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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국제주의, 실천적 국제연대의 현장!

현장에서 미래를  제55호
조돈희

국/제/노/동



노동자 국제주의, 실천적 국제연대의 현장!

조 돈 희
현대중공업 해고노동자/노동자의 힘(준) 상임운영위원




나는 간혹 평생에 한번 ‘해외여행’을 나가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뜬금없이 해보곤 했다. 그건 내가 ‘평생을 가도 외국에 나가 볼일은 아마 없을 거야’하는 판단 때문이었다. 생각들 해보라! 내가 외국에 나갈일이 뭐가 있겠는가. 가까운 가족이 외국에 나가 살면서 초청하길 하나, 내가 영어를 잘해서 어떤 조직의 국제사업을 담당하길 하나, 그렇다고 내가 돈 많고 할 일 없어서 여행이나 다닐 형편이 되나, 이리저리 따져봐도 난 도대체 해외에 나갈 일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맑스와 히틀러의 나라, 그 머나먼 독일을 갔다 왔다는 거다. 그것도 일주일 동안이나 그곳에서 머물렀으니 사실 내게 이 문제는 정말 일생에 큰 사건이다. 그것도 노동자 국제연대를 위해서 갔다 왔으니 내겐 정말 영광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노동자 국제주의, 실천적 국제연대의 현장!’ 이라고 붙여 보았다.

나는 정치조직 ‘노동자의 힘’의 대표단의 일원으로 독일에서 열린 노동운동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였고, 더불어 두 군데의 각기 다른 소규모 국제연대 모임에도 참여했다. 이번에 독일에서 열린 국제회의는 현장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노동운동 네트워크인 ‘TIE’(Transnationals Information Exchange, 초국적정보교환)가 개최한 제4차 국제회의였다. 그리고 우리 대표단은 독일 조선소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위한 모임을 갖기 위해 독일북부의 항구도시 킬을 방문했고, 돌아오는 길에 브레멘에서 독일의 몇몇 좌파 활동가들과 만나 경험과 전망을 교류하였다.

여기서는 ‘TIE’(이하 ‘타이’로 표기함)회의에 참여하며 느꼈던 소감과 간략한 내용을 소개할 작정이다.


‘타이’ 회의

‘타이’는 비공식 현장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제 노동운동 네트워크이며, 2000년 3월 16일 제4차 국제회의가 19일까지 3박 4일간 독일 쾰른이라는 도시의 라인강변 유스호스텔에서 진행되었다. 지난 93년이래 2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국제회의는 이번이 네 번째로, “근본적 변혁을 위한 노동운동 건설”(Building a Labor Movement for Radical Change)이라는 주제하에 세계 25개 국가에서 약 150여명의 활동가들이 참석하였다.
전체토론과 소그룹토론으로 나뉘어 진행된 이 행사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느낌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맑스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회의에 참여하면서 한국에서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약칭 전국회의)가 회의하는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전국회의가 한 달에 한번 모처럼 모여서 자기 단사활동을 보고하고 정치적 사안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언어의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어 충분히 발언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면에서 그 회의가 내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친근감까지 느끼게 했다.

첫 일정에 들어가 참석 국가별 인사에서 동지들은 많은 보고와 문제의식을 쏟아 냈다. 미국의 노동자도, 독일의 노동자도, 영국의 노동자도, 멕시코의 노동자도, 남아공의 노동자들도 자본주의를 구제하고, 강화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앞에선 하나같이 똑같은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리해고와 노동강도의 강화, 생산방식의 전환, 임금을 포함한 노동조건의 하락, 하청 등 비정규직의 극대화, 노동조합운동의 개량화,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등등.

특히 자동차산업에서 가장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는데 주로 기업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발생되는 대량해고의 문제와 생산방식의 전환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에 직면했을 때 ‘투쟁’ 외에는 본질적으로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상황에 직면하면 그들은 생존권보장을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결국 자본의 구조조정은 단행되고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몰리거나 새로운 직장을 갖게 되는데, 다시 다른 직장에 취업하더라도 이제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형편이 바뀌게 된다. 이 모든 문제가 자본주의 그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첫 발제를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노동운동!’으로 제기하게 된 모양이다.


