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토론회
한국 자본주의 형성의 주체적 조건
너희 순수한 희생자들은 우리 앞에서 훌륭한 연극을 해내는구나
마치 너희들이 낯선 권력이나 자기 충동에 비참하게 희생되기라도 한 것처럼.
‥‥…
아니야, 우리 불평분자들은 나지막한 의자에 걸터앉아 ‘아니’라고 외치노라.
그만해! 그걸로는 아직도 부족해!
혹시 저런 소문 못 들었니? 세상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얽히고 섥혀 있는지를?
하늘을 찌르는 높은 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선 도시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탄 커다란 배가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바다 위에서도
그리고 저 멀리 외딴 마을까지도 소문은 벌써 쫘악 퍼졌다네.
바로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B. 브레히트, 덴마크 노동자극단에게 드리는 말씀, 1934년.
1. 들어가는 말
여기서 나는 한국 자본주의 축적양식의 주체적 조건에 관해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 자본주의에 관한 연구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분명해진 한국 축적양식의 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어떤 돌파구가 가능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를 보다 깊이 전개하는 것이다. 한국의 위기도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체제 옹호적이며 현실규명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주류 경제학의 설명 모델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이다. 물론 우리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논의의 쟁점이 IMF의 역할이나 구체적 정책, 아니면 재벌 개혁 문제든, 부패 방지 문제나 전근대적 정당체제이든, 아니면 아직도 논의 중인 기업별 노조의 극복 문제이든, 지금까지의 논쟁들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내가 볼 때 근본적으로는 대부분의 논객들이 지배적인 패러다임 안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매우 근본적인 해결책을 논의하는 장에서조차도 역시 마찬가지 문제가 발견된다. 따라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지배적인 패러다임1)과 또 그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의 구체적 현실을 자기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개방적으로 토론하는 것이라 본다.
여기서 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첫째, 나는 한국의 축적양식을 20세기 자본주의의 한 종류로 파악하고 그 구체적인 작동방식을 맑스의 가치론에 의거해 분석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정치경제학적인 분석 차원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위기 문제에 대한 진정한 돌파구를 해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적 행위의 차원도 살펴보게 될 것인데, 그래야만 실현 가능한 해결책들도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둘째로, 한국의 경제사회 체제를 일반적인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특징짓는 것을 넘어 한국적 특수성을 보다 세밀하게 해명하는 일이다. 따라서 마지막 부분에 가서 나는 일반론적인 가설을 보다 구체화할 것이다.
여기서 나의 착안점은 한국에서 1940년대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1960년대의 그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회주의적이고 진보-민족주의적인 민중운동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1940년대와, 자본주의의 토양 위에 완전히 서게 된 1960년대는 매우 뚜렷한 차별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물론 1960년대에 모든 한국인이 박정희를 지지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여러 번에 걸쳐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2) 그런데 독재자 개인에 대한 지지의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발전노선에 대한 근본적 대안이 분명히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 한 가지 징표는, 박정희의 적수이던 민주투사 김대중조차도, 비록 그가 아무리 군부독재에 대해 거세게 저항했다 치더라도, 스스로 완전히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질서 위에 서 있었던 점이다. 그는 빈부 격차 문제, 즉 자본주의 속의 분배 문제를 선거전의 핵심 사안으로 제기했으며 그 강령적 요구를 자본주의 내 대중민주주의와 대중복지 개념으로 집약하였던 것이다.
반면에 그보다 20년 전이던 1940년대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전환”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20년 사이에 벌어진 것에 대해 우선 두 가지의 가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일본 지배로부터의 해방 이후 약 15년 사이에, 부분적으로 “전(前)자본주의” 또 부분적으로 “반(反)자본주의적”이던 사회가 이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관철된 사회로 변화되었다. 이때가 아마 한국에서 본원적 축적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가 한다.3) 그 과정에 폭력이 개입하지 않을 리 없었다. 폭력이란 특정 전략4)의 관철 수단으로서, 바로 그것을 통해 자기착취를 위한 주체적인 준비자세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글에서 나는 전략 그 자체를 깊이 분석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전략의 대상으로 전락한 한국 민중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끝으로 사람들은 그 이후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둘째, 박정희의 쿠데타와 더불어 마침내 특유한 한국적 축적방식이 형성되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구미의 “포드주의”와는 대조적으로) “현대주의”5)라고 이름 붙일 수 있었다.6)
2. 정치경제적 측면들
우리가 1945년 이후 시기를 자본의 본원적 축적단계로 파악할 때, 적어도 이 단계에서 3가지 측면을 유의해야 한다.
첫 번째 측면은 화폐자본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일본인 귀속재산을 통해, 또 부분적으로는 그 밖의 공공자산 가치 및 특권을 소자본가나 보상받은 대지주 혹은 일제 때의 관리인들에게 이전함으로써 재벌의 핵심이 형성되었는데, 재벌은 일본의 자이바쯔를 본따 설립된 가족기업이다. 미국원조를 탯줄로 하여 이 사적 자산과 부패한 국가기구의 야합으로 생겨난 자본을 가리켜 흔히 “관료자본”이라 한다. 이러한 특성은 성공적인 자본주의화에 결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역동성”이 결여되었다는 문제점을 암시한다.
두 번째 측면은 이 역동성을 창출하기 위한 제도적 전제조건과 관련된다. 만약 사회가 자신의 발전단계, 즉 내적 저항 때문에 “자체에서” 스스로 역동성을 이끌어낼 수 없다면 외적인 힘을 필요로 한다. “개발국가”와 “개발독재”와 같은 “강한 국가”가 그 예이다. 한국에서 국가는 1961년 박정희의 무혈 군사쿠데타로 세워졌다. 물론 개발국가에 적합한 통치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쿠데타로 종결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동등했고 권력투쟁이 짧았던 결과, 국가와 자본의 “카르텔”에서 권력이 새롭게 분배되었는데, 이를 “국가-재벌-복합체”라 표현하면 적절할 것이다.
이로써 제도적으로 모든 것이 잘 구비되었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 즉 어디서 가치가 나오는가?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생성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일차적으로 사회학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필수적인 주체성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이는 내게 가장 흥미로운 문제이자 내가 알기에 지금까지 가장 적게 연구된 부분이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두 단계로 전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현대 자본주의 발전의 역동성에 대한 일반적인 범주들에 대해 다룰 것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한국의 자본축적 양식이 지닌 몇 가지 특수성을 도출하고, 가능하면 이에 대한 설명을 시도할 것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아직 한국 자본축적 양식의 특수성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문화주의적 설명은 모두 배제된다. 한국은 오늘날 “현대사회”7)로 간주되기 때문에 우리는 맑스의 가치분석을 적용할 수 있다.
맑스의 가치분석 범주들은 우리에게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내 생각에 이 작동 메카니즘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체제가 전혀 위기 없이 기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할 뿐 아니라, 오히려 어느 정도 “역기능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가치이론은 비가치가 가치의 원천임을 보여줌으로써 비가치의 재생산에 대한 설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체제의 기능은 파괴적이며 결국은 죽음을 불러오기 때문에, 나의 관심은 가치이론에서 단지 비가치로 여기는 것, 즉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저항성에 모아지고 있다.
따라서 가치론은 우리에게 어떤 경계들을 보여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이 경계 너머에서 우리는 대안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부득이 체제기능성 너머에 있는 주체적 행위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곧 우리의 행위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제한되어지는가를 인식하는 일이다. 좀 더 적절히 표현하자면, 우리가 체제기능성 안에서 움직이는 한,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체계적으로 제한하게 되는가를 인식하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까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해결책 자체는 정치경제적인 범주의 차원에서 기술될 수가 없는 것이다8). 이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차원을 파악하는 수단인 정치경제적 범주들과 생동적인 행위 차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첫 번째 질문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방식에 걸맞게 기능적으로 행위하게 되었는가’라는 점이다.
여기서 나는 구조와 행위의 차원을 연결하는 범주로 “두려움(Angst)”9)이라는 것과 마주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우선 구조적이고 체제적인 차원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정치경제적 차원의 중심 범주는 “교환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이다. 교환가치를 만드는 일은 노동력의 사용가치와 관계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 포섭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남는다. 맑스가 말한 바와 같이 “물건의 사용가치는 … 상품판매자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매자에게 중요하다”(Marx 1858, p. 227)는 것은 일반적으로 옳다. 하지만 비로 그 상품이 생산수단에 관련된 것이라면 구매자의 관점은 처음부터 자본의 관점과 동일하다. 생산수단으로서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상품에 대해서는 상품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유용성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중요한 것은 상품의 구체적 사용가치, 즉 상품의 형태규정(Marx 1863, p.7)이다.10) 이 측면은 여기에서 본질적인데, 왜냐하면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은 처음부터 단순히 생산과정에서만 사용가치를 갖기 때문이다.11) 그러므로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언제나 아주 특정한 기준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자본으로서의 노동력에 대한 형태를 규정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 즉 보다 “객관적”인 면과 보다 “주관적”인 면을 구분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은 물론 분석적으로만 나눌 수 있을 뿐이며 현실에서는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보다 객관적인 측면에 속하는 것은 사람들이 특정한 생산과정에 유용하게 투입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일반적 혹은 특별한 능력 및 숙련이다. 하지만 반드시 이에 덧붙여 필요한 것은 내가 주관적인 “자세”라 말하는 것, 즉 이러한 능력과 숙련을 실제로 실천할 수 있도록 기꺼이 준비되어 있는 상태이다12).
