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 집
전노협 운동, 그 과거와 현재
이번 호 특집에서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주제로 다루었다.
민주노총이 건설되면서 그간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이었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해소(12월 3일 예정)를 앞두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가졌던 의미를 두 편의 주제로 묶었다.
‘특집1’에서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건설의 역사와 활동을
개괄하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수행했던 주요한 활동과 그것이
가지는 현재적 의미를 정리해 보았다.
‘특집2’에서는 그간 민주노동조합 운동을 현장에서 실천해
왔던 주체들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 대한 평가를 실었다. 각
주체들의 다양한 진단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그 현재적 의미 ․ 김혜란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운동 6년, 현장에서 말한다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 김영대
․부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 박양희
․전북지역노동조합연합 - 이송준
․대우조선노동조합 - 장대현
․전 전노협 교육국장 - 김진순
․전 전국노운협 의장 - 신철영
특집 1
전노협 운동, 그 과거와 현재
전노협, 그 현재적 의미
김 혜 란 (정책사업위원)
87년 이후 투쟁의 역사 속에 결성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90년
1월 22일 602개 단위노조, 14개 지역노동조합협의회, 2개
업종노동조합협의회가 참여하여 결성한 전국조직.
가 이제 6년의 대단원을 마감하고 12월 3일 그 깃발을 내린다.
94년 민주노총준비위원회(이하 민주노총준비위)를 결성하면서,
아니 보다 소급해 본다면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이하
전노대)가 출범하고 이후 단일한 중앙조직 건설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전노협의 해소는 이미 예견되었었다.
그러나 현실로 느끼기 어려웠던 것은 비단 노동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전노협 해산이 마치 건설 당시의 열정과
결의까지 해소되는 것만 같고, 전노협의 지난한 투쟁의 역사가
단지 옛 추억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조바심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니다. 보다 핵심적인 지점은 그 동안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 이어오기까지 전노협의 역할과
전노협의 전통이 무엇이었고, 지금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그
새김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건설된 민주노총 이후의
과제가 우리 노동운동진영에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데 자부심을 갖게 해 준 전노협이 어떻게
계승․발전되어야 할 것인가를 밝히기 위해 이하에서는
전노협건설과 의의, 전노협의 중심적인 활동, 전노협의 성격,
전노협의 조직발전 논쟁에 대한 평가, 전노협의 올바른 계승
등을 중심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1. 전노협 건설과 의의
전노협은 87년 대투쟁으로 일반화된 노동조합이 88~89년을
거치면서 조직적으로는 「지역노조협의회」와
「업종노조협의회」, 「지역․업종별
노동조합전국회의」라는 지역 및 전국조직으로,
투쟁적으로는 민주노조 건설, 임금인상 투쟁, 노동법개정 투쟁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건설된, 그야말로 한국전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최고 결집체로 건설되었다. 전노협의 건설로 민주노조
진영은 한국노총으로 대표되었던 어용적 노동조합운동과 전혀
다른 새로운 원리에 의해, 즉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해 나갈수 있는 조직적 무기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자본과 권력의 탄압을 전국적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조직도 갖게 되었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민주노조의
전국적 구심이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조의 전국적 구심으로서 전노협에 대한 평가가
시간이 지나면서 때때로 ‘지역협의체의 또 협의체’, ‘업종과
대공장을 포괄하지 못한 중소사업장, 제조업만의 중앙’,
‘새로운 중앙조직 건설의 논의’ 등을 근거로 자주 폄하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일면을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전노협은 이미 창립선언문에서 스스로를
전국적 중앙조직(기업별 노동조합의 협의체가 아닌)이
건설되기까지의 과도적 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전국적
구심이 협의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문제제기하는 것은 기업별
체계에 대한 문제제기이고, 이것은 민주노총이 창립한 지금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리고 전노협을 제조업,
중소사업장으로만 보려는 시각은 조직의 위상을 그 조직에 속해
있는 대상을 범주로만 보고자 하는 태도로서, 중요하게는
87년이후 전노협이 창립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소홀히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리고 전노협 폄하의 가장 핵심적 소재는 전노협의 위상이
‘ILO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
공동대책위원회’(이하 ILO공대위)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지평이
확대되고, 민주노조총단결 논의가 새로운 조직건설로 모아지면서
축소되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90년도 초반과 비교하면
사실이다. 그러나 전국적 구심으로서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전노협에게 부여된 과제는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앞서서 제기하고 선도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노협은 그 과제를 충실히 수행했었다. 즉, 전노협의
조직형식적 위상은 투쟁의 영역과 민주노조 조직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변화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내용적 측면에 있어서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대공장과 업종을 포괄하지 못한 채 결성된 전노협은
노동조합운동 전체의 지도집행력으로 전화하지 못한 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후 대공장, 업종과 끊임없는 연대활동을
모색했던 것이다.
