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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혁명의 파산인가. 민주주의의 정착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58호
김유경

국제노동



멕시코 혁명의 파산인가, 민주주의의 정착인가

- 멕시코 총선에 부쳐 -



김 유 경

외국어대 박사과정, 정치외교학






1. 들어가며


1929년 창당이래 확고한 지배정당으로 입지를 굳혀 온 제도혁명당(Partido de la Revolucion Democratica ;PRI)이 2000년 7월 2일 총선에서 패배함으로써 71년간의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를 두고 멕시코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여론이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흥분에 들떠 있다. 일각에서는 1980년대 이후로 중남미 지역에 몰아친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양립이 멕시코의 경우에서 드디어 확실하게 증명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와 동일시될 정도로 막강한 권력체이던 제도혁명당의 패배에서 우리는 멕시코 민주주의에 대한 섣부른 확신에 앞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제도혁명당에서 국민행동당(Partido de Accion Nacional ;PAN)으로의 정권이양이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있는가? 제도혁명당의 패배와 국민행동당의 승리를 가져온 멕시코의 선택은 현재의 멕시코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자유시장경제체제와 민주주의의 당연한 양립성으로 한번에 설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엄청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을 때에도 멕시코 정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던 제도혁명당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막강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71년간의 정권유지에 실패하게 된 균열의 출발점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멕시코의 민주주의에 대한 흥분과 열망은 제도혁명당을 중심으로 하는 멕시코 정치체제의 특성을 먼저 인식하고 현재 멕시코가 처해 있는 신자유주의적 질서 속에서의 변화와 관련해서 살펴보아야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해질 수 있는 것이다.



2. 멕시코 혁명의 유산 - 제도혁명당(PRI)


그동안 멕시코의 정치체제는 중남미 국가들의 대부분이 경험했던 불안정한 정권교체와 군부권위주의 체제라는 정치적 상황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정치적 안정성때문에 많은 관심을 끌어왔다. 그 성격이야 어떻든 상당히 불확정적이고 불안정한 다른 국가들과 달리 멕시코 혁명 이래 누려왔던 정치적 안정성은 1929년 민족혁명당(PNR)이란 이름으로 창당된 이래 멕시코혁명당(PRM), 제도혁명당(PRI)으로 개칭된 집권당의 성격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멕시코 정치의 예외적인 안정성은 엘리트 혹은 대중의 불만 표출을 국가부문이나 이익집단으로 흡수하거나 적절한 억압으로 일정부분을 제도화시키는 기제로서의 제도혁명당이 주요 매개체였던 것이다.

1929년 쁠루따르꼬 엘리야스 까예스(Plutarco Elias Calles : 1924-28)에 의해 정부관료와 정치적 명망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민족혁명당은 지역 까우디요(Caudillo)에 의해 주도되는 독립적인 특수 이익 정당을 흡수하여 갈등을 해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사회 제 세력을 대표하는 부문으로 구성된 조합주의적 정당으로의 시작은 1938년 라사로 까르데나스(Lazaro Cardenas : 1934-40) 대통령에 의해 멕시코혁명당으로 재조직되면서부터이다. 그는 대중조직을 당의 부문으로 포괄하여 ‘멕시코노동자연맹’(Confederacion de Trabajadores de Mexico ;CTM) ‘전국농민연맹’(Confederacion Nacional Campesina ;CNC), 그리고 민중부문과 군부를 조직적으로 통합하였다. 까르데나스 대통령이 완성한 조합주의적 정치체제는 1946년 미겔 알레만 대통령 때 오늘날의 제도혁명당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대통령을 권력의 정점으로 하여 멕시코식 후원-수혜관계라 할 수 있는 까마리야(Camarilla) 정치로 존속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멕시코 정치체제는 국가를, 특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유기체적 특질과 반다원주의적 성격을 그 특성으로 하는 조합주의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1)

이렇게 제도혁명당을 매개로 한 조합주의적 정치체제는 이념적으로 멕시코 혁명을 계승하고 제도화하는 ‘혁명적 민족주의’를 내세움으로써 사회정의와 경제적 민족주의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다. 그러나 상징적 의미로서의 제도혁명당의 정체성과 거래를 근간으로 하는 조합주의적 정치체제가 기반한 물적토대는 국가주도의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으로 이룩한 멕시코 경제의 성장이었다. 1980년대 외환위기로 시작된 멕시코 경제위기 전까지는 소위 ‘멕시코의 기적’이라 불리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파이를 국가 주도하에 각 부문에 배분함으로써, 정치적 지지와 경제적 보상을 근간으로 하는 조합주의적 정치체제와 문화가 제도혁명당을 통해 ‘제도화’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제도혁명당은 사회 개혁주의와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수행하는 유일한 정치 주체로서 멕시코 정치를 지배해왔다. 이들은 정당을 국가와 동일시하며 모든 대중적, 공식적 선거운동의 통로를 독점해 왔으며 이는 멕시코 혁명을 계승하여 제도화했던 유일정당으로서의 정통성, ‘혁명적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가능했다.