자본주의 사회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측면의 지속적 재생산이 매우 중요한데, 이와 관련한 재생산은 교육제도 뿐 아니라 사회정책이나 폭력기구, 그리고 일반적인 이데올로기 생산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면에서 어떠한 “생활세계”의 영역도 노동력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으로부터 제외일 수 없다(예를 들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스스로를 자기 노동력을 파는 판매자로 경험하고,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를 원래부터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배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그들은 일반적인 부(富)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자본의 한 측면으로 만드는데, 이는 곧 생산관계와 동일시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동일시를 통해 개별 노동력이 구체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기초가 형성된다. 이것은 또 “자본”이 ― 그것이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 대표되어 나타나든 간에 상관없이 ― 어떤 “중립적” 장소에서 그에 적절한 노동력을 가만히 대기하며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가치를 창출하는 전(全)과정은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다. 인간이 노동력의 담지자인 한, 그는 더 이상 자유롭게 살아 움직이는 개인이 아니라 자본이 된다.
이러한 측면들의 제도적, 조직적 형태에 대해서는 뒤에 ’60, ’70년대의 한국사회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 현재 작동하고 있는 한국의 자본축적양식은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발전된 특수한 모습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정이 노동력 사용가치의 본원적 창출이란 면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나 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자 한다.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는 일이 도움이 될 것이다.
3. 노동력의 사용가치에 대한 역사
탈영성화(Entspiritualisierung)의 역사적, 사회적 과정과 이와 더불어 나타나는 전능함(무소불위)에 대한 망상 및 통제만능주의 환상이 관철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에서의 르네상스 및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이루어진 특정한 형태의 외적 종속으로부터의 해방, 즉 특정한 형태의 인간(남성!)해방의 결과이다. 당초 현물에 기초한 중세의 봉건사회가 교역 및 수공업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발전으로 해체되게 된 배경에는 토지로부터의 (외견상의) 독립이 중요하게 작용했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자연 전체로부터 독립에 대한 가능성으로 비추어졌다.
자연으로부터 독립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내적 자연(본성)으로부터 독립을 의미했다. 이러한 사고관 속에서는 자연이 더 이상 삶의 원천이 아니라 인간의지의 대상물로 바뀌게 된다. 바로 이로 인해, 인간 외부에 존재하면서 그들을 지배하는 신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의도는 단지 주인을 교체하는데 머물게 되어 버린다. 인간들은 그들 자신에게서 신적인 것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그들이 거대한 전체의 통합된 일부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 자신을 물러난 주인 자리에 대신 앉혀 놓았다.13) 다시 말해 개별 인간이 주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각 개인들에게 있어서 세계의 나머지가 대상(객체)이 될 때, 이는 무자비한 경쟁체제로 이어지게 됨을 뜻한다.
이러한 학문적 패러다임은 사회과학의 학문체계에 있어서 일정한 발전을 가져왔는데, 이에 대해 몇 가지 시사점을 지적하기로 한다: 자연과학은 객체 혹은 대상으로서의 외적 자연을 합리적인 인식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통제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사회도 규칙적이며 올바른 인식에 의해 통제 가능한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고에 있어서 새로운 질적 도약이 필요해졌다. 사회과학은 사회에서 개별 인간들의 행동에 대한 일반적 법칙을 기술할 수 있어야 했다. 여기서 전제가 되는 것은 개인들의 사회적 행위는 동일한 형태의 반복 가능한 합리성을 기초로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행위의 원동력에 대한 문제는, 늦게 잡아도 홉스(Hobbes) 이래로 원초적인 평등에 기초한 개인들의 이기심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기심의 발견이 처음에는 사회과학이 형성되는데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17, 18세기를 거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이른바 고전적 유럽 사회과학의 발전과정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는 이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는 것에 그칠 것이다.
홉스(Hobbes)와 중상주의자에게 있어서 사회는 서로 고립된 개인들의 두려움으로 각인되어 어떤 영속적이고 합리적인 힘이 생성될 수 없는 무질서 내지 항구적인 전쟁상태였다. 그래서 강한 국가만이 인간을 파멸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예를 들어 Macpherson 1973, p.32 이하 참조). 특히 노동하는 빈민은 여기서 사회적인 불합리성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구체제는 새로운 적대적 계급인 부르주아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출현으로 생겨나는 현실적 모순의 증가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여기서 통제의 옛 독트린은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다.
로크(Locke)는 개인주의에서 비관적인 결론을 도출하지 않은 최초의 학자였다. 그는 새로운 체제의 작동방식을 연역적으로 도출하진 못했어도 발흥하는 시민계급의 낙관주의를 앞서 구현시켜 놓았다. 새로운 윤리의 기초 위에 발전된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76, 1759)의 이론은 ― 여기서는 홉스식의 전투적 인간성 자리에 공감(Sympathie)의 원리가 사회를 결속시키는 힘으로 등장한다 ― 처음으로 한편에 있는 이기심의 동력과 다른 한편의 윤리 및 이성에 의한 질서를 이론적으로 통합해 냈다.
여기까지는 먼저 이론이며, 그리고 이는 이데올로기이다. 이 이론은 첫째로 부르주아지의 욕구에 상응하는데, 이들 부르주아지는 기본적으로 그들이 새로 만들어내고 있는 사회적 현실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기능하고 있는 체제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새로운 생산양식의 관철이 명백하게 확증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의 다른 계급들, 특히 하층계급들에게 관철되는 것을 생각하기 이전에, 사회적 관철과정의 실제적 주체인 부르주아지 자신이 먼저 납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신흥 시민계급은 자기 자신들의 이해를 ― 자유, 평등, 박애의 개념을 통해 ― 인간보편의 이해와 합치되는 것으로 간주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총체성에 대한 요구로 인해 이 개념들은 이데올로기화되었다: “자유”라는 개념만 하더라도 “외적 자율성”, 즉 타인에 의한 예속으로부터의 자유로 정의되었다. 그 대신에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예속되게 되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계의 나머지 부문이 객체화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 자신도 그의 이기(Ego)의 객체가 되었다. 로크(Locke)가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인격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Locke 1689, 60절).14)
자본주의적 패러다임은 일차적으로 외적 강제, 즉 중립적인 학문 용어로 “생산수단으로부터의 분리”라고 불리는 과정과 관련된 테러를 통해 역사적으로 관철되었다. 왜냐하면 변화의 부담을 감당해야 했던 하층민들은 그들의 자유가 기껏해야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분리)로 나타나자, 그들은 계속 전해 내려오는 “도덕경제(moral economy)”(E. P. Thompson)의 원리에 따라 생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계급적대의 핵심이 있었다: 시민계급과 노동자계급간의 상이한 세계들이 서로 충돌했던 것이다.15)
자본주의적 패러다임의 관철과정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 새로운 합리성의 개인적, 집단적 내면화와 더불어, 이후 이에 병행한 실질임금의 상승 및 대량소비를 통한 체제 동참에 따라 ― 점점 더 “자기결정(Selbstdetermination)”의 결과로 나타났다(Scherhorn 1991, p. 158 이하).16)
계급모순의 둔화, 즉 적대관계 자체의 폐절을 위한 투쟁으로부터 샌산의 결과물에 대한 분배투쟁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진 것은, 외부를 향해 공격적인 사회로 노동자계급이 통합되면서부터이다. 여기서 “외부로 향한다”는 표현은 (자본에 의한) 생산적인 합의에 동참하지 않은 모두에 대한 투쟁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에 속했던 사람들은 구체적인 사회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했지만, 하층계급 중 통합되지 않은 부분을 이루는 장애인, 노인, 외국인 등이었다. 이에 속했고 또 현재도 속하는 부분으로는 생산적으로 바로 이용할 수 없는 자연과 사회와의 교류도 들 수 있다.17)
이는 곧 홉스(Hobbes)가 주제로 삼은 두려움이 사회적으로 극복된 것이 아니라 억압되었을 따름임을 말한다. 두려움의 억압은 두려움을 효율적으로 도구화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4. 두려움과 자본
내가 여기에서 내적 연관성을 찾으려하는 두 개념은 전혀 다른 분석 차원에 속한다. 행위하는 인간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것과 그렇게 행위하는 이유는 정치경제학의 범주인 “자본”에서 지양되었고 또 계속 숨겨진 상태로 머물러 있다. 숨겨져 있는 것은, 여러 사회적 연관성에서 그리고 사회화를 통해 매개된 감정, 사고, 행위에서 우리가 “자본”이라고 부르는 것을 실천하고, 반복해서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사실은 항상 인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자본”이라는 개념은 물질적 토대를 가진 특정의 관계체계를 만들어내는 (또다시 감정, 사고, 행위에 의해 매개되어 “스스로” 재생산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감정, 사고, 행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 “자기재생산”은 인간이 사회적 총체성에서 계속해 불변의 원칙(혹은 통제되었거나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변화하는 원칙)에 따라서만 느끼고, 사고하며, 행위함을 전제로 한다.18) 이 통제된 - 스스로 통제된 - 삶은 사실상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연관성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킨 결과이다. 소외된 감정, 사고, 행위는 생생한 사회적 과정(이는 사회적 관계가 본질적으로는 “생동성”, 즉 과정이기 때문이다)이 점차 “죽은 사물”로 변화한다는, 다시 말하자면 “가치”의 형태로 사물화된다는 것을 표현한다.
이 가치지향성으로부터 개인의 행위와 무관하고 모든 참여자에게 유효한 가치의 지배현상, 즉 사물의 생동적인 과정에 대한 가치의 지배가 나타난다. 이를 맑스는 “죽은 노동의 산 것에 대한 지배”라고 규정했다(Marx 1863, p. 18). 다른 곳에서 맑스는 또 자본의 성격을 “산 노동을 흡혈귀처럼 빨아먹어야만 살 수 있고, 산 노동을 보다 많이 빨아먹을수록 더 잘 살 수 있는 죽은 노동”이라고 규정했다(Marx 1867, p. 247). 아마도 그 파괴적인 관계를 이보다 더 명확하게 서술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자본은 죽은 것, 그리고 작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것이다. 우리는 자본이 움직인다라고 하고 “자본운동”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죽은 것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는 죽은 것에 삶을 “불어 넣어줄” 경우에만 가능하다. “빨아냄”이라는 개념 자체도 이미 자본의 주체성이라는 현상을 포함하고 있고, 그 자체가 엄밀히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개념이다. 이미 이 개념도 죽은 것으로서의 자본이 가질 수 없는, 살아 있는 에너지를 전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이 계속 “살 수 있게” 하는 항상 새로운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자본이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계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바로 사회적으로 행위하는 인간 자신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정치경제학적 분석 카테고리와 사회적 인간의 삶의 현실이라는 카테고리간의 접근을 시도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인간 자체에’ ― 사회 안이나 개인 안이나 모두 ― 적대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생동성(그리고 인간을 제외한 자연의 생동성)을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편에는 인간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며 생동성을 파괴하고 빨아먹는 자본, 이 둘 사이의 적대성!
