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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의 국면의 특징과 노동자.민중투쟁

현장에서 미래를  제58호
김혜란



7~8월 국면의 특징과 노동자?민중의 투쟁


김 혜 란

사무처장






새천년 1월 19일 이무영 경찰청장은 직접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을 찾아가 ‘신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노사관계에 있어 경찰의 중립성을 약속하며, 협조를 부탁했다. 그러나 한 달도 안 지난 2월 중순 보건의료노조의 대의원대회를 불법도청하려던 사실이 밝혀져 경찰의 항상적 노조탄압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새천년 만이 아니다. 천년대의 마지막 해인 1999년 12월은 태백시민의 생존권 투쟁으로 마감되었고, 새천년 1월은 한국중공업 노조사무실 공권력1) 투입으로 새해가 밝았다. 과거와 달리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국가기구에 의한 직접적 폭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주요한 통제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여기에 업무방해, 정직, 징계해고, 가압류, 손해배상청구, 벌금형 등 온갖 법․제도를 동원한 탄압이 그야말로 백화점식으로 일상화되고 있다.

롯데호텔과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결정적 계기로 조성된 신공안정국이 롯데의 타결과 사회보험노조의 고립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2) 특히 8월 28일 한국노총 산하 직장의료보험노조가 사회보험노조의 파업으로 생긴 업무 공백을 대신 맡겠다고 나섬으로써 사회보험노조의 파업에 대한 언론보도는 급격히 집단이기주의, 노노갈등으로 쏠리는 느낌이다. 어떻게 해서든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탄압은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몰고가고자 안감힘을 쓰는 것을 보면, 억압적 방법 속에서도, 사회적 동의 메카니즘을 최대한 동원하고자 하는 신공안정국의 한 단면을 잘 볼 수 있다.



1. 공권력에 의한 국가의 폭력, 그것이 의미하는 지금의 정세


6월말 이후 파업사업장에 공권력이 연이어 투입되면서, 피해당사자인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광범위한 비판이 일어났는데, 대체로 그 내용은 ‘공권력 사용의 원칙과 형평성’을 제기하고 있다. 즉 인간의 목숨을 걸고 파업을 벌이고 있는 불법적 의사폐업에는 가만히 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정당하게 파업권을 행사하고 있는 노동자 생존권 투쟁에는 가차없이 경찰력을 투입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는 법집행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민주노총의 일부 지도부는 의사폐업에 대해서도 엄정한 법집행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다음 공권력에 대한 비판은 ‘과잉진압’ 시비였다. 일명 테러진압부대인 솔개부대가 투입됐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등. 그런데 과잉진압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다음과 같은 전제가 깔려있다. 공권력은 원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인데 음주후 진압, 여성폭행, 곤봉, 방패에 이어 드디어 전기봉까지 등장한 것은 비도덕적이고, 반윤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공권력에 대한 문제를 국가 또는 국가기구로 환원시키는 것을 가로막고 집행자 또는 명령자의 행위로 국한시키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조금만 들어가면 이러한 논리들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는 바로 드러난다. 공권력 사용에 원칙이 있다손 쳐도 그것은 공권력을 장악한 자의 원칙에 불과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집회문화의 혁신을 위해 절대로 최루탄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다. 물론 지금은 스스로 다짐한 원칙도 무너졌지만, 최루탄과 곤봉 사이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 다만 최루탄은 ‘폭력’ ‘반인간적’이라는 의도된 ‘정치적 상징’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곤봉은 ‘방어’에 불과하다는 의도된 상징이 부여되고 있다.


군부독재 시절에는 직접적 성격의 국가기구를 동원한 물리력과 억압이 ― 특히 군부(경찰)의 지배적 역할의 강화가 ― 사회체제를 유지, 방어하는 주요 수단이었다면, 현대자본주의 사회로 올수록 민주화가 일정하게 진전되면서 권력대행 기구들이 발달하여 사회적 합의틀이나 기타 법-제도 등 간접적 성격의 국가기구에 의한 지배가 많아진다. 예를 들어, 70~80년대에는 국가안보상의 조치라는 미명하에 노동3권을 제한했었지만, 90년대 이후는 노-경총합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노사정위원회 등과 같은 합의틀을 이용하여 노동자를 압박했던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때에 따라 직접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최대한 명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쨌든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국가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경로는 국가기구를 통해서이다. 그렇다면 공권력의 투입이라는 정책을 결정 내리는 국가기구는 어디인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관계기관대책회의’3)이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작년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으로 철퇴를 맞고 사라진 듯 하지만, 국가가 존재하는 한, 두 가지의 통제방식이 필수불가결 하듯이 이름이야 어떻게 변하든 관계기관대책회의는 사라질 수 없는 기구이다. 실제로 올해 1월, 신선대․우암 부두노동자의 투쟁이 있었을 당시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해 공권력의 투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이 나왔었다.

