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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메이데이

현장에서 미래를  제55호
김세균

총선,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메이데이





김 세 균 소장/ 서울대 교수․정치학





16대 총선이 끝났다. ‘국민의 정부’로 자처하는 김대중정부가 출범한지 2년만에 실시된 이번 총선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어떤 결과들을 낳았는가?
먼저, 이번 총선에서는 총 유권자 3,348만2,387명 중 1,915만3,076명이 투표, 투표율이 57.2%라는 역대 총선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개의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의 해석은 ‘휴일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탈정치화된 소비문화 향유층의 정치적 무관심이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가져 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해석은 제도정치권을 독점하고 있는 보수정치세력이 행해온 ‘저질정치’ 등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이 대폭 증대함으로써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최저투표율은 탈정치화 내지 정치적 무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기성정치를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에의 열망의 다른 표현이다. 이와 관련해 전자의 해석을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한국사회가 정치에 의해 크게 규정되는 사회이고, 우리 국민이 평소 정치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후자의 해석이 더욱 진실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들에 대한 인물 검증이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등장했다. 이로 인해 이번 선거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흑색선전과 상호비방 등이 판을 친 반면, 민생문제와 민중적 요구는 거의 선거의 쟁점으로 등장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김대중정부가 IMF 처방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위기타개책을 강도 높게 추진함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 만큼 다수국민들이 당한 고통이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한 선거는 없었다. 선거 중에 있었던 이른바 ‘국부유출논쟁’은 그나마 있었던 여야간의 정책대결이었다. 그러나 이 논쟁은 노동자․민중진영이 대우-쌍용자동차의 매각을 반대하고 공기업화를 주장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실제로 쟁점이 되어야 할 것을 철저히 외면하는 가운데 진행된 자기들끼리의 정책대결에 지나지 않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선거는 일차적으로 부르주아 지배층의 지배에 국민적 정통성을 부여하는 절차로서 의의를 지닌다. 제도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드높고 선거는 저질 쇼로 변질했지만, 부르주아 지배층의 정치적 대변자인 보수세력이 의석 전체를 석권함으로써 이번 선거 역시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보수세력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그들의 저질정치가 아니라 그들 자체로 향하지 않는 한, 그리고 그 불신이 자본주의적 지배구조와 부르주아세력의 지배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닌 한,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선거는 항상 부르주아지를 위한 축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이번 선거를 통해 보수정치세력에게 ‘새 피’가 수혈되었는데, ‘새 피’의 수혈은 보수정치의 생명력을 연장시키고 그 활동을 더욱 탄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보다 직접적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와 정당을 위한 축제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호남당’의 한계를 벗는 동시에 단독으로 다수를 획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386세대’와 경쟁력 있는 인물들의 대거 영입 등 국가수반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다 사용했다. 그러한 노력의 최정점은 아마도 정부가 투표를 사흘 앞둔 시점에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한 일일 것이다.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을 획득, 의석수를 대폭 늘이고,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괄목하게 진출하는 것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처럼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영남민의 강고한 반DJ 정서에 부딪쳐 영남에 교두보를 만들고,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려는 DJ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인재의 중용은 영남민들에게 표의 분산이 김대중정권을 유리하게 한다는 경계심을 촉발시켜 그들이 한나라당에게 몰표를 안겨주는 사태를 촉진시켰고,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는 그것이 여당을 크게 유리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켜 그들의 한나라당 지지를 더욱 공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한나라당은 과반수에서 4석이 부족한 133석을 차지했다. 이 점에서 이번 총선의 최대 승리자는 공천과정에서 당내의 정적들을 제거한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일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의 승리는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반DJ의 반사이익을 차지한 데에 크게 힘입은 것이었다. 