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금융권 통폐합, 대우자동차 부도사태로 한국노총, 민주노총 가릴
것없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이 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강한 결단력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고
하면서, 그동안의 파국이 마치 정책의 실패 내지 지연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호도하고 있지만 지금의 제2 경제위기나 더
한층 피폐화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삶은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결과임을 가릴 수는 없다.
노동자․민중은 민주노총을 노동자계급의 투쟁사령부로
세워내는 문제, 정치세력화에 걸림돌을 제거하는 문제, 생존권
투쟁을 정치투쟁으로 결합․발전시켜내는 문제 등 엄중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아직 이러한 과제를 현실화시킬
유력한 수단이 민주노총에 집중되어 있는 것 또한 한계이자
현실이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을 큰 틀에서 재점검하고 노선을
정립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인식 하에 「현장에서 미래를」 편집위원회에서는
12월 1월에 걸쳐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발전과 모색’이라는
주제하에 특집을 기획하였다.
이번호 특집은 그 두 번째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의 노선점검, 현장조직운동을 중심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투쟁, 선거공약을 통해 본 노동자 대중의 요구를
분석해 보았다.
1월 18일이면 3년의 임기로 민주노총을 이끌어갈 신임 위원장이
결정된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이번호 특집에서 문제제기하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받아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무엇보다도
선진 활동가의 고민이 확대되는 계기로 이 글들이 기여하길
기대한다.
고 민 택/노동자의 힘 강령위원장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발전과 모색(2)
민주노조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적 검토
1995년 11월 민주노총의 출범과 1996-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
이후 노동운동은 새로운 국면에 돌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유연화 공세가 전면화되고 있으며, 이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대중파업이 전개되고 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의 민주노조운동 포섭전략의 일환으로서 민주노총의
합법화와 노사정위원회의를 핵심으로 하는 체제내화가 시도되고
있다. 여기에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대중적
평가, 보수정치권 내부의 정계개편과 개헌을 둘러 싼 대립과
갈등, 김정일의 방한 및 통일방안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가능성
등을 볼 때, 2001년은 그 어느 해보다 역동적인 한 해가 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러한 새로운 국면에서 자신의 대중적 이념인
민주성, 자주성, 계급성을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으며, 동시에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의
전략적 과제 역시 이러한 정세에서 새롭게 재점검해야 할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는 96-97년
노동자총파업투쟁을 계기로 신노사관계, 총파업, 노사정위원회,
경제위기 논쟁, 정치세력화, 혁신과 조직민주주의, 구조조정
등을 둘러싸고 정치적 쟁점이 형성되었었다. 이러한 쟁점들은
투쟁사안에서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총노선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최근에는 상설공투체, 통일문제까지
포함되고 있다.
특히,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의 안(이하
전략안)이 제출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노동운동은 이제 어떤 노선을 갖는 세력도 자신의 입장을
총론적이고, 체계적인 수준으로 제출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물론 노동운동의 발전이 논쟁을 통해서만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정세와 노동운동의 발전수준은 모든 세력에게
체계화된 수준의 입장을 가지고 실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은 투쟁 전술 하나하나에 어떠한 조직발전
전망을 담고 있는지, 정책 하나하나에 어떠한 이념과 노선이
투영되어 있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운동발전단계라는 사실을 전략안은 거꾸로 말해주고
있다.
1. 민주노총이 걸어온 길
- 1기, 2기, 2기 보궐 지도부에 대한 평가
1995년 11월 민주노총의 출범과 함께 등장한 민주노총
1기(권영길 위원장) 지도부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기치 아래, 사회개혁투쟁을 전면에 내세웠고
시민운동과의 연대에 중점을 두었다. 1996년 4월 김영삼 정권의
‘신노사관계 구상’ 이후에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참여를
둘러싸고 ‘참여’와 ‘투쟁’ 사이에서 동요하다가 결국 12월
노동악법의 날치기 통과로 총파업투쟁을 전개했지만, 1997년 1월
중순 이후 내부 역량의 한계를 근거로 ‘유연한 전술’로
전환하면서 실질적으로 총파업을 접었다.
그 뒤 1기 지도부는 총파업투쟁의 패배의 원인을 의회 내에서
노동자를 지지․지원하는 정치세력의 결여 때문이라는
평가를 바탕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전략적인 과제로 추진해 왔던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합법 진보정당’의 건설로
추진하게 되며, 12월 대선 참여를 통해 1998년 1월에 ‘진보정당
추진위원회’를 건설했다.
권영길 위원장의 대선 출마로 직무대행을 맡게 된 배석범
직무대행은 1997년 11월 IMF 외환위기 직후 등장한 김대중
정권이 제안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결국 1998년 2월에
정리해고제를 수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의
정리해고제 수용은 대중적인 반발을 초래하여 배석범 직무대행은
사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민주노총은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민주노총 1기 지도부의 정리해고제의 수용은
배석범 직무대행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김영삼, 김대중 정권의 ‘신노사관계’가 노동자계급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하게 자각하지 못한, 민주노총 1기
지도부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의 최종적인
결과라고 본다. 그 결과 총파업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업고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합법 진보정당’ 건설의 길로
나아갔으나, 민주노총은 대중적 불신과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했고, 현장은 자본의 공세로 초토화됐다.
1998년 2월 배석범 직무대행이 사퇴한 후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단병호 위원장)’는 대의원대회에서
‘총파업투쟁의 조직화’를 그 임무로 부여받았음에도, 결국
파업투쟁 준비 부족, 민주노총의 내부 분열 가능성,
국민여론으로부터의 고립, 정치세력화에 장애 등을 이유로
파업투쟁을 철회하고 말았다. 비대위의 파업투쟁 철회는
민주노총 1기 지도부의 정리해고제 수용에 이어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 특히 자주성과 민주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비대위의 파업투쟁의 철회는 민주노총 내부에서 대중적으로
평가되지 않은 채, 선거국면으로 접어들고 말았다.
