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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계급정치와 전선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55호
김영수




노동자 계급정치와 전선운동


김 영 수

연구위원/ 한신?상지대 강사, 정치학







변화되고 있는 노동자 계급의 ‘자주성’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으로 전체 산업구조1)의 전면적 개편과 더불어 사회구조의 개편이 도모되면서 신자유주의 유령이 온 나라를 배회하고 있지만, 그 유령을 퇴치하기 위한 투쟁의 굿판은 좀처럼 보기가 드물다. 굿판이 벌어지지 못하게 하는 김대중 정권의 고도의 통제전략이 그 근원이라 할지라도, 어쩌다 벌어지는 굿판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설처럼 속빈 강정에 불과한 수준이다.

‘IMF반대 사회개혁 및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와 ‘신자유주의 반대 민중생존권 쟁취 민중대회위원회’ 등의 전선운동체가 중심이 되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전개하였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일환인 노동자․민중대회는 의례적인 행사인 것처럼 형식화되고 있으며, 노동자․민중 진영 내부의 주요 세력들은 투쟁전선체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데 역량을 투여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전 계급적 투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의 총선투쟁 역시 부르주아 선거판에 매몰되어 신자유주의의 유령을 퇴치하기 위한 굿판을 벌이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였며, 심지어 민주노동당은 ‘득표확대투쟁 및 의원당선투쟁’2)에 집중하는 선거투쟁을 전개하였다.

청년진보당의 최광은은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의 4․13총선」(현장에서 미래를, 2000년 4월 호)이라는 졸고의 내용에 대해 몇 가지 비판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을 동렬에 놓고 의회주의, 합법주의, 선거주의 등으로 비판하는 점, 1997년 대통령 선거투쟁에 투쟁을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역사적인 투쟁사례로 설정할 수 있는가라는 점” 등이다.

물론 1997년 대통령 선거투쟁에 대한 평가의 차이가 존재하고, 또한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은 4․13총선투쟁의 기조와 목적, 총선투쟁의 전략과 전술 등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진영이 4․13총선에서 정책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 대 그에 반대하는 정책, 정치이념적으로는 반(反)보수주의 대 보수주의, 계급적으로는 총자본 대 총노동간의 전면적인 대결구도로 선거투쟁을 전개하면서 노동자 계급정치의 ‘계급적 자주성’을 획득해야만 할 상황이었다는 점을 전제로 할 때,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은 반(反)보수주의 정치이념의 ‘계급적 자주성’을 의회주의와 선거주의에 기반하는 ‘진보정당 혹은 국민적 정치세력화’로 희석화한 것이다. 또한 1997년 대통령 선거투쟁의 중심이었던 국민승리21 내부에 반(反)보수주의 정치이념의 ‘계급적 자주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그 차제를 희석화하는데 몰두한 세력이 존재하였고, 그러한 세력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이 창당되었다는 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국민승리21 내부의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1997년 대통령 선거투쟁은 노동자 계급정치의 역사적 성장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즉 노동자 계급운동의 양대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노동자 정치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이 긴밀하게 결합한 상태에서 보수주의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이었고, 한국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자주성’의 토대3)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 투쟁이었다.

역사적으로 한국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 계급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주성, 민주성’을 획득하고 어용노조의 반노동자적 ‘관료성’에 저항하는 투쟁의 과정에서 성장하였다. 이는 또한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 정치운동이 결합했던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노동자 계급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정치운동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자주성’을 확보하려 하면서 노동자 계급정치의 주체를 형성해 왔다. 생존권 확보투쟁, 어용노조 민주화 투쟁, 법․제도 개선투쟁, 반(反)정부 민주화 투쟁, 반(反)체제적인 사회변혁투쟁 등 어떠한 형태의 투쟁으로 현실화되든 그러한 제반 투쟁들은 노동자 계급을 국가-자본과의 관계에서 계급갈등의 실질적인 주체, 즉 ‘자주적인 계급주체’로 나서게 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은 노동자․민중에게 고통을 요구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지만, 현실 노동자 계급운동의 전국적 조직주체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국가-자본의 전략적 목적에 조응하는 수준의 투쟁의 수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부터 한국 노동자들은 국가-자본으로부터 획득한 노동자 계급운동의 ‘능동적 자주성․계급적 자주성’을 상실했는가? 노동자 대중들이 그것을 버렸는지, 노동자 계급운동의 지도부들이 그것을 버렸는지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힘들지만, 노동자 계급운동은 국가-자본에 대항하는 저항주체로서의 ‘능동적 자주성․계급적 자주성’을 점진적으로 탈각하는 대신 오히려 협조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주체로서 ‘수동적 자주성․탈계급적 자주성’을 강화해 나가는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자주적인 계급주체’로서의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치조직