적대성을 인간 안에 배치할 경우, 우리가 파괴적인 것으로 규명한 자본을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기존의 수많은 해석들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자본을, 씨가를 입에 문 뚱뚱한 사람(자본가)과 동일시하는 것, 몇 푼의 화폐와 동일시하는 것, 그리고 지구적 차원에서 IMF와 같은 국제기구와 동일시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노동력의 사용가치라는 것이, 생동성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참여한 정도에 따라 다르게 규정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서술한 적대성의 핵심은 분열이다. 사회적으로 이 분열은 계급내 분열로 나타난다. 우리가 개인을 관찰해보자면 분열은 자신에게서 이기(Ego)가 분리되어 나가는 것이며, 이기가 자신(Self)을 지배하는 것으로서의 자기지배로 현상한다. 이기는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 다시 말하자면 심리적 능력의 소유자로서의 개인에게 나타나는데, 이에 관해 우리는 이미 위에서 존 로크를 통해 언급한 바 있다. 이기는 자신을 “희생”하는 핵심적인 힘일 수 있고, 물질적인 부를 얻는 대신 자신을 팔아 버릴 수도 있다. “자기 착취”로서의 자기지배는 외부로부터의 지배가 가능하게 되는 토대이며 동시에 외부로부터 착취의 토대이기도 하다.
아래에서는 이기가 자신으로부터 분열되는 개인적, 집단적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밝히기로 한다. 우선 심리분석적 꿈연구의 결과를 검토해보자.
정치적 박해, 고문, 유태인 수용소에서의 테러 등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공격은, 마치 가정에서의 아이들에 대한 폭력처럼, 폭압적인 권력에 스스로를 일치시키는 형태의 복종을 통해서만 심리적으로 극복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최근의 논의는 페렌치가 1932년 심리분석 이론에 도입한 “공격자와 동일시”(Ferenczi 1933, Hirsch 1996) 이론과 연관성을 가진다. 이 이론은 원래 부모로부터 성폭력, 물리적 폭력, 심리적 테러의 희생자로서의 아이들이 이 테러를 수용하고 스스로를 공격자와 동일시하는, 흔히 목격되는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이 경우 공격자의 권력은 거부할 수도, 피해가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아이들은 육체적, 도덕적으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고, 아이들의 인격은 저항을 생각해볼 정도로까지 성숙하지도 못하다(Ferenczi 1933, p. 308). 따라서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상황에서 공격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하나의 ‘생존전략’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저항을 포기한 채 그의 의지에 완전히 복종한다면, 그는 아마도 나에게 생명을 선사할 것이다”(Ferenczi 1985, p. 155).
구체적인 개별 상황에서 생존을 보호받게 되는 일이 수 차례 반복된다면, 그것은 지속적 공격 상황에 맞서는 전략으로 하나의 행위모형(프로이트의 “반복강제”)이 될 것이고, 마침내 당사자는 경향적으로 자아파괴를 통해 평생동안 희생자가 되어간다. 이 행위모형은 진정한 생동성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데, 이는 이 행위모형이 ‘모든 대안을 체계적으로 가로막기 때문’이다.
히르쉬는 안나 프로이트(1936)의 연구결과를 활용하여 “공격자와의 동일시” 이론을 보다 정밀하게 발전시켰다. 히르쉬는,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바 그가 “일차적이며 고통스러운 동일시”라고 표현하는 동일시와 자아에 경계를 설정하는 동일시를 의미하는 2차 동일시를 구분한다. 이 2차적 동일시가 바로 그 희생자를 후에 공격자로 만든다. 즉 그 희생자는 “자신이 예전에 당한 그 폭력을 자기보다 더 약자인 사람을 향해 던진다”(Hirsch 1996, p. 203). 안나 프로이트는 이러한 종류의 공격자와의 동일시를, 상대적으로 덜 존재를 위협하는 공격 혹은 부분적으로는 단지 가끔 성인들에게서 한번씩 관찰할 수 있는 그런 공격성이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종류의 동일시에는 자아로부터의 분리 내지는 “자아에 대한 배신”(Gruen 1986)이 발생한다. J. 헤르만도 이와 관련하여 “파괴된 자아”(Herman 1992, p. 79 이하)라는 개념을 쓰고 있다. 외적 정체성의 수용은 외적인 욕구가 궁극적으로는 가장 본질적인 욕구인 것처럼 치부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하여 자신의 욕구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회가 처음부터 차단되어버린다. 물론 자아를 스스로 활성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영원히 억누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는 심리적인 형태로 뿐만 아니라 체질적인 형태로도, 즉 근육경색으로도 표출된다(Lowen 1989).
내 생각에는 위의 논지를 이해하는데에는 좁은 의미의 심리분석적 이론을 넘어서는 다음과 같은 사고가 매우 중요하다: 페렌치가 지적했듯이 공격의 희생자가 공격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일 경우,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삶에 필수적인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와 함께 삶의 에너지와 연결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 보다 큰 전체와의 통합성이 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연결은 해당 성인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직 독자적인 연결은 없고 “그들(아이들: 필자)의 인격은 아직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다”(같은 곳, 참조).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성인, 즉 부모 등이, 히르쉬가 말한대로, 이 연결을 “넌지시 끊을” 경우 ‘영성적인’ 존재가 직접적으로 파괴될 위험이 발생한다. 영성적 존재의 손상에 대한 두려움은 아마 물리적 의미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오히려 더 클 것이다. 공격하는 사람에 대한 연결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희생자는 이 두려운 상황에서 물리적인 생존 전략을 선택할 것이다. 바로 이 전략적 선택이 그로 하여금 공격자의 권력에 연결되게 한다.
이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결과가 성인들의 상흔(傷痕)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19) 물론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나타날 것이다: 성인들에 있어서는 “공고히 형성된 인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독자적인 가치체계, 또 부차적으로는 특정한 관계자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일반적으로 개인적 정체성을 지켜준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폭력, 이미 경험한 폭력이 (도망치는 것 등의) 방어행위 자체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성인들도 자주 살아남기 위해 “의식변화”(Herman 1992, p. 65 이하)를 하며 이에 반응한다. 볼프강 슈미트바우어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체질의학에서 사용하는 “집중화”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안네 새프는 또 이를 “생활과정의 중단”(Schaef 1998)이라고도 한다. 직접적인 생존에 활용 가능한 모든 심리적 힘을 집중하면 심리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경직” 혹은 “수축”(Herman 1992, p. 65 이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험된 폭력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되거나 혹은 체계적으로 반복될 경우 이 경직은 만성적인 것으로 되고, 이를 통해 행위모형으로 굳어진다. 이렇게 될 경우 생동성의 모든 과정, 즉 모든 통제 받지도 않고 또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살아 있는 감정들은 두려운 것으로 변하고 위협적인 것으로 경험되는 동시에, 이에 대한 통제의 결과로 평생토록 축출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상흔 후에 나타나는 이러한 집중화는 정신적인 경화(硬化)로 발전한다 - 이는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자아를 뒤덮는 일을 저지하려는 일종의 방어구조이다. 축출, 침묵, 불만에 가득 찬 처신, 전반적인 사회적 후퇴가 이러한 자기방어의 수동적인 축을 이루고, 전쟁이나 투쟁의 미화, 거칠 것 없는 자기과신,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음, 과대망상은 이 자기방어의 공격적인 축을 나타낸다”(Schmidbauer 1998, p. 71). 원래의 자기 감정을 솔직히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자연스런 슬픔의 반응들은 자신이 사면초가적인 상황에 의해 지칠대로 지칠 때까지 왜곡되거나 억눌리고 만다”.(Schmidbauer 1998, p. 72).20)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두려움인데, 이 두려움을 스스로 축출한 결과 의식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문제는 역시 두려움이다. 결국에는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난다. 이는 점점 더 큰 삶의 에너지를 두려움의 축출과 통제에 묶어둘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다름 아니다.
동일한 증후군의 수동적인 축과 공격적인 축간의 현상적인 모순은 상흔을 당한 사람이 이를 피해자로서 실제 경험했다는 것을 통해 설명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행위모형은 피해자의 행위모형이다. 피해자로서의 처신을 그만 두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통제된 존재에서 나타나는 생동성의 부족을 의식적으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의 무시무시한 상황이 실제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자신의 생동성을 막는 것이 상흔을 입은 인간자신이라 할지라도 그는 계속해서 공격자-피해자모델을 사용한다. 그리고는 공격자 역할을 외적인 어떤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는 이 방식을 통해 잘못은 거의 저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책임은 이미 다른 것이 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자로서의 처신은 공격자로서의 처신으로 쉽게 전환한다; 그는 원칙적인 피해자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방어가 정당하기도 하다. 모든 책임문제가 이미 해결되었고, 책임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자기방어”는 항상 타인에 대해 전혀 고려를 하지 않는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자기방어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1)
상흔의 경험이 전쟁이나 수용소에서 올 경우, 공격자와의 동일시 문제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측면이 한 가지 부각된다: 개인적인, 개인적으로 동일시할 수 있는 공격자 자리에 익명의 전능한 권력이 자리잡는데, 이 권력의 “논리”는 피해자가 전혀 알아차릴 수 없다(Schmidbauer 1998; Herman 1992 참조). 원래의 가치 내지는 규범체계, 그리고 영성적인 연결은 그 힘을 전혀 발휘할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상태는 흔들림과 절망의 상태이다. 이렇게 될 경우 “공격자와의 동일시”는 이 상황을 누르고 등장한 체계와의 동일시로 전환되는 동시에 피해자는 이 체계의 패러다임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킨다. 혹은, 슈미트바우어가 언급한 것처럼, 익명의 공격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희생자는 자기 자신의 것이기는 하지만 “무가치한 것으로 확인된”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희생자는 복종에 대한 보상으로 하나의 전체적인 제도에 몸을 맡김으로써 생겨나는 전지전능이라는 환상을 얻게 된다(Schmidbauer 1998, p. 89).
