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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적 신자유주의와 초국적 자본의 정부를 넘어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54호
손호철


         자료


손 호 철

부소장/ 서강대 교수, 정치외교학

종속적 신자유주의와 ‘초국적 자본의 정부’를 넘어서

­4?13총선과 김대중정부 2년 중간평가­








1. 여는 글


4․13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4․13총선은 김대중정부가 그동안 IMF 위기 극복을 위해 실시해온 ‘신자유주의적’1) 구조조정을 포함한 김대중정부의 지난 2년간의 국정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새로운 천년의 한국정치와 한국사회의 발전방향을 결정하는 선거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같은 의미와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 정치권은 우리 사회의 사활이 걸려 있는 이 같은 정책들은 외면한 채 예의 이전투구만을 반복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경우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부적격정치인들에 대한 낙천, 낙선운동을 벌려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나름대로 주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이 운동 역시 공천민주화와 같은 제도적 개혁 요구를 병행하지 않음으로서 보스들의 공천권을 강화해주는 부작용을 낳았고 공천탈락 부적격자들의 퇴출연합당의 출범등으로 혼선을 겪고 잇다. 특히 이같은 운동은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심판이라는 정책적 의제를 억압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한편 바로 이 문제를 전면에 나서 투쟁해 나가야 할 민중운동진영은 시민운동진영과 달리 무기력하게 4․13총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나마 다양한 민중, 사회단체들이 사회개혁. 민중생존권 쟁취. IMF 반대 범국민운동본부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기층민중조직의 상설공동투쟁체 건설을 위한 과도기적인 조직인 신자유주의반대. 민중생존권 쟁취 민중대회위원회를 구성하여 4. 13총선 투쟁등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전개해 나가기로 결정한 것은 다행스럽기 짝이 없다.

이 글은 이 같은 정세와 관련해 김대중정부의 2년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해보는 한편 이 같은 평가에 기초해 민중운동진영이 수행해 나가야할 4․13총선전략을 살펴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2. 김대중정부 2년의 중간평가

­‘정체된 민주개혁’과 ‘과감한 신자유주의적 개악’의 이중주


IMF위기가 2년이 되던 지난 해 말 김대중대통령은 2년만에 IMF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김대중정부 출범 2년이 지난 얼마전 주요 일간지에 실린 새천년민주당(옛 국민회의, 당명이 하도 자주 바뀌니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의 선거광고는 ‘국민의 정부’의 5대 성과라는 제목하에 김대중정부의 업적을 선전했다2). 5대 성과란 건국 이래 최저금리(한자리수 안정), 최저물가상승률(1999년 0.8%), 최고외환보유고(800억불), 주가회복(지수 3백대에서 9백으로), 실업감소(7.9%에서 4.3%로)이라고 이 광고는 선전하고 있다.

이 같은 평가에 따르면 김대중정부는 지난 2년간 역사에 길이 남을 자랑스러운 엄청난 업적을 국민들에게 선물한 셈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인식은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리고 현실 또한 이 같은 김대중정부의 자화자찬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모든 언론이 동원되어 호들갑을 떨며 그 업적을 미화했던 취임 1주년과 달리 취임 2주년의 경우 상대적으로 별 팡파레가 없이 조촐하게 지나간 것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김대중 정부 처음 1 년은 그런대로 외환위기 극복과 개혁의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서 쌍끌이로 상징되는 굴욕적인 한․일어업협정으로부터 옷로비 사건, 조폐공사파업유도 사건 등 국정혼란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다가온 총선에 위기의식을 느낀 김대중정권이 김대통령의 8․15선언을 계기로 국가보안법 개정의사 표명 등 개혁의 재가동에 나섰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3)

문제는 개혁의 속도가 아니라 개혁의 방향이다. 즉 김대중정부의 문제는 개혁의 속도가 미진하고 개혁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혁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개혁의 방향이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자본만능의 신자유주의, 그것도 초국적자본을 위한 반민족적인 종속적 신자유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개혁의 방향이  잘못되고 있는 바에는 차라리 개혁의 속도가 미흡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 다행스러운 일 인턴데 불행히도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한마디로 김대중 정부의 지난 2년간의 국정을 중간평가한다면,  “민주개혁의 정체와 이에 대비되는 과감한 신자유주의적 개혁”, 정확히 표현해 “과감한 신자유주의적 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김대중정부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민주개혁’은 개혁의지와 개혁능력의 결여로 인해 정체되어 있는 반면 반민주적, 반민중적, 반민족적인 (종속적) 신자유주의적 개악은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 마디로 김대중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아니라 ‘초국적 자본의 정부’가 되고 있다. 사태가 이러하기에, 김대통령의 오랜 지지자였던 한국정치의 세계적인 권위자 브루스 커밍스교수는 최근 한 글에서 김대통령을 “IMF 서울지부장(The IMF's man in Seoul)"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의 오랜 민주화운동과 시민사회의 성숙이 김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시민사회의 성숙이 워싱턴과 IMF가 한국을 정복하는 핵심적인 동력“이 되고 말았다고 탄식하고 있다.4) 사실 김대중 정부는 국내와 달리 해외, 특히 미국등 선진국에서는 ”IMF 우등생“ 등의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5)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그처럼 잘 대변해주는데 극찬을 하지 않을 수 길이 있겠는가?