비록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자본이 “노동자 계급을 영속적으로 해체-분열시키고, 피지배계급의 정치적․조직적 연계망을 단락”4)시키면서 노동자들의 계급적 정체성(Identity)을 약화시키지만,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정치운동의 다양한 주체들과 긴밀하게 결합된 상태에서 노동자 계급운동의 주체로 성장한다.

한국의 노동자 계급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중적으로는 노동조합운동의 성장이었고, 정치적으로 노동자 계급정치운동의 성장이었다. 조직 형식적으로는 1990년의 전국노동조합협회와 1995년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국가-자본으로부터 자주성을 획득한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주체로 현실화되었지만, 내용적으로는 단위 사업장 노동자 대중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제반 이해를 획득하는 투쟁의 주체로 나섰다. 노동현장의 노동자 대중들은 노동착취에 저항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자기조직”5)인 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부르주아 계급에게 저항하는 ‘자주적 계급주체’로서의 대중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지배에 대항하는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명백하게 자립성을 견지하고, 노동자 대중들의 요구와 바램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대중주체의 민주적 운동”6)인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자 정치운동과 성장의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정치를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국가-자본의 통치전략으로 말미암아, 노동자 정치운동은 노동자 계급운동에서 ‘금단의 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동자 정치운동의 활동가들은 소규모적이고 비밀리에 정치활동을 전개하여 노동자 대중들에게 ‘자기권리 확보의식’을 깨우치고 노동조합운동 발전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역사적으로 한국 노동자 계급정치는 정치활동의 다양한 주체, 즉 정파조직의 형태, 혁명적 전위조직의 형태, 정당의 형태, 정치적 노동운동단체 형태 등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이와 같이 정치적 조직주체로서 노동자 계급의 제반 이해를 대변하고자 하는 노동자 정치조직과 대중적 조직주체로서 조합원들의 제반 이해를 추구하는 노동조합은 노동자 계급운동의 양대 중심축으로서 “노동자 계급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총체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노동자 계급주체”7)이다. 즉 부르주아 계급정치에 맞서서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강화해 나가는 계급주체들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정치조직과 노동조합은 각각의 ‘자주적 정체성’에 기반하는 상호 유기적 관계를 형성․유지하면서 부르주아 계급정치에 대한 투쟁전선의 핵심적 주체로 나선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제반 이해조차 통일시키는데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 정치조직이 전체 노동자 대중들과 민중들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는 주체로서 ‘계급적 투쟁전선’을 형성하고 강화해 나가는 주도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민주노총은 현재 국가-자본으로부터 획득한 합법성을 토대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특히 조합원 수의 증가와 국가의 재정지원 확보 등 ‘양적 성장’8)의 조건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주체로 나서서 4․13총선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조직주체들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최근 4․13총선의 결과로 소멸9)하게 된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이 존재했었지만, 이 이외에 ‘노동자의 힘’,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전국노동운동연합, 각 지역과 노동현장의 소규모적인 단체 등도 존재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이러한 조직주체들 모두 부르주아 계급의 제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주의 정치세력에 맞서서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성’을 추구한다. 문제는 실질적인 측면에서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성’을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우산 속’에 가두려는 ‘선거주의 및 의회주의 중심의 노동자 정치운동’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무튼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치조직은 계급갈등의 사안들을 둘러싼 투쟁의 과정에서는 상호 독립적인 주체로서 긴밀하게 연대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독립적인 노동자 계급운동의 조직주체로서의 정체성을 각각 유지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조직화된 조합원을 중심으로 대중조직으로서의 자주적 정체성을 구축하지만, 노동자 정치조직은 조합원뿐만이 아니라 조직화되지 못한 노동자 대중 모두를 중심으로 정치조직으로서의 자주적 정체성을 구축한다. 대부분 노동자 정치조직은 사회체제의 변혁을 둘러싼 계급갈등의 지점에서 노동자 계급정치를 구현하려 하고,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이해를 둘러싼 계급갈등의 지점에서 노동자 계급정치를 구현하려 한다. 또한 노동자 정치조직과 노동조합은 당면한 계급갈등의 사안들을 해결하기 위한 과제도 다르게 설정될 수 있다. 노동자 정치조직이 각각의 사안들을 전체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추구하는 계급적 사안으로 전화시키려 하는 반면에 노동조합은 각각의 사안들을 기본적으로 조합원 중심의 사안으로 전화시키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조직주체 중 어느 한 조직주체라도 다른 한 조직주체에 종속되거나 의존하는 상호관계가 형성된다면, 독립적인 각 조직의 자주적 정체성이 약화되거나 자주적 활동의 영역이 매우 협소하게 제한될 것이다. 노동조합이 특정 정치조직의 ‘자주적 정체성’만을 지향한다면,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자주적 정체성조차 불신하는 경향성을 드러낼 수 있다. 특히 체제변혁적인 노동자 계급정치가 원천봉쇄(源泉封鎖)되어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나 정치조직을 결성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특정국면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조직에 대한 조직적 지지도 가능하다. 또한 각각의 ‘자주적 정체성’에 기반하는 정당과 노동조합이 상호 다양한 관계, 즉 종속 및 의존관계, 연대 및 지지관계, 갈등 및 경쟁관계 등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 투쟁은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치조직 스스로 정립하고 있는 자주적인 정체성을 강화하는 과정이자 조직 구성원들에게 자주적 활동의 동력을 강화하는 과정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투쟁이 자주적 정체성에 기반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영역과 그 내용을 매우 협소하게 제한해서는 안되고, 또한 노동자 대중들의 ‘정치적 자주성’을 훼손해서도 안된다. 노동조합의 조합원과 일반 노동자 대중들은 불균등한 계급의식과 정치의식으로 말미암아 ‘노동자 계급정치의 정치적 자주성’을 통일시켜 내기에는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각각 자신의 ‘자주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상호관계를 재편하여야 한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동일한 당명으로 재창당의 과정을 거친다면, 이제까지 형성․유지되어 왔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간의 관계가 발전적으로 해소되면서 보다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 대중들은 선거정치의 동원대상이 아니다


