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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에서 워싱턴, 프라하,멜버른,서울까지

현장에서 미래를  제60호
원영수


정세초점

시애틀에서 워싱턴,
프라하, 멜버른, 서울까지
- 반지구화 투쟁의 국제적 확산과 한국 노동자계급운동의 과제 -



원 영 수
국제기획실장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인 1999년 12월 미국 서부의 도시 시애틀은 유례없이 최루탄 연기로 뒤덮혔다. 전세계와 미국전역에서 모여든 5만여명의 반지구화 전사들에 대한 시애틀 경찰의 무차별적 공격은 WTO 뉴라운드를 출범시키려 했던 WTO 개막식과 폐막식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시애틀 라운드”의 출범을 통해 전지구적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법률적 표현에 마침표를 찍으려했던 초국적 독점자본과 그들의 정치세력의 시도는 완전히 무산되었다.

그리고 1년 후 2000년 10월 20일 서울에서는 또다른 투쟁이 벌어졌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또다른 추진체인 ASEM의 총회가 서울에서 개막되는 시점에 맞춘 한국 노동자-민중운동과 200여 국제활동가들의 반지구화 시위와 집회는 시애틀, 워싱턴, 프라하, 멜버른으로 이어지는 전지구적 지구화 반대투쟁의 한 결점점을 이루었다.


10월 20일, 서울 국제행동의 날

ASEM에 맞선 서울 국제행동의 날에 ASEM 정상들이 모인 강남 컨벤션 센터 일대에서 지구화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 오전 10시의 강남역 부근 뱅뱅 사거리에서 열린 집회는 자본과 경찰측의 방해공작을 뚫고 쟁취한 집회였다. 그러나 뚜렷한 목적의식을 결여한 현장지도부의 오류로 인해, 투쟁을 더 확장시키는 못했다.
이어, 오후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집회는 전체 투쟁일정상 집중점이었다. 이 집회는 민중대회위원회와 WTO-투자협정반대 국민행동, 그리고 정체불명의 ASEM 민간포럼이 공동주최로 열린 하나의 잘 꾸며진 행사로 끝났다.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을 비롯한 대중운동 지도자들의 화려한 반신자유주의, 반지구화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 날의 투쟁은 많은 현장 조합원과 활동가들에게 공허감만을 남겼다.
민주노총 웹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일반 조합원들의 분노와 비판은 현재 민주노총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장의 목소리! 자본의 인격적 표현인 자본가, 그리고 그들의 대리자 관리직들과 처절한 투쟁 속에서 자본과 자본주의의 본질을 몸으로 느끼면서 계급의식을 각성한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지도부들의 행태는 그야 말로 ‘배신’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투쟁이 어떠한 투쟁인가? 그간의 현장투쟁의 틀을 뛰어넘어, 초국적 독점자본과 그들의 하위파트너 국내 독점자본, 그들의 정치적 대변자인 부르주아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반대하는 전계급적, 전민중적 투쟁로 조직된 것이 바로 이번 ASEM투쟁이었다.
물론, 시애틀 투쟁의 경우 WTO 총회의 개막식과 폐막식을 무산시킨 것이 전세계 노동자-민중운동의 조직적 대응투쟁이라기 보다는, 자연발생적 저항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는 미국의 진보진영 내에서 최근 30여년간 이와 같은 규모의 대규모 동원투쟁의 경험이 취약했고, 다양한 운동진영간의 수평적 연대과 교류의 경험이 빈약했던 객관적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20세기 전기간을 통해 끊임없는 격렬한 계급투쟁, 특히 80년대의 학생운동과 90년대 노동자계급운동은 전체 민중운동의 전위로써 국가와 자본에 맞선 투쟁을 조직해온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투쟁력과 전투성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이데올로기적 지향과 전략의 부재로 끊임없이 고통받고 동요해온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특히 97년 경제위기 이후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이 신자유주의와 지구화에 맞선 투쟁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그리고 노동현장의 문제가 전지구적 자본의 공세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각성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제는 모든 집회에서나 유인물에서 신자유주의와 지구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비판적 목소리와 구호를 듣는 것은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와 같은 대중운동의 발전은 이번 ASEM 총회를 맞이하여 강력한 대중투쟁으로 질적 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지도부의 투쟁의지를 의심하고, 경제위기 이후 되풀이되는 무기력한 투쟁에 다시 한번 좌절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되풀이했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ASEM 민간(?)포럼 -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번 투쟁은 원초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ASEM 총회과정에는 민주노총이 관여된 세 개의 행사가 있었다. 첫째 ICFTU(국제자유노련)의 ASEM 들러리 행사이고, 다음은 바로 노동분과를 중심으로 민주노총이 참여한 ASEM 민간포럼이며, 마지막이 민중대회위원회, 국민행동 및 민간포럼이 공동으로 조직한 서울 국제행동의 날이었다.
이와 같은 세다리 걸치기에서, 현재 민주노총의 처지와 위상, 그리고 조직운영상의 고민이 드러난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정치적 의지이다. 경제위기 이후 지난 몇 년간 민주노총은 이른바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과 지향성의 위기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안팎에서, 특히 아래로부터 심각한 비판과 비난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번 ASEM 반대투쟁의 과정에서 ASEM 총회를 저지하겠다는 투쟁의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입으로는 시애틀 운운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대외용 수사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번 투쟁은 원초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먼저 민주노총 웹사이트에 게재된 부실하고 빈약한 ASEM 관련 정책자료,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인식의 불철저함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는 본질적으로 과거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지도부 하에서 왜곡된 민주노조운동의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시민운동의 들러리 역할에 익숙한 일부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번에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비판적 개입노선”으로 기조를 설정한 민간포럼에 방점을 찍고 개입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차 총회시 ASEM에 면죄부를 씌우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한 민간포럼에 한국의 노동운동이 왜 집착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경실련, 참여연대 등이 주도하는 가운데, 정부에 기금을 구걸하는 그 행사에서 과연 신자유주의에 맞선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연대투쟁을 논한다는 것은 위선적 자기기만이 아닌가? “시애틀과는 맥을 달리하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프티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과의 연대가, 정권홍보용 ASEM을 위해 생존권마저 박탈당하고 거리에서 내몰리는 노점상을 비롯한 기층민중과의 연대보다 더 중요한 사안인가? 민주노총이 왜 민간포럼에 집착하여, 어설픈 시민운동과 사이비 NGO의 들러리를 서야 하는가?
사실 이번 투쟁과정에서는 전지구적 저항의 연대전선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이 지구화로 고통받는 다수대중과 함께 하는 강력한 민중연대와 이에 기반한 위력적 대중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은 아쉽게도 별로 확인되지 않는다. 심하게 말하자면, 아주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면피용 집회와 행진이 있었을 뿐이다. 사실, 지난 95년 민주노총 출범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모든 투쟁은 투쟁주체의 인식여부에 관계없이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특히 96~97총파업은 가장 강력한 투쟁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번 ASEM 투쟁은 한편에서 96~97총파업, 경제위기시의 총력투쟁의 맥을 이으면서, 90년대 중반이후 국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반대 국제연대투쟁과 접맥하는 중대한 투쟁이었으며, 그 의의에 걸맞는 투쟁으로 조직되고 배치되었어야 했다. 이를 통해 국제적 연대투쟁을 한층 더 강화하고 촉발하는 매개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고 또 그랬어야 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번 ASEM 투쟁을 자기혁신과 재급진화의 계기로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으며, 이는 앞으로의 국제적 정세와 관련시켜 고려할 때 한국 노동운동의 부채이자 짐으로 남을 것이다.
2000년 반지구화 투쟁의 현주소