그 결과, ‘국민의 정부’의 출범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구속자 등 양심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김대중정부는 인권대통령을 자칭하고 있으나 인권의 상징인 양심수문제와 관련해 국가보안법 구속자수는 취임 첫해를 기준으로 김영삼정권보다 무려 4배에 달해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리고 2년을 기준으로 할 때 역시, 국가보안법 구속자수는 취임 2년째에 김일성사망에 따른 조문파동으로 공안정국이 판을 치고 구속자가 줄을 이었던 김영삼정권의 처음 2년에 비해서도 36%가 많은 6백73명에 달하고 있다(아래 참조).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결과 또한 마찬가지다. 새천년민주당이 신문광고를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한 ‘국민의 정부의 5대 성과’의 이면에는 초국적자본의 한국경제 헐값 인수, 20대 80의 사회로의 사회적 양극화, 실업과 비정규직의 일상화의 고통이 도사리고 있다. 문제의 광고가 지면을 메우기 3일전 통계청은 충격적인 통계를 발표했다.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지난 99년 4/4분기에 0.324, 99년 평균 0.320을 기록함으로서 이를 산출하기 시작한 1979년 이후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6). 소위 ‘국민의 정부’아래에서의 경제적 불평등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정권 보다도 더 심각해 질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김대중정부가 자랑스럽게 내세운 ‘국민의 정부 5대 성과’의 뒤에 은폐된 ‘초국적자본의 정부 5대 업적(?)’­사상최고수준의 초국적자본의 국내경제 장악(주요산업의 1/4~1/3), 사상최고수준의 재벌집중(5대재벌 45%), 사상최고의 비정규노동자율(신규채용의 92%), 통계집계후 최고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지니계수 0.320), 사상최다빈민(1천만명 돌파)7)­에 주목해야 한다(표1 참조).


<표1> 김대중 정권 2년 평가의 핵심

         김대중정부 자체평가             민중진영 평가

         (‘국민의 정부 5대 성과’)             (‘초국적자본의 정부 5대 업적(?)’)

최고외환보유고(800억불)               최고수준의 외국자본 국제경제장악(주요산1/4--1/3)

건국이래 최저금리(한자리수 안정),      최고수준의 재벌집중(5대 재벌의 시장지배력 45%)

실업감소(7.9%에서 4.3%로)             사상최고의 비정규노동자율(신규채용의 92%)

최저물가상승율(99년 0.8%)             통계집계후 최고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지니계수 0.320)

주가회복(지수 3백대에서 9백으로)      사상최다빈민(1천만명 돌파)

물론 왜 이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는가는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한 또 다른 문제로서8)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난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면 우선 신자유주의적 개악의 경우 IMF 위기라는 객관적 조건에 기인한 점도 크지만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잘못된 맹신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개혁의 정체, 실종은 IMF 위기의 탓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물론 국가보안법처럼 한나라당, 자민련 등을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의 저항으로 민주개혁이 어려운 문제들도 있지만 이 경우 역시 김대중정부자신도 미온적인 개정이 기본입장으로서 개혁의지가 취약하기만 하다. 나아가 특검제 등의 민주개혁의 경우는 야당이 요구하고 있지만 김대중정부가 오히려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김대중정부 자신이 개혁의 걸림돌이다. 사당정치와 관련된 정당민주화 역시 김대중정부 자신이 개혁의지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것이 민주개혁 실종의 원인이다.

이제 이같은 총론적 평가에 기초해 정책영역별로 각론적인 평가를 해 볼 차례이다. 이 글에서는 김대중정부의 지난 2년의 국정을 백화점식으로 모든 분야별로 평가하기보다는 주요 분야를 중심으로 평가를 하고자 한다. 특히 정치, 통일,외교, 교육, 인권 등 주요분야9)들을 간략하게 평가한 뒤 김대중정부의 IMF 개혁의 중심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관련해 경제와 노동, 사회복지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정치, 인권


정치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개혁과정에서 국민들이 흘린 피와 눈물과는 대조적으로, 개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개혁의 사각지대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일반적 통념과 달리, 정치는 김대중정부의 2년에 대한 분야별 평가중 최소한 중간은 가는, 따라서 그리 성적이 나쁜 분야는 아니다. 이는 김대중정부가 정치개혁을 어느 정도는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이 잘 알고 있듯이, 정치개혁은 거희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의 정치분야는 전체적으로 보아 개악은 아니고 정체에 가깝다는 점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개악분야가 많다는 점에서, 정치분야는 중간은 간다.

우선 오랜 산고 끝에 국회의원 수 축소등 정치개혁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는 본질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선거공탁금 인상등 개악까지 이루어졌다. 사실 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사당정치, 지역주의 어느 하나 나아진 것이 없다. 새 정부는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고 국민들에게 고통을 강제했지만 대통령 자신은 전혀 개혁을 하지 않았다. 사당정치는 여전하고 국회의장을 대통령이 낙점하는 헌법파괴행위는 여전히 계속 되었고 정부조직개편이라는 이름하에 대통령의 권력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인사청문회, 특검제 등 야당시절 주장했던 주요 정치개혁들은 헌신짝처럼 져버렸다. 야당의원, 그것도 약점이 있는 비리의원 영입하기,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돈 쓰는 선거 역시 변화가 없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와 관련해, 앞에서 지적했듯이, 국가보안법의 개정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유의미한 변화라면 노동조합의 정치참여 허용이 이루어졌지만, 이 역시, 아래에서 다루겠지만, 정리해고의 법제화라는 더 큰 희생을 노동자로부터 받아낸 대가로 주어진 것일 따름이다. 즉 노동자의 입자에서는 “말로 주고 되로 받은 격”이다.

