혀를 찰 수밖에 없다. 그런 분들이 어디 계시냐고? 어디긴, 학교와 교육청, 교육부에 앉아 계시지. 교장, 교감, 장학사 따위 중간관료 나리들! 그분들의 오래오래 잠들어 있는 신경세포를 꼬집어 깨우는 데는 ‘붕괴’라는 말이 꽤 쓸모가 있기도 하지.
대다수 학생들은 학교를 견디며 산다. ‘공부는 해야 하는 것’이라 웬만큼들 새기고 있으니 입시대비 주입식 공부라도 그럭저럭 맞춰 가고, 학교 문화가 메마르다 하나 끼리끼리 또래랑 어울리는 즐거움이 있으니 뒷골목을 헤매는 대신에 학교로 놀러 간다. 그뿐. 견디는 것뿐이다. 한편으로, 군데군데 학교에서 수업 질서가 무너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더 들여다보면, 수업연구 억척스레 벌여 아이들과 맹렬하게 호흡 맞추는 몇몇 헌신적인 교사들 빼고는, 공부를 지겨워하는 아이들을 끌고 1년을 살아가느라 다들 갈수록 힘들어한다. 특히 실업계 고교로 눈 돌릴라 치면 ‘붕괴’라는 말도 썩 어울릴 만큼 ‘학교의 실패’가 확연히 드러난다. ‘붕괴’는 아니라 해도, ‘학교의 위기’ 현상이 깊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교사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너나없이 털어놓는 얘기다.


2. 왜 ‘일탈’이 늘고 있는가? ‘학교붕괴’ 이바구 마당에 자주 나섰던 페미니스트 조한혜정 교수(연세대)는 그 원인을 세 가지쯤으로 꼽는다. 첫째, 어느 나라든 (제도교육을 포함한) 근대적 기획이 몽땅 실패했다. 둘째, 식민지 교육관료제가 뿌리내려 한국의 국가관료체제가 파행으로 자라 왔다. 셋째, 김대중 정권이 펼친 비현실적 교육개혁이 그나마 ‘통제’ 가능했던 교실 상황을 붕괴의 지경에 이르게 했다.(→형식에만 치우친 ‘열린교육’이 아이들의 방종함을 더러 부추겼다. 이해찬 장관이 촌지와 체벌 척결을 교육개혁의 주된 과녁으로 내세우면서, 교사집단의 권위를 짓눌렀다.)
조한혜정은 이 셋 중에, 첫째의 ‘근대 기획의 총체적 실패’에 방점을 찍는다. 소비가 중심이 되는 ‘후기 근대’ 사회로 접어들었기에 아이들은 획일적인 ‘대량생산 체제’에 맞춰 만들어진 학교를 참을 수 없어 한단다. 학업을 통한 계층 이동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학교가 베풀어주는 지식은 보잘 것 없다. 학교가 송두리째 거듭나야 하건만, 옛 권위적 학교의 상(像)에 얽매여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교육계에) 많아서 개혁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단다.
꽤 그럴싸한 진단이다만 개혁의 우선 순위를 어떻게 매기느냐는 초점 설정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 진단이 무척 소박하지 않으냐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변화를 꺼리는 소심한 교사층’이 최대의 걸림돌인가? 그들을 설득하고 계몽하는 것이 눈앞의 화급한 과제인가? 전선(戰線)을 그렇게 한가롭게, 또 두리뭉실하게 칠 일인가?


3. 교육개혁은 YS때부터 시작되었지. ‘세계화/정보화’를 맞아 규제에서 자율로! 공급자(국가+교사) 중심에서 소비자(학생+학부모) 중심으로! 다양성과 창의성을 높여라! 질 높은 교육으로 국제경쟁력을 키우자! 관청 주변에 얼쩡거리며 명함 내밀 수 있는 교육전문가들 대다수가 이 개혁담론에 덩달아 장단 맞추었지. ‘근대기획의 실패’니, ‘차이를 존중하라’느니, 포스트모더니즘의 담론에 많이 젖어든 느낌을 주는 조한혜정이 이 담론에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지 궁금하다. ‘절반의 찬성+절반의 의심?’, 아니면 ‘비판적 지지?’ 자율과 다양성과 창의성은 좋은 가치이니까, 경쟁력 키우기는 불가피한 현실이니까 이 담론을 ‘대체로’ 지지하노라, 되뇌는 학자라면 그는 순진한 자유주의자다. 학교가 대량생산 체제의 공장 모델에서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귀담을 일이로되, ‘정보사회’니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가 왔느니 그래서 지금의 학교가 낡아졌느니 하는 얘기는 ‘자본주의 찬미론’에 장단 맞추는 발언이다. 그는 “교사들이여, 아이들의 변화에 따라가도록 애쓰세요!”하고 계몽하는 데에 가장 강조점을 두거니와, 지금 더 시급한 것은 문화적 계몽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관계의 변화 아닐까? 학생복지를 성큼 높이고, 교사 집단의 주체성을 한껏 살려 내는 변화가!


