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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대를 뛰어넘어 공공대통합으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61호
이성우



공공연대를 뛰어넘어 공공대통합으로
이 성 우/공공연맹 대전충남지역본부장





풍경, 2000년 12월, 공공부문 노동자

“처음 준비하는 파업입니다. 지도부나 조합원 모두 경험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음이 없는 게 있겠습니까?” 11월 26일 서울역, 공공부문 노동조합 연대투쟁 대표자회의(이하 “공공연대”)가 주최한 제2차 공공부문 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참가한 어느 조합원의 말이다. 말 그대로, 한국노총 산하 전력노조, 철도노조 등이 전체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파업을 선언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IMF 이후 3년 내리 국내외 자본의 민영화․해외매각의 압박 속에서 분노를 억눌러 왔던 공공부문의 현장노동자들의 절박하고도 비장한 투쟁의지가 모인 결과였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맹과 한국노총 산하 공공노협(철도노조, 체신노조, 전력노조, 담배인삼노조, 도시철도노련, 공공건설노련, 정투노련, 공공서비스노련)이 함께 준비해 온 2000년 하반기 총력투쟁은 적어도 이날 집회까지는 비교적 순탄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아, 12월 4일 새벽 전력노조 오경호 위원장은 ‘국가경제를 위한 전력노조의 결단’이라며 파업을 전격 철회하였다. 뒤이어 서울도시철도노조가 12월 8일로 예정된 파업을 유보하였고, 더 나아가 철도노조는 노사정위원회 공공특위에 참석하여 철도인원 감축 및 민영화에 대한 노사정 합의안에 서명함으로써 12월 15일로 예정된 파업을 사실상 철회하였다. 전력노조의 파업을 앞두고 양대 노총 위원장 면담과 두 노총의 의결기구를 거쳐 구성했던 “노동기본권 쟁취․일방적 구조조정 저지․노동시간 단축 공동투쟁위원회”가 무색해지고, 12월 5일에 있었던 두 노총의 공동집회의 의미는 여지없이 퇴색해버렸다. 굳이 언론의 선정적인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사상 초유의 전력대란, 통신․철도 등 국가의 동맥과 신경의 총체적 마비사태는 오지 않았다. 철도 구조조정에 대한 노사정위원회 공공특위 합의에 따라 한국노총은 금방이라도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할 태세이다.
2000년 12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분노는 전국에서 메아리쳤지만, 거기에 투쟁은 없었다. 입만 열면 투쟁을 들먹이고, 연설만 하면 파업을 외치던, 공공연대의 상층 간부들은 파업준비명령은 되풀이했지만 끝내 파업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투쟁을 멈출만한 성과라도 있었던가, 파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이라고 외쳐도 좋은가?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전력노조의 합의사항이든 철도노조의 합의사항이든, 민영화 방침은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며, 인원감축 또한 멈추지 않겠다는 정부의 굳센 의지만이 확인될 뿐이다. 지난 반년간 공공연대가 줄곧 외쳐왔던 민영화․해외매각 중단, 관치경영 철폐, 획일적․일방적 구조조정 중단, 공공부문 중앙노정교섭기구 설치, 이러한 주요 요구사항이 조금이라도 관철되기는커녕 다시금 물밑으로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다. 투쟁의 시작이 잘못이었나, 그 과정의 문제인가, 온 힘을 다 쏟았는데 결과만이 미흡할 뿐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잘못된 것인가?