민주주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권문제도 마찬가지다. 인권대통령이라는 허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문제 역시 나아진 것이 별로 없다. 인권위원회 설치 역시 법무부의 농간으로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사회권의 경우, 아래에서 지적하겠지만,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해 후퇴하고 있다. 정치적 인권과 관련된 자유권의 경우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김영삼정권에 이어 장기수들을 여러 차례 사면함으로서 장기수가 모두 석방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한 손으로 풀어주고 다른 한 손으로 잡아들인다고, 새로운 양심수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마른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고, 아래의 표가 보여주듯이(표 2 참조), 특별한 커다란 조직사건이나 공안정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간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구속자 수가 모두 김영삼 정권 처음 2년(조문파동이 있었던)에 비해 오히려 늘어났다.

   

<표2>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구속자 비교                  단위=명

 

김영삼정권(A)

김대중정권(B)

B/A(%)

첫해

105/195

389/714

370/366

둘째해

389/775

284/476

73/61

계

494/970

673/1190

136/127

*출처: 민가협

*단 집계에 어려움 때문에 김영삼정권의 경우 1993년과 1994년을,  김대중정권은1998년과 1999년을 집계의 기준으로 했다. 따라서 정확한 첫  1년, 2년의 통계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전체적 추세는 맞는 것이다.



▷통일, 외교


대북정책은, 현상적으로, 김대중정부의 2년 성과 중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분야이다. 김대중정부는 일관된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화해 증진에 기여한 바가 크다. 물론 김영삼정권의 경우도 장기수 이인모씨의 북한송환, 남북정상회담 추진 등 초기의 경우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영삼정권이 이 같은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지 못 했다면 현 정권의 경우 이를 꾸준히 일관성 있게 추진함으로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즉 금창리 핵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한편 금강산 관광을 성사시킴으로서 먼 훗날에나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던 일반인들의 북한관광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 역시 현상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것은 현대그릅의 금강산 관광사업처럼 남북교류가 자본중심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민중적 교류는 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이 안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성격, 특히 종속적 신자유주의적 성격과 관련해 김대중정책의 통일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북한을 통합시키려는 신자유주의적인 장기적 흡수통일전략으로서 반통일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10) 즉 김대중정부의 햇볕전략은 평화체제하에서 남북한 경제통합을 유도한다는 미국의 대북한전략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11)



▷교육


교육분야 역시 김대중정부의 정책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지 않을 수 없는 대표적인 개악분야이다. 김대중정부는 교육예산을 국민총생산의 6%로 확대하는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한 바 있으나 실제 지난 2년의 정책은 ‘교육파괴 대통령’으로 치닫고 있다. 교육예산의 확대약속의 파기는 말 할 것도 없고 김대통령 자신을 모델로 ‘신지식인’운동을 통해 교육을 단순히 자본과 시장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자본운동에 통합시키려는 신자유주의적 교육학살정책을 자행하고 있다. 그 결과 교육의 공공성은 실종되고 있다.

특히 고등교육의 경우, 교수계약제를 도입하여 교육노동의 유연화를 강제하는 한편 4․19이후 처음으로 1천여명이 참여한 교수들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BK-21 이라는 이름의 ‘바보한국’정책을 강행함으로써 대학과 연구를 황폐화시키고 있다.12) 또 사학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교육관계법을 개악함으로써 사학의 비리를 조장하고 있고 민주화의 성과인 총장직선제까지도 총선 후 폐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같은 교육개악 흐름속에서 정보화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부총리를 신설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반민주적 교육정책 결정구조, 신자유주의적 교육개악 정책속에서 교육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 것은 김대중정권이 현재 살해하고 있는 교육을 더욱 강한 권력을 가지고 확실하게 확인사살하겠다는 교육 확인사살 방침에 다름 아니다.



▷경제


우선 김대중정부 2년동안 경제 위기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외채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은 사실이다.  김대중정부는 99년 9월로 가장 비싼 금리로 빌린 IMF의 보완준비기금(SRF)를 다 갚음으로써 한때 350억 달러를 넘보던 국제기구 차입액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전체 외채 역시 1천3백 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새 정부가 강조하듯이, 외환보유고가 사상최고수준인 8백억 달러를 넘어섰다. 바로 이 같은 사실에 입각해서 지난해 말에는 김 대통령이 직접 IMF 위기는 끝났다는, IMF 위기의 고통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하고 있는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의아하기 짝이 없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통계가 보여주듯이,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정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외채 감소가 설비투자 등 미래 경제를 위한 수입을 줄이고, 재고 등에 의한 수출의 극대화에 의한 것이라는 점, 나아가 국내 알짜 기업들을 헐값에 해외에 매각한 결과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기업의 설비투자는 1997년 상반기에 30조 5천억 원에 달했던 것이 98년 상반기에는 17조 6천억 원으로 떨어졌고, 99년 역시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5년 전 수준에도 못 미치는 21조 9천억 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13) 한마디로 성장 잠재력은 유실되고 있으며, 미래를 팔아 현재를 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진짜 문제들은 이 같은 외환 위기 극복 뒤의 얼굴이다.