5. 상흔의 결과로서의 중독증
이렇게 될 경우 삶은 통제된 상황에서만 견딜만해진다. 사고와 합리적인 논리는 통제기제, 감정의 여과기가 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감정, 사고, 그리고 행위를 나는 광범위한 참고문헌을 인용하여 ‘상흔 후기 증후군’으로 표현했는데, 우리는 이 감정, 사고, 행위를 다시 “중독”이라는 개념에서 접하게 된다. 중독개념은 나의 주장을 정당화하는데 중요한 두 가지 논리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 중독은 원래부터 (질환의) 상태 이상의 어떤 것이다. 중독 그 자체는 역동적이다. 둘째, 중독이라는 개념 내에서 체계와 행위의 접합이 가능한데, 이 접합은 추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순기능을 하는 개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인식을 갖다 준다.
“중독” 개념은 원래 일반적인 “질환”, 그 후에는 “전염성 질환”, 최근에는 ― 일부 과학적인 중독 연구에서처럼 ― 특정한 심리체질적인 질환과 관련된 개념이다. 이 개념은 우선 삶의 불만을 보상받으려는 노력이 실패로 끝날 경우 경험하게 되는 강제, 압박, 혹은 흥분을 표현한다. 이 중독상태에서 “중독증들(복수)”이라 표현되는 물질적, 비물질적(순수한 행동중독과 과정중독) 행동양식들이 발생한다. 중독 개념은 본질적으로 ― J. 헤르만이 상흔에 대한 반응으로 묘사한 것처럼 ― “의식변화”를 포함하고 있다(위의 글). 중독은 우리가 우리의 솔직한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사실상 “막아준다”. 물론 이는 우리가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파괴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 왜냐하면 이미 행해진 자기파괴가 추가적으로 축출해야 할 두려움을 또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래서 중독은 진전되는 질환이다. 진정한 욕구를 배제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선택된 보상수단은 진정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 따라서 영원히 “만족할 줄 모르는”22) 상태와 영원한 부족의 상태가 발생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해 장기적으로 “약의 용량 증대”이다. 약의 용량 증대는 진전되는 질환의 또 다른 측면이다.
세 번째 측면은 투약되었거나 육체가 생산해낸 소재의 직접적인 영향과 원래의 문제 및 중독증세를 정신적으로 감당해내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는 육체적, 정신적인 쇠약이다.
여기까지가 몇 가지 개인적 중독사(中毒史)의 역동성에 대한 언급이었다. 아래에서는 중독이 전승(傳承)을 통해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짧게 서술하기로 한다.
여기에서 우선 중독의 집단적, 사회적 측면에 대해 언급하기로 하자. 중독은 개인 질환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처음부터 사회적인 차원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알콜중독 연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왔듯이 개인은 중독증을 앓는 동안 항상 “동반중독자”에 의존해왔다. 이 자체만 해도 직접적인 중독 물질의 “오용”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다(이 경우에는 “전통적인” 알콜). 물질적 중독수단의 경우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 내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오용”이 문제가 된다. 반대로 동반중독성 자체도 하나의 “관계중독증”23)이다. 우리의 내적인 삶의 과정이 메말라갈 때 껍데기밖에 없는 우리의 삶은 외부로부터 삶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끌어올 때만 유지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욕구만족을 외부“요소”에 종속되게 만드는 것과 동일하다: 이 요소는 우리가 섭취하는 물질일 수 있으며 조작된 신체고유의 물질생산을 통해 만족이라는 현상을 야기하는 처신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상흔의 결과를 서술하며 의사소통 능력의 장애를 지적하고, 특히 희생자 증후군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것이 보다 진전되어 중독이 항상 새로운 주변환경을 점진적으로 끌어들여 전염병처럼 확산될 경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중독의 “전염”은 경쟁기제와 지배기제를 통해 발생한다. 즉 전염은 사회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다.
6. 중독의 전승(傳承)
한 세대 전체가 상흔을 경험했을 경우 위에서 서술한 방식으로 한 사회의 형성과정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가 위에서 묘사한 주입적 동일시가 평생동안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인정할 경우, 이를 통해 우리는 원래의 해당 세대와 함께 천천히 사라져버릴, 시간적으로 제한된 효과만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주장한 영향의 장기성에 대해 추가로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과정은 처음에 한번 외부에서 주도되면, 후에는 독자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규명해야 하는 단계는 전승의 단계이다. 나는 ‘전승’이라는 개념을 특정한 가치나 행위양식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전시키는 주관적으로 인식한, 주관적으로 의도한 과정으로 보기보다는 기본적인 가치관과 행위규범이 오랫동안 뚜렷이 관철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나는 이 개념에다 사회화의 직접적인 영향과 간접적인 영향을 포함시킨다. 그리고 또 의도된 영향과 함께 원래 의도한 것과는 반대로 “행위자 등뒤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과정에서 관철되는”(Heide 1995, p.163) 것들도 포함시킨다.
이미 언급했듯이 사회적 행위는 인간의 감정과 사고, 그의 가치관과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이 가치관은 그 인간의 영성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인간과 우리의 사회적, 자연적 환경 전체를 어떻게 다루는가, 우리가 어떻게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공감 능력의 표현이고 또 우리의 영성의 문제이다. 우리가 첫 번째 세대에서 영성을 엄청나게 잃어버렸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이 질문은 무엇보다도 초기 사회화와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해 나는 몇 가지만 지적하기로 한다(보다 자세한 것은 Gruen 1986을 참조할 것).
인간의 유아기에 공감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조건은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성인과의 밀접한 육체적-감정적 관계이다. 어머니와의 직접적인 연결이 출산으로 끊어지자마자 젖먹이가 맺는 타인과의 관계는 의사소통의 문제로 된다. 모든 것은 조그맣고 힘없는 인간(아이)과 크고 강한 인간(어른)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이 “관계인(어른)”이 젖먹이가 욕구를 표시하는 표현들을 이해하는가라는 것에 달려 있다; 또 어린이가 자신의 직접적인 욕구를 드러내는 거리낌없음에 대응하는 성인의 능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거의 항상 무의식적인) 성인의 방어 행위가 아이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로 된다.24)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방어는 성인 자신의 감정적인 발전의 장애로 이해할 수 있다. 겨우 축출한 자신의 감정과 부딪힐까하는 두려움은 이에 대한 반응으로 방어만을 허락한다. 바로 이것이 상흔-결과의 핵심적인 문제중의 하나였다.
이는 매우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상흔을 입은 사람의 가족, 특히 아이의 운명을 조사한 결과를 서술해놓은 수많은 참고문헌이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편에서는 아이들을 부려먹는 것으로부터 성적 추행이나 다른 종류의 학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부모의 지나친 기대로 인한 아이들의 과부하이다.
마지막으로 방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형태는 아이들의 “내적 자율성” 형성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내적 자율성은 모든 종류의 자신감과 공감 능력에 바탕을 둔 능력, 특히 의사소통적이고 책임감 있는 행위능력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성년기에 이러한 감정적인 능력이 부족할 경우 사회적 환경에 파괴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특히 자신의 아이를 “기르는데” 파괴적인 영향이 강하다. 이 능력의 결핍은 중독순환이 끊어지지 않을 경우 위와 같은 양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
이를 동일시 문제와 연결시켜 보면, 앞에서 원래 해당세대와 관련해 언급한 자기투사적 동일시가 다음 세대에도 큰 영향을 미침을 의미한다. 다음 세대에게 나타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2차적인 동일시 형태일 것이다. 왜냐하면 직접적으로 경험한 공격은 덜 힘들어 보이고, 또 익명의 공격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히 많은 경우에 아이에 대한 엄청난 폭력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다시 개인적으로 1차적인 동일시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상흔을 입은] 부모는 자신의 감성과 충동을 내적인 위험의 원천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상흔이 된다”(Schmidbauer 1998, p. 288 이하; 같은 책 p. 131 이하 참조).
7. 중독증과 자본
이 모든 행동양식은 외부의 에너지를 점취하고 빨아들이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비록 외견상으로는 “생명체”처럼 보이긴 하지만 (흡혈귀처럼) 살아있는 것을 잡아먹을 때만 살아있는, 사실상 죽은 존재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독자 개인과 자본이 유사성을 지닌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앞에서 자기지배와 자기착취라는 개념으로 자본을 묘사한 부분과 밀접히 연관된다. 우리 스스로가 바로 자본의 논리대로 행위함으로써 결국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력을 탈취한다는 것, 이것이 옳은 인식이라면 최소한 여기에는 피해 의식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의 행위와 매우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내 생각에 “중독증”은 노동력의 사용가치에 속한다. 나아가 그것은 시스템(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의해 재생산된다. 중독증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솔직한 느낌(감정)과 접촉할 기회를 차단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립이나 부정직함, 시스템의 파괴성 등이 주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체험할 수 없도록 방해받는다. 특히 우리 스스로 각자의 행위를 통해서 시스템의 파괴성이 더 깊어지도록 함께 돕고 있는데도 말이다(Schaef 1998:176 이하 참고). 이런 뜻에서 중독증이란 자기착취의 외적 표현이며 따라서 외적 착취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중독 체제로서의 자본은 사람들의 욕구를 만들어내고 재생산한다. 그것도 원칙적으로는 무한정 만들어내며, 그 과정에서 욕구 충족의 수단까지도 제공한다. 물론 그때의 욕구 충족이란 대리 충족(!)에 불과한 것이며, 그 수단은 경제학의 정의에 걸맞게 “희소한” 것이다. 예컨대 알콜이나 “마약”, 의약품, 아니면 온갖 “기호품”에 이르기까지의 물질적인 수단들, 그리고 번지점프와 같은 활동적인 놀이 기회, 아니면 시스템과의 일체감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수동적인 “오락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정보”조차도 일종의 중독수단으로서 큰 역할을 한다. 즉 대개의 비판들이 잘못 주목하고 있듯이 정보의 내용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정신적․심리적으로도 도저히 뒤따라 잡을 수 없는 정보의 대량성 그 자체에 의해서도 정보는 엄청난 중독수단으로 기능한다. 정보의 대량성 그 자체만 해도 바로 이것이 대중 매체를 통해 인간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25)
8. 한국의 축적양식
이러한 이론적 예비 고찰 위에서 나는 애초의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즉 한국에서는 노동력의 사용가치를 원초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과연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기간은 194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일 것이다.
