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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정치의 동학

현장에서 미래를  제61호
이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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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초점



최소정치의 동학*
* 이 글의 전반부는 ꡔ한겨레 21ꡕ에 썼던 내용을 다소 수정한 것이다. 후반부는 12월 7일까지의 상황전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현재로서는 선거 당선자가 확정되지는 않았고 이후의 변화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지만, 이 글의 논지는 누가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런 사태가 일어났느냐에 있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황이 워낙 급변하는 와중이기 때문에 다소간의 오류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차후 기회가 된다면 수정하겠다.

이 공 순
New Scholl for Social Research 정치학과 박사과정




선거가 가장 큰 정치적 효과를 갖는 때는 그것을 통해 주권이, 국민의 의사가 확인되는 순간이 아니라 이 선거가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하는













는, 오히려 주권의 확인을 봉쇄함으로써 선거결과에 대한 어떠한 정당성도 부여하지 못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정선거는 어느 사회에서나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을 야기시켰고, 설사 ‘부정’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선거결과의 ‘부정확성’은 그 사회가 갖고 있는 정치제도의 문제점을 노출시켜왔다. 20세기의 마지막 선거로 기록될 지난 11월의 미국의 대선은 바로 이같은 점에서 미국의 정치체제가 숨기고 있던 온갖 모순과 비리들을 한꺼번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미국의 정치제도는 민주주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부분적이고 결함이 많고 그렇다고 진보한 봉건제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다. 사실 어느 쪽에 더 기울어져 있는가 또는 어느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한번도 진지하게 시험대에 올라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의 전개과정은 대중들의 예기치 못한 대규모 정치참여와 그 참여로 인한 미국식 민주주의 결함의 노정, 그리고 그 결과에 당혹한 엘리트들이 정치로부터 대중을 분리하려는, 그러나 모두 감추지는 못하는, 미국 정치제도의 필사적인 노력도 함께 보여준다. 아직 모든 사태의 진행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다소 성급하게 결론짓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 교훈을 바탕삼아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미국이―최소한의 형식적 의미에서조차―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합리적인 해결절차를 가졌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순진한 일일 것이다. 이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민주, 공화 양당의 선거 전략을 중심으로 이들이 제도화된 정치적 행사에 어떻게 대중을 동원했는가, 즉 미국사회의 변화가 양당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접근방식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를 분석하고 다음으로는 개표일 이후의 사태를 중심으로 미국식 민주주의와 정치적인 것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하였다.
어느 나라건 역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시점에서 집권당이 바뀌는 경우는, 즉 정책이 새롭게 바뀌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국 대선은 정반대되는 두 가지 입장이 첨예하게 그리고 너무도 근접하게 대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과정 및 결과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인종별, 계급별, 성별, 지역별로 투표성향이 너무나도 확연히 구분되었으며, 그 어느 쪽도 압도적인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당파적’이었다. 비록 이 차이들이 이념적이거나 격화된 대립의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전통적으로 타협과 조정의 정치를 자랑해온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결과에 이른 것은 먼저 공화당이 정치적으로 활성화되어 있었고, 이에 대해 이른바 마이너리티(인종구별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의 반대 참여가 폭넓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무엇보다 선거참여율이 역대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미국의 독특한 선거방식 때문에 정확한 투표율 집계는 현재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 비해 1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처럼 투표율이 늘어난 것은 단지 자신에게 유리한 후보에 대한 지지표를 던진 것뿐만이 아니라 서로가 상대방의 정책과 통치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이래의 최대 투표율이 될 것이라는 이 계산도 사실 전체 인구수에 비교해 본다면 투표권이 있는 미국인들의 고작 60%여만이 투표에 참가한 것에 불과하다. 지난 96년 공화당의 밥 돌 후보에 대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클린턴 현 대통령은 전체 투표가능 인구수에 비교해 본다면 사실 20여% 정도의 득표로 대권을 움켜쥐었다. 지난 70년대 이후 미국을 휩쓸었던 정치적 무관심, 또는 대중들을 정치로부터 배제시키는 기제는 참여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할 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개표 초반에 “대중들이 선거에 많이 참여한 것은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며 체제의 건강성을 희망적으로 논할 만큼 예상밖의 인구가 선거에 참여했다. 애초 두 후보가 서로 백중세를 보여 투표율이 다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기는 했지만 이같은 정도의 대거―그렇지만 다른 국가에 비교하면 여전히 과소참여라고 할 수 있다―참여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대중들의 정치참여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는 것, 즉 대중들이 정치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왜 이처럼 투표율이 높아졌는가? 그리고 왜 이 높아진 투표율은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숨넘어가는 백중세를 만들어내었는가?