심각한 문제는 한국경제의 종속화이다. 외국 자본의 국내 경제 지배는 이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곳은 경제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으로서, 제일․외환․국민․한미 등 4개 시중 은행의 주인이 외국인으로 바뀌었고, 대유․서울․굿모닝 증권 등 7개 증권사와 국민․제일 등 3개의 생명보험사가 외국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나아가 LG 경제연구원이 얼마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9년 6월 말 현재 주가 총액에 대한 외국인 보유액을 기준으로 본 외국 자본의 주요 국내 산업 지배력은 전기․전자 30.4%, 보험 28.6%, 금속 24.2%, 전기․가스 23.9%, 화학 23.5% 등으로 1/4을 넘어 1/3 수준에 빠르게 다가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14) 게다가 김대중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전 등 기간산업의 해외 매각과 대우그룹 주력 업종의 해외 매각이 본격화될 경우 우리 경제의 종속화는 위험 수위를 넘어설 전망이다. 한전만 하더라도 김대중정부는 한전을 송전만 빼놓고 발전, 배전부분을 분할하여 해외에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이같은 방침이 여론화될까봐 쉬쉬하면서 이를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려고 했다.15) 다행히 전력공대위가 꾸려져 이에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이에 한나라당이 가세해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반대서명을 하자 총선등을 의식해 전술적 후퇴를 하여 강행처리를 일시적으로 유보한 상태이다. 그러나 한전의 자회사인 한전기술의 분할매각을 노사합의를 하루만에 번복하여 강행처리하려고 하려고 함으로서 현재 파업투쟁을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심각한 또 다른 문제는 국가 채무이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공익자금 투입 등 여러 정책에 따라 국가 채무는 최소한 1999년 말까지 국내 총생산의 42%대인 210조 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 바 있다.16) 우선 IMF 기준에 따른 국가의 직접 채무는 1999년 말까지 중앙정부 93조 9천억 원, 지방정부 17조 6천억 원 등 111조 5천억 원에 달해 국내 총생산 대비 23.1%에 이르고, 정부 보증 채무 역시 94조 4,020억 원(국내 총생산의 19.4%)에 달해 모두 국내 총생산의 42.5%에 달하는 210조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 바 있다.17)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을 적용할 경우 국가채무는 더욱 커진다. 결국 엄청난 국민의 혈세를 들여서 부실기업, 부실금융기관을 정상화하여 초국적자본에게 헐값에 팔아버림으로서 과거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에 불과했던 국가채무가 급속히 악화되었다.

재벌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IMF 경제위기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재벌의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의 재벌개혁은 재벌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는 민중적 개혁과는 거리가 먼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그치고 있다.18) 그리고 이같은 신자유주의적 재벌개혁이 민중적 개혁과는 거리가 멀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인지, 아니면 선단식 경영의 해체 등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긍정적 효과는 기업파산으로 인한 실업자 증대 같은 부정적 효과에 의해 상쇄될 것”19)이며 국내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초국적자본의 먹이가 되게 하는 부정적인 것인지는 민중운동진영내에서도 의견이 갈라져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들과는 별도로 주목할 것은, 김대중정부의 소위 재벌개혁에도 불구하고 5대 재벌의 시장 지배력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역설적인 사실이다. 아니 정확히 표현해 김대중정부의 재벌개혁이 재벌의 지배력의 심화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역설이다. 삼성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시장 지배적 품목에서 5대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97년의 41.9%에서 99년 현재 45%로 3.1%나 높아졌고, 시장 지배 사업자에서 5대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97년의 32.1%에서 99년 현재 33%로 0.9% 높아졌다.20) 이는 정부가 핵심 구조 조정 분야의 경우 시장을 2~3개 사로 과점화시킨 빅딜 등의 정책의 불가피한 결과로서, 재벌개혁이 오히려 독점화를 가속화시키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 있다.