나의 가설은 이렇다. 즉, 해방 후 미군이 인천에 도착(1945년 9월)한 뒤로 시작된 온갖 진보 세력(미국적 가치관에 반하는 세력)이나 이념에 대한 척결 과정(테러나 한국전쟁과 같은 물리적 황폐화를 포함)이 마침내 심층적인 상흔(쇼크)을 초래했고 이것은 결국 “공격자와의 동일시”를 집단적으로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상흔 뒤에 오는 동일시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기의식을 해체하는 결과를 낳았고 나아가 자신의 일부를 내쫓으면서 사회적으로 징벌을 내리는데, 그 형태가 바로 반공 히스테리(“레드 콤플렉스”)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원인은 심한 좌절감에서 나오는 두려움인데, 이 두려움 역시, 약자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을 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느낌), 사고, 행위들이 억압당하고 배척된다. 그런데 바로 그것들이 원초적인 갈등과 투쟁의 원인이었기 때문에 깊은 좌절감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잃어버린 정체성, 예전의 가치체계들, 이런 것들은 이제 단지 “전지전능(무소불위)의 환상”(Schmidbauer 1998:89)에 의해서 보상(대리 충족)되어야만 했다.
과연 어떻게 해서 이런 환상이, 자기 감정에 충실한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집단적(사회적) 경멸과 공격의 형태를 띠게 되는가 하는 문제도 이제서야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체제를 위한 자기 희생 과정에서 보이는 자기공격성은 동시에 사회 내 약자에 대한 멸시의 태도를 동반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의 사례는 무수하다. 예컨대 어린이나 노인,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공격적 태도들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런 공격성은 노골적이기도 하고 은밀하기도 하지만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것은 바로 사회적 차원에서, (예전에 있었으나 지금은 억눌린) 자아의 일부분을 증오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의 심리적인 영향은 너무나 파멸적이었다. 대부분의 조선 사람들에게 수십 년간 노예화의 과정이었던 일제의 외적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경험이 (비록 평등이나 원대한 희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어도) 사람들에게 상당한 안도감을 안겨다 준 것은 사실인데, 그럴수록 심리적 고통은 더 심했다.26) 여기서 우리는, 미국 점령군의 도착에서부터 한국전이 끝날 때까지 매우 오랜 세월이 흘렀으며 갈수록 격렬해졌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어떤 변화들이 있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새로운 희망의 징조들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특히 그 새로운 희망들이 대개 갈수록 더 잔인하게 짓뭉개졌기에 더욱 그러하다. 구체적 사례는 1950년에 북조선 인민군이 남한 깊숙이 내려온 직후에 이뤄진 (지주로부터의) 토지 몰수와 (가난한 농민에게의) 토지재분배에서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일부 민중이 이미 포기했던 희망을 다시금 되살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몇 주일 뒤에 재탈환이 일어나자 실제적인(또는 추측되는) 협조자들에 대한 가혹한 복수가 행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한국의 축적양식 형성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1945년부터 1953년까지의 기간을 저항의 시대나 해방의 시대 뒤에 도래한 “잃어버린 혁명”27)의 시대로 부르는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1953년 이후에는 사람들이 정체성을 형성할 수단이 반공주의 외에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또 다른 실망과 좌절이 자라나게 되었다. 그것은 (그렇게도 강하게만 보이던) 공격자(정치적 지배층)의 현실적 약점이 갈수록 뚜렷해졌기 때문이며(Henderson 1968:175 이하), 바로 이것이 자기의 패배에 대한 용인을 더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무관심이나 체념, 수동성 등에 대한 심층적 근거이며, 어떠한 전진도 불가능하게 만든 근거이다. 실제로 한국은 1950년대 중후반에 가서 극심한 빈곤과 정체 속으로 빠지고 만다. 백발의 독재자 이승만 정권은 미국 원조와 국가-재벌 복합체(국가 행정과 소위 “관료자본”의 복합물)를 토대로 세워졌다. 이로 인해 엄청난 탄압이 자행될 수밖에 없었고 또 이것은 갈수록 민중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결국 정권은 1960년 봄, 부정선거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학생들에 의한 유혈 저항이 나오게 되었으며 마침내 독재자의 퇴진으로 끝을 맺었다.
바로 이 순간 그 동안 억눌렸던 민중의 기본적 욕구들이 분출해 나왔다. 그러나 이런 민중의 욕구들은 결코 올바로 충족될 수 없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민중의 이해와 반대되는 세력들, 즉 아직도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 또 대미 종속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 민주 세력들의 방향 상실과 개념 부재 등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더 이상 살아 있는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당초의 민주화 시도들이 (제2공화국에서) 불가피하게 단순한 대중영합적인 정책을 거치며 마침내 경제적, 사회적 혼란 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정체성을 찾으려는 강한 욕구들도 존속했는데, 실제에서는 그것들이 좌절되면서 그 욕구의 강도만 더해갔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의 쿠데타는 국민 대다수에게 일종의 “구국”의 결단으로 수용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공격성에 기초한 사회의 재건이 시작되었다. 바로 그 대표적인 형태가 군사주의 문화와 무한 경쟁 문화로 나타났다. “세계 제일”이라는 구호는 단순한 경제 개발 전략에서뿐만 아니라28), 만인의 만인에 대한 살벌한 투쟁에 있어 전동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공식적인 선전구호가 “우리는 경제 전쟁에서 세계 제일이 되어야 한다”라고 외칠 때 그것은 사실상 “모든 개인은 경쟁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바로 이러한 파괴적 과정이 매우 “생산성 높은” 것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승리자와의 동일시가 결국에는 (공격적 특성을 갖는) 자본주의 발전의 행위합리성을 깊이 내면화하는 것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한 논문에서, 한국 사람들이 돈벌이 원칙에 전념하게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원초적인 가난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를 인정하면서도 내가 보기에는, 극단적인 물질적 가난 그 자체에 대한 경험보다는 주체적인 패배감이라고 하는 것이 (자본주의) 중독사회를 건설하는데 더 중요한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패배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 매개가 되면 훨씬 더 강하게 재생산된다. 특히 물질적인 성공과 사회적인 지위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면 될수록 가난은 그 자체로 좌절감을 뜻하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더 강력하게 재생산된다. 바로 이것이 한국에서 경제개발의 후기 단계, 즉 임금의 지속적인 증가가 노동자의 큰 부분에게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수용될 무렵에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1987년 이후 지속적 임금 인상에 대한 대가로 노동자들의 기업에 대한 충성심은 갈수록 쉽게 “거래”되었다. 물론 이것은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소비사회 속으로 더 깊숙이 편입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해방 이후 한국사를 설명함에 있어 내적인 동일시 개념은 우선 직접적인 당사자 세대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부모나 조부모 세대의 문제가 자식이나 손자 세대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앞에서 이미 이론적으로 도출되는 바와 같이, 이 후손들이 태어나고 사회화되는 과정이 어떠한가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우선 기본적으로 아버지들이 매일 14시간에서 16시간을 가족과 떨어져서 보내야 하는 것이 한 특징이다(김은영 1997). 어머니는 대개 가정과 밖에서 이중고를 감당하면서 과부하에 걸려있다. 그 결과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기들이 살아온 것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강렬히 희망하고, 그래서 (무한) 경쟁 과정에 적절히 대비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다. 즉 인내력, 끈기 등을 기르도록 독려하며, 취직을 위한 학교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우리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으니 너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매우 어린 시절부터 자기의 의지대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구를 위해서 또는 다른 그 무엇을 위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아와의 분리가 일어나게 된다. 결국에는 아이들이 성과지향적인 인간으로 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자아에 대한 느낌(자아 발견)의 결핍에 근거하고 있다. “도대체 내 욕구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에게 좋은 것을 다른 사람들이 결정해야 한다.” 또한 “내가 좋은 성과를 내야지만 나는 사랑 받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보편적 정서로 된다.
바로 이런 경우를 조한혜정은 다음과 같이 예시한다. “한국의 교육 제도는 국가가 가족에 개입하는 정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교육 제도가 대학 입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국민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된다. 그래서 학교는 아이들을 급속한 수출지향적 경제성장에 필요한 존재로 길러내는 도구가 되었다. 바로 이 과정에서 가족은 더 이상 보살핌과 사랑의 공간이 아니라 대학 입시라는 전쟁터를 위한 훈련소로 전락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자식과의 관계도 마치 감독과 선수의 관계처럼 되어버렸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어머니들도 아이들을 도구화하는 데 결사적으로 동참하였다. 여기서 아이들은 자신의 “이윤구조”를 확보하기 위해 싸울 뿐만 아니라 가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결사적으로 싸우는 “투사”가 되어야 했다”(조한혜정 1998). 이것은 앞서 인용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깊은 상흔으로 작용한다”(Schmidbauer 1998:288 이하)는 것에 대한 생생한 사례인 동시에 자본이 하나의 중독 체계라는 나의 가설도 지지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가보자. “아이들이 경제 전쟁에서 “투사”가 되고자 단호히 결심한 것에 대한 대가로 이들은 부모가 벌어 저축한 돈의 소비자29)가 될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동시에 소비자로서 아이들은 역으로 부모들의 능력을 간접으로 평가하는 눈을 기르게 된다. 부모들 또한 아이들의 과외비나 여타 물질적 욕구 충족을 위해 얼마나 해줄 수 있는가에 따라 스스로를 평가하게 된다”(조한혜정 1998).