2. 전노협의 중심 활동
시기별로 전노협의 주요한 활동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전노협이
6년의 활동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내용이 드러난다.
시기는 크게 ①90년~91년 10월(ILO공대위 구성) ②91년~93년
6월(전노대 결성) ③93년~94년 11월(민주노총준비위 결성)
④94년~95년 12월(민주노총 건설과 전노협 해산) 등 4시기로
나누었다. 시기를 이렇게 나눈 근거는 중앙의 조직형식적 위상
변화를 계기로 전노협의 실질적 기반이었던 지노협의 형태와
활동이 변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노협을 염두에 두는
것은 전체적으로는 전노협에서부터 민주노총건설까지를 하나의
연속성으로 파악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1) 90년 창립에서 91년 ILO 공대위의 구성까지
- 전노협의 사수와 민주노조총단결 -
전노협의 와해를 통해 전체 민주노조운동을 말살하고자 한
자본과 정권의 노동운동탄압에 대해 전국노동자는 총파업으로
전노협을 사수해 냈다. 90, 91년의 총파업으로 아직 역량이
취약했던 대공장과 업종회의는 조직역량을 한 단계 상승시킬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성과는 91년 하반기에도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ILO가입과 정부의 노동법개악 발표를 계기로 전노협,
업종회의, 노동단체는 「ILO공대위」(91년 10월
9일)를 구성한다. 이 기간에 전노협은 조직이 절반으로 축소되고
지도부가 구속되는 등 조직의 훼손이 심각했지만, 700여 개
노조, 30만에 달하는 조합원이 전노협에 조직적으로 참관하고
있거나 교류하고 있을 정도로 민주노조의 지평은 넓어졌고,
전노협에 대한 노동자의 신뢰는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2) 91년 ILO 공대위에서 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까지
- 전국적 연대전선의 형성 -
임금가이드라인의 변종인 ‘총액임금제’와 ‘노․경총
임금합의’ 반대투쟁을 전노협, 대공장, 업종회의, 공공부문이
함께 진행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영역이 더욱 확대되었다.
공동투쟁의 결과 사안별공투체였던 「ILO공대위」가
발전적으로 해소되고 공동사업추진체로서
「전노대」(93.6.1.)가 건설된다. 전노대는 92년
1,071개 노조, 47개 단체가 함께 조직했던 전국노동자대회를
거치면서 결성된 것으로 확대된 민주노조의 범위를 연대전선체로
묶어 유지, 강화시키게 된다. 이 시기 이후 한국노총의 위상은
추락하기 시작하는 반면 전노협은 대공장과 업종을 한 데 묶어
명실상부한 민주노조의 전국적 연대전선을 형성하게 됐다.
3) 93년 전노대에서 94년 민주노총준비위까지
- 전노협의 재정비와 민주노조총단결 -
‘위로부터의 개혁’을 기치로 내건 김영삼 정권은 94년에
들어서도 사회적 합의를 명분으로 ‘노․경총 임금합의
강행’, ‘무쟁의 원년 선포’, ‘파업없는 날의 선언’ 등
노동자를 허구적 개혁의 틀로 묶어 놓으려 한다. 그러나
전노협과 전노대는 작년의 임금합의 반대투쟁 경험을
분쇄투쟁으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노총탈퇴투쟁으로 발전시킨다.
