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개혁의 큰 희망을 세우겠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월 31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교수노조추진기획단(상임단장 최갑수)을 발족하고
2001년 2월 출범을 목표로 교수노조 결성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현행 국가 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이
대학교수의 노조활동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민교협이 교수노조
설립 추진을 강행하기로 한 데는 그만큼 올바른 교육정책과
교수들의 교권이 풍전등화라는 위기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교수노조는 앞으로 △고등교육의 발전에 대한 중장기적 정책
연구 및 대안 제시 △교수업적평가제도 및 인사제도의 쇄신 등
교수 신분안정 문제 적극 개입 △시간강사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강사노조'와 연대 등의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여기에
모아논 글들은 교수노조추진단의 도움으로 그동안 제출된
자료들을 간추린 것이다.
우리 주위를 한번 둘러봅시다.
교육철학 없이 쏟아지는 교육정책,
비리재단에 의해 병들어 가는 사립대학,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 ...
대학사회에 시장논리를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정부의 ‘교육발전5개년계획’, ‘BK21’ 등은
대학간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대학을 취업현장으로
교수와 학생관계를 거래관계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사립대학의 비리구조와 맞물려 있는 교육부는
이미 사립재단에 대한 감독기능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또한 2002년 실시될 교수 계약제․연봉제는
건강한 비판세력이 되어야할 교수사회에 대한
정부와 사립재단의 통제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장래 대학사회는 사람사랑과 학문의 향기가 숨쉬기는커녕
엄혹한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파괴되어 갈 것입니다.
그 동안 교수사회는 대학개혁을 위해
각 대학의 교수협의회, 국교협, 사교련, 민교협 등을 통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러나 대학사회는 당면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힘있는 조직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이 바로 ‘전국교수노동조합’의 깃발을 올려야 할
때입니다.
하나의 단일한 힘으로 대학의
공공성․민주성․생산성
그리고 진정한 대학개혁을 이루어내는 것이
바로 우리 교수들의 책무인 것입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교수노조추진기획단’은
대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전국 교수들의 힘을 모아
‘전국교수노동조합’의 깃발을 올리려 합니다.
.대학개혁의 큰 희망을 세우겠습니다
교수가 노동자인가?
대학사회에는 교수가 노동자인가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교수 개인의 견해와 무관하게 교수들도
고용된 신분으로서 임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점에서 일반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교수는
전문성을 갖고 정신 노동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지식노동자라 할
수 있습니다.
지식노동자로서 교수는 일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익을
추구하는 한편, 교육과 학문의 발전이라는 직종 고유의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래도 ‘교수가 노동자임을 스스로 밝혀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제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사립대학의 전횡과 비리로 노동현장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교수들은 노동자로서 교육의
공공성 확보와 자신의 권익 추구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노동은 창조적인 것입니다. 노동자로서 우리 교수들은 소외된
노동에서 벗어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노동을 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제 우리 자신 스스로 노동 환경을 개혁하기
위해 단결력을 발휘하여야 할 때입니다.
외국에서는 교수들이 교수노조 또는 교수조합을 만들거나,
신중간층 노조와 같은 조직에 개별적으로 가입하여 자신들의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수만 노동자가
아닐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교수가 노동자인가 라는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교수 노조가 만들어졌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교수노동조합은 왜 필요한가?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의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기초 학문이 쇠락하고, 학문 연구의 장으로서 대학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으며, 교육의 장이라는 대학의 본질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학은 취업준비기관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거래의 관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진지한 교육과
학문의 장에 서 있던 교수는 경쟁 논리에 의해 진리 탐구, 학문
연구, 교육보다는 실적 위주의 업적 쌓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나아가 예상되는 계약제․연봉제의 본격적인 도입이
이루어지면, 교수들은 학문적 양심에 따라 심층적인 교육을
행하기보다 ‘수요자의 요구’라는 미명 아래 체제에 부응하는
지식 전수자로 전락할 것입니다. 계약제․연봉제 도입은
교수 신분 불안 요인일 뿐만 아니라 체제 순응적인 교육의
수단이 될 것입니다. 이를 막아내는 것은 교수들의 단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기존의 협의체 수준의 교수 조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기존 조직을 넘어서는 법적인
교수 조직 즉 노동조합이 필요합니다.
