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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정당명부식 전국비례대표제

현장에서 미래를  제56호
김영수





남아공의 정당명부식 전국비례대표제

김 영 수

연구위원/한신대 강사, 정치학







1. 들어가는 말


거의 300여 년 가까이 세계 최고의 정치 후진국으로서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던 국가는 11개 종족과 4개의 대표적인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흑인들은 1948년 국민당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네델란드와 영국의 인종차별적 식민지 통치를 받았고, 국민당 정권이 들어서고 난 이후에는 보다 고도화된 인종차별주의 체제에서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였다. 특히 백인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들은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1990년 이전까지 지속하면서 전체 인구의 약 70% 내외인 흑인들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크와줄루 지역1)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흑인들은 거의 300여 년 이상 단 한 번의 투표권도 행사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위임받은 단 한 명의 대표도 의회에 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와 남아공 공산당(SACP)을 중심으로 한 반(反)아파르트하이드 정치운동 세력들은 1955년에 채택한 자유헌장(Freedom Charter)을 정강정책으로 간주하고, 이 헌장을 실현하기 위한 반(反)아파르트하이드 투쟁을 1990년까지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80년대 초반 흑인을 중심으로 한 반(反)아파르트하이드 운동이 백인 지배체제를 위협하게 되자, 백인들은 유색인종과 인도인종을 참여시켜서 의회를 구성하려는 3원의회제(Tri-Cameral)를 1983년에 도입하였다. 3원의회제는 그 동안 백인의 대표로만 구성되었던 의회에 유색인종과 인도인종의 대표들을 참여시키려는 제도였다. 이것은 반(反)아파르트하이드 운동의 역량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흑인들만을 고립화시키려는 분할통치정책의 일환으로 유색인종과 인도인종들에게 참정권을 허용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투쟁 지도부였던 통일민주전선(UDF)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ANC와 SACP는 국민당 정권의 3원의회제 도입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정치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강화하였다. 흑인들은 UDF를 중심으로 3원의회제 반대투쟁의 역량을 통일적으로 결집하였고, 흑인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남아프리카 노동조합회의(이하 COSATU)를 결성하기 위한 투쟁을 전면적으로 전개하였다. 백인정부가 이러한 투쟁에 대해 총칼을 동원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 노동자․민중들은 선거정치가 아닌 직접적인 가두투쟁의 정치로 참정권을 행사하였다.

1985년 11월 흑인 노동자들은 흑인 정치조직이 불법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COSATU를 결성하였다. 이 투쟁은 한편으로는 흑인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획득할 수 있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의 상급조직을 결성하는 투쟁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흑인 노동자․민중들의 권력을 위임할 수 있는 대중적 권력기구를 형성하는 투쟁이었다.

ANC와 SACP는 각각 1912년과 1921년에 창설되어 인종해방투쟁을 전개하다가 1960년을 전후로 국외로 추방2)되는 탄압을 받았지만, 1990년 아파르트하이드 정책이 폐지될 때까지 국내외의 투쟁 근거지를 중심으로 반(反)아파르트하이드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흑인 노동자․민중들로부터 정치적 대표체로서의 정통성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흑인들은 ANC, SACP를 미래의 정치권력의 대안세력으로 간주하고, 자발적으로 ANC와 SACP의 조직원이 되었다. 비록 백인들이 제도권에 참여할 수 있는 흑인들의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남아공의 흑인들은 불법화된 정당을 중심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방식인 투쟁의 정치를 실현하였다. 흑인들은 1983년 이후 ANC­SACP­COSATU간의 3자동맹 체제를 중심으로 가두투쟁 형태의 참정권을 행사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1990년 인종차별정책이 폐지되고 난 이후 3자동맹 주체들과 백인 중심의 기득권 세력들은 “인종별 연합 민주주의(Consociational Democracy)”(Arend Lijiphart, 1990, 6)적인 과도임시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흑인들의 참정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하였고, 인종별․종족별 대표성을 보장하는데 적합한 ‘전국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였다. 남아공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적인 선거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1990년 남아공의 아파르트하이드 체제가 무너지고 난 이후, 1994년 총선에 이어서 두 번째 총선거가 지난 6월 2일 치루어졌다. 1994년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어 국민통일정부3)를 구성했던 ANC 정권은 인종간의 화해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통일정책을 추진하였으며, 그러한 정책의 결과를 바탕으로 1999년 총선에서도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전국국민의회(National Assembly) 의석의 2/3 이상을 차지하였다. ANC 정권은 국민통일정책을 수행할 정치적 동력을 보존, 강화시켰으며, 점진적일지라도 백인 중심의 사회경제적 권력을 흑인들에게 이전시킬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남아공의 선거제도를 살펴보고, 그 선거제도의 결과로 나타난 1994년 총선과 1999년 총선의 결과를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비교, 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남아공 선거제도 및 의회구성의 특성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는 한국 정치가 남아공 선거제도에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만 할 점들을 추론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2. 남아공 선거제도의 사회구조적 배경


ANC­COSATU­SACP는 1990년에 국민당의 인종차별정책을 폐지시켰고, 그 이후 1993년 10월 과도임시헌법이 상호협의 하에 통과되기 이전까지 백인 지배권력과의 협상투쟁을 전개하였다. 협상의 쟁점들은 권력의 보존과 강화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는데, 그것은 정치권력과 사회경제적 권력간의 투쟁과정이었다. 인종차별주의 체제의 기득권 세력들은 정치권력을 약화․상실한다 하더라도, 자본의 폐쇄 및 철수를 무기로 하여 사회경제적 권력을 보존하려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3자동맹은 흑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사회경제적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권력의 상호 분점전략과 국민통일적인 인종화해전략으로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자동맹 내부에서는 그러한 협상투쟁의 전략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인종차별주의 체제를 점진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최소강령 수준의 전략으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생활조건의 인종별 차별화 구조와 인종별로 차별화된 권력분점 구조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채택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남아공의 선거제도는 인종별로 정치권력을 분점한 상태에서 ‘통일된 국민국가(Nation State)'를 지향하는 전략의 산물, 즉 남아공의 인종적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었다.


