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학생운동은 소멸할 것인가?
다시 부활할 것인가?** 이 글은 조직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
필자의 개인적 의견임을 밝혀 드립니다.
- 2001년 학생회 선거를 바라보며 -
김 인 수
전국학생연대회의 집행부
1. 학생사회, 학생회 선거
매년 10월부터 12월초까지 대학사회는 한차례 정치적 폭풍을
맞이한다. 이 두달간 많게는 1000여명 이상의 활동가들이
집중적으로 대중들을 만나며, 예술에 가까운 아름다운 선전물
수십 종이 대학을 꾸민다. 예전과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다른
2개월... 바로 학생회 선거 시기이다.
한 때 학생회 선거를 정치축제라고 불렀다. 각각의 운동
세력들이 자신의 변혁사상을 대중과 융합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 폭발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학생회라는
대중권력을 세워내는 학생회 선거는 학생사회에서 운동주체와
대중들이 학생회를 매개로 하여 가장 많은 접점을 만들어 가던
시기이다. 한국사회에 관한 다양한 논쟁과 학생회의 전망을
그려보던 학생회 선거는 간접민주주의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치축제라는 표현이 그리 부끄럽지 않은 한판 정치활동
기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사회에서 이러한 학생회 선거에 대한 묘사는
도덕성 없이는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는 학생회 선거의
이데올로기적 표현 이상이 아니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특히 2001년 학생회 선거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 학생회 선거의
파행과 비민주성은 학생회 선거에 대한 이러한 이데올로기마저도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많은 학교에서
이루어진 중앙선관위의 사퇴, 특정 선본에 대한 의도적인 축출,
각 선본 간의 악무한적 비방은 학생회 선거를 도저히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갔다.
이러한 학생회 선거의 모습은 학생회가 학생운동진영과
학생대중들이 관계맺는 가장 큰 기제 중 하나라고 했을 때,
학생사회의 변화와 학생운동진영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96년 8월 연대 사태에 뒤이은 반운동권진영의 등장과 97년
한총련의 역사적 해소 이후 학생운동진영의 분열양상, 98년 IMF
경제위기 이후 가속화된 대학구조조정과 학생사회의 급격한
변화, 98년 이후의 학생운동의 대사회적 표상의 소실 등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이 바로 현재의 학생회 선거의 모습이다.
이러하기에 학생회 선거를 분석하는 것은 90년대 학생운동의
후반기라고 할 수 있는 97년 한총련의 역사적 해소 이후의
학생운동 상황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대학사회의 변화,
대학인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여러 측면의 분석을 통한 학생운동의 총체적 모습에
대한 서술은 본 지면이 허락하고 있지 않기에, 본 글에서는
2001년 학생회 선거의 몇몇 특징을 분석하는 것으로 현재의
학생운동의 상황과 전망을 짧게나마 엿보는 것으로 한다.
2. 2001년 학생회 선거의 몇 가지 특징
2001년 학생회 선거의 특징으로는 크게 선거가 파행적으로
진행된 학교가 많았다는 것, NL운동진영에 의해 통일이 선거기간
내내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는 것, 단대 학생회의 몰락 정도가
손꼽힐 수 있다.
1) 학생회 선거의 파행
- 대중권력으로서의 학생회의 위상에 대한 운동주체간, 대중적
합의의 붕괴
2001년 학생회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선관위 사퇴 요구 또는
사퇴, 선본 사퇴 등이 이루어지는 파행적 선거가 많은 대학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연세대, 서울대, 이화여대
학생회 선거가 그러했다. 이들 대학 외에도 대부분의 대학에서
선거의 공정성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고, 아슬아슬한 선거가
진행되었다.
2001년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와 이화여대 선거는 선거운동과
선관위 운영이 특정 선본의 선거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움직이면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이다.