3. 전통적 조합주의의 해체


그러나 제도혁명당의 조합주의적 구조는 1980년대 들어 눈에 띄게 균열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수직적인 위계질서에 기반한 당 내부에서의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운영체계는 1988년 대통령 후보 지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 내 세력간의 대립으로 본격화되었다. 또한 조합주의적 정치체제의 물적 토대였던 경제성장이 1980년대 들어 위기를 맞게 되면서 그간의 수입대체산업화 발전전략이 더 이상 효과적인 성장전략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또한 민중부문도 제도혁명당의 부패와 산발적이고 무계획적인 사회개혁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 따라 제도혁명당은 당 자체적으로 정치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체제 바깥에서 불만세력으로 존재하는 사회운동세력과 정치세력을 제도권 내부로 흡수하고자 했다. 1987년 「연방선거규약」에서 나타난 선거개혁은 사회세력이 야당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대표성을 행사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제도혁명당 내로 흡수함으로써 집권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강화시켜려 했던 전략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변화의 실질적인 추동력은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의 유효성 상실과 경제위기의 대안적 처방으로 내세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경기침체기하에서의 실업률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추진된 신자유주의 모델은 비단 경제부문에서뿐만 아니라 정치부문에서의 급격한 변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구조조정비용의 배분을 둘러싸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각 부문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에 걸맞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자유화는 새로운 신자유주의 프로젝트 추진에 필요한 국가 ― 민간부문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중간계급의 정치적 불만을 중화시킬 수 있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이루어졌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추진에 필요한 정치질서의 재편은 제도혁명당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혁명적 민족주의의 정통성을 일정부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었다. 이는 미겔 데 라 마드리드(Miguel de la Madrid Hurtado : 1982-88) 정부 때부터 까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따리(Carlos Salinas de Gortari : 1988-94), 에르네스또 세디요(Ernesto Zedillo Ponce de Leon : 1994-2000) 에 이르기까지 비단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안정화정책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부분으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살리나스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을 매우 급속한 속도로 추진하면서 이를 위해 제도혁명당이 그동안 내세웠던 정치이념과 경제원칙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혁명적 민족주의’라는 대의명분 하에 명목적으로나마 공정하고 평등한 소득분배, 성장중심적 발전전략, 대외종속성을 거부하는 경제적 민족주의, 의료, 교육 등에 대한 사회개혁의 약속이 일순간에 근대화, 개방화 속에 파묻혀 버린 것이다. 이제 멕시코 혁명의 유산을 계승한 유일 정당으로서의 상징성은 민영화, 국제화, 시장의 논리 속에 정권유지에만 급급한 부패와 정치적 퇴행의 주체로 자리잡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도 살리나스 대통령은 기존에 멕시코 정치의 특징이었던 조합주의적 정치체제가 신자유주의와는 이념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배치됨을 알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정치체제의 재편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제도혁명당 사상 최소의 득표율과 부정선거의 의혹속에 집권한 그는 당 내부에서 정치자유화에 반대하는 일부 기득권층2)과 뻬맥스3) 노조위원장 등 자신의 반대세력을 구속하거나 경질시킴으로써 부정선거로 간신히 당선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또한 NAFTA의 가입을 추진함으로써 대외개방을 조건으로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고 전국연대기금(PRONASOL)4)을 자신의 직접 관할기구로 만들어 정부 예산을 관할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로 집중시켰다. 또한 1988년 선거 당시 대중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여 대안세력으로 떠오른 민족주의 성향의 중도좌파인 민주혁명당에 대한 방책으로 제 1야당이었던 국민행동당과 제휴하고자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으로의 전환과 정치자유화는 오히려 제도혁명당의 제도적 역할과 정체성을 심각하게 침식하면서 당 내의 균열을 촉진시켰다. 과거의 국가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려는 공룡들과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테크노크라트간의 알력과 대립은 결국 1994년 대통령 후보가 암살되는 사태까지 확대되었다. 제도혁명당 내부의 균열 외에도 국민행동당을 껴안기 위한 제도혁명당의 유화정책은 북부의 부유한 지역을 지지기반으로 한 국민행동당의 입지를 강화시키게 되었고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2위를 차지했던 까르데나스의 민주혁명당 또한 멕시코 국민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며 제도혁명당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멕시코 정치체제의 주체이자 유일한 집권정당으로서의 제도혁명당은 정당으로서의 본래적 역할마저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위기를 겪게 되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정책이 사회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면서 사회 제 세력의 저항이 심각해지고 이는 제도혁명당의 정통성에 치명적인 위협으로 작용하였다.