계약제․연봉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무엇인가?
계약제․연봉제는 그 자체로서도 공동체에 바람직하지 못한
제도라는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대학에서는 비판적인 의견을
제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계약제․연봉제는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대학에 대한
교육부 또는 사학 재단들의 효율적인 통제 수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특히 계약제는 교수의 비정규직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기일을
정하지 않고 계약해야 한다’는 노동법의 기본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사회에서 계약제 도입에 관한 논의가
무성하였지만 특정 직종 전체가 계약제의 대상이 되는 사례는
교수 계약제가 최초라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계약제가 그나마 정착하기 위해서는 평가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교수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투명성은 차치하고라도 체계적인 평가체제가 결여된 상태에서
경직된 교수 노동시장은 계약제가 통제를 위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도입되는 계약제․연봉제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현행법에서는 ‘대학의 교원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근무기간·급여·근무조건, 업적 및 성과약정 등
계약조건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2002년 1월 1일부터)’고만
밝히고 있어 법적으로는 강제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관행으로 볼 때 교육부와 사학재단은 반드시 실시하려 할
것입니다. 결국 교수들의 단결된 의지와 실천만이
계약제․연봉제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대학에 교수노동조합이 필요한가?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의 폐해는 특정 대학에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국․공립 대학은 교육부가 발표한 국립대학
개혁안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경쟁의 논리에 의해 기업 체제로
바뀔 것이며, 사립대학에서는 재단의 전횡이 강화될 것입니다.
교수들의 의사결정권이 높은 대학에서도 교수들의 교수권,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교수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축소될 것입니다.
이미 재단에 의해 학교 행정이 좌우되는 대학들에서는 교수권,
학습권 보다는 경영 이익이 최우선 시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특히 이미 재단의 비리가 만연하고, 재단의 비리가
확인된 대학에서는 교수들의 학교 정상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행적인 학교 운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 대학 문제의 해결은 해당 대학의 내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대학 사회의 단결된 힘과
상호부조를 통해서만 가능해집니다. ‘우리 대학은 문제없다’는
인식으로는 대학 사회 전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추진단은 일정시기가 되면, 교수노조준비위로 전환하여 발기인을
모집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모아 전국교수노조의 깃발을 올릴
것입니다. 노조가 건설되면, 모든 대학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한
정책결정에 대한 정부와 협상을 통해
공공성․민주성․생산성을 지향하는 대학으로
나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교수노동조합은
학교구성원의 참여가 높은 대학은 지부를 건설하고 지부가 없는
경우는 개인이 교수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교수협의회 강화와 교수노동조합 건설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
현재 교수협의회는 특정 대학에서 실질적인 의사 결정 기구로
활동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임의단체에
불과합니다. 교수들의 학사 행정 참여는 특정 보직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교수들의 합의된 견해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교수협의회의 법적기구, 의결기구화는 학내 민주화를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교수협의회의 법적기구화가 교수 노조의 필요성을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수노조와 교수협의회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다릅니다. 교수협의회는 개별 대학의 일상적인 행정,
대학의 장․단기 발전 전략 등을 담당하는 조직이며, 교수
노조는 개별 대학 차원에서는 교수 신분 보장을 통한 교수권
안정을 도모하고 중앙 노조를 통해서는 대학 교육 정책의 개혁을
위해서 활동할 것입니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전국 교수회는 부분적으로 교수 노조의
활동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수회와 교수노조는
조직의 성격과 법적인 위상의 차이로 인해 지향사업과
활동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는 합법화되면 정부와
교육정책에 관한 교섭권을 포함한 노동기본권을 인정받는
것이며, 교수회는 교수들의 임의적인 대표기구로서 교육부와
협의를 하게 될 것입니다. 교육문제는 어느 집단이 주도하고,
특정한 방식의 협의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각도로 힘을
쏟아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교수 노조와
교수회는 교육개혁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다른 방식으로 추구하는
보완 관계의 조직이 될 것입니다. 교수 노조 추진은 오히려
교수회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수노동조합 건설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교수 노조 건설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두가지 과제는
합법화와 조직률 증대입니다. 현재 법적으로는 공무원의
단결권을 금지하고 있으며, 초중고 교사들에 한해 특별법을 통해
노조 결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수 노조의 합법화를
위해서는 국가 공무원법 66조를 삭제하거나, 교원 노조에 관한
법에서 교수 조항을 삽입하거나, 교수 노조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동관련
분야에서 후진국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법개정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교수 노조 결성은 불법
노조가 아니라 법외 노조가 될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단결권은
법으로 보장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교수들은 정치적 활동이 보장되어 있는
직업으로서 법외 노조를 결성하였다는 이유로 탄압할 수
없습니다.