그로 인해 이회창은 무엇보다 앞으로 당내에서 영남출신 정치인의 도전에 계속 시달려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반면, 자민련은 17석을 획득, 크게 위축되었다. 이로 인해 JP의 입지는 축소되었지만, 앞으로 탈당 등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자민련은 여야 대립에서 여전히 케스팅 보트를 쥘 수 있는 위치를 차지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진보진영에 속하는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이 후보자를 냈다. 청년진보당은 의회진출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진보적 청년들을 자신의 주위에 결집시키고, 좌파정치의 대의를 공개적으로 선전할 목적으로 서울의 전지역과 인천 북구지역에 46명의 후보자를 냈다. 그 결과 청년진보당은 자신의 목표를 상당히 달성할 수 있었다. 이와는 달리, 민주노동당은 의회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할 목적으로 노동자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21명의 후보를 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한 석이라도 확보하려 한 민주노동당의 꿈은 무산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선거는 진보세력의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출이 가능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적 필연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선거에서 한 명이라도 당선되지 않으면 진보세력의 미래는 어둡다고 강변하던 이들이 오히려 이번 선거의 의의를 높게 평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진보세력의 미래는 일차적으로는 의회진출 그 자체보다는 ‘대중정치의 활성화’ 여부에, 그리고 부르주아 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노선을 제시할 능력에 달려 있다. 게다가 가까운 장래에 진보세력이 의회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기란 어렵다. 이 점에서 진보세력은 대안적 정치노선을 추구하는 가운데 의회진출에 연연하기보다는 무엇보다 ‘대중정치의 활성화’를 위해 힘을 쏟아야 하고, 의회진출은 ‘대중정치의 의회정치로의 대체’가 아니라 ‘대중정치의 제도정치권으로의 확장’의 관점에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현 시기에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의회주의적-개량주의적 노선을 대변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한 정치노선을 걷는 세력의 활동이 주는 피해는 진보세력이 의회에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한 현재보다는 진보세력의 의회진출이 이루어질 미래에 더욱 클 것이다. 이 점에서 진보정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은 의회진출의 좌절 그 자체보다는 의회주의적-개량주의적 입장에서의 의회진출 시도이다.
현 시기에 행해지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실험은 민주노총이 공개적으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힘을 얻고 있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뒷받침은 그러나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보세력 전체를 포용해야 하는 대중조직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점에서 그러한 뒷받침은 장기적으로 본다면 대중조직을 특정정당에 종속시키고, 대중조직을 결국 정치적으로 분열시키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시민운동진영이 전개한 낙천-낙선운동이 커다란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운동은 보수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위기타개책의 반민중성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그러한 반민중적 정책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깨끗한 보수’를 뽑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운동은 미완성의 시민혁명을 완성시키는 유권자혁명 등으로 제도언론들의 대대적인 각광을 받았는데, 이는 제도언론 역시 보수정치의 생명력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보수’를 뽑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시민운동진영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민중적 요구에 철저히 등을 돌렸고, 의도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운동을 보수정치를 뒷받침하는 운동으로 전락시켰다. 또한 자민련 등이 제기한 ‘음모론’은 부당한 주장이었지만, 시민운동은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상대적으로 깨끗한 후보들을 내세워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한 김대중정부의 ‘제2중대’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그런데 시민운동진영은 이미 이전부터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포함한 제반 문제들에 대해 노동자-민중진영과 견해를 달리 하고 있었다. 이 점에서 이번의 낙천-낙선운동은 시민운동의 보수화과정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운동이었는데, ‘민중적 시민운동’을 제창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시민운동의 중대한 위기’라고 할만 한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진영으로부터는 ‘자축의 소리’만이 요란하게 들여온다. ‘총선시민연대’가 행한 인물검증 중심의 낙천낙선운동은 이번 선거가 흑색선전과 상호비방 등으로 점철되게 만든 결정적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어쨌든 총선은 끝났다. 