▷노동, 사회복지


사회적 측면으로 눈을 돌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우선,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없이 노동정책은 김대중정부의 반민중적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핵심분야이다. 물론 김대중정부는 취임초기 김영삼정권의 노개위를 발전시킨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틀을 도입해 노동관계의 개혁을 시도했다. 그리고 전교조의 합법화, 노동조합의 정치참여 허용, 나아가 지난해 말의 민노총의 합법화 등 일부 개혁적 조치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개혁은 근본적으로 노동의 유연화와 같은 개별적 노사관계의 개악을 강제하기 위한 전술적 양보에 불과하며 사회적 코포라티즘적 틀 역시 신자유주의를 노동계의 합의에 의해 도입함으로서 노동계의 반발을 극소화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코포라티즘,21)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틀을 쓴 변형된 국가통제의 국가코포라티즘에 불과했다. 그 결과 노사정협약에 합의했던 민주노총지도부가 대의원들에게 사실상 불신임을 당해야 했고 민주노총뿐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정책연합을 통해 김대중정권을 지지했던 한국노총까지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잘 아는 이야기이다. 긴말이 필요없이 김대중정부의 반노동적 성격은 바로 문제의 한국노총까지도 김대중정부의 노동정책에 얼마나 실망했기에 지난 연말 열렸던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에 한구노총산하 6~7개 노조가 한나라당의 요청도 없었는데도 직접 한나라당을 찾아가 후원금을 전달하는 기이하기 짝이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실업의 일상화이다. 실업률은 한때 8%대를 넘어서기도 했지만, 경기의 회복 기미와 함께 4.3%대로 떨어져 한숨을 돌렸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구직 포기자, 불완전 취업자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실업자는 3백만 명에 이르러 실업률이 15%를 넘어선다고 주장하고 있고, 재벌 연구기관인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1999년 8월말을 기준으로 공식적인 실업률은 5.7%이지만 OECD 기준으로 할 경우 실업률은 6.2%에 이르며, 구직 포기자를 반영하면 8.3%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22) 결국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고용의 내용이다. 정리해고의 합법화 등ꡐ노동의 유연화ꡑ전략에 의해 지난 1999년 3월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많아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중이 역전되었다.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되어 1999년 8월 말 현재 정규직 노동자는 602만 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 1,255만 명의 48%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3) 특히 정부 통계의 경우 임시 일용직 범위에 용역직, 도급직 등의 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60%대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24) 또 비정규직 노동자 중 주 18시간 미만의 불완전 취업자들은 경제 위기 전인 1997년 10월에는 18만 명에 불과했던 것이 1999년 8월 현재 96만 명으로 근 6배나 늘어나, 전체 노동자들의 1.4%에서 8%로 그 비중이 커졌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새로운 고용의 경우 대부분이 임시․일용직이라는 사실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충격적이게도 올 상반기 신규 취업자 중 무려 92%가 임시․일용직이었고, 정규직은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25) 이 모두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에 의해 고용 불안과 실업이 일상화되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실업률 4.3%라는 통계를 “국민의 정부 5대 성과”로 내세운 김대중정부의 자화자찬은 고용의 질적 내용을 은폐한 후안무치한 현실왜곡이다. 나아가 과거 한국이 복지국가는 없지만 고용은 안정되었고 서구는 고용은 불안해도 복지국가가 존재했다면 이제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해 고용도 불안정하고 복지국가는 없는, 서구모형과 한국모형의 나쁜 점만 모아놓은 최악의 조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같은 실업과 고용 불안의 일상화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ꡐ20 대 80의 사회화’이다. 우선 유엔개발계획(UNDP)와 참여연대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월 평균 가계 지출이 최저 생계비 이하인 빈민계층이 1999년 현재 전체 인구의 18.8%인 1천29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5명 중 한 명이 빈민계층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회 하위그룹의 빈곤화로 최하위 20%는 가구 소득이 1998년에 10.4% 준 데 이어 1999년에도 8.4% 준 반면, 최상위 20%의 소득은 1998년에 5.6% 증가한 데 이어 1999년에도 3.7% 늘어 소득 양극화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또 그 결과 상위계층 소득에 대한 중위계층의 소득 비중은 1990년 50%, 1994년 53%, 1997년 53.5%로 상승세를 보이다가 1998년 50%, 1999년 48.5%로 1985년 수준으로 후퇴했고, 상위계층에 대한 하위계층의 소득 역시 1990년대의 27%~30%에서 1998년 25%, 1999년 24.8%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긴말이 필요없이, 위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듯이, 1979년 통계집계이후 최고수준에 이른 경제적 불평등(지니계수)이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폐해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똑같이 외환 위기를 겪었지만 자기 방식대로 구조 조정을 한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비해  IMF의 지시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을 무비판적으로 채택한 김대중정부 하에서 이 같은 빈곤화가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경우 빈곤계층의 비중이 1997년 각각에 11%, 11.4%였던 것이 98년에는 19.9%와 12.9%로 상대적으로 소폭 상승에 그친 반면, 한국의 경우는 같은 기간에 8.6%에서 19.2%로 두 배 이상 급증하여 빈곤화 추세가 훨씬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6)

<표3> 아시아 경제위기국 빈곤화추세 비교

 

97년 빈곤층 비율(A)

98년 빈곤층 비율(B)

빈곤화추세 (B/A)

한국

8.6%

19.2%

224%

인도네시아

        11%

19.9%

181%

태국

11.4%

12.9%

114%

                           


마지막으로, 이와 관련해 김대중정부의 복지정책을 간단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정부는 사회적 양극화와 관련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해 올 하반기부터 이를 실시할 예정이며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이 아노지도 실시하지도 않았지만 생산적 복지의 도입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는ꡐ생산적ꡑ이든,ꡐ소비적ꡑ이든 복지정책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에서 복지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기본적으로 노동의 유연화, 정리해고의 일상화라는 새 정부가 도입한 반노동적 정책의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한 보완 조치일 따름이라는 점에서ꡒ병 주고 약 주는 꼴”, 그것도 ꡒ치명적인 암 병균 주고 소독약 발라주는 격”에 불과하다. 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도입으로 새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권에서 중도 정권으로 바뀌고 있다는 일부 주장27)은 생산적 복지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생산적 복지는 과거 복지국가가 제공하던 복지가 ꡐ소비적ꡑ이라는 인식에 기초하여 전통적인ꡐ소모적 복지’내지ꡐ소비적 복지’에 대립하는 개념으로서,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인식에 기초해 있고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의 일부이다. 사실 악독한 대처식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국민총생산(GNP) 대비 복지 예산 지출은 23%대(독일 30%대, 스웨덴 34%대)에 이르지만, 우리의 경우 정부 예산 기준으로는 1%대, 정부 지출 기준으로도 3%대에 불과하다.28) 즉 김대중정부의 복지정책에 비하면 대처식 신자유주의는 악독한 것이 아니라 천국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생산적 복지론은 복지 부재의 한국형 신자유주의, 김대중형 신자유주의로부터 유럽 기준으로는 악독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영국형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을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불과하다.

