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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이탈리아 노조-좌파정당 관계 비교

현장에서 미래를  제55호
정병기





독일과 이탈리아의 노조-좌파정당 관계 비교

독일사민당(SPD)과 노총(DGB), 이탈리아 좌파민주당(DS)과 노동총동맹(CGIL)


정 병 기

연구위원/ 강사, 정치학







1. 서론


서유럽 노조-좌파정당 관계는 좌파정당과 노조연합체가 모두 분립지형을 이루는 가운데 특정한 정당과 노조연합체가 연계되는 유형, 그리고 하나의 거대정당이 좌파정당을 독점적으로 대표하고 단일 노조연합체가 통합노조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 존재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라틴 유럽에 해당하고, 후자는 독일과 영국을 비롯한 중․북부 유럽의 국가들을 대표적 예로 한다.

이 글은 여러 사례들 중에서도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해 살핀다. 독일은 좌파정당과 노조가 모두 독점 지형을 이루고 있으므로 독일사민당(SPD)과 독일노총(DGB)이 고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는 분립지형으로 나타나므로 한 사례만으로 전체의 노조-정당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노조와 좌파정당의 관계 분석을 이 글의 목적으로 하는 만큼 구공산당(PCI: 현재 좌파민주당 DS)과 공산․사회계 정파노조 노동총동맹(CGIL)의 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노동총동맹 외의 다른 노조연합체들도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이해관계 대변의 중요한 지주로 기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노조들은 좌파정당이 아닌 중도 및 우파 정당들과 각각 연계하고 있기 때문에 분석의 중심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물론 다른 노조들의 경우도 일반적인 내용과 관련 부분에 한해서는 고찰될 것이다. 또한 독일과의 비교를 위해서도 좌파진영에 한정하는 것이 비교가능성을 높일 것이며, 노동총동맹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노조라는 측면도 비교를 위해 중요하다.

서유럽 국가들의 다양한 정당제도와 노동운동의 발달사를 천착하고 두 유형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주요 개념들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우선 좌파정당과 관련하여 간부정당과 대중정당, 계급정당과 국민정당의 구분이 중요하다. 정당의 조직과 운영이 간부를 중심으로 할 때 그 정당을 ‘간부정당’이라 하고(전위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전위정당’도 같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대중을 기반으로 조직되고 당원에 의해 운영되는 정당을 ‘대중정당’이라 이른다. 반면 이념, 정강 정책과 당원 구성이 특정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을 ‘계급정당’이라 한다면, 국민의 일반이익 대변을 명분으로 하여 초계급성을 지향하는 정당을 ‘국민정당’이라 개념 짓는다.

노조 이해에 있어서는 일정한 대변단위에서의 노조 수를 기준으로 하는 개념과 개별노조의 정향이나 정당과의 연계 유무를 기준으로 하는 개념이 구분되어야 한다. 독일이나 영국과 같이 사업장이나, 산별 또는 총연합체의 수준에서 각기 하나의 노조가 존재하는 경우 ‘단일노조’ 체계를 이루며, 이탈리아나 프랑스와 같이 모든 단위에서 다수의 노조와 연합체들이 병존하는 경우를 ‘복수노조’ 체계라 한다. 물론 ‘대표체의 수’에 따른 이러한 개념이 실제 사용에서는 주로 총연합체에 한정되고 있지만, 노동자 이해대변의 모든 단위에 적용이 가능하다. 단일노조 체계는 양당제가 안정되어 있거나 상대적으로 양대 정당에 의해 정치가 주도되는 ‘온건한 다당제(Sartori 1976, 125, 173-176)’ 국가에서 일반적이며, 군소정당이 난립하는 국가들은 대개 복수노조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서유럽에서 ‘대표체의 수’에 관한 규정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적 규정이 아니며, 단지 노조지형의 현실을 반영할 뿐이다. 단일노조 체계라 할 때에도, 다른 노조가 전혀 조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경쟁력을 갖춘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임에 주의해야 한다.

노조의 정향에 관한 개념은 ‘통합노조’와 ‘정파노조’이다. 통합노조란 대개 정당, 종교 및 이데올로기적으로 독립․자율적이고 중립적인 노조를 말하며, 정파노조는 특정 정당 또는 종교와 조직적․이념적으로 경향지워진 노조를 일컫는다. 이 구분을 상급노조 체계와 연관지어 보면, 통합노조는 단일노조체계 국가에서, 정파노조는 복수노조체계의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의 논리적 구분의 명확성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사례분석으로 들어가면 각 조직의 발전과정과 자기이해 그리고 조직구성이라는 세 가지 관찰수준이 상호 모순을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이 개념들을 서술적으로 사용하되 구체적 사례에 대한 보다 명확한 설명을 위해서는 수식어를 붙여야만 한다. 결국 각 노조와 정당의 발전과정, 자기이해의 변화 그리고 조직구성의 발전을 살펴보는 이 글은 정확한 수식어를 붙이는 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유럽 국가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본주의와 의회 민주주의 질서이다. 서유럽 의회민주주의에서 정당은 기본적으로 선거와 의회를 주요한 활동의 장으로 하기 때문에 국민정당화의 길을 걷게 된 반면, 현대자본주의 질서에서 노조는 자본측에 대항해 노동자들이 조직한 가장 강력한 대항세력이자 중요한 사회개혁세력으로서의 잠재력을 담보하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기본입장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일반이익 대변이 인간의 자본주의적 모순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신념과 노동운동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변증법적 전통에서 이탈해 간 좌파정당의 국민정당화 과정을 밝히고 그에 대한 노조의 대응을 살피는 것이 분석의 중심이다.


2. 독일 사민당(SPD)과 노총(DGB)의 관계


2.1. 사민당과 노조 관계의 전통


정당과 노조의 관계를 마르크스는 “일상 경제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각성하게 됨으로써 경제투쟁이 계급투쟁으로 전화하며, 그와 더불어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을 의미한다(MEW 4, 181, 471)”는 뜻에서 1869년 하만(Haman)과의 대담을 통해 “노조는 사회주의를 위한 학교”(Enzensberger 1981, 337)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독일 사민당은 마르크스의 노조 규정을 “사민당을 위한 예비 또는 충원학교”로 해석함으로써 노조의 조직과 활동을 정당의 정치 활동에 부차적․종속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독일 사민당은 마르크시즘 도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당의 창설자인 라쌀(Ferdinand Lassalle)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그는 의회활동과 사회법제정을 통한 노동자상태 개선을 전략목표로 규정한 반면 독자적 노조활동은 시지푸스의 도로(徒勞)로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대중파업 논쟁을 거쳐 1906년 사민당-노조간 만하임(Mannheim) 협정에서 노조의 동등권 선언으로 변화하기도 했으나, 양 조직간 강령적 수렴과 인적 중복이 여전히 과다 표출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국가의 사회법제정을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하는 라쌀주의 전통은 현재까지도 사민당과 사민주의적 노동자대중에 뿌리내리고 있다.


