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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국과 5.18의 의미

현장에서 미래를  제5호
김상곤

정 ․ 세 ․ 초 ․ 점

현 정국과 5.18의 의미


김 상 곤 (민주화 실천을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 이사)


지난 10월 중순부터 폭발적으로 조성된 비자금 정국은 노태우 구속과 일부 재벌총수 및 자금조성 중간책들에 대한 축소 처리로 일단락되어 가면서 알맹이가 빠진 5.18 특별법 제정 정국으로 전환되고 있다. 현 정권은 이 정국을 이용하여 내년 총선과 차기 권력 재창출을 위한 정치판 물갈이와 판갈이를 시도하고 있고, 부정과 비리의 일부 척결을 통해 다시금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현 정국은 민중과 많은 괴리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5․18 청산 : 모순과 비리의 역사를 민중의 힘으로 청산해야

현 정국을 민중의 입장에서 민주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비자금의 정치구조를 근원적으로 파헤쳐서 혁명적인 대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정국은 부르주아 권력의 주도하에 민중을 배제한 채 전개되고 있다. 민중은 옆에서 쳐다보고 박수만 보내라고 요구한다. 비자금의 온상인 정경유착․권언유착 나아가서 권․경․언 한몸체제의 고리를 해체하지 않고 현란한 수사학을 동원해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 한편 정부는 국민의 정신이 여기에 집중되고 있는 사이에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 등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강도를 높이고 내년 임금정책을 부정비리 공범인 재벌들과 숙의하고 있다.
현 정국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에도 꾸준히 민주․자주․통일을 위해 몸바쳐 투쟁해 온 사회의 민주세력들에 의해 촉구되어 왔고, 직접적으로는 검찰의 ‘5.18 공소권 없음 결정’에 대대적으로 저항해 온 모든 계급․계층들의 5.18 학살자 사법처리운동이 강제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현 정국을 활용하여 국민의 5.18 학살자 처벌과 민족정기 확립운동을 무마하고 얼버무리고자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 정권의 반역사적인 기도를 막고 ‘5.18’이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군사독재체제의 모순과 부정비리의 역사를 민중의 이름으로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열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의 추잡한 결탁을 부수고 민중의 참다운 권리를 확보해 나가기 위해 이 시점에서 5.18의 의미를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처참하게 진압당했던 5‧18항쟁은 학살의 주역들이 집권하면서 처음에는 '불순분자들의 난동으로 유발된 폭도들의 무장난동'으로 규정되었다가, 6공의 유화적 분위기 속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5‧18의 의의를 주로 학살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미시적 차원에서 찾음으로써 항쟁의 의미는 도덕적․윤리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최근에는 5‧18항쟁이 지배권력의 폭압성에 맞선 광범위한 국민의 저항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후 저항의 정치라는 의미에서의 민중적 정치력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민중항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5‧18항쟁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폭도들의 난동'으로부터 '민중항쟁'으로 바뀌어 간 것 그 자체가 80년대 이후 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통해 비로소 가능했다.