연대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하나의 성과는 있다. 98년과 99년 두 해에 걸쳐 구조조정이라는 허울 아래 예산 삭감, 인원 감축, 퇴직금 누진제 폐지, 연봉제․계약제 실시, 정년단축 등을 아무런 대책없이 강요당했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하나로 모여 한 목소리로 투쟁을 외쳤다는 사실이다. 공공연대는 그것만으로도 사실 큰 일을 했다. 그러나 공공연대의 성과가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연대투쟁을 성립’시켰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소 지나친 평가이다. 공공연대는 양대 노총 산하의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느슨한 ‘연대’를 통하여 대정부 협상안을 만들어낸 것이지, 결코 ‘투쟁’을 조직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투쟁을 책임질 지도역량도 없이, 투쟁에 대한 경험도 없이, 힘있는 총파업투쟁을 준비했노라고 한다면, 그것은 조합원 대중에 대한 기만이다. 더군다나, 끝 무렵에 가서 공동투쟁위원회까지 발족하기는 했지만, 두 노총은 공공연대를 적극 지원해온 것도 아니었으니.
공공연대는 협상인지 투쟁인지 다소 불명확한 전략적 목표를 설정했지만, 현장의 분노와 요구에 밀려 투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공공부문이 경제회생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양 싸잡아 매도하는 정부와 자본의 공세에 맞서, 99년 4월 총파업 투쟁의 실패로 인하여 다시금 총파업 투쟁으로 치닫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던 공공연맹보다는, IMF 이후 이렇다할 투쟁을 전개하지 못한 한국노총 산하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앞장서서 공공노협을 결성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목을 조여오는 정부의 구조조정 칼날을 직접 느끼면서 가만히 있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 특히 전력산업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99년에 한 차례 공동투쟁을 추진했던 전력노조의 직선 집행부는 민영화․해외매각의 문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결연했다. 총파업조차, 투쟁의 시작에서는 결코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투쟁을 위한 연대는 시작되었다. 4만명을 웃도는 조합원 대중이 참가한 제1차 총력투쟁 결의대회(10/8, 여의도)에서 2만여명이 참가한 제2차 총력투쟁 결의대회(11/26, 서울역)까지, 대중의 투쟁의지는 드높았다. 공공연대는 집행위원회와 실무팀을 두고 밤낮으로 헌신적으로 뛰었다. 공공부문 노조간부 결의대회(11/14), 공공연대 지도부 국회 앞 농성투쟁(11/22)을 비롯하여 11월 30일 공동행동의 날까지, 공공부문 총파업투쟁은 하나하나 구체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 확인했던 것이지만, 대정부 투쟁은 단순히 단위노조의 요구사항을 하나로 모아 시기를 집중하는 임단협 투쟁과는 다른 것이다. 공공부문을 상대로 진행되는 일련의 구조조정은 단위 사업장 사용자의 손을 떠나 정부, 직접적으로는 기획예산처의 강압적인 지침에 의해서 하나씩 구체화되고 있으므로, 정부를 곧바로 타격하지 않고는 성과를 이끌어낼 수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단일한 대오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미 말했듯이, 공공연대는 대정부 투쟁을 지도할 수 있는 단일한 지도역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느슨한 연대의 수준에서 투쟁을 조직하는 길은, 바로 현장 단위의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공공연대가 이끄는 공동투쟁은 현장조직을 점검하지 못했고, 그래서 조직력에 기반한 대정부 투쟁을 제대로 준비할 수가 없었다. 공공연맹의 최대 노조인 한국통신노조조차 강제적 명예퇴직이 현실화되자 뒤늦게 투쟁을 시작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장의 조건은 사업장마다 달랐고, 그것을 하나의 투쟁으로 묶어세우는 준비는 부족했다.
연대는 노동자의 대동단결을 바탕으로 서로를 책임지고, 또한 투쟁을 책임지겠다는 조직적 결사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 공공연대가 투쟁에 대한 책임까지 공유하는 연대조직이 될 때,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다시 한 덩어리가 되어 총파업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연대 투쟁과정에서 대규모 노조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된 점, 상층연대에 치중하여 단위노조 조직화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한 점, 공기업 이외의 다른 노조 참여를 적극 조직하지 못한 점, 연맹 내부에서도 통일된 의견을 도출하지 못한 점 등, 공공연대에 대한 공공연맹의 평가(안)는 다소 관성적이고 진작부터 예측 가능한 평가라는 점에서 아쉬운 면이 있다. 연대는 더 이상 정치적 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공부문 연대의 전망과 여전한 기대