2.2. 사민당의 국민정당화와 노총의 단협정책 집중


독일 노조의 독립성이 선언적 수준을 넘어 조직적으로 보장받게 된 것은 1949년 독일노총이 통합노조로 건설되고 나서였다. 또한 1952년 공장법(Betriebsverfassungsgesetz) 제정과 1959년 사민당의 고데스베르크(Godesberg) 강령을 통한 국민정당화 선언은 독일 노조-정당 관계 지형을 보다 획기적인 변화의 시점에 들어서게 했다. 공장법 제정은 노조의 정치적 파업을 불법화했으며, 계급정당이기를 포기하는 사민당의 국민정당화는 정치적 팔과 경제적 팔이라는 정치투쟁 중심의 라쌀주의 전통에 따른 수직적 분업조차 파괴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은 독일 노조의 이렇다 할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노총은 오히려 1963년 강령개정을 통해 사민당에 대한 강령적 적응의 길을 좇았다. 그에 따라 사민당의 국민정당화는 1967년 대연정을 통해 정치적 동의를 확대했고, 이어 1970년대 중반까지 ‘협주활동(Konzertierte Aktion)’이라는 노사정 협력의 시기가 도래했다.

이로써 계급정당과 노조의 사민주의적 분업 관계는 오랜 과도기를 거쳐 국민정당과 통합노조라는 새로운 모형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러나 조직형식적으로 노조-정당 관계의 상호 독립성이 보장되기는 했지만, 상술한 강령적 적응 외에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90%이상의 사민당 국회의원이 노총 소속이라는 점에서 인적 중복은 지속되고 있다.1) 또한 노조원과 근로자들의 상대적 다수가 사민당을 지지하는 현상은 고정지지층(Stammwahler) 해체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2.3. 사민당과 노총의 관계에 대한 기존 이론과 비판


독일 노조-정당 관계에 대한 해석으로는 초이너(Bodo Zeuner 1976)의 ‘일반적 국가의존론(Generalisierte Staatsfixierung)’과 아이텔(Martin Eitel 1991)의 ‘사민주의 정파노조론’ 그리고 에카트/허딩(Eckart/Herding 외 1975) 등의 ‘도구론(Instrumentalismusthese)’이 있다.

초이너는 국민정당화 선언이후 사민당이 계급성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노조의 사민당 의존성은 실질적으로 라쌀의 국가의존 전통과 집권 사민당의 친근로자 정책으로 인한 국가 의존성의 현상적 허구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관점은 협주활동 시기까지만 고찰했다는 시간적 한계를 가짐으로써, 사민당 실권 후에도 계속되는 노조의 친사민당 성향과 국가와의 갈등을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Eitel은 90년대 초반까지 관찰했다는 시기적 강점은 가지고 있으나, 사민당의 국민정당화와 통합노조로서의 노총의 자기이해와 자율적 의사결정능력을 지나치게 경시했다.

위 두 이론에 비해 ‘도구론’은 상대적으로 많은 설득력을 담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조직간 강령적․조직적 관계보다 경제․사회적 사안에 대한 의식조사를 중심으로 한 이 이론에 따르면, 사민당의 국민정당화 이후 독일 노동자들은 더 이상 사민당에 대한 전통적인 조직적 충성심에서 사민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당에 비해 사민당이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도구로서 상대적으로 유용하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 또한 70년대 초반의 의식상태를 분석했다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적어도 이 이론이 사민당과 노조의 관계 분석상 합당하기 위해서는 소위 견해투표나 사안투표를 인정해야 한다. 곧, 사안에 따라서는 노조원의 다수가 다른 정당을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그러한 결론은 발견되지 않는다. 독일의 노조원과 근로자들에게 더 이상 사민당이 조직적 충성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그들의 다수에게 사민당은 단순히 유용한 도구의 수준이 아니라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으로서 지지의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4. 최근의 변화와 노조의 정치화 제기


‘친근로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고 해서 독일 노조-정당 관계의 분석이 끝났다고 할 수는 없다. 독일 노조가 1952년 공장법 제정 후 정치투쟁을 암묵적으로 포기하고 단협정책에 몰두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학설은 출발한다. 그러나 내부논쟁을 살펴보면 독일 노조도 정치투쟁을 일반의사로 포기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재기의 씨앗을 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금속노조를 중심으로한 노총내 좌파는 노조의 독립성을 ‘비정치성’이 아니라 경제적 독립과 자율적 의사결정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의 실천은 1950년대 선거에 대한 구체적 참여와 1960년대 ‘긴급법’ 제정 반대투쟁으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사민당의 정권참여 후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표출되었다. 사민당의 강력한 반대로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독일 노조는 국민정당화한 사민당이 장차 노동자입장을 대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아래 사민당내 노동자세력 형성을 기도했던 것이다. 협주활동에 대해서도 집권 사민당이나 국가에 대한 노조의 일반적 의존이 아니라, 당시 쉴러(Karl Schiller)의 경제부처에 참여하여 노조의 입장을 직접 대변함으로써, 정부의 완전고용정책과 총수요조정정책으로 대표되는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노동자들의 권익에 유리하게 이끌어 내기 위해 노조가 대화에 응했다고 보는 입장이 보다 설득력을 가진 듯하다.

사민당 집권 이후의 경험은 노조-정당 관계에 근본적 변화의 한 획을 긋기에 충분했다. 사민당의 케인즈주의 정책이 실패하고 1973-74년 자발적 파업이 일어나자 노조내부에서도 사민당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강화된 것이다. 1980년대에도 독일 노조는 계속되는 사민당의 중산층 중심 전략과 라퐁텐테제(노동시간 단축분에 해당하는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창출)에 강력히 대응해 왔고, 1994년 15차 노총전국대회에서는 금속노조 출신의 위원장을 선출함으로써 정치적 참여와 ‘정치적 노조’를 공식적 화두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집권 사민당의 정치와 중산층 전략 강화에 대한 독일노조의 실망에 기본적으로 기인한다.

그러나 보수․자유(CDU/CSU․FDP) 정부의 단협상 자율교섭권 침해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주간 35시간제에 대한 콜 총리의 강경한 반대나 자본측의 공장폐쇄에 합헌성을 부여하는 1986년 고용창출법 116조 개정이 대표적 예다. 독일 노조는 정치적 문제 해결을 사민당에게 일방적으로 위임했던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 국가를 직접 상대하려는 노력도 아울러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최근 독일노조의 정치전략은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인 사민당에 대한 지지와 국가를 직접 상대한다는 이중전략으로 규정할 수 있는데, 이 전략은 지난 1998년 총선과 사민당의 신노선 이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노총 위원장 슐테(Dieter Schulte)는 선거에서 특정정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1960년대 이후의 관례를 깨고 당명을 거론하지 않았을 뿐 ‘친근로자적’ 정당을 지지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조합원들에게 호소하는 한편, 콜 총리 시절부터 고용안정을 위한 3자 회담을 강력히 주장해 왔으며 사민당의 ‘신중도’ 노선에 대한 비판의 강도도 점차 높이고 있다.