작년 12월 시애틀투쟁은 여러 가지 쟁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국제적 연대투쟁의 전범을 확립하는 성공했다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1월 국제경제포럼(WEF)에 맞선 다보스투쟁,
2월 UNCTAD에 맞선 방콕투쟁,
4월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맞선 워싱턴투쟁,
9월 국제경제포럼(WEF)에 맞선 멜버른투쟁,
9월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맞선 프라하투쟁,
그리고 10월 ASEM에 맞선 서울 국제행동의 날 …

이제 부르주아 언론마저 반지구화투쟁을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경향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번 ASEM을 앞두고 정부에서도 이 흐름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지구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은 이른바 새 밀레니엄 시대에 전지구적 운동의 화두가 되었다고 평가하기에 족하다.
그러나 아직은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이 투쟁의 미래는 어떤가? 이와 같은 투쟁과정에서 반자본주의적 지향은 점차 조직적으로 표출되고 있지만, 아직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주체의 형성이라고 진단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아직은 그 주체가 비정형적이고, 주체들간의 내부질서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파의 생존, 아니 인간의 생존은 오직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투쟁과 주체형성이라는 점에서는 폭넓은 공감대는 형성되었고 확산되고 있다, 과거 운동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한 투쟁과 혁신의 과정이 앞으로 전개될 것이며, 각 운동주체에게 중대한 화두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노동운동과 반지구화투쟁