연세대 총학 선거의 사건은 상과대학 후보의 경고 누적으로 인한
사퇴 문제를 총학 선거와의 형평성이라는 잣대로 중선관위가
처리하면서 시작되어, 총학 한 선본의 경고 누적으로 인한 사퇴
처리과정 및 총학생회 선거 기간 연장에서 중앙운영위원회의
비민주적이며 파행적인 문제 처리 등이 계속해서 발생되어 결국
선거무효결정까지 이루어졌다. 이화여대 선거의 경우
총학생회보다도 사회대에서의 선거 파행과정이 전체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경우인데, 사회대 선관위가 선거 시작에서부터 선거
마지막까지 한 선본에 대해 의도적으로 경고, 주의를
내리고(예를 들면 화장실에 붙이는 유인물의 가로 세로가
바뀌었다는 이유 등등) 한 선본의 선배들이 타 선본에 대한 비방
유인물을 돌리는 등의 비정상적인 선거 운동에 대해 선관위가
묵인하며, 선거 직전 타 선본을 경고 누적으로 사퇴시키는
과정에서 학우들의 이의제기가 들어와 선거 자체가 무산된
경우이다.
최소한의 룰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학생회 선거에서 대부분의
이의제기 사항이 중선관위의 유권해석으로 처리되기에,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선본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유권해석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선거 공정성에 관한 문제들은 각 선본간 합의를
최우선으로 하여 처리되고, 학생회 건설 및 학생회를
대중권력으로 세워내기 위한 대의 아래서 조정되기 때문에 선거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사항으로 발전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세대 총학생회 선거, 이화여대 선거의 파행과정은
선거시행세칙 및 유권해석이 그야말로 타 선본을 죽이기 위해
이용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었으며, 부르주아 선거와 같은
물리적 장치들이 없는 학생회 선거에서 학생대중권력 창출이라는
대의가 무너졌을 경우 학생회 선거가 얼마만큼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선거는 학생회 선거 파행의
유형이 모두 모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데, 시행세칙 상의 틈을
이용한 한 선본의 대량 선전전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하여, 반권 선본의 금품제공 및 선거시행세칙 불복종 운동과
이에 대한 비권 총학생회(서울대는 전 총학생회가 중앙선관위를
맞는다)의 방관,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앙선관위의 비민주적,
독단적 선거운영에 대한 선거거부모임 결성 및 재선거 논의가
진행되었다. 사건은 반운동권을 표방한 선본은 선거 기간 중
영비천, 배지, 사제 자료집 등을 돌리며 경고를 4차례 이상 받은
것을 비롯하여, 홈페이지에서의 무단 글삭제 및 아예
선거시행세칙에 대한 불복종 운동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경고
2회면 최종 경고, 3회 이상이면 선본사퇴 논의를 해야 하는
시행세칙을 무시하고 중선관위가 이들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면서
시작되었다. 또 이러한 반운동권의 작태와는 다른 방식으로,
학내 언론사들이 학생회 선거의 대중적 토론을 위한 취지로 꾸린
단체(매체연합)가 주최한 학생회 선거토론회가 무산되면서(이는
특정 언론 단체가 준비한 질문이 지나치게 수준 이하인 것에서
기인하는데, 예를 들면 ‘각 선본의 정파가 무엇입니까’,
‘혹시 **선본은 떨어지시려고 나오신 것 아닙니까’ 등이
질문의 대략적 내용이었다) 학생회 선거거부모임이 생기기도
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는 선관위의 중립성 문제/반권 선본의
비민주적 선거운동/최소한의 정치적 수준도 무시한 자유주의
운동진영 등이 복잡하게 엮인 과정이었다. 파시스트에 가까운
반권 선본이(반권 선본은 군복을 입고 선거 유세를 했으며,
사나이 문화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1500표를 얻으며 3등을 하고,
자유주의를 기치로 하여, 정치적 참여를 부르짖었던 통신공간의
논자들이 후에 선거거부모임을 꾸리기도 하고, 시민운동식으로
선거공간 외부의 정치적 심판자 역할을 자임했던
단체(매체연합)들이 나오기도 했다. 더욱 문제는 위와 같은