초이너 교수의 판단처럼, 선거 전략상 전문인, 지식인, 젊은 기업가 등 신 중간층의 표를 흡수하고자 했던 현 총리 쉬뢰더(Gerhard Schroder) 중심의 ‘신중도’ 노선은 강령적 차원에서 기존의 ‘(친근로자적) 좌파 국민정당'에서 ‘국민적 현대경제정당'으로의 노선 변화를 의미한다(Zeuner 1999).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이 계급정당이기를 포기하고 ‘국민정당‘화했으나, 케인즈적 총괄조정과 공공선을 지향하고 사회적 분배 정의에 적합한 강력한 국가개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최소한 ‘친근로자’적 의미의 ‘좌파' 명맥을 유지했던 반면, 최근의 신중도 노선은 그러한 좌파적 대안조차 포기하고 슘페터적 최소국가인 ‘국민적 경쟁국가(nationaler Wettbewerbsstaat)’와 신자유주의적 탈규제 정책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독일노조는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엄격한 분업구조를 통해 정치투쟁을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체 노동자계급의 조직이라는 위상만은 분명히 해 왔다. 1959년 강령변화를 통해서도 사민당과 노조와의 이러한 분업관계는 느슨한 형태로나마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사민당의 신자유주의적 선회로 독일 노동운동은 정치적 팔을 완전히 잃어버린 처지가 되었다. 이제 독일 노조는 ‘고용 협약’의 실질적 정책 반영과 노조 참정권 증대를 요구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전면 부정의 소리도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노조내 비판 세력들은 노조의 직접 정치 활동을 촉구하기도 한다.



3. 이탈리아 좌파민주당(DS: 1991년 이전 이탈리아 공산당 PCI)과 노동총동맹(CGIL)의 관계


3.1. 공산당(PCI)과 노동총동맹 관계의 전통과 통합노조의 분열


그람시의 전통에서 일찌기 소비에트 공산당과는 전략노선을 달리해 온 이탈리아 공산당(PCI)도 장구한 세월을 거쳐 역시 국민정당화의 길을 걷고 있다. 독일사민당이 처음부터 대중정당노선을 택한 반면 이탈리아 공산당은 반파쇼 투쟁이 끝날 때까지 전위정당으로 활동했으나,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 장악을 전략적 목표로 하는 그람시 사상 자체에 이미 대중정당화와 국민정당화의 싹은 내포되어 있었으며 공산당 스스로도 당전략 수정의 근거를 항상 그람시 이론에서 찾았다. 결국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전략과 조직의 발전 그리고 이데올로기성이 강한 이탈리아 국민들의 정서를 바탕으로 1976년 지역선거에서 34%를 획득하는 등 기민당 다음 가는 거대 정당으로서 노동자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포함하여 언제나 최소한 20%이상의 고정 지지율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막강한 공산주의 영향력은 오히려 공산당의 집권을 두려워한 미국의 지속적인 이탈리아정치 개입을 불러왔으며, 그것은 전후복구 시절 범연립정부와 1970년대 말의 정책연립을 제외하고는 실로 50여 년 간 기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 세력들의 반공 연정을 가능케 했다. 군소정당의 난립이라는 이탈리아 정치지형에서 연립의 상대로서 특히 중요했던 사회당과 사민당도 늘 공산당과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자 했고, 공산당 또한 이러한 정치지형에 적응하기 위해 그람시이론을 한층 더 변형하여 동구 공산주의와의 구별의혹을 없애고자 노력했으며 그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공산당은 전후 역사상 단 한번도 체제외적 투쟁조직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정치질서의 수호자 중 하나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탈리아 노조의 역사는 1943년 공산계 정파를 중심으로 사회계, 사민계, 공화계와 카톨릭 정파까지 포함하는 단일 통합노조인 노동총동맹(CGIL)이 건설됨으로써 시작되었다. 당시 노동총동맹은 통합노조였음에도 반파시스트 투쟁을 주도해온 공산당과의 연계를 분명히 했었다. 그러나 미국과 이탈리아의 반공 세력들의 공산당견제 전략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산당의 독점적 영향력을 묵과하지 않았다. 결국 냉전의 시작과 더불어 미국노총까지 개입한 통합노조 분리전략은 주효하여, 상업종사자와 전문직들을 중심으로 한 공화․사민계 정파가 노동자연맹(UIL)을, 그리고 사무직과 공공업무 종사자를 중심으로 한 카톨릭 정파가 노조동맹(CISL)을 건설하여 분리해 나갔다. 그에 따라 1950년 이후 노동총동맹은 잔류 사회계와 다수인 공산계(2/3 이상)로 구성되고 산업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공산․사회계 정파노조로 성격지어졌다. 그러나 정파노조의 하나가 된 후 현재까지도 노동총동맹은 이탈리아 노조지형을 주도해 가는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노조로 남아 있다.

정파노조인 노동총동맹의 공산당에 대한 관계는 정당간 경쟁의 심화라는 이탈리아 정치지형과 다른 노조들과의 통합운동의 진행 상황에 따라 때로는 종속이 심화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자율성을 증대해 가는 과정을 밟아 왔다. 공산당의 조직발전과 전략수정이 그러했듯이 공산당-노동총동맹 관계에서도 지도와 자율이라는 상호 모순되는 두 조직의 주장은 항상 그람시 이론에서 근거를 찾았다. 그람시는 변증법적 관계에 입각하여 정치투쟁 조직인 정당에게 노조를 비롯한 다양한 노동자조직들을 사상적․조직적으로 지도하는 ‘조직된 전위’로서의 역할을 인정하는 한편 노조에게도 대자본 투쟁과 프롤레타리아 권력장악 투쟁을 인정함으로써, 노조에 대한 공산당의 지속적인 지도권 주장의 근거가 됨과 동시에 노조의 정치적 역할과 자율성 증대의 이론적 바탕이 되어왔던 것이다.