투표율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그동안 정치적으로 거의 배제되어 있던 소수민족, 이른바 마이너리티들의 대거 선거참여를 들 수 있다. 흑인들뿐만 아니라 히스패닉(중남미의 스페인계 및 혼혈, 원주민들)의 선거 참여가 두드러졌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민주당 고어 후보의 선거 전략이 한몫한다. 고어 진영은 선거 초반부터 소수민족과 여성, 노동자계층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연방정부의 역할 강화나 의료보험, 사회보장제도의 확충 등 마치 지난 30년대 뉴딜 때의 민주당과 유사한 목소리라는 평을 받아가면서까지 이 문제에 매달렸다. 다른 한편으로 이같은 선거전략은 고어에게는 화근이기도 했다. 그의 정책이 사회의 소외계층에 주목하면서 ‘좌파’라는 평가를 받게되고 이것이 특히 중부에서의 백인층의 지지를 상실하게되는 계기가 됐다. 고어가 자신의 출신지역인 테네시주에서까지 패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고어 후보를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다지 사태에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미국의 정치지형은 이번에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힐러리 클린턴이 ‘공산주의자’라고 불릴 만큼 우편향이 강하다). 여기에다가 소수민족의 진출에 불안감을 갖고 있는 중남부의 백인-남성-중산층의 부시 지지표가 클린턴 행정부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커다란 여세로 몰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시 후보의 선거전략 역시 이같은 백인사회의 전통적인 가치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나 그 백중세에 있어서 백인주류사회와 그 변화를 요구하는 증가하는 소수민족의 정치적 영향력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민주당을 보면, 비록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노조에 지지세력을 갖고 있었지만 지난 80년대 초반 레이건에 의해 ‘뉴딜 코알리션’이 붕괴된 이후에 가장 폭넓고 강력한 노조의 지지를 고어 후보는 받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산별노조 전국연맹체인 AFL-CIO는 일찌감치 고어를 밀기로 결정한 뒤 전 조직력을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가담했다. 중북부의 산업지대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지역은 노조의 조직력이 강한 지역과 거의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노조 조직률이 15%를 맴도는 역사적인 최저 수준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만 가지고는 고어가 곧 노동자들을 대표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남부의 신흥산업지대에서는 부시 후보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따라서 고어는 노동자 일반이 아닌 조직화된 노동자들을 대표했다고 볼 수 있다. 성별로 본 투표성향에서는 고어는 여성 유권자들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전체 투표 여성의 60%가 고어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고어의 여성표 공략은 다분히 전략적인 것이었다. 지난 94년의 깅그리치가 이끄는 공화당의 약진 이후 60년대부터 쌓아올린 여권운동의 성과들이 조금씩 무너져가는 추세 속에서 고어는 특히 낙태문제에 대해 강력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선거 전략가들은 오히려 남성 및 중도보수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우려했다. 비록 그 강도나 지지세에 있어서 지난 10여년간보다는 더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조직화된 노동과 여성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지지기반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이 선거의 가장 큰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종문제에 들어서면 정치적 지평은 확연히 달라진다. 고어 후보는 자신을 소수민족의 대변자로서 비치도록 정치적 연출을 계획했고 이 전략은 90년대 들어 히스패닉 인구수 급증으로 인구구성비가 바뀐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부시가 레이건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캘리포니아는 레이건 코알리션―공화당과 노동자계층, 전통적 가치 그리고 미국우선주의의 혼합물―의 본고장이다) 그곳에서 역전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은 팽팽했던 균형을 히스패닉 투표가 깬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는 투표에 참가한 흑인의 90%, 히스패닉의 80%가 고어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들이 고어의 정책에 더 호의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들의 지지열기가 고어 후보를 자신들의 정치적 대변자로 일치시킬 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표가 쏟아진 것은 단지 고어의 마이너리티 코알리션 선거전략 이상의 의미가 있다. 