결국,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사회적 양극화가 김대중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밝힌 ꡒ중산층 중심으로 경제를 바로잡는ꡓ것이고, 신당 창당에서 밝힌ꡐ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또 빈민층이 1천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국민, 특히 서민층이 IMF 위기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현정부는, 그것도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ꡐ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ꡑ으로 ꡒIMF 위기는 완전히 끝났다ꡓ고 자랑스럽게 선언하고 있으니, 정말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정서적 거부와 달리 김대통령이 맞다. 즉 IMF 위기는 완전히 극복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 아니 그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슬프고 우려스럽기만 하다.

김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경제위기가 극복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 양극화 등, 위에서 지적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IMF 위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경제 위기가 끝나면 이 문제들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에 불과하다. 위에서 지적한 문제들은 IMF 위기가 극복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IMF 위기 극복이라는 이름 하에 IMF와 김대중 정부가 시행해 온 종속적 신자유주의 처방의 결과이다. 즉, IMF 위기 극복 이후의 정상화된 ꡐ정상적ꡑ인 한국의 정치경제와 사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모두는, 민중운동진영이 국민적 지지를 모아 투쟁을 통해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강제하지 않는 한, 쉽게 사라지지 않고 당분간 우리 사회를 규정할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다.



3. 4․13총선,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 도입부에서 지적했듯이, 4․13총선은 김대중정부가 그동안 IMF 위기 극복을 위해 실시해온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등 김대중정부의 국정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새로운 천년의 한국정치와 한국사회의 발전방향을 결정하는 선거이다. 따라서 민중운동진영은 이번 선거를 신자유주의 심판과 이를 통한 정책방향의 전환의 계기로 삼기 위해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 이번 총선국면에 가장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낙천, 낙선운동의 정확한 역사적 위상, 즉 의미29)와 한계를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낙선운동은 자정능력과 자기개혁의지가 결여된 정치권에 개혁을 강제하고 반민주적 헌정파괴자, 부패연루자 등을 퇴출시킴으로써 유권자들의 잃어버린 주권­아니 유권자들이 지역주의의 포로가 되어 스스로 포기해 버렸던 주권30)­을 되찾아주는 중요한 운동이다. 물론 이는 정치의 합리화이자 부르조아적인 정치개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현실에서는 이같은 개혁도 매우 의미가 큰 개혁이다. 그리고 낙선운동이 이번 총선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두어 낙선대상자중 몇 명을 떨어트리든, 이와 상관없이 이제 정치인들은 낙선운동과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낙선운동은 여러 한계도 갖고 있다. 우선 낙선운동을 처음부터 제도개혁, 즉 민주적인 상향식 공천의 제도화와 결합시켜 요구하지 않음으로서31) 공천권을 가진 보스들의 권한만 강화시켜주는 결과, 즉 사당정치를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결국 여야의 보스들이 낙천대상명단을 정략적으로 이용해 정적 등의 제거에만 이용하자, 낙선운동은 뒤늦게 공천을 받은 낙천대상자 45명을 겨냥하여 공천무효화소송 등 공천철회운동을 벌리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잘못이다. 즉 공천무효소송의 이유가 공천부적격자를 공천한 것이 아니라 헌법과 정당법에 명시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하지 않았기 때문인 이상 45명만이 아니라 모든 공천자에 대해 무효소송를 제기하고 이것이 받아지지 않을 경우 4․13총선 중지 가처분신청을 내서 민주적 후보자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총선을 치루지 못하도록 압박했어야 한다. 그래야 설사 이번 총선결과가 낙선운동의 의도와 달리 나오더라도 다음 선거에서도 운동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밖에 한나라당의 낙천대상자들이 공천탈락 후 집단탈당하고 새천년민주당의 공천탈락 낙선대상자들까지 합세한 퇴출연합당인 민국당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이다. 민국당의 출범은 낙선운동에 대한 정면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미온적으로 대응함으로서, 가뜩이나 낙선운동으로 김대중정권이 가장 득을 보게 된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 유포하고 있는 ‘김대중정부의 홍위병설’과 같은 오해를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번 낙선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 심판 등 보다 근본적인 정책적 의제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낙선운동의 경우, 정책적 문제에 대한 개별 정치인들의 입장을 주요 판단기준으로 하는 선진국들의 낙선운동과 달리, 정책적 문제를 낙선후보결정의 기준에서 제외함으로서 더욱 그러하다.32)