3.2. 공산당(PCI)의 전략수정과 노동총동맹의 자율성 증대


노동총동맹의 자율성 증대는 노동총동맹의 정책적 필요성이 공산당의 전략수정과 일치한 결과였다. 노동총동맹은 1950년대 초반 공산당의 지도노선에 따른 지나친 정치투쟁 위주의 노조활동에 대한 내부 비판으로 인해 현장 문제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하고, 사회당(PSI)의 공산당 결별 선언을 계기로 조직 내 공산계 정파와 사회계 정파간 갈등의 해소가 절박해지자 공산당과 일정한 거리를 가질 필요가 생겨났다. 그에 따라 노동총동맹 위원장은 1956년 공산당 전당대회에 참가하여 노조의 독립을 요구하였고 공산당은 당전략 수정에 입각하여 이를 승인하게 되었다. 당시 공산당은 1944년 톨리아티에 의한 대중정당화 선언이후 1956년에 보다 유연한 의회주의 노선을 의미하는 ‘사회주의로 가는 이탈리아식 길’을 천명했는데, 이러한 정책변화가 노조와의 관계에서 다른 두 노조에 대한 당의 개방과 노동총동맹의 정책변경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독일의 1906년 만하임 협정에 견주는 것으로 꼬박 50년 뒤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성 주장도 아직은 선언적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실질적 자율성은 세 노조간 공동투쟁의 경험과 1969년 ‘뜨거운 가을(l’autunno caldo)’로 불리는 자발적 파업으로 촉발된 조직발전과 통합운동의 과정에서 비롯되는 사회적․정치적 역할의 강화에서 시작되었다. 1969년 파업은 정파로 분리된 노조조직을 뒤로하고 밑으로부터 조직된 노동자들의 자발적 공동투쟁조직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파업이 진행됨에 따라 노동자들의 투쟁목표는 경제적 목표를 넘어 이탈리아 사회에 내재하는 구조적 모순을 제거하자는 방향으로 발전해 갔다.

노조도 이러한 조직과 요구수준의 발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반면 독일의 노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자의 자발적 파업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73-74년 독일의 자발적 파업이 노조내 좌파의 입지를 강화시키기는 했으나 노조 정책에 반영된 것은 극히 제한된 수준이었다.-자발적 투쟁조직을 장차 통합노조의 기본단위로 발전시키기로 하고 ‘구조 개혁’을 주요목표로 삼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탈리아 노조를 정당에 준하는 조직으로서 정당이 이루지 못한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정당 대역(Parteienersatz)’ 또는 ‘대리 정당(Ersatzpartei)’으로 부르게 되었다(Jacobi 1988).

실제 이탈리아 노조는 많은 경우 파업을 통해 정부교체에 핵심적 역할을 해냈다. 결국 주요한 사회개혁세력으로서의 노조의 위치와 역할을 강화시킨 이러한 발전과정은 목표 달성을 위해 세 노조가 통합해야 한다는 의식을 형성하여, 통합의 주요 방해요소인 정당종속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 세 노조간 의견일치를 이루어 내었다. 그에 따라 가장 강력한 노조로서 통합운동을 주도하는 노동총동맹은 1969년에 공산당을 비롯한 일체의 정당과도 노조간부의 당직이나 의원직 겸임을 금지하는 규율을 통과 시켰다.

그러나 노동총동맹이 공산당과 조직적 연계를 포기하기는 했지만 공산주의적 강령과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고 전체 조직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포괄하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세 노조가 통합될 경우 통합노조내 공산당의 입지가 강화될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에 따라 노조 지형에서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상실할 것을 염려한 기민당과 공화당, 사회당 및 사민당의 공작으로 통합은 무산되고, 이 과정을 통해 노조에 대한 정당의 영향력은 오히려 증대되었다. 그러나 통합의 필요성을 확인한 세 노조의 노력이 결코 무위로 끝나지는 않아 이후 노조는 정당에 대한 자율성을 한층 확대하고 사회적 역할도 강화할 수 있었다. 비록 통합노조를 목표로 한 조직적 통합에는 실패했으나 1972년 마지막 통합회의의 결과 공동투쟁의 상설 협의회를 성립시켰고, 이 협의회는 자발적 파업의 성과인 평의회와 함께 198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이탈리아 노조들이 중도정부와 우파정부의 반노동자적 정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조직적 밑거름이 된 것이다.


3.3. 역사적 타협과 EUR 노선: 이론과 비판


공산당은 노조의 구조개혁 노선을 수용하여 당의 정책목표로 삼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개혁세력으로서 강화된 노조의 역할에 위협을 느껴 노조에 대한 주도권 주장의 소리를 높이고 구조개혁이 정당의 고유 역할임을 강조하며 노조에게는 노조 고유영역에서 자제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갈등은 통합운동의 실패 이후 강화된 정당의 영향력과 1970년대 중반의 경제위기와 맞물려 노조의 양보를 결과했고, 공산당은 당시의 경제위기와 파시스트의 위협에 대처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여 적어도 가시적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유로코뮤니즘(eurocomunismo)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전략수정, 즉 1970년대에 중산층과 중도세력과의 동맹을 목표로 하는 ‘역사적 타협(compromesso historico)’전략을 통해 1977-79년간 의회다수 참가의 형태로 정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와 달리 이것은 공산당이 의회내 정부불신임 투표를 포기하는 댓가로 기민당 정부의 긴축정책에 공산당의 사회개혁 정책을 수용한다는 정책연립의 형태였다. 이에 대해 양보노선으로 선회한 노조들은 노동총동맹이 제안한 EUR노선(로마의 회담장소의 이름을 따서 명명)으로 일컬어지는 전략을 통해 정부의 긴축정책을 수용하고 임금인상투쟁을 자제하는 대신 공산당과 개혁세력의 개혁정책을 기대하고 지원했다.

이러한 상황은 독일의 ‘협주활동’과 좋은 비교가 된다. 독일 노조가 정부의 경제정책을 자신과 노동자들의 권익에 유리하게 이끌어 내기 위해 협주활동에 참여했던 것처럼, 이탈리아 노조들도 EUR노선에 의한 양보와 지원을 통해 정부의 개혁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협주활동’이 노사간 힘의 균형 상태에서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대화의 광장(Diskussionsforum: Scharpf 1987)’이었다면, 이탈리아 노조들의 EUR노선은 자본측과의 갈등의 소산도 정부나 공산당에 의한 지도의 결과도 아닌 노조들간 협의를 통한 자율적 결정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자본과 정부의 집행능력은 3자간 대화체를 형성하고 이끌어갈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못했던 것이다.