즉 그들에게 부시 후보가 소수민족에게 차별적인 백인주류사회의 대표자로 비쳐진 점이다. 그런만큼 이들의 투표는 지난 200년간 미국을 지배해온 전통적인 백인사회의 가치에 도전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부시 후보가 주지사로 있는 텍사스주가 미국 내에서도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것으로 악명 높다는 점도 한몫한다(예컨대 지난해 텍사스주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을 차에 매달아 찢어 죽인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후반 들어 급증하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이는 이민자 급증과 소수민족 영향력 증대에 대한 백인사회의 반발이다) 범죄가 소수민족들 사이에 강력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플로리다주의 한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주로 유색인종들로 구성되어있다)에서는 고어에 대한 지지 때문에 투표한 사람들이 40%, 나머지 60%는 부시에 반대하기 때문에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이에 반해 부시 후보는 가장 전통적인 미국인 상을 부각시키는 데 선거전략을 맞추었다. ‘기회’와 ‘개인의 선택’이라는 가치는 심지어 사회보장정책에까지 확대되어 개인들이 자신이 낸 세금을 개인적으로 돌려받아 다시 민간부문에 재투자해 그 이윤을 챙길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중산층 이상의 세금을 대폭 감면하는 조세정책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러나 부시 지지자들이 고어 지지자에 비해 훨씬 정열적으로 부시를 지지한 것은 단지 이같은 정책의 선호도 때문만은 역시 아니다. 여기에는 부시의 퍼스낼리티 전략(쉽게 우리말로 하면 ‘인간성’ 선호도 전략이다)이 주효했다. 부시는 ‘fun guy’(재미있는 사람―미국사회에서는 몹시 중요하다. 고어의 딱딱하고 유머없는 인간성과의 비교는 주요한 선거전략이었다)로 자신을 내세웠고 무엇보다도 ‘성실성’을 제일의 무기로 삼았다. 그는 너무 유식하지도 않았으며(정반대라서 오히려 문제였다), 인간적이었고(동정적 보수주의가 그의 정치이념이다),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사람(부시는 술로 문제를 일으킨 경력이 있다)으로 제시되었다. 특히 성실성은 온갖 불성실이 난무한 클린턴-고어 행정부의 재임에 대한 미국의 이미지 실추에 대한 보상으로서 미국제일주의와 함께 가장 중요한 동원 전략이 됐다. 따라서 백인들은 위기에 빠진 자신들의 정치적, 도덕적 영향력에 대한 해결사로서 부시를 해석했다. 그는 확실히 메시아는 아니었더라도 전도사쯤은 되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동안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책에 대한 선호도는 공화당원들 사이에서조차 부시 쪽 보다는 민주당의 고어 쪽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그만큼의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책에 대한 이견보다도 누가 이 사회를 정치적으로 지배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미국사회의 둘로 나눠진 모습을 역설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선거 이후 - 대중 배제의 정치적, 법률적 과정

한국에서의 일부의 오해―미국은 후보를 한달 넘게 확정짓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동요의 조짐도 보이지 않은 채 법원의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성숙한 민주국가라는 오해―는 양당으로 철저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미국의 정당제도 및 이 양당 구조의 중재자로서의 사법체계라는 정치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근본적인 질문, 즉 과연 법원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일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간과하는 데에서 오는 것 같다. ‘헌법적 위기’로의 발전 조짐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는 동요의 빛을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성숙함’의 결과인지 아니면 대중을 정치적 과정으로부터 배제시킨 결과(또는 그런 과정)인지의 여부는 다시 따져 보아야한다.