노동자․민중은 4․13총선을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중간평가의 계기로 삼았지만, 김대중 정권은 4․13총선을 ‘안정 속의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라는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와 ‘개혁정권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정치적 개혁강화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의 정당성과 그 동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는 김대중 정권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주요 장치인 선거와 의회를 이용하여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대중 우상화 전략과 계급이해 은폐전략을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부르주아 계급이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확보․강화해 나가고, 그러한 정치권력을 활용하여 부르주아 계급의 제반 이해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4․13총선을 계기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우산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제반 이해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주체가 정당의 형태로 출현하였다. 4․13총선에서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를 중심으로 정치활동에 주력했던 민주노동당이다.

이러한 방식의 노동자 정치운동은 1990년을 전후로 하여 이번 2000년 4월 총선 시기까지 제도권 의회에 진출하려 했던 진보정당운동으로 표출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운동의 결과는 완전한 패배였다. 왜냐하면 의회공간에 단 한 명의 후보도 당선시키지 못하였으며, 정당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유효 득표조차 획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이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를 의지를 내세우면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전국 득표율이 1.2%, 청년진보당은 전국 득표율이 0.7%에 불과했다. 의회진출의 전략적 요충지역으로 상정했던 노동자 밀집지역에서조차 민주노동당의 후보들은 낙선하였고 보수정당의 후보들만이 당선되었다. 노동자 대중들의 투표행태 및 정치의식의 현 주소, 즉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성’을 상실시키는 선거정치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출마지역 평균 득표율이 13.1%였다는 점을 내세워 ‘절반의 성공 또는 매우 아쉬운 성공’, 즉 ‘원내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하였지만, 노동자들이 자신감과 노동자 계급정치의 전망을 갖게 된 총선투쟁’이었다고 평가한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대표는 ꡔ한겨레ꡕ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창원 을구에서 38.7%, 울산 북구에서 41.8%, 울산 동구에서 35.07% 등 당선권에 근접한 득표를 하였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치세력이 대안세력이 될 수 있는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이번 총선에서 최대 장애 요소는 지역주의였다. 그러나 2002년 지방선거에서 다수의 당선자를 배출하고 2004년 총선에서는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2008년 제1야당 달성, 2012년 집권이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상적 활동을 통해 지역주민들과 접촉을 계속하면서 다른 정당과 다르다는 점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 단순히 노동자뿐 아니라 중소상인, 중산층에도 그들의 이익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당은 우리 당이라는 선전을 해나갈 것이다.”10)