EUR노선과 역사적 타협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노동총동맹과 공산당의 관계에 대한 해석에는 크게 3가지 입장이 대두되고 있다. 먼저 슈타이어트(Rudolf Steiert 1979)에 따르면 노동총동맹은 공산․사회계 정파노조로서 공산당의 영향아래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 전략을 추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EUR노선에 대한 동의는 수 차례에 걸친 논의의 결과였지 노동총동맹이 다른 두 노조에게 강요한 결과는 아니었으며 그럴 정도까지 노동총동맹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만일 EUR노선이 공산당 지도노선에 대한 노동총동맹의 단순한 추종의 산물이었다면 이탈리아의 정당간 치열한 경쟁과 노조간 분립의 지형에서 다른 두 노조가 EUR노선에 쉽게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공산당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으나 상당한 정도 자율성을 확보해 온 과정을 볼 때 노동총동맹이 일방적으로 공산당의 노선을 추종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보다 좀더 설득력을 가진 두 번째 입장으로는 이탈리아 노조 연구의 권위자인 피초르노(Alessandro Pizzorno 1978)와 레지니(Marino Regini 1982)가 주장하는 ‘정치적 교환론’이 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장기적인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는 노동총동맹을 비롯한 이탈리아 노조들이 자신들의 목표가 정부와 자본측의 투자 증대에 의한 경제발전을 전제로 한다는 판단아래, 임금인상이라는 노동시장에서의 단기적 이익을 경제발전에 기반하는 개혁정책이라는 정치시장에서의 장기적 이익과 교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이 살피지 못한 부분은 상술한 바와 같이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대에 정부교체까지 가능하게 했던 ‘대리정당’으로 성장한 노조세력에 비해 자본측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도 정당간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강력한 정책을 실시하여 노조의 요구를 충족시키거나 자본과 노조간의 중재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즉 당시 이탈리아의 정부와 자본은 노조에 대한 ‘정치적 교환’의 상대가 되기에는 너무나 약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의 해석으로는 ‘정치적 교환론’을 보다 발전시킨 크라일레(Michael Kreile 1985, 1987)의 ‘동시적 교환론(Simultaner Tausch)’이 있다. 크라일레는 우선 ‘정치적 교환’을 ‘일반적 교환(Genereller Tausch)’과 ‘동시적 교환(Simultaner Tausch)’으로 구분하여, 후자를 통해 이탈리아의 예를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 교환’은 사민주의적 사회동반자관계(Sozialpartnerschaft)와 같이 노동과 자본의 거대 조직간 힘의 균형을 통한 동반자관계와 그에 대한 강력한 정부의 개입과 중재가 언제나 가능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곧 노조가 노동시장에서의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자본이 투자를 증대하여 경제를 성장시키는 한편 안정적이고 강력한 정부가 그 성과들을 사회정책을 통해 장기적으로 노동자들에게 환원시킬 것이라는 정치시장에서의 이익에 대한 장기적 전망이 존재할 때 노사간 항상적 교환과 양보의 관계인 ‘일반적 교환’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장기적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는 상호 이익이 동시에 달성되는 조건에서 일시적으로 ‘동시적 교환(Simultaner Tausch)’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안정되고 강력한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이탈리아의 상황에 ‘일반적 교환’은 이루어 질 수 없는 반면, 공산당이 참여한 당시의 정책연립정부가 집행능력을 담보한 것으로 보였으나 지속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노조의 임금인상 포기의 반대급부로 자본의 경제․사회부문에 대한 투자와 정부의 사회개혁정책이 즉각 실시되어야 한다는, 정치시장에서의 이익과 노동시장에서의 이익간 ‘동시적 교환’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크라일레의 결론은 이탈리아 자본의 힘이 노조로부터 임금투쟁 자제를 이끌어낼 정도로 노조측에 대한 교환의 상대로서 1970년대 당시 충분히 성장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대노조관계에서 이탈리아 자본이 충분히 성장한 것은 198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관찰된다. 그것은 1980년 피아트사에서 사무직과 기술직을 중심으로한 반노조 시위로 노조 세력이 현저히 위축된 이후, 물가인상에 대한 임금연동제(scala mobile) 폐지를 두고 198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자본측의 공세를 통해 증명될 수 있다. ‘교환’은 일방의 독자적 결정이나 양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상대에 의한 교섭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할 때, 기본적으로 자본이 노조의 교환상대로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교환론’ 자체가 설득력을 담보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1969년 ‘뜨거운 가을’ 이후 꾸준히 성장해 온 노조가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조직적 대항세력이자 주요한 사회개혁세력으로서의 역량을 보다 공고히 하고 경제투쟁의 상대적 성공을 정치적 사회개혁 투쟁으로 발전시켜 간 사실을 주지할 때, EUR노선은 공산당의 정치적 다수 참가라는 호기를 사회구조개혁이라는 자신의 전략적 목표달성에 이용하기 위한 전술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이러한 판단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탈리아 노조들이 사회구조개혁의 조직적 전제로서 통합운동을 전개한 바 있었다는 점과, EUR노선에 나타난 요구목록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의 포기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구조개혁 요구들을 담고 있는 데서 뒷받침된다.


3.4. 최근의 변화와 노조의 정치적 역할 제고


그러나 공산당의 구조개혁 정책은 기민당이 주도하는 집행과정에서 희석될 수밖에 없었고, 정부에 대한 공산당의 영향력도 노조의 정치․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충분치 못했다. 게다가 당시 공산당을 포함한 실질적 연정 구성을 주도하던 기민당 좌파의 영수 알도 모로(Aldo Moro)가 공산당의 영향력 확대를 두려워한 기민당 우파와 미국의 공작으로 납치․살해당한(Cipriani, 1993) 것을 계기로 중도파와 공산당의 어떠한 형태의 연정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사회당 또한 공산당에 대한 색깔 구분을 위해 이데올로기 공격을 강화했고, 모든 정당들은 극한 경쟁으로 재차 몰려가며 노조에 대한 영향력 강화에 몰두해 갔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총동맹과 공산당의 관계에서도 차분히 진행되어 오던 노조의 자율화 과정을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2년의 정권참여기간 동안 공산당은 노조의 지속적 지지를 획득하고자 했고, 정치적 호기의 상황에서 노동총동맹은 공산당을 통한 정치적 목표의 달성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였으며 다른 두 노조의 동의와 협력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었다. 그러나 정당간 경쟁과 사회당의 탈선은 노조들을 다시 분열시켰고, 1980년 들어서는 정치투쟁 노선에 대한 조직 내 비판이 재기하고 피아트의 경우처럼 대규모 반노조 시위까지 일어났다. 또한 1980년대에는 성장한 자본측과 중도정부2)가 임금연동제의 일방적 감축 등 노조세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다. 결국 1980년대에 이탈리아 노조는 점차 수세기에 빠져들어 갔으며 중후반기에는 과거의 역량을 모두 소진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이탈리아 노조들은 1985년 재개되어 1990년부터 활기를 띄기 시작한 공동투쟁과 통합운동을 통해 다시금 중요한 사회개혁세력의 역할을 회복해 가고 있다. 1990년대의 통합운동은 특히 노동총동맹과 공산당의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것은 공산당 자체의 변화와도 관련된다.