투개표 과정에서의 모든 문제점은 사실 대중들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비롯됐다. 대중들이 투표장에 몰려들기 시작하자 비로소 과거에는 숨겨져 있었던 문제점들―투표인 명부는 오류투성이고, 투표기계는 고장으로 멈추어 섰으며, 개표기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 이것은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플로리다는 지난 97년 마이애미 시장을 재선거로 선출한 적 있으며(투개표 과정 문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정선거 때문이었다), 뉴욕에서도 지난 96년, 98년 선거에서 이미 투개표기의 고장과 투표인 명부 누락이 심심치 않게 지면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고 온 것은 역설적으로 대중은 그 이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충의 계산으로 승패가 가려지면 그것으로 선거는 막을 내린다. 선거가 백중세인 경우인 조차 금쪽같은 한표의 향배는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된다. 기본적으로 주 선관위가 독립적인 기구라기보다는 민주, 공화 양당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당파조직이다(주마다 조금씩 다르다). 미국유색인종지위향상협의회는, 플로리다에서는 흑인들이 경찰의 위협으로 투표하지 못했으며 마이매미에서는 투표함 중 하나가 호텔방에 놓여있다는 제보를 받고 사진을 찍어 공개했다. 또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통역자가 투표장에 준비되어 있지 않아 투표를 하지 못했다는 등의 각종 사례를 모아 연방 법무부에 조사를 요청했다. 적어도 60년대 시민권운동 이전의 흑인 투표배제사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지금과 같은 한 표가 민감한 시기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전혀 새로운 문제들은 아니다. 선거 때마다 나름대로 지역신문의 한 구석에 실렸던 화제였다. 다만 아무도 그것이 자신들의 정치시스템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따라서 투표가 됐느니 마느니를 따지는 챠드나 딤플 투표와 같은 용어들은 미국 민주주의의 단지 ‘기술적’인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역으로 이 기술적 결함이야말로 정치적 결함, 즉 대중들을 정치적 과정으로부터 배제시킨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미국 대선의 개표과정에는 온갖 정치적, 법률적 논란이 등장했지만 한국의 경험에 비추어본다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두 가지 사안은 거의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하나는 재선거 여부에 대한 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오히려 미국인들이 자랑으로 삼는 ‘비폭력’, 즉 대중이 사법적 또는 정치적 타결에 기대를 갖고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자부터 먼저 살펴본다면 폭력사태까지는 아니더라도 플로리다주뿐만이 아니라 미국 각지에서 선거결과에 대해 각종 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시위의 양상이나 구호는 지극히 제한되고 통제된 것이었다. 이들 시위는 큰 갈래로 본다면 부시의 승리를 인정하라는 주장과 개표를 끝까지 지켜보아야 한다는 단지 민주, 공화 양당 후보의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각 당의 지령을 받아 수행하는 동원된 집회였다. 유일한 예외는 개표 첫날 플로리다 마이애미시에서 벌어진 유태인들과 흑인 합동의(유례가 전혀 없는 일이다) ‘버터플라이 투표용지’에 대한 항의시위가 있었을 뿐이다. 자발적인, 자신들의 주권행사가 왜곡되었다는 항의는 그러나 그 이상으로 연장되지 못했다. 첫째,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 시위가 ‘정치적 규모’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흑인들의 참정권 제한에 항의하기 위해 대중적 동원력이 있는 민주당의 제시 잭슨 목사가 플로리다 현지로 내려가 ‘민주주의의 기본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조직하려고 했을 때,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극구 만류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처음부터 사태가 법률적 쟁송 이상으로 발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들은 잭슨 목사의 선동이 60년대의 시민권쟁취운동을 환기시킬까봐 두려워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결과를 둘러싸고 ‘대중투쟁’이 벌어질 것을 경계했다. 무엇보다도 민주당 지도부가 우려한 것은 대중집회가 공화당의 카운터 어택(반대공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었다. 민주당보다 이념적으로 훨씬 단결되어있고 정치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공화당과의 대중적 충돌이야말로 민주당 지도부의 소심과 현실안주, 그리고 근거 없는 낙관적 기대(재판을 통해서 투표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 설사 이번 대선에서 패한다손 치더라도 2년 뒤의 의회선거에서는 부시의 정통성을 문제삼아 승리하여 의회를 장악할 수 있다 등등)에 가장 큰 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처음부터 한쪽 무기를 내던지고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제시 잭슨 목사의 실패한 집회를 끝으로 민주당내의 급진적인 분파는 급속하게 대열로부터 멀어졌다. 