4. 지난 5년간 학교는 밤낮 야단법석이었다. ‘열린 교육’을 벌입네, ‘방과후 교육활동’으로 과외를 줄입네, ‘학교생활기록부’ 만들어 학교 정상화합네, ‘수준별 이동수업’ 어쩌구,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교단선진화/학교정보화를 추진합네… 앞으론? 학생(→고교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려면 선택과목을 늘려야하고, 그러려면 교원조직을 유연화해야지(→정규교사 축소)! 학교선택권을 마련하려면 ‘고교평준화의 틀’을 깨야지. 교육재정 모자랍네, GNP 5~6%까지 올려주소, 볼멘 소리만 되뇌지 말고 ‘민간 자본’을 학교에 끌어들일(=민영화할) 꾀를 써야제! 이 모든 변화가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정당화된다!
교육개혁은 대체로 성공하고 있는가? 이미 2년 전에 조사한 설문에서 교사들 절대 다수가 고개를 외로 꼬았다. 무엇이든 시늉뿐이요, 아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개혁은 거의 없었으니 ‘교실 상황의 악화’만 부추겼지. 앞으로 야심차게(?) 들여올 ‘7차 교육과정’이 ‘속 빈 강정’에 그치리라는 것은 현정권의 교육개혁 잘되기를 오매불망 전전반측 하염없이 학수고대하는 친정부 인물들도 다 씁쓸하게 예상하는 얘기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발-뼝(病) 나듯이, 교사를 대접하고, 학생 복지를 챙겨줄 능력도, 뜻도 없는 보수 정권이 그저 ‘경쟁에서 살아남자!’ 염불만 되뇐들 저희 원하는 것 야무지게 이룰 턱이 있는가.
최근의 한겨레신문을 들추니, 새로 교육부 장관이 들어왔건만(→문용린씨) 교육개혁은 되려 실종해 버린 것 아니냐며 걱정이 태산같다. 국방부보다 2조원 많은 20조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는데, ‘교육부총리’로 승격까지 한다는데… 무슨 신임 장관을 탓하는가. 지난해 김덕중씨때에 이미 ‘개혁’은 완전 깨끗이 날아갔거늘. YS, DJ때의 조치 중에 그나마 ‘개혁’이랄 만한 ‘학교 운영위원회’ 설치도 사립학교쪽으로 넘어가니 증발돼 버렸다(→‘자문기구’로 격하됨). 사학재단의 권력을 챙겨주는 문제에 맞닥뜨리면 ‘교육수요자의 발언권을 높여 줍네’ 하는 명분도 슬며시 꼬리를 감춘다. 지난해 현정권은 전교조 합법화에 마지못해 도장은 찍었다만, 교섭테이블에서는 완강히 도리질로 일관했다. 교사집단을 ‘파트너’로 맞을 생각은 털끝도 없는데, 보수-수구(守舊) 정권의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내는데, 현 정권 아래서 무슨 ‘개핵’꿈을 꾸는가?
문용린씨는 한술 더 뜬단다. 그동안 민주화의 열매로 기껏 이뤄 놓은 ‘국/공립대 총장 직선제’를 되물리려고 슬금슬금 딴지를 거는가 하면, 몇몇 명문대가 ‘고교 등급화 방침’을 들먹이는데도 꿀먹은 벙어리다. 그런 서열화 장난이 고개를 들면 ‘2002 대입 무시험 전형’이니 뭐니 다 우스운 꼴 되는데 말이다. 얼마 전에는 모든 학교, 전체 교사들이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을 ‘반드시’ 실시하라고 서슬 퍼렇게 호령이다. 호령 한 소리 지르면 학교 안의 졸개(?)들이 저희 앞에 바짝- 대령하리라 믿는 모양이다.
지난해말 (기습적으로!) 발표된 ‘교직 종합발전방안’은 교사들 간에 경쟁을 다그치고 개개인을 쥐어짜서 뭔가를 얻어내려고 한다. 교장을 주축으로 ‘교원평가위원회’를 만들어 ‘부적격 교사’를 골라내겠다는 속셈이고, 수석교사(=새끼교감)를 학교마다 여럿 둬서(→전체 교원의 10%), 교사간에 승진 다툼을 채근하겠단다. 프랑스, 독일을 비롯해 대다수 나라들에선 이토록 유별나게 ‘경쟁 구조’에 집착하지 않건만, 한국의 지배세력은 악성 신자유주의 모델인 영국을 부득부득 본따려 한다.