전세계적으로 노동운동의 상황은 사실 녹록치 않다.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이 강력한 서구에서 노동조합은 사회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적-조직적 포로가 되어있으며, 20세기 후반 이를 혁신할 새로운 기대를 모았던 이른바 제3세계 노동운동, 특히 남아공, 브라질, 한국의 노동운동은 각각 제도화와 투쟁동력의 상실 등의 이유로 지향성의 혼란과 전투성의 상실로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국제기구들(ICFTU와 국제산별노련)은 대부분 현장의 노동자와 유리된 상태에서 상상속의 노동자들의 이해를 법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 결과, 20세기 마지막 20여년간 지구상 전역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된 노동자계급에 대한 총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후퇴를 거듭해 왔다. 그리하여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는 20여년 이상 되풀이되는 팔자타령이 되었고, 어설픈 미래학자들은 노동의 종말, 노동조합의 소멸을 주제곡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근본적인 자기혁신을 통한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노동운동의 미래가 없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의 자기혁신이라는 과제의 수행을 둘러싼 다양한 세력간의 투쟁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위에서 언급했던 반지구화투쟁과 관련시켜 말하자면, 미국 노동조합의 대대적 동원이 없었다면 1999년 시애틀은 이른바 NGO들의 한바탕 파티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AFL-CIO는 지도부의 지도력의 한계와 모호한 지향성, 암묵적인 미국제일주의에 입각한 보호주의논리에도 불구하고 압도적 숫자의 조합원을 시애틀 현지로 동원하였고, 노동자들의 대오는 투쟁의 중심을 형성했다.
시애틀의 전면적 동원과는 달리, 4월 IMF/WB 총회에 대한 투쟁에서는 AFL-CIO 차원의 대규모 동원보다는 개별적 동원에 머뭄으로써 아쉬움을 남겼다. 이는 물론 행동의 성격상 노동조합과 관련성이 약하다는 판단도 작용했겠지만, 대중행동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노조 지도부의 입김도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소위 개혁지도부라고 하는 스위니 집행부의 정치적 또는 운동적 한계로 볼 수 있어, 미국노동운동의 혁신과 부활이라는 당면의 과제를 돌파하기 위한 기회는 지나가 버리게 되었다.
반면,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세계경제포럼에 대한 동원이 조직되었던 호주 멜버른투쟁의 경우, 멜버른이 전통적으로 노조의 기반이 강한 지역이라는 특수성과 결합하여, 사회운동-정치조직의 연합체 뿐만 아니라, 일부 노동조합이 호주노총(ACTU)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직접 행동에 돌입하였다. 이는 98년 항만노조(MUA)의 생존권투쟁의 계기로, 재생의 움직임을 보이는 독립적 노동운동이 작년의 동티모르 투쟁에 이어, 반지구화 투쟁에 적극 결합함으로써 호주 노동당(ALP)에 결박되어 있는 호주 노동조합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운동과 투쟁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고무적 현상은 대부분의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당 또는 사민당에 결박되어 있는 노동조합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이라는 노동운동의 대원칙을 복원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대중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상기시킴으로써, 노동운동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재확인하게 한다.


새로운 국제연대의 모범을 창출하기 위하여

90년대 후반 이후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지구화의 급속한 진행과 테크놀로지의 급격한 발달은 국제연대 또는 국제주의를 당연한 원칙이라고 하면서도 몸은 국경안에 묶여있던 노동운동과 진보적 사회운동에게 새로운 형태의 국제연대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최근 확산되고 있는 국제적 반지구화 대중투쟁 역시 이와 같은 조건의 변화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노동운동의 경우 ICFTU나 국제산별노련이 독점해온 국제연대 영역이 일반 현장노동자들에게 열림으로써, 지도부의 통제를 뛰어넘어 현장간의 직접적 접촉과 그에 기반 국제연대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 투쟁대오에서 자주적 노동조합의 깃발을 보는 것은 이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이번 ASEM 투쟁은 지도부의 오류와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과거, 국가의 폭압으로부터 대중조직을 지키기 위해 국제적 엄호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반공주의 선봉대 역할을 했던 국제자유노련에 어떤 대중적 논의과정도 없이 가입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부끄러운 줄도 몰랐던 한국 노동조합, 또 96-97년 총파업 당시 끊임없이 쏟아지는 연대와 지지의 메시지, 불원천리 한걸음에 달려온 외국 활동가들과 그들의 국제주의 의식에 낯설어 하던 한국 노동조합으로서는 이번 투쟁을 조직했다는 것 자체가 큰 발전일 수 있다.
더욱 지구화의 문제, 신자유주의 문제를 ASEM과 연결시켜, 하나의 대중적 투쟁으로 조직한 최초의 사례로서 이번 투쟁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어,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다른 투쟁과 연대할 수 있는 한국노동자계급의 메시지를 이번 투쟁을 통해 전달했는가라고 자문할 때, 어떠한 긍정적 답도 떠오르지 않는다.

현재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고려하면, 우리 노동자계급운동, 국제적 노동계급운동, 또는 전세계 민중운동이 해방의 그 날까지 가야할 길은 너무나도 멀다. 되풀이하여 말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시애틀은 겨우 시작이었을 뿐이다. 작은 성공에 너무 도취되어서는 안 된다. 눈앞의 과제를 객관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이번 ASEM투쟁 역시 한국의 노동자계급운동에서 하나의 결절점이며, 앞으로의 투쟁에서, 특히 국제주의와 국제연대에 입각한 투쟁에서 하나의 작은 시작일 뿐이다. 현장에서, 거리에서 현장의 이슈를 전국적 이슈와, 나아가 국제적 이슈와 결합시켜, 일국차원의 투쟁만이 아니라, 국제적 차원

10월20일 강남역 부근에서 아셈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민중


의 투쟁을 함께 조직하고 지도해야 하는 과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이 땅의 현장에서 투쟁하는 우리 노동자의 당면과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한/노/정/연

2000-11-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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