1998년 3월 말, 민주노총 2기 지도부 선거에서는 ‘투쟁과
혁신’을 내세운 이갑용 집행부가 당선됐다. ‘투쟁’은
정리해고제 도입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혁신’은
민주노총이 현장 노동자대중의 요구가 조직 내부에서 관철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주노총 2기 지도부는
‘투쟁’과 ‘혁신’을 통해 대중적 검증을 받겠다는 점에서
임기 1년을,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를 위해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준비되지 않은’ 지도부였던 2기 집행부는
5월 1일 노동절투쟁을 통해 대중투쟁의 동력을 다시 세워냈고,
5월 말 파업투쟁까지 조직했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 과정 속에서
민중연대투쟁과 노학연대투쟁을 복원했다. 그러나 2기 지도부의
정치적․조직적 한계는 6월에 들어서며 드러났다.
노사정위원회의 불참을 결의했으나, 민주노총 내부 세력관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참여와 탈퇴를 번복했고, ‘합법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한 1기의 정치세력화의 방침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극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혁신의 주요 과제로 제기했던
‘직선제’는 대의원수를 늘리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좌절되고 말았다.
1998년 7-8월 들어, 민주노총 2기 지도부의 한계가 들어 나면서
민주노조운동진영에는 두 가지의 의미있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하나는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둘러 싼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현장조직운동의 전국적인 부상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노선을 둘러싼 논쟁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기
지도부를 비판하면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옹호하고
계승하는 ‘사회적 조합주의’를 제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어
‘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의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비판하는 시도가 이루어졌으며, 이 논쟁은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를 둘러 싼 논쟁으로 확대되다가
중단됐다.
이 논쟁의 성과로 노동운동 내에 노선을 달리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이 대중적으로 확인됐으며, 동시에 각 세력은
자신의 입장을 체계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 때
‘사회적 조합주의’를 주장했던 세력이 자신의 노선을
체계화하기 위해 제기했던 것이 남아공의 ‘셉템버위원회’와
호주의 ‘21세기 노동조합운동 발전전략’을 모방한 ‘21세기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었다.
현장조직운동의 전국적인 부상은 1997년 하반기, 주요
대공장에서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의 계열이 집행부에
당선되고, 이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민주노총 1기
지도부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과 양보교섭, 그리고
정리해고제 수용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 계열의 비판적인 지지를 받았던 2기
지도부가 1기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자 현장조직운동의
정체성이 위협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1999년 1월
금속산업연맹의 선거에서 ‘혁신 지도부’를 출마시키면서
민주노조운동 내에 전국적인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운동의 비공식적 부문이었던 현장조직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민주노조운동은 민주노총 상층에서부터
현장조직에 이르기까지 노선적인 분화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선적인 분화를 노조운동의 분열로 볼 것인가, 노동운동의
합법칙적 발전 과정으로 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논란은 있지만,
‘정치운동 - 노동조합의 상층 지도부 - 현장조직’에
이르기까지의 노선적(경향적) 분화는 이후 더욱
확대․지속됐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상황에서 1999년 9월에 2기 보궐 지도부인
단병호 집행부가 출범했다. 단병호 집행부는 1, 2기에 걸친
노선의 분화를 노동조합운동 내부의 분열이라고 주장하면서
통합지도력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나 단병호 집행부는 “특정
정파에 소속하지 않겠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집행부를 우파와
중간파 연합으로 구성하여, 좌파를 배제하였으며, 2기
지도부에서 복원하거나 시도했던 노정협상과 민중연대 등을
활용하면서도 1기에서의 시민연대와 민주노동당 강화 입장을
지속해 나갔다.
그리고 1999년 11월 민주노총의 합법화 이후에는 한편으로는
합법화에 걸맞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합법화에 따른 권리인 국고보조금을 받고자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총파업투쟁을
조직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했다. 그로 인해 단병호
2기 보궐지도부는 노선적으로는 1기와 2기의 중간에서, 합법화에
걸맞는 노조활동과 김대중 정권에 맞선 대중투쟁의 조직화
사이에서 계속 혼란과 동요를 겪다가 그 어느 하나도 분명하게
하지 못하고 말았다. 5월 총파업투쟁에서 8월 신공안정국 투쟁,
그리고 10월 ASEM반대투쟁에 이르기까지 이런 혼란과 동요는
지속됐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분노는 계속 누적되어 갔다.
또한 노동운동의 노선 문제와 관련해서, 현실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대처하면서 주요한 전략적인
문제 예컨대, 노사정위원회,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정책참가,
산별노조 등에 대해서는 정치적 태도를 유보하고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에서의 정리 과제로 미뤄왔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소산물이 단병호 2기 보궐지도부에서
제출한 ‘노동운동발전전략(안)’이다. 1기의 노선과 2기의
노선간에 원칙없는 절충, 정세적 긴장감의 결여 ― 이것은 매
사안별 투쟁 속에서 자신의 노선을 검증하고 구체화시킨 투쟁의
소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 1기의
오류와 2기의 한계 사이에서의 애매함 등이 전략안 곳곳에서
확인되는 이유는 바로 이 안이 이러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제출됐기 때문이다. 노선의 분별, 정립을 분열로 이해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꾸로
누구의 동의도 힘있게 조직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미 노동운동이 세 가지 노선 혹은 경향으로 분화되고 정립되고
있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역사적 소산물이요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노동운동의 퇴보가 아니라 발전의
소산물이다. 이 현실의 극복은 3가지 노선을 절충하거나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분명히 하고 그 차이를
한편으로는 대중적으로 검증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차이를
극복할 정치적 역량을 축적해 나갈 때 가능하다.
그런데 사실 2기 보궐집행부는 4․13 총선 이후에
민주노동당 유지 입장의 즉각적인 발표, 8월의 금속산별노조
건설 결의, 그리고 주요 대공장에서의 현장조직 견인 시도 등
자신의 노선과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해 왔다고 평가된다.
한편에서는 대중조직의 통합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입장(자신의 입장)을 관철시켜 나가는 과정이었다.