그런데 6월의 공권력 투입은 공식적으로는 6월 27일 국무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발언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다시 말해, IMF관리체제 이후, 경제를 시장질서에 맡긴다는 말과는 달리 국가의 직접적 개입이 증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 전체에 대한 적극적 개입과 통제로 갈등을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7~8월 정세의 한 특징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지금의 국면은 김대중 정부가 무리를 감수하면서라도 직접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다급해졌거나,4) 국가권력의 본질이 드러나더라도, 현재로서는 그것 외에 사용할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에서 이미 무용지물이 된 노사정위원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합의로 가장을 하고, 협의로 색칠을 해도 지금의 상황은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본질을 어렵지 않게 드러낼 수 있는 시점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정세적 자신감에 힘입어 하반기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거나, “남북관계 개선으로 형성된 정국 주도권” 운운은 정세를 거꾸로 읽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김대중 정부 스스로 정권재창출의 초조함, 구조조정의 경착륙에 대한 부담, 확대되고 있는 사회적 빈곤에 대한 무대책,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져올 불가피한 민주개혁에 대한 딜레마 등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민주노총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기본적인 정책은 ‘포섭’과 ‘체제내화’이다. 따라서 지금의 탄압은 장기적으로 보면 민주노총의 체제내화를 위한 ‘무두질’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아진 투쟁의 파고에 힘입어 현시기 핵심적 과제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반대투쟁에 거대한 전선이 형성되었거나, 그리하여 정부로 하여금 정책전환을 강제하고 있거나, 전면적 투쟁을 통한 획기적 조직 발전 등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전산업 전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조조정에 비해, 내용적으로는 구조조정과 무관하지 않더라도, 돌출된 특정 사안을 중심으로 동력을 모으거나,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조직하기는 어렵다는 점 때문이고, 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 내부의 오류와 한계가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2. 7~8월 투쟁의 특징


1) 지배적 담론: 집단이기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의사들의 폐업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내부 정치에 활용하려던 정부의 의도를 일정 부분 희석시킨 반면, 온 사회가 집단이기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악선동의 계기로도 작용했다. 민주노총 역시 의사들의 1차 폐업 때,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여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집단이기주의”라고 쏘아붙였으나 결과는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의사들의 투쟁을 비판적으로만 보도하던 정세와 어우러져 모든 파업투쟁이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이러한 여론 형성에 가장 앞장섰던 언론은 단연코 한겨레였다. 파월장병들의 사무실 난입을 계기로 당시 한겨레는 “집단이기주의와 불법행동이 위험수위에 달했다”고 심각하게 경고하면서, 정부의 강경하고, 신속한 대응을 촉구했다.


‘시장 앞에 장사없다’ ‘(구조조정은) 하고 싶다고 해서 하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시장의 질서는 엄중하다’ ‘(파업에 돌입하자 예금이 급속히 빠져나가고, 유동성 위기 때문에 회생이 불가능해질 지도 모른다는 대대적인 언론보도 뒤에, 금융노조의 파업이 타결된 직후) 진정한 승리는 노(勞)도 사(社)도 아니고, 시장이다’ 등등 이런 말들이 최근에 가장 빈번하게 들린다. 이제 정부의 개혁은, 그 내용이 시장질서의 확립으로 자리를 굳혔고, 시장질서의 확립은 자연스럽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과거에는 ‘일방적 구조조정 저지’의 수준에서 ― 마치 합의된 구조조정은 괜찮다는 듯이 ― 수동적으로 따라갔다면, 지금은 구조조정을 대명제로 인정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결정타는 한국노총의 금융노조와 민주노총의 지하철노조이다.


여기에 최근에 맹렬한 기세로 가세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민족대단결’ ‘민족의 화해와 협력’이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설명하고자 한다.