1) 생활조건의 인종별 차별화 구조

남아공의 인종차별주의 정책은 인종적 자본주의 체제의 고착, 즉 인종차별적인 착취구조를 고착시켰다.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에 있어서 인종별 차별화가 정착되었다. 남아공에는 흑인, 인도인, 유색인, 백인 등 4개의 대표적인 인종이 혼합되어 있는데, 전체 인구의 약 70% 정도를 차지하는 흑인들이 백인들로부터 주요하게 착취를 받았다. 유색인과 인도인들 역시 흑인들보다는 약간 미약했을지라도 인종차별적 착취구조의 희생양들이었다.

그래서 남아공의 사회체제는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에 있어서 인종별 차별성을 기반으로 하여 유지되었다. 1999년 현재 극빈층 20%의 소득은 남아공 전체 소득의 1.5%에 불과하지만, 최상층 10%는 남아공 전체 소득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극빈층의 대다수는 흑인들이고 최상층은 백인들이다. 소득의 인종별 차별화 현상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차별화 현상은 노동자들의 월 평균임금에서도 나타난다. 1980년대 광산업과 제조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인종별 임금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백인 노동자의 임금은 흑인 노동자의 임금에 비해 최고 약 20배에서 최저 약 5.2배까지 높았다. 백인 노동자들은 유색인 노동자들과 인도인 노동자들에 비해 약 3-4배 정도를 더 받았다. 이러한 임금격차는 1990년 인종차별주의 정책이 폐지되고 난 이후에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1998년 10월 말 현재 고용된 노동자들의 10.7%만이 월 4,500랜드(R4)) 이상을 받고 있으며, 26%는 월 500랜드(R)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 월 500랜드(R)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흑인들인 것이다. 월 평균 약 83$ 이하의 임금을 받으면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이 25% 이상인 것이다.

따라서 흑인들의 생활조건 역시 매우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반증하고 있는 사실이 1999년 총선에 제출된 ANC의 선거공약집에 나타난다. ANC정권은 1994년 이후 인종차별적인 법률의 폐지 및 개정, 노동자계급의 제반 권리의 보장, 3백만 흑인들에게 수돗물 공급, 2백만 가구에 전기 공급, 75만 채의 주택 공급, 공중 의료시설의 확충, 3백만 흑인들을 위한 전화시설 구축 등의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은 흑인들에게는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조차 부여되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그래서 ANC는 1999년 총선에서 이러한 흑인들의 생활조건을 개선시키고 삶의 질을 고양시켜 나가는 과제를 새로운 ANC정권의 주요 정책으로 제시하였다. 문제는 생활조건의 인종별 차별화 구조가 ANC의 총선 공약만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ANC정권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인 ‘성장 고용 그리고 재분배(GEAR)전략으로 말미암아 실업자들이 양산되고 있으며, 실업자 대부분이 흑인 노동자들이라는 점이다. 1996년 말 현재 남아공 경제활동 인구 중 9,113,847명이 고용되어 있고, 4,671,647명이 실업상태이다. 전체 실업자의 42.5%가 흑인, 20.9%가 유색인, 12.0%가 인도인 그리고 백인은 4.6%이다. ANC 정부가 새롭게 발표한 1999년 3월 현재 실업율이 37%이듯이, 흑인들은 생활조건과 노동조건을 개선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실업자로 전락하는 반면에, 사회경제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백인들은 오히려 계급적 지배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COSATU와 SACP는 강력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GEAR전략을 둘러싼 3자동맹 내부의 긴장과 갈등, 계급별 은 계급별 권력분점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의 차별화에서 발생되고 있는 것이다.


2) 인종별 권력분점 구조


인종차별적 사회구조를 혁명적 방식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남아공의 흑인들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정치권력으로 극복해 나가면서 백인들의 사회경제적 권력을 약화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백인을 중심으로 구축된 인종적 자본주의 체제의 권력블록은 사회경제적 권력을 무기로 삼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권력의 형태를 요구하였다. 잉카타 자유당으로 대변되는 크와줄루-나탈 지방의 줄루족 역시 정치적 지배블록의 한 주체로서 정치권력의 인종별 분권화를 주장하였다. 특히 잉카타 자유당은 잉카타 게이트 사건5)이 폭로되면서, 그러한 주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남아공 전체 국민들에게 참정권이 동등하게 보장된다면, 전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흑인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밖에 없었고, 과거의 인종차별적 범죄들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300여 년 동안의 인종차별적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당연한 산물이었다.

그래서 ANC를 중심으로 한 반(反)아파르트하이드 세력들은 남아공 민주화의 제2단계 투쟁을 전개했던 ‘과도적 투쟁기’6)에 기존 권력블록과의 “인종별 협상의 정치”(Arend Lijiphart, 1990, 12)를 전개하였고, 이 과정에서 기존 권력블록과의 권력분점을 용인하였다. 과거의 인종차별적 범죄를 국민통합적인 차원에서 청산한다는 전제하에 백인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들은 사회경제적 권력을 보유할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하게 되었고, ANC 중심의 흑인정치세력들은 정치적 권력을 보유할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래서 백인 중심의 소수세력은 여전히 관료, 군부, 경찰, 언론, 지식, 경제 등의 영역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오히려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혁에 저항하는 주체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언론의 90% 이상이 사회구조의 변혁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 백인 중심의 소수세력에게 통제되고 있다. 흑인 중심의 정치적 지배세력으로서는 단계적으로 인종차별적 사회구조를 변혁시킬 수밖에 없었고, 백인 중심의 소수세력 역시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기득권을 보존하는 수준에서 정치권력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협상투쟁의 결과는 국민통일정권의 수립이었다. 이 정권의 주요한 목적은 다양한 인종적 공동체들을 하나의 국민국가로 통일시켜 내는 것이고, 인종차별적 사회구조를 인종적 통일에 기반하는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1999년 6월 총선의 결과로 대통령에 당선된 음베키(T. Mbeki)는 국회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제창하였다. “ANC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수립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평화적인 공존과 창조적인 발전의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인종통일적인 공동체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남아공이 지향해야 할 신애국주의(Neo-Patriotism)이다.”7)