사실 민주노총은 지금 심각한 대중적 불신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96-97년 이후 몇 차례에 걸친 총파업투쟁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통해 신자유주의 공세를 돌파하지 못하면서, 현장의
조합원들은 자신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민주노총이 지켜줄
수 있을까에 대해 불안해 하거나 불신하고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투쟁의 성과물이어야 할 ‘합법
진보정당’도 조직형식 전환을 통한 ‘산별노조’건설도 대중적
희망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조간부나
현장의 선진활동가들은 노동운동에 대한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전망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러한 희망이라도 있다면 지금 겪고
있는 현장의 어려움과 고통을 그나마 버텨 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략안은 노동자 대중의 불안과 불신이 바로 장기적인
‘노동운동의 발전 전망과 전략’의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견해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지도부에 대한 불신, 상부와
하부의 괴리, 연대투쟁의 약화 등 답답한 현실이 장기적인
전망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는가? 전략안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자주성’, ‘민주성’, ‘계급성’이라는 민주노총의 정체성이
“민주노조운동의 투쟁과정에서 형성”되어 왔고, 그 결과로
“민주노조운동의 독자적 생존과 전국적 구심점의 형성”됐으며,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발달”과 “노동계급의 권익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는 정당하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이러한 성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인 역량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결정적으로는 현 시기 천이백만 노동자계급의 가장 선진적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정치적 총파업투쟁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돌파해 나가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패에는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의 오류와 혼란이
야기한 문제가 있다. 김영삼 정권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 등에 대한 대응에서의 동요와 불명료함이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침해하였고, 노동법의 개악, 노동조합운동
상층의 관료화 등이 ‘총회 민주주의’라는 민주성을
훼손시켰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에 민주노총이 적극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민주노총의 계급적 대표성마저 손상받고 있다.
2.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발전을 위해
1)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임무
1994년 WTO체제 출범 이후, ‘시장’과 ‘자유화’를 기치로
한편으로는 무역자유화와 금융 및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유연화 공세를 전면화해 왔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가 이제 ‘새로운 국면’에 돌입하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국간의 대립과 지역블록화, 밀레니엄라운드
추진, 다자간 투자협정 추진 등 자본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으며,
세계 자본주의 경제를 주도해 가고 있는 미국경제를 비롯,
전세계적 차원의 경제불황․공황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일국 내의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
수준의 빈부격차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은 크게 두가지 양상으로 전면화되고
있다. 하나는 1999년 11월 시에틀에서의 WTO반대투쟁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났듯이 초국적 금융자본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요구하는 국제연대투쟁의 전개이고, 각 나라에서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노동자․민중들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투쟁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그러나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이 고양되면서 사민주의적 정치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이데올로기․정치적으로
노동당이나 사민당 등 개량주의의 정치적 영향력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국제연대투쟁과 일국
내 노동자․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이 단일한 계투로
결합되지 못한 채 분리되어 있다.
2) 김대중 정권 후반기, 국내 계투의 특징
4․13 총선 이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민족주의적인 통합전략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강행을 통해,
제2의 경제위기 국면을 돌파하고 집권 후반기에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한 김대중 정권이 2000년 하반기 들어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한 핵심 전략은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4대 ‘개혁’(기업, 금융, 공공, 노동)을
완수하여 국내 계급적 헤게모니를 구축해 내고, 동시에 정치의
한반도화를 통해 보수 정치권 내부를 재편하면서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치적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4․13 총선 결과로 인한 의회 내 소수당이라는 한계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집권당 내부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드러나면서 부르주아의회정치의 주도권은 물론
‘개혁’ 추진을 위한 명분과 도덕성마저 없음이 폭로됐다.
무엇보다 경제위기의 재현 조짐이 김대중 정권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부르주아 언론과 연구기관들은 경제성장률의
하강을 예측하고 있으며, 들쭉날쭉한 유가는 경제 전체를
압박하고 있다. IMF 이후 110조원을 투입한 기업구조조정의
결과가 부실하자 40조원의 추가 공적자금을 요구할 정도이고,
현대건설과 대우자동차 등의 부도 문제는 김대중 정권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으로 남아있다. 또한 김대중 정권의
경제정책에서 주요한 한 축을 이루었던 벤처기업의 부실과
부패가 드러나면서 주가가 하락하는 등 한국 경제는 다시 한번
제2의 IMF를 맞게 될 것이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현 시기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두가지 점에서
특징적이다. 하나는 한국 경제의 이러한 위기 재현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불철저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의 결과 그 자체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고,
그리하여 그러한 의미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파탄을
드러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경제 위기가
부르주아의회정치의 불안정, 한국 사회 전체의 위기와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적․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김대중 정권은
한편으로는 인원감축을 핵심으로 한 제2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함으로써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헌․DJP 공조복원 등 정계 개편을 통해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면서 권력의 주도권을 다시 장악하고자
하고 있다. 나아가 ‘지역, 이념 등이 주류였던 한국적 정치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한반도 전체와 동북아 정치구도 속에서
정권을 재창출한다’는, 정치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김대중
정권의 집권 후반기에도 어떤 형태로든 지속될 것이다. 이는
2001년 상반기에 김정일의 방한, 통일방안의 국민투표 실시 등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국내 정치의 구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계기로 활용할 것이다.
이로 인해, 현 시기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총체적 위기는
한편으로는 김대중 정권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 정치의 위기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이 위기가 어떠한 형태로 극복될 지는 계급대립과
힘관계의 변화에 따른 결과에 의해 드러날 것이다. 단 현 시기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원인이 지배계급이나
소부르주아 개혁분파에서 주장하듯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불철저함 혹은 지연, 구조개혁의 미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개혁 자체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이 위기는 ‘정책의 변화’ 수준, 혹은
‘지배계급 내부 정권의 변화’ 수준에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공세가 자본주의의 위기 극복을
위해 지배계급이 취할 수 있는 위기 극복책이었듯이, 그러한
구조조정의 결과 그 자체로 드러난 현재의 위기는 한국 자본주의
자체의 체제모순을 더욱 구조화시키고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2차 구조조정 공세에서
지배계급의 대노동자 공세는 어떠한 수사와 치장도 없이
‘인원감축’이라는 노동자에 대한 공세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고, 이 점에서 지배계급은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노골적인 노동자․민중에 대한 공세가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지만, 그만큼 계급대립이 투명해지고 격화되고 있다는 점이
바로 노동자와 민중에게는 희망일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의 후반기, 제2의 구조조정 국면의 모순은
필연적으로 지배계급 전체를 반동화시켜 나가고, 지배계급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며, 사회 전체의 계급간
대립을 격화시켜 나갈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권은 내부적으로
노동민중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강공책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노동자․민중들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동자․민중에 대한
공세를 통해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김대중 정권과 생존권의 벼랑 끝에 서있는
노동자․민중진영간의 대립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러한 계급 대립이 전면적이고 폭발적으로 이루어질지,
점진적인 형태로 이루어질지는 아직 예측할 수 없다. 그
주도권은 여전히 김대중 정권에게 있다. 김대중 정권은 여론을
주도하는 시민운동진영과 노동조합운동의 상층 지도부를 포섭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정치적 판단 속에서 유화책과 탄압을 동시에
구사해 나갈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진영,
민족주의적 통일운동세력에 대한 포섭, 혹은 부분적 지원,
그리고 개량주의적 진보진영에 대한 측면 지원 등을 통해,
노동자․민중의 생존권투쟁이 전계급적인 계투로 집중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생존권 투쟁은 증대하고
있지만, 이들의 투쟁을 단일한 계급의 투쟁으로 집중시켜 내고,
동시에 그 투쟁의 정치적 전망과 그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을
제시할 계급정치세력의 부재로, 여전히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생존권 투쟁 그 자체에 대한 정치적 책임까지 담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바로 이 점이 현 시기 노동자․민중투쟁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이다. 이로 인해 여전히
노동자․민중의 대중조직이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의회주의적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극복하는 데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점을 어떻게 극복하여 노동자계급 내부의 계급적
단결을 이뤄내고 반신자유주의 반김대중정권의 대중적
정치투쟁전선을 형성해 나가느냐의 여부에 투쟁의 성패가 달려
있다.