바로 이것이야말로 자아로부터의 분열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한 훌륭한 사례이다. 사람들은 “올바른” 삶에 대한 기준을 결코 자아 속에서 찾지 못하게 된다. 자아를 통해야만 보다 큰 전체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그 기준은 “사회”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들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가? 라는 데서 나오게 된다.
나아가 이런 행위 방식들이 세대를 통해 전승됨으로서 여러 다른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이것들이 일종의 중독 사회를 표시하는 징후라고 해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예컨대 반공주의 히스테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더 이상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한 노동자들이 생산과정 속에서 “자기” 회사를 위해 보여왔던 “자기희생”적인 노동자세는, 최근의 경제위기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일상적인 피해의식이 오늘날에 와서 보다 강화되었다. 이러한 피해 의식의 한 예는 사적 대화나 공개 토론에서 자주 나오는, ‘한국은 결코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적이 없으며 수없이 계속해서 외적의 침략만 받아온 희생자’라는 주장 속에 나타난다. 이런 식의 주장을 통해 한국의 민족주의는 거의 항상 일본이나 독일의 민족주의와는 달리 해로운 것이 아니라고 정당화되어 왔다. 예상치 못하게 다가온 현재의 위기는, 조한혜정(1998)이 관찰하듯이, 한국 사회를 한편으로는 방향성 상실, 다른 편으로는 “나라를 구하기 위한 단호한 결의” 속으로 몰아갔다. 이것도 사실은 매우 공격적인 잠재력이 표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앞에서 내가 모든 약자에 대한 증오심 문제와 관련해서 언급한, 내부를 향한 공격성은 경쟁이 객관적으로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그만큼 더욱 강해진다. 특히 “왕따”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배타적 행위들이 어린이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별나게 급증한다.30)
여전히 유효한 (공격자와의) 동일시가 낳은 비극적 결과는 개인이나 사회가 1997년 말 경제 위기 이후 특히 정리해고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를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개별 인간들, 특히 한 가정의 아버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노동 속에서, 아니면 죽도록 일만 해주는 기업 내의 자기 일자리 속에서 찾는 경우, 일자리 상실이란 바로 자기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일자리 상실은, 초기 실업자(아직 가진 재산이 있기에 예전 생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한 실태조사가 말해주듯, 정리 해고로 인한 소득의 상실보다 더욱 강한 영향을 끼쳤다.
경제 위기 이후에 매스컴의 시선은 무엇보다도 “가정의 해체”에 맞춰졌다. 수많은 가정에서는 한편으로 정서적 유대관계의 상실을, 다른 편으로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최근 이혼의 증가 현상은 차라리 여태껏 (훌륭한 경제적) “자원”으로 기능하던 가정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다는 현실, 그래서 더 이상 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냉엄한 현실을 뒤늦게나마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앞에서 분명하게 되었듯이 바로 그 중독의 잠재력을 대물림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역기능적인 가정이다.
특히 이것은 여러 사회적 투쟁들, 특히 대량 해고에 대한 반대 투쟁에서 나타난 사면초가 현상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된다. 한편으로 노동자 투쟁이 가지는 체제순응적인 내용, 다른 편으로 그 불굴의 무조건적31) 투쟁 형식 사이에 드러나는 모순은 당사자들이 갖게 되는 분노와 두려움 사이의 모순 속에서 가장 잘 설명된다. 이것이야말로 시스템의 절대 명령을 표현하는 것인데, 그것은 시스템의 자기 모순을 내면화하는 것을 암시한다.
이 정도에서 내 논의들은 한 단락을 맺게 된다. 즉 “위기” 국면의 가장 큰 당사자들(노동자들)이 보이는 대응 양식에서조차 사회의 실제적인 위기 징후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위기”가 가진 교활한 측면은 그것이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들에게조차 공동의 위기관리자로 참여하기를 요청한다는 점이다. 바로 그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투쟁하는 데도, 아니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본의 계획을 실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9. 맺음말
여기서 내가 “공격자와의 동일시”가 가지는 영향들에 관해 말한 것은 이른바 이상형적인 묘사에 불과하다. 실제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자아 의식이 완전히 해체되는 경우란 거의 없다. 실제 현실은 이상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 생활에서는 나날이 새로운, 그러나 스스로 소외된 현실이, 아직도 건재하는 일부의 자아 의식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같이 보인다.
자본주의 중독 체계는 결코 한국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서두에서 나는 분명히 유럽의 경우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생각들을 현재 한국의 위기 상황과 관련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중독 사회의 몇 가지 징후들이 한국의 경우에 특별히 전형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그 이유는, 효율적인 자본주의 경제 개발을 위해 필요한 주체적 조건들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매우 잔인한 방식들이 쓰여졌다는 점, 그리고 그 뒤 사람들이 그 시스템을 위해 전례 없는 자기 희생을 기꺼이 치르고 있다는 점 등에 있다.
한국 사회 전반에 IMF가 강제한 신자유주의 전략의 결과로 초래된 탈연대화와 이로 인한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는, 이미 (사회적으로) 탈진된 상태에서 또 다시 사회의 자기 착취 노력이 시도된다 하더라도 과연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따라서 바로 이 사회적 자기 착취의 종식 이외는 결코 다른 대안이 없다.
자기 착취라는 이 개념은 내가 숙고 끝에 선택한 것인데, 물론 나는 이것이 오해32)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내가 원래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 같은 것이다. 즉 사람들이 그에게 “운명”으로 보이는 것들을 단지 수동적으로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 운명의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이러한 자기 운명을 적극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들이 운명의 재생산 행위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이러한 주장을 “이상주의적”이라거나 “유토피아적”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그것이 정당한 문제제기가 아니라고 본다.
원칙적으로 나는 이런 식의 “문제제기”를 우리들의 방어 행위를 표현하는 것이라 본다. 이 자기 방어 행위는 앞에서 설명한대로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두려움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기 방어를 더 이상 그만 두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 제기는 일종의 ‘자기만족적인 예언’으로 머물고 말 것이다. 두려움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임을 고려할 때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중독 체계에 대한 면역 반응이라고까지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추상적 확신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즉 이러한 “원칙적인” 행위 수준 이외에도 구체적인 수준이 있는데 그것은 두려움에 대해 과연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발걸음의 문제이다. 앞서 보았듯이 두려움의 재생산은 분열과 배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결정적인 실천은 그러한 분열과 배제의 게임을 더 이상 함께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도덕주의적인 요청이 아니다. 연대 행위의 체험적인 결과는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실제로 그리고 근거 있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연대 행위를 통해서 각종 사회 운동은 착취의 결과물에 대한 분배 투쟁의 차원을 비로소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를 통해 새로운 사기를 충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아의 치유를 나타내는 것이며, (우울한 형태든 광적인 형태든) 온갖 피해 의식의 극복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 잃어버린 영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Quellen und Weiterfurende Literatur:
Beasly, W. G. (1987): Japanese Imperialism 1894 - 1945.
Brecht, Bertolt (1934/1968): Rede an daische Arbeiterschauspieler. In: Derselbe: Schriften zum Theater. Frankfurt am Main.
Cho, Hae-Joang (1998): The Formation of Subjectivity within uneven Development.
Manuscript. Yeonsei University. Seoul.
Cumings, Burce (1984):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the Northeast Asian Poli-
tical Economy: Industrial Sectors, Product Cycles and Political Consequences. In: International Organization. Vol. 38. pp. 1 - 40
Cumings, Burce (1997): Korea’s Place in the Sun. New York and London.
Doner, Klaus (1998): T?liches Mitleid. Zur Frage der Unetr?lichkeit des Lebens oder: die soziale Frage: Entstehung, Medizinierung, NS-Endl?ung. G?ersloh.
Elias, Norbert (1976): Uer den Prozess der Zivilisation. Soziogenetische und psychogenetische Untersuchungen. 2 Bde. Frankfurt am Main.
Erison, Erik Ho. (1963/1973): Kindheit und Gesellschaft (Childhood and Society. New York). Stuttgart.
Ferenczi, Sador (1933): Sprachverwirrung zwischen dem Erwachsenen und dem Kind. Die Sprache der Z?tlichkeit und der Leidenschaft. In: Schriften zur Psychoanalyse. Vol. 2.
Ferenczi, S?dor (1985): Ohne Sympathie keine Heilung. Das medizinische Tagebuch. Frankfurt am Main.
Freud, Anna (1936/1980): Das Ich und die Abwehrmechanismen. In: Die Schriften der Anna Freud. Vol. 1. M?chen.
Giddens, Anthony (1984/1988): Die Konstitution der Gesellschaft. Grundzue einer Theorie der Strukturierung (The Constitution of Society. Cambridge). Frankfurt am Main/New York.
Gorz,Andre(1991):VonderDiktaturdesPlanszurentmudigten Konsumgesellsc-
haft. In: Derselbe: Und jetzt wohin? Die Zukunft der Linken. Berlin.
Gruen, Arno (1998): Reductionistic Biological Thinking and the Denial of Experience and Pain in Developmental Theory. In: Journal of Humanistic Psychology. Vol. 38. No. 2. Spring 1998.
Gruen, Arno (1994): Anpassung als Suchtl. In: Buchheim, P. et al. (Hg.): Lindauer Texte 1993. Berlin.
Gruen, Arno (1987): Der Wahnsinn der Normalitat. Realismus als Krankheit: Eine grundlegende Theorie der menschlichen Destruktivita. M?chen.