결국 이같은 한계 때문에 이번 총선의 올바른 전략은 신자유주의 심판을 주전선으로 하고 부적격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낙천, 낙선운동을 부차적 전선으로 하는 것으로 하면서 가능하다면 신자유주의의 주요책임자들을 낙선운동의 대상으로 하는 방식 등을 통해 양자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재 김대중정부는 “일정정도 시민사회운동의 요구를 수렴하면서 독자적인 전국정당화를 지향하는 국민통합전략”을 통해 “신자유주의 개혁에 저항하는 민중운동진영에 맞대응하는 역통일전선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는 바, 이같은 전략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을 타개하고 정국주도권을 장악하지 않은 한 지속적인 대외개방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민중운동진영의 전략은 김대중정권의 반민중적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을 정치적으로 파탄시키기 위해 집권여당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을 주전선으로 하여 반민중적 보수야당에 대한 견제와 타격을 부차적 전선으로 하는 대응구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민중대회준비위 기획팀의 분석33)은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이 같은 신자유주의 심판,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을 어떻게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이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후보전술로 국한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다양한 전술의 입체적 결합이 필요하다. 첫째로,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총파업, 시위, 집회 등 대중투쟁이다. 이와 관련, 반드시 집고 넘어갈 문제는 두 가지이다. 우선, 대중투쟁은 두말 할 나위 없이 가장 중요한 투쟁수단이지만 민중진영 내에 일정하게 유포되어 있는 4․13총선 무용론, 즉 대중투쟁이 중요하기 때문에 4․13선거는 무시하고 대중투쟁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대중투쟁은 중요하다. 그러나 대중투쟁도 4․13총선이라는 정치적 국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선거전에 집중시키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반감, 아니 반감정도가 아니라 미미해질 수밖에 없다. 즉 동일한 운동도 선거전과 선거후의 효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양한 운동주체들의 내부사정이 있었지만 배수진을 치고 총선 국면에 투쟁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이번 총선에서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고삐를 잡아주지 않으면 총선 후 총선과 관련해 주춤했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재개되면서 다시 한번 광풍이 불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대중정권이 한전의 해외분할매각 등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한․미투자협정 체결 등을 잠시 주춤하고 있는 것은 민중운동의 반대 탓도 있지만 총선의 표를 의식해서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반대. 민중생존권 쟁취 민중대회위원회의 틀을 넘어서 보든 신자유주의 반대세력을 집결해 광범위하고 강력한 반신자유주의 연대를 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목할 만한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시정을 위한 양대 노총의 연대를 제의한 한국노총의 최근 제의이다.34) 양 노총은 그 역사성과 성격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으나 이 같은 신자유주의연대를 제의한 한국노총 등을 반신자유주의 연대의 틀에 끌어들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현재의 선거지형을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대 반신자유주의, (20대 80의 사회화와 관련해) 20대 80의 대결구도로 전환시키기 위한 다양한 선전전과 여론화 작업이다.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을 수정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통적인 민중운동진영, 특히 조직화된 민중의 대중투쟁으로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일반대중, 일반민중들을 선거에서 신자유주의 심판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여론화작업이 시급하다. 사실 낙선운동으로 선거지형이 완전히 바꾸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일반대중들이 20대 80사회화에 대한 의식, 반신자유주의적 의식들을 자신들의 삶의 현실적 체험을 통해 느끼고 의식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같은 의식을 다시 호명(interpellate)해고 체계화시켜줌으로서 선거지형을 바꾸는 일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고 이 점에서는 시민운동에 배울 필요가 있다. 물론 여론형성에 결정적인 언론이 시민운동에 대한 태도처럼 민중운동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 참신하고 언론상품성이 있는 다양한 이벤트의 조직화를 통해 여론전을 전개해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초국적자본의 정부의 5대 업적(?)’의 여론화로부터, 다양한 선전구호 개발(“당신은 2년전 보다 행복하십니까?” 등), 사회적 양극화를 풍자한 다양한 퍼포먼스와 문화행사, 전국의 대학생들이나 현지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신자유주의 심판(또는 20대 80의 사회 심판) 국토횡단 이어달리기 행사(80의 행진) 등 다양한 기획행사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 홈페이지 개설 등을 통해 인터넷을 통한 광범위한 사이버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조직화해야 한다.

세 번째, 대정치권 투쟁이다. 이 같은 투쟁방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민주노총 등이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후보, 반민중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 나아가 반신자유주의 후보 지지운동이다. 이는 민중대회위원회의 민중연대 틀의 수준에서, 그리고 부문운동수준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35) 이밖에 필요한 것은 보수정치권, 출마후보에 대한 체계적인 압박이다. 우선 민중대회위원회가 준비하고 10대 개혁요구(노동시간 단축, 공기업 민영화 및 해외매각 반대와 국민대표들이 참여하는 경영개혁위원회를 통한 공기업의 민주적 개혁, 국가보안법 폐지 등)와 같은 주요 신자유주의 반대, 민주개혁 촉구 사항들을 만들어 각 정당 관계자들과 초청공개 토론회를 열고 각 당을 방문, 지지와 반대운동을 무기로 이의 채택을 촉구해야 한다. 또 모든 출마자들에게 이에 대해 개별사안별로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설문지를 보내 그 내용을 공개하고 당선 시 이를 준수하겠다는 서명을 받아내야 한다. 물론 서명을 했다고 당선 후 이들이 이를 준수한다는 보장은 결코 없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압박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보전술이다. 물론 민중대회위원회의 성격과 결합수준을 고려할 때, 후보전술문제를 민중대회위원회에서 논의해 결정할 수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 출마할 진보정당과 민중후보 역시 현실적으로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으로 나뉘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현재의 진보정당 움직임에 대한 평가, 나아가 선거자체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 민중운동 진영이 다양한 입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다른 채널을 통해서라도 범 진보진영, 범 신자유주의 반대의 민중후보에 대한 조율작업이 필요하다. 즉 지금과 같은 각개약진을 넘어서 범 진보진영, 범 신자유주의반대 전선에 의한 후보조정과 연합공천 등을 통해 단일전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민중운동진영이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어떻게 싸울 것인가는 앞으로 민중운동, 나아가 한국사회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이번 총선 국면에서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을 심판하고 이에 고삐를 걸어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할 것이다. 이 같은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이제 모두 힘을 모아 투쟁에 나서야 한다. 