그렇다면, 현 시기 다양한 영역과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는
노동자․민중들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사수투쟁에서
집중해야 할 핵심고리는 무엇인가? 즉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구조조정에 대한 반대라는 정치적 방향과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적 요구 투쟁를 김대중 정권에 대한
대중적 정치투쟁(계투)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투쟁의
핵심고리는 무엇인가? 노동자․민중 자신이 투쟁 속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계급적 성격을 자각하고,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반노동자성 반민중성에 맞서 대중적 투쟁
동력을 형성해 낼 수 있는 핵심 고리는 ‘구조조정 저지투쟁’,
‘노동유연화 반대투쟁’,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
‘비정규직 철폐투쟁’이다.
한편, 노동자․민중의 이러한 투쟁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맞서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사수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정치세력화․산별노조 건설․상설공투체 건설 등의
정치적․조직적 목표와 결합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금속연맹은 2001년 2월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이미 결의한
상태이며, 공공연맹도 2001년 중으로 산별노조로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회주의적 진보정당 건설,
상설공투체 논의, 그리고 산별노조 건설 시도는 반신자유주의
반김대중 정권이라는 강력한 대중적 정치전선의 형성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채, 세력의 재편, 상층의 논의, 조직형식 전환
등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상태로 나아간다면,
진보정당은 그 이름과는 무관하게 노동자 계급투쟁을 제도적
틀내에 가둘 위험이 있으며, 산별노조는 새로운 형태의
노사협조체계의 구축을 매개하는 고리로, 그리하여 김대중
정권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의 계투관리전략에 포섭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노동자․민중운동 내부의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적 경향, ‘합법진보정당-형식적 산별노조’의 합법
개량주의 경향 등을 정치적․대중적으로 상대화시켜 내고,
계급적 노동자․민중운동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계급정치적 주체로 부각시켜 나가는 과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민중진영은 현 정세에서 다음의
두가지 과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노선과 정치적 태도가
어떠하든 반신자유주의․반김대중정권이라는 정치적 방향
아래 강력한 대중적 정치전선을 형성하는데 복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투쟁 속에서 새로운 지도력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3. 민주노총 3기 지도부의 역사적 과제와 정치적 임무
민주노총은 1월 18일 3기 임원선거를 앞두고 있다. 누가
위원장으로 당선되든지 민주노총 3기의 역할과 임무는 뚜렷하다.
2001년 상반기는 김대중 정권이 공언한대로 4대 구조조정이
완수되는 시기다. 그러나 4대 구조조정의 완수로 현재 김대중
정권이 직면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위기가 온전하게
극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2001년 상반기는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의 성패 여부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서 보수정치권 내부의 대립과 갈등은 물론
노동자․민중과 지배계급 전체와의 대립은 더욱 첨예화될
것이다. 이때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개혁
정책의 실패를 노동자 계급의 대중적 정치투쟁의 힘으로 돌파해
낼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이후 노동자․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는 물론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3기는 2001년 상반기투쟁을
‘반신자유주의 반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방향 아래서
전국적․전계급적 정치투쟁을 어떻게 조직해 내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3기
지도부는 바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지도부로 구축되어야 한다.
특히 민주노총 3기의 임기가 3년인데, 이후 3년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구조조정 공세가 일상화되는 정세로서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 민주적인 권리를
수호하는 대중적 교두보로서 다시 서나가는 것은 물론 이러한
투쟁을 통해 대안적 정치세력으로서의 노동자 계급정치의
가능성을 현실화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은, IMF 경제위기와 김대중 정권 등장 이후,
지난 3년 간 크고 작은 수많은 투쟁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감과 역동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노동대중이 보여준 투쟁력은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에 대해 한국의 노동대중만큼 끈질기게
투쟁하고 있는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과 같은 결과가 빚어지고 있는 것은 투쟁동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로 투쟁의 정치적 방향이 불분명하고 일관성이 없는
탓에 운동의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임단투와 같이 투쟁한 만큼 성과를 낳지 못하고 있는 데서
대중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핵심적인 원인은 성과를 낳지 못하고 있는 결과 그 자체가
아니다. 비록 당장에는 성과가 많지 않다고 해도 투쟁의 의미가
대중적으로 공유되고 운동이 진전되고 있다고 느낀다면 성과를
받아들이는 느낌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지난 3년 동안의 투쟁 경험을 총괄하고 투쟁의 정치적 방향을
대중과 충분히 공유한 속에서 일관된 태도와 행동을 가져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에는 크게 3가지 차원의 과제가
있다.
첫째는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것으로 현재의 계급 역학을
반전시킬 수 있는 투쟁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다행히 지난 3년
간의 투쟁 경험을 통해 반신자유주의․반김대중 정권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상층 지도부 역시
노선과 경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점에서 만큼은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그 누구 또는 어떤 세력이든 간에 차기
지도부는 반드시 이를 조직하고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파주의적 행동이 있을 수 없다. 종파주의적
행위는 더더구나 용납될 수 없다.