권영길 대표는 계급연합적인 진보정당운동의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희망의 가능성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상활동의 강화와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지역주의의 극복에서 찾고 있다. 물론 선거정치의 지역주의와 지역대표제는 부르주아 계급의 계급이해를 은폐하는 주요한 전략이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정치가 극복해야만 할 주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지역대표제에 기반하는 선거정치를 토대로 이 과제를 실현하려 한다면,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지역주의는 오히려 다양한 형태, 소지역주의, 지역 연고주의 등의 형태로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그늘에서 그러한 과제를 실현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 계급의 대중투쟁의 정치가 지역주의에 기반하지 않듯이, 그러한 과제는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틀 자체를 부정한 상태에서 전개하는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성 확보투쟁으로 자연스럽게 실현할 수 있다.

노동자 대중들도 스스로 선거정치의 틀 내에서 정치적 지역주의의 족쇄를 풀지 못하고 있지만, 대중투쟁의 정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는 정치적 지역주의의 족쇄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자 대중들이 부르주아 선거정치의 틀 내에서 투표행태로 표출하는 정치적 자주성의 정도이지, 대중투쟁의 정치로 표출되는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성’의 정도가 아니다.

문제는 노동자 대중들의 ‘정치적 자주성’이 부르주아 선거정치의 투표행위만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깝게는 민주노총의 1996-1997년 총파업 투쟁, 멀게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1990년 전노협 건설투쟁․1990년 5월 반정부 민주화 투쟁 등은 노동자 대중들의 정치적 자주성을 표출하는 대표적인 정치행위였고, 노동자․민중의 투쟁전선운동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었다.

이는 노동자 대중들의 정치적 자주성이 부르주아 선거정치의 틀 내에서 표출되는 정도와 대중투쟁의 정치에서 표출되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이러한 대중투쟁에 기반하는 정치적 자주성이 부르주아 선거정치의 정치적 자주성으로 전화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을 제도화된 노동자 계급정당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주요한 원인은 노동자 계급정당의 존재 여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성’을 확보․강화해 나가는 구체적인 정치활동의 내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벽두부터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대표체로 나서서 4․13총선 투쟁까지 전개하였지만, 노동자․민중의 실질적 이해를 둘러싼 계급적 투쟁전선의 주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는 계급연합정당과 의회주의 정당이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투쟁전선의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급정당, 즉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적 정체성’에 기반하는 노동자 계급정당이 출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정치운동이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성을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선거정치와 의회정치’의 ‘우산 속’에 가두려 한다면, 노동자 계급대중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에 기반하는 정치활동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정체성을 상실한 선거정치의 피동적 주체로 동원되는 것이다. 선거정치 동원되는 노동자 대중들의 정치적 ‘자주성’만이 존재하게 된다.



전선운동의 강화와 노동자 계급정치의 새로운 주체 형성


지난 2년 동안 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금융․전기․전자․금속산업 등에서 외국 자본의 지배력 급상승, 국내 총생산의 42% 대에 달하는 국가 채무의 증가, 전체 시장 지배적 품목에 대한 5대 재벌의 지배력 상승, 전체 노동자의 60%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18.8%에 달할 정도로 빈민계층의 속출”11) 등의 현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악화시키는 과정에서 국내외 독점자본의 지배체제가 보다 강고하게 구축되었으며, 20대 80의 사회구조가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빈민계층이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이에 노동자 정치조직과 노동조합은 노동자 계급정치의 조직주체로서 지배계급 및 부르주아 정치권력에 대한 “탈구적 동력”12)을 강화하고, 그 동력을 토대로 노동자 계급과 민중들의 제반 이해를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연대투쟁을 전개하였다. 비록 민주노동당이 4․13총선 과정에서 “자본 대 민중,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형성시키지 못하는 투쟁, 민중생존권을 정치적으로 이슈화시키지 못하는 투쟁”13) 등을 전개하였지만, 노동자 계급정치의 또 다른 주체들은 IMF범국본과 민중대회위원회를 중심으로 각각의 ‘자주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부르주아 계급의 ‘계급이해 추구전략’, 즉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전 민중적 투쟁에서 긴밀하게 결합하였다.