멕시코 정치체제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노동운동의 관변화와 취약한 시민운동에도 불구하고 저항이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계속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휘둘리는 관변노조 지도부에 도전하는 세력에 의해 관변노조의 헤게모니가 손상되었고 민영화의 추진을 둘러싼 산하단체의 저항도 끊이지 않았다. 또한 1970년대 이후 침체기였던 자주노조운동의 흐름이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다시금 강화되었다. 특히 자주노조운동의 핵심을 이루는 노조들이 대부분 현대적인 산업부문인 자동차, 철강, 통신부문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에 더하여 제도혁명당의 조직적 기반었던 노동부문이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행으로 도시비공식부문으로 흡수됨에 따라 제도권 내에서 이탈했으며 이들이 경제적 손실로 인해 잠재적인 불만세력으로 남아 있다는 점도 제도혁명당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도혁명당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것이 바로 1994년 1월 NAFTA 발효일에 맞춰 봉기한 사빠띠스따 농민해방군의 저항이었다. 이들은 멕시코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을 가진 지역이 원주민과 농민에게는 가장 큰 빈곤을 선사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모순을 전 세계에 폭로하며 무장봉기를 감행했고 이들의 저항은 NAFTA가입을 통해 대외신용도를 제고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정책과 일시적인 사회보장프로그램의 허약성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4. 정치적 민주주의의 발전?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퇴보?


1980년대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멕시코 역시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발전전략에서의 대전환이 있었다. 즉, 시장의 기능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정책, 자유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 수출촉진을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정책, 정부가 담당하던 부문을 민간부문으로 이전시키는 정책, 노동시장을 비롯한 다양한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 등을 통해서 대외개방적이고 민간주도적이며 수출지향적인 성장전략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이러한 물적 토대의 전환에 맞추어 이루어진 1980년대 이후의 멕시코 정치자유화는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아닌, 시장논리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측의 공세에 맞춰 사회세력의 구조를 재편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는다.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관철시키기 위한 정치체제의 재편은 제도혁명당 내의 변화와 제도적 무력화 과정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추진과 동시에 멕시코는 정치적으로도 혁명의 유산을 벗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 혁명을 계승하며 제도혁명당이 최소한의 상징적인 의미로라도 고수하고자 했던 고유의 가치들, 농지개혁, 반교권주의, 경제적 민족주의의 전통적인 상표5)가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편입되는 과정을 현재의 멕시코는 겪고 있는 것이다. 제도혁명당의 패배는 제도혁명당이 ‘태생적 한계’와 이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조합주의적 정치체제를 신자유주의가 양산해내는 시장중심적 가치들과 더 이상 양립시키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정책적 무능력을 자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멕시코 혁명의 계승자로서 자신을 정의했던 제도혁명당은 2000년 7월 권력재창출에 실패함으로써 파산에 이르렀다.