1980년대에 공산당은 동구변화의 외풍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강제로 인해 노조에 대해 지도권을 주장할 여념이 없었다. 1986년 17차 전당대회에서 공산당은 자본주의 체제 극복을 최종 목표로 재확인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여러 경제형태들의 복합”을 인정함으로써 사실상 당의 본질적 변화는 예고된 것이었다. 1989년 18차 전당대회에서는 ‘민주주의’와 ‘강력한 개혁주의(reformismo forte)’를 전략목표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당명개정 논의를 시작했으며, 1991년에는 ‘커다란 현대적 개혁정당’으로 자기위상을 정리하고 ‘좌파들의 민주적 정당(PDS: Partito Democratico della Sinistra, 이하 좌파민주당)’이라는 색깔 없는 당명을 선택했다. 물론 독일 사민주의자 일부가 보는 것처럼 좌파민주당(PDS)으로의 변화를 사민주의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레빙(Helga Grebing 1992)의 조심스러운 지적대로 “좌파들의 리버럴(liberal) 정당”으로서 탈공산주의화의 일부라고 보인다. 그러나 좌파민주당의 탈공산주의화도 국민정당화의 한 모습임에는 틀림없으며, 이러한 국민정당화의 과정은 ‘좌파민주주의자(DS)’로의 2차 개명과 중도 포용 노선의 강화로 이어진 선거전략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3)

개명과 함께 공산당은 노동총동맹에 대한 전통적 지도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했으며, 노동총동맹도 같은 해 조직 내 정파를 해소하고 장차 어떠한 정당과도 대화할 것을 선언하고 실천에 옮겼다. 이것이 세 노조간 통합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며, 통합의 필요성은 노조의 조직원 구성에서도 제기되었다. 공산당처럼 노동총동맹도 산업노동자조직이라는 전통적인 조직 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노조동맹(CISL)이 사무직과 공공업무분야를, 그리고 노동자연맹(UIL)이 기술직, 상업종사자와 인텔리층을 과다대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직적 편중은 노조들에게 자신들의 사회적 위상과 조직적 힘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들간 통합을 더욱 강조하게 만든 것이다. 통합운동의 가속화는 1994년 베를루스코니의 정치그룹(Forza Italia)과 네오파시스트(Alleanza Nazionale) 및 북부 중소자본 지역주의 정당(Lega Nord)의 연정에 의한 사회보장정책 축소기도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

1996년 선거 당시 세 노조연합들은 또 다시 기득권 유지와 정당정치적 경쟁에 혼탁해져 가기도 했으나, 노조와 연계된 정당들이 모두 연정에 참여한 1996년 중도-좌파 정부의 수립은 노조 통합운동의 정치적 조건을 창출하는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1996년 7월 2일-5일간 열린 노동총동맹 13차 전국대의원대회는 12차 대회에서의 통합기구 발족 제안을 재차 확인하고 자율, 민주, 다원주의에 입각한 통일노조 건설 의사를 분명히 하여 이를 새 강령에 성문화했다.4) 노조동맹 또한 1997년 5월 21일-24일간 열린 13차 전국대의원대회를 통해 노동총동맹의 제안을 수용하고,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대표체로서의 통일노조가 가질 위상과 단체협상 기능을 강조하였다.5) 재개된 통합운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중도-좌파 정부에 대한 공동 대처를 통해 정당정치적 경쟁의 틈바구니를 해쳐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6)

그러나 지난한 과정에도 맥을 끊지 않았던 이탈리아 노조들의 통합운동은 아직도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만 한다. 최근 노동자연맹이 통합노조의 위상과 조직을 두고 대립해 온 끝에 창립 50주년에 즈음하여 조직의 독자성을 다시 강조함으로써 통합운동에서 일탈해가려는 징조를 보인 것이다.7) 정당정치적 당파성을 극복하고 노동자 정치적 정파성으로 거듭나는 문제는 서유럽 노조들의 관료주의적 병폐에 따른 현장성 회복 요구와 함께 이탈리아 노조들에게 아직도 유효한 과제이다.



4. 비교와 결론


독일의 사민당과 노조의 관계는 사민주의 계급정당과 그 정파노조에서 친근로자적 국민정당과 통합노조를 거쳐 ‘국민적 경제정당’이라는 국민정당과 통합노조라는 사실상 직접적으로는 무관한 관계의 형태로 변화해 왔다. 반면 이탈리아의 공산당과 노동총동맹은 탈공산주의화와 노조의 자율성 확보라는 과정을 밟아 왔다. 아직까지 좌파민주당(DS)의 행로가 분명치 않고 세 노조간 통합도 가시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급정당의 국민정당화와 노조-정당의 상호독립 과정은 서유럽 국가들의 일반적 현상으로 제시하기에 충분한, 두 나라의 공통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한편 자본에 대한 대항세력이라는 노조의 성격은 단협투쟁이라는 노조 고유의 장에서 고금과 미래를 막론하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지만, 정치의 장에서 주요한 사회개혁세력이라는 점은 두 나라에서 매우 상이하게 나타났다. 독일 노조의 경우 정치적 파업이 금지되고 단협투쟁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정치적 사회개혁세력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현상한 반면, 이탈리아의 노조는 정당에 준하는 역할을 할 정도로 강력한 역량을 가지고 사회개혁세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독일 노조도 정치적 투쟁을 강조하는 조직 내 비판세력에 의한 논쟁을 계속해 왔고 1980년대 이후 보수/자유 정부의 공격과 1990년대 들어 본격화된 사민당의 중산층중심 전략에 대한 실망으로 ‘정치적 노조’를 선언하는 등 정치투쟁 재개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노조들은 1980년대 초․중반 사회개혁세력으로서의 힘이 약화되기도 했으나 후반 들어 통합운동을 재개했고 1994-95년 이후에는 우파정부뿐 아니라 중도-좌파 정부에 대해서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왔다.

따라서 의회민주주의 질서에서 선거와 의회를 활동의 장으로 하는 정당의 경우 자본에 대한 정치적 대항조직이라는 계급정당이기를 포기하고 시기의 선후에 관계없이 국민정당화해온 반면,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 질서에서 노동자들에 의해 조직된 노조는 노동시장에서 근본적으로 자본에 대한 대항세력임을 포기할 수 없으며 정치 무대에서도 주요한 사회개혁세력이 아닐 수 없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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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전체적으로 당도 노조도 통합유형으로 가는 것이고, 이탈리아는 분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80년대 이후는 대부분의 경우, 당과 노조의 관계가 이완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통합유형과 분리유형이 미치는 효과가 무엇인지, 그것이 노조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노사관계 제도에 어떠한 차별적인 영향을 주는 것인지를 두 나라 사례를 통해 설명해 주시기 바란다.