교수 노조 조직률은 교수 노조 활동력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교수 노조 조직률에 대해서 성급한 판단을 해서는
안되지만, 교수들의 존재 기반인 대학 교육의 정상화와 교수들의
안정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교수 노조는 다양한 교수 층의
참여가 가능한 조직입니다. 따라서 자기 권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모든 교수의 참여를 예상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또한
기존 노조들의 조직률이 10%를 간신히 상회하고 있는 사실을
참고로 한다면, 교수 노조 조직률 10%(5,000명 선)는 그
자체로서도 대단한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교수노동조합의 합법화는 가능한가?
교수들은 우리 사회에서 헌법 33조 1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기본권을 하위법에 따라 제한 받고 있는 세 집단(공무원,
경찰) 중의 하나입니다. 심지어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국회가 6급
이하 공무원의 단결권을 보장하는 법개정을 결의하였음에도 이를
거부하는 폭거를 저질렀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정권이 들어
선 후 노사정위원회에서는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교수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헌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노동기본권을 하위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은 위헌입니다.
그래서 민교협은 공무원법 66조, 사립학교법 58조 등의 관련법의
개정 청원을 하였으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이 문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교수 노조 건설은 합법화 과정을 통해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다른 집단의 노동기본권 획득에
기폭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수노동조합이 지향하는 대학의 모습은 어떤것인가?
노조가 집단 이기적이라는 편파적인 견해 아래 교수노조가 교수
신분 보장과 권익 옹호만을 위해서 활동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교수 신분 보장과 권익 옹호는 안정된
교육 개혁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이것을 집단
이기적인 현상으로 매도하는 것은 정당한 개혁 주장을 해오고
있는 다수 교수의 현실에 대해 눈을 감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교수노조는 교수 신분 보장을 통해, 경쟁의 논리로만 대학을
평가하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을 억제하고 공공성과 민주성을
중심으로 대학 개혁을 안정적으로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수의 신분 안정을 통해 교수노조는 기업경영의 논리로 대학을
재편하려는 모든 시도를 저지하고자 합니다. 단기적 효율성과
조직의 불안정을 무릅쓴 극단적인 상업주의적 논리로 대학을
재편하려는 시도는, 대학의 본질 자체를 황폐화시키는
행위입니다. 대학은 중장기적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학문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또한, 학문사상의 자유,
안정적 연구 조건, 충분한 연구 인프라 구축해야 하는 곳입니다.