2) 갈수록 어려워지는 전선구축

파업 20일 만에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고도 투쟁대오가 흐트러짐이 없이 장장 74일간의 파업을 벌임으로써 사회보험노조와 7~8월 투쟁국면을 주도했던 롯데노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22년 동안 어용노조 산하에 있었던 터라 민주노조로서는 신생노조나 마찬가지였고, 투쟁의 경험이 있었던 것도, 교육을 통한 이념무장이 철저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오가 강고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구체적으로 분석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어, 빠른 시일내에 투쟁주체들에 의해 다층적으로 분석되길 기대하며, 몇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우선, 롯데의 경우는 내적조건보다 외적조건의 영향이 컸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22년 어용노조로부터 받은 설움, 울분이 있었겠지만 그것과 더불어 자신들의 투쟁이 매우 정당하다는 점과 공권력 침탈 이후 우호적인 여론의 지지속에 오히려 급속히 사회쟁점화 되면서 투쟁에 대한 자부심이 충만했을 것이고, 어용노조 지도부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리 구속을 마다않는 지도부에 대한 신뢰도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지도부의 동요를 집단의 힘으로 잡아주고 투쟁의 장에서 노조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경험했던 것 역시 투쟁의 강고함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힐튼, 그랜드, 롯데 등 특1급 호텔 3사가 모두 ‘비정규직 정규직화, 차별철폐’를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있었고, 같은 시기 소규모, 신생 노조가 대부분인 대상, 이랜드, 인천기독병원, 방송사 등도 정규직화를 중심으로 한 간접고용노동자들의 완강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대규모 사업장인 롯데의 투쟁이 비슷한 이슈를 갖고 있는 타 사업장에 큰 우산이 되지도 못했고 ― 거꾸로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모든 관심이 롯데와 사회보험노조로 쏠리는 것이 내심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 불안정노동자 사이의 연대틀도 공식화시키지 못했으며, 최소한 소규모 사업장 투쟁을 엄호하지도 못했다.

또,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쟁점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한계를 지닌다. 투쟁의 주체들부터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있는 근본적 뿌리(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정책)는 놔둔 채 각자의 잔가지(사업장별 요구안)에 매달려 품앗이 집회투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민주노총 내에 있는 미조직특위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단병호 위원장이 단식이라는 초강수를 던지며 처절하게 싸웠지만, 총연맹으로서의 지도력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한마디로, 작금의 현실은 노동자계급의 물질적 토대는 동질성이 확대되고 있는 반면, 전선은 분산․분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자본간 경쟁이 극심해서 노동자에 대한 통제도 다양하고 중층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3) 투쟁에 비해 왜소한 협상결과

협상 결과만 국한해서 투쟁의 성과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8월 21일 잠정합의5)를 거쳐 파업 74일만에 22일 업무에 복귀한 롯데를 비롯해서 여타의 구조조정 관련 투쟁 사업장의 경우, 한국항공우주산업을 제외하고는 투쟁의 강고함과 장기화에 비해 타결안이 빈약하다. 가장 큰 원인은 전국전선의 붕괴와 노-자 역관계의 반영이겠지만 보다 구체적인 요인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날짜 박고 집회하는 식의 의례적인 싸움이 아닌 경우에도, 밀리는 협상을 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롯데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면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공식교섭단을 꾸리고 협상을 주도했었는데, 최종안을 놓고 “1기에서는 정리해고를 합의해 주더니 이제는 징계해고까지 합의할 심산이냐”는 내부 반발도 있었던 모양이다.6) 벌써부터 롯데 사업장에서는 노조의 기선을 누르기 위해 주로 파업불참자나 조기복귀자를 이용해 노노갈등을 조장하는 방법으로 분위기를 제압하고자 혈안이라고 한다.


4) 정치적 계산에 의한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탄압

롯데의 공권력 투입이 경영자의 전근대적 노사관과, 노동자의 벼랑끝 생존권투쟁에 대한 안이한 정세인식, 대통령의 집단이기주의 엄단 발언 정도가 어우러져 빚어진 사태였다면,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정권의 탄압은 매우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협상도 별 어려움 없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 나중에 확인된 바이지만 이것조차 계획의 일환이었음이 밝혀졌다 ― 공권력이 투입된 것도 그렇지만, 사실상 쟁의기간 중임에도 그 뒤에 이어진 직장봉쇄, 대량징계, 대체인력 투입 등 노골적인 노조탄압은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공권력 투입이 단순히 이사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더 깊은 의도가 숨어있다고 추측하게 한다.

사회보험노조에 병력이 투입된 7월 1일은 사회보험노조를 비롯한 보건의료노조, 의보연대 등 진보적 의료운동진영이 11년 동안 싸워서 쟁취한 의료보험통합의 결과 통합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출범하는 날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통해 알 수 있는 탄압의 배경은 대략 세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공단의 출범은 의보개혁투쟁의 산물이지만 직장의보의 통합연기(반대) 투쟁에서 알 수 있듯이, 통합조직 내에서도 여전히 통합반대 세력이 잔존하고 있어서 의보통합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였고, 이 와중에 의보통합을 포함한 4대 보험을 정부의 입맛대로 주무르기 위해서는 강경노조가 반드시 제압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기구의 통합으로 노조도 통합되면서 규모가 커지자 노조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통합으로 불가피해진 인원감축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그에 따른 반발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그야말로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의 일환일 수 있다.