그러나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흑인들과 사회경제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백인들은 인종차별적 사회구조를 제거하는 내용과 수준에서 많은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흑인들은 남아공의 사회경제적 권력까지 장악하려는 것이고, 백인들은 정치권력의 약화만을 수용하려는 것이었다. 3자동맹은 기본적으로 정치권력을 토대로 민족민주혁명을 추진하고 있지만, ANC 내부의 우파세력들과 백인들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또한 백인 역시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새로운 인종별 노동착취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점진적인 발전을 중장기적으로 지향하고 있지만, 정치적 지배블록의 핵심적 주체인 흑인 노동자 계급의 투쟁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ANC를 중심으로 한 3자동맹 내부뿐만이 아니라 흑인과 백인 사이에 민족민주혁명 및 사회적 하부구조(Social Infrastructure)의 실질적 민주화의 정도에 대한 차별성이 존재한다. 


3) 3자동맹의 계급적 분화구조


민족민주혁명의 과제들은 이미 1994년 총선 당시에 ANC정권의 정책 패러다임으로 제시되었던 국가재건강령(RDP)의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RDP는 흑인들의 생활조건의 개선, 민중 주도의 사회구조의 변혁, 민족민주혁명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하는 3자동맹 체제의 정책 패러다임이었다. 문제는 지난 ANC정권이 RDP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반혁명세력의 저항에 직면해야만 했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대변되는 GEAR 전략의 채택으로 RDP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ANC정권은 남아공 GDP의 50% 정도가 세계시장과 연계되어 있는 점, 국가 재정의 확충, 경제성장에 따른 다량의 직업창출 등을 내세우면서 신자유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인 GEAR전략을 채택, 집행해 왔다. ANC는 GEAR전략의 집행으로 국가의 재원을 확보하고, 그러한 재원으로 RDP를 실현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ANC정권 역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자본시장의 자유화 등을 핵심으로 하는 GEAR전략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GEAR전략의 실행 과정에서 수많은 실업자들이 양산되고 있으며, 새로운 직업이 창출되기보다는 오히려 상실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또한 기초 생활서비스와 관련된 공공기관의 민영화로 인해 노동자 민중들의 생활조건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ANC는 선거공약에서 생활조건의 지속적인 개선과 GEAR전략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다양한 과제들을 제시하였는데, 문제는 그러한 과제들을 실현시켜낼 수 있는 기제들을 소수 백인 중심의 사회적 지배블록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COSATU와 SACP는 이 정책을 인종차별적 사회구조를 개선하기도 전에 새로운 인종차별적 사회구조를 형성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ANC는 이를 민족민주혁명이라고 상정하였다. ANC는 생산력의 발전과 흑인들의 생활조건의 혁명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SACP와 COSATU는 체제의 변혁을 지향하는 민족민주혁명을 추구하고 있으며, ANC와의 갈등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RDP와 GEAR전략간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COSATU와 SACP는 총선투쟁에서 3자동맹의 주체로서 참여하였지만, GEAR전략의 실행과정에서 파생되는 제반 문제점들을 제기하면서 ANC정권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COSATU는 “이러한 현상을 신야만주의의 유령이 남아공을 배회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ANC정권의 GEAR에 대한 반대투쟁을 지속”8)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적 구조와 토대의 실질적인 변혁을 이루어 낼 수 있는 RDP만이 전지구적 체제하에서 발생하는 남아공 경제의 위기상황을 돌파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99년 총선투쟁의 과정에서 ANC 역시 RDP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3자동맹체제를 중심으로 사회적 권력의 민주화를 신장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로운 ANC정권은 COSATU와 SACP가 GEAR전략을 RDP 실현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고, 소수 독점자본이 RDP를 폐기하고 GEAR전략의 강행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RDP의 실현과 GEAR 전략의 강행이라는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ANC의 전략은 인종차별적 착취구조에서 형성된 기존의 권력블록을 계급차별적 착취구조의 권력블록으로 대체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다. COSATU와 SACP는 이를 경계하면서 인종 차별적 착취구조와 계급차별적 착취구조를 동시에 극복하려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3. 남아공의 선거제도


남아공 역사상 최초로 설립된 ‘독립선거위원회’9)에 등록하여 녹색등록카드(Green-bar coded ID)를 소지하게 된 만 18세 이상의 유권자들은 1999년 6월 2일, 9개 지방으로 획정된 각각의 선거구에서 2개의 투표권을 행사하였다. 유권자들의 기표방식(ballot structure)은 지지하는 하나의 정당만을 선택하는 범주투표(categorical voting)이다. 하나의 투표권으로는 전국국민의회를 구성할 정당에 투표하고, 다른 하나의 투표권으로는 지방의회를 구성할 정당에 투표한다.