한/노/정/연


1) 김대중정부를 지지하는 일부 관변학자들의 경우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의 성격이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질서자유주의’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신자유주의가 맞는 분석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손호철, 「신자유주의시대의 한국정치」, 푸른 숲, 1999, 237~240쪽 참조..


2) ꡔ중앙일보ꡕ, 2000년 3월 7일자.


3) 이같은 정권사적 전개와 이의 김영삼정권과의 비교에 대해서는 손호철, 앞의 책, 219~211쪽.


4) Bruce Cumings, “The Korean Crisis and the End of ‘Late’ Development”, New Left Review, no. 231(Sept./Nov., 1998), 58쪽과 60~61쪽.


5) 특히 재벌도 노동도 모두 김대중정부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김대중정부는 지지기반이 없는 정권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바로 초국적자본이다.


6) ꡔ중앙일보ꡕ, 2000년 3월 4일자.


7)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통계는 아래 참조.


8) 이에 대해서는 손호철, 위의 책, 6장과 7장 참조.


9) 농업, 의료, 환경, 여성, 문화 등 다른 분야들을 다루지 않은 것은 이 분야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다루는 것은 나의 능력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10) 강정구, “김대중정부의 통일정책의 평가와 전망”, [진보평론], 창간호(1999년 가을호).


11) 윤소영,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워싱턴 콘센서스’」, 공감, 1999, 110~116쪽.


12) 이에 대해서는 민교협정책토론회, 「BK21, 무엇이 문제인가?」, 1999월 6월 23일 자료집 참조..


13) ꡔ노동일보ꡕ, 1999년 11월 18일자.


14) ꡔ노동일보ꡕ, 1999년 7월 18일자.


15) 이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김윤자, 「공기업 민영화와 해외매각: 한국전력공사를 중심으로」, ꡔ민교협 회보ꡕ, 39호(1999년 9월) 참조.


16) 실제 지난해 말 현재의 국가채무가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가는 모르지만 현실에 있어서도 원래의 전망이 큰 차이없이 반영되었을 것은 확실하다.


17) ꡔ노동일보ꡕ, 1999년 9월 29일자.


18) 김대중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손호철, 위의 책 중 「국가론의 시각에서 본 IMF 개혁」 참조.


19) 「알랙스 갤리니코스 대담: 신자유주의라는 야만을 넘어서」, ꡔ창작과 비평ꡕ, 106호(1999년 겨울호), 336쪽.


20) ꡔ노동일보ꡕ, 1999년 11월 17일자.


21) 김세균, 「IMF 관리체제, 김대중정권, 그리고 노동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1998년 3월), 51쪽.


22) ꡔ노동일보ꡕ, 1999년 10월 7일자.


23) ꡔ노동일보ꡕ, 1999년 9월 2일자.


24) ꡔ노동일보ꡕ, 1999년 9월 30일자.


25) ꡔ한겨레신문ꡕ, 1999년 11월 16일자.


26) ꡔ중앙일보ꡕ, 1999년 11월 11일자.


27) ꡔ한겨레신문ꡕ, 1999년 7월 24일자.


28) 이와 비슷한 지적으로는 정무권, 「국민의 정부의 사회정책: 평가와 과제」,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 주최 심포지움 ꡔ신자유주의와 한국의 대응ꡕ, 1998년 11월 발표논문.


29) 이에 대해서는 총선시민연대 정책자문교수단, [정치개혁과 낙천, 낙선운동], 2000년 2월 23일.


30) 낙천, 낙선운동은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불필요한 아니러니컬한 운동이다. 왜냐하면 문제의원이 있으면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떨어트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유권자들이 계속 찍어 당선시켜주고도 이들의 낙선운동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이 같은 자기모순이 일어난 것은 밀실공천과 지역주의 때문에 아무리 문제가 있는 정치인도 밀실공천에 의해 공천을 받으면 지역주의에 의해 당선되기 때문이다.


31) 개인적으로 총선시민연대의 정책자문교수단장으로서 이를 여러차례 지적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손호철, 「낙선운동을 넘어서 공천민주화로」, ꡔ한국일보ꡕ, 2000년 1월 19일.


32) 사실 이번 낙선운동의 시발점이 된 것은 민교협 등이 지난해 가을 교육법 개악과 관련해 시작한 ‘교육 7적 퇴진운동’으로서 이는 정책적 심판을 주요 기준으로 했었다.


33) 민중대회준비위 기획팀, 「민중대회위원회 상반기투쟁기조와 사업계획」, 2000년 2월 28일, 3쪽.


34) ꡔ노동자신문ꡕ, 2000년 3월 11일.


35) 참고적으로 민교협등 교육관련사회단체들은 교육7적에 대한 낙선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0-04-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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