문제들이 그 과정의 논쟁들은 정확히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은 채, ‘선거가
개판이다. 선거하지 말자’는 논리로, 반권 선본의 비민주적
선거운동에 대한 비판에 대해 ‘운동권들이 반권을 탄압하는
것이다’라는 흑색선전과 이에 대한 논쟁 아닌 논쟁으로,
준비주체의 문제인 선거토론회 무산에 대해 ‘왜 토론회에
나오지 않느냐, 선본들은 모두 사퇴하라’라는 본말전도의
비방까지... 목적도 주체도 없는 논쟁, 비방이 선거기간 내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은 학생사회에서 최소한의 학생회에 대한
정치적 합의 지반―대학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의 총학생회,
대리기구가 아닌 대중권력으로서의 총학생회―마저도 붕괴되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권력 기구와 외부적 감시의
틀을 학생회 선거에 대입한 매체연합의 문제의식도, 권/비권의
대립 속에 파시즘에 한 표를 던진 대중들도, 학생회 건설을
국회의원 선거와 같이 생각한 선거거부모임도,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학생대중권력으로서의 학생회의 의미에 대해 부정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어떠한 강제적 수단도 갖고 있지 못하며,
오직 대중들의 참여로 건설되는 자치기구로서의 학생회가
그야말로 대학본부와 비슷한 권력기구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어
간다는 것은 학생회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이다.
2) 통일 담론의 전면화
- NL진영의 약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2001년 선거는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따라 NL운동진영의
통일담론의 전면화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다. ‘615세대’,
‘통일시대’, 등의 선본 모토에서부터 선거기간 내내
통일조국의 미래상과 청년의 역할, 반민족적 보수우익들에 대한
비판이 이야기되었다.
올 한해, 반미통일의 대중화와 보수우익에 대한 타격으로
자주정부수립의 기반을 만들겠다는 한총련의 방침에 충실했던
이들의 선거운동은 대체적으로 큰 대중적 반감 없이 진행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총학생회 선거가 종반부로 가고 있는
가운데 48개 대학을 NL진영이 수권하였으며, 특히 서울
수도권에서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STUNET 집계상황을 보면,
전국적으로 NL진영이 48개 대학 좌파진영이 18개, 반권이 29개
대학을 집권했다. 이중 서울의 주요 대학을 보면 NL진영이
건국대, 경기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단국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산업대, 서울시립대, 성신여대, 중앙대, 한양대,
홍익대로 파악되고 있으며, 좌파진영 중 연대회의가 숭실대,
한국외국어대, 세종대를 전학협이 항공대를, 이외 좌파단위가
명지대, 동덕여대를 수권하였다. NL진영의 경우 작년과 비교하여
6-7개 총학생회가 늘어났으며, 좌파의 경우 7-8개 총학생회가
줄어들었다.
기존과 같았으면, 통일운동=한총련의 등식으로 상당한 대중적
거부감을 동반하며, 대패했을만한 내용이었음에도 통일담론의
전면화라는 정치적 강수로 약진에 성공한 배경은 무엇인가?
먼저 이데올로기적으로 통일이 갖는 의미가 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현실의 일정처럼 인식되고 있는 통일의 흐름은
학생회 선거에서의 통일담론을 가장 정치적 부담 없는
시대인식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 말은 역으로 NL진영의
통일운동이 정권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S학교 총학생회 선거의 경우 통일을 이야기하며, 김대중
‘대통령님’이라는 존칭이 공공연하게 사용되었고, I학교의
경우 김대중과 김정일의 캐릭터가 선거기간 내내 사용되었다.
이밖에도 대부분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김대중은 김정일과 나란히
통일의 선구자로 선전되었다.