전국국민의회 의원 400명과 지방의회 의원 430명을 동시에 선출하는 1999년 6월 총선에는 3월 14일 현재 합법적으로 등록된 30개 정당이 참여했고, 남아공 공산당(SACP)과 남아프리카 노동조합회의(COSATU)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를 내세운 상태에서 3자동맹 체제로 총선에 참여하였다. 총선에 참여하는 각각의 정당은 정당명부, 즉 전국국민의회 후보자 명부와 지방의회 후보자 명부를 동시에 제출한 상태에서 선거투쟁을 전개한다.

남아공의 선거투쟁은 독립선거위원회가 의원의 임기만료 90일 이전에 선거일을 공포하면서 시작된다. 선거법 제22조에 따르면, 각각의 정당은 선거일 공포 이후 37일 이내에 전국국민의회와 지방의회 후보자 명부를 제출해야 하고, 후보자 명부를 조정할 필요가 있을 시에는 선거일 공포 이후 51일 이내에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공포일 51일 이후에는 5일 이내에 후보자 명부의 이름을 관보에 공포하여야 한다. 한국의 선거운동 기간이 최소 14일(지방의원 선거)에서 최고 23일(대통령 선거)에 불과한 것에 비해 선거운동의 기간이 상당히 길고, 각각의 정당이 선거운동 기간에 유권자들의 의지를 반영하는 차원에서 후보자들을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되고 있다.

ANC는 역시 1999년 총선에 전국국민의회 후보자 명부와 지방의회 후보자 명부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ANC는 의회 후보자 명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엄격한 심사기준에 따른 민주주의적 선출과정을 적용시키는데, 그것은 “정당의 관료화 및 당내 엘리트 통치에 의한 조작 정치의 가능성”(Arend Lijiphart, 1990, 12-13)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정강정책에 명시되어 있는 ANC의 후보선정 절차는 매우 까다롭다. ANC의 중앙집행위원회는 큰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한, 당의 하부조직에서 결정된 후보자들을 최종적으로 추인하는 역할만을 담당한다. 후보자 선정에 있어서 실질적인 권한은 ANC의 각 지역지부가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ANC의 후보자는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결정된다. 먼저 ANC의 각 지역지부는 후보를 지명한다. 둘째, 지방 후보선정위원회는 각 지역지부에서 지명된 후보의 명단을 지방 후보선정협의회에서 승인을 얻는다. 셋째, 지방 후보선정협의회, 지방집행위원회, 지방 후보선정위원회는 선정기준에 따라 각각의 후보자들을 상호 교차검토한다. 넷째, 결정된 후보의 명단은 전구 후보선정위원회에 제출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ANC 전국집행위원회에 제출되어 최종 승인을 얻는다.

또한 이와 같이 다양한 절차를 필요로 할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후보선정기준에 적용되는 후보자들이 최종적으로 선정된다. 그 기준은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주체, 입법 전문가, 부패의 경력이 없는 자, 분파주의적인 행위를 하지 않은 자, ANC의 강령을 무시했던 적이 없는 자, 지역적인 대표성을 보유하고 있는 자, COSATU­SACP­MDM에서 추천된 자 등”이다. ANC는 일단 후보자로 선정하였다 하더라도, 선거일 공포 이후 51일 이내에 후보선정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조건이 드러나는 후보자들을 교체한다. 민주적인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시킴과 동시에 3자동맹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준들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등록된 각 정당의 후보자들은 선거자금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선거법 74조에 명시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전 선거에서 전국 지지율 2% 이상을 획득한 정당에 대해서는 국가가 선거비용을 지원할지라도,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은 후보자 1인당 일정한 금액을 국가에 예탁해야 한다. 선거법 제19조에 따르면, 전국국민의회에 참여하는 당은 후보자 1인당 25,000랜드, 지방의회에 참여하는 당은 후보자 1인당 5,000랜드를 예탁하여야 한다. 1$에 6랜드의 환율로 환산한다면, 전국국민의회의 후보자 1인당 예탁금은 약 4,080$ 정도이고, 지방의회의 후보자 1인당 예탁금은 약 830$ 정도이다. 이와 같이 국가에 예탁해야만 하는 정당의 선거비용이 매우 적기 때문에, 다양한 정치세력이 자유롭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고, 고비용의 정치구조가 야기되지 않는다. 따라서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과 후보자들은 오히려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운동에 주력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선거공약 및 선거행동강령의 출판,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활동, 당원 및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활동, 강령과 정책에 대한 토론회 개최, 유권자들의 정책참여를 유도하는 공청회 개최” 등이다.

이러한 선거투쟁의 결과는 전국 유권자들의 지지표를 통합한 전국득표율로 발표되고, 전국득표율에 의거하여 정당명부의 후보별 순위에 따라 당선시키는 당선결정방식(electoral formula)이 적용된다. 그런데 남아공의 선거제도는 전국득표율에 따른 의석배분에서 의석확보 최소요건 또는 봉쇄조항(exclusion clause)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최소의 득표를 획득한 정당에 대해서도 의석이 배분되고 있는 것이다.

남아공의 민주주의적 총선이 불과 2회밖에 치루어지지 않았지만, 민주주의적 정당정치가 급속하게 안정화되는 요인은 바로 이러한 선거제도에서 기인한다. 특히 ANC의 후보선정 절차와 후보선정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정당의 민주주의 원칙이 실현되고 있다. 또한 1999년 총선에서 30개 정당이 참여하였다는 것은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정치세력의 출현이 자유롭고, 저비용 정치구조가 정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선결정방식(electoral formula) 역시 권력을 위임받는 대표들의 공정성을 높여 주고 있다. 그래서 유권자들과 당원들은 권력을 위임한 이후에도 권력을 위임받은 주체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대상화되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COSATU는 ANC 후보자 선정과정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COSATU가 추천한 후보자들에 대해 소환권을 보유하고 있다.