기조발제: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노동운동’

기조발제에서 프랑크푸르트대학의 Boy Luethje 박사는 공장과 노조에서의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과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계급의식적 현장운동 강화를 강조하며, 기존의 ‘쇠퇴한’ 노조운동을 변혁시키는 데만 몰두해서는 노동운동은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자본가계급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자신의 탈출구를 마련하고 있다고 역설하며, 그들의 자본축적 위기(과잉축적 위기)의 원인이 자신들이 도입해온 생산조직 형태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었으므로 또 다른 생산조직형태의 변화를 통해 과잉축적을 파기하여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정규직노동자(중심노동자)가 적어지고, 비정규직노동자(주변노동자 - 발제자의 표현)가 확산될 경우 노동자들을 대중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경고하고, 대중적 노조운동의 조직적 대안으로 ‘분야별 세계 단일노조’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급진적으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분야별 단일노조란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 세계 단일노조를 말하는 것이다. 이 발제에 대한 토론에서 폴란드의 한 동지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나는 폴란드에서 맑스 이데올로기에 대해 나쁜 경험을 했다. 현실의 문제를 맑스 이데올로기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노동자들은 모든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연대와 실천의 문제이다. 모든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된 노동운동이 필요하다.”

나는 발제자의 새로운 노조조직운동 전망에 대해 세계 단일노조 건설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좀 ‘황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러한 전망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폴란드 동지의 맑스 이데올로기에 대한 ‘나쁜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주장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물어 볼 기회도 갖지 못했다. 이 뿐만 아니라 전체 일정 중 서로 토론하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언어소통의 한계로 무척 아쉬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어쨌든 첫 발제에 이어 두 번째 발제가 있었는데 이 동지도 새로운 노동운동과 새로운 조직형태를 주장했다.


두번째 발제: TIE 독일의 활동가 옌스 훈(Jens Hubn)

‘우리가 처한 조건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라는 주제의 다소 ‘심오한’ 발제에서 그는 독일의 사민당, 금속노조 등 대중조직은 더 이상 계급적 노동자 조직이 아니라고 비판하며 새로운 노동운동 조직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또 신자유주의 이전에 공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살펴보겠다면서 1960년대 이태리 북부에서 ‘반자본주의 노동자조직’이 있었는데 노동자들의 저항은 자본가들의 새로운 생산방식, 즉 ‘포드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는 적대적이므로 노자관계를 일상생활 속에서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며 노동자의 투쟁이 자본으로 하여금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하도록 한 과정임을 우리들에게 각인시키려 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한 활동가가 60년대의 경험으로 쓴 책의 일부를 소개했다. “우리 노동자들은 찌들린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노동해방’을 사고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노동자(고용된 노동자)생활로부터 해방의 의미로 ‘노동자 해방’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발제에 대한 토론에서 “독일노조가 개량화된 것에 대한 독창적 대안은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분야별 세계 단일노조”라며 첫 발제자의 견해와 같이 했고, “독일 산별노조 IGM 등도 일국 대산별노조이지만 효율적이지 못하다”며 효율적 노동운동조직을 모색하는 듯했다.
토론에 나선 영국 ‘로버’ 자동차회사 숍스튜워드 ‘토니’는 전체 자본은 신자유주의적 인수합병을 추진중에 있으며 공장별 노동조건에 대해 토론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로버사의 매각에 대응하는 연대투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토니는 회의 마지막에 로버사 매각반대와 노동자 완전고용보장을 위한 연대성명서를 조직했고, 독자들이 기억하듯이 그들은 4월 2일 총파업을 단행하여 강력한 가두투쟁을 전개했다. 이들의 투쟁소식은 금속산업연맹 신문과 현대자동자노조 신문, 일반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된 바 있다. 그는 또한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민족주의에 빠져있는 것이 문제라며 이를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라고 주장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한 동지는 토론에서, 새로운 조직의 형태는 수평조직이어야 한다면서 그것은 평의회와 같은 것인데 자신은 미래의 조직을 ‘네트워크 노동조합’으로 보고 이를 추진 할 계획을 밝혔다. 정보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지구적으로 자본의 힘이 강력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전세계 노동자들이 어떠한 식으로든 조직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러시아의 한 동지는 자본을 분열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중이라며, 노조산하에 각국 자본운동 정보를 수집․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타이’회의는 이렇게 시작되어 2박3일간 전체토론과, 주제별 소그룹토론을 병행하며 강행군되었다.