5․18 진상 규명 회피는 민중의 정치적 진출 봉쇄 기도

그간 5공과 6공의 정권이 5‧18의 진상규명을 회피해 온 것도 바로 이 광범위한 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른바 '문민정부'가 당시의 학살주범들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라거나 공소권 없음의 법리를 농하면서 5‧18의 진상규명을 회피하는 것 역시 당시의 실증자료가 없어서가 결코 아니며 바로 이러한 국민 일반의 정치적 진출을 봉쇄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야합적인 3당 합당으로 출범한 이른바 문민정부는 그간 사정과 개혁의 슬로건을 외치면서도 그러한 사정이나 개혁의 지지기반을 민중에게서 확보할 수가 없었으며 수구적 기득권세력의 지지를 통해서만 자신의 집권기반을 확충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각 분야의 개혁이 슬로건에 머무르고 결국은 구지배세력과의 적정한 타협선에서 주저앉고 만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새로운 수구적 특권집단이 되어가고 있는 이른바 문민정권의 지배집단은 국민들의 광범위한 의사표시에 대해 바야흐로 군사독재시절을 무색케하는 방자하고 폭압적인 탄압을 자행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민중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민중의 기본권운동을 탄압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합법화하기는커녕 이적단체 혐의로 전면 수사할 태세를 갖추고 있고, 임금가이드라인을 임금준거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또다시 임금인상을 억제할 준비를 재벌과 모의하고 있다. 그리고 UR 이후 농업을 선진화하고 농민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겠다는 국민적 언약을 파기하면서 지속적으로 농촌을 황폐화하고 시키고 있으며, 재벌중심 경제정책의 강화로 서민들의 삶을 상대적으로 궁핍하게 만들고 있다.
지배권력의 이 방자함은 역으로 90년대 들어 문민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 앞에서 국민 일반의 정치적 자각이 주춤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오늘 5‧18항쟁의 의의는 더욱 소중한 것이다. 5‧18항쟁의 처참한 도륙에서 삼청교육대로 이어지는 5, 6공 지배집단의 반인륜적 살상이 민중들의 저항의 정치를 통해 심판되지 아니하면 민중의 저항에 대한 폭압적 탄압은 앞으로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계속 5‧18항쟁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을 회피한다면 그것은 결국 현 정부가 5, 6공 지배집단과의 결탁 속에 탄생하여 자신 역시도 국민 일반의 비판적 저항적 정치진출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5․18은 ‘실패한 쿠데타’

국민들은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이 '성공한 쿠데타'에 면죄부를 부여한 것으로 규정하고 근본적으로 그러한 결정은 현 정권의 태생적 한계와 그로 말미암은 검찰개혁 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즉 그것은 '5, 6공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재의 검찰로서는 이 사건 피고소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수 없다'는 자기고백인 것이다. 더우기 1980년 신군부 쿠데타세력은 총칼로 집권을 하기는 하였으되 한순간도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집권기간 내내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범국민적 저항에 시달리다가 끝내 1987년 6월 민주대항쟁의 결과 7년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성공한 쿠데타가 결코 아니며 완전히 실패한 쿠데타라는 것이 국민들의 법적 평가이다.
교수들은 지난 8월25일 ‘전국 대학 서명교수 대표자모임’의 이름으로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와 관련한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바 있다. 이 의견서에서 교수들은 국민주권적 헌법 질서에서는 성공한 쿠데타가 있을 수 없음을 밝혔다. 일단 내란이나 역성혁명을 통해서도 정권을 장악하면 정권을 안정적으로 대물림할 수 있는 군주제나 기타의 헌정체제와는 달리, 국민주권주의에 바탕한 민주헌정에서는 어떠한 정권이든지 선거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는 한 정권을 상실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쿠데타세력에 의한 헌정파괴나 기타의 불법사태에 대해 국민주권주의에 바탕한 민주국가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자동교정력 내지 헌법 복원력이다.