4. 1994년과 1999년 남아공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와 그 의미


남아공의 노동자․민중들은 ANC의 GEAR전략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투쟁을 전개하면서도, 3자동맹의 정치권력 재창출하기 위해 선거투쟁에서는 통일적으로 대응하였다. COSATU와 SACP는 독자적인 후보를 내세우지 않고 ANC의 승리를 위해 지원하였다. 1999년 총선에서 ANC는 66.36%의 득표율을 획득하여 전국국민의회의 의석 266석을 차지하였다. ANC는 전국 득표율에 따라 전국국민의회의 의석수를 배정하는 전국 비례대표제의 원칙으로 전체 400석의 의석 중 2/3 이상을 차지하였다.

아래의 <표 1>은 1999년 총선의 결과인 주요 정당의 전국 득표율과 전국국민의회의 의석수를 1994년 총선과 비교해서 제시하고 있는데,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되고 있다.


<표 1> 주요 정당의 전국국민의회 득표율과 의석수

             득표율-의석

정당

94년 총선

99년 총선

변화(99±94)의 폭

득표율(%)

의석

득표율(%)

의석

득표율

의석

ANC(아프리카 민족회의)

  62.65

  252

  66.36

  266

+3.71

+14

NP/NNP(신국민당)

  20.39

   82

  6.87

   28

-13.52

-54

IFP(잉카타 자유당)

  10.54

   43

  8.59

   34

-1.95

-9

DP(민주당)

   1.73

    7

  9.55

   38

+7.78

+31

FF/VF(자유전선)

   2.17

    9

  0.83

    3

-1.34

-6

PAC(범아프리카회의)

   1.25

    5

  0.71

    3

-0.54

-2


<표 1>에서 나타나는 남아공의 총선결과의 흥미로운 점은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로는 94년 총선에서 드러났던 인종별․종족별 투표행태가 변화되고 있다. 이것은 ANC와 DP의 지지기반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반면에 NP와 IFP의 지지기반이 약화되었다. 둘째로는 2% 이하의 지지율을 획득한다 하더라도 전국국민의회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유권자들의 의지가 사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 인종별․종족별 투표행태의 변화

위의 <표 1>에서 알 수 있는 주요한 특성으로는 ANC와 DP에 대한 지지율의 상승과 국민당(신국민당)과 잉카타 자유당에 대한 지지율이 급격하게 하락하였다는 점이다. ANC는 1994년 총선에 비해 전국적 지지율이 3.71% 상승하였고, 의석도 14석이 증가하였다. ANC는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2/3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파르트하이드 체제에서 지배정당이었던 국민당(신국민당)은 전국적 지지율이 13.52% 하락하여, 54석 줄어든 28석의 의석만을 차지하였다. 국민당(신국민당)은 잉카타 자유당에 이어 제4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하였다. 잉카타 자유당도 전국 지지율이 1.95% 하락하여 34석의 의석만을 차지하였다. 아파르트하이드 체제하에서 국민당과 권력을 분점하고, 크와줄루-나탈 지방을 중심으로 종족의 이해만을 추구해 왔던 잉카타 자유당도 이제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백인 중심의 민주당이 급격하게 부상하였다. 민주당은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1994년 총선에서는 1.73%의 지지율로 7석의 의석만을 차지하였는데, 99년 총선에서는 9.55%의 지지율과 34석의 의석을 확보하여 남아공의 제2의 정당으로 부상하였다. 국민당(신국민당)의 지지율이 13.52% 하락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민주당에 대한 7.78%의 상승률은 실질적으로 21.30%의 지지율 상승 효과를 지니고 있다. 민주당이 급격하게 부상한 것은 과거에 국민당(신국민당)을 지지했던 백인들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점진적인 사회발전과 민주화를 부르짖는 민주당을 지지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인종차별적, 비-성차별적인 민주주의 국민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ANC에 대한 남아공 유권자들의 지지에서 비롯되었다. 인종차별주의 정당이었던 국민당(신국민당)과 종족주의 정당이었던 잉카타 자유당의 급격한 하락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ANC를 중심으로 하는 3자동맹은 이제 흑인들의 지지만을 받는 인종적 정치세력이 아니라 남아공의 모든 노동자‧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이념형적 대중정치세력이 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사실은 1994년 총선에서 ANC의 취약지구로 드러났던 크와줄루-나탈, 서부 케이프, 북부 케이프 등의 지방에서 ANC에 대한 지지율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는 점이다.


<표 2> 지방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ANC에 대한 주요 지역별 지지율

                 대상

지역

ANC에 대한 지지율(%)

상승률의 폭

1994년 총선

1999년 총선

  크와줄루-나탈

32.23

39.38

     7.15

  서부 케이프

33.01

42.07

     9.06

  북부 케이프

49.74

64.32

    14.58

  과탱(Gauteng) 지방

57.60

67.85

     9.85


위의 <표 2>는 지지율에 따라 지방의회 의원을 배정하는 주요 지역의 결과인데, ANC는 이러한 취약지구에서도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이들 세 지방에서의 ANC 평균 상승율은 10.26%이고, 백인 중심의 도시인 서부 케이프와 북부 케이프에서의 ANC 평균 상승율은 11.82%이다. 1999년 총선에서 ANC의 전국 득표 상승율이 3.71%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 지방에서의 평균 상승율은 매우 높은 결과이다. 이들 지방에서의 ANC 평균 지지율이 1994년 총선의 38.32%에서 48.58%로 급격하게 상승하였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ANC를 중심으로 한 3자동맹이 이제 흑인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주체가 아니라 남아공의 전체 노동자‧민중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주체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ANC가 실질적인 지배정당으로서 사회구조 민주주의적 변혁정책의 구심으로서의 역할과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소수세력의 정치적 진출


위의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남아공의 전국 비례대표제는 2% 이하의 전국 지지율을 획득한다 하더라도 의석배분율에 따라 전국국민의회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지방의회 역시 최소의 지지율을 획득한 정당에 대해서도 의석배분율에 따라 의회의 의석이 배정된다.