5. 무엇이 먼저 개혁돼야 하는가? 관료들이 멋대로 휘두르던 권력부터 빼앗고 줄여야 한다. 끼리끼리 똘똘 뭉쳐 ‘장관 길들이기’마저 일삼는 이들 ‘교육마피아’ 집단이 끄떡없이 행세하는 한, 개혁은 으레 시늉으로 끝난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뻔뻔스런 흰소리, 닥치라 해라. “공급자들, 물러납니다!” 엉너리치지만 실제론 저희 권력 한사코 움켜쥐고 있다. 교육과정, 교과서­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자율권 변변히 못 누린 채 순종하기 바빴던 교사 집단을 ‘여론 몰이 과녁’으로 내모는 수작일 뿐. 학교에 위기가 왜 일어났는지, 왜 아이들이 학교를 지겨워하는지 알아 새길 안목이 이들에게 있는가? 7차 교육과정 만듭네, 나팔 요란하다만 아이들 눈높이를 헤아려 교육내용을 혁신하고 학습노동의 짐을 덜어줄 고민은 털끝도 없다. 그저 ‘선택권을 선물합네’ 씨알도 안 먹힐 경품(景品) 내걸기에 일없이 바쁘다. ‘수요자가 왕’이라고? 이들은 그 핑계로 사학재단과 짝짜꿍하기에 여념 없다. 작년말에 한 관료는 이들한테 떡값 입네, 몇천 만원 서랍 속에 받아챙겼다가 들켰다지?


6. ‘관치(官治)’의 폐해를 들먹이는 사람들 중에는 ‘그러니까 민간에게 다 넘겨라! 대학에 자율권을 주라!’고 부르짖는 사람이 많다. ‘민간!’ ‘자율!’ 내걸기만 하면 만사형통하는 줄 아는 갑다. 대학 누구에게? 교육자본과 기득권 교수세력에게? 경제학 공부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상당수의 사학재단, 즉 교육범죄자 집단을 응징하고 민주체제를 들여와야만 그네가 오매불망 그리는 학문/교육의 진짜 경쟁력이 생겨남을 잘 알 터. 비효율의 온상이 된 방만한 대학체제를 혁파하고, 입시과열을 낳는 대학 서열구조를 뜯어고치는 발본의 노력이 앞서지 않고서는 무슨 시러배 자율인들 하릴없다.


7. 저들은 ‘교원/교수 평가’니, ‘수석교사’, ‘학교선택’이니 꺼내들 카드는 다 꺼내 들었다. 저들 맘먹은 대로 다 밀고 가느냐, 저항에 맞닥뜨려 꼬리를 내리느냐 두 갈래 길만 남았다. 저들이야, ‘학생 선택권 보장’ 따위가 ‘빛좋은 개살구’로 그친다 해도 크게 낙심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학교가 속으로 곪아 들어간들, 관료와 학교 기득권층의 권력만 유지하고, 어떤 식으로든 교수/교사집단을 족쳐서 경쟁 분위기만 빚어내면 장땡일 터. 어찌 맞설꼬?
진보적인 교사집단과 교수, 대학생들이 연대전선을 펼쳐야 함은 당연한 노릇. 교사대중의 이해(利害)는 한 방향으로 통일해내기가 크게 어렵지 않다. 승진 욕심 부리는 일부 교사층이 ‘수석교사’꾐에 빠져들 수는 있어도, 학교를 경쟁 열풍으로 몰아넣는 저들의 구도에 대다수 교사는 혐오감을 보이고 있다. 대학은 어떤가? 초/중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저들이 애태우는 경쟁력을 위해서도 ‘대학 서열화 타파’를 필두로 한, 민중적 방향으로의 대학 구조개혁이 (초중등쪽보다) 시급하거늘, 대학교수 집단의 이해를 통일해내기는 훨씬 까다롭다. 인문↔이공계, 국립↔사립, 일류대↔이,삼류대, 서울↔지방… 뿔뿔이다. ‘두뇌한국21’에 맞서 진취적인 교수그룹이 대판 시위도 벌였다 하나, 기득권에 안주하는 교수층도 만만찮다. 대학의 민주적 구조개혁에 대학생 집단이 목소리 높여 나서야 한다. 80년대 학생운동의 다부진 에너지를 이들이 그 반의반이라도 살려 대학개혁 운동에 나서준다면, 진보적인 교수집단이 내거는 의제(…가령 국/공립대 통폐합안)에 힘을 실어준다면 구조개혁의 올바른 방향도 틀어쥘 수 있다. ‘수요자중심’이니 뭐니 해서, 눈앞의 이익만 챙길 것이 아니라, 대학이 바로 서게끔 통큰 의제(議題)를 내걸 줄 알아야, 고등/중등학교의 어린 후배들도 슬며시 본을 딴다…

­헌데, 대학가에서 들려 오는 소식은 고작해야 ‘등록금 올리지 말라’는 싸움 소식 뿐이라니!! 저들 각본에 따른 구조조정이 휘몰아치는 마당에 그런 한가로운 투정이나 벌이다니!! 한/노/정/연

2000-03-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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