‘공소권 없음’ 결정은 반헌법적 직무유기

현재 우리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에 대한 불소추특권을 규정하면서 내란과 외환의 죄에 대해서만은 예외를 두고 있는데 이는 비록 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내란이나 외환의 죄를 범한 혐의가 있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소추하여 단죄하라는, 검찰에 대한 헌법의 명령이라 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조차 헌법의 정신이 이러할진데, 검찰 스스로도 내란의 혐의가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 건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의 논리로 공소권조차 없다고 결정을 내린 것은 헌법의 기본을 흔드는 반헌법적 직무유기라고 아니할 수 없다. 검찰은 공소권 없음 결정의 실질적 이유로 법질서의 혼란이 우려된다는 점을 들고 있는데 이 점과 관련하여서도 현행 헌법 부칙 제5조는 이 헌법 시행 당시의 법령과 조약은 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이상 그 효력을 지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집권과정의 헌정파괴행위에 대한 단죄와 처벌이지, 집권기간 중 일반적인 헌법원칙에 부합하게 만들어진 법령과 조약의 실효나 폐기가 아니다. 따라서 검찰의 주장은 매우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검찰의 이러한 태도는 군사쿠데타의 주역들에게 살인, 고문 등 잔혹행위와 관련하여 내란죄 이상의 법적 심판을 내린 아르헨티나 검찰의 태도와 매우 대조적이다. 지난 1983년 라울 알폰신 민선 대통령이 집권한 뒤 아르헨티나 검찰은 1976년 군부쿠데타 이후 7년간 2만여명의 국민을 학살한 '더러운 전쟁'의 주역들을 살인, 고문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쿠데타의 주역들이 여전히 군사령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검찰은 작가 에르네스토 사바토를 위원장으로 한 176명의 인권조사위원회(사바토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군정 지도자들의 학살 개입 사실을 속속 밝혀 내어 비델라 육참총장 등 세명의 전직 대통령과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등 4백여명의 관련자들을 기소하였다. 그후 군부의 반발을 고려한 메넴 대통령에 의해 1990년 대부분 사면되긴 하였으나 이들 학살주범들은 1985년부터 시작된 재판과정을 거쳐 종신형에서 17년형, 12년형 등에 이르는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해야 했다.

5․18청산은 현대사의 왜곡을 바로 잡는 것

역사청산의 관점에서 볼 때, 5‧18은 일제 36년간의 강점에 못지 않은 치욕의 역사이며 따라서 반드시 청산되지 않으면 안된다. 일제의 반인륜적 횡포는 이민족에 의한 침탈이었다고나 변명할 수 있을 것이지만, 5‧18은 바로 제 동포에게 총부리를 겨눈, 그것도 더할 수 없이 포악한 방식으로 비무장의 양민을 학살한 반인륜적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그 학살자들에 대한 책임추궁은 커녕 우리는 그 주역들을 차례로 국가원수의 자리에 앉혀 돌아가며 봉대한 부끄럽기 짝이 없는 현대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생겼다. 우리는 해방 후 친일파에 대한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한국 현대사가 얼마나 왜곡되었는가를 이승만정권과 군사정권 치하에서 뼈저리게 겪은 바 있다. 그러므로 5‧18에 대한 역사청산은 단순히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열흘간의 만행에 대한 진실규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5.16 군사정권 이후 누적되어 온 우리 현대사의 왜곡을 바로 잡는 것이며 우리 현대사에서 저질러진 수치스러운 반문명적 만행을 그나마 보속하는 것이다.
후세에 어떤 역사를 물려줄 것인가는 결국 우리들 손에 달려 있다. 일제 36년은 이민족에 의한 강점이었다고나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정부 스스로 민주화운동이라고 명명하는 국민적 저항을 흉악하게 진압한 주역들을 차례로 국가원수의 자리에 앉혀 봉대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를 무엇으로 변명하여 후세에 넘겨 줄 것인가. 이러한 치욕의 역사를 우리 세대에서 청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 후손들에게 자조와 패배감의 오욕만을 하나 더 물려주는 또하나의 크나큰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범국민적 운동을 추진하면서 특히 언론과 사법부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5공 이래 사법부와 언론은 정치판사라거나 YS장학생이라는 신조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새로운 지배집단과의 유착 속에서 수구적이고 편파적인 역할에 앞장 서 왔다. 언론계와 사법계 일각에서 자체 민주화를 위한 내부의 진통과 고통이 적지 않다고는 하나, 우리 현대사가 이처럼 왜곡되어 온 데에는 권력과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독립성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언론과 사법부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이다. 5‧18문제의 해결에 대한 범국민적 요구 속에서 우리 사회가 드디어 보다 성숙한 민주사회로 도약하려는 이 때 언론과 사법부가 수구세력을 계속 비호한다면 두고 두고 역사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특히 언론은 비자금 정국에서 보여 준 자기비판과 역할을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주동자 사법처리에서도 수행해야 한다.(95년 11월 24일 씀) 한/노/정/연

1995-11-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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