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
초점
근로자파견제, 폐지 이외의 다른 대안은 있을 수 없다
김 도 형
이사, 변호사,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
1. 애시당초 태어나서는 안되는 법률
1990년대 중반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경영계를 중심으로 파견근로의 적법화를
요구하였고, 이에 1993년과 1995년 정부 입법으로
‘근로자파견사업의적정한운영및파견근로자보호에관한법률’이
제안된 바 있었다. 그러나 고용불안, 임금의 중간착취,
대체근로에 의한 노동조합운동의 저해 등을 이유로 한 노동계의
강력한 저지로 입법화되지 못하였다. 김영삼 정부가 1997년
연말에 그 유명한 노동법 개악 날치기를 감행함에 있어서도 그
안에 끼워넣을 엄두를 하지 못하였던 근로자파견제도의 합법화는
그러나 IMF 사태를 빌미로 나라를 살리기 위한 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제1기 노사정위원회를 통하여
노․사․정 3자 합의에 의해 정리해고제와 함께
입법화되기에 이르렀다.
노동법이라고는 악법을 만드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발상을 하지
못하는 역대 정권들조차 감히 입법 강행을 못하였던
근로자파견법은 이렇게 노동계의 용인이라는 역사적 아이러니
속에서 탄생하였다. 태어나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고 따라서
노동자들의 저항에 의하여 태어나고자 하는 꿈을 숱하게
접어야만 했던 법을 제정한 주인공은 바로 다름 아닌 노동자의
대표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양대 노총이었던 것이다.
2. 근로자파견법의 문제점
근로자파견법은 위와 같은 경위로 1998년 2월 20일에 제정되어
1998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근로자파견법의 정식 명칭은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다. 법률 명칭이 다소 긴
관계로 ‘파견근로자보호법’이라는 약칭으로 통용되곤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파견근로자와 ‘보호’라는
개념은 양립불가능하다. 파견근로자를 제대로 보호하려면
근로자파견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위 법률을 ‘근로자파견법’으로
약칭하기로 한다.
현행 근로자파견법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게 되는바, 여기서는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선에서 그치기로 하겠다.
1) 노동3권의 유린
근로자파견제는 노동자와 사용자간에 근로계약관계(고용관계)가
직접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본질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사업주는 자신의
지시․감독하에 노동자를 사용하지만 노동관계법에 따른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더라도 무방하게 된다. 사용사업주는
근로자파견계약을 맺은 파견사업주에게 파견료만 지급하면 될
뿐이고, 사용자와 직접고용관계에 있는 노동자에 대하여 지는
여러 가지 법적 제약은 이 관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파견근로의 본질은 고용과 노동력 사용의 분리 다시 말해
사용사업주의 사용자 책임 회피에 있는 것이다.
파견근로자를 사용하게 되면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에 대해
해고 문제로 골치를 썩을 필요가 없다. 파견사업주와의
근로자파견계약만 해지하면 그만이다. 파견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든 말든 상관할 필요가 없다. 법적으로는
단체교섭의 상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체협약 체결을 놓고
신경 쓸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쫒아내더라도 부당노동행위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반 노동자보다 훨씬 싼값에 부릴 수가 있으니
사용자로서는 정말 좋은 제도일 터이다.
반대로 파견근로자에게 있어서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임금착취를 당하며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노동3권이 애시당초 부정되는
상황에 처해져 있기 때문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것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근로자파견법인
것이다.
2) 불법 파견의 양산
근로자파견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직업안정법에 의하여
근로자공급사업은 노동조합만이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불법 파견이 만연하게 횡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실태는 근로자파견제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논거의 하나가
되었다. 즉,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근로자파견사업을 합법화를
통해 양성화하고 그에 대하여 법적으로 감독과 규제를 하는 것이
파견근로자들을 보호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파견제의 합법화는 불법적인 파견근로를 더욱 양산하는
결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리해고제의 도입이 불법적인
정리해고를 부채질하는 꼴과 똑같은 양상인 것이다.
