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대 총선이 민중운동에 주는 교훈
김 영 규 이사/ 인하대 교수, 행정학
제16대 국회의원선거가 2000년 4월 13일 실시된다. 이번
총선도 지금까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수세력들이 주도하는
선거판이다. 이들은 민주당, 한나라당, 자민련, 민국당 등 4개
정당으로 나누어져 경쟁하고 있다. 이런 보수선거판에
진보진영은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의 간판을 걸고 도전하고
있다. 이런 선거지형은 지난 제14대 때 민중당이 진보세력으로
총선에 도전했던 전례를 기억나게 한다. 또한 이번 총선이
과거와 변함없는 점은 언론의 보수성이다. 언론은 선거기간만
되면 평소보다 더욱 두드러진 보수색깔로 국민들에게 다가간다.
보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는 국민들, 유권자들도 바뀌지 않은
채 이번 총선에 임하게 될 것이라는 것 역시 과거와 다름없는
선거판의 진실이다.
제16대 총선이 보수주도로 치러지는 한국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제15대 총선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선거결과는 우리의 보수주도 사정을 잘
이해하게 만든다. 유럽에서는 전통적 사회민주주의의 ‘조금
남았던’ 계급적 강령마저 폐기하며 미국식 자유주의를 영입하는
「제3의 길」이 영국과 독일에서 정권을 잡았다. 또한 최근
유럽에서 선거 때부터 말이 많았던 오스트리아에서는 신파시즘
극우보수정파인 자유당을 파트너로 하는 보수대연정이
구축되었다. 지금 자본주의를 실험하고 있는 러시아는
유럽식으로 이야기해 중도좌파인 공산당을 누르고 중도우파 내지
극우보수까지의 이념적 경향을 띄고 있는 푸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또한 중남미 지역은 얼마 전 칠레의 대통령선거에서
중도좌파정권이 들어서는 등 4개국에서 좌파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이 역시 미국식 자유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의 이념적 정권이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
미국적 보수주의, 자유주의 바람이 세계화를 타며 전
세계인민들에게 불어닥치고 있다.
지금 극우보수로의 진행성까지 띄고 있는 이 광풍에 한국 국민들
역시 빗겨가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IMF공황을 겪고 있는
한국유권자들은 거시적으로 호전된 경제지표만 믿은 채 이미
IMF공황을 극복한 것으로 믿고 있어 집권여당이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유권자들은 개인 경제생활이
더욱 어려워지는 미시적 빈부격차에서 갖게 되는 박탈과
소외의식이 깊어지면서 집권여당에 대한 반발로 보수야당에 대한
지지도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이런 선택상황에서 지역주의,
금권주의 등의 구태 득표양상이 여기에 겹쳐져 이번 총선은
전례없는 혼전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혼전양상에서 진보정당들이 약진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단
말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부정적이다. 사실 공황은
자본에게는 매출․이윤의 감소이지만 노동에게는 생존의
위기라는 급박한 현실이다. 공황은 또한 자본에게는 동시에
자본의 조정 등 구제의 기회이지만 노동에게는 그런 구제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혹독한 고통의 계기만 준다. 그러나 지금
대다수 노동자․민중은 자본이 구제되는 기회에 편승해
고통의 감소 기회만 여전히 기다리는 투쟁저조의 현실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의 주체적 실천대안을 내놓고 있는
진보후보들의 목소리가 대다수 민중에게는 외면되고 있는 게
지금의 제16대 총선이다.
보수세력들은 이번 총선에서 모두 같이 승리할 수 있는 계기를
한가지 더 마련했다. 이른바 IMF공황인데에도 개혁을 외면했던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 좌절, 분노, 회한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여기에 보수정당들, 특히 정당보스들도 ‘물갈이’를 위해
전전긍긍하던 차에 총선시민연대가 일시에 그런 고민을
들어주었다. 보수정당들이 총선시민연대의 요구를 일정하게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척 함으로써 보수진영은 어느 정도
유권자들을 선거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래서 총선시민연대는
자신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상관없이 보수세력들이
분열은 되었지만 전체로 볼 때 총선에서 오히려 그 입지가
강화되어 진보정당에게는 그야말로 불편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는 결국 총선에서 함께 승리한 보수권력이 총선 후
노동자․민중에 대한 통제를 더욱 공고히 할 여지를 주고만
것이다.
총선시민연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각종 사업을 검토해 볼 때
이른바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의 이른바 민주화를 위해 기여하는
바가 있음도 부정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재 통용되고 있는 선거, 의회 등 이른바 민주적 제도가
총선시민연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구체적인 논의보다 근본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가
계급사회를 창출하는 한 몰계급적 시민이란 존재나 그것을
구성원으로 하는 시민사회란 그야말로 허상 아니면 구상에
불과하다. 또한 시민이나 시민사회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어떤
명분이나 용어로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규정으로서
계급사회라는 기본틀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총선시민연대의 총선개입운동 등 어떤 시민운동이든 이것이
몰계급적 운동인 순간 보수주의 일반 내지 정파의 운동에 그치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운동이외의 운동들이
갖게되는 한계인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시민연대가 거부하지
않은 인사가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권익에 선다고 결코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끝으로 진보정당 등을 배출한 노동자․민중진영이
보수혼전 총선판에서 할 일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크게 두가지 차원에서 접근해 보자. 하나는
보수선거판을 거부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선거판이지만
참여하는 일이다. 선거를 거부하는 일은 민중진영의 약세와
분열로 인해 상당히 실천하기 어려운 일일뿐만 아니라 선거에
기권해 온 민중들을 일거에 조직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선거에 참여하는 일은 선거를 치를
사람과 돈과 시간을 일시에 조직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투표하는
민중들이 거의 보수정치권만 쳐다보고 있는 판국에 이것 역시
상당히 실천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거부나 참여도
하지 않는 민중운동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그건 앞서
이야기한 총선시민연대가 결과적으로 가져오게 될 영향인
보수세력의 강화와 거의 비슷할 것이다. 물론 민중후보를 내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방법에 의해 보수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예컨대, 민중연대투쟁, 공동투쟁본부 등 대중투쟁을
여전히 위력적으로 전개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선거시기에는 그것도 후보를 내서 싸우는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