5) 국면전환론의 등장

7월 중하순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국면전환론은 단병호 위원장의 “현안 타결없이 하반기투쟁은 없다”는 강경한 방침과 8월 11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정으로 극복되는 듯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국면전환론의 요지는 ‘대중조직의 투쟁인 이상 어느 시점에서 타협이 불가피한데, 두 사업장의 문제가 너무 크게 사회 쟁점화되어 있어서 쉽게 접지도, 마냥 GO할 수도 없는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자칫 너무 오래 끌다가는 하반기 투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의 하반기 계획이란 9월 정기국회를 염두에 둔 제도개혁투쟁을 말한다. 특히 경총이 노동시간단축의 전제로 할증임금율 인하와 월차 폐지 등을 언급하자 이 사안만큼은 분명히 대중적 분노가 들끓을 것이 뻔하므로 그때가서 크게 한판 붙자는 계산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우선 전선을 노동운동탄압전선과 다른 어떤 것으로(그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구조조정반대투쟁이나 통일투쟁이 선택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분리하고, 8․15를 전후하여 국면을 전환한다는 구상이었던 것 같다. 물론 국면전환에는 단병호 위원장의 장기 단식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고, 7월 3일 이후 거의 매일같이 집회에 동원된 타 연맹의 반발도 쉽게 예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롯데와 사회보험노조를 한묶음으로 묶어서 투쟁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분리하여 타결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을 먼저 집중적으로 해결한 다음, 결과가 좋다면 그 여세를 몰아 나머지 투쟁에 다시 집중하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보험노조의 입장에서는 같이 싸우던 동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업장에 힘이 집중될 것이라고 기대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은 산별노조에서 일상화되어 있는 집중투쟁, 개별교섭과는 좀 다르다. 두 사업장을 결정적 계기로 신공안정국이라는 국면이 형성되었었고, 그에 걸맞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적절한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경찰책임자 처벌, 정부 사과, 단협의 조속한 타결’이 민주노총의 요구로 제시되어 오지 않았는가. 어쨌든 명백한 것은 신공안정국 분쇄투쟁을 주도한 두 사업장의 투쟁은 같아 보였지만, 그래서 하나의 전선으로 집중된 것 같았지만, 사실은 분리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적어도 지금 시기 공안탄압분쇄 투쟁으로 획득해야 할 질은 김대중의 사과도, 경찰청장의 경질도 아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이루어진다고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핵심은 하반기 구조조정 반대투쟁과의 연결고리 확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좌충우돌하고 있는 통일운동과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투쟁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 전국적 연대투쟁의 질서구축 등이다. 롯데노조의 투쟁이 신공안정국의 하나의 상징이었다면, 투쟁의 마무리 또한 적어도 위의 세가지에 엇비슷하게 맞물려야 한다. 과연 그러한가는 투쟁을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졌던 주체들이 답해야 할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6) 노사정위원회 되살리기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는 “노정, 노사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합한 기구라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7) 굳이 이 말이 아니더라도 노사정위원회가 제 기능을 상실한 지는 꽤 오래됐다. 그런데 빈사상태에 빠진 노사정위원회를 다시 살려내고 있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그것에 대신하여 보다 강력한 지역-업종별 수준의 노사정위원회를 추진하는 세력도 있다. 물론 자본의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성질의 것으로 말이다. 전자는 한국노총이고, 후자는 서울지하철 배일도 집행부의 ‘서울모델’이 그 단적인 예이다.

2차 금융구조조정에 ‘합의’라는 명분을 달아준 금융노조는 정부관료와 직접 협상을 해놓고도, “정부는 이익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는 노조측과 어떤 종류의 사안에 대해 합의를 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노정은 노사정위원회에서 이날의 노정합의를 상정해 합의하고 다시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를 정부가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8)는 정부측의 입장을 수용하여 결과적으로 노사정위원회를 기사회생시키고 있다.

이것은 한국노총도 바라던 바이다. 왜냐하면 한국노총은 하반기에 노동시간단축, 전임자임금, 비정규직 보호방안, 공무원단결권 등을 중심으로 법․제도 개선을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제기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가 한국노총만의 참여로 이러한 사안을 합의하고, 그 결과가 전체 노동대중에게 긍정적으로 비춰진다면 그 파장은 당연히 민주노총의 위상 격하와 사회적 고립화(를 통한 체제내화)로 이어질 것이다. 거꾸로, 그러한 의도가 관철되기 위해서라도 민주노총의 고립화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물론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 내에서의 제도개선 성과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을 경우, 민주노총과 제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장외투쟁도 계획 중이다. 제도개선투쟁이 민주노총이 배제된 노사정위원회에서 종결될 경우도, 여의치 않아 장외투쟁으로 확대될 경우도 한국노총으로서는 손해될 게 없다.