둘째, 위 첫째 과제를 실질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발전 정도로부터 요구되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노선 정립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사안을
원점에서부터 정비하고 재정립해야 한다.
셋째,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형성되고 있는 정세에 노동자 계급의
관점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만약 이 점에 대해 올바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세계사적 경험이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노동운동은 변혁을 이끌 계급운동이 아닌 민족주의 또는
민중주의 아래에서 하나의 부문운동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1)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자주적인 노동운동
지금 민주노총이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핵심적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상층 지도부의 불분명한 태도와 일관성의
결여이며, 또 하나는 바로 그로 인해 지도력이 전혀 발휘되지
않고 조합원으로부터 오히려 불신과 불만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정부보조금․한국노총과의
통합에 대해 민주노총의 태도 역시 대단히 불투명하며, 이 또한
조합원으로부터 불신을 받는 주요 원인들이다. 그것들에
동의하는 조합원이든 거부하는 조합원이든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민주노총과 상층 지도부의 현주소가 여기에 이르게 된
데에는, 운동의 발전 결과이며 투쟁의 산물인, 민주노총의
출범과 합법성 쟁취에 있다. 역사는 발전의 결과만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곧 바로 발전된 그 지점에서 즉각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노사정위원회․정부보조금․한국노총과의
통합은 전노협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부
전투적인 동지들의 경우 ‘전노협 정신’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노협 ‘정신’만으로 오늘의
민주노총이 부딪치고 있는 과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오늘의 시점(정세)에서
노사정위원회․정부보조금․한국노총과의 통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통찰하고 어떻게 이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이 제출되어야 한다. 3기 지도부는 이점을
분명하게 처리해야 한다.
(1)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태도
- 전술적․잠재적 수준에서의 노사정 탈퇴를 넘어
민주노총 전체 차원에서 볼 때 현재의 노사정위원회 탈퇴 상태는
사실 원칙적․기본적 거부에 입각하여 탈퇴하고 있는
상태라기보다는 전술적․잠정적 수준에서의 탈퇴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확인된다.
하나는, 민주노총 내의 다수 경향은 여전히 ‘교섭 틀’ 자체를
확보하는 것을 노동운동의 주요한 과제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산별교섭체계’ 쟁취 요구를 들 수 있다.
소위 ‘대정부 직접교섭’ 쟁취 요구도 그러한 범주 안에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 전략안 곳곳에서 이른바 ‘정책 참여’나
‘경영 참여’를 강조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나 사용자(단체)들이 민주노총과의 교섭을
거부하거나 회피해 왔던 까닭에 교섭 틀 자체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한 투쟁 과제로 되어 있는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민주노총이 합법화 된 상황에서 교섭 틀을
일상적․항상적․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의 확보 여부가 곧 민주노총(연맹) 지도부의 정치력과
교섭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라는 인식이 상식화되어 있다는
것도 그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하나는, 지금의 탈퇴는 원칙적․노선적 수준에서의
노사정위원회라는 기제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가 민주노총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대중의 경험적 불신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의 인식에 기반하고 있는
상층지도부는 현재는 대중을 설득하기가 어려워서 이를 인정하고
있을 뿐 내면적으로는 노사정위원회라는 기제(형식) 자체 때문에
결과가 그렇게 나타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현재의 힘의 역학
때문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따라서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참여 여부는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재론될 여지가
충분하다.
김대중 정권의 대노동전략(정책)이 민주노총의 탈퇴와 관계없이
여전히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급격한 정세
변화가 없는 한 최종 결론을 노사정위원회 바깥에서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비록 김대중 정권이 민주노총과
노사정위원회 바깥에서 대화나 교섭을 한다고 해도 마지막 합의
형식은 민주노총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노사정위원회를 통하는
형식을 취할 것이다.
이럴 때 민주노총 지도부(조합원까지도)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즉 민주노총의 성과를 김대중 정권(노사정위원회)이,
사회적 합의라는 기제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가져가는 것을 막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위원회를 원칙적․기본적으로
거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노조운동은 지난 13년에 걸쳐 단위사업장 수준에서는
임금․단체 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투쟁을 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교섭에 응하지 않거나 회피하는 사업주에게 교섭에
성실히 임할 것을 요구해왔다. 또한 전노협 시기에는 자본과
정권이 그 존재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에 교섭 또는
교섭 틀이라는 것은 아예 개념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러다가
민주노총과 연맹이 건설되면서부터 민주노조운동은 비로소 소위
‘시민권’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정권과 자본으로서도 더 이상
민주노조운동 진영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김영삼 정권 때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참여를 요청받은 것을
비롯하여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김대중 정권 들어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종용받고 있으며,
민주노총 합법화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민주노조운동진영은
비로소 법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 자체는 분명
민주노조운동의 성과이며,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단위
사업장을 넘어 전국적인 차원에서 교섭 틀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현실이 증명해주고 있듯이 노동조합은 새로운
고민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합법성’과 ‘참여’
보장이 한편으로는 그 동안의 요구가 관철된 것으로,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계기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즉 정권과 자본에 협조해야만 하는, 구조에 편입 또는
포섭될 수 있는 계기일 수 있다는 현실을 맞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대중적 노동운동(노동조합운동)의 발전전략 또는
발전전망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객관적․현실적으로 발생(등장)하게 된다. 이럴 때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독자적 발전전략(전망)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보다 중요하게 확인되어야 한다. 이러한 강조는 일체의
참여(교섭)를 거부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여(교섭) 틀을
일상화․항상화․제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참여(교섭) 틀 자체를 목표로 상정할 경우, 직접적인 요구를
정치적 쟁점화하기 쉽지 않고 그런 만큼 투쟁 동력과 주체
형성을 하는데 있어서도, 대중(계급)과 분리될 가능성이 높아,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뿐만 아니라 ‘참여’는
‘책임’의 딴 이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도화된 참여’는
결국 정권과 자본과의 파트너쉽(동반자적 관계, 협조주의적
관계)을 맺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요구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결국 해당
시기, 해당 사안을 둘러싸고 얼마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요구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인가와 이에 기반 한 투쟁 동력을 얼마나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으며, 그 수준에서 참여(교섭) 형식이 거꾸로
결정될 것이다. 안정적․항상적 교섭 틀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고, 상급단체로서의 정치력과 교섭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과 대중의 요구가 없지 않으며,
지배계급이 가해오는 압박과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바로 이것을 돌파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운동은
체제 내화되는 길을 피할 수 없다.
