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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사회화”에 역행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58호
이진석


열린마당


“의료의 사회화”에 역행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 이 글은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홈페이지(http://myr.jinbo.net)에 8월 13일자 [정책실 칼럼]으로 게재된 글입니다.

- 정부의 반민중적 보건의료정책과 함께
의사들의 반민중적 전문주의 역시 투쟁의 대상 -


이 진 석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필자 주: 이 글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채만수 부소장이 의사폐업에 관련해서 쓴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2000년 7월호 권두언에 대한 반론인 동시에 과거 운동권이었거나 지금도 운동적 지향이 있다고 자처하면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주도하고 있는 옛 동료들에게 전하는 글이다.






채만수 부소장이 지적한 것처럼 의약분업은 전근대적인 보건의료체계를 근대화시키려는 시도이다. 나는 의약분업이 딱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약분업이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를 개편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지점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또한 문제의 핵심이 우리나라의 상업적 보건의료체계 ― 의료의 상품화 ― 에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이를 극복하고, “사회의 의료화”가 아닌 “의료의 사회화”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의약분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세력들 중의 상당수가 “의료의 사회화”에 대한 전망이 부재하였으며,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의도한 보건의료체계의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시민운동단체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일부 민중운동단체들조차 이런 활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 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지적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문제점의 근원을 의약분업 추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던 개별 민중운동단체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은 한국 사회 변혁운동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사회보장부문의 민중적 재편에 대한 전략 수립이 미진하게 이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총론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입장과 원칙조차 전체 민중운동진영의 입장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개별 사안에 대한 개입의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연유로 사회보장부문에서의 민중운동진영의 활동은 시민운동에서 제시하고 있는 틀과 내용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다. 사회보장부문의 제 사안에 대해 계급적, 민중적 개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이 제시하는 운동내용을 시민운동의 담론과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시민운동의 장단에 일부 민중운동단체들이 놀아났다는 채만수 부소장의 비판은 부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별 민중운동단체들의 불분명한 정세 판단과 탈계급성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민중운동진영의 현실 개입 능력의 부재와 사회보장부문의 민중적 재편 전략의 부재를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사회보장부문에 속한 활동가들의 직무유기를 지적해야 한다.