신공안정국 하에서 정부가 보여준 정책은 명백히 민주노총의 체제내화를 목적으로 한, 한국노총과의 분리정책이었다. 그렇다고 역편향으로 그러니 합쳐야 100만을 조금 넘는 노동자끼리 연대하고 단결해야 한다는 논리는 매우 위험스럽다.

특히 양노총 모두 하반기 중점과제로 공공부문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잡고 있는 와중에, 쟁점이 되고 있는 사업장 중 한국통신을 제외한 전력, 철도 등이 한국노총 산하이고, 공공연맹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국통신과 전력노조가 ‘공기업민영화저지범대위’를 구성할 움직임을 보이자, 공공연맹이 나서서 한국노총과의 공동투쟁기구를 제안한 상태이다. 민주노총 중앙 역시 사안별 연대를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는 방침이 있다. 물론 상층부의 정책연합이나 외교전술 대신 구조조정반대 투쟁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연대가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현실 가능성은 미지수다.

그러나 제2의 금융구조조정에 날개를 달아준 금융노조의 파업에 대해 반성할 생각이 전혀 없는 한국노총을 말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고, 노선으로는 더더욱 신뢰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연대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한다. 우선 상층 밀실협상 중심의 연대를 철저히 배제하고, 노민추가 있는 곳은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면 공공연맹 독자적으로라도 노민추를 중심으로 한 연대틀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조합원들의 혼란을 막을 길이 없다. 사실 공공부문 구조조정 저지투쟁에서는 공식적 집행부인가 아닌가도 중요하지만, 정말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투쟁할 주체가 어디인지를 가려내는 것도 중요하다. 적어도 철도의 경우 그 세력은 노민추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반기 공공부문 구조조정 저지투쟁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관계에서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물론 한국노총이 공공연맹의 공동투쟁 제안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나올 경우에 한해서. 그러나 최근의 민주노총에 대한 정권의 집중적인 탄압과 되살려진 노사정위원회를 염두에 두었을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고, 의례적인 지지․연대로 머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노사정위원회를 놓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정권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2. 남북관계의 개선이 노동자․민중 운동에 끼친 영향


최근의 정세를 규정하는 또하나의 주요 변인으로서 남북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이 주제를 독자항목으로 다루어도 미흡할 정도의 거대한 주제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에서 나타나는 경향들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1) 통일투쟁은 상위의 투쟁, 생존권 투쟁은 낮은 투쟁(?)

생존권 투쟁은 통일운동에 비해 정치의식이 낮은 투쟁으로, 경제투쟁, 조합투쟁으로 국한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9) 그런데 이것은 오히려 정치적 의미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현 시기 생존권 투쟁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 한국은 노동자에게는 나날이 참담해져만 가는 현실에 다름 아니다. 신규노동력의 재생산비는 두뇌21과 같은 프로젝트로 사회가 지불하게 만들고, 구조적 실업을 통해 해고와 노동 유연화를 강제하고, 고용, 임금 등 모든 조건을 점점 더 자본의 통제하에 두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동시에 경제적인 이슈들을 급격히 정치화시키는 토대를 만들고 있다. 노-자 간의 계급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투명해진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총자본’으로서 자본주의체제의 유지를 총괄해야 할 국가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노동자계급과 자본의 갈등에 점점더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생존권 투쟁은 이미 그 자체로 정치투쟁화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김대중 정부에 대한 태도의 돌변 또는 수시 변경10)