다음으로, 이와 연동되어 통일담론은 한편으로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 이데올로기와 야합하는 양상을 보이며, 저항
이데올로기가 아닌 주류질서에 편승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
대중추수주의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극단적인 예는 K대의
NL선본은 대우자동차를 해외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논리가 통일이 되면 초국적 자본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기에,
우선은 한국경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SS대의
한 선본은 통일시대의 선구적 대학을 외치며, 학교발전주의에
편승, 총장문제와 대학구조조정이 큰 문제가 되고 있었음에도
무조건적인 안정과 발전을 주장했다. 대부분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통일은 부강대국, 학교발전주의와 결합하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2000년 한해 매향리 투쟁, 범민족대회 등을 거치며
학생운동 내 NL운동진영의 조직력이 상승하였던 것이 총학생회
수권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학생회 선거에서
정치적 쟁점 중심의 흐름이 사라질수록 기층 장악력, 투표인
동원 등의 조직력에 의해 선거 승리의 4-50%가 판가름나게 된다.
또한 올 3월 등록금 투쟁에서 승리적 국면을 만들지 못한 많은
좌파 학생회단위(고려대, 시립대, 성신여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등)가 조직적 하향세를 그렸던 것 역시 많은 좌파단위가
NL진영에게 총학생회를 넘겨주는 결과를 낸 듯 보인다.
요컨대, 2001년 학생회 선거에서의 NL진영의 약진은 그들의
시대인식이 정권의 통일흐름에 조응하며, 주류 이데올로기화 된
것, 그리고 신자유주의 개혁 이데올로기에 야합하며
대중추수주의적 선거를 벌일 수 있었던 점, 마지막으로 2000년
투쟁 속에서 조직력을 배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NL진영의 약진은 학생사회에서의 반신자유주의
저항주체를 형성해 나가는 투쟁이 운동진영 내부에서부터 교란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에 많은 우려를 낳는다. 한국사회 진보를
위한 실천자로서의 학생회의 권력은 학생운동이 대중과 맺는
정치적 관계에 의해 형성된다. 한 예로 80년대 학생운동의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의 표상은 학생회를 통한 대중과의 정치적
교통을 가능케 했고,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 93년 문민정권의
출범과 동시에 스스로의 정치적 표상을 잃어버린 학생운동은
학생회를 통한 대중과의 정치적 교통을 소실해나가기 시작했다.
즉 문제는 학생운동이 자신의 어떠한 정치적 표상을 바탕으로
대중들과 정치적 교통을 해나갈 것인가에 있다. 조합조직인
학생회가 정치적 내용을 갖추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학생운동과
대중의 정치적 교통에 의해서이다. 이렇다 할 때, 결국 현재와
같이 학생운동 내부에서부터 신자유주의, 반신자유주의의 정치적
갈등이 형성되고, 스스로의 표상을 만들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학생회가 정치적 대중권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큰
장애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사회적 연대’,
‘민중’ 등의 저항적 이데올로기마저도 포기하는 현재의
통일담론과 한총련의 우경화는 반신자유주의의 표상으로 대중과
교통해야 할 학생운동의 표상을 심하게 뒤트는 것임과 동시에
학생운동 고유의 저항성마저도 훼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3. 학생회 운동, 임계점에 다다랐는가?
올해 학생회 선거 역시 50%의 투표율을 넘기기 위해 홍역을
치렀다. 1일 연장투표는 기본이고 2일 이상 연장투표를 진행하는
곳도 많았다. 선거시행세칙을 바꿔 아예 50% 규정을 없애버린
것도 많다. 그리고 올해같은 경우 더욱 크게 문제되는 것은,
단대학생회 선거가 후보부족과 단선으로 인한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는 올해 인하대의
경우 단대학생회 중 공대학생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투표율
미달로 건설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단대가 단선으로 치러지고
있으며, 그나마도 후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학생회 붕괴 현상이 과 학생회를 거쳐 이제
단대학생회로까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 학생운동은 학생회운동을 통해 대중권력을 세워내고,
위력적인 대사회적 실천을 벌여왔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대학사회의 급속한 변화는 대학인의 사회적 지위를 바꾸어
놓았고 대학인들은 끊임없는 불안한 미래를 때문에 집단적인
사회적 연대 이전에 개별화된 경쟁을 해야만했다. 동시에 대학
구조조정은 학부제, 모집단위 광역화 등으로 학생운동의 기층
체계인 과학생회-학회-소모임 등을 해체시켰고 한총련의 역사적
해소 이후 학생운동은 대사회적인 단일한 표상을 상실했다. 특히
97년, 98년부터 시작된 IMF 구조조정은 대학사회를 더욱
노골적으로 예비노동력 양성소로 만들며, 대학인들의 삶을
파편화시켰고, 대학사회를 완전히 정치적으로 무장해제시켜
나갔다. 또한 동시에 97년 한총련 사태 이후 학생운동진영은 더
이상 학생대중들을 학생운동의 표상으로 조직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정치적 깃발 아래 모인 대중들의 숫자를 가지고 각
세력들이 경쟁하는 제로섬게임을 시작했다.