1994년 총선에서는 2.5% 이하의 지지율을 획득한 DP, FF/VF, PAC가 전체 400석의 의석 중 21석을 차지하였다. 이번 1999년 총선에서는 소수세력의 진출이 94년에 비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3.5% 이하의 지지율을 획득한 정당들도 자신들의 대표를 전국국민의회에 진출시켰다. 0.17%의 득표율로 1석을 차지한 AZAPO, 0.29%의 득표율로 1석을 차지한 AEB, 0.3%의 득표율로 1석을 차지한 MF, 0.54%의 득표율로 2석을 차지한 FA, 0.58%의 득표율로 2석을 차지한 FF, 0.71%로 3석을 차지한 PAC, 0.78%의 득표율로 3석을 차지한 UCDP, 1.43%의 득표율로 3석을 차지한 ACDP, 3.42%로 14석을 차지한 UDM 등이 전국 비례대표제의 수혜를 받은 정당들이다.

정치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세력일지라도,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구조가 보장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의회 선거결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래의 <표 3>은 소수세력에 지방의회의 의석을 확보한 1994년 총선과 1999년 총선의 결과이다.


<표 3> 주요 지방의 지방의회 선거결과

지지율-의석

지역-정당

94년 총선

99년 총선

ANC의 의석

(총 의석 수)

ANC

의석 점유율

지지율

(%)

의석

지지율

(%)

의석

94년

총선

99년

총선

94년

총선

99년

총선

동부 케이프

(Eastern Cape)

NP/NNP

(신국민당)

9.83

6

3.22

2

48(56)

47(63)

85

76

PAC

(범아프리카회의)

2.04

1

1.14

1

음푸마랑가

(Epumulanga)

NP/NNP

(신국민당)

9.00

3

2.47

1

25(30)

26(30)

83

86

FF/VF(자유전선)

5.66

2

1.70

1

북부지방

(North-ern Province)

NP/NNP

3.25

1

1.70

1

38(40)

44(49)

95

89

FF/VF

2.15

1

---

---

북서부

(North West)

NP/NNP

8.84

3

2.29

1

26(30)

27(33)

86

81

FF/VF

4.63

1

1.38

1

자유국가

(Free State)

NP/NNP

12.59

4

5.20

2

24(30)

25(30)

80

83

FF/VF

6.03

2

2.11

1


<표 2>에서 제시된 4개 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5개 지방의 지방의원 선거결과는 ANC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ANC에 대한 지지율은 94년 총선에서는 평균 83.33%였고, 1999년 총선에서는 평균 81.34%였다. ANC의 지방의회 의석 점유율 역시 1994년에는 평균 85%였고, 1999년에는 평균 83%였다. 그러나 소수세력 역시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의 의석을 차지하였다. 소수세력의 이해가 반영될 수 있는 남아공 선거제도의 특성이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잘 드러난다.

ANC에 대한 지지율이 평균 80% 이상인 <표 3>의 5개 지방에서도 소수세력들은 지방의회의 의석을 확보하였다. 주로 국민당과 자유전선은 지방의회 선거에서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에 상응하는 의석이 배분되었다. 남아공의 입법부가 전국국민의회(National Assembly)와 전국지방평의회로 구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록 지방의회의 1-2석을 차지하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이 결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남아공 유권자들은 인종별∙종족별 투표행태를 변화시켜 나가고 있으며, ANC를 중심으로 한 3자동맹을 민주주의적 사회변혁의 구심체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잉카타 자유당과 국민당(신국민당)의 퇴조에 이은 민주당의 급부상, 그리고 ANC의 지지율 상승은 이제 남아공이 인종 중심의 또는 종족 중심의 정당정치를 이념 중심의 정당정치로 대체해 나가는 실질적 민주화의 도정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소수세력은 이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이념형적 정당정치의 구조화는 곧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확대‧심화과정의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5. 남아공 입법부의 구성방식과 그 의미


남아공의 입법부는 전국국민의회(National Assembly)와 전국지방평의회(National Council of Provinces)로 구성된다. 양원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지방평의회는 남아공의 9개 지방을 대표하는 90명의 지방의원으로 구성되고, 전국국민의회는 국회법에 따라 총선에서 당선된 ‘350명 이상 400명 이하’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이 전국국민의회의 50%는 전국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의 전국국민의회 전국 순위별 후보자 명부에서 할당되고, 나머지 50%는 각 정당의 전국국민의회 지방 순위별 후보자 명부에서 득표율에 따라 할당된다. 양원제로 운영되는 새로운 ANC정권의 입법부는 전국지방평의회의 의원 90명과 전국국민의회의 의원 400명으로 구성되었다. 전국지방평의회는 기존 백인 정권의 상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선출되는 전국국민의회의 의원들은 각각의 정당에 대한 전국적인 지지율의 결과에 따라 각각의 정당의 후보자 명부에서 배정된다. 그런데 전국국민의회의 50%는 지역성을 대표하는 의원으로 구성되고, 나머지 50%는 전국적인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정당은 총선 전에 전국국민의회의 후보자 명부 2개를 제출하는데, 하나는 전국국민의회의 50%를 구성할 수 있는 ‘전국국민의회 전국 후보자 명부’이고, 다른 하는 전국국민의회의 나머지 50%를 구성하는 ‘전국국민의회 지방 후보자 명부’이다. 전국국민의회 지방 후보자는 반드시 각각의 지방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능한데, 실질적으로는 각각의 지방을 대표할 수 있는 그 지방의 사람이다. 따라서 각각의 정당들은 1개의 전국국민의회 전국 후보자 명부와 9개의 전국국민의회 지방 후보자 명부를 동시에 제출한 상태에서 총선을 치루고, 총선 결과로 나타나는 지지율에 따라 전국 후보자 명부와 각각의 지방 후보자 명부에서 전국국민의회 의원이 비례적으로 배정된다. 이와 같이 남아공의 선거제도는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설정한 상태에서 지역적 대표성과 전국적 대표성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는 전국 비례대표제인 것이다.