98년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투쟁으로 그때까지 강하게 남아있던 김대중 정부에 대한 일말의 희망과 기대가 걷히자 비로소 노동운동 진영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반대를 분명히 내걸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반신자유주의․반김대중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고, 2000년 상반기 완성차 4사투쟁과 축협투쟁이, 최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완강한 투쟁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하반기 공공부문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포문을 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게 되고, 그 여세를 몰아 ‘민족 화해와 협력’ ‘민족대단결’을 요체로 한 대국민적 헤게모니가 강화되는 것은 충분히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게다가 실제로 김대중 정권은 총선 당시 남북카드를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틈나는데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국내정치에 이용해 왔다. 기존에 구조조정의 정당성을 뒷받침 해왔던 노사정위원회가 실종되자 그 자리를 대신했고,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둘러싼 국회법 파동으로 팽배해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무마시키는 데에도 쓰여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업 사업장에 공권력 투입하고도 그 야만이 정권의 파탄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발목잡는 데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결국,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받아안으며 ‘민족대단결’론을 국민적 동의 메카니즘으로 형성해낸 지배계급은 전투적 노동운동에 공권력을 사용함으로써 신공안정국을 조성했다. 따라서 지금의 정세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조차 노동자․민중운동을 압박하고, 신자유주의정책을 관철시키는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동전의 양면으로서, 사실은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일부 남측 통일운동 세력의 김대중 정권에 대한 태도변화는 북측의 남측 정부에 대한 태도변화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민족자주정권이어야 남북대화가 가능하다던 기존의 태도를 포기하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권이라면 대화 파트너로 인정할 수 있다는 태도의 변화를 보였고, 그 결과 정상회담도 가능했다. 나아가 지난 7월 13일 범민련 북측본부가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단체, 인사라면 정부, 정당은 물론, 경실련, 민화협 등까지 망라해 (통일대축전이) 하나의 행사로 개최되길 기대한다”는 팩스를 남측본부에 보낸 뒤 김대중 정권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본격화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불어 8월 15일로 예정되었던 ‘2000 통일염원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북측 조선직업총동맹의 요청으로 연기되었다는 사실도 상기해 보기 바란다. 이유는 15일은 국내외적으로 행사가 많아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공안탄압이 위세를 떨치고, 민주노총 위원장은 단식 농성중인 상황에서 예정대로 축구대회가 열렸다면......

3. 현재의 대립국면


지금도 역시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끊임없는 내핍을 강요당하고 있다. 여전히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대립국면이 주요한 갈등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자주적 조국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은 현재의 국면을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 또는 비슷한 의미로서 ‘냉전수구세력 대 자주적 평화통일세력’의 대립으로 보고, 수구보수세력의 딴지걸기에 넘어지지 않고 남북회담의 성과를 실질적으로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일정 지지해야 한다고 판단하거나, 투쟁의 최우선적 가치를 민족통일에 둠으로써 김대중 정부까지도 포용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나아가 그럼으로써, 드높아지는 ‘민족대단결’의 파고 앞에 통일논의에 숨겨진 국민동원체계를 비판11)할라치면, 반통일 세력으로 매도 ― 매도는 아닐지라도, 아직도 ‘선변혁 후통일’이라는 시대착오적 계급모순12) 중심주의에 빠져있다고 비난 ― 되는 모습은 ‘구조조정=개혁’이라는 담론에 따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자는 마치 개혁을 반대하는 자,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은 사회의 공적(公賊), 반개혁 세력으로 매도되는 구도와 꼭 닮아 있다.

실제로 한국노총 산하 금융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즈음 이헌재 당시 재경원 장관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금융노조는 금융개혁을 사실상 철회하라는 요구를 내세웠고 … 금융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금융산업이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 개혁은(‘구조조정’은: 필자) 금융기관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진해야 할 생존의 과제”라고 언명했다. 이미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개혁이라는 말과 완전히 동일하게 사용됨으로써 파업은 일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회 전체의 개혁에 반대하는 반개혁 세력으로 치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면을 ‘통일 대 반통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최근 남북경협이 활개를 치고 있듯이, 남북관계 개선이 결코 자본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을뿐더러, 이회창이 대권을 노리기 위해 정책브레인을 남북관계 전문가로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앞으로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남북관계의 현격한 과거 회귀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통일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정세는 오히려 자본의 지배를 한반도 전체에 관통시키고자 하는 ‘시장주의적 통일노선’과 남북한의 민주적 변혁을 전제한 ‘노동자․민중적 통일노선’ 간의 대립으로 보아야 한다. 때문에 통일운동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확실하게 편입되어야 하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 김대중 정부에 대한 태도가 통일운동의 주체를 재정비하는 데에 여전히 관건일 수밖에 없다.13)

그런데 이러한 문제인식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어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었을 92년 당시에도 “이제 우리는 통일문제를 민족자주, 민주변혁의 문제와 때어놓고 통일 그 자체를 진보적인 것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반통일세력을 구분해내면서 통일운동의 주체를 논할 수 없게 되었으며, 어떠한 통일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통일운동의 주도권 문제를 보다 중심적으로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즉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추진하는 통일국가의 상과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추진하는 통일국가의 상이 서로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남측 노동자․민중과 지배계급 사이의 대립지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통일문제에 있어서 남측 노동자․민중운동이 차지하는 독자적 지위와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14)는 새겨들어야 할 주장이 있었다.



4. 다시 김대중 정부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자

‘국민의 정부’를 기치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98년 ‘창조적 지식국가 건설’15)을 국정목표로 제시하면서 신지식인, 신노사문화, 두뇌한국21 등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제2건국추진위원회를 통해 국가재건을 도모한다는 제법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이 때 청조적 지식국가의 건설은 빈곤의 확대, 20 대 80의 사회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라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가 경제위기 시에는 애국주의, 국가경쟁력강화, 경제회복기에는 시장만능주의였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영국과 더불어, 한국의 ‘국민의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능동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모범생으로 인정되고 있을 정도다. 여기에 다수의 시민단체, 자유주의 학자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적절히 비판하고 있는 글이 있어 그대로 전제한다.