의약분업은 전근대적 보건의료체계를 질서를 갖춘 근대적 보건의료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또한 의약분업은 상업적 보건의료체계 극복의 전망을 제시해 주는 사안도 아니다. 무질서한 보건의료체계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보건의료체계의 상업적 성격을 공고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런데 의약분업의 성격이 이렇다고 해서 의약분업 반대로 나가는 것은 운동적 관점이 아니다. 이는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중세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되는 것을 단순히 반대하는 ― 즉, 중세시대에 머무르자는 ― “공장파괴운동”식의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약분업에 대한 적극적인 찬성과 동참을 주장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산업혁명시기 신흥부르주아가 사회변혁 세력으로 자처하며 자본주의사회 구축에 앞장섰던 것을 본받자는 이야기 밖에 안 된다. 과학적 사회주의 운동의 창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본주의의 대안적 체계, 즉 의약분업 이후의 민중적 대안을 만들어내고 이를 설파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민중운동진영이 반성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런 활동 ― 의약분업에 대한 민중적, 계급적 요구를 정식화하고, 이를 요구하는 ― 을 전개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업적 보건의료체계 극복의 관점에서 내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들이 보건의료체계의 상업성을 강화시킬 보건의료체계의 근대화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벌이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상업적 보건의료체계의 강화를 지향하며, 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의료” 영역에 대한 일체의 사회적 개입을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가가 관장하는 공적 의료보험체계에서 자신들의 자율성이 극도로 침해당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의사들의 이념적 근간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의권천부설”이라는 것이다. 즉 의권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향에 근거한 운동은 정부가 의도하는 보건의료체계 근대화의 방향은 변화시킬 수 있을지언정 “의료의 사회화”를 앞당기는 운동에는 역행하는 것이다. 나는 보건의료서비스를 형평하게 이용할 권리 못지 않게 보건의료부문에 대한 민중적 통제와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이러한 민중적 통제와 관리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역별의약분업협력위원회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 의사들은 “동네 아줌마가 약에 대해 무얼 안다고 끼어 드느냐?”라는 집단적 반응을 보였다.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국가를 비롯한 일체의 사회적 개입을 반대하는 자율성의 추구는 의료의 전문화와 지식의 독점화를 통해 “사회의 의료화”를 촉진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극단적인 입장을 가진 의사들의 경우에는 의료보험제도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즉 마음대로 환자를 보고, 환자에게 의사가 받고 싶은대로 진료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협의 Task-Force 팀에서는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라고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면 진료의 자율성이 보장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급화된 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 같은 의사집단의 지향을 충족시키는 내용을 가진 의약분업과 의료개혁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항변을 하는 의사들 ― 특히 전공의들 ―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 개개인이 어떤 말을 하느냐와 집단적 입장과 지향이 어떻게 사회화되어 있는지는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분명 정부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재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정당화되거나, 채만수 부소장의 지적처럼 의약분업에 적극 참여한 민중운동단체들이 의사들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의 주장은 노동자․민중의 이해와 무관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이와 상반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밀려 정부는 3조7천억 원(1차 처방료, 조제료 인상으로 1조5천억 원, 이번 정부 대책안에서 약속한 2년 내에 수가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2조2천 억 원)을 세금, 보험료 인상, 병의원 이용시 본인부담 등의 형태로 국민들에게 부담시키려 하고 있다. 민중에 대한 경제적 부담 전가의 책임의 50%는 정부에게 있지만, 나머지 50%는 의사들에게 있다. 이 같은 경제적 부담 전가에 대해 책임있는 발언을 하지 않는 이상, 의사들의 요구는 노동자․민중의 이해와 대치될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 의사들의 주장은 의료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의료보장제도의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민중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선결과제 중의 하나인 의료보험의 보장성 확대는 이번 논란을 거치면서 우선순위가 저 뒤로 밀리게 되었다. “우리가 이런 결과를 원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정부의 무책임성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전적인 잘못은 정부에게 있다”라는 주장은 정부와 의약분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시민단체의 과오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야말로 무책임한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 해결의 방향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정부의 반민중적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운동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밀려 경제적 부담을 일방적으로 민중에게 전가하는 것도 모자라,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으로 민간의료보험 도입과 의료시장 개방을 언급하고 있는 정부의 무원칙성과 반민중성은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다. 하반기 민중적 보건의료체계를 지향하는 운동진영은 이런 반민중적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반대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민중에게 일방적으로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는 행태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민중운동의 형태로 전국적인 보험료 납부 거부 투쟁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미 조직적으로 준비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 도입 반대 투쟁을 본격화 할 것이다. 그리고 공공의료 강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다. 의사의 집단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과거 운동권 출신들도 의사 집단 내부에서 공공의료 강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공공의료 강화란 공공기관들이 기획 및 관리 기능을 제대로 하고, 진료 기능은 민간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들의 이념적 변질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주장은 민간중심적, 상업적 보건의료체계가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전제한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상업적 보건의료체계 극복,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 투쟁 운운하는 말은 더 이상 하지말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공공의료가 기획 및 관리 기능 뿐 아니라 실제적인 진료서비스 제공에 있어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적 의료기관의 양적, 질적 확충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차, 삼차 진료기능 뿐 아니라 지역 단위의 일차의료를 공공의료가 책임질 수 있도록 사회적 재원의 투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마도 이런 정책은 의사들로 하여금 의약분업 이상의 집단적 반발을 가져올 것이다. 그 때, 한 때나마 운동을 했다고 하는, 혹은 지금도 운동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두 번째는 일체의 사회적 개입을 반대하는 작금의 의권쟁취투쟁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채만수 부소장이 지적한 상업적 보건의료체계의 극복은 현재 의사운동이 가진 담론과 형식으로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뿐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대중투쟁이 의미있다는 “대중투쟁 지상주의”나 의사를 배제하고 의료부문의 올바른 개혁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히려 역사적인 경험으로 볼 때 이와 반대되는 것들이 더 많았다. 칠레의 아연데 정권이 붕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칠레의사협회의 파업이나 사회보험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거의 한 세기 가량 성공적으로 무산시키고 있는 미국의사협회의 활동들이 그 증거이다. 의사들이 보건의료부문의 중요한 일 주체임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의료전문주의로 뭉친 의사집단을 넘어서야 보건의료체계의 민중적 개편이 가능했던 역사적 경험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이 고통받고, 좌충우돌하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다는 동료의식은 가상하지만, 이것이 민중들이 처한 고통과 현실을 도외시하는 행위를 정당화시켜주지는 않는다.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의사 집단행동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은 분명 코메디이다. 그들이 일반 의사들과는 다른 생각과 지향을 가지고 집단행동에 참여했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들은 반민중적 집단행동을 유지, 강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그들이 생명처럼 주장하고 있는 의사의 진료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되면 진료자율성이 확보될 것으로 착각하면서 이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의사집단 일부의 우둔함과 동일한 것이다. 나의 입에서는 그저 “아버지시여, 이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예수의 한탄이 흘러나올 뿐이다.

정부의 반민중적 보건의료정책 못지 않게 반민중적 전문주의로 뭉쳐진 의사들의 집단행동 역시 민중적 보건의료체계를 지향하는 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는 투쟁의 대상이다. 한 때나마 진보와 변혁을 함께 외치던 옛 동료들이 이런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기를 바란다. 한/노/정/연

2000-09-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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