IMF 범국본과 민중대회위원회가 그러한 투쟁의 중심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전선체는 노동자 계급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기타 시민운동 등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모든 역량을 통일적으로 결집시키고, 각 부문과 영역에서 발생하는 국가-자본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노동자․민중의 대중투쟁의 정치로 무력화시키는 것을 주요한 목적으로 하였다. 국가-자본의 계급이해 추구전략이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전선운동에서도 노동자 정치조직과 노동조합이 중심적 주체로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전선체 내에서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의 주된 주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투쟁의 주체로 나서지 못하였다. 이는 노동조합운동 내부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에 대한 인식의 통일성 부재, 즉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전면적 투쟁, 제한적 수용과 투쟁, 제한적 수용 등의 다양한 경향성이 지도부나 조합원 대중 모두에게 존재한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조직 역시 당면 투쟁과제에서 제시될 수 있는 전선운동의 정치적 방향성을 정립하고, 노동자․민중의 대중적 투쟁역량을 계급적 정치역량으로 전화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했다.

전선운동은 문건이나 지도부들의 머리 속에 박제화된 계급적 동맹투쟁이 아니라 당면 투쟁으로 현실화되는 계급적 동맹투쟁이다. 투쟁의 전선을 중심으로 국가-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민중들의 ‘능동적 자주성․계급적 자주성’이 복원․강화되는 투쟁인 것이다. 전선운동은 각종 형태의 조직만으로 형식화되는 노동자 계급정치가 아니라 실질적인 투쟁의 동력으로 현실화되는 노동자 계급정치가 구현될 수 있는 주요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부르주아 선거정치의 일정에 맞는 중장기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민중의 전선운동에 주력하기보다는 선거주의적 투쟁에 주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주체들과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결성하는 과정 또는 총선투쟁의 과정에서 발생했던 오류, 즉 정체성을 무화시켜 버린 계급연합적 정당, 정당 추진과정에서 범했던 패권주의적 태도, 후보당선투쟁으로 전락해 버린 총선투쟁 등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특히 민주노총도 조합원 대중들의 정치적 자주성을 인정하고 잠재적인 노동자 대중들의 정치적 폭발력을 현실화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 혹은 정치조직 결성 투쟁이 지도부를 중심으로 하는 투쟁이 아니라 전체 조합원 대중들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으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즉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가 발전적으로 해소되는 것 또는 노동자 계급운동이 정치적 계급주체를 새롭게 형성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 정치운동, 노동조합운동, 전선운동간의 관계에서 추론할 수 있는 세 가지의 과제를 모색한다면, 아래와 같다.


먼저 노동자 계급의 계급조직이 부르주아 국가-자본으로부터 ‘능동적 자주성․계급적 자주성’을 확보하여 한다.

노동자 계급정당이든 계급연합적 진보정당이든 혹은 다양한 노동자 정치조직이든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적 정체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민주노총 제5차 정치위원회에서는 “이번 4․13총선 과정에서 선거투쟁은 총파업투쟁의 교두보로서의 제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였다. 총파업투쟁이 선거운동의 전체적인 기조로 관철되지 못하고, 당과 민주노총의 정확한 지침도 없었다. 민중생존권, IMF문제, 진보와 보수의 문제 등을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시켜야 했으나 실패했다.”14) 이는 노동자 계급정치의 계급주체들이 부르주아 국가-자본에 대해 협조주의적인 ‘수동적 자주성․탈계급적 자주성’을 극복하면서 ‘능동적 자주성․계급적 자주성’을 복원해야만 하고, 이를 기반으로 부르주아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전선을 복원․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계급역관계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노동자 계급조직들의 계급역량이 투쟁의 과정에서 강화되어야 한다.

계급갈등의 사안들은 계급역관계의 정도에 따라 해결되는 방식이 달라진다. 노동자․민중들의 역량이 강화되지 않다면, 김대중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을 가속화할 것이다. 노동자 계급정당의 결성이 곧 노동자 계급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계급은 “노동조합의 조직역량 강화, 노동자 계급정치의 투쟁공간의 확장, 투쟁의 조직적 동원력과 전투성의 강화, 계급적 연대투쟁 및 동맹투쟁의 강화, 계급이해의 보편적 통합력의 강화”15) 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계급역관계의 우위에 설 수 있다. 이는 당면 투쟁의 과제를 둘러싼 전선운동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의 실질적인 투쟁의 동력을 반영하는 노동자 계급정치가 구현되는 과정에서 해결될 것이다.