따라서 민주당의 개표 이후 기본 전술은 법률소송과 고어 및 몇몇 측근들의 개인적 언론 활동에만 국한되었다. 의회의 민주당 지도부는 형식적으로만 고어를 지지하는 척 했으며, 사태가 장기화되고 백인주류사회의 여론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오히려 고어에게 사퇴압력을 넣는 데 앞장섰다. 대통령직이라는 개인적 야망이 걸려있던 고어와 그 수혜를 함께 입을 최측근만이 외로운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고어는 법정에서 “모든 투표는 헤아려져야한다”며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의 수호자로서 자신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법정 민주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법원은 때로는 한 사람의 남자(개표 마감일을 판정했던 1심 판사였던 루이스), 7명의 남녀(플로리다주 대법원 판사들), 9명의 남녀(연방대법원 판사들), 그리고 다시 1명의 남자(재검표 불가를 판정한 플로리다주 순회재판소 소울스 판사)의 손에서, 더 정확히는 각기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 정치재판을 이끌어나간, 그러나 법률이라는 형식의 힘 때문에 고어가 부정할 수 없었던, 몇몇 개인의 법원이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수호자’ 고어가 법정 외부의 어떠한 대중적 힘과도 결합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집회를 적절하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형성에 도움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이끌어나간 것은 부시 후보의 공화당진영이었다. 이들은 재검표를 반대하는 소규모 집회를 전국적으로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워싱턴시에 이른바 언론대책반을 두고 각지의 언론 인터뷰 주선 및 여론환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부시는 개표 당일의 잠정적 우세를 바탕으로 이미 자신을 ‘대통령 당선자’로서 사실상 간주하여 자신의 ‘가부장’적 스타일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비록 대중은 민주, 공화 양당으로 갈려져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람들은 그에게서 ‘안정’을 보았다. 어찌됐든 미국 문화에서 ‘아버지’(father figure)는 중요한 힘의 원천인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사회가 선택한 것은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에 따른 정책변화(특히 의료보험, 사회보장, 소수자차별 문제 등은 부시의 구상대로 될 경우 어마어마한 변화를 불러일으킨다)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안정과 영광이었다. 그 정치적 안정과 영광의 핵심은 다수파의 지배도 아니고 정책의 연속성도 아닌 사회적 기득권의 유지에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적 원칙의 포기는 단지 민주, 공화 두 정당이 투표를 위해 대중을 최대한 동원하고 이후의 정치적 과정에서는 최대한 대중을 배제하는 이중전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인들 스스로 이같은 의식이 대단히 희박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선거 4주 뒤, 아직도 선거결과가 미몽 속을 헤매고 있을 때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미국인의 25%만이 플로리다주의 개표가 공정하게 정확하게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하지만, 60%는 고어가 더 이상 법정다툼을 하지 말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산술적으로 말해 최소한 35%는 개표는 부정확하지만 고어는 물러서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부정확한 결과에 승복하라는 것이 바로 미국의 여론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기본적인 의문이 떠오른다. 그 부정확성이 ‘고의’가 아닌 설사 기술적 결함에 의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공정하게 정확하게 주권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아니던가? 이른바 제3세계의, 그리고 제1세계까지 포함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본원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왔던가? 민주화운동,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이 바로 이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적어도 미국인의 1/3은 이같은 초보적 의식조차도 시계범위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결과가 부정확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면 ‘재선거’는 왜 논의되지 않는가? 