Gruen, Arno (1986): Der Verrat am Selbst. Die Angst vor der Autonomie bei Mann und Frau. M?chen.
Hartmann, Detlef (1981): Die Alternative. Leben als Sabotage. Zur Krise der technologischen Gewalt. T?ingen.
Hattori, Tamio /Sat, Yukihito (1997): A Comparative Study of Development Mechanism in Korean and Taiwan: Introductory Analysis. In: The Development Economies. XXXV-4. Dec. 1997. S. 341-357.
Heide, Holger (1999): Gedanken uer Solidaritat. In: Lee/Heide/Hajek/Gerster: Gedanken uer Menschenrechte und Solidaritat. Arbeitspapiere zur sozialokonomischen Ostasienforschung. Nr. 7. SEARI. Universitat Bremen.
Heide, Holger (1998): Die Erzeugung individueller und kollektiver Uerlebensstrategie-
n als Voraussetzung kapitalistischer Entwicklung. Das Beispiel S?korea. In: Arbeitspapiere zur sozialokonomischen Handlungsforschung. Nr. 4. SEARI. Universit? Bremen.
Heide, Holger (1998): The Crises-Spurred Transition to a New Mode of Accumulation. Arbeitspapiere zur sozialokonomischen Ost-Asien-Forschung. No. 5. SEARI. Universitat Bremen.
Heide, Holger (1996): Paradigmenwechsel: Machbarkeit - Machtlosigkeit - Selbsthilfe. Bremer Diskussionspapiere zur Institutionellen Okonomie und Sozialoonomie. Universit? Bremen.
Heide, Holger (1993): Chaboneui cheonryok byeonsuroeul minjok (Nation als strategischer Parameter des Kapitals, koreanisch). In: Iron. 6/1993. Seoul.
Henderson, Gregory A. (1968): 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 Cambridge.
Herman, Judith Lewis (1992/1993): Die Narben der Gewalt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M?chen.
Hirsch, Matthias (1986): Zwei Arten der Identifikation mit dem Aggressornach Ferenczi und Anna Freud. In: Praxis Kinderpsychologie und Kinderpsychiatrie. Vol. 45.
Hobbes, Thomas (1661): Leviathan, or the Matter from,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 London.
Hwang, Ki-Don (1996): Okonomische Entwicklung und Lebenswirklichkeit von Arbeiterfamilien in Sudkorea. hamburg.
Hwang, Sun-Gil (1998): Das Wildgansemodell fur Ost-Asien. Arbeitspapiere zur sozialokonomischen Ost-Asien-Forschung. Nr. 3. SEARI. Universitat Bremen.
Kang, Su-Dol (1995): Fordismus und Hyundaismus, Rationalisierung und Wandel der Automobilindusrie in der BRD und in Sudkorea. Saarbrucken.
Kim, Dong-Choon (1995): Hanguk nodong gyegeub yeongu (Studie uber die Arbeiterklasse in Korea). Seoul.
Kim, Eun-Young (1997): Wandel der Intimitat und Manner in der koreanischen Familie. Vortrag auf der deutsch-koreanischen Soziologenkonferenz ‘‘Globalisierung und kulturelle Identitat’’. 26. - 28. Mai 1997. Seoul. Manuskript.
Lee, Chung H. (1995): The Economic ransformation of South Korea. Lessons for the Transition Economies. OECD. Paris.
Lee, Eun-Jung (1997): Konfuzianismus und Kapitalismus. Munster.
Leftwich, Adrian (1995): Bring Politics Back In: Towards a Model of the Development State. In: The Journal of Developmental Studies. Vol. 31. No. 3. London.
Locke, John (1689): A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Cambridge.
Macpherson, C.B. (1962/1967): Die politische Theorie des Besitzindividualismus Von Hobbes bis Locke (The Political Theory of Possessive Individualism Hobbes to Locke. Oxford). Frankfurt am Main.
Marx, Karl (1858/1978):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 (Robentwurf). MEW 42. Berlin.
Marx, Karl (1863/1969): Resultate des unmittelbaren Produktionsprozesses. Frankfurt.
Marx, Karl (1867/1973):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 Bd. 1. MEW 23. Berlin.
Postman, Neil (1993): Wir informieren uns noch zu Tode. Interview in: Handelsblatt/Karriere v. 24.09.93.
Schaef, Anne Wilson (1998): Living in Process. New York.
Schaef, Anne Wilson (1986): Co-Abhangigkeit. Die Sucht hinter der Sucht (Co-Dependence, Missunderstood, Misstreated). Munchen.
Schaef, Anne Wilson, and Fassel, Diane (1988/1994): Suchtsystem Arbeitsplatz (The Addictive Organization. San Francisco). Muunchen.
Scherhorn, Gerhard (1996): Der innere Zwang zum Wirtschafswachstum. In: Biervert, Bernd et al. (Hg.): Die Dynamik des Geldes. Frankfurt am Main und New York.
Scherhorn, Gerhard (1991): Autonomie und Empathie. Die Bedeutung der Freiheit fur das verantwortliche Handeln: Zur Entwicklung eines neuen M- enschenbildes. In: Biervert, Bernd et al. (Hg.): Das Menschenbild in der okonomischen Theorie. Frankfurt am Main und New York.
Schmidbauer, Wolfgang (1998): ‘ch wusste nie, was mit Vater ist’. Das Trauma des Krieges. Reinbek.
Smith, Adam (1776):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London.
Smith, Adam (1759):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London.
Song, Du-Yul (1990): Metamorphosen der Moderne : Betrachtungen eines Grenzgangers zwischen Asien und Europa. Munster.
Sullivan, Harry Stack (1955): The Interpersonal Theory of Psychiatry. London.
Taeni, Rainer (1976): Das Angst-Tabu und die Befreiung, Ich-Selbst - Abwehr oder Liebe, Gesellschaft - Kerker oder Heimat. Hamburg.
Thompson, Edward P. (1967): Time, Work-Discipline, and Industrial Capitalism. In: Past and Present. 38. P. 56-97.
Thompson, Edward P. (1968/1987): Die Enstehung der englischen Arbeiterklasse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Frankfurt am Main.
Ure, Andrew (1835): Das Fabrikwesen in wissenschaftlicher, moralischer und commercieller Hinsicht (The Philosophy of Manufactures, or an Exposition of the Scientific, Moral and Commercial Economy of the Factory System of Great Britain. London). Leipzig.
자본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시키게 되는 체제순응적 주체에 대해 말하면서 이것이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것은 일반적인 얘기다. 1945년 이후 본원적 축적에서의 폭력이 엄청난 주체적 패배감을 안겨주고 그러다보니 한국사람들의 내면에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행위패턴이 나타나고, 1980년대 후반에 투쟁이 있었지만 저항하면서도 순응하는 그런 태도가 나타났는데, 이것을 특수성으로 말하고 있는 것인가?
본래 자본주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이고, 자본주의가 영국에서 시작되고 기능하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죽고 농민이 땅에서 축출되는 과정이 있었다. 이것은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과거 노동자들의 자본에 대한 투쟁이 존재했었는데 현재 그러한 근본적인 투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즉 객관적 조건은 주어져 있는데 왜 투쟁하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그것은 독일의 경우 파시즘의 경험이 정신적 충격으로 남아있다는 데에서, 한국에서는 김동춘의 논문에서 잃어버린 혁명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1970년대에 태어나서 자란, 다소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으로 자란 노동자들도 두려움이나 폭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외부적인 폭력이 있고 중독이 생기고 준비성이 생긴다는 식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중독이란 것은 하나의 사회화 과정이고 역사적 과정이다. 그러니까 그 역사적 과정이라는 것은 나라마다 동질화된 과정 역시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 노동운동을 볼 때에도 2차 대전 이후 큰 충격은 없었는데,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독일 노동운동이 높은 조직력과 투쟁력을 가지고도 파시즘에 패배했고 그러한 역사적 과정을 부모들이 내면화하고 있고 그것이 후세대로 이전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유치원에 가게 되는데 유치원 교사들 역시 그러한 경험을 내면화하고 있다. 이러한 재생산이 모두 같은 식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다른 형태로 전통이 이전된다. 어쨌든 이러한 것들이 부모들과는 달리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독일 노동운동은 결국 자본주의 운행방식에 포섭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맑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를 말할 때, 그것은 주체가 형성되는 것이고 주체가 되는 것은 곧 지배 이데올로기에 포섭되는 것이다. 알뛰세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의 가족과 학교를 말하고 있는데, 이런 개념과 중독 개념의 사용의 차이는 어디 있는가? 또한 실천적 측면으로서 심리적인 설명방식은 개인적인 데 치우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중독성이 재생산되고 강해지는 것은 제도를 통해서인데, 중독이 나타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결국 그것은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중독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뛰세 식의 구조라는 것은 그 구조를 만들고 있는 개인들이 그것을 재생산할 때만 구조이고, 곧 시스템이며 그 밑에 국가, 가족, 학교가 있는데 그것들이 기능하지 않으면 구조가 재생산될 수 없다. 나는 구조와 개인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행위가 어떤 차원이냐를 말하는 것이지 구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으로 중독이란 개념을 자본 개념에 연결시킨 것이다.
그러면 정상으로 가면 문제가 없다는 것인지, 프로이드의 경우 외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하는데 그것은 사회적인 것을 배제한 설명이다. 또한 한국적 특수성을 말하면서 중독이란 개념을 사용할 때 일반성과 특수성의 문제 역시 존재한다.
나의 부모는 좌파노동자였으며 그래서 나는 그런 식으로 사회화되었다. 맑스와 노동운동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으며, 학생운동과 정치운동을 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맑스주의 자체, 또 정치경제학이란 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노동중독증 비슷한 병을 앓았었는데 거기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노동중독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중독문제는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사회적인 것이며 정치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실업은 무엇으로 봐야 하는지, 중독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인지?