독일 경우는 노조와 정당의 관계만 본다면, 통합유형이다. 노총이 정치적 교섭권을 가지고 있지만, 사문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정치적 활동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산별체계는 임금투쟁에는 효과적이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문제가 많다. 이전에는 라쌀레의 전통에 따라 사민당과 국가가 법적으로 노조에 많은 이익을 주었지만, 더 이상 그것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독일이 이탈리아 유형처럼 분리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반면, 이탈리아의 노조가 정파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정당들 간의 경쟁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노동자 일반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독일처럼 통합이 되어야 한다는 애매한 상황에 놓여있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통합유형과 분파유형이 노동계급 일반의 이익에 유리한지를 알고 싶다. 곧 전자의 경우, 내부의 갈등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사 협의의 상황에서 하나의 안이 나오는 반면, 분리유형은 경쟁적이고 다양한 여러 가지의 안이 나올텐데, 이들 중 어느 것이 노동계급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알게되면, 우리가 당과 노조의 관계를 고민할 때 유리할 것이다.


어떤 것이 더욱 나은지에 대해서 말하기 어렵다. 독일은 효율적이고, 노조의 규모도 크고, 돈도 많고,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노조 내부의 임금 차별을 줄여나가는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그만큼 비판적인 안이 나오기 어렵고, 그것이 내부에서 사전 조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유형이 불리할 수 있다. 문제는 관료성이다. 현재 독일처럼 관료성이 심각하다면 분리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한 사업장 내에서도 사민계, 카톨릭 등의 여러 개의 노조가 있지만, 각각 따로 노사협의를 하는 것은 아니고 미리 협의를 하기 때문에 협상이 지연되는 등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또 비판적 노조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도 여러 종류의 노조가 있지만, 각각 전국적으로는 총연합을 구성하는데, 이들의 관료성은 어느 정도인가?


이들의 관료성도 문제가 많지만, 조직체계적인 측면에서 경쟁관계도 있으므로 독일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독일은 조직율은 높지 않지만 협약적용율은 높고, 임금격차 적고, 사민당과 노조의 분업체계가 역사적으로 진행되어 노사관계, 작업장 권력, 전국적인 권력, 사회복지 수준이 높고 균등하게 분할되어있다고 들었다. 반면 이탈리아 경우는 지하경제가 크고, 남부 노동자의 문제, 지하경제의 미조직 노동자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노동계급의 상태가 독일에 비해 좋지 않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조직이 정파적으로 분열되어 있으면 통일적인 조직역량이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 상식적인데, 발표자는 관료성의 문제를 들어 통합보다는 분리유형이 낫다고 보았다. 그렇게 해석하는 이유가 뭔가?


말씀하신 이유 때문에 이탈리아도 통합운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독일 노동계급 상태의 차이는 노조의 효율성이나 역량이라기 보다는, 경제적 문제와 정책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독일 노동계급의 상태가 낫고, 노동자내부 차이가 적은 것은 일반적으로 독일노조가 잘싸웠기 보다는 2차 대전 이후의 정책적인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 정치투쟁과 사회개혁의 경우 이탈리아 노조가 매우 잘 싸워왔다. 하지만 그것이 노동자의 상태로 직결되지 않은 것은 구조적인 문제, 곧 지역문제나 정치상황이나 경제정책, 전후 지원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노조-정당 관계의 측면에서 노조가 사민당과만 일대일 관계를 맺는다기 보다는 기민당에 의존하는 측면도 있다. 노동권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민당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지 않고 다른 당과 자율적으로 관계를 맺는 경우, 노동권 내부의 통합을 넘어선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도구론이 가능하다. 곧 꼭 사민당이 아니라 할지라도 노동계급에 유리한 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노조운동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목표와 노선, 그리고 그것이 정치조직이나 정당의 노선을 변경시킬 가능성과 대중적 파워의 정도를 비교해보면 어떤가?


이탈리아의 CGIL은 노동자 일반을 대변하는 조직이고, CISL은 조합원 중심, 특히 주로 사무직 공공부문 중심이고, UIL도 이와 비슷하다. CISL은 조합원만 대표하는, 철저히 미국식조직이므로 통합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노조-정당 관계의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강력한 노조일수록 갈수록 국민화되어 가는 정당들이 그 지지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의 경우가 아니라면 독일 노조가 사민당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파업 형태를 통해서 동시적 교환이 아닐 경우,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당과 노조와의 관계에서 노조가 당에 영향을 주는 것에 비해 국가기구화된 카르텔 정당, 그것의 노선변화가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국민정당을 주창하면서 일반사람들의 공통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독일의 경우, 산별노조가 움직이는 공간이 단체협상 밖에 없으므로, 그러한 이해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개혁 투쟁이나 정치투쟁은 하지 못한다.


정치투쟁을 못하게 하는 법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기민당 집권시인 52년이다. 이에 대해 사민당과 노조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현재 신자유주의적인 상황에 대해 독일 사민당과 이탈리아 좌파국민정당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차이점은 무엇인가? 독일의 경우는 많이 알려졌는데, 이탈리아의 경우가 궁금하다.


이탈리아 역시 노사정의 협상이 제도화되어 있다. 91년 이후 정당과 노조의 공식적인 관계는 사라졌다. 최근 중도좌파가 집권했을 때 유럽연합 가입 문제로 노조가 파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98년 10월에는 노조가 참지 않고 사회복지 문제, 남부 지역 문제, 사유화 문제등을 제기하며, 대규모 파업을 했다. 이는 재건 공산당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공산당 출신의 총리가 되었고, 이에 대해 노조가 또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는 남부 지역 문제가 가장 큰데, 이에 대해서는 새 정부가 많이 지원, 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남부문제 해결에 대한 압력은 주로 어디서 행사하였는가?


이탈리아에는 환경 단체 등 다른 사회 단체의 발달이 미성숙해서, 주로 노조가 중심적으로 역할을 한다.


앞서 말씀하신 수차례 사회협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용과 임금, 인플레일텐데 그 합의가 이행되었는가?


현재는 좌파 정부이므로 약속을 지키는 편이지만 80년대는 전혀 지키지 않았다. 이에 대해 노조가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그 때 가장 문제가 된 게 관료성 문제다. 조합원들이 노조를 지지하지 않았다. 투표로 임금연동제가 없어진 것도 이와 관련된 것이다. 지금은 중도좌파니까 노조가 상대적으로 자제하는 편이다.


이탈리아의 EUR노선에 대해서 보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특히 자본의 미성숙으로 동시적 교환으로 보기 어렵다는 맥락은 무엇인가?


이탈리아 자본은 노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70년대 이탈리아 노조는 정당에 준할 정도로 강력했었다. EUR 자체가 세 노조가 모여서 내놓은 것이고 독자적이었다. 당시 노조는 투쟁을 잘했기 때문에 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느끼기보다는 구조개혁과 사회개혁에 집중했다. 교환을 경제적 차원에서 정의한다면, 이탈리아의 경우는 그런 경제적 교환보다는 사회개혁 투쟁에 집중했기 때문에 교환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 모두 정당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면, 좌파 정당들이 점차적으로 국민정당으로 변화하면서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부분들이 증가했을 것 같다. 노조의 독자적인 활동과 정당과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위치지어져야 하는가? 우리나라 민주노총과 민노당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는데 그런 관계가 바람직한가, 위험한가?