한편 6월 27일 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지협)의 강고한
파업으로 대중투쟁의 동력은 살아나게 된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은 전국적 구심의 혼선과 상층의 사업이
조직건설 문제로 집중되면서 전국으로 모아지지 못하고 업종별,
지역별, 사안별 공동투쟁으로 스스로를 정립해 들어갔다. 이렇게
각각의 투쟁과 전국조직 건설논의가 맞물리지 못한 채 11월 13일
전국노동자대회를 기해 「민주노총준비위원회」가
선포되었다.
이 시기는 민주노총건설과 산별건설이 대중적 요구로 뚜렷이
제기되고, 업종(산업)별 조직건설에 대한 논의와 동시에 조직적
실체를 가시화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와 조직건설을 주도할
전국구심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으면서 조직건설의 주체인
조합원의 고민은 오히려 낮은 의식수준에 머물게 된다.
4) 민주노총준비위에서 전노협의 해산까지
- 민주노총의 건설과 전노협의 발전적 해산 -
민주노총(준)의 이름으로 맞이하는 95년은 다른 해와 달리
민주노총 건설사업을 중심으로 임투와 사회개혁투쟁(이하
사개투)을 배치하게 된다. 그러나 허구적인 노사협조주의,
반노동자적 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 탄압, 비인간적 근로조건의
실체를 죽음으로 항거한 현대자동차 양봉수 열사, 대우조선
박삼훈 열사, 철도 대전 기관사 서전근 열사 등의 분신과
한국통신노동조합에 대한 폭력적탄압을 계기로 노동운동탄압
분쇄투쟁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 시기의 공동투쟁 역시
전국전선으로 모아지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하였다. 위로부터
조직된 정책적 대응투쟁으로서 ‘근로자파견법 저지투쟁’을 한
것 이외에, 연 2년째 중앙조직은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전국적 투쟁으로 조직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11월
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합」은 건설되었다.
이렇듯 전노협의 6년사는 총자본과 총노동의 투쟁의 역사였다.
다시 말해 정부와 자본의 집중적인 탄압으로 조직이
훼손됐음에도 불구하고 연대의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여온
역사였다. 전노협은 중소사업장, 대기업, 업종, 공공부문으로
민주노조의 영역이 확대되는 최선봉에서 공동활동,
노동운동탄압에 대한 공동지원 등 선도적 활동을 해 왔다. 또한
기업별 체계로부터 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상활동,
공동교육 등으로 민주노조총단결의 기운을 강조해 왔다.
3. 전노협의 성격
전노협의 성격은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라는 전노협에 대한
비판 물론 전노협 스스로 한번도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라고
선언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노협을 폄하하는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라는 비판은 근절되지 않았다.
을 분석해 보면 잘 드러난다. 전노협을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라고
비판하는 내용을 세분하면 크게 세 가지 요소로 분류될 수 있다.