그러나 개표 직후 대중들의 열기가 가장 고조되던 시점에서조차 미국인의 1/4 미만만이 재선거를 지지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아예 여론조사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놀랍게도 미국은 재선거의 전통이 전무한 나라다. 재선거가 필요없을 만큼 투개표 관리가 잘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단지 재선거를 회피하기 위한 모든 제도적, 사회적 노력들이 충만한 사회이다. 최악의 대선으로 기록된 1876년의 선거에서 민주, 공화 양당의 후보가 각기 자신들이 과반수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노라고 다투었을 때에도 그 해결책으로 재선거가 논의된 적은 없었다. 단지 양당 동수로 협상위원회를 만들고 결국은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미 헌법에 선거결과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재선거가 아니라 의회에서의 해결방식을 명시해놓고 있다. 국민들은 일단 투표한 뒤에는 온갖 제도와 법률의 이름으로 배제된다. 결과가 모호할 때, 최종적인 결론은 정치인들의 손에서 협상과 담합으로 또는 법원을 정치적 지렛대로 이용한 다각적인 경쟁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지 국민에게 다시 물어서 확인하지는 않는다. 동일한 논리가 선거인단 제도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정당하게 선출된 선거인단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개인적 선호에 따라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다. 24개주에서는 이에 대한 처벌규정조차도 아예 없다. 따라서 선거인단이 자신을 뽑아준 선거구민의 의사와는 다르게 투표한 예가 꼭 드문 것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체육관 선거를 바꾸기 위해 수백만이 거리에 나섰던 경험을 가진 나라에서 미국식 민주주의와 정치안정에 대해 경탄하는 것은 경탄할만한 일이다.


미국이 잃은 것

이번 사태의 와중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사실 투표권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는 플로리다 선거구민도 부시도 고어도 아니다. 가장 큰 손실은 미국이 200년 동안이나 지켜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온 이들의 체제, 그중에서도 대통령직이라는 상징적인 권위와 법원이라는 중립적인 그리고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비쳐져온 법원이다.
19세기 독일의 한 헌법학자는 미국의 대통령제를 두고 ‘임기제 황제’라고까지 불렀다. 그만큼 강력한 권한과 권위를 가졌다는 평가였다. 특히 미국처럼 양당제가 확립되어 있는 곳에서는 대통령은 중재자로서, 대외문제에 대한 결정권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미국에서 대통령직이 갖는 권한은 그러나 그가 맡고 있는 행정권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다. 법률상 규정된 대통령이 갖는 행정권력의 정도는 대통령제를 두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 결코 크지 않다. 대통령의 권력은 오히려 그가 갖는 상징적인 지위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직은 전국민에 의해서 선출되는 자리, 즉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에 대해서 묘사했던 것처럼, 국민들에 대해서 직접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자리는 다른 선출직처럼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권력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이고 최종적인 권력을 대변한다. 대통령은 그가 국민에 대해서 갖고 있는 대중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의회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상 헌법의 최종적인 해석자이자 수호자인 대법원 판사 및 연방법원들을 지명할(비록 의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는 하지만)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20세기에 들어서서는, 대통령은 전체 국민의 의사에 따라 선출된, 따라서 국민의 대표자이며 그의 정치권력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다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바로 여기에 미국 대통령제의 함정과 신화가 함께 존재한다. 신화는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자라는 것이며, 함정은 그러나 그 자리가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은 국가의 대표자이기는 하지만 국민의 대표자는 아니다. 법률적 의미로 보자면 그는 주들을 대표할 따름이다. 다만 정치적 효과에 있어서만 그는 국민의 대표자로서 통치한다. 건국 초기의 잠시와 지난 1876년의 대선을 제외하면 이 간극이 문제가 된 경우는 전혀 없었다. 사실상 이제까지의 미국의 모든 국가권력 구조와 형태, 그리고 역사는 이같은 괴리가 계속 별문제 없이 유지되도록 뒷받침해온 제도 발전의 역사에 다름없다. 닉슨의 워터게이트 파문으로 최초의 손상을 입은 이 신화는 클린턴의 르윈스키 성추문으로 스캔들로 격하되었고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는 국민의 대표자라는 최대의 상징, 즉 선출과정의 정당성마저도 상실할 위기에 처해졌다. 