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넝마주의와 음악연주자
- [개혁교회와 지구 경제: 대화]에 참석하고 와서 -
홍 근 수
이사장 / 향린교회 목사
나는 지난 2월 27일부터 4월 16일까지 만 3주간 동안 미국과
브라질 등 3개국을 방문하면서 개최되었던 “개혁교회와 지구
경제: 대화”란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이번 세미나
참석으로 평소에 나의 개인적 삶의 차원에, 그리고 우리 사회의
차원에 도전하였던 경제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민’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한국, 브라질, 미국 세 나라의 개혁교회
대표들이 참가한 이번 경제문제에 관한 대화 프로그램은 한국의
서울, 미국의 시애틀, 그리고 브라질의 상파울로 등지를 방문,
경제 현장을 직접 가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듣고
대화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에 내가 느낀 것은 경제 지구화와 IMF의 구조조정으로
민중들의 수난과 아픔이 얼마나 큰가를 우리는 지난 2년 간 우리
눈으로 직접 보아 왔다. 이들 직장 잃은 실업자들은 새로
‘입문’한 노숙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번 경제문제 세미나에서 서울에서의 1주일간의 세미나
후에 미국과 브라질 에 가서 각각 1주일씩 세미나를 가졌다.
이번에 배운 것도 많고 느낀 바도 많지만, 여기서는 브라질에서
느낀 점에 대해서만 잠깐 써 보기로 한다. 내가 처음으로 가 본
브라질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미국에서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아주 달랐다. 우리는 그곳에
가서 학자들의 발표도 들었지만, 넝마주이들, 집 없는 사람들,
그리고 땅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대화도 나누었다.
그리고 그 사회의 강도들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경험이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내 뇌리를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다.
먼저 쓰레기 줍는 넝마주이들의 일터를 방문하여 그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코파르’(Kopar)라는 종이 줍고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는 청소부들이었다. 그들은 재생
쓰레기들을 손질하여 중간상인을 재치고 직접 수요자에게 팔아서
푼돈을 버는 사람들이었다. 소위 우리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3-D
(dangerous, dirty, disgusting 의 첫 글자를 따서 그렇게
말한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 중 특히 데레사라는 여인의 이야기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말을 잘 하지 않을 것 같이 매우
수줍어하였으나 일단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였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여 년 동안 그곳에 일했던
어머니의 권유로 코파르에 들어와서 일하게 되었고 지금 나이
30세라고 한 그는 다른 직장에서 오라고 해도 갈 생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넝마주이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넝마주이가 아니라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가 넝마주이로 번 돈으로 색스폰을 사서 틈틈이
음악을 즐긴다고 하여 나는 놀랐다.
그 뿐만 아니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가 토요일
오후에 어린이들의 음악 지도를 하는데 - 말하자면 작은 규모의
음악학원 같은 것 - 학생들에게서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었다. 돈이 없는 어린이들이기는 하지만, 음악을 배우고
싶어하기에 그들에게서 돈을 받지 않고 그냥 음악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나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른 데서 들어 본 일이
없었기에 참으로 크게 감동되었다.
나는 또 그곳에서 종이줍기는 사람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 관하여 말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강도들이었다.
직장이 없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너무도 달랐다. 우리 일행 가운데 미국 교회에서 온 두
목사들이 저녁 식사 후에 호텔 주위를 산책하러 나갔다가 불과
10미터 앞 노상에서 강도를 당하는 장면을 보고 이들이
혼비백산하여 돌아와서 영웅담 같은 것을 늘어놓았다. 강도에
대한 어떤 ‘선입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고 자연히 강도란
말만 들어도 무서운 생각이 났다. 또 브라질을 가는 비행기에서
옆에 앉았던 한 백인 남자가 브라질에 가면 강도와 도둑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고 특히 저녁에는 절대로 집밖을
나가지 말라고 충고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 강도들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들에 대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선입견을 말갛게 씻어주었다. 그곳에서
목회하고 있는 어떤 한국 목사는 이들 강도들이 사는 달동네
같은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히 그런 무서운 고장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의아해 하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그 목사님은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목사님의 말에 따르면,
달동네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도심지에 출근하다시피
하여 거기서 강도짓을 하고 저녁에 집에 오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불문율의 철칙은 자기네 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강도짓을 하거나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목사님이 그들
동네에서 사는 것을 알고 그들은 오히려 그 목사님을 사랑하고
아끼며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목사는 브라질의 그 어느 곳 보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이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 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또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그 나라에 집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다. 브라질은 알라스카를 빼면 미국
본토만큼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고 자원도 풍부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나라에 집 없는 사람들, 땅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은 아주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브라질
사람들은 대체로 천진난만해서 모든 것은 정부가 알아서 다
해주니까 그저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가난하고 배고파도 참고 조용히 사는 것이 브라질
사람들의 천성이라고 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그들을 지배해 왔던
외세가 그런 생각을 주입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집 없는 사람들, 땅 없는 사람들이 단결하여 집 갖고 땅 갖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이들이 일반적으로 브라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대표적인 사람들인
것같다.
‘집 없는 사람들’이 직접 수도 주변의 어느 곳에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 집을 짓고 있는 건축현장과 또 시내 빌딩을
점거하여 살고 있는 현장을 가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철거민들이나 아주 빈한한 사람들이 자기 땅이 아닌 곳에
천막이나 비닐 하우스 같은 것을 치고 살다가 후에 그곳이
개발되면 아파트 딱지를 얻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집 없는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비어 있는 빌딩을 파악한 뒤
어느 날 집단적으로 그 빌딩을 쳐들어가 차지하여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사실을 설명하는 인권 선교사는 이렇게 놀라운 사실을
말해 주었다. 아마 그들이 금요일 자정쯤에 쳐들어갔을 것이라는
것, 경찰은 보통 쉬는 날인 토요일에는 출동하기를 꺼린다는 것,
그래서 이들 불법 점거자들이 그곳을 24시간을 점유하고 있을 수
있었을 것이고, 일단 그렇게 되면 사법부에서 퇴거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그곳에 그대로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재산에는
사회적 성격이 있음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번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당국이 강제력을 쓰지 않고 묵인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한국의 철거민들이 전투경찰에 당하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비록
자신들의 재산은 아니지만, 그들은 힘으로 차지한 그 빌딩의
문에다가 ‘이것은 내 집, 내 나라’ 라고 써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누가 오면 문구멍으로 내다보면서 찾아 온
사람을 먼저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는 모양이었다. 이는 지주나
경찰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이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지는 몰라도 물질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것이지 부의 축적의 대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 듯 했다. 이것은 적어도 구약성서의 희년 사상과 머리 둘
곳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재물에 관한 교훈의 핵심과 일치한다고
생각된다.
브라질에는 이들 집 없는 사람들 외에도 또 땅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3월 9일(목)에 우리는 버스로 근 5시간을 가서
이따페바(Itapeva)란 곳에 갔다. 수백 가정이 그 시골 땅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본래 땅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몇 년 전에
그곳에 쳐들어 와서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 땅을 각
가정마다 골고루 분배하여 농사와 생활을 함께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경찰과 싸우면서 19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
죽음의 ‘대가’로 지금은 그곳에서 매우 평화롭게 농사를
지으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살 수 있었는지 모른다.
희생 없이 어떤 의미 있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절감했다.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땅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버린 19명의 사람들을 잊지 말고 길이길이 기억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