이는 이미 3-4년간 계속된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이러한 위기는 학생운동을 위기를 넘어 소멸로 이끌고
있으며, 학생운동은 아직 반전의 기회를 만들 가능성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물론 이 반전은 단 한번의 혁신, 변화로 해결될
무엇은 아니며, 학생운동의 장기적인 변화를 예비하는 가운데,
학생사회의 정치적 재구축 전략을 세워나가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혁신의 단초를 위해 2001년 학생회 선거의 특징을
대학사회 변화와 학생운동의 상황이라는 혁신의 큰 축에서 짧게
살펴보자.
1) 신자유주의 정치성의 구축과 보편적 정치성의 해체
학생회 선거의 투표율을 보며, 혹자는 대학사회가 비정치화
되어가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는 운동주체의 자의적
분석인데, 오히려 대학사회는 신자유주의 정치성으로 공고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 올바른 분석이라 할 것이다. 더욱 공고해지는
대학 위계화 속에 대학 발전주의는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되었고, 많은 대학인들이 신자유주의적 한국사회를 이미
대안으로 인정하고 있는 모습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한편에서
보면 현재의 투표율 미달은 출마 선본들이 대학인들에게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각 대학에서 수백표
이상씩 쏟아지는 무효표는 이러한 의견의 정치적 표현중
하나이다.
특히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치성은 경제위기 상황과 맞물리면서
야만적인 파시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서울대 드림벨트선본과 성균관대의
성대사랑선본을 들 수 있다. 드림벨트선본은 군복을 입고
사나이를 이야기하는, 공동유세장에서는 격파시험을 하며 힘을
자랑하는, 선거게시판에서는 자신들을 비판하는 모든 내용을
삭제하는 등 서울대 역사상 처음 등장하는 야만적인(또는
파시즘적인) 선본이었다(1500표로 총학 선거 3등, 당선자와는
400표 차이). 성대사랑은 600주년 기념관 점거농성 당시
성대발전이데올로기(점거농성은 삼성재단을 떠나게 한다.
학외운동권의 음모론 등등)로 세력화한 ASA(Anti-Students
Association)라는 단체가 주축이 되어 꾸린 선본으로, 모든
정치적 내용은 운동권의 음모로 몰아붙이는 등, 거의 조선일보
뺨치는 수준의 내용으로 이번 성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정치적 반동에 가까운 두 선본의 선전은 학생회의 임계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극단적인
경제이데올로기이자, 정치적 보수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가
결국 학생사회의 보편적 정치성마저도 심각하게 파괴해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의
학생회와 민주적 관계 창출/사회적 연대의 담지자로서의
학생회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 이제 한편으로 학생회
운동의 위기는 학생사회에서의 신자유주의 비판이 어떻게 정치적
보편주의 형태로 구축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내리지
않고서는 해결불가능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2-1)에서
2001년 학생회 선거의 특징 중 대중권력으로서의 학생회의
위상에 대한 합의의 해체와도 연관되는 사항이다. 대중권력에
대한 합의는 일정정도의 학생회의 보편적 정치성―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를 전제한다.
