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우자동차 공기업화를 주장한다
1. 침묵하고 있는, 그러나 제기되어야 하는 문제 : 대우 자동차
얼마 전 각종 신문기사 경제면에 ‘9월 수출 153억 달러, 사상 최대치’라는 기사들이 큼지막하게 자리잡았다. IMF 경제위기를 넘어, 다시금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장미빛 환상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잠시 기억을 더듬어 9월 중순을 떠올려보자. 환율은 급등했고, 주가는 폭락했다. 경제위기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고, 심지어 9월 19일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경제불안을 조속히 수습할 것’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걸프전 이래 유래 없는 고유가,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반도체 가격의 하락, 대우자동차와 한보철강에 대한 초국적 자본의 인수포기….
무언가 문제가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누구도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지 않다. 자본진영이 자신의 동학에서 약한 고리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에도, 운동진영은 그에 대한 어떠한 공세는 커녕 제대로된 입장과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포드의 대우자동차 입찰 포기와 관련한 해법에 대해 다루어볼까 한다. 현재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도되고 있는 포드 포기 이후 대앙 방향에 대하여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노력할 것이다. 어쩌면 과도한 주장으로 비칠지도 모르고, 의지만이 넘치는 공허한 넋두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제기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를 가지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싸움도 하지 못한 채 (노골적으로 말하면, 찍소리도 못하고서) 패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서두가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2. 포드의 대우자동차 인수 포기- 결과가 아닌 원인을 보자
지난 9월 15일, 대우 구조조정협의회는 포드가 최종인수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통보해왔다고 밝혔다.1) 이에 따라 대우자동차 인수가격으로 7조원 이상을 써냈던 포드의 입찰을 당연시 하던 대우 구조조정협의회, 채권단, 정부 등은 발걸음이 대단히 바빠졌다. 대우차 매각일정을 산업은행에 위임하는 한편, 진념 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대우 매각 포기로 인한 신인도 하락을 우려,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자금 조달을 위하여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여야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인수 가능 업체에 대한 물밑 교섭도 진행되고 있다.
포드가 대우자동차 인수를 포기한 대표적인 이유는 다음의 몇가지로 밝혀진 바 있다. 첫째, 실사 과정 결과 입찰시 제안했던 69억 달러의 가치가 없다는 판단을 가졌다는 것이다. 둘째, 루마니아와 인도 등 대우차 해외법인들의 막대한 부채와 97년 인수한 쌍용 스포츠 공장의 운영실태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다.2) 그리고 세 번째, 최근 타이어 리콜 관련 포드 스스로의 경영난에 대한 문제도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왜 포드가 포기했는가?”의 문제만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포기 이전에 왜 대우차 인수를 원했는가?”, 그리고 “정부가 대우를 매각하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이었는가?”를 규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대우차’가 가지는 입지에 있다.
초국적 자본은 자신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시장으로서 아시아(특히 중국)를 필요로 하고 있다. 대우의 완성차 조립생산 라인과 쌍용의 조립 라인은 과거 GM과의 합작에서 충분히 그 기능을 수행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에 초국적 자본들이 보기에 중국시장을 위한 생산기지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업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초국적 자본들은 대우가 가지고 있는 해외생산기지, 그 중에서도 동유럽 생산기지(특히 폴란드의 FSO 공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부터 초국적 자본들의 관심은 대우의 내수 점유율이 아니라 대우의 조립생산 능력과 해외 공장들이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정부와 채권단들은 대우의 일괄매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우를 일괄 매각하는 것은, 한편으로 국내 재벌에 대한 구조조정을 수행하는 동시에 해외 초국적 자본이 요구하고 있는 자본개방, 산업개방의 전시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내면에는 대우차 처리에 따른 정치적 부담과 재정적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목적도 자리잡고 있었다.