우선 전노협의 결성과정을 둘러싼 문제제기이고 두번째는 이념의
급진성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마지막으로는 투쟁방식의 전투성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이제 이 각각에 대한 비판을 통해 전노협의
성격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조합원 대중의 역동성과 소망에 입각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1) 전노협의 결성과정에 대한 비판
비판의 핵심은 전노협이 노동운동의 전반적인 수세기에
건설됨으로써 건설초기의 집중적 탄압을 피해갈 수 없었다는
것과 초기의 투쟁목표를 ‘전노협 사수’로 설정한 것은
7~9월투쟁의 정신에 위배되는 선도투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당시의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론적 판단일 뿐아니라 전노협이 87년이후의 투쟁을
조직적으로 결집하는 과정에서 건설되었다는 것을 간과하는
사고이다. 당시의 상황은 2년여의 투쟁을 경과하면서 이미
대중적으로 자리잡힌 노동법개정과 같은 전국적 요구를 하나로
결집하여 운동을 전개할 조직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또 이러한
조직이 없이는 정권과 자본의 탄압을 효과적으로 방어해 내기
어렵다는 것을 공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노협은 88년 이후
자본과 정권이 체제를 정비하면서 노동에 대해 총공세로 나오는
것을 막아 주고, 새로운 전망을 열어 주는 그 무엇이 절실히
요청되던 때에 결성된 것이다. 그래서 90년 전노협 사수투쟁은
바로 민주노조운동의 사수투쟁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사수된 전노협이 없었다면 지금의 민주노총도, 민주노총으로
그룹, 업종, 지역이 하나로 묶이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2) 이념의 급진성 문제
이념의 급진성 문제는 전노협의 이념이 최대강령적이라는(그래서
곧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는) 것과 민중연대를 통해 수행했던 제반
정치투쟁을 소재로 제기되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임․단협투쟁조차도 국가권력과 직접 부딪혀 왔던 한국의
노동운동 현실을 반영하여 판단할 문제이다. 그러나 전자와 같은
비판에 대해서는 ‘임금인상 쟁취투쟁’ ‘민주노조 사수투쟁’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대한 ‘노동운동탄압 분쇄투쟁’ 노동자의
단결을 가로막고 있는 ‘노동악법 분쇄투쟁’ ‘주 40시간으로
생계비 쟁취’(그것도 94년까지는 주 44시간) ‘조국의 민주화,
자주화, 평화통일’ 등이 과연 시대착오적인가를 반문을 하고
싶다. 그런데 만약 최소한의 권리주장도 그 시절에는
급진적이었다고, 그래서 전노협의 이념은 급진적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칭찬으로 들린다.
3) 투쟁방식에서 전투성 문제
전투성을 서로의 이해에 따라 대치할 수밖에 없는
노․자관계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고 쟁취하기
위해 취하는 투쟁성의 문제로 본다면, 이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노동조합이 굳건히 지켜가야 할 것으로
오히려 엄호되어져야지 비판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투성이 마치 노동자가 돌이나 화염병을 던지고,
타협으로 보다 높은 이익을 보장받을수 있는 데도 무리하게
파업으로 몰고 가서 결국 조직을 깨뜨린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나라 권력과 자본의 속성과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지적이다. ‘자주적․민주적
노동조합’의 건설 자체를 말살하기 위해 정당한 파업에도 구속,
수배, 테러가 자행되고, 자신을 정치적으로 대변해 줄 세력도
없는 상태에서 전노협과 모든 민주노조는 노동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민주노조를 방어해 들어간 것이다.
전노협의 성격은 개념적 급진성과는 거리가 먼 노동조합의
자주성․민주성․민주노조총단결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것에 입각하여 교육하고, 대중의 요구를 투쟁으로 조직하고,
나아가 조직을 건설해 온 것에 다름 아니다.