지방의회의 의원은 유권자들의 각각의 정당에 대한 지지율에 비례해서 선출된다. 각각의 정당들은 총선 전에 지방의회 후보자 명부를 제출하고, 유권자들은 9개 지방 선거구에서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한다. 그리고 선거결과로 나타나는 각각의 정당에 대한 지지율에 비례해서 지방의회 의원이 선출된다. 지방의원 선거 역시 ‘하나의 지방 자체가 하나의 선거구로 획정’된 상태에서 치루어진다. 지방의원 선거에서도 비례대표제가 전면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의회 의원들은 지방의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전국지방평의회를 구성할 권한이 있고, 그 권한을 이용하여 남아공 입법부를 구성한다. 각각의 지방의회는 선거결과 공포 후 30일 이내에 각 지방의 대표 10명, 전체 9개 지방을 대표하는 총 90명의 전국지방평의회 의원을 선출하여 입법부에 참여시킨다. 그런데 각 지방의 10명의 대표 또한 지방의회 선거에서 획득한 각각의 정당의 지지율에 따라 배정되고, 지방의회에서 결정하는 4명의 특별대표와 각각의 당이 결정하는 6명의 상임대표로 구성된다. 상임대표로 지명되는 지방의원들은 지방의원으로서의 업무를 담당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남아공의 선거제도는 의원들의 선출뿐만이 아니라 입법부를 구성하는데 있어서도 비례대표제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으며, 입법부 역시 지역적 대표성과 국민적 대표성을 반영할 수 있는 양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입법부의 권한도 기능적으로 분화, 즉 전국국민의회와 전국지방평의회간의 견제 및 분화, 전국지방평의회와 지방의회간의 견제 및 분화가 이루어져 있다.

먼저 헌법 제75조는 전국국민의회에서 통과된 모든 법률이 전국지방평의회를 거치고 난 이후에 대통령에게 제출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만약 전국지방평의회가 개정을 요구하거나 거부를 하면, 전국국민의회는 재차 심의하여 통과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중재위원회에 회부하여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또한 헌법의 모든 조항에 대한 개정이 전국국민의회에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전국지방평의회의 최소 6개 지방이 동의를 해야만 그 개정안이 합법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런데 지방의 업무와 관련된 법안은 지방의회의 승인이 없이는 전국지방평의회에서 통과시킬 수 없다. 이것은 지방의회에서 선출된 전국지방평의회 의원들에 대한 통제권과 지방의 업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지방의회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남아공의 전국비례대표제는 의회의 직능적 기능을 보완․강화하는 차원의 선거제도가 아니라 지역적 대표성과 전국적 대표성을 동시에 반영하고 있는 제도이다. 인종별․종족별로 분화되어 있는 사회구조를 통일시켜 냄과 동시에 민주주의적인 반(反)아파르트하이드 체제의 구축을 책임질 수 있는 일당 절대다수를 형성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또한 남아공의 입법부는 의원들을 선출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도 비례대표제의 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하고 있으며, 입법부의 권력 또한 그러한 원칙에 상응하는 차원에서 분산되어 있다. 전국국민의회와 지방의회간의 권력이 분산되어 있으며, 전국국민의회에 대한 지방의회의 견제권과 통제권이 보장되고 있다.



6. 닫는 말


ANC를 중심으로 한 3자동맹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준 남아공의 선거제도는 진보정치세력의 정치권 진입이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한국 선거제도의 문제점과 그 개선의 방향성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로칸(S. Rokkan, 1970, 157)의 지적대로 남아공의 전국 비례대표제는 인종별∙종족별로 분리된 남아공 사회에서 “인종별 소수세력의 보호, 인종과 종족을 통일시켜 내는 국민통합전략, 급격한 참정권의 확대, 기존 권력블록의 기득권 유지”라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또한 통일적인 국민국가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종별․종족별 협상의 정치”(Arend Lijiphart, 1990, 12)를 생산해내고 있다. 유권자들의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들의 공정성정책집행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일당 절대다수의 형성이 최고의 수준에서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남아공의 전국비례대표제는 ‘거대 단일정당의 정치권력 독점화와 정당 지도부의 권한 집중화’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정당을 탈퇴할 경우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는 국회법의 규정으로 말미암아, 국회의원들의 정치활동의 자율성이 제한될 수 있는 반면에 정당 지도부들의 권한은 집중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한계를 내포하고 있을지라도, 남아공은 정치 선진국으로 급격하게 발돋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아직까지도 정치 후진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비민주주의적인 제반 요인 중에서 특히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태에서 창출되는 파시즘적 정치권력과 의회를 보수주의 권력블록의 들러리로 고착화시켜 온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한국의 의회는 파시즘 체제하에서 권력을 위임해준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억압적 국가장치로서의 기능을 담당해 왔다.