셋째로는 노동자 계급운동의 구체적인 성과가 노동자 계급정치의 동력으로 전화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의 통일성을 추구하여야 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계급이해 추구전략’은 다양한 국가장치를 매개로 한다. 노동자․민중의 제반 이해를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한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적 수단인 것이다. 그런데 국가권력의 공간과 장치를 활용하는 방식의 투쟁은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의 통일성을 약화시키거나 그러한 투쟁의 통일성을 폐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투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운동의 정치적 주체들이 전선운동의 핵심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 계급이해를 둘러싼 당면의 투쟁과제들을 국가권력에 대한 통일적 투쟁으로 해결하고, 그러한 투쟁의 동력들을 노동자 계급정치의 동력으로 전화시켜 내는 정치활동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노동자 계급정치는 부르주아 보수정치에 맞서는 계급적 ‘자주성’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현실화되어야 한다. 물론 노동자 정치운동을 전개하는 최고의 조직형태는 노동자 계급정당이다. 그러나 정당이라는 조직 형식적 측면만이 전부는 아니다. 정당의 정강정책, 주체, 결성 방식, 정치활동의 내용 등 형식과 내용이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적 정체성’과 노동조합의 ‘자주적 정체성’을 폐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착취질서의 폐지, 지배세력의 지배질서로부터 해방되는 인간적 삶의 구현과 인간소외의 극복,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국가를 수립하려는 노동자 계급정치의 ‘자주적인 계급주체’를 새롭게 형성하고, 국가권력에 대해 통일적으로 투쟁하는 일상적인 전선운동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

한/노/정/연


1)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손호철, 「종속적 신자유주의와 초국적 자본의 정부를 넘어서 -4․13총선과 김대중 정부의 2년 중간평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2000년 4월 호를 참조.


2) 4․13총선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내부 평가 과정에서도 일부 지도부들의 ‘의석 확보 중심의 사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었다.


3) 1997년 대통령 선거투쟁에 대한 평가가 국민승리21에 참여하였느냐 혹은 참여하지 않았느냐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1997년 대통령 선거투쟁은 총노동 대 총자본의 대결이 정치적으로 확장되는 과정, 즉 1996-1997년 총파업 투쟁의 성과를 정치적으로 집적해 나가는 과정이자 계급역관계의 우위를 확실하게 강화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기조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4) 니코스 풀란챠스, 박병영 옮김,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 백의, 1994, 179쪽.


5) 김세균,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이념정립을 위하여」,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ꡔ창립기념 토론회 자료집ꡕ, 1995, 28-31쪽을 참조.


6) 김세균, 「민주노총의 운동기조와 기본 과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통권 제2호, 1995년 9월, 23-25쪽.


7) 졸고,ꡔ한국 노동자 계급정치운동 -연대의 정치, 분화의 정치, 통일의 정치-ꡕ, 현장에서 미래를, 1999, 46-55쪽 참조.


8) 민주노총이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수용하는냐 수용하지 않느냐 등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 수 있다. 개략적인 차원이지만, 이 문제는 두 가지 측면을 전제로 논의될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활동의 토대가 강화될 수 있고, 그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민주노총의 성장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자주성과 민주성’을 훼손할 가능성과 국가-자본에 대한 의존성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존재하고, 노동조합운동 내부에 체제강화에 기여하는 체제개혁 노선과 체제내화적인 개량주의 노선이 보편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9)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국 유효득표율이 2%에 미달한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에게 해산하라는 조치를 내렸다. 이에 청년진보당은 재창당을 하기로 하였고, 민주노동당은 법적 해산명령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현재의 당명, 당체계를 고수하기로 하였다.


10) ꡔ한겨레ꡕ, 2000년 4월 19일 자.


11) 손호철, 「종속적 신자유주의와 초국적 자본의 정부를 넘어서 - 4․13총선과 김대중 정부의 2년 중간평가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2000년 4월 호, 57-77쪽 참조.


12) Goran Therborn, 최종열 옮김, ꡔ권력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의 권력ꡕ, 백의, 1994, 93쪽.


13) 양경규, 「진보정치」4호 (2000.4.21-4.27.), 좌담회 중에서.


14) 민주노총 5차 정치위원회, 「4․13총선 평가」, 2000년 4월 19일.


15)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졸고, 앞의 책, 62-71쪽 참조.


2000-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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