4. 조직발전 논쟁에 대한 평가
조직발전 논쟁은 다음의 두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민주노총의 조직주체와 관련된다. 90년에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으로 건설된 전노협이 이후 정부의 집중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조직이 축소되고, 역으로 민주집행부가 들어선
대공장노조, 합법성을 쟁취한 업종연맹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높아갔다. 이에 따라 이후 건설될 민주노총에 이 세 주체가
어떻게 통합되어야 하는가가 문제로 대두되었는데, 이 문제는
민주노총의 ‘건설시기 논쟁’ ‘조직체계 논쟁’으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산별노조의 조직원리와 관련된 문제이다. 기업별
노조를 극복하고 산업별 형태로 전환하는 데에는 모두 다
동의했으나 어떠한 경로가 더 효과적인가를 둘러싸고 이견이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이견은 대산별론과 업종별조직화로
불리워졌는 데, 실제 내용은 민주노조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주체인 금속산업의 노동조합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조직발전 논쟁의 첫 단계는 90년도 다수의 대공장들에
민주집행부가 들어서고 그들이
「대기업연대회의」를 결성하여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하자,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으로서 전노협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
시기의 논쟁은 높아진 대공장노조의 위상을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단결로, 특히 이전부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전노협에 어떤
형태로 결합시킬 것인가를 둘러싼 것으로 상호 이해의 수준을
높이는 과정이었다. 두번째 단계는 92년부터 전개된 ‘전노협
중심론’과 ‘전노협 한계론(93년 이후는 전노대 중심론)’의
논쟁 시기로 이 때부터는 조직발전 논쟁이 ‘조직주체’와
‘조직원리’를 둘러싼 이견으로 가시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노협 활동에 대한 평가로 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노협 위원장 선거는 두번째 단계 조직발전 논쟁의
압축장이었다. 전노협중심론이 전노협의 공식안으로 결정되지만
두번째 시기의 논쟁은 대중에게 상당히 멀게 느껴진다. 실제로
지역이나 단사에서는 그 구체적인 쟁점이나 이견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거의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였다. 세번째
단계는 94년 이후 민주노총 건설이 가시화되면서 전노협은
제조업산별, 특히 금속산별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을 하게 된다. 가능한 큰 틀로 묶어야 한다는 금속산별론과
우선 묶이기 쉬운 업종별로 조직한 뒤 금속산별로 나가야 한다는
두 가지 견해는 이론적 논쟁만이 아니라 현실운동과 직접적으로
결합되면서 조직의 세를 가시화시킨다. 그 결과 금속연맹(추)과
자총련으로 분리 건설되면서 조합대중을 주체로 세우는 단일한
금속산별 건설은 이후 과제로 넘어 갔다.
전노협의 조직발전 논쟁은 지난했다. 그러나 조직발전 논쟁을
통해 결국 민주노총을 건설해 냈고, 이제는 반한국노총을
뛰어넘어 민주노조 그 자체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조직발전 논쟁은 현장 조합원의 의견을 포괄하지 못하고
중앙단위에서만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현장투쟁과 조직건설투쟁을
하나로 묶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 투쟁을 통한 민주노총
건설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전노협이 대중투쟁을
즉각적으로 조직하는 데 더딘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전노협의 정신을 왜소화시키는 한 요소가
되었다. 전노협이 힘있는 해산을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금속산별 건설에만 치중했던 점은 신중히 검토해 봐야 할
사안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합원 대중이 스스로의 의식과 조직을
강화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중앙중심적 논의를 밑으로부터 새롭게
역규정해야 할 과제를 남기고 있다.
5. 전노협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전노협 전통의 계승 또는 전노협 정신의 계승은 전노협의
패권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이 점과 관련하여 전노협의
계승을 마치 전노협 조직이기주의로 보거나 전노협과 전노대를
대립시켜 사고하거나, 심지어는 전노협과 사무직을 대립시켜
사고하는 것은 극복되어야 한다.
이것은 전국적 구심으로서 전노협이 하고자 노력했던 일들, 즉
공동활동과 공동투쟁을 통한 민주노조의 확대와 민주노조총단결,
조합원 대중을 조직주체로 세우고자 하는 일상적인 활동의 강조,
조합원의 의식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교육과 투쟁의
전국적이고 대중적인 집행, 민주집중제에 입각한 조직원리
이것들을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전노협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점들을 계승하자고 하는 이유는 바로
전노협의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노협은 이러한 과제를 구체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때문에 단일한 중앙조직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는
민주노총은 계승을 넘어 이 과제들을 구체화시켜야할 책임까지
갖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단일조직으로서 노동자계급을 하나로
묶어 세우고, 노동자계급이 쟁취해야 할 강령을 구체화하는
것과도 맞물리는 작업일 것이다.
866개 노조, 41만명의 민주노총 건설!
우리는 이제 숨가쁘게 거대한 산을 넘어 왔다. 그러나 또 다른
산이 전체 노동자를 향해 버티고 서있다. 자주! 민주!
노동자계급의 단결! 결코 영원히 놓을 수 없는 우리의 무기를
들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가자.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