“(그들은) 이제 한국에서는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은 끝났기 때문에 모두 힘을 합쳐 본격적인 사회, 경제개혁을 가속화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개혁의 핵심은 다름 아닌 자르기식 경제개혁, 즉 다수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자본에게 보장해줌으로써, 세계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만드는 일이다. 실업자의 급증, 더욱 벌어지기만 하는 계층간 소득격차, 96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노동자 실질소득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물론 얼마간의 사회적 고통이 따를 수도 있으나, 그것은 시대적 전환기에 감내하고 분담해야 하는 것이며,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산고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분담’ 하면 새로운 부의 과실이 열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신천지가 펼쳐질 것이다.”16)


최근에는 상암동 5000평 대지에 박정희 기념관 및 도서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하면서 ‘박정희식 경제개발 모델’의 재평가까지 진행되고 있다. 박정희 기념관건립을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그들이 표명하는 바와 같이 인간적 화해와 용서를 위해서라기보다 ‘신자유주의’ 지배담론을 ‘제2건국’으로 연결시키면서, 박정희 시대의 국가재건(조국 근대화론)과도 조우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군사독재와 문민정부가 만나는 순간이다. 이제 김대중 정권은 ‘국민의 정부’도, ‘인권대통령’도, ‘통일대통령’도 아니다. 반민중적, 반민주적, 반노동자적 정권일 뿐이다.


최근 정세의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특징으로 몰계급적 사회단체의 관변화와 조직 노동자 내부의 경쟁격화 등을 분석해야 하지만 이 부분은 다음 기회로 넘기고자 한다.



5. 주체의 전열 정비에서부터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전 사회에 관철되고 있을 때 기동전(정치권력에 대한 투쟁)은 이미 결정난 전쟁”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70년대의 새마을 운동, 98년의 금모으기 운동 등과 같은 민중의 자발적 동의에 기초한 구조와 체계가 존속하는 한, 아무리 국가권력을 향한 투쟁을 조직한다 해도 그 한계가 명백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말을 최근 상황에 대비해 보면, ‘시장 만능주의’라는 황금신이 골골이 박혀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그 추동 주체로서의 김대중 정권에 반대한다 할지라도 사실상 투쟁의 결과는 거꾸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한국사회는 지금 역사적 전환기에 놓여 있다. 전환기의 주요 변인은 신자유주의적 사회로의 재편(남한재편)과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조성된 통일(한반도 재편)이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우선하는 통일운동을 지향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운동의 주체는 무엇보다 먼저 주체의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통일운동은 찬성, 구조조정은 반대, 정규직 노동자의 인력감축은 반대, 하청․외주화는 찬성과 같은 모순을 척결하고 투쟁주체를 자주적이고, 계급적이며, 민중적으로 다시 세워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노/정/연


1) 여기서 사용하는 ‘공권력’은 다수의 이익을 위한 물리력의 행사를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 국가기구의 일환이라는 의미에서 사(私)에 대립되는 공(公)을 사용하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싶다. 사실 이전에는 공권력 대신 의도적으로 경찰병력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 원래 공공의 안정을 의미하는 ‘공안’(公安)이라는 표현도 본뜻과 상관없이 지금은 물리적 억압을 일삼는 공포 상태, 또는 그것을 행하는 주체라고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듯이 공권력 역시 최근과 같은 정세속에 자주 사용하여 그 자체가 계급적 본질을 드러내는 의미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대로 공권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2) 물론 8월 24~26일 있었던 민주노총단위노조대표자 수련대회에서는 농성을 지속하기로 결정했지만,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구체적인 투쟁방침은 해당 노조와 공공연맹에 맡겨져 있는 것 같다.