1972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의회는 통법부로 혹은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하였는데,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변형․왜곡된 채 시행되고 있는 비례대표제에서 비롯된다.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들 중에서 선출되어 국회의석의 1/3을 차지했던 유신정우회는 군부독재정권의 국회 별동대들이었다. 또한 이후에 실시되고 있는 전국구 비례대표제는 기존의 보수주의 제도권 정당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의 비례대표제는 의회의 전문적이고 직능적인 기능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도입된 것이 아니라 파시즘 체제와 보수주의 권력블록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도입되었던 것이다. 비민주주의적인 선거제도는 진보적인 정치세력과 소수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가로막았으며,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인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정당의 출현을 저지시키고 있다. 지역적인 분할정당정치와 선거정치, 연고주의적이고 지역주의적인 투표행태를 고착화시켜 왔던 것이다. DJP연합정권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선거제도를 중-대선거구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변화시키려 하였데, 문제는 그러한 제도가 변형된 지역대표제도로서 기존의 지역적인 분할정당정치와 선거정치를 확장시키면서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토대를 보다 강화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각 국가의 정치문화, 정당정치 및 선거제도, 권력을 위임하는 국민들의 이념적 정치적 정체성 등이 각 국가의 다양한 특수성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남아공의 정당명부식 전국 비례대표제에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만한 점은 정당정치 및 선거제도의 기조일 것이다. 한국의 정당정치 및 선거제도의 개혁내용과 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기조를 세 가지 차원으로 정립한다면, 아래와 같다.

먼저 사회구조의 현상을 반영할 수 있는 국가통합 및 계급통일의 기조이다. 이것은 지역적인 분할 정당정치와 연고주의적인 투표행태를 전면적으로 극복하는 차원에서, 또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분화현상에 기반하는 계급적 투표행태를 정립하는 차원에서 제기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IMF체제를 경험하면서 중산층의 몰락과 부의 편중화 현상이 나타나고,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 계급으로의 계급적 분화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노동자 계급정치의 사회적 토대를 강화할 수 있는 정당정치의 기조가 설정되어야 한다.

둘째, 정치적 경쟁구조의 다원화 기조이다. 이것은 국민 전체의 다양한 정치적 의지가 다양한 정당을 매개로 정책에 반영되고, 다양한 정당간의 정책적 경쟁구조를 정착하는 차원에서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정책정당의 토대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념형적 정당정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지극히 미약한 소수세력의 정치적 의지와 욕망조차 사상되지 않는 차원에서 제기되어야만 한다. 진보정치세력 또는 노동자계급 정치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거의 허용하지 않으면서 비제도권의 투쟁의 정치를 억압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반드시 이러한 기조가 정립되어야만 한다.

셋째, 민주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기조이다. 이것은 정당을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운영하고, 권력을 위임받은 대표자들에 대한 통제권을 유권자들이 보유하는 차원에서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기조는 공천권과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총재 중심의 정당운영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권력을 위임받은 의원들이 권력을 위임해 준 유권자들을 억압하고 통치하는 현상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민주주의적인 계급정당정치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반드시 설정되어야만 한다.

한/노/정/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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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와줄루(Kwa-zulu) 지역에는 주로 줄루(zulu) 종족이 살고 있으며, 그 지역의 흑인들은 잉카타(Inkatha) 자유당을 매개로 백인정권으로부터 각종의 정책적 혜택을 두려왔고, 흑인과 백인간의 인종갈등의 완충세력으로 존재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반(反)아파르트 하이드 운동세력들을 탄압하는 백인정권 대리세력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2) SACP는 흑인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중심으로 반(反)아파르트하이드 운동을 전개하다가 1950년 ‘공산주의 금지법’의 제정으로 탄압을 받다가 1958년에 국외로 추방되었다. ANC 역시 무장투쟁조직인 1960년에 민족의 창(MK)을 조직하여 반(反)아파르트하이드 운동을 전개하다가 1963년에 불법화됨과 동시에 국외로 추방되었다.


3) 이 정권에는 1990년 이전 남아공의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였던 국민당(National Party)과 잉카타 자유당(Inkatha Free Party)이 국민통일정부를 구성하는 한 주체였다. 그런데 국민당과 잉카타 자유당은 1996년 신자유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인 ‘성장 고용 그리고 재분배’(GEAR)전략을 수립하고 난 이후에 국민통일정부에서 스스로 탈퇴하였다.


4) 1998년 8월 현재 미국 1$는 남아공의 6R 수준으로 교환되고 있다.


5) 1990년 아파르트하이드 정책이 폐지되고 난 이후에 폭로되었는데, 그것은 잉카타 자유당이 기존 백인 정권의 자금을 지원받아  ANC를 중심으로 한 반(反)아파르트하이드 세력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했던 사건이었다.


6) 남아공 사회의 민주주의적 이행의 단계를 5단계로 설정할 수 있다. 제1단계는 90년 이전 아파르트하이드 체제에 대한 흑인 노동자‧민중들의 ‘반(反)아파르트하이드 투쟁기’, 90년에서 94년 4월까지의 시기인 제2단계는 연합 민주주의적인 헌법의 개정을 둘러싼 ‘과도적 투쟁기’, 94년 5월부터 99년 5월까지의 시기인 제3단계는 ANC 제1기 정권의 ‘민주주의 도입기’, 그리고 99년 6월부터 시작되는 제4단계는 ANC 제2기 정권의 ‘민주주의 심화기’이다. 그렇지만 제4단계가 언제 마무리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사회체제의 민주주의적 전환기’로 설정할 수 있는 제5단계는 NDR의 성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회체제 건설투쟁이 본격화되는 시점, 또는 3자동맹 내부의 이념적‧투쟁적 분화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7) http://www.anc.org.za/manifestotext.htm


8) http://www.cosatu.org.za/bararism.htm


9) 헌법재판소 의장 이외의 5명으로 구성되는 독립선거위원회의 기능은 ‘선거관리,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의 보장, 민주적이고 건전한 선거과정에 대한 교육의 추진, 정당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의 유지’ 등이다.


2000-06-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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