대통령직이 대표자라는 상징을 훼손당했다면 법원이 상실한 것은 더욱 엄청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존재근거, 즉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당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법이란 당파적이며 편파적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가성격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은 아마도 ‘사법국가’일 것이다. 특히 20세기 들어 사법적극주의라는 원리 하에 법원은 법의 해석을 통해 사실상 법을 ‘창조’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칭송과 비난을 함께 들어오고 있다. 비록 대통령의 지명과 의회의 인준이라는 절차를 밟기는 하지만 특히 연방대법원의 권위는 거의 절대적이다. 금세기 들어 가장 강력한 대중적 지지를 받았던 루즈벨트 대통령조차 자신의 정책이 보수주의자 대법관들에 의해 번번히 저지되자 법률개정을 통해 대법관 임기와 수를 바꾸려하였고 이에 대법관의 반발로 헌정위기까지 치달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미국에서 법원의 신화는 객관성,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절대적 권위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제기된 수많은 소송의 과정에서 보여주듯이 이들의 판정을 예측하는 근거는 이들이 어느 당에 의해 임명되었는가, 이들이 어느 당과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색채를 같이하고 있는가였고 그 예측들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따라서 정당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때마다 스스로 만들어준 법원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더불어 법원 스스로도 그같은 예측에 들어맞는 판정을 내렸다.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다수의견으로 ‘전 선거구에 대한 미개표 투표의 재검표’를 명령했을 때, 공화당 의원들이 이들 법관들을 ‘당파적 놈들’이라고 비난한 것은 법과 정치의 안락한 별거가 사실상 한 밥그릇 안에서 서로를 겨냥해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번 선거 결과도 결국 연방대법원에 결정될 가능성이 몹시 크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은 사실 법원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정치의 일부라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같은 입장에서 연방대법원은 대선 결과와 같은 정치적 사안에 자신들 스스로가 당파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극력 회피해 왔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개표결과 마감일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질문 회신이다. 연방대법원은 스스로 판결을 내리지 않고, 그렇지만 자신들의 의도와 앞으로의 여지는 열어둔 채, 플로리다 주 대법원에 판결근거를 묻는 회신을 내려보냈다. 이같은 법적 수단은 그러나 보다 간교한 정치적 함의를 띠고 있다. 애초 연방대법원이 부시 쪽의 상고를 받아들여 심리를 진행한 것부터가 헌법학자들에게는 상당한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다. 주의 소관사항에 대해서는 연방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에 비추어볼 때 개표 및 인증절차에 대한 플로리다주의 내부문제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의 이같은 태도는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현재 대법원 판사 9명중 7명이 공화당 정권에 의해 임명되었다는 점이다(대법관 4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만 심리가 이루어질 수 있다). 즉 연방대법원이 부시 진영에 대한 ‘안전판’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상위 결정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결을 무효화시켜 설혹 수개표가 이루어져 고어가 승리한다손 치더라도 이를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리다주 대법원에 판결근거를 묻는 질문서를 보냄으로서 최종판결을 유보한 것은 연방대법원이 그동안 이른바 ‘국가적 사안’에 대해서는 소수의견을 내지 않고 전원일치 결정을 내려왔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예컨대 지난 5,60년대 시민권운동의 와중에서는 공화, 민주 어느 쪽 정권에 의해 임명되었느냐와 무관하게 흑인분리정책들에 대해 일관되게 전원일치 위헌판결을 내렸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선거 결과는 연방대법원 스스로의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다음 대통령의 임기 도중에 현 대법원장인 렌퀴스트를 포함, 적어도 3-4명의 대법관이 은퇴할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이다. 