3. 정부의 대우자동차의 처리 방향 : 일괄 매각이 아닌 분할 매각으로의 급속한 전환
홍콩의 한 시사주간지는 “포드사의 대우차 인수 포기 후 10월20일까지 새 인수 업체를 찾겠다고 선언했으나 약속 불이행시 지연되어 온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이 완전히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 역시 이러한 우려를 감지하고 공적자금 도입을 위한 여야협상을 하는 등 조속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3)
그러나, 신속하게 새로운 인수자를 찾아 나선 정부와 채권단의 앞 길은 대단히 험난하다. 시기적으로 이제 한달 안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촉박함도 있지만, 초국적 자본의 이해와 국내 독점자본(그리고 채권단)의 이해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 지점’을 만들어내고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동차 산업의 세계 네트워크로의 편입이라는 기존의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현대의 독점화 우려에 대한 금융감독위원회의 지적이 기존의 정책 유지를 선언한 것이었다면,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대우 인수 포기 선언은 GM-피아트 콘소시움에 헐값으로 매각하라는 초국적 자본의 시위였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정부와 채권단은 일괄 매각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아 나섰다. 9월 15일 이후 조심스럽지만, 대우자동차 처리 방법에 대해 많은 입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분할 매각 주장, 한국 중견기업연합회의 범국민적 주식참여운동 제안, 노동자들의 공기업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정부와 채권단은 법인별 분할매각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이 보인다. 포드가 인수를 포기하기 이전, 분할 매각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정부와 채권단이었음에도, 현재적으로 가장 “고속으로”, 그리고 “고비용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9월 22일, 채권금융기관은 최근 대우 구조조정협의회 운영위원회를 갖고 매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일괄매각 대신 각 법인별로 주채권은행이 매각을 전담키로 잠정 합의한 바 있다. 또한 대우차의 해외부문에 대해서는 현대차가, 쌍용차에 대해서는 다임러가, 승용차 부문은 GM이 각각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그 현실화 가능성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프랑스 르노나 현대산업개발에 의한 위탁경영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할매각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몇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째, 법인간의 자산과 부채의 분담 문제이다. 일괄 매각의 경우, 부채 역시 일괄적으로 처리되기에 큰 고민없이 이른바 넘겨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분할매각이 진행된다면, 채권 금융기관 및 법인별 부채 분담의 문제는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다. 금융기관이 대우자동차의 부실을 고스란히 떠안고, 국민들이 그 부담을 져야하는 상황까지 우려된다.
둘째, 자금 조성에 있어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진념 재경부 장관은 공적자금 추가조성분 40조원 중 7조원은 대우 부실에 관련하여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적 자금은 어떤 형식으로 하던 고스란히 국민의 주머니에서 충당될 수밖에 없으며, 당연히 그 고통은 또 민중에게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추가 발견 부채는 이월되지 않는다는 산업은행장의 발언이나, 분할매각이 지연됨에 따라 발생하는 부채의 이자 증가분까지 공적자금을 메울 경우 국민의 부담은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가될 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문제로, 노동의 분할 매각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구조조정, 명확히 말해 고용인원 축소가 바로 발생할 것이다. “조속한 해결”과 “구조조정의 정당성”이라는 허울뿐인 면죄부를 가지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숨통을 끊어놓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더군다나 분할매각 과정에서 매각되지 않는 부문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의 경우, 대단히 폭력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물론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전술한 문제들은 과속하여 주행하는 차량들의 바퀴에 닿는 사소한 돌멩이들에 불과하다.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 노동자들의 생명은, 그리고 권리는 몇 푼의 돈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4. 노동자들은 대우자동차 공기업화 요구를 강화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노동자들은 다시 대우자동차 처리에서 공기업화를 요구해야 한다. 지금 공기업화 요구는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사회적 부와 가치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적 요구이며, 노동자의 생존권과 고용을 보장받기 위한 경제적인 요구이다. 노동자들이 공기업화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동차 산업은 정부와 자본 마음대로 처리해도 되는 ‘그들의 소유’가 아니다. 김대중 정부는 세계화니 신자유주의니 하면서 사실 국내 산업기반 상당 부분을 해외 초국적 자본의 수중으로 넘겼다. 자동차 산업 역시 알게 모르게 해외 초국적 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 심지어 현대자동차마저 다임러 클라이슬러에게 10%의 지분을 넘겨주었다.