첨언하자면, 총연맹이나 산별(연맹) 수준에서 맺는 협약의
대부분은 최종적으로는 의회에서 법제화하는 형식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은 각 나라의 구체적 정치 지형과 전통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의 경우 의회 밖에서 이루어진
협약이 의회를 강제하는 정도는 대단히 미약하다. 의회 자체가
계급․계층의 역학을 반영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으며, 그렇게 될 수 있으려면 아직은 제도권 밖에서의 투쟁이
더욱 중요하고, 설령 그런 상황을 맞이했을 경우에도 제도권
밖에서의 투쟁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2) 정부보조금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보조금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민주노총 합법화가 이루어지면서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것을 합법화에 따른 당연한 순서 또는 하나의 권리로
바라보는 것이다. 둘째는 ‘돈’을 받는 것 자체를 곧바로
민주노총(연맹)이 ‘노정(사)협조주의’에 빠지거나 또는
‘개량화’되는 것으로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우 현실적으로 민주노총(연맹)이 부딪치고
있는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을 완화할 수 있는 불가피한 방안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 정부보조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역사적으로 정부보조금 제도 자체가 이미 권력(자본)의
대노동(조합) 포섭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으로, 오늘의
한국노총의 현실을 보면 이는 자명하다는 것이다. 위의 논리는
의지와 관계없이 일정한 시간과 과정이 경과하면 결국
민주노총이 체제내화되는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재정자립의 원칙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정 자립은 노동조합운동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한 관건의
하나이다. 알다시피 지금 ‘전임자 임금지금 금지’ 조항을
둘러싸고 노정․노사간에 대립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한국노총은 거의 조직의 사활을 걸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투쟁(?)을 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역시 이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않을 뿐 기본적인 태도는 한국노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한국노총 민주노총 할 것 없이, 특히
중소사업장의 경우는 이 조항이 관철될 경우 사실상 노동조합의
간판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으며, 대기업의
경우에도 그 정도만 다를 뿐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상식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보면 자본(사)측의 ‘전임자 임금지급’은
한국의 노동조합이 기업별 체계로 되어 있는 상황에서
단위(개별) 노동조합 차원에서는 ‘전임자 임금지급’을 통해,
그리고 상급단체 차원에서는 ‘정부보조금’을 통해 노동조합을
관리하기 위한 자본과 국가의 필요성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다만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등장하면서, 비록 단위 사업장이
민주노조를 표방한다고 해도 단위 노동조합의 합법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임자 임금지급’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민주노조의 경우 전임자 ‘수’를 더 많이
따내기 위한 투쟁이 있었던 관계로, ‘전임자 임금지급’이
하나(일종)의 투쟁의 성과로 되었던 측면이 강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현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정권과 자본이 이를 무기로 들고
나온 까닭에 이를 노동자(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으로 인식하는
것(실제로 탄압이다)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충분히
인정한다고 해도, 민주노조의 경우에도, 조합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사실상 ‘전임자 임금지급’의 주체가 조합원 ‘자신들’이
아닌 자본(사)측이라는 생각 안에 있었다.
오늘의 현실에서 볼 때 이는 대단히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비록 기업별 노조체계라는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의 주체를 ‘분명히’ 조합원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전임자에 대한
임금을 조합비에서 해결하고, 그 대신 그 부분을 요구로
임금인상을 분명하게 하는 과정을 밟았더라면 임금지급의 주체가
조합원 자신이라는 것이 자명했을 것이다. 똑 같은 투쟁을
하고도 그 결과가 낳은 정치적 효과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고 말았다. 금이라도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에 매달리거나 ‘정부보조금’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진정 노동자(노동조합)의 권리로 생각한다면(권리임에
분명하다) 임금인상에 포함시켜 이를 관철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3) 한국노총과의 관계
지금 시점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조직 통합을 염두에 두는
것은 여러 수준에서 그 부당함이 이미 제기되어 왔다.
한국노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빠른 길은
민주노총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외는 다른 방안이 없다. 이는
지난 13년에 걸친 대중적 노동운동의 역사가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 한국노총과의 통합을 통해 노동조합운동 전체를 강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그것이 아무리 순수하고 절박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일지라도 명백히 반노동자적이다.
비록 최근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한국노총 민주노총 가릴 것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연대․공동투쟁의 필요성이
없지 않지만, 현재 한국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총에서조차
상급단체(상층)지도부에 대한 조합원의 불신과 불만은 심각한
수준에 올라와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시급한 것은, 특히
민주노총 경우, 조직 통합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지도력을 회복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노동조합의 낮은 조직율로 인해 노동자
대표성에 문제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양
노총 조직 통합을 말하는 논리 역시, 그 동안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꾸는, 또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발상이다. 노동자의 대표성은 조직율 자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운동)의 전계급성․전국성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운동)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조직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다.
지금 시점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조직 통합을 하게 된다면,
이는 사실상 김대중 정권과 자본이 구사하고 있는 노동운동의
‘제도화’ ‘체제 내화’ ‘개량화’ ‘관료화’에 부응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는 당장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라는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실질적으로는 정권과 자본의 힘으로
밀어 부치려는 김대중 정권의 의도에 정확히 부합되는
것이다.
다만 한국노총에 소속되어 있는 노동자(조합원)와는 적극적으로
연대(단결)하고 공동투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의 현실적
방안은 그들 내부(아래)에서 올라오는 민주화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상층 차원에서의 연대(사실상
정치적 담합 또는 야합)에 매달릴수록 그 효과는 한국노총의
정치적 생명을 강화시켜주는 것은 물론 민주노총 내부조차 교란
당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훨씬 높을 뿐이다.
(4)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 대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전체 노동자 계급의 진운(進運)이 걸려
있는 중대한 문제다. 지금부터의 노동자 투쟁은 사실상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투쟁과제나 조직과제도 당연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강화․진전시키는 방향에서 잡혀져야 한다. 따라서
정치방침을 단순히 선거방침으로 제한하거나, 지금의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설정으로 이해한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기형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크게 세 단계를 경과해 왔다.