균형있는 교양, 기초적 소양을 갖춘 사회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정책 강화가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 지배구조(정관학) 개혁, 대학 재정의 투명한
운영과 대학 교육 재정 확충 등을 통해 공공성과 민주성을 갖춘
대학 구조를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교수노조, 왜 필요한가
최 갑 수/민교협 교수노조추진단 상임단장, 서울대 서양사
「대학신문 관악시평」 2000년 11월 9일
교수노조 하면 의아해 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교수가
노동자냐고. 물론 대학교수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다. 하지만
고용된 신분으로서 주어진 일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교수 역시
노동자임이 분명하다. 교수는 육체노동자는 아니지만,
지식노동자 내지 정신노동자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교수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그것에 가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요즈음 교수노조의 문제가 제기되는 데는 보다 절박한
사정이 있다. 1960년 4월혁명 직후에 일각에서 교수노조의
필요성을 천명한 바 있지만, 교수사회는 1987년 6월 항쟁의 열띤
분위기 속에서도 고려하지 않았던 교수노조를 왜 이제서야
건설하려고 하는가? 여기에는 그간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일정
정도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현실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어가고 있다는 상황인식이 깔려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다. 하나는
교육부가 제 역할을 못하거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하였기
때문이다. 고등교육과 관련하여 교육부의 역할은 교육과 학문의
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사학재단에 대해 감독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사실 해방이후 우리 대학은 방치되었고
나라살림이 어려워 대학에 대한 투자는 빈약하였고 교육부의
역할도 학생의 데모를 막는데 국한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우리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대학에 독자적인
학문재생산체제의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지만 교육부는
고질적인 체질로 말미암아 올바른 학문정책의 수립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외면하고 'BK21'이나 ‘국공립대발전계획안’과 같은
졸렬한 정책을 실시하여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런 수준으로나마
키어온 기초학문마저도 무너뜨리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교육부는 입시정책을 남발할 뿐 학문발전에 관한 전망을 갖고
있지 못하며, 이런 속에서도 국공립대학에 대해 통제권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아울러 교육부는 사학재단에 대한 감독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교육부의 고위관료 출신이 사학재단의
연합회인 '한국대학법인협의회'의 사무총장직을 맡는 관행은
교육부가 사실상 사립대학의 비리구조와 맞물려 있음을 잘
보여준다. 교육부는 근본적으로 개편되어야 하는 것이다.
두번째 요인은 사학의 비리구조이다. 모든 사립대학이 부패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학소유주들은 대학을 치부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고등교육의 모든 왜곡된
구조가 생겨났다. 학교를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기니 비리가
생겨나고 비리가 있으니 교육부, 국회, 기타 요처에 먹이사슬을
만들고 이를 비판하는 교수들을 학교에서 내쫓고 있는 것이다.
교육관계법의 개정을 막고있는 세력이 바로 이들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의 대학현실이 얼마나 비참한 지 간단한 수치를 통해
살펴보자. 1999년 교육부 업무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27.4, 중학교 20.9, 전문대학 73.4,
대학 49.6명(1980년에는 27.9명)이고 교원확보율은 국공립대
67.2%, 사립대 56%, 전문대 40.6%이다. 참고로 1995년 기준으로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OECD 평균이 15.3, 미국 14.2, 일본 14.2,
캐나다 17.5, 아일랜드 12.3, 에스파냐 21.5명이었다. 1997년
국내박사학위취득자의 15%만이 4년제 대학에 신규 임용되었고,
시간강사 비율은 1970년 22%, 1980년 34%에서 1990년대에는
45%로 급증했다. 고등교육에서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6%로서, OECD 평균 80%, 캐나다 90.8%, 미국 48.4%, 일본
46.4%, 독일 90.4%, 프랑스 83.4%와 크게 대비된다. 교육환경이
애초 빈약했던 데다 그것마저도 크게 악화된 것이다. 이러고도
교육부는 어떻게 대학의 '국제경쟁력' 운운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교육의 공공성을
저버리고 국립대학을 기업과 같은 기구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사립대학은 최소한의 교육투자마저 외면한 채 등록금을 빼돌려
엄청난 액수의 이월적립금을 매년 조성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잘못된 대학지배구조에 교수사회가 주체적으로
대응할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현재 임의기구에
불과한 교수협의회는 자체적인 힘이 없으며, 교수회는 법적
지위를 확보 받고 있지 못하고 설사 법정기구화한다고 하더라도
교섭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교수들이 노동조합을
추진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조만이 단체교섭권을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교수노조는 교육의 공공성 민주성 생산성의 제고, 대학의 자치와
학문의 자유 확보, 교육 및 연구 인프라의 확충과 학문재생산
기반의 구축, 교권수호와 신분보장 등을 주요 활동방향으로 잡고
있다. 이를 위해 교수노조는 첫째 정 관 학의 복합체라고 할
현재의 교육지배구조를 혁파하고 이를 '공공성을 지향하고
민주적이며 투명한 교육체계'로 바꾸고, 둘째 고등교육 발전에
관한 중장기적 정책을 제시하고, 셋째 교수업적평가제도 및
인사제도의 쇄신을 통해 교수의 신분안정문제에 적극 개입하고,
넷째 학문후속세대의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시간강사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그들과 공동보조를 취할 것이다.