우리나라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노동자 일반의 이익이 노조-정당의 분리처럼 정치적-경제적 부분이 확연하게 나눠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조는 일차적으로 경제적 투쟁이라 할지라도 정치적 투쟁으로 비화되었을 때 끝까지 싸우고 정당이 지원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당은 기본적인 장이 의회나 정치적인 여러 부분에서 출발하겠지만, 임노동 문제와 같은 경제적 영역에까지 싸워야 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모델화를 시키는 것은 어렵다.


설명에 따르면 정당이 우경화되어 노조가 통합되고, 당의 정책변화에 노조가 종속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 노동조합이 당의 의사결정 구조 내로 깊숙히 들어가있다고 볼 수 있다. (영국노동당사)의 고세훈씨에 따르면, 오히려 노동조합의 우경화가 노동당의 우경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이탈리아에 적용한다면 어떤가?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에커트는 일반노동자의 의식을 조사해서 당의 도구론을 설명한다. 그런 측면도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독일은 약간 다르다. 이탈리아 경우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간부들이 거의 당과 노조, 곧 CGIL과 공산당을 겸직했다. 그런데 그걸 노조가 요구해서 없앴다. 그러나 그 뒤에는 상황이 변했다. 곧 당이 주도권을 가진 것이다. 독일의 경우도 사민당의 90% 이상이 노조위원이지만 그 사람들은 이름만 그렇게 올라있는 것이고 국회에 가서는 정치인으로 행동한다.


이탈리아에 CIA가 개입했다고 했는데, 왜 그랬나?


공산당이 집권한다는데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구체적인 사실은 모르고, 국제적으로는 칠레 문제가 걸려있었다. 칠레를 유럽에 또 만드는 것이 두려웠지 않았을까?


좌파정당의 국민정당화에 대해 질문하고싶다. 자본은 애초부터 국민이라는 갑옷을 입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정당화를 우경화가 아니라 외연이 확대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또 정당의 강령에서는 노동자 일반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되어있지 않는가?


강령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국유화 등이 점점 강령에서 사라지고, 처음의 목적이 뒤바뀐다. 곧 정권을 잡는 것이 수단이었는데, 그 수단이 최고의 목표가 된 것이고, 계급이란 말은 더 이상 설 땅이 없다. 그람시적으로 이해했을 때,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표를 얻는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정당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까 질문 중에서 노조-정당의 관계에서 노조의 영향력에 대해서 말한 것은 노조의 영향력을 과도평가하는 것 같다. 노조에게 실제 힘이 있는 것 같지만,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결정하지만 많은 부분들은 정당과 노조 상층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 상층부들이 가지고 있는 경향들이 관료화될 위험이고, 권력장악이라는 목표달성의 문제가 아닌가? 이런 과정에서 국민정당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면, 노조와 당도 변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맑스가 노조를 사회주의를 위한 학교라고 한 것이 옳다. 현재 정당은 정권장악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부터 문제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조는 현장조직이나 기본 대중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변질할 가능성이 적다. 또 정치적인 문제가 생기면 노조가 다시 정치적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정당은 어려울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공산당이 못하는 일을 노조가 대리정당으로 했다는 점에서 왜 정당이 필요한가를 되물어야 한다.

그게 잘 안되니까 정치세력화를 얘기하지 않는가?


정치세력화 얘기를 볼 때, 목표가 정권 장악으로 치우친 것 같다. 오히려 교육이 강조되어야 진정하게 정권을 잡을 것이다.


1) 그러나 이러한 인적 중복이 간부의 겸직이나 조직적 차원의 의사결정 참여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사민당 국회의원들이 노조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은 단지 득표에 유리하기 때문이며, 실제 이 의원들이 사민당이나 국회에서 노조원 자격으로서 행동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민당 의원과 노조원의 인적 중복은 조직노동자들이 사민당의 주요 지지기반이 됨을 설명해 줄 뿐이다.


2) 1980년대의 정부가 크락시 정부를 비롯해 많은 경우 사회당을 포함한 연정이었지만, 1960년대 초와 달리 사회당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좌파이기를 포기하고 중도화되었기 때문에(Donovan 1989) 80년대 이후의 기민당․사회당 연정은 중도정부라고 해야 옳다.


3) 이탈리아 공산당(PCI: Partito Comunista Italiano)은 1991년 ‘좌파의 민주당(PDS)’으로 개명한 후 1998년 다시 ‘정당(Partito)’을 삭제하고 ‘좌파 민주주의자(DS: Democratici di Sinistra)’로 개명했다. 1차 개명은 탈당한 정통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좌익 소수파들과 연합하여 재건공산당(RC)을 창당함으로써 기존 노선과의 단절이 뚜렷했던 것과 달리, 2차 개명은 중도-좌파 정권(월계수 연맹) 출범후 부총리로서 좌파민주당내 월계수파를 이끌던 벨트로니(Walter Veltroni)와 당수로서 다수파 지도자인 달레마(Massimo D’Alema)간 노선 논쟁과 주도권 다툼의 결과로 노선의 변화나 ‘정당’으로서의 조직변화와 연결되지는 않았다. 벨트로니가 월계수연맹을 미국의 민주당과 같은 느슨한 형태의 통합된 정당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반면, 달레마는 월계수연맹과 무관하게 좌파민주당을 중북부 유럽 좌파들의 특성들을 소화하며 중도적 좌파들까지 포함하는 범좌파 연합체로 재조직할 것을 구상했었다. 그러나 달레마의 보다 궁극적 목적은 강령노선의 변화보다, 월계수연맹이 정부를 이끌어 가는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강력한 수권 주체를 세우고, 더 나아가 국내와 전유럽 좌파 진영에서 입지를 높여나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2차개명에서 ‘당’의 생략은 실질적 의미를 갖지 못하므로 DS도 ‘좌파민주당’으로 번역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2차개명과 관련된 논쟁과 정파간 갈등에 관해서는 특히, Vignati. 1998과 Spini. 1998 참조..


4) “La piena occupazione nella societa che cambia: I lavori, il loro riconoscimento sociale”. Documento congressuale, Speciale Congresso 2, Nuova Rassegna Sindacale, Vol. 42, No. 27  부록, 1996.7.31, 54-57: “Il nuovo Programma fondamentale della Cgil”. Speciale Congresso 2, Ibid, 31-32.


5) Nuova Rassegna Sindacale, Vol. 43, No. 20, 1997.5.27, 1: No. 21, 1997.6.3, 1.


6) Manifestazione nazionale Roma 20 giugno 1998 CGIL CISL UIL 참조..


7) La Repubblica. 2000.3.6.


2000-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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