첫번째는 97년 대선 참여와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진보정당을
건설한다는 방침을 결정하기까지이며, 두번째는
‘(가칭)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까지의 과정이고, 세번째는
민주노동당 창당, 4․13 총선 방침을 거쳐 지금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제 시간적으로나 실천(경험)적으로나 지금까지의 전
과정을 총괄 점검하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히
마련되었다. 그러할 때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루어 나가는데 오히려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특히 2000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정치방침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질의에 대한 민주노총의 유권해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심각히 왜곡하였다. 그것은 그나마 위 첫번째
단계에서는 비록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의회진출을 위한
합법정당건설로 제한한 문제가 있었지만 노동자대중(조합원)이
정치세력화의 주체로 서야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되고 있었고,
두번째 단계에서는 미흡하나마 어떻게 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올바른 길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형성되었다면, 세번째 단계에서는 논의가 진전되기는커녕 오히려
완전히 봉쇄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민주노동당을
대상으로 한 일방적이며 폐쇄적인 결정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을
뿐, 전체 노동자 계급을 정치세력화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문제의식은 완전히 거세되어 있다.
“민주노총은 변화된 상황에 맞는 정치방침을 확정짓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2000년 정기대의원대회)는 것은 곧
“민주노동당 당원모집 방안”을 일컫는 것으로, “민주노총은
제 정치조직과의 관계에서 대중조직 고유의 상대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제 정치조직과의 연대, 지지, 지원을
강화하되”(99년 8. 23 15차 대의원대회)는 한낱 정치적 수사로
전락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질의에 대한
유권 해석에서 증명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6․8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아니더라도 민주노총
지원․지지후보가 될 수 있다는 결정을 함으로써
민주노총의 유권해석을 현실적으로 극복했다.
이제 민주노총은, 4. 13 총선 경험이 생생히 살아있고
민주노동당이 재창당을 앞두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대중조직
본연의 정치방침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것은 15차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정치방침 중 특히 ‘일반원칙’을
전면적으로 복원․강화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는 곧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단순히 의회진출만으로 협소하게 사고하는 것을
극복하고, 동시에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또한 상대적 협력 관계로
돌려놓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중조직과 정치조직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에 대해
각 나라의 경험과 구체적 상황은 각각 다를 수 있다. 서구의
경우 특정 (총)연맹과 특정 정당이 밀접한(조직적)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또한 역사적으로 대중조직으로부터
정치조직(정당)이 추동되는 과정을 밟기도 했으며, 역으로
정치조직(정당)이 대중조직을 추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그것들은 모두 ‘산별노조-합법정당’을
짝으로 하여 체제내적 선거․의회주의를 통한 정치세력화
경로라는 점에서는 모두 똑 같다. 그리고 이 경로를 통한
정치세력화는 모두 정치노선에 있어 사민주의로 귀결된 것이
역사적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반대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서구에서는 거의 대부분 사민주의 정당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서구가 아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코사투(COSATU)와 ANC, 브라질의 PT당과
CUT, 니카라구아의 산디니스타가 겪고 있는 현실을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선거에서 선전 또는 고투하고 있는가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치세력화의
유력한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역시 민주노동당을 보다 ‘노동자계급
중심적, 투쟁 중심적, 변혁 중심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만을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중심 과제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와 다른 정치세력화 방안을 모색하고 준비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이다. 물론 그와 다른 방안이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아직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세계사의 경험을
총괄한 위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개척해야 할만큼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민주노동당식 경로는 설령
성공(집권)한다해도 그것이 노동해방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그것이나마 가능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주장은,
그조차 꿈 같은 현실 때문에 진보적인 듯이 보이지만, 대안이 될
수 없는 전망을 붙잡고 늘어진다는 점에서 철저한 패배주의에
다름 아니다.
대중조직 수준에서도 공식적인 노동조합 체계와 달리 다양한
형태와 수준의 ‘현장조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보더라도, 민주노총은 다양한 형태의 정치조직이 노동자와
접점을 형성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민주노동당만을 패권적으로 엄호하는 정치방침을 유지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일뿐만 아니라 현장정치활동의 복원과 활성화를
위해서도 걸림돌이 될 뿐이다. 민주노동당도 다양한 정치조직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정치방침을 통한 강제는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정치활동과 주체형성, 조직화를 제약할 뿐이다
(5) 조직형식 전환을 통한 산별노조 건설에 대해
노동자계급의 조직은 투쟁을 통해 건설될 뿐만 아니라, 건설된
조직은 투쟁의 무기(수단)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와
반대로 조직 자체를 물신화하여 ‘조직건설투쟁’ 또는 ‘조직
자체의 체계화․안정화’를 우선한다면 역동성은 사라지고,
조직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돼버린다. 이렇게 되면 조직건설
과정에 힘이 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직이 오히려 투쟁에
걸림돌로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실 지금의 현장은
기업별노조의 질곡아래서 자신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위해
헌신적인 투쟁을 전개해 왔던 수많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산별노조 건설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산별노조로의 조직전환
자체에 대해 아예 무관심하거나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87년 이후 투쟁과 조직건설의 역사를 보면 조직이 어떻게
결성되어 왔는지 알 수 있다. 95년 민주노총 출범까지는 투쟁이
조직건설을 추동해 왔으며 그렇게 건설된 지노협, 전노협은
투쟁의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출범이 그러하고 이후
연맹 결성이 그러하듯이 ‘투쟁을 통한 조직건설’은
약화되었으며 탄력을 잃었다. 이 때부터 투쟁과 조직은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상층지도부와 대중 사이에 만리장성이 쌓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조직건설의 주체가 대중이 아니고, 또한
조직건설의 동력이 대중투쟁이 아니라 상층 지도부가 위로부터
제시하는 일정(프로그램)이 돼버렸다. 그 순간 대중은 주체에서
동원 대상으로 전락된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산별노조’ 건설 과정에서 이런 현상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산별노조건설을 일정에 짜여진 프로그램으로
진행시키고자 하는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과정이 대단히
지지부진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원인을, 국가와 자본의 태도를 별개로 하면, 기껏해야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대중의 낮은(?) 의식수준, 기업별 노조,
대공장 이기주의에서 찾고 있다. 이런 수준의 인식과 대응으로
산별노조를 힘있게 추진할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와 지금의 정세에 비춰 볼 때,
산별노조건설을 위한 핵심은 민주노총의 위상과 역할을
‘전국투쟁사령부’로 확립하는데 있다. 지금 진행되는 방식에
의한 산별노조를 통해 민주노총을 강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되어야 한다. 즉
민주노총의 강화를 통해 그 힘으로 산별노조를 추진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민주노총을 강화할 것인가와 그 힘이 어떻게
산별노조를 추동하는 동력이 될 수 있는가에 답하는 것이다.