(전주공장의 경우 50 : 50의 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우자동차를 해외에 매각한다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해외 초국적 자본의 생산기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차 산업이 거의 전 산업부문을 연결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초국적 자본이 자동차 산업의 주요한 기반을 송두리째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자동차 산업이 해외 초국적 자본에게 넘어간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가 피와 땀으로 만들어낸 사회적 부가 국내독점자본이 아닌 해외 초국적 자본으로 넘어간다는 걸 의미하고,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싸워야 할 상대가 바뀌는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방치할 경우,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수용한다는 걸 의미하게 된다. 즉 국가의 기간 산업 처리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와 자본이며, 노동자들은 그 과정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 만족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도 노동운동의 일부에서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낸 기업, 특히 그것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는 기업의 경우 당연히 노동자의 소유, 국민과 국가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 노동자들이 대우자동차 처리를 단지 주인이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경우, 그것은 다른 측면에서 기업과 공장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둘째, 대우자동차는 부도 직전에 몰린 상태에서 그동안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여한 기업이다. 이것도 모자라 정부는 새롭게 4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하여 대우와 관련 금융기관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발표대로 된다면 국민 한 사람이 부담해야 할 몫은 120만원이나 된다. 이렇게 국민의 돈을 때려 붙은 기업의 처리를 외국자본에게 맡긴다? 그것도 얼마나 받을지 모르면서, 노골적으로 돈을 깎아달라고 얘기하는 초국적 자본에게? 제일은행의 경우 수조원을 투입하고서 받은 돈을 몇천억원에 불과하다. 삼성자동차는 아예 공짜로 거저 준거나 진배없었다. 공적자금 투입 자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처리는 국민의 뜻, 노동자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 또한 당연한 주장이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에 대한 국민적 개입과 참여는 노동운동이 또 하나의 영역을 개척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세금이나 기타 등등에 대해서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은 무심했고 그것을 투쟁의 영역으로 인입하지 못했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문제이다. 공기업화 요구는 정부의 국가 경영 자체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하겠다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셋째, 대우자동차의 공기업화야말로 노동자들에게 생존권과 고용보장이라는 노동자의 기본적 요구를 보장해줄 수 있다. 포드가 실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대우를 생산기지로 할 것이라는 말을 흘렸다. 우리는 이같은 작태가 단지 포드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어차피 사적자본들은 오로지 이윤만을 쫓는 불나방들이지 않은가! 그런 그들이 당장 눈앞의 저항을 피하기 위해 ‘고용보장’을 약속할 지 모르지만 그것은 너무나 빨리 들통날 거짓말에 불과하다. 노동자를 자르고, 갈라치는 와중에서 몇 푼의 임금을 올려주는 건, 남아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좋을 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노동자들이 현업을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일을 하면서 적정한 임금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대우자동차를 공기업화하고 노동자들이 기업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길밖에 없다. BMW의 로버 자동차 매각에 맞서 영국의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것처럼 뻔하게 닥칠 미래를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순간의 모면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정권과 자본은 물론이고 노동운동 진영 내부에서조차 대우자동차 공기업화 요구는 그리 환영받고 있는 못하는 것 같다. 요구를 적은 종이에 넣어놓고 있지만 그에 대한 확신이나 정확한 상을 가지고 일반 노동자들과 민중들을 설득하지는 못하고 있다.4)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략 다음의 몇가지가 아닐까 한다. 첫째, 정부와 자본에서 공기업을 민영화하려고 하고 있는 마당에 대우자동차를 공기업화하자는 주장은 정부와 자본의 논리에 비해 현실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공기업의 비효율성, 공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사회 여론이 한몫을 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대우자동차는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즉. 채권단 전체와 정부가 어우러져 조직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기업을 가동하고 있는 상황, 다시 말해 공기업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공공연맹을 중심으로 하는 공기업 노조들이 ‘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다. 공공연맹은 한국노총 산하 노조들에게도 민영화 저지 투쟁을 하자고 제안한 상태이며(10월 8일에 공동집회가 열린다.), 한국노총은 공기업을 비롯한 구조조정을 하반기에 강행할 경우 12월에 총파업을 감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 노동자가 투쟁하고 있다는 건 노동자들이 공기업 민영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자각과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 기간산업이나 주요 공익사업을 공기업화하자는 요구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이다.