이와 더불어 선거에 흥분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선거로 인해 잠시라도 잊었던 자신의 참담한 현실의 삶 속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가 다시 국민들을 들뜨게 만드는 흥분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그간 민간통일운동을 주도하면서 정부와 사사건건 부딪쳤던 민족주의 성향의 통일운동단체들까지 환영일색의 성명서를 발표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전 국민적인 중요성을 지닌 것이면 것일수록, 흥분 이전에 차분한 분석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남북한 관계는 크게 보면 북미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므로 남북한 관계의 변화를 읽기 위해서는 우선 북미 관계의 변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먼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혹으로 발생한 94년의 한반도 위기가 북미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진정되자 미국의 대북정책이 큰 틀에서는 ‘북한 봉쇄정책’에서 ‘북한 포용정책’으로 변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99년 10월 미상원 청문회에 제출된 「페리보고서」에 의해 큰 가닥이 잡혔는데, 이 보고서는 미국의 초미의 관심사인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관련활동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해 미국과 한국 및 일본의 상호 조율되고 상호 보완된 공동전략으로서 ‘포괄적이고 통합된 이중접근전략’을 추천하고 있다. 이 전략의 요지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성과가 있으면 미국과 동맹국들은 대북압력을 완화해 나가고, 북한이 핵 및 미사일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면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대북 무역제재를 완화하며 여타 긍정적인 조치들을 취하는 반면, 북한이 비호응적이면 (북한이 94년의 제네바합의를 파기하지 않은 한) 제네바 합의를 유지하고 가능한 한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도 미국과 동맹국이 단호하고 절제된 조치를 취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첫 번째 접근방식으로 돌아오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기조 하에서 미국은 협상 성공을 위한 환경조성을 위해 북한에게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장거리 미사일 발사의 중단을 요구했는데, 북한이 이를 수용하고 대응조치로서 우선 미국이 몇가지 대북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취함으로써 현재 미국과 북한은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인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페리보고서」는 북한이 가장 큰 관심상인 주한미군의 철수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협상이 진척되더라도 그것이 북미관계를 얼마만큼 정상화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위에서의 지적과 관련해, 우리는 김대중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이 미국이 ‘북한 포용정책’을 취하게 됨에 따라 힘을 얻게 되었고,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환경을 조성할 목적으로 행한 ‘베를린선언’은 “북한의 호응이 있을 경우 … 한국과 일본 등도 긍정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는 페리보고서 전략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수용 이전까지는 대체로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을 추구해 왔다. 이 점에서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보아야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그러나 북한이 준비회담 과정에서 남한정부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조건들을 내세워 정상회담을 무산시킬 가능성 역시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 북한이 남한정부와의 관계개선을 중요한 지렛대로 삼아 한편으로는 경제위기 극복에 요구되는 자원들을 끌어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등과 제반 정치군사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정책을 추구한다는 징표로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끌어냄으로써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은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정상회담을 통해 김대중정부는 시급하게는 이산가족의 재회와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촉구할 것이고, 북한이 남한정부와의 관계개선에 찬성하면 남북경제협력을 크게 증대시키고, 북한과 미국-일본과의 관계개선 및 북한의 세계기구 진출 등을 적극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최대한 실리를 취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남한정부의 요구는 최소수준에서 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남한정부가 북한에 대한 힘의 우위정책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고, 김대중정부의 통일정책이 시장주의적-신자유주의적 기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의 개최가 남북대결구조의 청산 및 남북의 평화공존과 평화군축체제의 구축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노동자-민중운동진영은 정부의 시장주의적-신자유주의적 통일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정부가 북한에 대한 힘의 우위정책을 포기하고,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공존 및 평화군축체제의 구축에 적극 나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통일이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국력 격차의 심화 등으로 말미암아 통일과정의 주도권은 이미 남한에게 넘겨져 와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남한의 민주변혁이 얼마만큼 진척되는가가 통일한국이 얼마만큼 남북한 주민 모두의 생존권과 행복을 보장하는 진정한 민주공동체가 되는가를 기본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노동자-민중운동진영은 정권과 자본 주도의 통일운동에 명백한 경계선을 그어야 하며, 통일운동을 어디까지나 남한의 민주변혁운동의 일환으로 확고히 편입시켜야 할 것이다.