근로자파견법 제5조 제1항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근로자파견의 대상업무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규정하여
파견근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수적인 제한 규정은
현실에서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는 법이다. 어찌되었건
근로자파견제가 합법화되었다는 것 자체만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과거에는 어기면 큰일 날지도 모르는 것이었지만 합법화된
마당에는 제대로 지키지 않더라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법치주의라는 것의 한 허울이다. 물론 재수
없게 걸리게 될 지도 모르는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용역, 도급
또는 하청이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다. 파견근로자를 생산
업무에 투입시키면서도 법적으로는 파견근로가 아니라 용역을 준
것이네, 하도급이네 하고 우기고 보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근로자파견법 제정 이후 용역, 도급 등으로 위장한
불법 파견은 더욱 기승을 부렸고 이에 대한 행정적인 제재는
극히 미미하였다. 행정적인 감독과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한 것이냐고 노동부 관리들이
반문하는 실정이다. 근로자파견법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법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법을 어기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제대로 지킬래야 지킬 수가 없는 법이다. 사용자들도 이 점은
시인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더 이상 법을 어겨가면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지 않고 적법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근로자파견법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파견근로자의 ‘보호’라는 미명 때문에 법에 남겨두는
근로자파견사업에 대한 규제 조항들을 아예 없애지 않는 한에는
절대 불법이 근절될 수 없는 것이 근로자파견법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본질이다.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 근로자파견법 제6조 제3항의
이른바 직접고용간주 조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규정은
근로자파견제가 일시적인 인력 수요를 해소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므로 특정 업무에 파견근로자를 2년 이상 장기간 계속 쓰지
못하도록 하고 파견근로자를 사용한 지 2년 이후에도 여전히
당해 업무에 대한 인력 수요를 필요로 하는 사업주는 해당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함으로써 고용안정을 이루게끔 하자는
그나마 파견근로자를 보호한답시고 생색내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게 되었는가? 위 규정은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이 아니라 고용불안을 가중시킨 독소 조항으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 근로자파견법의 시행 2년이 도래하기
직전인 지난 5-6월달은 파견근로자의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난
시기였다. 바로 2년 이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면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 위 법규정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일자리 중심으로 위 규정을 해석하지 않고 사람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동일한 파견근로자를 2년 이상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일 뿐이므로 파견근로자를 교체하여 계속 사용하는
것은 무방하다고 주장하면서 사용기간 2년이 도래하게 되는
파견근로자들을 파견업체를 교체하는 방식 등으로 사실상 해고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별 문제 없는 사람을 해고하는 것이
마음은 아프지만 현실의 법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서
직접고용간주의 대상이 되는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여주도록
법을 개정해달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을 1년 더
연장한다고 해서 문제가 달라질 리가 없다. 그 기간을 3년이라고
한들 과연 직접고용을 하겠는가? 단지 자신들이 저지르는 불법을
어떻게든 눈가리고 아웅해보자는 추잡한 행태일 따름이다.
3. 폐지 외에는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파견사업주의 중간착취를 통한 저임금 노동 아래 언제 짤릴 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열악한 상황에서 그나마 있는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라고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파견근로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이와 같이
저임금․무권리의 노동빈민을 양산, 확산하는
근로자파견제도는 철폐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그야말로 당위이다. 그리고 그
투쟁의 시작은 파견근로자의 조직화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들이 투쟁의 직접적인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투쟁을 위로부터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개하려는
움직임 또한 존재한다. 이른바 입법 운동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투쟁의 전선에서 입법
운동이 효과적인 전술의 하나로 배치될 수 있는 지형은
존재한다. 따라서 입법 운동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부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입법 운동 자체만으로는 가지게 되는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 바로 현실적으로 입법이 관철되도록 하는
것이 그 운동의 목적 자체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실적인 가능성이 얼마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어 그
안에 매몰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근로자파견제도에 대한 입법 운동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해
있다. 파견근로의 실태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운동 진영들은
근로자파견제도가 법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되고
‘궁극적’으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들
동의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입법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는
근로자파견법의 폐지를 무조건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고
파견근로자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그 개정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운동
진영들이 존재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근로자파견법 폐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개정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힘의 역관계상 폐지는 이루어낼 수 없으나
개정은 이루어낼 수 있다는 논리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근로자파견사업의 대상 업무를 최소한도로
제한하고, 파견허용기간을 축소하며, 불법 파견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파견근로자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사용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등등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이 현실의 정권 및 자본에 대한 힘의
역관계에서 가능한 상황이라면 근로자파견법의 완전한 폐지
자체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대표적인 독소 조항 몇가지만의 개정이라도 먼저 따내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개정이 아닌 폐지를
전면적으로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 전술적으로도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폐지를 주장하다가 힘의 역관계에서 실제로 밀리면
개정이라도 이루어낼 수 있지만 처음부터 개정을 주장하다가
밀리게 되면 아무 것도 이루어 내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싸워보지도 않고 밀리는 싸움이라고 단정하고 미리 지고
들어가는 꼴이다. 폐지를 주장하는 과격분자가 아니라 개정을
주장하는 온건론자들이니 받아들여 달라고 하소연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근로자파견법은 무너뜨리기 어려운 거대한 공룡이 결코 아니다.
법이 시행된 것은 이제 갓 2년을 넘어섰을 따름이다. 지금
폐지하지 않으면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정말 없애기
어려운 불가사리로 쑥쑥 자라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권과 자본의 힘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근로자파견법이 탄생된 것이 아니라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자
대표라는 자들의 양보와 타협의 산물이었다는 치욕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파견근로를 위시한 위장도급,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의 철폐를 이루어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서 입법
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전술적인 슬로건은 단 하나
‘근로자파견법 폐지’일 뿐, 다른 대안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