둘째, 대우자동차의 생존 가능성이 없다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다.5) 사실 이 주장이 대중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망한 기업 대우를 다시 살려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제대로 가동되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냐는 항변은 분명 이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곧장 공기업화는 안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대우차 공기업화의 가능성 여부, 공기업화를 통한 회생여부, 공기업화에 따른 경제적 영향 등에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정작 대우자동차 처리에서 중요한 것은 ‘정책결정에 작동하는 의지’의 문제라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대우자동차는 매각하는 것보다 공기업화하는 것이 더 낫는 점을 계량적 수치로 주장하는 것이 필요하다6) 할지라도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국가 기간 산업을 초국적 자본의 손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가, 아니면 1국가 완전 독점 체제로 할 것인가라는 그 두가지 지점 속에서만 자신의 정책을 결정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정책의지’가 바뀐다면 대우자동차 처리에서 공기업화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대우자동차 처리 방법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국내외 독점자본)간의 힘 겨루기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통한 자동차 산업의 재편이냐 그것이 아닌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것이냐를 놓고 벌이는 정치적 대립이다.
5. 대우자동차 공기업화를 관철하기 위한 몇가지 조건: 의사 파업에서 배우자
공기업화를 달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결정적 관건이 ‘정부의 정책 결정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현재 국면은 공기업화를 주장하고 이를 달성하기 매우 좋은 호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와 재벌의 혁신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기치에 따라 해외 초국적 자본에게 매각하는 것을 옹호하면서도 국내 금융시장의 안정과 공적자금의 최대한 회수를 바라는 현실 자본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특히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하고 다임러 클라이슬러와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서 자기 수준에서 신자유주의를 실현하는 현대자동차 자본의 요구 또한 전적으로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태이다. 이 점에서 국내 독점자본과 해외 초국적 자본의 의견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독점자본과 그 주변 세력들은 대우자동차 처리에서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해서 ‘제값받기’를 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본 진영에서도 공기업화 이야기가 간혹 흘러나오고 있다.
게다가 지금 김대중 정부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위축된 상태이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어마어마한 내용을 가지고서도 4․13 총선에서 패배하였으며 이후 통일 정국에서 주도권을 발휘하면서도 국가 내부적으로는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경제위기를 벗어났다며 ‘경제 상승 지표’ 위에서 자신의 실적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오히려 독점자본들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았고, 의사들의 파업은 김대정 정부의 정국 장악력에 결정적으로 악영향을 끼쳤다. 한나라당은 이를 적극 활용하면서 정국에 대한 주도권을 발휘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노동자들이 밀어부친다면 정부의 정책 결정의지를 상당부분 흔들 수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은 노동자의 힘과 노력 여하에 따라 대우자동차 처리 과정이 상당히 유동적일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시 말해 결국 노동자들이 내부의 상황과 조건을 극복하고 공기업화 요구를 당당하게 내걸고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느냐가 주요한 관건이 되고 있는 국면이다. 노동자들은 이 국면을 활용하여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의사들의 투쟁에서 몇가지 배워야 한다.