3) 청와대,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또는 대검 공안부장), 경찰(청장)이 주 멤버이고, 그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으로 드러난 ‘공안대책협의회’에 대한 청문회에서 ‘윗선’의 개입여부에 대해 시종일관 ‘모르쇠’하던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을 생각해 보라). 물론 상황에 따라 기타 장관이 참여할 수도 있고, 노동부(장관)도 매번 참여했지만 공권력 투입에 있어서 만큼은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4) 사실 올해 들어와 민주노총 주최의 집회는 대체로 평화집회(사실은 무기력한)로 일관되어 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경찰이 예견할 수 있는 정도 내에서 관리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4월 29일, 5월 1일의 노동절 집회를 계기로 경찰의 예측범위를 벗어난 돌출집회가 눈에 띠기 시작했고, 경찰도 예민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집시법을 개정하여 물리력을 동원한 가두투쟁 경력이 있는 조직의 경우 집회를 불허하겠다는 발언이 곧바로 나왔고, 5월 30일 총파업을 앞두고 있던 민주노총의 집회를 불허하는 강경책을 사용했다. 이후 매향리 폭격장 폐쇄투쟁을 벌이고 있던 주민들, 부산 노점상, 농민집회, 청년학생 등 대부분의 노동자․민중 투쟁에 대한 공권력의 투입은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5) ‘임금조항’과 관련하여 ① 임금 10% 인상(기본급대비 8% 및 정액 2%) ② 봉사료의 기본급화 및 잉여금 지급을 위한 노사동수의 위원회 설치 ③ 격려금의 연말 지급(상여금 대비 70%), ‘단협조항’과 관련해서는 ① 일방중재 2002년 5월 31일까지 존속, 이후 자동삭제 ② 비정규직 4년차 정규직화 ③ 적 정인력 확보문제는 조합이 대표이사에게 건의(연2회)하면, 그 처리결과를 조합에 통보 ④ 조합원 징계시 사전통보 ⑤ 모든 종업원의 조합가입 의무, 단 3급 이상 정규직, 그리고 촉탁 및 계약직 노동자 등의 조합원 자격 제외 ⑥ 만56세 퇴직자의 1년간 촉탁사원 ⑦ 파업종료 후 노사의 진정, 고소, 고발 등 동시 취하 ⑧ 사측은 조합원 각서를 전제로 손해배상청구소송 취하, 노조는 성희롱 관련 민사소송 취하에 최선의 노력 ⑨ 사측은 징계 최소화 및 재심시 해고자 최대한 선처(5명 해고, 20명 중징계로 확정).


6) 비슷한 평가로는 문순덕 씨가 참여하고 있는 ‘계급연대’의 8월 넷째주 투쟁일정(8/22~8/28) 중 “롯데의 파업투쟁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가 있는데, 이 글에서는 그 원인으로 민주노총 최상층부 3인의 이름을 노골적으로 지목하면서 파업파괴의 주역이라고 비수를 꽂고 있다.


7) 매일노동뉴스, 7. 29.


8) 동아일보, 2000. 7.12.


9) “기층민중들의 직접적 생존권 투쟁과 낮은 정치의식에 편승하여, 자주․통일운동의 중요성을 도외시하는 경제주의, 조합주의 편향도 나타나고 … 남북공동선언을 지지, 이행을 위한 사업은 구조조정, 신공안탄압을 자행하는 김대중정권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천박한 인식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음” “현정세와 우리의 임무”(민주노동당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건 자체에 기명되어 있지는 않다).


10) “일면 투쟁, 일면 단결”, “변화된 통일정세의 요구에 맞게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범민련, 자통협 등 광범한 자주적 평화통일세력을 결집해야 하며, 진보적 시민단체, 애국적 종교단체 등 중간층을 최대한 망라해야 함. 그런 다음에 김대중 정부와 민화협을 중심으로 한 평화공존세력과의 전술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위의 같은 글) “통일운동의 이정표이자 지침인 6․15 남북공동선언을 지지, 이행하는데 같이 한다면 관과 민, 보수와 진보를 떠나 대단결을 실현해야 했습니다.” “과거를 불문하고 민과 관이 함께 해야 합니다.”(2000년 통일대축전 범민련 남측본부 평가서(안)


11)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이 황폐화되고 있으며, 이를 희석시키려는 민족주의와 같은 통합이데올로기가 전면화되고 있다. 민족모순의 해결이 계급모순을 깨뜨리는 지렛대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급모순을 은폐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오세철, “민족, 계급, 그리고 통일”, ꡔ문화과학ꡕ 2000, 가을, 23호.


12) 자본의 세계화로 자본의 힘의 증대하면 할수록, 사회는 자본-임노동 관계가 더욱 투명해질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은 아울러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이외의 계급(계층)은 사라지거나 존재한다손 치더라도 그 사회적 의미가 현격히 축소될 것이라는 점을 나타낸다.


13) 김세균,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남북한관계 및 남북한 사회”, ꡔ진보평론ꡕ 2000년 가을, 5호.


14) 김용진, “통일운동의 방향과 과제”, ꡔ노동운동ꡕ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92. 4.


15) 자세한 내용은 최형익, “‘지식기반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노동, 그리고 정치”, ꡔ진보평론ꡕ 2000년 가을, 5호 참조.


16) 최형익, 같은 글.


2000-09-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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