교수노조는 발족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사회와 교육의 민주화에
큰 공헌을 할 것이다. 그것은 대학의 민주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학문발전과 교육개혁에 기여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데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사립대 현실과 교수노조 필요성
성 낙 돈/민교협 교육위원장, 덕성여대 교수
「대한매일」 2000년 12월 18일
사립대학이 발전하려면 재단(이사회)이 대학(학교)의 자주성과
자치를 인정하고 재정지원 등을 통해 이를 신장해야 한다.
재단은 결코 학교를 ‘사유’하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지원하고 후원하는 것이다. 사회에 기여할 교육과 연구를 위해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며, 이러한 대학 활동을 뒷받침하고 돕기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재단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학재단은 학교를 후원하기는커녕 부정과 비리로
학교를 사유물화하며 수탈했다. 재단은 학교 운영의 90%이상을
등록금과 국고보조금으로 충당하고 불과 5%내외의
보조금(전입금)을 내면서도 학교를 장악한다. 학교예산의 유용과
횡령, 교수임용 및 재임용 비리, 반민주적 전횡과 족벌경영 등은
끊이지 않고 보도된다. 재단은 막강한 자금력과 인맥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법을 개정하여 이 법을 악용하고, 정치인 및
관료 등과 유착해 성장해 왔다. 고이수인의원은 사학재단의
이러한 부패구조를 일컬어 ‘교육마피아’라고 규정한 바 있다.
사학비리는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대표한다. 사학비리는
근본적으로 사학재단의 비리이며, 그 원인은 인사권을 비롯한
학교 운영상의 전권을 재단이 독점하는 데 있다. 재단의 독단과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교수들의 권리는 철저히 부정되고 있다.
사립학교법은 ‘교수협의회’와 같은 교수들의 자치조직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학 운영에 교수들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참여할 통로를 봉쇄한 것이다.
이로써 대학의 자주성과 독립성은 궤멸되고, 재단의 자율-사실상
대학과 교수에 대한 자의적 억압과 탄압-은 증폭됨으로써 사학의
공공성과 민주성의 기반은 훼손되었다. 교수 자치는 대학 자치의
근본이다. 교수 자치, 대학 자치만이 대학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사립대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교수협의회에 속한
교수는 불온시되어 재단 눈밖에 나기 십상이고 특히 재단의
횡포에 맞서 대학 자치를 지키려는 교수들은 탄압받게 마련이다.
부당 재임용탈락 조치로 강제 해직되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재단은 연구업적과 교육능력 면에서 우수한 교수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부담없이 재임용에서 탈락시킬 수 있다.
사립학교법은 교수들이 부당하게 재임용탈락 조치를 당하여도
구제해 줄 수 있는 어떤 방법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단의
전횡과 비리에 맞서 비판, 대항하고 사학 민주화를 요구하는
교수들이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해 고통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사립대 교수는 사실상 근로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마저도 인정받지 못하는, 신분이 극도로 불안정한
직업인이다. 일체의 소명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갑작스런
해직통보를 받고 수년간 근무한 교정에서 쫓겨나면서도 구제를
호소할 곳조차 찾을 수 없다. 교수직이라는 것은 사실상
‘부당해고’에도 전혀 대항할 수 없는, 온전한 ‘노동직’에도
미치지 못하는 직업이다.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들의
경험이 이같은 성격을 절실히 대변한다. 2002년
‘계약제․연봉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되면, ‘비정규직
노동직’으로서의 성격은 더욱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노동권’의 수준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립대 현실에서
‘교수노조’는 교수들이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정당방위 수단이다. 재단을 견제하고 비리와 횡포에
대항하여 대학을 발전시키려는 학자 및 교육자로서의 사명과
책임도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신분 안정 토대 위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교수노조는 교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사립대
운영의 정상화와 발전을 위한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