빈자리는 차기 대통령이 지명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대법원은, 만일 이번 선거의 최종결과가 그곳에서 결판이 나게 된다면, 스스로의 앞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대법원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판정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 근본적으로는 이 분열과 소란이 정치적 분열, 즉 정당들 사이의 극심한 대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정치를 감싸고 있는 사회적 도전에 대한 반응이라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도전은 더 이상 과거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도전은 뉴딜 이후 50년을 이끌어온 노동자와 자본가의 새삼스러운 첨예화도 아니었고(미국의 노동운동은 지난 30여년 간의 무기력에서 이제 간신히 기지개를 켜는 중이만 전도는 여전히 밝지 않다), 6,70년대의 여권운동의 폭풍도 아니었다. 가장 분명한 것은 그 도전이 소수민족의 의상을 입었다는 것이지만 소수민족들 역시 내부로부터 분열되어 있었다. 도전은 이 모든 것을 뭉뚱그린 산발적이지만 어디서나 맞닥뜨릴 수 있는 안개같은 것이었다. 공화당의 정치적 힘은 이 모호한 압력에 대한 백인 기득권층의 자기확인에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이들이 건국 초기의(차라리 건국 이전이다) 미국정신에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즉 종교, 도덕 그리고 백인우월주의라는 창연한 갑옷으로 무장한 것이다. 도전이 차이에 입각해 있다면 응전은 상상된 동일성에 뿌리박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단일하며, 동질적인만큼 강력하다. 오늘날 공화당의 주류분파는 80년대 레이건 시대에조차 그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중도파’가 아니라 닉슨 대통령 시절의 국론분열과 자유방임주의 반대해 형성된 이른바 ‘영 리퍼블리칸’이다. 지난 94년 상하원을 압도적인 차이로 장악한 ‘리퍼블리칸 레볼루션’(또는 깅그리치 레볼루션)이 바로 이들의 데뷔무대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배와도 다르다. 심지어 이들의 스승인 닉슨조차도 지난 60년 케네디와 대통령선거 당시 부정선거가 자행되었음을 알면서도 냉전 하에서의 ‘국익’을 생각해서 감히 이를 정치문제화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영 리퍼블리칸은 건국 200년만에 처음으로 예산안을 둘러싼 이견으로 행정부를 문닫게 만들만큼 당파적이고 전투적이다. 이들의 논리는 ‘우리들의 이해와 요구를 따르지 않는 정부는 우리들의 정부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들의 기준은 단지 자신들의 정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대해서 적용된다. 그들의 질서가 아니라면 질서가 아닌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공화당의 이같은 당파성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가장 핵심적인 사례는 플로리다주 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이 스스로 의회에서 특별결의로 선거인단을 선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법률적으로 이들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들의 결정은 동시에 대중투표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즉 투표로 나타난 대중의 의지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를 천명하는 셈이다. 게다가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헌법상의 근거도 사실은 보통선거권이 이루어지기 전에, 더구나 아직 정당이라는 형태가 생기기 이전의 ‘유력가’들의 모임으로서의 의회를 염두에 두고 생긴 구절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민주주의적 원칙보다는 당파성을 우위에 두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200년 묵은 헌법은 이같은 모든 비민주적 해석을 가능토록 하는 모호한 조항으로 가득차 있다. 공화당의 이같은 정치적 당파성을 고려해볼 때 이번 선거과정의 문제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펼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고어가 대통령으로 결정된다면 이런 예측에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부시의 경우는 다르다. 설사 국내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한 진통과 절충이 예상된다
















하더라도 국제적 문제에 있어서는 이같은 국내적 갈등이 정반대의 효과로 작용할 소지는 얼마든지 남아있다. 실제로 부시 후보가 아직도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결이 나기도 전에 행한 최초의 ‘대통령 자임’ 발언은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경고한다’는 것이었다. 부시의 외교정책이 고어에 비해 중국에 대한 ‘적’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갖고 있는 데다, 비록 해빙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분단이라는 화약고를 안고 있는 한반도의 실정에 비추어 본다면 능히 걱정해도 좋을 만한 일인 것이다. 한/노/정/연

2000-12-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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