‘타이’회의에 대한 일반적 소감

전체토론과 주제별 소그룹 토론으로 진행된 타이회의는 힘들게 모인 자리인 만큼 모두 시간을 아껴 열심히 토론하고, 서로 연대를 위한 조직화 사업도 참으로 열심이었다. 타이회의의 기풍은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하고 상대의 주장을 비판없이 성실히 경청하는 것이었다.
이는 국제연대회의인 만큼 한정된 시간의 문제와 통역의 한계를 넘어 실천적인 국제연대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였지만, 분명 노동운동의 건강한 태도이다. 이는 우리 운동에서도 도입되어야 할 기풍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모였던 동지들의 정치적 입장을 파악하다 보면 수도 없이 많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세계의 다수자인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체제와 소수 자본가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아주 뜨거운 동지애를 확인하고 있었다. 공동의 적을 향해 어떻게 공동으로 대처할 것인가? 그것이 관건이었다.
특별히 합의해서 쌈박하게 정리된 것 없이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그들과 우리는 지속적인 노동자 국제연대를 결의했고, 함께 인터내셔널가를 불렀고 연대성명서, 연대 항의서한을 작성했고, 인터넷메일을 교환했다. 노동자들은 어느 국가나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응하고 있었고 현장에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었다.
터키 동지들이 우리에게 “한국 노동자들이 그 엄혹한 국가의 억압적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조합을 건설했고 그렇게 강력한 대중투쟁을 벌일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조건과 방식이 무엇이었는가?”라고 질문했던 것도 이러한 국제적 연대의 맥락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마치 현장조직이 전국적으로 모여서 타 사업장 현장조직동지들의 투쟁보고를 듣고 토론하면서 서로 배우고 돌아가듯이, 비록 강력한 공동투쟁 결의를 합의하지는 못했지만 현장운동을 중심에 놓고 꾸준한 연대활동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처럼...


‘타이’회의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동지들
영국 로버 자동차회사의 숍스튜워드인 토니는 158센티미터 정도의 자그마하고 왜소한 체격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활동가이다. 그는 자신이 소속된 회사(로버)가 중간 도매인에 의해 매입되고 다시 BMW로 매각되는 방식으로 공장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BMW와의 연대 파업투쟁을 열심히 조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지와 무관하게 매각될 경우 자신을 포함한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될 것이며 해고되면 시간이 많아지기 때문에 독일과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투쟁을 조직하고 선동할 것이라고 자신의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타이회의 내내 오로지 연대파업과 국제연대를 위한 조직화에 골몰하는 듯했다. 결국 그는 회의 마지막날 ‘로버사 매각 반대! 노동자 완전고용보장!’을 위한 연대성명서를 조직했다. 회의에 참석한 우리 모두는 서명으로 연대에 참여했다.
한국에서 4월2일 “로버사 노동자들이 매각에 반대하는 파업을 단행했고 매각될 경우 약 8천여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될 것”이라는 국제소식이 보도되었을 때 그렇게 열심히 국제적 연대파업과 실천적 연대를 조직하던 ‘토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독일 TIE의 활동가로 이번 회의를 조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옌스는 60을 바라보는 나이로 과묵한 편이었지만 편안한 친근감으로 세계의 모든 동지들을 대했다. 회의 마지막 전날 저녁 뒷풀이 시간에 그는 두루두루 각국의 동지들을 만나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우리에게도 그가 다가왔다.
그는 “성급해서는 안된다. 충분한 교류와 연대와 상호간의 신뢰를 튼튼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국에서 초청하면 언제든지 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옌스는 “우리의 모든 행위가 자본이 짜놓은 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알듯 모를듯한 메시지를 던졌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옌스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통역과 우리 일행을 도와주시느라 고생한 독일에 계신 많은 한국분들, 우리를 초청해 주시고 도와주신 홀거 하이데 선생님과 황선길씨 그리고 또 많은 분들이 우리 일행을 위해 고생을 했다. 이 기회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한/노/정/연

2000-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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