현시기 민주노총 강화는, 노선문제나 지도력 문제를 일단
제외하고 보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는
연맹별, 사안별, 계기별 투쟁을 집중하여 민주노총이 직접
투쟁의 구심 역할을 해야 한다. 연맹이나 단사가 투쟁하고
민주노총은 참조 연설이나 교섭을 거드는 지금 방식에서
민주노총이 투쟁의 중심에 서는 방식으로 즉각 전환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제도화된’ 또는 ‘박제화된’, 즉 ‘일정을 박는’
투쟁 방식을 걷어내야 한다. 대중투쟁을 짜여진 일정에 의해
자판기처럼 진행시켜서는 투쟁의 역동을 읽을 수도 살릴 수도
없다. 이것이 이른바 ‘관료적’ 방식의 투쟁 방법이다.
‘일정’은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일 뿐이다. 대중의 상태와
분노의 흐름을 읽어내고, 정세의 움직임을 판단하면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을 때 대중투쟁 동력을 강화할 수 있으며. 그 때
비로소 대중 자신을 투쟁의 주체로 세울 수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산별노조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결정적으로는
현재의 계급 역학 때문이며, 부차적으로는 지도력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산별노조를 만들어 정세를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산별노조가 가능할 수 있는 정세를 먼저 조성해야 한다. 이는
민주노총을 통한 전국적 투쟁전선의 구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게다가 산별을 구걸하는 지도력으로 어떻게 대중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위로부터의 계몽주의적 조직건설 방식, 투쟁은 배제한 채 총회를
통해 산별전환을 결의하는 방식, 입으로는 계급적 단결을
외치지만 실천은 반노동자적인 노조 ― 현재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박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연맹은 이를 산별노조 건설 후의 과제로
이월하고 있다. 심지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고용 보장을 위한 방패막이로 투입하는 등 노동조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공론화도, 징계도 없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산별노조 건설의 정당성이 강조될수록 산별노조
건설의 정신은 혼탁해지고, 산별노조 건설의 시급함과 절박성이
강요될수록 건설과정은 우선 띠우고 보자는 식의 파행을
드러내고 있다 - 에 대해 아무런 대안이 없는 채 추진되는 산별,
산별노조의 건설을 대중투쟁과 분리시켜 조직형식을 전환하는
문제로 접근해 왔던 경향,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계급적
단결․연대투쟁과 산별노조 건설투쟁을 분리시켜 왔던
경향, 그리고 대중조직의 조직발전을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정치적 과제와 분리시켜 왔던 경향 등이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6) ‘민중연대․시민운동․국제연대’에 대한 태도와
입장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서, 비록 대단히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고 대중으로부터 비판에 직면에 있지만, 현 단계에서
객관적으로 민주노총이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투쟁적
구심인 것만은 명확한 사실이며, 또한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는 것이 아직은 필요하다. 지금의 민중대회위원회를
보더라도 민주노총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그 역할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그 동안의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역으로 말하면 민주노총, 즉 노동자계급이 민중연대
투쟁전선에서 투쟁적․정치적 주도력과 지도력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발휘해야만 지금의 민중대회위원회가
노정하고 있는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민주노총 중앙조차도 민중대회위원회를 민주노총에 대한
지지․지원체 정도로 사고하고 있다. 말하자면 힘들고
아쉬우면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사고하는 한 민주노총은 끝없이 시민운동 주변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뭔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사고하는 순간, 민중대회위원회든 시민운동 진영이든 그
차원에서는 동렬, 즉 같은 수준의 문제로 놓이게 된다. 따라서
민중대회위원회는 집회를 같이하는 것으로, 시민운동 진영하고는
정책연합이나 언론(여론)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기계적인 역할
분담론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노동운동은
변혁을 이끌어 갈 주도세력으로 성장할 수 없다. 그저 수평적
차원에서 하나의 부문운동으로 위치지워 지고, 기껏해야
서구에서 이미 파탄난 ‘사회적 합의주의’ 운동을 하거나
잘못하면 제세력에게 역포위 되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서서히 보다 노골적인 ‘노사정 협조주의’로 들어서게 된다.
더구나 최근 남북정세의 급변과 함께 민족주의 위력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까지를 감안하면 계급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이 무장 해제 당할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제 민주노총은 시민운동 진영 활용론을 분명히 폐기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더라도 ‘현실론․활용론’에 의해
거꾸로 민주노총이 철저히 활용당해 왔다. 시민운동은 허구적
‘공익’을 앞세워 노동자의 투쟁을 가로막았으며, 더욱 무서운
것은 노동자대중을 끝없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아래로
가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산술적으로도
시민운동의 도움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미미할 뿐이며, 그 정도는
어차피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국제연대와 관련해서도 세인의 관심이 덜 가거나 최소한
정보조차도 알 수 없는 특수한 성격 때문에, 민주노총이
국제연대와 관련하여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노동대중은 전혀 알지도 못한
속에서, 몇몇 세력들에 의해 기껏해야 프로젝트(돈)를 따오는
것에 급급하고 있다. 더구나 그 돈의 정치적 성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검토되고 있지 않다. 결정적으로 지난 10월
20일 ASEM 반대 투쟁에서 민주노총의 국제연대가 어떤 수준에
놓여 있는가가 폭로된 바 있다.
우리의 민주노조운동은 전세계 노동자 계급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며 앞으로 어떤 전망을 열 것인가라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지금 민주노총의 국제연대는 참으로
심각한 지경에 도달해 있다. 국제연대 또한 변혁이라는 관점에서
시급히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제 민주노조운동과 계급적 노동운동 세력은 생존권투쟁과
민주적 권리투쟁을 대중투쟁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으로
연결시키면서 동시에 노동자 계급의 정치조직을 건설해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노동자 계급의
‘혁신’과 ‘연대’를 실현하는 길이자,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한/노/정/연