이제 멕시코는 도시 중산층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며 친교회적이고 친기업가적인 정향을 가지고 있는 국민행동당을 새로운 집권여당으로 맞았다. 국민행동당은 1938년 창당이래 계속적으로 국가의 개입주의적이고 확장적인 경제정책에 반대하며 자유시장체제를 지향해왔다. 그나마 1980년대 제도혁명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선회함에 따라 정책적 측면에서의 뚜렷한 차이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만 이번 선거를 통해 야당이 집권함으로써 멕시코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일보 진전되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국민행동당의 폭스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경제정책에는 아무런 기조 변화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뻬멕스와 같은 석유회사에도 민간자본이 들어와야 함을 역설하는 것, 이번 선거에서의 이슈가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과 무능력, 부정부패였음을 상기해볼 때 이번 한 번의 정권교체가 바로 멕시코 사회의 민주화로 이어지는 것이라 볼 수는 없다. 어쩌면 제도혁명당 만큼의 제약도 가지고 있지 않은, 혁명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로운 정당인 국민행동당이 승리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완성이 더욱 급속도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선거에서의 승리와 관계없이 국민행동당은 새로운 집권정당으로서 멕시코가 직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부작용 즉, 실업과 실질소득의 하락, 중소기업 및 농․축산업계 도산, 미국경제에의 종속 심화, 계층, 지역간 빈부격차 심화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좌파정당인 민주혁명당과 시민운동, 농민운동, 그리고 심지어는 무장반군 등을 비롯한 각종 반체제세력들의 저항과 연대의 움직임도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멕시코가 직면하고 있는 이러한 장벽에 맞서 상층계급과 기득권의 이익을 옹호하는 보수적 이념을 가지고 있는 국민혁명당이 정치적 민주주의의 진전에 걸맞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노/정/연







》참고문헌《


김원호, “중남미 경제개혁의 정치․사회적 과제”, ꡔ중남미문제연구ꡕ 제14권, 중남미연구소, 1995.

백종국, “민중주의적 혁명과 발전의 딜레마 - 멕시코 사례를 중심으로”, ꡔ국제정치논총ꡕ Vol.31, 1991.

이성형, “멕시코의 신자유주의 경제개혁 : 1982-1993년간 실험의 명 암”, ꡔ비교경제연구ꡕ 제2호, 박영사, 1994.

이성형, “1980년대 이후 멕시코 노동운동: 코포라티즘의 해체인가 재편인가?”, ꡔ지역연구ꡕ 가을호, 1994.

이성형, “멕시코 정치체제의 구조적 위기와 현 단계의 성격”, ꡔ라틴아메리카연구ꡕ,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지 제9권 1호, 집문당, 1996.

조돈문, “멕시코 노동운동 이중구조의 형성과 재생산”, ꡔ라틴아메리 카연구ꡕ,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지 제9권 1호, 집문당, 1996,

Craig, Ann L. & Comelius, Wayne A. , “Houses Divided : Parties and   Political Reform in Mexico” in Scott Mainwaring and Timothy R.  Scully (eds.), Building Democratic Institutions : Party Systems in  Latin Ameri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5.

Haggard, Stephan & Kaufman, Robert R., The Political Economy of     Democratic Transitions, P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역정보센터, ꡔ멕시코 편람ꡕ, 1996.



         구조조정과 현장통제 대응 전략

1장 경제위기와 국가․자본의 구조조정 전략

2장 자본의 현장통제 전략의 변화

3장 현장통제의 주요기제로서의 노동시장 유연화

4장 작업장 통제의 여러 양상과 대응 방안

5장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구조조정 대응평가

6장 대응방안


발행일 2000. 3. 8. / 311면/ 가격 12000원



1) 이성형, “멕시코 정치체제의 구조적 위기와 현 단계의 성격”, 『라틴아메리카연구』,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지 제9권 1호, 집문당, 1996. pp.9-10. 참조.


2) 흔히 공룡으로 불리는 세력으로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자체에 반대한다기보다는 살리나스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당내의 부문(sector)을 해체시키는 것에 불만을 품은 기존의 당 내 권력자들이라 할 수 있다.


3) 국영석유회사(Petroleos Mexicanos ;Pemex)로 이 회사의 노조는 정치-경제적 비중이나 기여도로 볼 때 공식노동권내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까르데나스 정부와 함께 멕시코 혁명의 완결이라 할 수 있는 석유산업 국유화를 성공시킨 주체라는 상징성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세디요 정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문의 국영기업을 민영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뻬멕스의 민영화는 경제논리를 넘어서 멕시코 혁명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에 제도혁명당의 집권하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4) 프로나솔(PRONASOL)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보완책으로 일종의 빈곤퇴치 프로그램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립되어 도시와 농촌을 포함하여 전국적인 조직체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살리나스는 이를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야당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 기금의 자의적 운용으로 대통령의 가부장적 후원자로서의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으나 제도혁명당의 입지와 제도적이고 근본적인 사회안정프로그램의 정착은 오히려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5) Ann L. Craig & Wayne A. Comelius, “Houses Divided : Parties and Political Reform in Mexico” in Scott Mainwaring and Timothy R. Scully (eds.), Building Democratic Institutions : Party Systems in Latin Ameri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5, p.254.


2000-09-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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