2) 학생운동의 대중적 표상 해체
대학사회에서 학생운동이 대중저항주체를 재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학생운동의 표상―저항, 민주주의, 민중 중심성 등등―을
통해 대중과 관계 맺으면서부터였다. 즉 학생운동이라는 표상은
대학인들에게 민주주의와 시대에 대한 저항을 의미했으며,
대학인들은 운동권/비권이라는 흑백논리적인 선택 문제가 아닌
학생운동과 나의 관계를 통해 시대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나갔다. 하지만, 96년, 97년 학생운동의 대사회적 표상은
심한 상처를 받았으며, 98년부터 계속되는 학생운동의
분열양상과 악무한적 세력별 경쟁은 학생운동의 사회적 표상을
해체시켜나가는 것이었고, 더군다나 한총련의 패권적 작태와
신자유주의와 단절하지 못한 모습은 이러한 해체를 가속화시키는
것이었다.
올해 학생회 선거의 주된 투표자인 00, 01학번은 그야말로
한총련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세대였다. 학생운동에 대한
최소한의 정치적 긴장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는 학생회 선거
투표인에서도 드러나는 저학번의 투표율 저조현상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미 작년부터 심각해지기 시작한 새내기
선본원의 부족현상은 전체적인 학생회 선거 선본원의
노령화현상과도 직결되는 사항이다. 이들 대부분은 학생운동이
대사회적 표상력을 심각하게 잃어가는 요즘, 대학사회에서
학생운동과 관계맺을 특별한 경험도 없었으며, 특히 기층
학생회의 몰락은 이러한 이들의 학생운동과의 단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학생회 운동의 위기, 표면적으로는 투표율의 하락은 이렇게
학번이 낮아질수록 학생운동과 관계맺는 정치적 공간이 축소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4. 나가며 - 학생회 운동 부활의 조건들
이상에서 2001년 학생회 선거의 특징들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90년대 학생운동의 위기가 이야기되었고, 90년대 후반 위기에
대한 긴장감마저 위기를 맞이하며, 학생운동 소멸의
임계지점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학생회 운동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꽤나 벅찬 일이다. 이러한 학생회 운동의 위기 앞에 많은
활동가들은 학생회 운동은 이제 그 생명을 다했으니, 다른
형태의 운동방식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회의를 갖고
있기도 하다. 특히 학생회 선거가 끝난 이후 전쟁같은 투표율
올리기와 냉담한 학우대중들 속에서 선거 운동을 진행한
활동가들의 경우 이러한 회의는 더욱 심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현재 학생운동의 위기가 결코 ‘학생회’가
이러저러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대중들의
정치성을 대중권력으로 세워내며, 학생운동이 가장 많은
대중들과 관계맺을 수 있는 학생회 운동의 이점을 함부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앞에서 지적했듯이 현재의 학생회
운동의 위기는 대학사회에서의 반신자유주의 정치성구축의 문제,
학생운동의 대사회적, 대중적 표상력을 구축하는 문제이며,
학생운동진영 내부적으로는 과도한 운동진영간 경쟁 속에서
대중권력창출이라는 기본원칙을 훼손했던 문제이다.
요즘 많은 학생회 활동가들이 학생운동 혁신의 긴장감을 잃고
있는 것 같다. 한 편으로는 과거의 찬란한 기억으로 현재를
위안하고, 또 대중 앞에 참담하게 무릎을 꿇어야 했을 때, 끝도
없는 비관론에 휩싸인다. 하지만 레닌이 말했듯이, 사회주의
운동은 현실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며, 현실을 직시하며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세울 줄 아는 자에 의해 전진한다. 오늘 학생회
운동의 위기를 목도하며, 다시 현실 속에서 혁신을 칼날을
세우는 자, 바로 그런 활동가들만이 오늘의 위기를 타개하고
사회주의 학생운동의 미래를 꽃피울 수 있다. 혁명은 역사적
정세 속에서 착취의 모순과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반역이
우연스럽게 만날 때 이루어지듯이, 학생회 운동 역시
운동주체들이 끊임없이 혁신 속에서 대중권력을 세워내고,
대중적인 신자유주의 비판을 통해 대중들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반역케 할 때, 다시 한번 찬란한 역사를 피울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