첫째, 강력한 동원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단위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지역, 전국 차원의 동원력이 필요하다. 의사협회에서 휴업의 지침을 내렸을 때, 이것은 자발적 동참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의사협회는 장기간의 투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동네 병원에서부터 수련의, 전공의, 대학교수 등 다양한 조건에 있는 회원들을 동원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다. 여기에 각 해당 주체들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있게 투쟁에 결합하느냐가 투쟁의 성패를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 동원이 이처럼 강력하게 오랫동안 가능했다는 것은 해당 주체들이 의사협회의 주장을 절실한 자기 문제로 느끼고 받아들였으며, 지도부의 요구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므로 대우자동차 공기업화 투쟁은 조합원 대중들이 공기업화 요구를 절실한 자기 문제로 느끼도록, 자기 요구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공기업화를 스스로 주장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투쟁은 기술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둘째, 강력한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 의사들의 투쟁을 보면 의쟁투와 의사협회, 전공의 등 다양한 주체들이 있었고, 내부의 의견차이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스스로 세운 지도력을 슬기롭게 지켜내면서 투쟁의 구심을 만들었다. 의사들은 각각의 세력들간에 내부적인 조정을 거치면서 전체 의사들이 동의할 수 있는 지도력을 만들었다. 노동운동진영은 의사협회보다 더 많은 흐름과 세력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투쟁의 구심, 지도력은 분명하게 세워져야 한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현재 세워진 지도력을 부정하거나 훼손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어떤 지도력도 용인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사 파업 투쟁이 성공한 세 번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의사협회는 주요한 고비 때마다 정부가 던지는 협상의 미끼를 덥썩 물고서 그 안에서 이런저런 떡고물을 얻어내는데 안주하지 않았다. 1차 파업 투쟁 당시 지도부가 약사법 개정이라는 떡고물을 덥썩 물고서 파업을 끝냈지만, 의사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이해를 전적으로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서 곧바로 투쟁에 나섰다. 즉, 지도력이 지도력으로 자기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체 회원들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서 정부의 자그마한 양보에 만족하지 않고 기본적인 요구를 중심으로 든든히 버텨주었다는 점이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온건파도 있고 강경파도 있을 것이며, 당장 협상을 하자는 주장과 무조건 때려 박자는 주장이 난무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내부의 주장과 이견들을 ‘전체의 요구 관철’이라는 요지부동의 자세를 가지고 지도력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끝까지 가져가지 못한다면 투쟁의 결과는 하지 않으니만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 진행 중인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의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당선되는 후보가 지난 해외매각 반대 투쟁 과정에서 어떻게 행동했고, 지금 대우자동차 해외매각과 관련하여 어떤 공약을 내걸고 있는 지에 따라 공기업화 요구 투쟁은 결정적인 변수를 맞을 수밖에 없다. 물론 어떤 길을 가야하고, 어떤 지도부를 세워야 할 지는 전적으로 조합원들이 선택할 문제이며, 그런 점에서 조합원들은 현명한 선택을 할 것으로 본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자동차 공대위 소속 노조와 금속연맹, 민주노총이다. 일단 자동차 공대위은 포드 입찰 포기 후 재빨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하다. 하지만 지난 3말 4초 투쟁에서처럼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과 행동을 멈춘다면 자동차 공대위는 차라리 투쟁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지 않느니만 못할 것이다. 아마도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자동차 노조는 내외의 엄청난 분노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속연맹과 민주노총은 솔직히 말해서 힘이 없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힘이 없기 때문에 뒤로 물러앉아서 관망을 할 것이냐, 남아 있는 지도력의 밑바닥까지 완전히 드러내는 투쟁을 조직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민주노총과 금속연맹, 그리고 자동차 공대위가 지난 3말 4초 투쟁처럼 자기 위주의 투쟁, 투쟁의 수위와 폭을 제한했던 전술에 국한되지 않고 의사들의 투쟁보다 더 완강하고, 더욱 힘차게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1) 대우차 매각 포기에 대해 초국적 자본의 음모론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는 대우 구조협 관계자의 발언이나, 매각 방식에 대해 혼란을 빚고 있는 정부 상황, 그리고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매각 포기 등을 미루어 볼 때, 이는 그다지 근거없는 논리라 판단되며, 따라서 본 글에서 그 주장은 다루지 않았다.
2)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FEER) 최신호는 '포드의 대우차 인수 실패로 금융.기업개혁 늦춰질 듯' 제하의 서울발 기사에서 포드사는 앞서 수 개월간 대우자동차 자산들을 실사한 결과 인수가로 제시된 69억달러의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연합뉴스 인용)
3) 지난 28일,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은 “ 포드가 대우자동차의 인수를 포기한 데 따른 혼란을 수습하는 지름길은 대우차의 신속한 매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4) 금속연맹과 자동차 공대위는 공기업화를 ‘한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국민대책기구 설치’ 정도에 만족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하겠다 (9월 15일 이후 금속통신과 공대위 회의 자료 및 자동차 분과 자료를 참조할 것).
5) 정부나 그 주변의 학자나 관료들은 세계 자동차 산업이 세계화 속에서 대우자동차의 독자적 생존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대우자동차 사무노위의 경우에는 기술력, 생산능력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국제 경쟁에서의 생존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6) 저희 연구팀의 이후 과제로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