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
원 영 수
국제기획실장
국제노동
켄 리빙스턴의 런던시장 당선: 신노동당의 새로운 구세주?!
지난 5월 4일 치뤄진 영국의 지방선거는 여러가지 면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그 가운데 “좌파와의 결탁”을 이유로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채 무소속으로
출마한 좌파 켄 리빙스턴(Ken Livingstone)이 블레어가 지명한
노동당 후보에 맞서 독자후보로 출마하면서 영국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고조되었다.
지난 80년대 대처정권의 지속적 신자유주의적 공세하에서 수세에
처한 영국 노동당은 조직적으로 당내의 좌파를 축출했으며,
마침내 토니 블레어가 당권을 장악하면서 내세운 신노동당
체제(New Labour) 하에서는 국유화를 명시한 당헌 4조의
삭제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제3의 길”을 통해 탈노동자
정당화의 길을 걸었다. 따라서 이번 켄 리빙스턴의 독자출마라는
도박은 어떤 면에서 그가 낙선할 경우 노동당 내에서
“좌파”(?)의 절멸과 탈노동자 정당화의 완성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압도적 승리의 예견에도 불구하고 켄 리빙스턴은 32%의
낮은 투표율을 보인 런던시장 선거에서 1차 지지 39%, 2차 지지
58%의 득표로 보수당의 스티브 노리스(Steve Norris), 노동당의
프랑크 돕슨(Frank Dobson)을 누르고 런던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은 런던시장 선거에서의 패배 외에도,
전국적으로 600석에 달하는 의석을 잃음으로써 1992년 이래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특히 노동당의 전통적 기반이었던
브래드포드, 리즈, 맨체스터, 코벤트리 등의 지역에서도 패배해
충격을 주었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의 여세를 몰아 조기총선을
실시하려던 노동당 지도부의 기세는 한풀 꺾이게 되었다.
비노동당 좌파의 선거투쟁
전체적으로 노동당 외부의 좌파세력들은 신노동당에 대한 반대를
전면에 내걸면서 켄 리빙스턴을 지지하였다. 이들은 켄
리빙스턴에게서 새로운 좌파단결의 구심형성의 가능성을
기대했고, 신노동당에 대한 새로운 대안적 노동자정당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기를 기대했다.
런던의 경우, 노동당 외부의 다양한 좌파세력들이 이와 같은
희망을 가지고 선거전에 참여했다. 80년대 마가렛 대처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광산파업의 지도자 아서 스카길(Arthur
Scargill)이 이끄는 사회주의노동당(SLP, Socialist Labour
Party)과 소규모 영국공산당(CPB, Communist
Party of Britain)의 경우, 좌파연합전술을 거부하고 독자후보로
나서 각각 1% 이하의 저조한 성과를 얻었을 뿐이다. 그리고
철도와 지하철 부문의 활동가들의 네크워크인 지하철민영화 반대
캠페인(Campaign Against Tube Privatisation) 역시 선거전에
뛰어들어 1.1%를 득표했다.
반면, 과거의 오랜 분파적 반목과 분열을 넘어서려는
좌파세력들의 시도는 진일보하여 런던 사회주의동맹(London
Socialist Alliance)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지난 몇 년간
부분적인 연합의 시도가 있었지만, 작년 스코틀랜드
사회당(Scottish Socialist Party)의 경험에 고무되어
좌파연합의 실현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LSA는 기본적으로
좌파들의 공동선대본이며, 여기에는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 사회주의당(Socialist Party),
노동자자유동맹(Alliance for Workers Liberty),
영국공산당(Communist Party of Great Britain),
국제사회주의그룹(International Socialist Group),
노동자권력(Workers Power) 등 6개 조직이 참여하였다.
LSA는 런던의 모든 지역구에 출마하여 평균 2.7%, 최고 7%를
득표하였던 반면, 비례득표에서는 겨우 1.6%만을 득표했다. 이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에서는 좌파의 표가 분산되었음을 의미한다.
LSA는 런던시장 선거의 경우 독자후보 대신에 켄 리빙스턴을
지지하였으며, 그들의 선거슬로건은 “런던시장에
리빙스턴을”(Vote KEN for London mayor!)와 “신노동당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LSA”(Vote LSA for a
workers’ voice against New Labour!)였다.
그러나 선거운동 과정에서 LSA는 켄 리빙스턴이 오전에는
자본주의의 잔학성에 대한 선동적 연설을 하고 오후에는 런던
중심가에서 증권브로커들과 우호적 대화를 나누는 이중적 행태에
대한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내외의 비판을 자초했다.
따라서 비록 이와 같은 연합전술이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경험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노동당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안을 제출하기에는 정치적으로 취약한 영국좌파의 역량을
그대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켄 리빙스턴과 영국좌파
켄 리빙스턴은 오는 10월의 노동당 전당대회를 통해
노동당으로의 복귀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선거운동과정에서 비노동당계 좌파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는 현란한 반자본주의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노동당의 틀을 깨는 투쟁의 전망을 전혀
갖지 않는 정치인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난 것이다. 사실 그는
블레어와의 노선차이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으로부터 어떤 이탈도
일관되게 거부하였으며, 선거운동기간 중에도 좌파들로부터의
어떠한 제안도 거부한 바 있다.
더욱이 그는 런던의회 선거에서 지역구 투표에서는 노동당지지,
정당명부 투표에서는 녹색당지지 노선을 취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보다는 “초당적 정치”라는
개인주의적 실험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는 당선직후 런던시
행정부 구성에서 노동당계 부시장을 지명함으로써 또다른 아류
블레어주의를 시도하고 있다.
다시 한번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하여
지난해 스코트랜드 의회선거와 유럽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비사민당-비노동당계 좌파의 진출에 이어, 이번 영국 지방선거는
제3의 길을 표방한 신노동당에 대한 대안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켄 리빙스턴의 초당파적 정치쇼와 노동당으로의 복귀계획은
한편에서 비노동당계 좌파역량의 열세와 무기력, 다른 한편에서
영국 노동당내의 뿌리깊은 개량주의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전세계적으로 노동당․사민당류의 노동계급대중과
노동조합으로부터의 이탈은 20세기 후반 꾸준히 진행되어
왔으며, 89~91년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완전히 포섭됨으로써 완성국면에 들어와 있다. 물론 좌파내에서
“제3의 길”에 대해 기대와 희망을 거는 개인과 세력이 적지
않게 있지만, 문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그 자체이다.
이제 전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자신을 대변하는 어떠한
정치조직도 갖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다양한 형태와 수준에서 비제도적 좌파가 존재하고,
90년말 부분적으로 약간의 성과를 내고는 있지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에 도전할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이끌 이론적-이데올로기적
전망을 제출하지 못한 채, 과거의 이론틀을 고집하거나 분파적
조직틀에 얽매여 있으며, 현실의 계급투쟁에 개입할 역량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사실 이번 영국의 지방선거를 통해,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프로젝트에 대한 대중적 심판이 내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노동당과 사민당의 신자유주의적 우경화에 대항하는 이른바
전통좌파, 독일의 오스카르 라퐁텐, 프랑스의 리오넬 조스팽에
이어 켄 리빙스턴으로 하나의 흐름은 어느 정도 형성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20세기 역사 전체를 통해 사민주의가
자본주의의 구원투수 역할을 한 것과 똑같이 사멸하는
사민주의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영국의 노동자계급은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정당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여러 유형의
좌파조직들 역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혁신과
분파주의 극복, 그리고 계급대중에 뿌리박는 활동의 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