다소 안타까운 결말에도 불구하고, 공공연대는 지난 6개월여 동안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기대와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또한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한국사회 노동운동이 당분간은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재편과정에 따라 크게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공공연대에 대한 평가는 필연적으로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통합논의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12월 13일 임원선거를 치르게 될 공공연맹의 두 후보진영은 공공연대를 강화하여 공공대산별로 나갈 것이라고 공약하고 있다. 공공연맹은 이미 민주노총 산하 유관 연맹에 통합논의에 들어가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대통합은 오래지 않아 가시권에 들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코 요원한 일도 아니다.
보자.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10만 조합원을 자랑하는 지금의 공공연맹은 태어나지도 않았다. 공공연맹 자체가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의 재편과 통합이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공공연맹은 공공부문 노동조합대표자회의(공노대)의 후신인 옛 공공연맹과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이 탈바꿈한 전국공익․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공익노련), 그리고 전국민주철도 지하철노동조합연맹(민철노련)이 98년부터 통합논의를 시작하여 99년 상반기 투쟁까지 공동으로 책임지면서 건설한 통합조직이다. 통합하자마자 서울지하철노조를 선봉으로 해서 벌였던 4․19 총파업투쟁은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바꾸기 위한 위력적인 정치파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구속자 32명, 고소고발자 270명, 직권면직 65명, 파면과 해임 26명, 직위해제 172명, 39억 4천만원 손해배상 청구, 조합비 전액 가압류라는 극단적인 탄압을 지나서, 지금 서울지하철노조가 공공연맹의 주요 노조로 버티고 있다. 그리고 일년 후, 이번에는 사회보험노조가 정부의 극렬한 탄압에 맞서 서울지하철노조 못지 않은 강고한 투쟁을 거치며, 또한 공공연맹의 주력대오로 함께 하고 있다. 비단 큰 노조뿐만 아니다. 직권중재사업장인 서울도시가스노조가 파업투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 2000년 상반기의 일이고, 경기도노조, 동명기술공단노조, 전국 각지의 자동차운전전문학원노조 등 크고 작은 노조들이 앞서거니 하면서 투쟁의 대오를 잇고 있다. 이 조직들이 공공연맹의 이름 아래 하나의 투쟁전선을 형성하리라고는, 2년 전에는 감히 예측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역사는 머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시 공공연대로 돌아와, 지금부터 할 일을 생각한다. 두말할 것 없이, 처음부터 다시 투쟁을 조직하는 일이 우선이다. 물론 상층의 연대가 아닌, 현장에서부터의 조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가를 위한 낭만적인 평가가 아니라, 참으로 엄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2000년에 시한을 둔 투쟁계획이었다면 김대중 정권을 끝장낼 때까지로 수정해야 한다. 자신들의 현 위치를 고정시킨 계획이었다면, 자기 자리를 옮기거나 떠나는 것까지 포함해야 한다. 투쟁의 시기를 통하여 현장의 조합원들은 투쟁 지도부에 대한 평가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하게 된다. 단지 분노하는 조합원 대중들에 떠밀려 공공연대의 투쟁대오에 생색내기로 참가한 대표자가 있다면, 지금이 책임지고 물러날 때이다. 그리고 나서야, 공공연대는 구조조정 분쇄를 위한 준비된 투쟁, 책임지는 투쟁을 조직하면서, 공공 대통합과 공공 대산별 건설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준비를 비로소 마치는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을 피하고 갈 곳이 없다

한국과학기술원이라는 정부출연기관이 있다. 기획예산처의 지침에 따라 사용자는 시설관리부문을 민영화하겠다고 나섰다. 노동조합이 파업으로 맞섰다. 260여명의 조합원 중에서 50명이 시설관리부문 조합원인데, 파업 현장에는 거의 전 조합원이 모두 참가했다. 사용자는 정부의 지침을 이유로 협상조차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다. 12월 11일 현재 64일째 천막농성중이고, 간부 2명이 6일째 단식투쟁중이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이라는 곳이 있다. 직원이 40명 남짓하고, 조합원이 30명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과학기술부의 관료가 재단이사장으로 부임했다.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노동조합이 투쟁에 나섰다. 40일을 넘게 가열찬 파업투쟁을 굳세게 진행했다. 밀라노 프로젝트의 중심역할을 맡고 있는 대구의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은 노동조합을 만든 지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정상적인 노사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싫다고 이사장이 재단의 금고 문을 아예 봉쇄하기까지 하더니, 몇 달 걸려 실무교섭에서 가까스로 합의한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여기서도 투쟁은 계속된다.
공공부문의 투쟁은 직접적인 생존권의 문제에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형태로 투쟁은 촉발된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공공재적 성격의 각종 공공, 공익적 서비스를 좀 더 노동자․민중의 편의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쓰겠다는 노동자들의 직업적 자의식과 그것을 자본의 이해에 종속시키려는 정부의 무모한 발상의 충돌에서 시작되기 일쑤이다. 커다란 싸움판에 가려, 저마다의 현장에서 온 몸을 내던지며 투쟁하고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있다. 그 가운데에 현장 투쟁의 구심조차 없이 개별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아직 많다. 요컨대,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개별 자본과의 싸움이 아닌 대정부 투쟁을 통하여 총자본과의 세력판도를 바꾸는 첨병들인 것이다.
공공연대에 대한 몇 가지 평가와 견해들을 조심스럽게 제시했지만, 공공연대가 이끌었던 하반기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자체가 전체 국민의 생존권을 지키고 더 나은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하여 현시기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바꾸고자 한 투쟁이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여러 안타까운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공공연대의 이번 경험과 그 평가를 바탕으로 하여, 느슨한 연대가 아닌 실질적인 총력투쟁을 위한 상설적 연대의 틀을 확보하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사업과 아울러 공무원노조의 합법화를 통하여 전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대동단결을 실현하는 것이다. 투쟁의 함성이 우렁차게 울리다가 잠시 멈춘 지금이야말로, 여태껏 투쟁하는 현장의 노동자들과, 아울러 아직 조직화되지 않은 곳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노동자들까지, 이후 더 큰 투쟁의 대오에 뛰어들 수 있게끔 살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그것이 또한 더 큰 투쟁, 그 주체적인 동력을 현장에서부터 일으켜 세우는 조직사업의 기본일 것이니. 한/노/정/연

2000-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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