김대중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합의 발표를, 무엇보다 영남민의 반발에 부딪쳐 크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총선 대응용으로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및 그 이후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남북한 관계 개선국면은 총선국면에서의 활용 수준을 휠씬 넘어서는 수준에서 계급들간의 관계 및 정치-사회세력들의 관계에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실제로 남북한 관계개선이 추진되면 시민운동은 물론 노동자-민중운동진영의 많은 개량주의세력 및 현재 민간통일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NL세력이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 추진 및 남한 독점자본의 대북 경제진출을 뒷받침하는 정권과 자본의 제2중대로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러한 사태 전개는 지배층과 자본의 대국민적 헤게모니를 강화시키고, 노동자-민중운동의 발전을 한층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전개는 동시에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의 재정비를 촉진하는 계기로서도 의의를 지닌다. 이 점에서 노동자-민중운동진영은 그러한 재정비를 통해 남한은 물론 북한의 노동자-민중의 참다운 이익을 대변하는 운동으로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정부는 남북정상회담 및 남북한 관계 개선국면으로 정국을 주도하고, 선거기간 중 그 추진을 일정하게 미루어오던 반민중적 신자유주의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무기로 이미 활용하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적극 활용할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정부는 한편으로는 여야영수회담을 개최해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여야협력으로 국민통합에 앞장서는 초당적인 ‘상생(相生)의 정치’를 실시하기로 야당과 합의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생존권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면서 대우자동차노조를 비롯한 자동차공대위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에 착수하고, 철도노조민주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철도청을 앞세워 무력화시키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또한 협동조합 개악을 반대하는 축협노조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의보통합을 둘러싼 노-노갈등을 부추기면서 민주개혁의 과제를 희석화시키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이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국가적 중대사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여야영수가 합의한 상생의 정치란 내국적으로는 반민중적 신자유주의정책 등을 강도 높게 추진하기 위한 여야간의 전략적 제휴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략적 제휴는 여당이 인위적 정계개편 등을 시도하면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매우 불완전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전략적 제휴가 지속되든 않든, 남북정상회담 및 남북한 관계개선국면을 정국의 주도에 활용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는 무기로 사용하려는 김대중정부의 시도는 앞으로 더욱 도를 더할 것이다.

보수세력에 의한 제도권정치권의 독점을 연장시킨 총선이 끝난 후 일반 국민들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및 여야간의 ‘상생의 정치’ 합의 등이 다수 국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노동자․민중운동을 탄압하는 구실로 이용되는 현실 속으로 되돌아 왔다. 이 현실 속에서 그들은 ‘선거 이전의 기대’가 ‘선거 이후의 실망’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을 것이다. 그러한 현실은 노동자-민중이 오직 힘을 모아 강력한 대중운동을 전개하고, 대중정치를 활성화하는 것을 통해서만 타개해 나갈 수 있다. 그러한 운동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 민주노조운동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실로 막중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방향성을 옳게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좋은 투쟁계획은 세웠지만, 투쟁을 위력적인 것으로 만들 힘은 적극 조직해 내지 못하고 있다. 민중연대를 외치지만, 힘있는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데에는 소홀하다. 정치노선은 의회주의에 경도되어 있고, 특정 정파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민주노총 주위로 모든 진보세력의 힘을 결집시키는 일을 스스로 방기해 버렸다. 그런 가운데 민주노총은 올해의 메이데이행사를 5월 1일이 아니라 4월 29일에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메이데이 날을 쟁취하기 위한 한국노동자들의 투쟁이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건만, 민주노총은 4월 27일의 투쟁을 이어받는 메이데이 행사를 치룬다는 명분으로, 동원이 쉽다는 명분으로 그 날을 기리는 행사를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5월 1일의 메이데이는 되찾아야 하고, 민주노조운동은 다시 자신의 건강성과 전투성을 회복해야 한다. 총선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전열을 가다듬은 지배층은 노동자․민중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착수하고 있다. 민주노동운동과 민중운동 역시 한시바삐 자신의 전열을 가다듬어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공세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지배층의 공세에 맞설 수 있도록 자신의 전열을 재정비하라. 이것이야말로 현 시기에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과 진보진영이 당면한 최대의 과제이다. 한/노/정/연

2000-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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