실업의 문제는 중독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정치경제학적인 범주인데, 실업은 대량실업의 경우 먼저 노동자 의식에 영향을 준다. 아직 실업자가 안된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 그것은 잘릴 수 있다는 두려움인데, 그럴 경우 이 사람은 실업자와의 연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써놓았지만 어떻게 두려움 때문에 하는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산당 선언에 보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분열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실업자들과 노동자들의 분열을 극복하는 것, 거기서 혁명으로 가는 첫 발자국을 찾을 수 있다.
구조와 행위를 매개하는 문제는 사회과학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전적인 문제인데, 두 개의 차원을 두려움을 통해서 매개하고자 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환상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라고 보여진다. 특히 사람들이 어떻게 작동방식에 걸맞게 되느냐 하는 문제제기는 그람시의 문제의식, 즉 동일한 토대 조건에서 어떻게 인간들이 다르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인다. 자세히 보면 두려움이란 범주는 하나의 현상이지 원인은 아니며, 그리고 두려움은 그 자체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보편적인 초역사적 범주를 일원화시킨 것으로 하버마스의 언어를, 그리고 맑스의 노동을 말할 수 있는데, 왜 두려움이라는 범주를 방법적으로 특권화시켜야 하는가? 용기라든지 사랑이라든지 미움이라든지 하는 다른 범주들도 있을 것이고, 특별히 두려움이란 범주를 특권화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이 언어를 특권화시킨 하버마스의 방법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간단히 말하면 하버마스는 어떻게 다른 행위를 만들어내는가에서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나와는 문제제기가 다르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일반적, 보편적 개념인데 그것은 육체적, 정신적 두려움으로 나눌 수 있다. 용기나 사랑의 개념은 이미 두려움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것이 용기나 사랑보다는 근본적인 차원이다. 용기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즉 용기를 가지고 극복할 때 새로운 행위형태가 생겨나는 것이다. 아직도 일자리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 실업자들과 용기를 가지고 연대할 때 그러한 부분이 두려움을 많이 축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체제에 포섭되어 가는 데 있어서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중요한 계기가 된다. 거런데 스피노자는 체제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체제에 대한 희망, 즉 체제에 저항해 들어가는 주체를 형성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둘은 같이 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폭력이 있었지만 희망 없이는 갈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너무 두려움만 주장하는 것은 일방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과 희망은 같이 묶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이란 개념은 무시간적인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패배의 결과 생성되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순응하는 것이냐 아니면 희망을 갖고 용기있게 극복하느냐로 달라질 수 있다. 희망은 현실적인 유토피아를 향한 탈출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려움을 쌍개념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내면화하면서도 자본주의에 저항하게 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동일시도 저항도 모두 두려움으로 설명하는 것인지?
본원적 축적과정은 곧 저항을 분쇄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기계파괴, 차티스트 운동 등은 적극적인 형태의 저항이고, 방랑자가 된다든지 하는 것은 수동적인 형태의 저항인데, 폭력이 너무 커서 저항이 꺾여버리면 그것이 사회적 차원에서 충격이 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두려움이 분석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갇혀서는 안된다는 것이 주요한 주장인데,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일부 정통적인 혁명관도 포함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고 그렇다면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개념은 무엇인가? 투쟁은 왜 패배했는가, 대중은 왜 고양되지 않는가를 설명하는 데 두려움이 일정 측면 유용하지만 좀더 미래지향적이고 대중의 변혁으로의 통합가능성을 말할 때는 적합하지 않은 것 아닌가?
진보적인 시각에서는 모든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짧게는 맑스가 초고에서 쓴 것을 보면, 노동자가 하는 모든 것이 노동자에 대한 지배를 강화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이미 축적된 자본의 일부분이라는 것, 싸울 대상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안에서 모순이 있다는 것은 절대로 통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것은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체제유지에 결부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면화된 것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내면화된 것이고 그것은 외부와의 싸움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내부의 적과 싸우려면 외부의 적과 싸우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금의 투쟁형태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IMF와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맹목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항상 열려있어야 하고 재충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두려움의 원천은 과거에 있다. 부모로부터의 학대 등의 개인적 차원과 노동운동의 패배라는 사회적 차원이 있는데, 시작은 눈을 감지 말고 과거를 되돌아보고 자신의 현실의 인지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상황을 아는 사람을 누가 멈출 수 있는가?(브레히트)”
1) 내 생각에 이 지배적인 패러다임에는 일부 경직된 정통파의 기계론적 혁명관도 포함된다. 여기서 이 문제를 깊이 다루지 않겠지만, 최소한 본문 속에서 그러한 입장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 제3공화국의 첫 대선이 열린 1963년에 박정희는 야당의 분열 덕택에 승리할 수 있었지만 1967년 선거와 1969년 국민투표에서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였다. 마지막으로 1971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에 비해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이은정 1997:78 이하 참고).
3) 일반적으로 본원적 축적은 일제 하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특히 1920년대의 토지조사사업은 그 징표이다. 물론 19세기로까지 거슬러가는 사람도 있다.
4) 이때 말하는 전략이란 결코 단일한 것이 아니다. 1945년 이후 미국 제국주의의 지정학적 이해관계, 현지 권력집단간의 암투(이들은 나중에 신-신-유교주의를 이데올로기로 발전시킴)와 이해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섥혀 있다. 이 측면들은 많은 한국인 및 외국인 연구자들에 의해 더욱 설득력있게 연구되었다.
5) 내가 알기로 이 개념은 강수돌에 의해 처음으로 문헌에 도입되었다(강수돌 1995).
6) S. 마인스는 이에 대한 개념적 논의를 좀 더 발전시키고자 했다(Meins 1999).
7) 송두율이 말한 바와 같이 “또 다른 현대”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기 논의하지 않겠다. 이에 대해서는 볼프(Sine Wolf)의 글(1999)을 참조.
8) 이에 대해 하르트만(Detlef Hartmann)은 “이론은 밥숫가락을 놓는다”(이론은 죽다)라는 멋진 말로 표현했다(Hartmann 1981, p.104).
9) 기든스(Giddens)는 바로 “두려움”을 주제화 하면서 정신분석적 연구와 사회과학적 연구의 결합에 대해 말하고, 에릭슨(Erikson)과 설리반(Sullivan)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10) 맑스는 이와 동일한 의미로 형태규정성이라는 개념도 사용한다.
11) “형태규정은 여기서 경제적 관계, 즉 경제적 범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본질적이다”(Marx, Resultate, p.7).
12) 이 두 가지 측면에 대해 맑스는 “… 생산수단의 특수한 사용가치에 상응하는 고유성을 지닌 노동능력으로서, 또한 활동하는 노동능력, 합목적적으로 외화하는 노동력으로서”라고 썼다(Marx, Resultate, p. 8, 강조 필자)
13) 이에 대해서는 Scherhorn(1996), p. 168 참조
14) 이것은 상품형태, 즉 자신의 노동력 판매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기초가 된다(또한 MacPherson 1973, p. 242 참조).
15) 이에 관한 극명한 역사적 사례에 대해서는 Ure(1835) 참조.
16) 이는 엘리아스(Elias)의 “자기강제(Selbstzwang)”와 상응한다(Elias 1976).
17)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의 논리 자체도 이러한 패러다임에 갇혀있다.
18) 이를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가정과 비교할 것. 이에 관해 셰어호른(1991)의 비판을 볼 것. 인간에 대한 기계론적 관념이 주류경제학 뿐만 아니라 그륀(Gruen 1998)이 비판했듯이 발전심리학에도 일반적이라는 것은 근대과학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증상이다. 따라서 최근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에서는 서로 진실임을 확인이나 해주는 다양한 학과의 기계론적 관념을 더하기만 하는 “학제간”이라는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생동성의 우위를 중시해야 한다.
19) 월남전 참전 미군들의 수많은 상흔 결과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라 성인들의 상흔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이 20년전부터 “상흔후 스트레스 정신질환”이라는 명칭으로 “공식” 인정되었다. 이는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과 통계 매뉴얼’이라는 사전과 국제보건기구의 ‘질병과 건강문제에 관한 국제통계’에 상흔 후유증이 게재되어 공인받게 된 것이다(Schmidbauer 1998, p. 97 참조).
20) 슈미드바우어는 이를 “치료학적 실무를 통해 확증된 우울증 모델”이라며 가설로 도입했다.
21) 이로 인해 나타나는 마구잡이는 원칙적으로는 다시 타인을 겨냥하거나 스스로를 겨냥한다.
22) 이는 말 그대로 “탐식증(貪食症)”이다. 이 증상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포만감을 가지거나 만족하지” 못한다
23) 동반중독에 관한 많은 문헌을 참조할 것. 대표적인 것으로는 안네 윌슨 섀프의 글이 있음(Schaef 1986).
24) 이러한 현상은 “알콜중독자와 다른 중독증을 가진 가족의 성인이 된 아이들”의 문제로 수많이 관찰되고 있다. 이 아이들은 부모와 꼭 같은 심리적 장애를 겪고 있으며, 따라서 중독증에 걸릴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크다.
25) 이제 모든 정보가 우리의 거실에까지 전달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에 “적절하게” 반응을 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정보의 대량화 자체만해도 우리를 기죽게 만든다(Postman 1993 참조).
26) 애초의 규범 체계(이것은 깊은 상처를 주는 사건을 통해 근본적으로 와해된다)와 그 뒤의 불안하고 암담한 상태 사이의 간극은 상흔-후기적인 증상들을 갈수록 강하게 만들어낸다(Schmidbauer 1998, p. 69, 84를 참조).
27) 이 개념은 김동춘(1995)에서 따왔다.
28) 이은정(1997:79)이 말하듯이 경제 개발은 일종의 “국민 철학”으로 되었다.
29) 현대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위해 소비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Gorz(1991:49 이하) 참조.
30) 이와 관련, 조한혜정(1998)은 매우 적절하게도 “두려움의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31) 앞서 말한 이 무차별성, 무조건성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32) 아마도 그것은 맑스가 이 개념을 그 어디에서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